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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0.05.27 이용수할머니 섭섭한 마음 이해는 하지만... (22)
  3. 2020.05.18 5·18 광주민중항쟁의 진실 (16)
  4. 2020.04.24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12)
  5. 2020.04.11 오늘은 대한민국건국 101주년 기념일입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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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2019.02.15 사관(史觀)없는 역사교육은 우민화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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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2018.12.05 박정희는 왜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었을까? (4)
정치/역사2020. 5. 28. 06:21


같은 사람을 두고 한쪽에서는 ‘구국의 영웅’ 다른 쪽에서는 독립군을 토벌한 ‘민족반역자’라고 한다. 백선엽(100세) 예비역 대장 얘기다. 그는 만주국(일제가 세운 괴뢰국)의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군 토벌부대로 알려진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악질 친일파 중 선봉에 선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자를 대한민국 창군 주역이며, 한국전쟁 당시 제1사단장으로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으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국가보훈처가 최근 백선엽을 찾아가 "서울 국립현충원 안장을 고집하면 파묘될 수도 있다"며 “백 장군 사후에 서울현충원이 아닌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친일세력들과 시민단체들간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6·25영웅 백선엽 장군에 서울현충원 못 내준다는 보훈처”, “백선엽 "軍 간부들 정신 바짝 차려야", ”보훈처, 한국전 영웅 백선엽 장군에 “현충원 자리 없다...파묘할 수도”라는 기사에서 “창군 원로들을 친일파로 몰고 가는 것은 대한민국 국군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개탄했다.

국립묘지 현충원에는 국가원수와 국가에 현저하게 기여한 유공자,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열사들이 묻혀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현태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대전 현충원 안장에 대해 5·18유관단체들은 그가 5공비리 인사였다는 점을 거론해 강하게 반발했던 일이 있다. 백선엽이 사망 후 서울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족문제연구소측에서는 “백선엽은 젊은 시절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 배치돼 팔로군과 동북항일부대를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고 중위로 해방을 맞았던 인물이며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딱지가 붙은 인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은 서울현충원에..., 김석범, 신현준, 송석하, 백홍석...은 대전현충원... 에 안장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한겨레신문>이 국가보훈처에 요청해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자 현황’을 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65명이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대전현충원에는 장군 1 묘역 17명과 2 묘역 5명, 경찰관 묘역 3명, 장교 1 묘역과 2 묘역에 각각 1명, 국가사회 공헌자 묘역 1명 등 총 28명 서울현충원에는 27명의 반민족행위자가 안장돼 있다.



<독립군 학살, 스스로 인정한 백선엽>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백선엽이 쓴 “젊은 장군의 한국전쟁-소시샤(草思社”에서 스스로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 경력을 인정한 글이다. 이런 전력의 소유자를 국방부는 극진히 예우했다. 국방부 소속 에쿠스 승용차에 운전병까지 배치받아 개인 전용차로 이용했고, 4급 개인 보좌관을 제공 받는 등 장관급 수준의 특혜를 누리며 살아오다 최근 건강 상태 얘기 끝에 장지(葬地)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큰일 낼 사람들이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 의식이 희박한지 모를 일이오. 건국 이후의 첫 명예 원수 추대는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이 매우 중요하오. 만약 일본군·만주군 출신에다 독립군 토벌 작전의 지휘관 경력자가 명예 원수로 추대된다면 우리나라 건국사와 국군사는 하루 아침에 북한 역사관에 종속될 거요."... 백선엽의 명예원수 추대 소식으로 논란이 됐을 때 주월 한국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채명신 장군의 말이다.

오죽했으면 독립운동가 조경한(1900~1993) 선생은 “내가 죽거든 친일파가 묻혀있는 국립묘지가 아니라 동지들이 묻혀있는 효창공원에 묻어 달라”고 유언까지 했을까? 이런 백선엽의 사후(死後) 국립묘지 안장 문제가 논란에 대해 전황폐하 만세를 불렀던 조선일보는 “창군 원로들을 친일파로 몰고 가는 것은 대한민국 국군을 부정하는 것”이며 "백선엽 친일파 몰고가는건 대한민국 국군 부정"하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독립군을 학살한 인물이 현충원에 안장돼 사후에도 국군의 사표가 되면 이 나라의 정체성은 무엇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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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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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들이 주장한 대로 구국의 영웅을 백번 인정한다치더라도 백선엽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현충원에 묻힌다는 것은 한쪽의 주장만 인정한다는 얘깁니다. 역사를 바르고 공정하게 가르친다는 차원에서라도 그는 그냥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는게...

    2020.05.28 06: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현충원에...아무나 모시는 곳이 되는 기분이네요.ㅠ.ㅠ

    잘 보고가요

    2020.05.28 06: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죽으면 한줌의 재가 되거늘...과오를 인정하고 그냥 선산에 묻어 달라면 돨것을..
    그나 저나 조선이 문제입니다...

    2020.05.28 06: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일반적인 사고로는 참으로 어이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주장은 못하겠는데 왜이리 다른 생각의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네요.

    2020.05.28 07: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파묘 안되면 현충원을 새로 지어 그들만 남겨놓는 건 어떨까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이 비유가 좀 비슷하려나~ 아닌거 같기도 하고요 ~ 이래저래~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습니다.
    아 참 이 문제는 역사와 증거가 있는데로~~ 원칙대로 처리 되길 바래 봅니다.

    2020.05.28 07: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5. 27. 05:56


"정대협, 위안부 피빨아먹는 거머리", “배고프다한 할머니에 "돈없다"던 윤미향, 집 5채 현금으로만 샀다”

5월 22일 조선일보가 뽑은 메인기사다. 일본을 두둔하지 못해 안달을 하던 조선일보는 친일언론답게 이런 기사를 톱뉴스로 도배질을 하고 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투다. 조선일보는 이용수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날 「"난 30년 재주넘고 돈은 그들이 받아먹어" 할머니의 눈물」이라는 주제의 사설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한 할머니들을 이용해 돈을 번다’며 정의연과 시민단체들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수구언론을 보면 검찰수사 발표보다 앞서 사건 내용을 기정사실로 단정하고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중죄인으로 만든다. 진실여부는 뒷전이고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기 얼마나 부도덕하고 정의감도 없는 단체인지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시민단체를 이간질시켜 갈등을 정치쟁점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가 엿 보인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이런류의 기사를 누가 좋아할런지 또 극우단체를 비롯한 일본이 원하는 기사라는 사실을 모를리 없다.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이런 기자회견은 조선일보나 친일 수구세력들은 반길지 모르지만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용수할머니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30년을 함께해 온 윤미향 전 정의연 대표를 싸잡아 비난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몰랐을까? 벌써 시민단체 중에는 한편에는 이용수할머니를, 다른 한편에서는 윤미향과 정의연의 편에서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용수할머니가 ‘얼마나 섭섭했으면 저렇게 기자회견까지 할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런 방식은 일본이 원하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살아생전에 꼭 일본정부의 사과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기사가 보도되면 이용수할머니는 누가 더 좋아 할지 몰랐을까? 얼마나 섭섭했으면 기자회견이라는 방신으로 문제를 또 윤미향당선인이 의정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저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까? 30년을 참아 왔던 문제를 왜 내부토론이나 윤미향씨를 불러 따가운 질책을 하지 못했을까? 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고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까? 섭섭한 점이 있었다면 충고를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그 때 기자회견을 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활빈단,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자유대한호국단, 행동하는자유시민, 바른교육권실천행동,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사법시험준비생모임, 시민과함께, 자유대한호국단, 바른교육권실천행동 태극기 모독부대 관련단체들은 마치 이용수할머니의 기자회견을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윤미향당선자와 남편 그리고 정의연까지 기부금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배임, 사기혐의,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아동학대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태생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친일수구 언론은 물론 일제에 은혜를 입은 친일의 후예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막말로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던 단체들이다.



<극우세력 빌미 줘서야..?>

솔직히 말해 고려시대 환향녀와 일제강점기시대 위안부문제는 우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다. 대한민국 역사가 계속되는 한 후손들과 역사가 갚아야 부채다. 그런데 검찰의 조사도 시작하기 전, 이용수할머니처럼 정의연과 윤미향을 싸잡이 비난하는 소리가 들린다. 또 한편에서는 이용수할머니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용수할머니가 수구세력들에게 이용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어려운 여건에서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배·보상과 사과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한 사람들이다.

“위안부상 철거! 수요집회 중단하라!”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와 ‘위안부인권회복실천연대’라는 단체는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위안부가 끌려갔다’고 증명되는 역사적인 자료는 단 하나도 없다며 역사뒤집기에 나섰다. 어떤 극우단체는 소녀상을 "흉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법을 어기면 누구든 예외없이 처벌을 받는게 순리다. 일하는 방식이 서툴고 소통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용수할머니를 섭섭하게 했을 수도 있다. 그들에 대한 비난은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처럼 시민단체를 이간질시키고 일본의 대변인 역할을 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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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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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생님 아리아리!
    '위안부가 끌려 갔다'는 역사적 자료가 없다는 것에 분노가 치밉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께 자주 들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때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일찍 시집간 할머니
    또래들이 아주 많았다고 하셨어요.

    지금의 윤미향 사태는 많이 안타깝습니다.
    극우세력에게 어떤 빌미가 되는 것이 더욱 속상합니다.

    2020.05.27 07: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네티즌들조차 비판이 어렵습니다. 수구친일세력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2020.05.27 11:08 신고 [ ADDR : EDIT/ DEL ]
  2.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본질을 회피한채..

    2020.05.27 07: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어차피 검찰에 고발했으니 검찰조사결과가 나온 후 시비를 가려도 늦지 않은데 말입니다

      2020.05.27 11:09 신고 [ ADDR : EDIT/ DEL ]
  3. 일본의 사과와 배상, 그 본질이 흐려지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2020.05.27 08: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일본이 얼씨구 하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용수할머니가 일본과 수구친일세력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2020.05.27 11:10 신고 [ ADDR : EDIT/ DEL ]
  4. 김복동 할머니라면 절대 저렇게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판단력이 흐려지신 건지, 아니면 이 논란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도 저러시는 건지...ㅠㅠ

    2020.05.27 10: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도 그부분 너무 섭섭합니다. 기자회견이라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해결 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2020.05.27 11:12 신고 [ ADDR : EDIT/ DEL ]
  5. 활동자체가 부정되서는 안됩니다. 할머니 옆에 선 이들의 면면도 그렇고 제기된 의혹도 왜곡된 부분도 있고...이번 사태가 긍정적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랍니다.

    2020.05.27 10: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딱히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두분다 정부를 대신해 30년간 오신분들이라서요. 저도 김복동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다르게 하셨지 않을까’ 하고요.

    2020.05.27 11: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이번 사태를 보면서 또한번 확신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언론은 없다, 기레기만 있을 뿐...

    2020.05.27 13: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저도 이 뉴스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 방향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그 옆에 선 사람들이 너무 싫네요.

    2020.05.27 15: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할머니도 정의연도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고 타협했으면 좋았으련만...
      결국 왜놈들만 좋아합니다

      2020.05.27 17:45 신고 [ ADDR : EDIT/ DEL ]
  9. 횡령, 배임 등의 문제와 본질적인 문제가 조금 더 분명하게 분류되어 다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0.05.27 17: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아구나 아픈 과거사 그리고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던 죄없던 소녀들이 일제로 인해서 그런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일본은 아직도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군요. ㅠㅠ 가슴이 아파요. 이런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언론부터 세상에 없어져야 해요.

    2020.05.27 20: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기도 하고 후쿠시마원전사고로 태평양을 오염시켜 생선이며 해산물을 먹지 못하게 한 나라입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과거를 부정하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헌법을 바꾸기 위해 별별 못도니 짓을 다 꾸미고 있습니다.

      2020.05.28 04:44 신고 [ ADDR : EDIT/ DEL ]
  11.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기자회견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회견때 옆에 있던 분들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분좋은 하루 되세요.

    2020.05.27 20: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5. 18. 05:15


학살의 원흉이 지금/옥좌에 앉아 있다/학살에 치를 떨며 들고 일어선 시민들은 지금죽어 잿더미로 쌓여 있거나/감옥에서 철창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그리고 바다 건너 저편 아메리카에서는/학살의 원격 조정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 집행인들/보아다오 보아다오 보아다오/살해된 처녀의 머리카락 그 하나하나는/밧줄이 되어 너희들의 목을 감을 것이며/학살된 아이들의 눈동자/그 하나하나는 총알이 되고/너희들이 저질러놓은 범죄/그 하나하나에서는 탄환이 튀어나와/언젠가 어느 날엔가는/너희들의 심장에 닿을 것이다<김남주-학살 2>


- 광주항쟁의 전개과정 -

오늘은 518광주 민중항쟁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주지역을 피로 물들였던 40년 오늘 광주. 광주민주화운동, 광주항쟁...정도로 알려진 5·18광주민중항쟁의 피해자들은 있어도 가해자는 없다. 학살자도 전두환, 노태우정도로 알고 있을 뿐, 진실조차 밝히지 못하고 대부분의 학살자들은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 5·18 유공자단체를 ‘괴물집단’이니 ‘폭동’이라고 막말을 쏟아 붓던 사람들은 아직도 대한민국 제 1야당에 몸담고 있고 5·18을 폄훼하던 사람이 당대표를 맡고 있다. 정의를 말하면서 학살자들이 큰소리치며 사는 나라에 민주주의니 정의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부마항쟁과 유신의 종말>

‘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 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시킨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하여 10·17 대통령특별선언을 발표 후 1972년 12월 27일 ‘대통령 직선제의 폐지 및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 선거’ 그리고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는 내용을 유신헌법을 발표한다. 10월 27일에 대통령 특별선언에 따라 이러한 내용의 유신헌법을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 11월 21일에 국민투표에 부쳐 투표율 91.9%, 찬성 91.5%로 확정되어 12월 27일에 공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선전하자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국민의 반발과 저항이 거세어지면서 유신시대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기 시작한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행사에서 문세광이 박정희를 저격, 그 유탄에 박정희 아내인 육영수가 절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어질수록 집권야욕에 이성을 잃은 박정희는 김대중 제거 계획과 국회 김영삼 제명도 불사하는 등 야당과 언론의 탄압이 극에 달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 - 유신의 종말 그리고 전두환 일당의 만행 - >

"야, 너두 죽어봐"

1979년 10월 26일 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32구경의 월터PPK는 유신의 심장을 향해 쏘았다. 18년간의 박정희 유신정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0·26사태로 박정희가 암살된 후 전두환 등의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과도 정부를 무력화하고 정승화계엄사령관을 체포하면서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한다, 1980년 4월 14일, 중앙정보부장서리는 국내의 모든 정보기관을 장악한다. 1980년 5월부터 신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반발로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신군부세력들은 집권계획에 방해가 되는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5월 17일 24시 정치활동 금지령·휴교령·언론 보도검열을 내용으로 하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포함한 정치인과 재야인사들 수천 명을 감금, 국회를 봉쇄한다. 이에 광주 지역 대학생들은 5월 18일에 '김대중 석방', '전두환 퇴진', '비상계엄 해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가 시작된다.

사망자 165명, 사망인정 실종자 70명, 사망비인정실종자 300여명, 상이후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구속 및 구금 피해자 1589명, 사망자 수천명.... 전체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21.1%,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5.6%, 61세 이상의 노인이 6.2%를 차지하고 있다. 가해자인 전두환, 노태우일당은 김영삼정권 때 '12·12, 5·18 재판'으로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중요임무 종사”, “상관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 무기장역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피고인 14명 모두 복역 8개월 만에 특별 사면됐다.


<사진출처 : 사람과 사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사망자 165명, 사망인정 실종자 70명, 사망비인정실종자 300여명, 상이후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구속 및 구금 피해자 1589명.... 그리고 수천명의 희생자를 낸 광주항쟁. 그들은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개월을 선고받지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추징금 2205억원)과 징역 17년(추징금 2628억원)으로 감형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이들을 모두 특별 사면시켰고 1998년 복권됨으로서 5·18광주항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광주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80년 광주항쟁은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무장 폭도들의 난동'에서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고, 1988년 11월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가 개최되었으며 1995년에는 '5․18 특별법' 제정, 1997년 5월 18일에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저항권으로 인정되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에 이르런다.

전두환은 12·12군사반란 후 스스로 ‘건국훈장대한민국장, 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일지무공훈장,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국선장, 수교훈장 광화대장’... 과 같은 셀프훈장을 받는다.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전사모를 만들고 그의 고향 합천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민든 일해공원이 그대로 남아 있고 대전현충원에는 걸린 현판이 40년이 지난 이제사 교체됐다.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로 추징금 2,200억원을 받은 전두환은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아직도 완납하지 않은 상태지만 골프를 치러 다니며 회고록을 쓰며 여생을 즐기고 있다. 놀랍게도 학살자의 아내 이순자는 “내 남편은 민주주의 아버지”라며 공공연하게 떠벌이고 다닌다. 전두환정권시절 은혜를 입은 자들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정부의 제 1야당이 되어 집권을 꿈꾸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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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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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교적 관심이 많아 당시부터 자료를 많이 찾아 보아 조금 알고 있습니다,

    2020.05.18 06: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5.18...
    진정한 사과하기...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ㅠ.ㅠ

    2020.05.18 06: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선생니 아리아리!

    5.18 광주 민주항쟁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켜보겠습니다.

    2020.05.18 09: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40년이 되도록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은 사법부의 직무유기입니다. 이반회기에는 꼭 진실을 밝힐 법이 통과돼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어야겠습니다.

      2020.05.18 13:47 신고 [ ADDR : EDIT/ DEL ]
  4. 신군부의 후예 미통닭들이 제1야당이 된 현실을 보면
    광주민주항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2020.05.18 11: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다시한번 깊이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네요~
    이제는 모든것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바로잡아,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됬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2020.05.18 14: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존두환 노태우뿐만 아니라 얼굴없는 가해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진상구명과 진정어린 피해자 보상이 이루어져야겠습니다.

      2020.05.18 15:56 신고 [ ADDR : EDIT/ DEL ]
  6. 대화를 하다보면 지금도 그 진실을 제대로 알고있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다시금 올바른 역사교육의 중요성도 느끼게 되구요.

    2020.05.18 15: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5,1고아주민중항쟁이 발발한게 40년 전이니 역사책을 통해 알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진실을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국정교과서로 진실을 감추겠다는 세력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2020.05.18 15:59 신고 [ ADDR : EDIT/ DEL ]
  7.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반민특위 처럼 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2020.05.18 16: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전 재산에서 만원을 빼야할 것 같습니다.
    골프장 캐디에게 팁으로 만원을 주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것까지 말할 수있는 뻔뻔함.
    역사는 그와 그들의 만행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2020.05.18 22: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4. 24. 05:20


역사를 통틀어 명멸하신 수많는 교육자들. 사람들이 서당에서 혹은 학교에서 참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 그 많고 많은 선생님 중에는 인류에 빛을 남기신 위대한 스승이 있는가 하면 어쭙잖은 지식을 권력과 바꿔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이비 교육자도 없지 않다. 석은(碩隱) 김용근선생님이 가신지 수십년. 이순(耳順), 혹은 종심(從心)이 된 제자들이 나라의 독립과 호국, 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실천하신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못해 스승의 이름을 딴 민족교육상을 제정, 시상하고 <나를 깨운 역사 강의 석은(碩隱) 김용근 선생님 문집>을 내기도 했다.



선생님은 전남강진군 작천면 현산리에서 태어나 평양숭실학교와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하셨다. 숭실학교와 연희전문재학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총독암살단 구성혐의로 두 차례에 걸쳐 3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은선생님의 동문이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시절, 총독 암살단을 조직한 혐의 등으로 2차례에 걸쳐 3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복 후 경복고에서 교편을 잡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제9사단에 입대해 싸웠다. 제대 후 육사·전주고·광주고·광주제일고·전남고 등에서 역사를 가르치셨다. 교직생활 중 교내의 유신 반대 학생시위를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게 된 선생은 78년 강진으로 귀향해 농사를 지으면서 향토사를 연구했다.

80년 5·18민주화운동으로 수배를 받던 제자 윤한봉·정용화·김남표·은우근을 숨겨준 죄목으로 투옥되기도 하고 이때 얻은 심근경색증으로 85년 5월 22일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사후 1987년 독립유공자, 2002년 5·18민주유공자로 각각 추서됐다. 석은김용근선생기념사업회 회원들은 선생이 1954년부터 1976년까지 차례로 부임해 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쳤던 전주고, 광주고, 광주일고, 전남고 등 4개 고교의 제자 1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회장을 맡은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광주일고 2·3학년 때 선생님께 세계사를 배웠는데, 그분은 단편적인 역사 지식이 아닌, ‘사람답게 사는 길’을 가르치셨다”며 “감동적으로 강의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정찬용선생님(노무현정권시절 청와대 인사수석, 현 무등사람 (사) 인재육성 아카데미 이사장)은 석은선생님이 “교과서는 던져버리고-중세봉건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어 어떤 과정을 겪어 무너지고 르네쌍스로 이어지는가?-인간의 재생 ‘인간의 발견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너는 누구인가?-원효대사의 대중불교론-민주 민족 민중론으로 한 학기를 강의”하셨다고 한다. 강의가 끝난 후 등사판 유인물 10여 쪽을 나눠 주시며 “시험 걱정되지? 역사를 보는 눈구멍만 갖추면 예비고사도 대학입학시험도 내가 주는 이 유인물 안에서 나온다.”라시던 선생님....“자신의 월급을 다 털어 매 달 몇 가마씩의 쌀을 사대며 합숙을 시키면서 농구부원들에게도 농구공을 던지지 말고 혼(魂)을 던지라고 맹훈련을 시키셨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회고했다.

사관도 없이 역사의식을 마비시키는 지식교육. 동학을 난으로, 제주 4·3항쟁을 4·3반란으로, 5·16을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가르치라는 국정교과서를 가르칠 수 없어 교과서를 던져버린 선생님. 석은선생님은 역사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민족의식에 눈뜨게 하신 선생님이다. <나를 깨운 역사강의>에는 왕조사관, 친일사관으로 덧칠한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역사관을,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세계관을, <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종교관을... 친일사관이 아닌 민중사관의 관점에서 가르치신 소중한 글이 담겨 있다.


<▲고 김용근 선생 탄신 100주년 된 지난 1918년 10월 28일 제자들이 광주 서구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잔디광장에서 스승의 흉상 제막을 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찬용(앞줄 왼쪽 여섯 번째) 전 청와대 인사수석, 황지우(흉상 오른쪽 모자 쓴 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양래(가운데줄 왼쪽 첫 번째) 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이승우(〃세 번째) 가천대 명예교수, 조현종(〃다섯 번째) 전 국립광주박물관장 등이 함께했다.- 석은 김용근선생 기념사업회 제공>


훌륭한 스승은 어떤 사람인가? 교사들은 자칫 입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관념적인 지식인이 되기 쉽다. 한국사가 국정교과서였던 시절, 권력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삶을 가르치시던 분. 나라가 어려울 때 온몸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실천적인 삶, 불의에 타협하는 삶이 아니라 정의감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를 가르치신 분이 바로 위대한 스승이 아닐까? 문병란시인의 권두 시 ‘당신은 위대한 스승’에서 참스승의 삶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라는 선생님의 실천적인 삶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주옥같은 선생님의 글은 국정이 아닌 검인정교과서를 가르치는 지금 읽어도 좋다. 왜 우리는 인디라 간디가 딸에게 보낸 편지글 ‘세계사편력’처럼 민족혼을 깨우는 교육,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안목을 길러주지 못할까?

석은선생님의 ‘나를 깨운 역사강의’ 문집을 읽으면 교과서 지식만 가르쳐 서열을 매기는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분통이 터진다. 우리는 석은선생님과 같은 역사교육을, 민족혼과 역사의식을 깨우치게 하지 못할까? 왜 우리 역사교과서에는 언제, 무슨 사건이 일어났느냐, 어떤 시대, 어떤 왕 때 어떤 정책이 시행되었느냐. 시대별, 사건별 왕의 업적...과 같은 지식을 암기 시키고 있을까? ‘나를 깨운 역사강의’를 교육관료들, 교육학자들, 교사들, 그리고 언론인들이 더 많이 읽어 역사를 바로 보는 안목을 길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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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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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다는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났어야 합니다..

    2020.04.24 05: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맞습니다 살아가면서 생각 나느 사람... 그런 선생님을 못잊어 그의 삶을 닮겠다고 실천하는 제자들 도한 대단한 분들이지요.

      2020.04.24 09:40 신고 [ ADDR : EDIT/ DEL ]
  2. 그렇지요. 축복이지요.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2020.04.24 06: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우리나라 교사들은 다 그런 분들이지만 교과서만 가르치고 시험 점수만 올리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과정이 문제지요. 교육다운 교육을 해야 하는데...

      2020.04.24 09:41 신고 [ ADDR : EDIT/ DEL ]
  3. 새롭게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네요.
    사실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 가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2020.04.24 06: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역사의식없이 지식만 주입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용근선생님같은 분은 선각자지요. 교과서를 팽개치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주고 정의를 가르친 분이지요. 저도 모르고 있다. 이 책을 보고서야 이런 분이 계셨다는 걸 알았답니다.

      2020.04.24 09:43 신고 [ ADDR : EDIT/ DEL ]
  4. 맞습니다. 좋은 스승의 가르침을 잊을 수 없지요.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잊을 수 없어요.
    세계관을 위해서도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게 중요합니다.

    2020.04.24 10: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데 우리나라교육은 좋은 선생님을 훌륭한 스승을 바라지 않습니다. 굗=과서의 지식을 암기시키도록 가르쳐야 좋은 선생님이 된답니다.

      2020.04.24 11:37 신고 [ ADDR : EDIT/ DEL ]
  5. 세상의 부조리를 알려주고 이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스승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런 스승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입니다.

    2020.04.24 12: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 스승을 ㅁ나나지 못했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물론 위대한 선걱자를 그걸 뛰어 넘어야 하지만 스승이 없도록 만든 것은 교육부입니다. 교과서만 가르치라는....

      2020.04.24 19:34 신고 [ ADDR : EDIT/ DEL ]
  6. 맞아요 진짜 참된 스승님을 만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ㅠㅠ 전 기억나는 선생님이 없네요.. 안타깝네요

    2020.04.24 16: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오늘날 김용근선생님같은 분을 만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선생님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1500여명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났잖아요. 오늘날 교사에게는 교과서만 가르치랍니다. 그게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자유발행제든 상관앖이 말입나.

      2020.04.24 19:37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4. 11. 06:59


아직도 그치지 않은 대한민국 건국절 논란. 우리헌법 전문에는 분명히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 나라라고 규정해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고 우기는 것은 헌법을 무시한 반헌법적 망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월 11일, 1919년 3월 1일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계기로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민족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시초인 망명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1987년 9월 22일 개정된 현행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여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천명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법통이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음을 민족적 · 역사적 차원에서 승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일제의 종살이를 하던 101년 전 그날, 이 3·1독립선언의 첫 문장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단군 할아버지께서 이 땅에 나라를 세운지 4252년 3월 1일 손병희선생님을 비롯한 조선민족대표 33인은 세 가지 약속을 담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한다. 이 독립선언에 담긴 정신을 이어 받아 같은 해 4월 11일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9월 11일, 전문과 본문 54조와 부칙 4조의 임시헌법을 선포함으로서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된다.

상해임시정부는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망명 정부이다. 4월 11일 공포한 임시헌법에는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정치 체제는 대통령제의 '민주공화국'과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리 제도를 확립하였다. 대한제국의 영토를 계승하고 구 황실을 우대한다고 명시하고, 초대 임시 대통령은 이승만이 맡았으나 탄핵되었다. 이어 김구가 주석을 맡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한국 광복군 조직 등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지원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상해에서 수립된 인시정부가 지은 이름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 대표들이 대한민국정부를 세우고 이름을 지어 헌법에 담은 것이다. 정부와 국회도 우리 역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 채택하였다.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은 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을 운영할 조직체였다. 국토를 되찾는 날에는 이를 정식 정부와 국회로 바꾼다고 헌법에 명시했다. 헌법도 마찬가지다. 임시헌장이나 임시헌법 또한 광복 이후 그대로 계승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년 4월11일 제정·공포한 대한민국임시헌장.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함’이다.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망명지에서 국가를 세우고 정부조직체를 구성하여 침략세력에 맞선 대표적인 사례였다. 세계 역사상 나라의 영토도 없이 27년 동안 민족의 주체성을 지켜온 나라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나라를 잃을 때는 황제가 주인인 대한제국이었지만 되찾아 세울 때는 국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국가였다. 임시정부는 실제로 3·1운동이 곧 광복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던 외교활동의 부진과 소극성에 있다고 판단해 파리강화회의의 공식대표를 파견하거나 장서(長書)를 보내거나 국제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일제의 한국침략의 부당성과 광복의 필연성을 국제여론에 호소하고 한국의 독립의지를 적극적으로 과시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을 통해 나타난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의지와 열망의 산물이며, 조국광복에 이르는 27년간 국내외 독립운동의 구심체가 되어 일제에 끈질기게 투쟁함으로써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상징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1주년, 광복 75주년, 분단 72년.... 빼앗긴 국권을 돠찾고 민족이 하나 되는 상해임시정부에서 발표했던 대한민국인시헌장과 대한민국임시헌법의 정신이 실현 되는 통일대한민국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국가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국권을 되찾기 위해 온몸을 바쳤던 선열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대한민국건설은 불가능한 일일까? 선열들의 나라사랑의 정신으로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대한민국의 건국절은 언제쯤 맞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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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기 역사를 일군 교사 12인의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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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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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몰랐는데 참교육님 덕분에 좋은 정보 알게 됬어요 ^^ 감사합니다!

    2020.04.11 08: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비급이지요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4월 11일이 무슨 날인지조차 교육을 아예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 생일을 모른다는 게 비극이지요.

      2020.04.11 13:19 신고 [ ADDR : EDIT/ DEL ]
  2.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지 101년을 맞는 날입니다.
    하지만 찌라시언론들은 오늘도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이라 떠들어대고 있으니.....

    2020.04.11 08: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찌라시 언론은 8월 15일이 건국한 나라라고 합니다. 헌법에 임시정부으 ㅣ법통을 이어받는다고 했는데도...

      2020.04.11 13:20 신고 [ ADDR : EDIT/ DEL ]
  3. 건국과 관복은 엄연히 다른데 말입니다.

    2020.04.11 09: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누군가의 말도 되지 않은 주장을 볼 때마다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으면 제 생각으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선열께서 독립운동했던 것이 모두 불법이 되고 일제가 저질렀던 만행이 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것을 아는 데도 건국일 논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2020.04.11 09: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래서 89년 민주화운동 이후 거꾸로 읽는 역사...책이 유행이 됐던 적이 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양반증심의 역사, 친일후예들이 쓴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2020.04.11 13:23 신고 [ ADDR : EDIT/ DEL ]
  5. 아픈 통한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이 땅에 반민특위가 제대로 작동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반민특위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0.04.11 11: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맞습니다. 반민특위를 무산시키지 않고 식민지잔재를 청산만 했더라면 오늘날같은 친일세력들이 주인노릇한느 비급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친일세력에 못지 않게 친미세력도 문제입니다.

      2020.04.11 14:06 신고 [ ADDR : EDIT/ DEL ]
  6. 희망사항이지요.
    잘 보고 갑니다.

    2020.04.12 05: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오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이 4월이맘때군요 잊지말아야겠습니다.

    2020.04.12 06: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고 언론이 침묵하니 국민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지요. 대한민국국민이 대한민국 생일을 모르는...

      2020.04.12 11:43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4. 3. 06:02


오늘은 제주 4·3항쟁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그리고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 ‘제주 4·3항쟁이다.



1947년 3월 1일, 제 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고, 제주읍에서는 북국민학교의 3·1절 행사가 오후 2시에 끝나자 군중들은 가두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관덕정을 거쳐 서문통으로 빠져나간 뒤 관덕정 부근에 있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쳤다. 이때 기마경찰이 다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관덕정 부근에 포진하고 있던 무장경찰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되었고,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그때까지 큰 소요가 없었던 제주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제주4·3의 도화선이라 불리는 ‘3·1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47년 3월 1일~1948년 4월 3일’>

제주 4·3항쟁은 미군정기간인 ‘1947년 3월 1일~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사건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기록에는 제주 4·3 항쟁은 남조선로동당과 대한민국 유군과 해병대 그리고 제주 경찰의 충돌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군정기라는 사실을 빼놓고 제주 4·3항쟁을 말하면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다. ‘1947년 3월 1일을 시작된 제주 4·3항쟁은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기에 이른다. 제주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키면서 본격적인 학살은 1948년 4월 3일로 끝난게 아니다. 한국전쟁기간이 1950년 6월 25일부터 전쟁이 끝나는 1953년 7월 27을 지나 1954년 9월 21까지 토벌이 계속 된다. 미군정기에 시작된 제주양민학살은 이승만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발단은 기마경찰의 말에 다친 어린아이에 대한 항의였지만 제주민도들의 핵심적인 구호는 ‘단선(單選)·단정(單政)반대!’, "같은 민족에게 총을 쏠 수 없다", "미제 침략 반대"였다.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조선의 지배자는 조선총독부에서 미군사령관으로 바뀌고 1945년 9월 8일은 미국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4만5천명에 달하는 전투기의 엄호 아래 장갑차를 앞세우고 나타나 “오늘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면서 나타난다.



<가해자는 누구인가?>

‘죽어 마땅한 빨갱이들...’이었기에 억울해도 입도 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 제주 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사망자 14,363명... 그러나 학자들은 제주 도민의 8분의 1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는 3만 명에서 8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희생자 중에는 10세 이하가 770명이다. 11~20세가 2,464명, 21~30세 5,461명, 31~40세 2,291명, 41~5-세가 1,383명... 70세 이상이 344명이나 된다. 젖먹이를 포함한 걸음마를 하는 애기들은 지금도 무덤도 없이 북촌리 너븐숭이 돌무덤에 무심한 장난감만 여기저기 널려 있다. 유가족은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2003년까지 무려 58년의 세월을 숨죽이면서 속으로 울어야 했다.

사람들은 제주 4·3항쟁의 가해자를 대한민국의 국군과 서북청년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미군정기간의 점령군이었던 미국의 육군, 공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동족을 학살하는데 동원을 거부한 여순항쟁을 아직도 반란이요,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반민족 세력들은 ‘빨갱이’라는 무기로 분단을 고착화하고 외세와 결탁 주권자로 군림하고 있다.

일제에 은혜를 입은 세력들은 ‘친일이 애국’이라는 막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며,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대한민국의 지배층들은 미국을 천사의 나라로 찬미하고 있다. 제주 4·3항쟁 72주년. 제주에 평화공원이 건설되고 4·3평화재단과 4·3평화기념관이 건립됐다고 ‘사건’이 ‘항쟁’이 되는 것이 아니다. 4·3항쟁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유족들에 대한 진정한 보상은 아직도 먼 꿈같은 얘기다. 제주 4·3항쟁의 가해자들은 돌아오는 4·15총선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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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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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년 기념관 갔던 기억이 납니다
    잊어서는 안될 역사입니다.

    2020.04.03 06: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도 지난 해 갔다거 너분숭이 돌무덤을 보고 많이 울었네요. 우리 역사에서 절대로 잊어서는안 될... 반드시 특별법 재정 명얘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2020.04.03 13:44 신고 [ ADDR : EDIT/ DEL ]
  2. 덕분에 잘 배우고 갑니다 !

    2020.04.03 06: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많은 분들이 기념관을 가 보셨으면 합니다.역사는 배워야 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국민이 미래의 희망이 있습니다. 선생님 오늘 글 마음이 다 아프네요. ㅠㅠ

    2020.04.03 06: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란아니 까지 무차별 학살한 가해자들은 지금도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비극이지요.

      2020.04.03 13:45 신고 [ ADDR : EDIT/ DEL ]
  4. 역사의 슾픈면이죠 잘알고 갑니다

    2020.04.03 06: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맞습니다. 절대로 잊을수도 잊어서도 ㅇ나될,,,, 그런데 아직도 이들은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ㅇ낳고 있습답니다.

      2020.04.03 13:46 신고 [ ADDR : EDIT/ DEL ]
  5. 우리의 아픈 역사...
    제대로 아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2020.04.03 06: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제주 4,3항쟁과 함께 여순항쟁...그리고 대구 101항쟁.... 등 수 많은 아픔역사... 이제는 진실을 밝히고 면예회복을 시켜야 합니다.

      2020.04.03 13:47 신고 [ ADDR : EDIT/ DEL ]
  6. 이런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직 모르는 슬픈 역사가 많은거 같아요.

    2020.04.03 08: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제주를 수학여행 필수코스로 다녀 오지만 그 누구도 알려 주지 않으니까요? 현대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이 주범이지요.

      2020.04.03 13:49 신고 [ ADDR : EDIT/ DEL ]
  7. 오늘이군요.
    글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칠뻔 했네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생각하고 추모해야 할 날이 많이 묻힌 느낌이 듭니다.
    잘 보고 갑니다.

    2020.04.03 0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코르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해자는 아직도 우리사회의 곳곳에서 똬리를 틀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청산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2020.04.03 13:50 신고 [ ADDR : EDIT/ DEL ]
  8. 비밀댓글입니다

    2020.04.03 16:43 [ ADDR : EDIT/ DEL : REPLY ]
  9.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글 포스팅을 꾸준히 이른 아침에 하시네요. 존경스럽습니다.

    아직도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 부르고 여기는 자들을 보면 세상이 달라지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20.04.03 18: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3. 16. 06:12


“그들을 용서는 해 주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유대인들의 수난사를 재현해 놓은 ‘야드바셈’이란 역사박물관 출구에 적혀있는 글귀다. 히틀러에게 6백만명이 학살당한 역사를 두고 이스라엘 국민들의 가슴에 새기자는 글이다. 우리국민들은 60년 전, 1960년 3월 15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어제는 경남 마산에서 일어난 3·15의거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코르나 19 때문이기만 할까? 2·28대구의거, 3·15마산의거... 일찍이 민족의 선각자 단재신채호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1. 4할 사전투표: 선거당일 자연 기권표와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전체 유권자 4할 정도의 표를 미리 자유당 지지표로 만들어 투표함에 넣어둔다.

2. 3인조 5인조 공개투표: 미리 짜둔 3인조, 5인조 별로 조장의 확인 아래 투표하여 자유당 선거위원에게 보여준 다음 투표함에 넣는다.

3. 완장부대 활용: 자유당 완장을 찬 사람들을 여럿 투표소 주변에 배치시켜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자유당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한다.

4. 야당 참관인 축출: 민주당 측 참관인을 매수해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구실을 붙여 투표장에서 축출한다.

이승만정권이 장기집권에 눈이 어두워 민주주의를 파괴한 부정선거. 투표함 교체, 개표 시 표 바꿔치기 등 모든 투표구에서 자유당 후보 득표율이 85프로 이상이 되게 할 것... 등을 지시한 부정선거 행동지침이다. 이승만의 자유당은 대선 직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유세기간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이승만의 당선이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당시, 85세의 고령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승만 사후를 대비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 계획을 세운다.

투표함의 30%정도를 이승만 이기붕으로 미리 채워놓고, 선거 전에 미리 이기붕 표로 채우거나 이기붕 표로 채워진 투표함으로 바꿔치기, 선거 전에 미리 이기붕 표로 채우거나 이기붕 표로 채워진 투표함으로 바꿔치기, 선거에 익숙하지 않은 국민들을 지도한다며 3~5인씩 한 조로 투표하게 한 것. 물론 각 조의 조장은 당연히 자유당 후보를 찍게 유도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재물을 뿌리면서 자유당 투표를 독려하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선거인 명부에 올리기까지 했다.

선거 결과는 당연히 이승만과 이기붕이 당선되었다. 그런데 선거결과, 조작을 너무 열성적으로 한 나머지 이기붕의 득표율이 99%를 찍고, 일부 지역은 총유권자를 넘긴 115%가 나오기도 했다. 당황한 그들은 이승만 80%, 이기붕 70%로 줄여서 발표하는 어이없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권자들은 이 기막힌 부정선거에 투표권을 우롱당한 마산시민과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다.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던 경찰은 무차별 발포와 체포·구금으로 경찰과 충돌하게 된다. 1·2차 마산 시위에서는 마산시내 8개 고등학교가 모두 참가 하자 당황한 결찰이 무차별 총기를 발사. 80여명의 사상자(14명 사망)가 발생하고 주모자로 구속된 26명은 공산당으로 몰려 참혹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부정선거에 항의한 3·15의거를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월 11일 3·15의거 후 행방불명이 됐던 마산상고 입학생(당시는 4월 1일이 개학 일이었다) 김주열군의 시신이 27일 만에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중앙부두에 떠올랐던 것이다.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처참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전 국민적 저항과 군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고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6·15 개헌)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4·19혁명은 이렇게 3·15의거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4·19혁명은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난 혁명이 아니다. 장기집권에 눈이 어두웠던 이승만정권은 3·15선거승리를 위해 공무원을 통한 선거운동 망을 조직하고, 전국 경찰에 지시하여 이를 감시·독찰하는가 하면 야당선거일에 학생들의 소요가 두려워 일요일인 2월 28일 등교를 지시한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며 자유당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된 2·28대구학생의거. 그리고 경찰의 총칼에 맞서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마산의거가 없었다면 어떻게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한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은 선열들의 피흘려 싸운 결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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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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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19 의거의 전조 운동이죠..
    벌써 60주년이군요.

    2020.03.16 06: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코르나 19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2.28대구학생의거나 3.15마산의거는 자꾸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2020.03.16 11:48 신고 [ ADDR : EDIT/ DEL ]
  2.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 잊지않겠습니다

    2020.03.16 06: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어제가 3.15였네요.
    뉴스에서 보고 알았는데 올해는 이렇게 지나가는게 안타깝네요.

    2020.03.16 07: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2,28 대구학생의거나 31.5의거 그리고 5,18광주민중항쟁은 일을 수도 잊어서 안되는 우리의 아픈 역사입니다

      2020.03.16 11:50 신고 [ ADDR : EDIT/ DEL ]
  4. 어제였군요.
    최근에 몸이 좀 좋지 않아서...뜸 했습니다.
    아직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종종 방문하겠습니다.

    2020.03.16 15: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그런 곳인데, 지금은 반민주의 선봉에 서는 정당을 골수 지지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2020.03.17 05: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붕의에 맞서 싸우던 정의의 도시가 지금은 불의한 세력들의 텃밭이 되어 있으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루빨리 명예회복을 해야겠습니다.

      2020.03.17 07:01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2. 29. 06:30


벌써 며칠 째야? 감옥살이도 아니고..? 답답해서 세종시로 이사온 지 10년이 다 돼 가는데 이제사 대통령 기록관에 다녀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그 화려한 영광이 남긴 족적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제 69조입니다. 평화적 통일...? 복리증진...? 민족문화창당...? 이런 일을 성실히 스행하라고 주권자들이 준 권력...그들은 5년간 어떻게 실천했을까? 이들 중에는 노벨상까지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라를 분단시킨 책임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독재자와 주권자가 주지도 않은 권력을 도둑질해 종신대통령을 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다 부하의 총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마친 대통령까지 있었습니다.


그 화려한 권좌에 앉았던 18명의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여기 모여 있었습니다.   






입구에 남긴 친필...주권자가 준 권력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2심 재판에서 '징역 32년, 벌금 180억원, 추징금 33억원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데 친필휘호는 부끄러운 대통령을 비웃는듯 당당하게 기록관 앞에 앉아 있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대통령 뿐만 아닌가 봅니다. 방문했던 기념으로 대통령의 기념관 기념품을 방문객들이 찾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의 민낯...이 기록을 보고서도 그를 건국대통령, 국부로 추앙하고 싶을까? 그가 한 짓은 역사는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취임 선서는 취임과정의 요식행위로 알았을까? 헌법을 맘대로 고친 대통령까지 있었으니.... 

  







자랑스러운 기록도 있고 부끄러운 기록도 있다. 대통령 중에는 남긴 친필이 오히려 부끄러운 민낯으로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박정의의 조국. 박정희의 민족은 어떤 조국이었으며 어떤 민족이었을까요? 나는 아직도 그의 공포정치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위민위향..? 백성을 위하는 사람이 광주시민을 그렇게 죽이고 폭력을 휘둘렀을까? 그것도 한글을 두고 왜 한자로 휘갈겼을까? 한자를 쓰면 더 고상하게 보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영어로 쓰시지 않고...? 역겨워서 빠리 지나갔습니다. 










도대체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일까? 궁금해서 한번 앉아보았습니다. 개발에 주석편자...? 역시 앉을 사람은 따로 있는가 봅니다. 






외국으로 다니며 받은 선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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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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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이런 대통령 기록관이 참 좋네요. 역사적 공부도 하고요. 후세대들 한테는 이런 곳이 학습의 현장이죠.

    2020.02.29 08: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구경 잘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한 번 가봐야 겠네요.

    2020.02.29 10: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런 곳도 있었군요.
    ㅎㅎ
    구경 잘 하고 ㅏㅂ니다.

    2020.02.29 13: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한번 가 보고 싶은곳입니다.^^

    2020.02.29 17: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2. 22. 06:41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은 독재자라는 것 말고도 ‘반공주의자’라는 점에서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으로 간주하며 공산주의와의 타협이나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한 때 공산주의자였던 박정희도 혁명공약 첫 번째 공약에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고 들고 나왔다. ‘반공’과 ‘독재’ 그리고 ‘분단’ ‘기독교’의 이면에는 독재와 분단체계의 공고화라는 반공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그밖에도 이들은 관변단체를 만들어 철저하게 활용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이 집권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적을 제거 하는 일이요, 이를 위해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북한의 ‘무상몰수무상분배’ 정책을 지지하는 민중에 대항해 집권을 위한 유일한 대안은 ‘빨갱이=악마’라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이승만은 민족의 숙원이었던 통일 조국보다 우선 분단을 감수하고서라도 집권을 하는 것이 그가 당면한 지상과제였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정읍발언과 때마침 이슈가 됐던 찬·반탁 논쟁이 그를 도와주었다. 해방정국에서 그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찬탁=분단=매국’이요, ‘반탁=통일=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때마침 이승만을 도와준 것은 동아일보가 보도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라는 오보사건이었다.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국이 제안한 신탁통치를 소련이 제안한 것처럼 왜곡했던 것이다. 분단이 필요했던 미군정이 이승만을 지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요, 이는 결과적으로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을 불러온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6·25전쟁은 민족의 입장에서는 우리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비극이기도 했지만 일본의 경우 패전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기도 했다. 그들이 왜 분단을 싫어하겠는가?


이승만의 남한만의 단독정부구상은 유엔의 결의로 성공할 수 있었으며 분단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한에 남아 있던 정적과 인공세력을 숙청하기 위한 카드가 ‘빨갱이=악마’정책이 필요했다. 마침 이를 쌍수로 지지한 세력이 있었으니 한경직목사가 북한에서 쫓겨난 기독교들을 모안 ‘서북청년회’라는 관변단체 만든다. 이승만은 서북청년회를 비롯한 지지세력을 앞세워 김구를 비롯한 정적을 제거하고 보도연맹사건과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대구 10·1항쟁을 제거하는 카드로 활용, 6·25전쟁 과정에서 반공정책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승만의 분단정부 수립의 가장 큰 공로자가 됐던 서북청년회는 이승만이 ‘하나님과 순국선열과 3천만 동포 앞에 삼가 선서’라는 대통령선서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감사의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배운 지식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국정교과서로 세뇌된 반공교육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승만의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는 반공포스트가 말해주듯 그가 시행했던 빨갱이 청소작업(?)은 그 후에도 ‘국가보안법’으로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아는 채도 해서는 안 되는 반공의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승만을 국부로 알고 있는 세뇌된 사람이나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던 기독교인들은 설마 하겠지만 제주4·3항쟁, 여순항쟁, 대구 10·1항쟁 보도연맹사건...등에서 죽어간 수십만명의 무고한 국민들을 희생을 감추고 덮기 위해서는 반공교육이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4·19혁명을 뒤엎은 5·16이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만든 것도, 이승만의 반공정책을 박정희의 국정교과서로 세뇌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가 왜 그토록 국정교과서를 만들지 못해 안달을 했는지를 알만하지 않은가? 분단으로 이익을 누리는 미국이나 일본의 군수마피아들의 이해관계는 당연히 박정희의 반공정책도 전두환·노태우의 반공을 지지하고 그들은 교련교육을 비롯한 반공교육을 통해 이승만이 길러놓았던 관변단체인 반공연맹, 한국노총이나 한국교총이 기독교세력과 손을 잡고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만들고 키워주고 지지해 준 이들이 왜 이승만을 국부로 또 건국대통령으로 추모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착각한다. 친일세력들, 이승만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 박정희의 유신과 전두환노태우정부에 복무했던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었으니 사라졌을 것이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지금도 광화문 광장이나 주말이면 도심을 누비는 태극기부대를 보라. 그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누군가? 이승만의 자유당을 계승한 후계자들이다. 정계에서 그들에게 복무한 공범자들이 원로로 대접받고 지금도 금뺏지를 달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 않은가? 찌라시언론들은 과거를 청산하자면 온갖 요설로 훼방을 놓고, 학계에서 학위를 받고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법조계에서 개혁을 반대하고... 매국노, 변절자가 대를 이어 누리기 위해 지금도 그들은 노심초사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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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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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스터 보니 초등학교 때 생각이 나 뜨끔했습니다. 저러한 모습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른 기억이 떠올라서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 없는데 언제까지 저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소리를 내는 것을 들어야하는지 참 답답합니다.

    2020.02.22 08: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번공 푱 ㅗ포트 그리고 6.25가 되면 반공웅변대회하던 시절에 학교를 다니셨군요. 빨갱이는 마귀라고 배우던...

      2020.02.22 16:30 신고 [ ADDR : EDIT/ DEL ]
  2. 반공주의자. 오랫만에 들어보는 용어네요

    2020.02.22 08: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2020.02.22 11: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빨갱이는 악마라는 사람들... 그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2020.02.22 16:31 신고 [ ADDR : EDIT/ DEL ]
  4. 사실 저도 이제는 사회인인데 이런 어릴적에 본 역사가 가물가물합니다.
    역사만화로만 얼핏 보고 학교에서 제대로 못배운거 같고요.
    오히려 요즘 유튜브에 설민석 강의를 보는게 한번더 생각하게 만들 정도니
    어릴때부터 국영수 학원만 다니는 쓸데없는 국력낭비는 그만하고
    역사와 인문학 철학적 사고를 기르면서 금융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완전히 개혁해야합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외워서 시험치고 대학가는 세상이 될까요
    좋은대학 가봐야 별거 없고 심지어 의사가 된다고 해도 집이 부자여야 개원의 되는 세상인데 말이죠.

    2020.02.22 18: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다들 그렇지요. 수구세력들이 주권자들이 깨어나지 못하도록 우민화교육을 시켰으니까요. 이제 달라져야 하는데 그 후예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못된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20.02.23 08:27 신고 [ ADDR : EDIT/ DEL ]
  5. 사실 반공주의에 심취한 사람들 치고 개방적 사고방식 가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2020.03.28 17: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2. 19. 06:53


역사를 왜 배워야할까? 5천년의 우리 역사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실(事實)을 모두 달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역사는 사실(事實)도 있고 사실(史實)도 있다. 사실(史實)은 사가들이 후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골라 낸 역사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사가들이 ‘과거의 사실(史實)을 통해 나의 삶이 더 보람있고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학교는 그런 역사교육을 하고 있을까?


<출처 : 경향신문>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나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보다 내가 얼마나 더 많은 과거의 사실을 암기하고 있는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설마 할 지 모르지만 그게 현실이다.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공부가 다 그런 식이다. 바람직한 역사공부란 사실(史實)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우리의 제도, 사고방식, 관습을 이해함으로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통찰력과 비판적 사고력, 판단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먼저 언니가 술 취한 아버지 롯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날이 밝아 술에서 깬 롯은 아무 기억이 없었다. 다음 날 밤에도 롯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자 동생이 아버지와 잠자리를 했다.” - 유대민족의 역사. 구약성서는 이렇게 성이 개방된 요즈음 들어도 얼굴이 뜨거운 근친상간이야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이야기를 적어두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또 유대인들이 지혜의 왕으로 자랑하는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의 이야기는 이렇게 써 놓았다.


“다윗은 어느날 밧쎄바라는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고 그녀에게 정욕을 품고 권력을 이용하여 그녀를 취한다. 그녀가 임신을 하자 자기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변방에서 근무하는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서 아내와 동침하게 한다. 우리야는 충직한 신하였기 때문에 근무중에 아내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법률을 지켰다. 다윗은 자신의 불륜을 숨길 수 없게 되자, 우리야를 전방에 보내 죽을 수밖에 없는 전투에 참여시켜 우리야가 전사한 후 밧쎄바와 혼인한다.”


낯 뜨거운 역사. 그것도 아들 딸 손자들에게 대대로 배우게 할 교과서(역사)에 왜 이렇게 부끄러운 과거를 적나라하게 적어 두었을까? 성이 개방된 사회도 아닌 구약시대, 19금으로 묶어 둬야할 부끄러운 이야기를 과감하게 기록한 유대민족과 근현대사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덮고 미화하려고 국정교과서를 만들었던 대한민국의 역사... 부끄럽고 참담한 과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국정교과서를 우여곡절 끝에 검인증교과서로 바꾸었지만 그 딸이 대통령이 되자 다시 국정교과서로 아비의 악행을 미화한 국정교과서를 만들려다 실패한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나는 며칠전 블로그에 이런 주제의 글을 썼던 일이 있다.

1. 이승만이 만든 대한민국

2. 여·순사건은 항쟁인가 반란인가?

3. 한경직목사가 만든 서북청년회를 아십니까

4. ‘빨갱이=악마’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된다

5.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대구 10·1사건

6. 백성의 해골로 산천을 뒤덮은 국민방위군사건



아마 이 글을 읽은 사람 증에는 다 아는 얘기를 왜 새삼스럽게 긁어 부스럼을 내느냐고 역정을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국정교과서를 배운 사람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존경하는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건국대통령, 국부로 존경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이 차마 인간으로서 못할 학살자라니... 충격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착하기만 한 기독교인들. 자기가 존경하는 성직자들의 뿌리가 서북청년회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이 하나님이나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일까 의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분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성서를 믿지 않고 하나님 자리를 빼앗을 성직자를 믿는 신자들에게 반면교사다 될 수만 있다면.... 연단의 과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0월 유신과 5.16쿠데를 가르치지 않는 역사교육. 보도연맹이니 양민학살, 제주항쟁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물어야 하는 역사교육. 내가 너보다 아는 게 더 많다고 자랑질이나 하기 위해 배우는 역사공부는 가짜다. 역사를 배우고서도 역사의식도 민주의식도 평등의식도 없는 사람은 역사공부를 잘못한 것이다. 그런 역사공부를 한 사람들이 지금 저명인사가 되고 학자가 되고 언론인이 되어 국민의 권리를 유린하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는 역사 부끄러운 역사는 덮어두고 역사를 미화하는 역사교육은 역사의식이 없는 방황하는 인간을 양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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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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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를 알아야 현재가 있고 미래를 대비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20.02.19 07: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역사를 왜곡하려고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필수교과로 가르,친 사람이 박근혜와 양심불량 학자들입니다.

      2020.02.19 17:20 신고 [ ADDR : EDIT/ DEL ]
  2. 유대인의 역사라고 하는 구약성서에 이러한 내용이 있었군요. 이러한 글을 성서 편찬자가 쓴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부끄러운 역사도 덮을 것이 아니라 반면 교사로 삼기 위해서 였을 것같습니다. 그러한 목적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겠습니다.

    2020.02.19 07: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역사를 통해 오늘을 배우는 게 역사교육의 못적인데요. 그런다 독재자들은 그런 역사교육을 시켜 사맹을 만들어 놓았지요.

      2020.02.19 17:22 신고 [ ADDR : EDIT/ DEL ]
  3. 제대로 알아야 할 역사이지요.
    숨기지 않고...

    2020.02.20 05: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추는 자가 범인입니다. 부끄러운게 많은.... 그들이 지금 대한민국으 ㅣ주인 노릇을 하겠다니 더 문제지요.

      2020.02.20 06:43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2. 18. 06:49


‘오늘날 분단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모순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데서 연유한다.’ 아마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우리는 오늘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등 수많은 과거의 진실을 밝히려는 단체들의 시계는 거기서 멈춰 서 있다. 가해자들이 오늘날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진화해 좀비 노릇을 하는지를 밝히지 못한채....



나는 오늘날 태극기부대들의 집회를 보면 이승만정권시대 서북청년회가 떠오른다. 일제강점기시절,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고문했던 자들, 북한에서 쫓겨난 기독교인들이 주축이 돼 만든 서북청년회는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위한 암살, 테러, 학살에 부역한 자들이다.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대구 10, 1항쟁, 부마항쟁, 3,15의거, 4,19혁명, 5,18광주항쟁을 비롯한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해 독재와 유신 광주학살...에 동참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테러범이요 암살자였지만 점차 권력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가 기득권세력으로 진화한다.


‘이제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자’고 한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들이 하는 소리다. 분열과 대립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합의 시대를 열자고 동서고속도로를 88올림픽을 유치하기도 했다. 누가 화합을 싫어하겠는가? 그러나 피해자는 그 악몽과 같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가해자들이 나서서 용서하고 화합하자고 한다. 한 세기가 가깝도록 피해자들은 지식과 남편을 잃고 혹은 그 때의 상처로 아직도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연좌제로 자식들은 물론 친척들까지 취업조차 못하고 빨갱이로 몰려 손가락질 당하면 살아 왔는데.... 진상조사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덮고 용서하고 화훼 하자고 한다.


수십만명의 무고한 민초들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마들이 더러는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재벌이 되기도 하고, 판검사로, 학자로, 의사로, 변호사로, 종교지도자로... 기득권 세력이 되어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데... 이 상태에서 용서하고 화합하면 누가 좋아할까? 이런들 엇더며 져런들 엇더료/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얼거진들 엇더리/우리도 이치 얼거져 백년(百年)지 누리리라.... 고려왕조를 뒤엎고 만고충신 정몽주를 비롯한 사육신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차지한 권력.. 그들은 ‘양반은 씨가 따로 있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팔자는 타고 나는 것’...이라며 민중을 개돼지 취급하며 살고 있다.



나는 가끔 “신이 정말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한다. ‘신이 정말 있다면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고 본인은 물론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도록 가만 두고 보고만 있을까’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서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참혹한 짓을 한 사람들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옳다고 믿기에 정의의 편에 섰던 사람들... 그들은 대대로 가시밭길을 걸으며 짓밟히고 살지 않는가? 그 수많은 피해자들은 왜 아직도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가?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침묵하는 언론인들... 기득권 세력에 편입돼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된 학살의 후예들... 사북청년단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태극기부대로 부활하고 있다. 거대한 미국과 일본 그리고 군산복합체, 군수마피아, 기레기 언론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으면서.... 언론이 해야할 일들을 하지 않아 답답한 힘업도 영향력도 없는 무명의 블로거가 며칠간 기획해 포스팅을 했던 연재물이다.


1. 이승만이 만든 대한민국

2. 여·순사건은 항쟁인가 반란인가?

3. 한경직목사가 만든 서북청년회를 아십니까

4. ‘빨갱이=악마’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된다

5.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대구 10·1사건


질곡의 역사, 거꾸로 기록된 역사를 배우는 청소년들...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가 애써 그들의 잔악상과 부역자들의 죄상을 밝히는 동안 가해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부활하고 진화해 기득권세력으로 천사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으로, 미래 무슨당으로, 태극기부대로, 관변단체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고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 공급하고, TV를 켜면 친숙하게 만나는 아나운서로, 드라마의 탤런트로, 무슨 전문가로, 교육자로, 의사로, 교수로, 박사로 언론인으로, 총선 후보자로... 변신해 우리 생활속에 친근한 이웃이 되어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짝사랑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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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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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대로 잠이나 잘런지 모르겠네요..
    양심도 없는 사람들 많습니다.

    2020.02.18 07: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오히혀 반대일걸요. 자유한국당을 보십시오 온갖 교활한 수법으로 못 속여 먹어 안달입니다.

      2020.02.18 14:30 신고 [ ADDR : EDIT/ DEL ]
  2. 개인적으로 가족 중에 저만 종교가 없는데 그건 아마도 신이 죽었으리라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가해자인지도 모르는 데서 일하고 있을 많은 분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있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2020.02.18 20: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비극이지요. 논앞에 보이는 현실만 현실이 아닌데... 과거 없이 오늘이 오늘 없는 내일이 가능한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2020.02.19 04:30 신고 [ ADDR : EDIT/ DEL ]
  3. 가해자이면서...숨기고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양심이 없는 것 같아요.

    2020.02.19 06: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2. 17. 05:02


"피고인들을 각각 무죄 선고한다."

전 국민보도연맹 학살 희생자 6명에게 이재덕 마산지원장이 70년 전, 국가에 의해 정당한 재판 절차도 없이 학살당했던 희생자에게 내려진 첫 무죄판결이다.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부는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 노치수(73) 회장을 비롯한 유족 6명이 낸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가운데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해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기는 전국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보도연맹, 혹은 보도연맹사건이란 아직도 금기어다. 빨갱이이기 때문에 죽여도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가입해야 살아남기 위해, 살기 위해 이름을 올린 대부분의 연맹원들을... 총알이 아깝다고 휘발유를 붓고 불어 질러 죽이기도 하고, 미쳐 죽지 않은 어린 아이까지 산채로 끌어다 묻은 천인공로한 살인극...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제주4.3사건의 피해규모인 3만명은 넘는... 전체규모에 대해서는 10만명 내외에서부터 20만명, 나아가 30만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전국 114개 시·군 중 43개 시‧군에서 학살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무차별 학살이 바로 보도연맹사건이다.


<보도연맹이란 무엇인가?>

국민보도연맹이란 6.25 전쟁 중 이승만 정부가 조직적으로 벌인 최대 규모의 자국 민간인 대량 학살한 흑역사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6월 5일 좌익 계열 전향자로 구성됐던 반공단체 조직이다.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와 국민의 사상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려는 이승만 정권이 대국민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일제 강점기 때 친일 전향 단체였던 ‘대화숙’을 본떠 만든 단체가 보도연맹이다.


1. 우리는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하자.

1. 우리는 망국적 북한괴뢰 정권을 절대 반대하자.

1. 우리는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배격하자.

1. 우리는 이론무장을 강화하여 남북로당의 멸족정책을 분쇄하자.

1. 우리는 민족진영의 각 정당 사회단체와 보조를 일치하여 대한 기상을 발휘하자.


국민보도연맹의 강령이다.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 약화를 위해서 과거 좌익에 몸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다. 이 단체는 친(親)대한민국, 반(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향을 분명히 하였고, 이를 위해서 좌익 용의자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가입시켰고 6.25 전쟁 직전 연맹원이 33만을 넘었다. 놀랍게도 코주부 삼국지의 김용환 선생, 《삼대》의 작가 염상섭, 《카인의 후예》와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시인 정지용도 보도연맹 회원이었다.



한국 전쟁 중에서 수도 서울을 탈출하여 부산으로 피난 갔던 이승만 대통령은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조선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부역 행위에 협조하거나 의용군으로 입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시작된 빨갱이 사냥. 보도연맹 학살에 이승만이 CIC 특무 헌병대장 김창룡인물이 김창룡에게 지시하여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은 지역'에 있는 보도연맹원들을 잡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학살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 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사상 배격 · 분쇄‘, ‘남로당, 조선로동당 파괴정책 폭로 · 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 · 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것이 이 단체의 강령이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의 시행에 따라 1949년 말에는 전국의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다. 대상자는 좌파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실제로는 공무원들의 건 수 올리기 실적주의 때문에 거의 가입을 강요받은 경우가 많았으며, 지역별 할당제였기 때문에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죽했으면 미국이 '민간인을 죽이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겠는가? 이 참상은 전국곳곳에 남아 있지만 ‘거창양민학살사건’ 현장을 가보면 그 참혹함에 치를 떨게 된다. 죄도 없이 끌려가 참혹하게 죽어간 이들이 70년만에 6명에 대한 무죄가 처음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창원지법 마산지원 재판부는 6명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이들이 북한에 호응하는 등 이적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58년 만에 최초로 국가를 대표해 당시 국가에 의해 희생된 국민들의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죄했지만 참여정부 이전의 정권들은 이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고 금기시했다. 죽은 이들만 피해자가 아니었다. 신원조회의 역사 연좌제! 월북자, 부역자, 좌익사범들은 그 가족들 까지 연좌제에 시달려야만 했던 악법 중의 악법 연좌제. 3족을 멸하던 연좌제는 갑오경장 때 사라졌지만 헌법 제 13조 ③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현행헌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건재했던 법이 연좌제다. 정보기관은 민간인 학살에 관련된 희생자와 75만명의 가족과 친족의 정보를 보관하면서 지속적으로 인권침해를 해왔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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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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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죄 판결이 당연합니다.
    남은 분들의 명에 회복 되어야 할것입니다.

    2020.02.17 06: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슬프고 아픈 역사네요.
    무죄판결 받으신 분들이 이렇게 적은데 나머지 다른 분들은 어찌될까요? 아직도 재심을 청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구 비율 대비를 해 보면 한 다리 건너 대부분 작게라도 친인척이거나 가까운 지인일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남은 분들도 명예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2020.02.17 08: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세상에 악마가 바로 이런 경우를 보고 말 하는 것 같군요.

    2020.02.17 20: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들이 거기서 끝난게 아니고 지금도 진회하고 부활해 피해자들을 개돼지 취급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을 짝사랑하면서....

      2020.02.18 07:37 신고 [ ADDR : EDIT/ DEL ]
  4.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2020.02.17 21: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2. 15. 05:51


"인간을, 포로도 아닌 동포를, 이렇게 처참하게 학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 6·25전쟁의 죄악사에서 으뜸가는 인간 말살 행위였다. 이승만 정권과 그 지배적 인간들, 그 체제 그 이념의 적나라한 증거였다.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형제와 오빠가, 아들이 죽어갔는지.... 단테의 연옥과 불교의 지옥도 그럴 수 없었다. 단테나 석가나 예수가 한국의 1951년 겨울의 참상을 보았더라면 그들의 지옥을 차라리 천국이라고 수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국현대사 산책-리영희증언-


<사진 : 소집된 국민방위군의 모습>


부르면 눈물 날 것 같은 그대가 아니라 알면 분노에 치를 떨게 될 이 기막힌 사건은 왜 학생들이 배우는 현대사 교과서에조차 한 줄도 나오지 않을까? 물론 모든 사실(事實)을 다 역사로 남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실(事實)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살아 갈 세상에 길잡이가 되거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을 사실(事史)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런데 사가(史家)가 혈연이거나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라면 객관적인 역사를 집필할 수 있을까? 국정교과서가 안 되는 이유가 그렇다.


개인의 인품은 스펙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 온 내력을 보면 안다. 물론 잘잘못 없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객관적인 인물 평가는 그 사람의 내력을 숨김없이 드러내 후세 사가(史家)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겠다는 사람들... 이승만을 평가하면서 그가 초대대통령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부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이승만이 초대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리고 12년간의 임기동안 그가 한 일을 보면 드러난 역사보다 감춘 역사가 더 많다. 그래서 6월항쟁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는 ‘거꾸로 읽는 역사니 ’거꾸로 읽는 현대사‘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국민방위군사건의 진실은 이렇다>

현대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치고 ‘국민방위군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국민방위군 사건이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월 1·4 후퇴 때,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함으로써 12월~2월 사이에 500,000명에 달하는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이들 가운데 아사자, 병사자, 동사자가 무려 120,000여명에 이르렸고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뿐만 아니라 손과 발까지 절단난 200,000여명이 넘는 동상자들을 이르게 한 사건」을 말한다.


<사진 : 남하하는 국민방위군 대원들>


국민방위군은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으로 인해 예비병력 확충에 어려움을 겪은 한국 정부는 중공군 및 조선인민군에 대항하고자 제2 국민병을 편성’된 부대다. 이승만은 학도병을 이끌고 낙동강 전투에서 활약했던 김두한을 국민방위군 육군준장 사령관으로 임명해주겠다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하자 군대경험도 없는 씨름꾼인 김윤근을 추천하여 육군준장 국민방위군 사령관으로 임명, 부사령관에 독립운동가 출신 윤익헌대령으로 삼아 편성됐다. 이들은 국민방위군에게 지급해야 할 군수보급, 물자를 고급 장교들이나 간부들이 이를 부정 착복, 횡령하여 징집된 수많은 국민방위군이 아사하거나 동사하는 사태가 속출하게 된다.


이들은 병력 수송비용과 식비 등을 횡령하여, 신정동지회 김종회 등 20여명의 국회의원들에게 공작비와 여비 등의 명목으로 제공되었다. 덕분에 징집된 방위군이 혹한기 속에 굶주리면서 행군하여 기아와 동상으로 전투 한번 없이 희생된 대한민국 육군 최악의 흑역사이다. 적군도 아니고 조국인 대한민국의 부정부패와 인명 경시로 100여 일 사이에 전투에 참여는커녕, 총 한 번 못 만져본 장병 수만 명이 후방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었으며 전체의 80%가량이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학자 유영익교수조차 "9만 명 가량의 장정들이 동사ㆍ아사ㆍ병사한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진술했다.


이 사건으로 신성모 국방부 장관이 물러나고 이를 지켜본 부통령 이시영은 이승만 정부에 대한 무지막지한 회의감으로 사표를 제출하여, 스스로 행정부 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의 공식기록에는 1,000~2,000명 사망으로 기록되어있지만 당시 소문으로는 50,000~100,000명 가량이 죽었다고 하며 중앙일보가 간행한 <민족의 증언>에 따르면 50만 명의 대원 중 20%가 병사 혹은 아사했다고 되어있고, 부산일보가 간행한 <임시수도 천일>에는 사망자가 50,000여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죽했으면 이승만을 열렬히 찬양하는 유영익 교수조차 9만 명이 굶어죽고 얼어 죽은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말했겠는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는 5만~ 8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진 : 국민방위군 사령관 외 5명 총살 공개집행집행 모습>


추산이다. 징집된 이들은 명부도 없고 군번도 없고 무기도 없고 군복도 없는 군대. 일명 '죽음의 대열', '해골들의 행진'이라 불린 바로 그런 군대가 국민방위군이었다. 명부도 없으니 몇명이 동원되었고,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죽었는지는 오늘날 현재에도 정확히 모른다. 정부의 공식기록인 '한국전란1년지'에는 천수백명 사망, 당시 소문으로는 ‘5000명 내지 1만명’...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통령 이시영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승만에게 호의적이었던 한민당과 민국당계 인사였던 조병옥, 윤보선, 김성수 등은 이승만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된다.


이 기막힌 사건은 비공개가 원칙인 군사재판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였다. 이 재판에서 육군총장 정일권 소장에게 "(국민방위군사령관)김윤근은 일등병의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별을 달고 사령관이 될 수 있느냐?"하고 묻자 정일권은 "이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다."라고 답변했다. 수만명이 굶어 죽은 이 기막힌 사건으로 육군참모총장인 정일권이 이종찬으로 교체되고 국민방위군의 주요 간부 5명에게 사형을 선고, 공개 처형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언제 이 억울하게 죽어간 젊은이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 그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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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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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슬픈 국민방위군 사건도 있었지요.
    군 경험을 하면서 느낀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탱크 포 쏘는 소리, 소총 쏘는 소리, 벙커에 들어가서 위로 각종 포를 떨어지게 그러한 소리를 들어보니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전쟁을 부르짖고 있지요. 그들이 진정 전쟁의 처참함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민방위군 사건도 마찬가지로요.
    죄없는 사람이 정말 어이없이 세상을 마감할 수 있는 것, 인간상이 말살되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요.
    국민방위군 사건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을 역사를 전공하는 선생님들은 아실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시하는 선생님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글도 잘 읽고 갑니다.

    2020.02.15 07: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똑같은 사람이라도 느낌은 천차만별인 모양입니다. 그 가족이 읽었을 때와 제 3자 그리고 가해자가 읽었을 때.... 남의 아픔을 보고 함께 아파하는 걸 인지상정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세상이 삭막해지다보니 나의 일이 아닌 것은 관심도 없고 무시하시 마련인가 봅니다. 상식체온님 글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02.15 19:01 신고 [ ADDR : EDIT/ DEL ]
  2. 명령 하나로...사람의 목숨까지 쉽게 가져가 버린 ...
    어두운 시절이긴해도...마음 아프네요.ㅠ.ㅠ

    2020.02.16 07: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수십만명의 젊은 이들을 굶어 죽인 천인공로할 범죄입니다. 이런 이승만을 국부로 추안하자고 합니다.

      2020.02.16 17:40 신고 [ ADDR : EDIT/ DEL ]
  3. 지금도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 그 못지 않을것입니다.
    민초들의 고통은 남의 이야기입니다.

    2020.02.16 12: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군의 군납,보급비리는 예나지금이나 알게모르게 이뤄지고 있는 듯 합니다.
    기록에는 남지 않았지만, 징집된 사람들의 가족들은 기억하고 분명 나라의 문, 언론의 문 등을 두드렸을텐데...
    모두 권력앞에서 외면 당했다고 봅니다.
    사실 몇 사람의 사형으로 끝냈다는 것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꼬리자르기로 보일 뿐이고,
    실제 비리에 가담했던 많은 이들은 그 뒤까지 살아남아서 큰소리치고 살았겠지요.
    그래서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을 토대로 후세에라도 부정축재한 것들을 환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후세에 남기려 그렇게 움직이는 분들도 계신 걸로 압니다.

    2020.02.17 08: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2. 14. 07:07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픈 역사.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럽고 참혹하고 가슴 아파 덮어두기 위해서일까? 그런 역사를 진상규명도 보상도 하지 못하게 침묵하게 하는 법. 부끄러운 역사는 진상을 밝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게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아픈 역사,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고 덮어두기 위해 국가보안법까지 만들어 감추어두는 것일까?



5천년의 역사를 함께 살아 온 민족의 반쪽,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도대체 왜 이 반쪽에 대해서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할까?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을터인데... 있는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서로를 도와주는 것인 반쪽이 하나 되는 길이거늘... 반성조차 하지 않은 일본과는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체결하고 우방국이라면서... 최근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확정 판결한 후 일본의 배상거부로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남북관계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부끄럽고 아픈 역사,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보도연맹사건, 대구 10·1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중 제주 4·3항쟁의 경우는 미흡하기는 하지만 상당부분 밝혀지고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여·순항쟁, 보도연맹사건, 대구 10·1사건, 국민방위군 사건과 같은 사건은 아직도 금기사항이다. 왜 그럴까? 당시의 가해자가 지금도 정치·경제, 사회·문화 법조계, 학계, 언론계에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의 과거가 드러나지 못하게 감추기 위해서가 아닐까?


<교과서에서조차 빼버린 대구 10.1 사건>


- 사건의 발단 -

우리가 ‘10월 대구폭동’으로 알고 있는 ‘대구 10.1 사건’은 1946년 10월 1일, 미군정 영역인 대구부 지역에서 시작된 민중봉기를 말한다. 대구사건이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대구·경북 인근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점차 남한 전국각지로 퍼져나갔고 무려 200만명이 참가해 3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의 근본원인은 일제 강점기의 지배 체제가 그대로 유지된 미군정과 군정청의 식량정책 실패, 가혹한 수매, 미군정 경찰과, 서북청년단, 극단주의 반공청년단의 일반인 사냥 등으로 민심이 흉흉하게 된 분노에서 비롯된다. 1946년 전국에서 발생한 콜레라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교통을 차단하고, 더욱이 큰 홍수로 대체 농작물마저 부족하여 식량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경과 -

전국에서 9월 총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10월 1일 대구역 앞에서 경찰이 전평 계열 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포하여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다음날 시민들이 대구부청과 경찰서를 포위하고 경찰의 사과와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며 점거하였다. 이후 대구 전역에서 시민들이 경찰과 우파 인물을 공격하여 사망자와 부상자가 대거 발생하였다. 미군정은 질서를 잡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에 나서 오후에는 겨우 질서를 회복하였다.


대구에서의 항쟁은 진압되었으나,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0월 3일부터 성주·칠곡·영천을 비롯한 경상북도 대다수의 지역에서 항쟁이 일어났으며, 경상남도에서도 통영을 시작으로 진주·마산을 비롯한 대다수의 지역에서 항쟁이 일어났다. 충청 지역에서도 10월 초순에 항쟁이 일어났으며, 10월 하순까지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에서 일어났다. 10월 하순부터 11월 초순까지 전라남도에서, 12월 중순에는 전라북도에서 항쟁이 일어나는 등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전역에서 항쟁이 일어났다.


항쟁에 참여한 시민과 농민들의 요구는 다양하였다. 도시에서는 식량배급 실시의 요구가 가장 많았으며, 농촌에서는 식량공출의 반대, 소작료 3·7제 실시 요구가 가장 많이 제기되었다. 일부 농촌지역에서는 토지의 무상몰수와 무상분배를 요구하였다. 도시와 농촌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친일파의 배격과 처단, 정권을 인민위원회로 이양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항쟁 양상은 지역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군중들이 경찰서와 면사무소를 비롯한 관공서를 공격하고 점거하는 양상을 보였다. 공격 대상은 경찰관과 군정 관리, 우파 성향의 인물이었다.



- 결과 -

항쟁이 남한 전역으로 확산되자 미군정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항쟁이 예상되는 지역의 인민위원회와 농민조합의 지도자를 예비 구금하거나 지역마다 진압 조직을 만들었다. 항쟁 지역이 광범위하여 미군과 경찰력이 분산되자 청년을 비롯한 우파 세력을 진압에 적극 동원하였다. 지역에서 항쟁이 발발하면 미군과 경찰을 즉시 파견하여 진압하였다. 항쟁이 격렬하게 전개되고 진압 방식도 무자비하여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항쟁 과정에서 경찰과 우파 인물이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경찰과 우파 세력의 보복이 많았다. 아울러 우파 세력의 테러 때문에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물적인 피해도 상당히 컸다.


항쟁이 발발한 후 미군정과 중도파 세력의 대표는 항쟁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미공동회담을 열었다. 한미공동회담은 항쟁의 원인을 경찰에 대한 민중의 적대감, 군정 내부의 친일파 존재, 일부 한국인 관리의 부패, 남한의 최대 복리를 방해하는 선동 등이라고 밝혔다. 대책으로 군정 내부의 친일파의 처단 등을 미군정에 권고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항쟁으로 희생된 사망자 20명, 중상자 50명 행방불명자 30명, 민간인이나 경찰관 측 사망자가 각각 40명이 넘었으며, 수백명의 부상자와 5,000여 명이 검거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982년 북한의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에 따르면 미제는 1만여명의 노동자와 1만2천여 명의 농민을 위시하여 10월 항쟁에서 무려 25,000여명의 애국적 인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15,000여명을 검거 투옥하였다. 어떤 지방에서는 애국적 인민들을 산채로 손발을 잘라 죽이기도 하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죽이기도 했다. 항쟁기간 적통치기관이 파괴되고 인민위원회가 복구되어 행정권이 일시적이나마 인민들의 손에 장악되었고, 미제의 앞잡이인 악질경찰과 반동분자들이 인민들의 손에 의하여 처단되었다. 이는 남조선인민 투쟁의 역사적인 쾌거‘라고 발표했다.(뉴스타운 참고)


국가 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고 미국이 혈맹이요, 천사의 나라(?)이기 때문일까? 일제의 패망 후 미군정기 3년간, 찬탁과 반탁운동을 비롯한 여·순항쟁, 대구 10·1사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분단의 씨앗이 된 동아일보 오보사건... 등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밝혀진 게 없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미군정기의 미국이 한 일을 감추기 위해서는 아닐까?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고 덮어둔다고 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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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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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막연하게만 알았던 대구 10.1 내용 다시금 상기해 봅니다. 이념이 참 어이없고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매듭이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02.14 07: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무 죄도 없이 국가 폭력에 의해 즉어간 억울한 분들의 영령을 위로 하는 차원에서라도 하루빨리 진상회복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2020.02.14 18:21 신고 [ ADDR : EDIT/ DEL ]
  2.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입니다.
    많은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2020.02.14 08: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하는 한 이런 사건을 진상조차 알려지기 어렵지요.

      2020.02.14 18:22 신고 [ ADDR : EDIT/ DEL ]
  3. 알려지지않는 역사...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많은 듯...ㅠ.ㅠ

    2020.02.14 12: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 정도가 아니지요? 해방정국에서 뭍힌 폭동으로 알려진 이란 사건의 진상부터 낟낟이 밝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억울하게 숨져간 분들이 눈을 감지 않겠습니까?

      2020.02.14 18:24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2. 13. 04:51


옛날 시골장터에 마술사가 나타났다. SNS도 TV도 없던 시절, 시골 장날이 되면 최고의 인기는 각설이 타령을 하는 엿장수나 마술사의 등장이었다. 볼거리가 없던 시절이니 이런 횡재는 장날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했다. 애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사람들이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보고 있는 틈새에서 마술사의 마술에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말을 끌고 나온 마술사는 “자 보십시오. 지금부토 제가 이 말의 입속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나오겠습니다.” 믿어지지 않은 구경꾼들은 설마...?‘ 하며 넋을 잃고 마술사의 다음 행동을 숨을 죽여 가며 지켜보고 있었다.


<출처 : 국민일보>


마술사는 몸에 무슨 기름인가를 바르는 흉내를 내더니 보조자가 옆에서 말의 입을 벌려주자 마술사는 말의 입속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보고 있던 구경꾼들이 자기 눈을 의심하며 박수와 환호에 시장판이 떠나갈듯 박수를 치며 황호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 사람. 유일하게 애기를 업고 있는 아주머니는 마술사가 말의 입으로 들어 항문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의 앞다리 사이로 들어가 뒷다리 사이로 나오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마술사에게 말했다. “마술사님! 마술사님은 말의 입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나오는게 아니라 말의 앞다리 사이로 들어가 뒷다리 사이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당황한 마술사는 “아주머니, 아주머니 업고 있는 애기가 죽었는데요?” 깜짝 놀란 구경꾼들이 애기를 보니 애기는 고개를 떨군 채 팔다리가 축 처진 채 늘어져 있었다. 아주머니가 한 말은 순식간에 묻히고 애기가 죽은 모습에 한 마음으로 관심이 쏠리고 말았다. 마술사의 위기 탈출은 이렇게 성공하고 정신이 나간 아주머니는 애기를 들쳐 업고 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입에 물을 찍어 넣자 거짓말처럼 깨어났던 것이다. 마술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술수가 바로 애기에게 마술을 걸어 잠간 마취에 걸렸던 것이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쯤인가? TV도 만화책도 없던 시절 필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들려 준 기억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야기다. 해방공간에서 빨갱이 만들기 작전은 이렇게 진행됐다. 공산주의자가 악마가 될 수 있었던 사연은 마술사의 마술 덕분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약자배려’라는 가치는 계급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은 논리였다. 이런 겁도 없는 얘기를 꺼낸 분이 로마의 식민지 시절 이스라엘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다. 예수는 세리와 로마의 수탈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이웃은 늘 가난한자, 병에 걸려 고통 받는 자. 과부, 고아 노약자...들이었다.


사실 약자배려라는 가치는 예수와 마르크스에서 현실화노력으로 시도된다. 예수의 약자배려라는 가치, 복지개념은 계급사회였던 로마의 최고형벌인 십자가에 달림으로서 그치고 말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예수의 이념은 가장 많이 닮은 이상세계를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마르크스 이전에도 이런 노력은 없었던게 아니다. 불로 소득의 계급을 배제하고, 과학과 산업이 지배하는 사회를 종교적으로 통일시킴으로써 이상사회 실현을 구상했던 토마스 모어, 로버트 오언의 공상적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그 후 마르크스를 통해 현실화 노력이 시도된다. 마르크스가 좌익이요 좌익은 빨갱이, 악의 축이 된 것은 자본주의 가치와 상충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왜 빨갱이는 악의 축이요, 철천지원수 마귀가 되고 말았는가? 마르크스가 빨갱이가 되는 과정은 해방정국에서 권력욕이 미친 정치인이 만든 이데올로기다. 물론 변절한 기독교인들이 동참해 이들과 한통속이 되었던 것은 어제 쓴 ‘한경직목사가 만든 서북청년회를 아십니까’라는 글에서 상술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불행의 씨앗은 일제강점기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36년간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간악한 노예생활도 잊고 우방이 되고 반만년간 한핏줄로 함께 살아온 동족이 철천지원수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제주 4·3항쟁도 여순항쟁도 대구 10·1폭동도 보도연맹사건도 분단도 6·25전쟁도 원인제공자는 철천지 원수 일본이다.


일본이 우방이 된 것은 36년간 식민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해방정국에서 지배세력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손잡고 ‘빨갱이=악마’로 만들면서 가능했다. 동남아 패권지배를 위해 군수마피아들의 잇권과 분단으로 이익을 보는 일본. 분단과 6·25전쟁은 일본이 포기할 수 없는 황금을 낳는 거위 알이었다. 오직 권력 장악에 눈이 어두운 이승만의 이해관계와 미국과 일본이 필요했던 한반도 분단정책, 그리고 교조(敎祖)를 배신한 기독교인들이 야합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보도연맹사건 그리고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수많은 빨갱이 사냥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자리를 잡게 된다. 손가락 재판은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마취에서 깨어나면 죽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서지 말라’.... 빨갱이 사냥은 이렇게 수십만명의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라고 있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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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서운 이념입니다.ㅠ.ㅠ

    2020.02.13 05: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r그러게요.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역사를 덮어둑호 민주주의 어쩌고...는 헛소리입니다.

      2020.02.13 11:56 신고 [ ADDR : EDIT/ DEL ]
  2. 오래전에 정치인이 만든 이데올로기가 아직까지 살아남아서 보이는지 안타깝습니다. 언제나 없어질까요?

    2020.02.13 06: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들이 지금 정치영역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부활하고 법조계 경제계 언론계, 학계에 부활해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쇼를 하고 있는게지요.

      2020.02.13 11:57 신고 [ ADDR : EDIT/ DEL ]
  3. 에전엔 빨간색 옷을 입어도 빨갱이라 그랬죠..
    참 무서운 세뇌였습니다.

    2020.02.13 06: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맞아요. 레드 콤플랙스 빨간색을 보면 겁부터 집어먹도록... 지금도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입에 재갈을 믈려놓고 있습니다. 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2020.02.13 11:59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2. 12. 05:53


제주 4.3항쟁 초기 진압 책임자로 개신교인이었던 조병옥 경무부장, 좌익 전력자를 전향시킨다는 명목으로 만든 보도연맹 결성을 주도하는 등 평안남도 출신으로 공안검사로 유명했던 오제도 검사. 영락교회 장로를 지낸 최명신장군과 이세호 장군... 이들이 영락교회출신이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알면 기분이 어떨까? 믿고 싶지 않겠지만 ‘테러와 암살에 ‘동원․고용’돼 제주 4·3항쟁에 토벌군으로 참여한 서북청년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영락교회의 초대회장이기도 했던 한경직목사가 만든 영락교회 청년들이 주축이 됐다는 사실도...



“공산당과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사탄과의 싸움”이라던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하나님 까불며 죽어“라며 하나님과 맞짱을 뜨겠다는 전광훈 목사.... 반공의식으로 강철같이 무장한 교인들과 지도자들,,. 도대체 이들이 왜 평등이니 좌익이라면 이를 갈게 된 것일까? 「반공의식은 우리가 흔히 ‘보수’라고 칭하는 개신교 일부 진영만의 의식이 아니라 ‘진보’까지 포함해 한국개신교의 보편적인 의식이었다. 진보적 신학의 대표적 인물로 한신대와 기독교장로회를 세운 김재준 목사를 비롯해 강원룡 목사, 함석헌 선생, 안병무 박사 등 1970년대부터 반독재투쟁에 나선 개신교계 인물들도 강한 반공주의자들이었다.」(민중의 소리 ‘극우개신교를 파헤치다①)


대한민국에 실존했던 정치깡패. 백색테러를 수없이 자행하던 극우 성향 테러조직, 서북청년단.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단체인 양호단, 대한혁신청년회, 함북청년회, 황해회청년부, 북선청년회, 평남동지회, 평안청년회는 1946년 11월 30일 서울 YMCA에서 모여 서북청년단을 만든다. 이들은 주로 일제강점기 지주, 개신교 인사, 민족주의자나 일부 친일반민족행위자 등 북한의 탄압을 피해서 도망 온 젊은이들이었다. 한경직목사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열렬한 반공 청년들이라 (기독교민주동맹 창립총회에) 가서 쳐부수고 해산시켰거든. 지금은 그 청년들이 다 장로 됐수다"라며, 영락교회 청년들이 반탁·반공 운동에 앞장섰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북청년들의 ‘활약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1946년 대구봉기(10월항쟁)와 제주 4·3항쟁의 진압이다. 한경직목사는 1961년 5월 16일 남로당 출신으로 여순 반란에 가담했던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사정변이 발생하자 민간사절단이라는 특사로 김활란 등 개신교계 인사들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여 쿠데타 당위성을 설명했으며 이후 반공연맹 임원 등을 맡아 예배와 각종 집회를 통해 군사정권을 옹호하였다. 군사 정변의 주역이 그들이요, 오늘날 대형교회의 상당수가 서북 개신교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다니던 소망교회도 서북 출신 목사 곽선희가 세운 교회다.



교회의 확장과 난립, 무리한 선교활동 그리고 90년대 이후 대형 교회들의 비리와 세습, 목사들의 성추행 등 사회적 범죄 행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던 한국 보수개신교는 서북청년회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살아남아 성장해 정치·경제·사회문화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좀비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이 장기집권을 위해 정적을 제거하는데 필요했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도망친 기독교 세력들이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사자방으로 나라경제를 거들 낸 이명박의 소망교회까지 뿌리는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친일세력=유신세력=광주학살=자유한국당이 공생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분단과 반공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정치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예수교 나라’로 세우고자 했으며 제헌의회는 목사의 기도로 시작되었다. 살인마 전두환의 만수무강을 비는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우연일까? “한국기독교연합회(KNCC)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첫 제헌의회 선거일을 월요일로 연기했으며, 국영방송에서 선교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첫 민간방송으로 기독교 방송 CBS를 인가했다. 군목, 형목, 경목 제도를 도입해 군대와 형무소, 경찰에서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고,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했던....”(백중현, 2014)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을 본 사람들은 제주 4·3항쟁의 참상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축소판이었던 제주 4·3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국부로 추모하고 유신정권의 박정희와 무고한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전두환을 못 잊어 전사모로 부활했다. 공휴일이 되면 광화문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서 나랏돈을 도덕질한 현행범을 살려내기 위해 악을 쓰는 무리들이 누군가? 국정을 농단하다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으로 재판 중인 박근혜가 억울하다고 악을 쓰는 무리가 누군가? 보수라는 옷을 입고 일선 정치 선두에서 보수재건을 꿈꾸며 깃발을 들고 있는 정치인들... 이들의 든든한 기둥이 된 세력은 다름 아닌 기독교인들이 아닌가?


학자들 중에는 ‘지금이라도 친일잔재청산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군대와 경찰, 정치권, 언론, 의료, 사회복지, 교육기관·정치·경제·사회문화 곳곳에 독버섯처럼 스며들어가 뿌리를 내려 특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서북청년회의 후예들... 이들을 두고 과연 친일잔재청산이 가능하겠는가?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쳤는데 오늘날 태극기부대를 비롯한 극우개신교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마귀의 자식이 된 이들에게 예수님은 말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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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식ㅇㅔ 빠지면 안되는 소금처럼...
    쓸모있고..소중한 사람이 되어야할 듯...

    잘 보고 갑니다.

    2020.02.12 06: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데 이 사람들은 생각이 많이 달라요.
      자기네들이 잘 살기 위해 약자를 개돼지 취급하거든요.

      2020.02.12 14:00 신고 [ ADDR : EDIT/ DEL ]
  2. 그 XX먹을 게 전광훈에게까지 이어 내려 오고 있네요

    2020.02.12 06: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극우 기족교인들은 지옥이나 신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예수를 팔아 먹고사는 살인마들입니다.

      2020.02.12 14:00 신고 [ ADDR : EDIT/ DEL ]
  3. 서북청년회에 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0.02.12 08: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부활...그렇지요. 그들은 지금 정치경제사회문화...들 곳곳에서 좀비세력으로 불활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태극기부데...등등으로...

      2020.02.12 14:02 신고 [ ADDR : EDIT/ DEL ]
  4. 천국을 떠드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가까이 없다는 사실만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2020.02.12 12: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2. 11. 07:16


동족의 학살 명령을 거부한 군인의 저항은 명령불복종인가? 아니면 불의에 저항한 의거일까? 1948년 제주도민 학살동원 명령을 거부한 여수순천의 14연대 얘기입니다. 제주 4·3항쟁은 ‘제주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대통령의 사과와 위령비와 기념관 건립과 진실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4·3항쟁 저항민간인을 학살하기 위해 내린 동원명령을 거부했던 여수·순천사건은 사건 발생 72년이 지만 지금까지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조차 통과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순사건이란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전남여수순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제주 4·3 민중항쟁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다 14연대의 군인 2,000여 명이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 등 남로당 계열 군인을 중심이 되어 일으킨 항명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군인 180여 명, 경찰 74명, 행방불명자 825명, 국가공무원 피해 3,474명, 민간인 피해 11,131명의 희생된 되었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오전 7시경, 국방경비대 14연대는 제주4.3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상부로부터 비상나팔소리에 휩싸였습니다. 지창수·김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은 동족의 학살에 참가할 수 없다며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친일파 처단’, ‘조국통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봉기를 일으킨 것입니다. 1948년 10월 19일 저녁 8시경, 14연대 지창수·김지회 등 일부 군인들은 무기고와 탄약고를 점령하고 비상나팔을 불어 연대 병력을 집결시킨 다음, 선동과 위협으로 봉기군에 동참하기를 독려했습니다. 이들은 곧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하고 여수·순천을 순식간에 휩쓴 뒤 곧바로 벌교·보성·고흥·광양·구례 등 전라남도 동부 5개 지방을 장악, 10월 22일에는 곡성까지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초기 진압작전에서 실패한 이승만 정부는 20일 미국 군사고문단 수뇌부 회의에서 광주에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계엄령을 선포, 사흘간의 교전 끝에 정부군은 25일 마침내 장갑차와 박격포, 항공기, 경비정 등을 동원, 여수를 포위해나갔고, 27일 진압에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당시 여수를 빠져나간 봉기 세력들은 지리산 인근으로 흩어져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분이 풀리지 않은 정부군은 여수, 순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거동이 불편한 사람까지 운동장으로 끌어내 ‘손가락질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인민대회 참가했다는 이유로, 완장을 찼다는 이유로, 머리를 짧게 깎았다는 이유로, 고무신을 신었다는 이유로, 군용 팬티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 로 형무소에 수감되거나 총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결과 진압 과정에서 봉기군과는 무관한 민간인들이 부지기 수로 희생당하고,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확인된 사망자만 해도 무려 3400여 명, 행방불명자는 800여 명, 사망자는 1만 여 명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군의 협조로 진압에는 성공했지만 여순사건을 계기로 일부 지역에서 일어났던 유격투쟁과 빨치산 활동은 이듬해 초까지 계속되었습니다.'(‘제주의 소리’ 참고)




‘모든 동포들이여! 조선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진정한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친애하는 동포여! 우리는 조선 인민의 복리와 진정한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을 약속한다. 애국자들이여! 진실과 정의를 얻기 위한 애국적 봉기에 동참하라. 그리고 우리 인민과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우자.’ (제주 출동을 거부한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의 ‘애국 인민에게 호소함’ 격문)


“우리는 조선의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신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제주도 애국인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위하여 우리를 출동시키려는 작전에 조선 사람의 아들로서 조선 동포를 학살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총궐기하였다. 동족상쟁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거...(1948. 11. 30 동아일보) 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만이 일어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을 부활시켜 자본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동족학살을 거부한 이 사건이 어떻게 반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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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순 사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는 분들이 주위에 많은 것 같은데 거의 침묵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하루빨리 진정한 진실이 밝혀져서 화해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2020.02.11 08: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얼나나 트라우마에 시달렸으면... 제주를 보십시오. 제주에 사는 젊은 청년들 중에 제주 방언을하는 사람은 눈닦고 찾아봐도 없답니다.

      2020.02.11 19:23 신고 [ ADDR : EDIT/ DEL ]
  2. 제주 4.3 사건에 이어 여순 항쟁도 규명 되어야 할일입니다
    민간인의 피해는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 될수 없습니다.

    2020.02.11 09: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촛불이 만든 대통령도 못하고 있는데 어느 세월에 하겠습니까? 문재인대통령은 통일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국가보안법부터 폐지해야 합니다.

      2020.02.11 19:24 신고 [ ADDR : EDIT/ DEL ]
  3. 국가보안법으로 인해서 많은 무고한 학생들과 시민들이 잡혀가서 고문을 당했던 사건들을 말로만 들었지 이런 내용은 교과서에서는 접하기 힘든 내용이었어요. 아마도 제가 학교 다닐때는 군부정치가 날개를 치던 때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전두환이 있을 당시였으니 알만하죠. ㅠㅠ 정말 한심한 이성만. 이사람은 저알 매국노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2020.02.11 18: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지금도 수학여행을 다녀 온 학생치고 제주 4,3항쟁에 대해 들었다는 학생을 만나 본일이 없답니다. 아마 그런 얘기 한 교사가 있었다면 학부모들이 학교에 항의하고 난리를 치지 않았을까요?

      2020.02.11 19:25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2. 10. 07:51


이승만대통령... 하면 무슨 생각이 날까? 친일의 후예들 그리고 수구세력과 찌라시 언론들은 이승만의 ‘건국대통령’으로 추앙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의 재직기간 중 일어났던 일을 봐도 그렇게 생각할까? 이승만은 상해임시정부 시절은 1919년 9월 11일 ~ 1925년 3월 23일까지 임시정부 제 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지만 탄핵 후 면직당했다. 미군정지절이 끝난 1948년 8월 15일부터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재임했다. 그의 재임 12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3·15부정선거로 4·19혁명을 맞아 미국 하와이로 망명. 1960년 사망한 이승만... 그의 재직기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947년 3월 1일 ~ 1954년 9월 21일 간 제주도민의 10분의 1인 2만5천~3만 명을 학살하는 제주 4·3항쟁. 그리고 아직도 여순반란사건으로 알고 있는 동족을 학살하는데 동참을 거부한 여순항쟁. 그리고 1946년 6월 3일에 전북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사실상 조국분단의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사람. 1946.6~12 남한 임시정부 수립 주장해 분단을 고착화 한 사람이 이승만이다.


반공을 국시로 삼고 끊임없이 북진통일 을 주장했던 이승만은 1950년 6월 25일 ~ 1953. 7월 27일 한국전쟁 발발 그리고 재임기간동안 얼마나 급했으면 1952년 7월 2일 6.25 전쟁이 한창이 벌어지고 있던 때 임시수도 부산의 피난국회에서 대통령 재선을 위한 1차 개헌이 이루어진다. 전쟁이 끝나기 바쁘게 1954년 5월 20일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는 것을 골자로 한 사사오입개헌을 통과시켜 종신대통령을 꿈꾸던 사람이 이승만이다.


반공노선을 강조했던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일본 제국 말기에 천황 통치 체제를 부정하는 운동을 단속하던 치안유지법을 대한민국 내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만 바꿔 도입한다. 1949년 5월부터 1950년 3월까지 남조선노동당이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현역 국회의원 10여 명이 검거하는 국회프락치사건. 일제강점기 하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무산시킨다.


친일청산을 무력화시키고 정적인 조봉암을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키고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애 반하는 토지개악으로 지주들에게 구세주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반공포로 석방, 김구암살, 진보당 사건, 거창양민학살, 국민방위군사건, 보도연맹 사건은 우연일까?


<제주 4·3항쟁>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 여 남녀 중학생을

금악벌판으로 몰고가 집단학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속으로 던져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집단이 열일곱도 안 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이산하의 시 '한라산' 일부)


대한민국의 모든 모순은 제주 4·3항쟁 속에 함축되어 있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4.3항쟁의 희생자 수는 2만5천~3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다. 그 중 사망자만 1만4232명, 행방불명자 3천576명, 후유장애 164명, 수형인 248명, 유족은 5만9426명이다. 전체 희생자 가운데 10살 이하는 5.4%인 772명, 11~20살은 17.3%인 2464명으로, 전체의 22.7%가 20살 이하다. 61살 이상은 6.3%인 900명이다. 도대체 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10살 이하의 어린이가 722명, 11~20세 청소년이 2464명이 재판도 없이 죽어 간 것일까?


1948년 4월 3일부터 6·25전쟁이 끝나는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945년부터 9월 9일부터 정부수립 전인 1948년까지 8월 15일 이전까지는 미군정기다. 3000여명의 미군정과 대한민국 경찰과 군인 그리고 서북청년단과 제주시민 500여명... 이들의 살육에 저항한 남조선노동당원과 지원자 1000여명이 맞붙은 처절한 학살극이 펼쳐진다. 결과는 군인 180여명과 경찰 140여명대 제주 시민 2만5천~3만명의 희생으로 막을 내린다. 좀 자세히 살펴보면 가해자 쪽에는 미군정이 없다. 동족이 동족을 살상하는 전쟁... 군정 아래서 경찰과 서북청년단이 누구의 명령으로 도민을 학살했을까?



제주 4·3민중항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사와 제주도의 특수한 상황을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던 날, 시민들이 일제 경찰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연합국 군 최고사령부 포고 제1호 제2조에 의해 현재의 조선(북위 38도 이남)에서의 경찰기구는 그 기능을 계속한다.’ 1945년 9월 14일 발표한 ‘정치단체, 시민 등의 경찰력 행사를 금지함’이라는 아놀드 군정장관 성명에서 미군정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제주 4.3 사건 당시의 제주도 상황은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지고, 미군정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약 6만 명에 이르는 귀환인구의 실직 난, 생필품 부족, 전염병(콜레라)의 만연, 대흉년과 미곡정책의 실패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특히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경찰출신들이 미군정 경찰로의 변신,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미군정 관리들의 모리행위 등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로동당계열의 좌익 세력들의 활동과 군정경찰,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우익 반공단체의 처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등이 복합되어 쌍방간의 적개심으로 일어났다.


사건의 발단은 1947년 제주 북초등학교 3.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본 시위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야유를 보내며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그런데 경찰이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하여 시위대에게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당원 김달삼 등 350여 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급습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우익단체의 처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공포가 합해져 양 측의 대립은 급속도로 제주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4·3 사건은 한국 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조사결과 사망자만 14,032명(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10,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 1,764명 외)에 달한다. 사건을 일으킨 주역 중 이덕구는 6월에 경찰관 발포로 사살되고, 김달삼은 그해 6월말 9월의 해주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차 제주도를 빠져나가지만 학살은 1953년7월 27일 한국 전쟁이 휴전되고 그 후 1954년 9월 21일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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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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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습니다.

    2020.02.10 08: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참혹하지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민초들을 파리 목숨처럼 죽인 살인마들입니다.
      그들이 오늘 날 귀족노릇을 하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2020.02.10 19:23 신고 [ ADDR : EDIT/ DEL ]
  2. 어떤 정치인은 국부로 추앙하고 있던데 이해가 안 됩니다. 말씀하신 역사뿐만 아니라 6.25때 행적을 봐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조선 시대 선조를 떠올르게 하는데 국부라니 어이없습니다.

    2020.02.10 08: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아구나.. 참담한 역사.. 정말 이런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말아야겠지요.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2020.02.10 17: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 정도가 아닙니다. 내일부터 이승만과 친일세력 그리고 유신과 광주학살자들이 저지른 일을 차례대로 써 나갈 계획입니다.

      2020.02.10 19:25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1. 28. 04:47


「아직 눈도 떠보지 못한 아기들일까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어머니의 한도 함께 묻힌 애기 돌무덤

사람이 죽으면

흙 속에 묻히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 눈이

너무 낯선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목이 메인다」



양영길시인의 <애기 돌무덤 앞에서> 중 일부다. 제주특별자치도 조천읍 북촌리... 별나게 파랗게 보이는 함덕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새 건축물이 마치 손님처럼 앉아 있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이다. 그 앞마당을 걸어 나오면 ‘너븐숭이 4·3위령성지라는 돌비석이 있고 그 앞에 흩어진 돌무더기 위에 애기들 장남감이 하나 둘 흩어져 있었다. 마치 무덤 속에 애기들의 울음을 그치게라도 하려는 듯...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 돌무더기가 애기들을 묻어놓은 무덤이라는 것을 누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미군정시대 군정경찰과 서북청년단들이 한 짓이라니...


“<한라산>은 내 비명이자 통곡이다/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백두산에서/ 한라산에서/ 지리산에서/ 무등산에서/ 그리고 피어린 한반도의 산하 곳곳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시인 이산하는 제주 4·3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 되던 1987년 녹두서평에 장편 서사시 ‘한라산’(  한라산.hwp을 싣는다. 한라산을 읽지 않고 제주를 말하지 말라. 한의 땅, 통곡의 땅 제주는 폭동이 항쟁으로 바뀌고 조천읍 북촌리에 4·3 기념관이 들어섰지만 이산하가 절규한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악할 수 있나”는 여전히 그대로요, 숫자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희생자들의 이름만 너븐숭이 4·3 기념관 속에 갇혀 있다.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른가? 칼이나 총은 폭력의 도구다. 같은 칼이라도 주부가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쥐고 있다면 요리를 하는 도구지만 강도가 쥐고 휘두르면 폭력도구다. 같은 총이라도 경찰이 강도를 잡기위해 차고 있으면 국민을 보호하는 무기이지만 폭도가 쥐고 휘두르는 총은 살인도구다. 국가의 손에 들려진 총. 그 총은 적어도 ‘1947년 3월 1일부터 한국정쟁이 끝난 1954년 9월 21일까지는 폭력의 도구, 학살의 도구였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해병대, 제주 경찰, 국방경비대, 미합중국 육군, 미합중국 공군,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해 제주 도민의 10분의 1... 젖먹이 어린들까지 가리지 않고 무참하게 학살한 폭력의 도구였다.



아무리 감추고 덮으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 제주 4·3항쟁, 발발 73년이 지난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라고는 해마다 4월 3일이 되면 정부요인이 찾아와 기념식 하나로 끝이다. 노무현정부 이전만 하더라도 4·3은 빨갱이들이 저지른 폭동이요, 4·3사건이었다. 당시 정확한 희생자 수는 알 수 없지만 제주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만5천∼3만명에 달하는 주민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희생자 중에 토벌대에 의한 희생이 78.1%(1만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 12.6%(1천764명), 가해자 구분 불명 9%로, 전체희생자가운데 여성이 21.1%,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5.6% 61세 이상의 노인이 6.2%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어린아이들의 시신이 임시 생매장한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 너븐숭이 애기 돌무덤이다.


전국민이 헌법을 읽어 주권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앞당기자고 전국을 다니다 마지막으로 찾아 간 제주. “제주에 왔는데 4·3 기념관은 꼭 가봐야지요.”라는 일행의 간곡한 요구로 바쁜 일정을 쪼개 찾아간 곳. 우리국민들 중에 제주를 다녀가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정도지만 4·3위령지를 다녀간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지금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학여행지의 필수코스가 되어버린 제주. 수학여행을 다녀 온 학생들 붙잡고 4·3항쟁에 대해, 정방폭포나 4·3 너븐숭이 애기무덤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 43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고려시대 목호의 난과 함께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 중 하나이며, 여순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경산 코발트탄광 학살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민간인이 억울하게 학살되거나 희생된 대표적인 사건이 제주 4·3항쟁이다. 지금도 여순을 비롯한 참사를 ‘사건’이나 ‘폭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4·3항쟁도 노무현대통령 전까지는 제주폭동, 4·3반란사건으로 불리어 졌다. 제주도민의 10분의 1이나 되는 3만여명이 학살당한 죽음의 땅, 제주는 방언이 사라져 버렸을 정도로 외면당하며 살아왔던 제주는 학살의 땅, 통곡의 땅 분노의 땅이엇다. 다만 그 분노의 땅 통곡의 땅이 관광지로 바뀌고 기념관 하나 들어 섰을뿐....



너븐숭이 4·3위령지라는 안내표지석이 없으면 누가 이곳이 말도 배우기 전 젖먹이 애기들이 숨져간 애기들의 주검이 묻힌 곳이라고 누가 알 수 있을까? 등산길에 등산객이 만들어놓은 소원을 비는 돌무더기 같은 돌무지가 여기저기 곳곳에 보인다. 다르다면 그 돌무더기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애기들의 장난감이 마치 칭얼대는 애기들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몇 개가 던져저 있다. 엄마아빠기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20여기의 애기무덤 중에 8기는 북촌대학살 때 희생된 애기라는 말만 구전되어 올뿐 정확한 사실조차 알 수 없는 그것도 흙이 아닌 돌에 묻혀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목이 매이 게 한다. 누가 올려 놓았을까? 미쳐 엄마의 젖을 빨기도 전에 숨져 간 애기에게 누가 올려 놓았는지 모르지만 우유 몇 통과 동전 몇개가 찾는 이들을 가슴을 아리게 한다.


"미군은 즉시 철수 하라!", "망국 단독선거 절대반대!", "이승만 매국도당을 타도하자!", "조국통일 만세!", "투옥 중인 애국인사 석방하라!" 당시 제주도 3.1절 기념행사에서에서 나온 구호들이다.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실시하겠다던 3·8이북의 소군정하의 북한과 단독정부를 수립하겠다며 친일청산을 반대하고 소작제도를 강행하려는 이승만 정부 중 35년간 왜놈들의 종살이를 하던 국민들은 어느 쪽을 지지했을까? 여순항쟁, 4·3비극의 이면에는 단정수립과 남북분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과 이승만이 있다. 일본이나 미국을 비판하면 벌떼처럼 덤벼들의 그들을 비호하는 친일세력이 누군가? 서북청년단이 학살의 공범자들이... 나라의 주권을 쥐고 정의를 요리하고 있다. 이름도 짓기 전 애기들, 노약자, 임산부를 무차별 학살한 학살자들은 왜 아직도 혈맹이요 국부인가? 제주와 여순을 외면하고 정의를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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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븐숭이 애기무덤...
    안타까운 마음입니다.ㅠ.ㅠ

    잘 보고 가요

    2020.01.28 06: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때론 짐승보다 못한 종이 인간이기도 하죠.
    동물보다 더 인간이 자식을 버리는 경우가 많고
    어린 것들을 향한 살상은 인간에게나 있을 일이네요.ㅜㅜ

    2020.01.28 06: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가...라는 한계를 보여 준 사건이 제주항쟁이지요. 가해자들은 아직도 주인행세를 하면서 살고요.

      2020.01.28 19:51 신고 [ ADDR : EDIT/ DEL ]
  3. 제주도 가셔서 의미있는곳을 찾으셨군요,
    저는 아직 가 보지 못한곳인데 근처 길을 걸으면 반드시 찾아 보겠습니다.

    2020.01.28 06: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아직도 많은 분들이 억울한 희생때문에 고통받는 게 안타깝습니다. 진정한 치유의 시간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2020.01.28 08: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제주항쟁 여수항쟁은 재평가되어야 하고요. 가해자들에 대한 확인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친일인명사전처럼...

      2020.01.28 19:53 신고 [ ADDR : EDIT/ DEL ]
  5. 너븐숭이 애기무덤 아픈 역사가 담겨진 장소군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20.01.28 19: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눈물없이 볼 수 없는 현장입니다. 돌무덤에 아무렇게나 얹혀 있는 장난감을 보고 그만 왈칵 목이 매이더라고요.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습니다

      2020.01.28 19:54 신고 [ ADDR : EDIT/ DEL ]
  6. 너븐숭이 애기무덤을 보면서 안타까워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는 더이상 이런 비극이 없었으면 합니다.

    2020.01.28 23: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왜 안 그렇겠습니까? 인간이 얼마나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2020.01.29 03:36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19. 8. 14. 05:18


내일은 일본의 속박에서 벗어난지 74주년이 되는 광복절이다. 광복(光復)이란 '빛을 되찾았다'는 한자어에서 볼 수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