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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관련자료/교육칼럼

수능 끝난 학교, 교육도 끝인가?

by 참교육 2008.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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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시간이 지났는데 책가방도 없이 어슬렁 어슬렁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이 눈에 뜨인다. 겉모습을 보아 학생처럼 보이지만 두발도 교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다. 신발조차 운동화나 구두가 아닌 슬리퍼를 신고 두발까지 노랑색으로 염색한 학생도 있다. 교실에 들어가도 그런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수업시간이 시작됐지만 어느 반에도 수업을 하는 교실은 없다. 선생님도 보이지 않는 교실에는 여기저기 삼삼오오 몰려 잡담을 하거나 책상 위에 걸터앉아 TV를 건성으로 쳐다보는 학생도 있다.

<수능을 하루 앞둔 학교에서는 교실에 쌓아두었던 참고서며 교과서를 고물상에게 넘긴다.
 입시위주의 교육도 이렇게 시험이 끝나면 고생고생해서 얻은 지식도 쓸모없어 고물상에 넘기는 것은 아닌지...?>

수능이 끝난 고 3학생들은 말이 학생이지 학교의 치외법권자다. 수능 전까지만 해도 교문을 지키는 선도생들이 두발이며 복장단속에 등교시간까지 철저하게 통제하던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수능이 끝나기 바쁘게 참고서며 교과서는 폐휴지 처리상인이 수거해 가고 책가방도 없이 10시까지 등교했다가 특별계획이 없는 날은 잡담이나 나누다 출석만 확인하고 하교한다.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이들은 시내를 배회하거나 극장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졸업을 하는 2월까지는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공납금을 내야하고 수업도 하지 않는 고 3 담당 선생님의 급여는 과연 정당하게 지급되는 것일까?

수능 끝난 고 3학생들의 방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5일, 수학능력시험 이후 각 학교에서는 고3 학생들을 위한 특별강연, 유적지. 기업체 방문 등 현장 체험학습, 단체 영화관람 등 문화 활동, 논술강의, 진로상담 등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그 계획이 교육적인 배려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전시용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개점휴업의 고 3교실. 교실은 있어도 수업도 교육도 없다. 선생님들 중에는 부담 없이 대학생활의 경험담이라도 들려줄라치면 귀 기울여 들으려는 학생도 없다. 시험문제를 풀어주던 교실에 교육이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들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수능 이후 고교 3학년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지도·감독을 강화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교직원 회의 때마다 교장선생님이 정상수업 운운하지만 교과서까지 폐휴지장으로 던져버리고 빈손으로 등교한 학생들에게는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교장선생님이 더 잘 안다. 일부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아직도 남은 논술준비를 위해 일찌감치 논술학원으로 가고, 일부 학생들 중에는 운전 면허증이나 한자 급수시험 준비를 하기도 하지만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교육과정이 준비된 게 아니다.

한 시간도 아까운 청소년들에게 무려 3개월이라는 공백기간은 국가적인 낭비다. 수업도 하지 않으면서 10시까지 등교해 출석만 확인하고 돌아가거나 진로가 결정난 학생들에게 입시 설명회에 동원하는 비교육적인 행사를 반복하는 학교는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학기제를 3월이 아닌 1월로 바꾼다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는 일이지만 수능 우수학생 현수막 걸기에 바쁜 학교는 그런 시도를 할 리 없다. 우수 학생 몇 명 SKY 입학 시킨 게 일류학교가 되는 현실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배려하는 정책 따위는 관심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학교는 우수학생 몇몇을 일류대학에 입학이나 시키는 준비기관이 아니다. 수능을 위해 밤 10시까지 불을 밝히고 수능이 끝나기 바쁘게 ‘서울대 몇 명이 합격했느냐’로 한해 교육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교육은 중단해야 한다. 수능 전날 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이 귀밑 몇 Cm가 돼야 모범생이며 운동화 색깔까지 통제하던 교칙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그런 학교에 과연 교육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교육과정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특별 강연이며 유적지 방문’을 교육이라고 강변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겠다는 건 자가당착이다. 교실은 있어도 교육이 없는 학교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2007년 11월에 썼던 글인데 달라진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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