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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비췬 세상

대장경축제에서 만난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다

by 참교육 201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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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리고 있는 합천해인사. 합천명소탐방 파워블로그 팸투어 일행 23명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해인사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이슬비가 촉촉하게 뿌리는 초 가을... 가야산 국립공원 자락에 안겨 있는 합천해인사는 상왕봉(1,430m)를 중심으로 두리봉, 깃대봉, 단지봉, 남산 제일봉, 등의 암석봉우리로 이루어진 가야산 중심에 앉아 있습니다.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이 있는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건축물인 당간지주입니다.
해인사 입구에 '나무미타불'이라고 쓴 지주가 반문객을 맞고 있었습니다.

당간지주란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는데 돌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철·금동·나무로도 만든 것도 있다. 

 
이번 팸투어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 해방 70년이 가까워 오는데 식민지의 잔재는 이곳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 구석구석에도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는사실입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나라... 독도문제가 그렇게 일본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왜곡문제가 그렇고 정신대문제며 문화제 반화문제 등등 아직도 일본과 우리는 가까이하기는 너무 먼 당신이다.

언젠가 비무장지대를 둘러보다가 곁에서 일본말로 웃으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듣고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느꼈던 일이 있다. 38선이 누구 때문이며 6·25는 누구 때문인가? 제대로 된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숙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상처난 역사의 아픈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 큰 웃음소리로 떠들고.. 하는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울분이 솟구쳤던 것은 나의 과민한 성격 탓이었을까?

합천에서 열리고 있는 2011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에서 그 때의 생각이 떠올라 치를 떨었던 일이 있다. 하나는 수백년 묵은 소나무가 저들의 전쟁야욕을 채우기 위해 피를 뽑아간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는 현장이고 또 하나는 친일 승려 변설호가 해인사 입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를 일제에 밀고해 사명대사의 비석을 네 조각을 냈던 역사의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번째 현장.
마치 군대의 계급장처럼 파낸 부분이 일제가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발악적인 전쟁광의 모습을 드러낸 흔적입니다.
비행기의 항공유가 모자라 우리나라 곳곳에 수백년 묵은 소나무를 이렇게 껍질을 벗겨 송진을 채취해 항공유로 사용한 흔적입니다.

누구나 이 현장을 보면 악랄한 왜놈들은 민주의 피만 뽑아먹은 게 아니라 나무의 피까지 뽑아 먹은 잔인한 흡혈귀를 연상하게 됩니다.
나무를 이지경으로 만들어 놨으니 농민들에게 한 수탈으 어느정도인지.. 또 우리의 조상대대로 지켜온 수중한 문화유산을 얼마나 훔쳐 갔는지... 무덤까지 파헤치고 도굴해간 문화재의 재산가치는 수치로 나타내 수 없는 날강도 짓을 해 간 것입니다. 
   


두번째 현장.

친일 승려 변설호가 해인사 입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를 일제에 밀고해 사명대사의 비석을 네 조각을 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인들의 변절은 역사의 고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식민지시대 조선의 개신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구별하지 않고 나타납니다. 기독교의 우상숭배문제는 십계명으로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할 계명이지만 신부나 목사라는 지도자들이 스스로 변절했던 기록은 기독교의 슬픈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민족을 배신하고 종교까지 일제에 갖다 바친 목사난 승려들이 아직 단 한번도 역사 앞에 속죄를 한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중에 변설호(일본식 이름은 星下榮次)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법명은 영세(榮世), 호는 초우(草牛)입니다.  

48세 때인 1935년에 금강산 유점사 강주로 있다가 경성부의 유점사 경성포교당에 포교사로 부임. 총독부의 비호로 주지지에 당선된 변설호는 국방헌금 모금에 적극 나섰으나, 사찰의 부채를 정리하고 건물을 수리하여 신도를 모으는 데 노력. 주지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주지선거에 재선되기 위해 같은 승려인 '이고경이 학승들에게 불교경전 외에 역사와 같은 다른 과목을 가르치면서 항일 교육을 했다'며 일제경찰에 밀고한 사건을 일으켜 재선됩니다.
 
또 한가지 사건은 홍제암에 세워져 있던 사명대사 석장비가 일본 형사들에 의해 파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변설호가 조선에 불경스런 사명대사라는 중의 비석이 있는데 이 비석을 제거해야한다고 일경에 밀고. 사명대사 석장비를 네 조각 내서 한 조각은 해인사 내 경찰주제소 정문 디딤돌로 사용하고 나머지 조각들은 해인사 구광루와 명월당 앞에 방치했습니다. 일제 때 네 조각으로 쪼개졌던 이 비석은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복원을 했습니다. 복원한 비석에는  변설호와 그 무리들을 가리키는 "절 안의 벌레"라는 구절이 들어 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사명대사의 석장비를 접합한 모양이 십자 형태로 붙여저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팔만대장경을 통해 본 종교의 모습.
종교가 왜 생겼을까?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종교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을까? 분명한 사실은 사람이 종교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신을 만들었을까? 기독교든 불교든 모든 종교에서 신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인간의 유한성과 때문이다. 종교란 ‘죽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인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쩌랴! 주인과 손의 위치가 서로 뒤바뀌는 주객전도라더니...!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지만 종교는 오히려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때로는 신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해 사람들의 삶을 옥죄이기도 하고 구원자가 되기도 한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나타난 종교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힘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권력은 그런 유능한 신을 가만둘 리 없다. 처음에는 정교일치로... 다음에는 정교분리라는 가면을 쓰기는 했지만 그 대의 종교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고려시대의 경우를 보자
고려시대는 승려들은 권력에 의해 승과제도가 도입되고 국사니 선사니 하는 계급으로 서열회된다. 

그렇게 종교와 함께 등장해 한편으로는 신으로 한편으로는 권력으로 변신해 민중을 지배하게 된다. 권력과 종교! 그것은 종교가 이데올로기일 때 가능했던 일이다.
팔만대장경을 통해 본 종교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全知全能)한 존재다. 아니 사람이 신에게 부여한 권력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이 신에게 허용한 권력이 신으로서의 종교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하게 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에 세워진 거대한 예수 석상. 팔을 벌리고 도시를 감싸 안듯 서 있는 예수상 높이는 무려 38m다. 신라 경덕왕 때 건립되었다는 석굴암도 예외는 아니다. 석굴암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할까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그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까 1236년 몽고의 침략으로 나라가 온통 전화에 아우성을 치고 있는 시기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이 낳은 위대한 기적... 그것이 팔만대장경이다. 경판(經板)의 수만 무려 8만 1258판에 이르며 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목판에 새겨진 경구가 좀 하나 좀먹지 않고 보존된다는 기적 같은 사실은 종교의 위력일까 인간의 무한가능성일까?

종교를 모르면 종교는 영원한 인간의 주인이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계단은 높고도 높다. 
민중들의 부처님이 고려시대로 들어 오면서 승과제도를 도입, 스님들까지 계급으로 나누는 귀족들의 불교로 바뀐다. 

부처님의 모습도 처음에는 목불에서 석불로 석불에서 철불로 동불, 금동불 금불로 바뀌고 이렇게 높디높은 자리에서 귄위에 찬 모습으로 앉아 있게 된다.

 

해인사를 나오면서 만난 성철스님의 부도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사물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수준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나의 눈에는 승철스님이 저런 부도는 승청스님이 우너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승철스님이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저런 부도를 자신을 위해 만들어 달라고 했을까? 
  


성철스님이 자연을 이렇게 훼손해 자심의 무담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나 계실까?
불교가 다비식을 하고 재를 뿌리는 이유는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 아닐까? 

사리를 모시기 위해 이렇게 자연을 훼손했으니 이런 일을 한 사람은 저승에서 승철스님을 만나면 아마 혼줄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철스님의 부도를 보면서 승청스님이 마지만 남기고 가신 법어가 생각난다. 

"스님, 한 말씀만 여쭈겠습니다."
"뭐를?"
"일천삼백만 불자가 있는데 그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내 말에 속지마라. 자신의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내 말 말이여. 내 말한테 속지말어. 나는 늘 거짓말만 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속지 마라, 그 말이여." 

平生을 欺?男女群하니 彌天罪業이 過須彌로다(
평생을 기광남여군하니 미천죄업이 과수미로다)
活陷阿鼻限萬端이여 一輪吐紅掛碧止이로다(활함아비한만단이여 일윤토홍괘벽지이로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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