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관련자료/교단일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9.07 퇴임한 교사, 나는 왜 교단을 떠나지 못하는가?(상) (24)
  2. 2010.05.15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6)


 

 

불친님.. 안녕하세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해 보니...' 마지막 결론을 써야 할 차롄데 어제 세종시로 이사하는 바람에 차분히 글을 쓸 분위기가 아니네요

대신 계간지 '우리교육  2012 가을호'에 기고했던 '퇴임한 교사, 나는 왜 교단을 떠나지 못하는가?'를 3회에 걸쳐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해 보니...' 마지막 정리는 집이 정리되는대로 다시 마무리 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직도 교사다.

퇴임한지 6년이나 됐는데 사람들은 나를 아직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전직이 교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아직도 현직이다. 학교가 싫어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만남의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 뜻을 같이 하는 선생님들과 제자가 힘을 합해 보리학교(사단법인 창원 가온누리센터)라는 대안학교를 설립,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임한 선생님들 중에는 참 다양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환경운동을 하던 어떤 선생님은 생태학교를 운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평생을 쌓아 온 노하우를 살려 자신이 전공한 분야를 후배들과 나눔의 자리를 마련, 그들과 함께 하기도 한다.

 

‘점수에만 열을 올리는 애들을 가르치느라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은 할 수 없는 '무너진 교실'이라 교사는 허탈하다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점수조차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그득한 교실은 어찌해야 할까요?

지식이든 삶의 지혜이든 배울 생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놀 생각만 있는 아이들. 삶의 지혜나 도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면 비웃기 바쁘고, 하다못해 교과지식 하나라도 가르치려 하면 이런 거 왜 배우냐며 빈정거리는 애들을 앞에 놓고 있노라면 '진정한 교육'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치입니다.

 

점수에 목숨 걸고 점수 때문에라도 하나라도 더 들으려 집중하는 애들을 가르쳐봤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필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참교육이야기)에 12년 전 오마이뉴스에 썼던 ‘무너지는 교실, 교사는 허탈하다’는 글을 올렸더니 ‘어느 교사’라는 네티즌의 쓴 댓글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점수 때문이라도 좋으니 공부하고 싶은 아이 한 번 가르치는 게 소원’이라고 까지 했을까? 12년 전의 필자가 썼던 글을 보자.

 

 

 

상황 1. 씨×! 학교 안 다니면 그만 아닙니까?

 

책가방도 버려 둔 채 달아나는 학생을 따라 가 보지만 붙잡아 교실에 앉혀놔도 마음이 떠난 아이를 잡아 둘 재간이 없다. 20평도 안 되는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과 교사와의 거리는 끝간데없이 멀어만 진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보면서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푸념을 하는 교사들이 늘어간다.... 최근 서울의 ㅁ중 김모교사(31·여)는 지난달 말 5교시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깨웠다가 봉변을 당했다.

 

여러 번 채근한 뒤에야 고개를 겨우 든 남학생은 한동안 대꾸도 하지 않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씨…』하고 내뱉더니 책상을 차고 일어났다. 한참 꾸지람을 들은 학생은 『교실 뒤쪽에 서 있으라』는 말에 벽과 문을 잇달아 발로 차면서 수업을 방해했다.(2000년 6월 "무너지는 교실, 좌절하는 교사!" 중 일부)’

 

그 때부터 12년이 지난 오늘날의 교실은 어떤 모습일까?

 

‘상황 2. 수업 시작 벨이 울리면 교사는 교과서와 수업 재료를 챙겨들고 교실로 향한다. 하지만 골마루엔 아직도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넘친다. 벨이 울렸는데도 교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장난 삼매경'에 빠지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교실 문을 연다.

 

책상 위를 뛰어 다니는 아이, 사물함 위에 드러누워 자는 아이, 교탁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숨바꼭질 하는 아이. 참으로 다양한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이 꽁꽁 닫혀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선풍기와 에어컨으로 교실 열기를 식혀낸다.(2012년 7월 12일 경남도민일보 '사천 중학교 '멘붕 스쿨' 어떡하지...?'에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학교는 왜 달라지는 게 없을까? 아니 달라지기는커녕 학교폭력이며 수업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더 흉폭화, 조직화, 저연령화, 여학생화, 사이버화... 하고 있다.

 

<교육을 할 것인가? 승진을 할 것인가?>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발령을 받아 교단에 서면 교사인 내가 할 일은 교직원들 간에 인간관계가 좋고 교장선생님 뜻에 따라 교과서를 잘 가르치는 사람이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대하면 금상첨화라고...

 

 

교사는 그렇게만 살면 될까? 가끔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른이 됐을 때 행복해 할까?’ ‘이렇게 가르치는 게 교사로서 책무를 다 하는 것일까?’, 시험문제 풀이로 날밤을 세면서 ‘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는 할까? 교사는 교과서나 잘 가르쳐 몇 명이라도 더 일류대학에 더 입학시켜주는 것으로 교사의 책무가 끝나는 것일까?

 

교육과정이 왜 수요자중심인지 그런 교육과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교육법에 명시한 교육목표를 도달하게 할 수 있는지, 전국단위일제를 치르면 정말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안내자 구실을 하는데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공문서를 얼마나 잘 처리해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교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나 않는지...?

 

수업시간이 힘들고 지치면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보다 세상을 탓하고 아이들의 도덕성을 탓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점수를 계산해 승진을 꿈꾸는 교사는 아닌지... 교육을 살리겠다는 의지나 무너진 교실을 온몸으로 바꿔보겠다는 생각보다 승진이라는 탈출구를 찾겠다는 교사들이 있고 아이들 편에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교장, 교감선생님 눈에 잘 보이는 게 교육자로서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교사, 그는 누구인가?>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했던가? 나도 유신헌법과 12·12 그리고 5·18과 같은 역사의 변혁기를 겪지 않았다면 아이들에게 교과서나 가르치고 교직을 마칠 번했다. 그러나 운 좋게도(?) 그런 변혁기를 겪으며 초등학교에서 중등학교로, 사립에서 공립학교로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근무하며 교육의 모순을 경험하면서 교육모순과 사회모순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교과서가 국정인지 검인정인지 자유발행제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철부지(?)교사가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만나게 된다. 1979년 마산여자상업고등학교. 학급당 70명에 가까운, 주당 35시간 내외의 수업, 윤리, 사회, 역사, 세계사, 국사, 문서사무까지...

 

그것도 낮에 수업이 끝나면 산업체 특별학급 수업까지 감당해야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유신헌법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기술한 교과서며, 미국을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쓴 세계사 교과서,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윤리교과서를 가르치면서도 그게 잘하는 일인지 부끄러운 일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던 부끄러운 교사시절을 보냈다.

 

‘5.18광주민중항쟁’이 북괴 특수부대의 공작이라는 언론의 보도를 보다가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비디오를 보고 분노하기도 하고,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과 같은 책을 만나면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다. 북한은 동족이 아니라 악마의 상징으로 가르치던 교사가 황석영의 ‘죽음을 너어 시대의 어둠을 너머’와 같은 책을 만나면서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교사로 살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계속)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희숙아(가명), 너 어머니께 학교생활이 너무 힘든 다고 했었니?”
“예”
“뭐가 힘든지 선생님과 얘기 좀 하자”
희숙이 어머니로부터 ‘기숙사생활이 너무 힘들어 아이가 자퇴를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상담실에서 희숙이와 마주 앉았다.
“아침 여섯시 반에 일어나 운동장 열 바퀴를 도는 게 죽기보다 싫어요”
“그래? 많이 힘들겠구나. 중학교 때는 몇 시에 일어났는데?”
“일곱시 반이요”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는 몇 시까지 학교에 오는지 아느냐?”
“여덟시나 여덟 시 반에요”
“내가 알기로는 인문계 학교는 8시부터 자율학습이 시작되니까 늦어도 일곱시 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올해 개교한 공립 기숙형 대안학교인 태봉고에서 기숙사생활이 힘들어 자퇴하고 싶다는 학생과 만나 상담을 하고 있다.
“왜 학교에서 기상시간을 여섯시로 정해 놓았을까? 요즈음 청소년들은 야행성(?)이라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더구나. 잘못된 습관이란 살아가는 데 평생 바꾸기 힘든거란다.
선생님의 딸(정희-가명) 얘기 한 번 들어 볼래?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가 됐지만 우리 아이는 몸이 허약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걸 너무 힘들어했단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침마다 깨워야 일어나는 게 버릇이 됐지. 딸의 잠버릇 때문에 가끔 부부싸움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국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혼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학교에 다니다가 결혼을 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금에도 아침에 일어나는 걸 너무 힘들어 하며 살고 있단다. 잠버릇을 비롯한 잘못된 버릇이란 이렇게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고칠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진단다. 특히 나쁜 버릇은 말이다. 그래도 늦잠을 자고 싶으냐?”
“그래도...”
맞는 얘긴 맞는 얘긴데 뭔가 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힘 드는 건 맞지. 어른도 그런데, 한창 잠이 많은 청소년기에는 더더구나 힘들지. 교육이란 뭘까? 교육이란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야. 스스로에게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습관화 하는 것, 생활화하는 거야.”
“학교급식을 왜 하는지 아니? 학교급식은 집에서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란다. 방부제와 농약, 그리고 인스턴트식품으로 범벅이 된 식단은 입에는 즐겁지만 몸에는 해로운 음식이지 않니? 그런 음식에 길들여지면 건강을 잃게 되는 게지. 학교급식의 목적이 잘못 길들여지기 쉬운 입맛을 고치기 위해서란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래. 기상시간도 마찬가지야. 희숙이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무한정 자유가 주어진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할 일은 하지 않을 판단과 결단력이 있을까? 사람이란 개인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을 일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단다. 절제할 수 없는 자유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
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뭐든지 학생들이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싱럽이나 인문계 학교 그러니까 지금까지 학교는 학생들이 지켜야할 생활지도 규정을 학생도 참여하지 않은 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해 놓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그런 지도방식이었다. 그런데 태봉고등학교에서는 학생 스스로 교칙을 만들고 그 교칙을 지키도록 약속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규칙이란 왜 필요하고 왜 지켜야 하는지 또 잘못된 규칙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깨닫고 공동체 회의에서 규칙을 바꿔 스스로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희숙이는 이정도의 약속이나 규칙도 지키기 어려워 부모님께 응석을 부렸던 모양이다. 희숙이뿐만 아니다. 담배를 피우고 무단이탈하고 늦잠을 자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움에서 나약해지는 자신에게 패배하는 생활에 벗어나지 못하는 학생들. 이제 통제와 단속이라는 타율이 아니라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가치내면화의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대안학교가 시도하는 교육의 이념은 스스로 자신과 싸움에서 자기를 찾아가는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지도를 해 왔는가? 가치내면화를 통한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타율과 복종이라는 군대식 통제와 단속으로 규제하고 주입식 교육,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입시위주교육에 주력해 왔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말하고 인권을 말하면서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교에는 인권도 민주주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타율과 복종이 지배하는 학교, 성적지상주의 학교에는 교육은 없고 일류대학을 위한 준비과정으로서 '효율과 경쟁이 살 길'이라는 구호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