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9.08.22 05:09


휴일이 없으면 우리들의 삶의 질은 어떨까? 공휴일의 유래는 성서의 안식일에서 비롯된다. 구약성서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6일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다는 내용에서 유래한다. 10계명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고 한 이유도 ‘쉼’(샤바트)과 ‘축복’(바라크)과 ‘거룩’(카다쉬)이다. 하느님의 백성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쉼없이 일해야 했던 애굽의 노예들을 해방하신 이유도 ‘탐욕과 욕망에 제동을 걸고 억압과 착취를 중단해야 한다’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여성이나 어린이들이 16∼17시간씩 일을 해야 생존이 가능했던 시대가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시기다. 당시 시민계급이었던 부르주아 계급이 주창하던 '자유·평등·박애'의 슬로건은 혁명과정에서 변질 된다. 혁명과정에서 나타난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은 마침내 '자유'라는 것은 '소농 생산자나 소시민이 재산을 팔아넘길 자유에 지나지 않았으며, '박애'라는 것은 경쟁에 있어 간계(奸計)나 질시(嫉視)로 변하였다. 토마스 모아나 토마스 뮌쩌도 이러한 사회적 모순 속에서 등장한 양심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서로 모순(矛盾)하고 개개인은 욕망으로 말미암아 모험과 투기를 행한다. 사회전체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복을 타인의 불행 위에 구축하고 있다' 경제상의 혼란은 정치상의 불공정을 만들어 내고 국가의 임무는 단지 부유한 사람이 평온무사하게 재산을 점유하는 것을 보증하는데 있을 뿐이며 법률은 소수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제정되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 대해서만 유리한 것이었다.

혼인은 이미 일종의 상업적 투기의 대상으로 되었고... 여성은 상품과 마찬가지로 상업적 매매의 대상으로 되고 있고 혼인에는 진정한 애정은 없고 부부는 서로 속이면서 결합하기 때문에 간통과 음란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한다. 푸리에가 지적한 당시의 사회적인 모습이다.

그는 역사발전을 몽매시대, 야만시대, 가부장시대, 문명시대로 나누고 문명시대인 자본주의 사회의 죄악상을 폭로한다. 당시의 자본주의 즉 초기 즉 자본주의 모순이 '빈곤과 기아'를 체험하면서 모순을 바로 잡겠다는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어떤 사상가는 '세계에는 재화가 충만되어 있는데 가는 곳마다 빈곤이 널려있다'고 지적하고 죄악을 만들어 낸 원인이 '사유제도, 종교적 편견, 혼인제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모순을 고치기 위해 새로운 제도기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웬은 모순이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계급투쟁이나 폭력혁명을 반대하고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진리를 인식할 수 있으며 부자나 가난한 사람도 다같이 진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배자인 여왕이나 국회가 진리를 실현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의 순수한 이론은 역사의 도서관 속에 감금당하고 만다. 자본주의 초기 사회의 모순을 온 몸으로 체험한 순진한(?) 이론가의 사상은 그야말로 낭만적으로 끝나고 만다.

자본주의 모순에 항의해 이상적인 평등의 세계를 주장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임금노예제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도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법칙을 발견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주체세력으로 정착하지 못한다. 인간 이상의 세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미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이전에부터 시도되었다. 일찍이 유대인들은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희년제(禧年制)'를 실시한바 있다.

구약성서 레위기 제 10장에는 '제 50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적고 있다. 가나안 진입 50년이 돌아오는 해를 희년이라 이름하고 희년이 되면 잃었던 땅과 신분을 회복하는 해로 정하고 있다. 모든 거주자들에게 '드로르(자유 혹은 해방)'가 선포되면 빚 때문에 토지나 가옥을 팔았던 농민들은 그 기본 재산을 다시 돌려 받게 되며 옹색하게 되어 몸을 팔아 노예가 됐던 사람들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된다.



희년법의 토지 이해에 따르면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식객에 불과하다. 따라서 분배받은 땅은 아주 팔아 넘기지 못했고 되돌려 살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희년은 안식년(7년마다 돌아 옴)이 7회 반복 되는 해, 곧 49년째가 되는 해인데 동양식 계산법으로는 50년째가 되는 해이다.

이 드로르는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신 것을 생각하여 종들에게 자유를 주는 규정으로 지키게 했던 것이다. 일전기간마다 드로르가 선포되면 소유권이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노예들은 자유인이 되어 사람들은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하도록 하는 평등과 자유의 법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깊은 병에 걸려 있다. 사회정의가 실종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불평등이 뿌리내리고 있다.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이 만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이나 지위를 차지하면 정당화되는 풍토에 한탄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학벌사회, 일등 지상주의, 지역주의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 병든 사회를 구하겠다는 소리조차 불신으로 들려 사회정의를 실현할 가능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정신을 되살리는 새로운 사상없이는 '거대한 병’에 걸린 사회'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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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정의가 실종되어가는 ...
    안타깝습니다.ㅠ.ㅠ

    2019.08.22 05: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갑자기 우리 선조들은 휴일을 어쨌는지 궁금해 집니다..

    2019.08.22 06: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위정자들은 개인 이득만 취하려들고, 갈수록 혼탁해지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2019.08.22 13: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기독교2019.04.06 06:32



  "우리는 고귀한 5·18 정신을 밑거름으로 삼아 사회 각 부문에 민주주의를 꽃 피우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 힘써왔습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기독교 신자가 했다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 말의 주인공은 박근혜대통령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 그것도 오래 전도 아닌 2016년 5월 18일 전남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정부 대표로 참석해 한 말이다.

자유한국당이 누군가? 백주에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의 제 5공화국을 이어받은 정당이 자유한국당이 아닌가? 이런 정당이 5·18정신을 믿거름 삼겠다고...? 그가 믿거름 삼겠다는 정신이 전두환 노태우의 5·18인가 아니면 전두환 노태우에 저항한 5·18 민중항쟁 정신인가? 가해자가 5·18 민중항쟁정신을 이어받자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 광주학살을 정당화 하겠다는 뜻인가?

민주주의를 울권먹고 정의니 공화를 울궈먹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사는지는 몰라도 황교안자유한국당대표는 기독교 의 전도사다.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기독교 정신을 실현하겠다는 사람이 백주 대낮에 광주시민을 그것도 어린이, 노약자, 임산부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학살한 5·18광주항쟁을 고귀한 5·18 정신'이라니... 

가짜들이 판을 치고 있다. 가짜들이 진짜 노릇을 하는 세상이니 현혹되지 않고 제 갈길을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겁주고 심일조를 강요해 교인 수를 늘리고 학살자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기도 하는 사람들의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일까? 이 땅에 하늘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일까?    

2017년 세계 기독교인의 수는 무려 24억 7,956만명이다. 2000년 전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가 십자가의 형틀에 달려 죽은 후 12명의 제자가 이런 기적을 만들어 놓았다. 약 24억 8천명. 전세계 인구의 33%를 차지하는 기독교가 심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면 세계가 지금 이 지경이 됐을가? 혹 당신이 믿는 예수는 황교안같은 이중 인격자. 위선자는 아닐까?



당신이 믿는 하느님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 그 이웃이란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예수라는 분에 대한 호기심과 성경에 대한 관심으로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된다. 성경을 읽으면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에 대해 희망을 주는 '팔복(八福)'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구약의 지혜서나 잠언서를 읽고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에 감화돼 교회 문을 두드리지만 교회에 나가보면 성서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르다.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해야 할 교인들 중에는 성서의 가르침과 너무나 다르게 사는 사람이 많다. 부유한 교회는 문을 걸어 잠그고 국민의 의무인 세금조차 내지 않는다. 공유사상의 교리가 거꾸로 사유사상을 가르치고 이 땅에 천국을 만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주공간 어디에 천국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부와 권력이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면서 권력에 복종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교회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역사의 고비마다 교회는 오히려 가해자의 편에서 개인의 평안을 축복이라고 가르친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성도들끼리 사랑하라’고 축소하고 살인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교회 밖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매몰돼 체제를 바꾸자고 가르치는 교회는 한 군데도 없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라’는 가르침은 뱀처럼 지혜로움을 빼고 권력 앞에 복종하라는 순종만을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 역사상 ‘모든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불의한 권력에 맞서야 한다는 정의가 아니라 타협과 굴종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정의감을 거세당하고 부를 축적하고 권력 화되고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십자가에 높이 못박아놓고 세상 밖에서 죄를 짓고 교회에 와서 헌금 몇 푼 내고 죄사함을 받았다고 착각하게 하고 있다. 



성서는 역사와 마찬가지로 신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신관(神觀)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통적인 신관은 권력과 타협해온 변절의 기록으로 진짜 신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성서는 누구든지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성령께서 인도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성서만큼 어려운 책도 없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보자. 교인들에게 “예수님은 누군가?”라고 물으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하느님은 누군가?”라고 다시 물으면 “야훼”라고 한다. 실제로 신자들 중에는 3위 일체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3위 일체 신이 아니라 전통 신앙과 기독교가 뒤섞인 ’퓨전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예수님은 어디 계시는가?”라고 물으면 “하늘에 계신다”고 답한다. 하늘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인간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를 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도 있고 자기가 있는 어느 곳에나 하느님은 계신다’는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인간 세상에 계시는 하느님을 ‘마지막 날 공중에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면 영광중에 재림하신다’고 기록해 보통사람들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 어렵기는 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가 처녀로서 성령이 잉태해 예수님을 낳았다는 기록도 그렇다. 과학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기록은 ‘전능하신 하느님’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과학으로 신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처녀의 잉태는 건국신화에 나오는 설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예수님이 누군지, 하느님이 누군지 바로 알지 않고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약 4천7백만명의 한국인 중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인구는 2천497만명(53.1%)이나 된다. 불교 신자 1,072만을 빼고도 개신교 861만명과 천주교 514만명을 합하면 기독교 인구만 무려 1,375만명이다. 개신교도 수를 5백만명으로 잡아도 1년 교회재정(헌금액수)은 무려 2조 5천5백억원이다. 서울 강남 대형 S교회의 1년 예산이 270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미취학 아동과 ‘부끄럽다’는 등의 이유로 지원을 신청하지 않은 결식아동을 제외된 전국의 결식 아동 수만 30만5112명(정부의 급식비 지원 학생 수)이다. 

1년 예산 300억 원 규모의 서울 강남 대형교회 담임목사의 경우, 월급과 판공비를 합쳐 모두 연봉 5억 원이나 받으면서 세금까지 내지 않는 성직자가 믿는 하느님이 진짜 하느님일까? ‘이웃 사항하기는 네 몸처럼 하라’는 성경대로라면 그들의 이웃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들이 강조하는 지옥이란 확실하게 없거나, 아니면 그들이 믿는 신이 가짜임에 틀림없다. 왜 기독교를 일컬어 네티즌들은 ‘개독교’라 하는 지 그들만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하느님의 자비심에 비추어 ‘지옥이란 없다’고 믿지만 이들을 보면 지옥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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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믿음은 마음속에 있긴하지만...
    그래도...기도할때만 믿음있는 사람들 같아 안타까워요.ㅠ.ㅠ

    2019.04.06 07: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종교가 정치 세력화 되면 절대 안 됩니다.

    2019.04.06 08: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거짓을 일삼는 자들이 종교의 힘을 빌려 권력을 유지하려는 모습은 참으로 역겹습니다

    2019.04.06 15: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사는 이야기2018.12.25 06:3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표준 새 번역 마태복음 5장에 나온 산상보훈(山上寶訓) 혹은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도 하는 예수님이 가르친 인간의 가장 큰 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모습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2018년째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세상을 만든 주인(創造主)이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야훼, 예수, 성령이라는 3위일체(3三一切)이신 신()입니다 인간을 만든 신, 하느님이 하느님이 만든 사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해 온갖 죄를 짓는 모습을 보고 10가지 가르침 (十誡命)을 주셨지만 이 것 마저도 지키지 않고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견디지 못해 달래고 가르치지만 듣지 않습니다. 참다못한 예수님은 2018년 전 오늘,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의 모습은 화려하고 찬란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땅 베들레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은 33년간 앞의 글에서 보신 것처럼 산상수훈을 비롯해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과,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신약성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가르쳐 세상에 살면서 진 빚을 다 갚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내가 먹고 자고 입고 살아오면서 진 자연과 부모와 친구와 이웃에 진 빚(負債), 사랑의 빚을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천국에 갈 생각을 하지 마라고 가르칩니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고,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고,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고 가르칩니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며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며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희생 제물로 내 놓습니다. 그는 로마형벌 중 가장 잔인한 십자가형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지 사흘만에 33년의 짧은 인생을 마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도 부활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復活昇天)해 하늘로 올라가면서 다시 오시겠다(再臨)고 약속을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 사랑을 스스로 실천하며 다시 신의 자리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분은 다시 이 세상에 오시는 날(再臨), 인간에 대한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신이시기도 하지만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한 신이기도 합니다. 구약성서에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2018년 전 오늘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쳤지만 오히려 이 땅은 예수님의 사랑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미워하고 전쟁이 그치지 않는 땅, 자연을 파괴해 사람이 살 수 없는 이 땅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사랑의 예수님은 또 용서만 하실까요? 성탄절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예수님을 찬미할 것만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는 사랑. 사랑에 목말라 하는 이웃에게 따뜻하게 손잡아 주는 것, 사랑의 실천이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요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이랍니다. 꼭 교회나 성당이 아니더라도 내 이웃에 가난한자, 사랑에 목말라 하는 자에게 손길을 내미는 사랑의 실천이 예수님이 바라는 성탄 정신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한 가득한 기쁜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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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보고가요
    메리 크리스마스^^

    2018.12.25 07: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에수님 말씀대로 되어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은것 같습니다.
    기쁜 성탄절 되시기 바랍니다.

    2018.12.25 07: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예수의 사랑에 차별과 편견이 없기를 기대해 봅니다. 요즘 기독교 단체들의 이슬람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집회가 많아서인지 이런 바람이 문득 떠오릅니다. 행복한 성탄절 보내십시오.

    2018.12.25 11: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선생님 예수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숨은 순교자들이 많이 있어요. 정말 곰곰히 생각해볼 글 내용이였네요. 더욱더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는 잘 보내셨는지요? 은혜로운 밤으로 연결 되시길 바래요.

    2018.12.25 18: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기쁨 가득하고 행복한 성탄절 되시기를...

    2018.12.25 21: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기독교2018.07.03 06:2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세상은 이렇게 신에 의해 창조되고 신의 뜻에 의해 운행되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기독교의 세계다. 완전무결한 전지전능한 신 야훼와 예수 그리고 성령의 3위 일체 신이 지배하는 세계는 인간의 세계, 사후세계로 예수의 탄생 그리고 죽임을 당한 신, 재림, 심판 사후세계로 그려진게 기독교의 세계관이다.


<사진설명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수의라고 알려진 ‘토리노의 수의’를 찍은 사진의 음화(감광액을 발라 현상한 것). 길이 4.36m, 폭 1.2m의 아마 천으로 예수처럼 보이는 남성의 형상이 또렷하게 보인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를 두고 2000여년동안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해석의 차이로 인간의 세계는 사랑과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공포, 증오와 고통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예수는 신이라는 가톨릭과 선지자라는 이슬람교 그리고 가톨릭교도 종교개혁으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누가 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가보다 종파의 힘겨루기 국면을 맞고 있는듯 하다.

고등학교 재직시절의 얘기다. 특별실을 이동하다가 계단을 헛디뎌 발목을 삔 학생이 계단에 앉아 있기에 조심해서 다니지? 양호실로 가자면서 부축해 가는데 혼잣말처럼 이번 주는 주일예배에 안 나갔더니..." 한다. 어이가 없어 "! 하나님이 너를 밀어뜨려서 다쳤다는 말이냐? 하나님이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시는 분이니?” 했더니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서 다 아신다'는 것이다.

"설사 아무리 하느님이 전능하다고 하더라도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인데 어떻게 사랑하는 자녀를 넘어뜨리기야 하겠니? 너희 아버지나 어머니 같으면 네가 잘못했다고 그렇게 밀어뜨리겠니?" 했더니 선생님이 목사님보다 더 잘 알아요?” 하며 못 마땅해 한다. 언젠가 이 학생과 시간이 있어 마주 앉았는데 기독교 얘기가 또 나왔다.

명희(가명)? ‘하나님이 아니고 하느님이 어법상 맞지 않느냐?”

명희의 신비주의 종교관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문제를 제기를 했다.

선생님, 성경에는 하느님이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적혀 있는데요?”라고 했다.

그래,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 잘못할 수도 있지 않니? 개정판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표기돼 있고 또 희랍어를 번역한 영문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God로 기록되어 있는데...?”라고 했다.

목사님은 그게 아니라던데요?”

성경을 믿기보다 목사님의 설교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에게 장난기가 발동해 헌금이며 안식일 이야기를 꺼냈다.

헌금이란 정경일치시대에 국민들이 냈던 의무금이란다. 그래서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 교회를 운영했는데 사용한 거였단다. 오늘날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돼 세금을 따로 내는데 십일조를 낸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니?”

성경에 있는데요?"

"그럼 네가 알고 있는 십계명을 한번 외워 봐라고 했더니 글자한자도 틀리지 않고 외운다. 그래서 모세가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호렙산에서 내려 왔을 때 유대인들은 황금 송아지 숭배하고 있었지? 그 모습을 목격한 모세는 격분한 나머지 손에 들었던 십계명 돌판을 산 밑에 내던져 깨뜨리고 야훼에게 십계를 다시 받았던 거야. 다시 받은 십계명은 이렇단다."


아모리족, 가나안족, 헷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과 계약도 맺지말고, 혼인도 하지 말것이며, 그들의 제단을 헐고 석상을 깨뜨리고 목상을 찍어 버려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숭배를 하지말라

아빕월에 누룩 안 든 빵을 먹는 무교절을 지켜라.

처음난 것은 다 내게 바쳐라. (첫 새끼 수컷은 다 여호와의 것으로, 처음 난 나귀 새끼는 양을 대신 바치고 싫으면 목을 부러뜨려 죽여라. 맏아들은 제물을 대신 바쳐라. 아무도 빈손으로는 여호와의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안식일을 지켜라.

추수절과 초막절을 지켜라.

모든 남자는 한 해에 세 번씩 여호와 앞에 나타나라.

동물제물을 바칠 때 누룩 든 빵을 함께 바치지 말고, 과월절의 제물은 이튿날 아침까지 묵히지 말라.

농토에서 난 햇곡식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에게 바치고, 숫염소 새끼를 제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

어때? 네가 외우고 있는 십계명과 많이 다르지?”

그럴 리가 없는데...”하며 어리둥절해 한다.

성경에 있는 십계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단다.(성경의 장과 절의 구분은 편의에 따라 중세시대에 만든 것임)



1 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2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4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 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7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10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 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 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11 야훼께 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12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하지 못한다.

14 간음하지 못한다.

15 도둑질하지 못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어떤가? 십계명이 아니고 17계명이지? 이래도 성경의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다고 하겠니? 십계명이 하도 살벌하니 시대에 맞게 고친 것 아닌가? 초기 십계명은 나 외에 아무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부모의 효가 들어가야 대중에게 잘 먹히니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고치지 않았니?

시작한 김에 확실하게 쇄기를 박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일을 지키는 문제도 한 번 보자.

안식일의 근거가 되는 신명기 513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거룩하게 지키는 게 어떤 것인지 한 번 볼래?”

안식일에는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의 이웃에서 아무것도 빌리지 않는다.

성 밖에서 천 걸음 이상 다니지 않는다.

안식일에는 헛소리나 빈말을 하지 않는다.

안식일에는 즐거운 일(돈벌이)을 하려고 들판을 걸어 다니지 않는다.

미리 준비한 것 외에는 안식일에 먹지 않는다.

거류지 이외에서 물을 마시지 않는다.

(가축을) 주먹으로 때리려고 손을 들어 올리지 않는다.

안식일에는 봉한 그릇을 열지 않는다.

안식일에는 나가고 들어오는데 향수를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바윗돌이나 흙덩어리를 주워 내지 않는다.

안식일에는 남종과 여종과 고용인을 꾸짖지 않는다.

가축이 안식일에 새끼를 낳게 하지 않는다. 만일 (가축이 그 새끼를) 웅덩이나 구덩이에 떨어뜨려도 안식일에 그것을 잡아 올리지 않는다.

누구든지 안식을 속되게 하면 그는 죽을 것이다.(출애굽기 31, 14)

..........................

..........................



이런 안식일 규례를 다 지킬 수 있겠니?”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이 학생은 나와 마주치면 형식적인 인사만하고 피해 다녔다. 후에 다른 학생에게 예기 들으니 명희가 내 얘기를 목사님께 했더니 마귀들린 사람과 얘기하면 시험에 든다고 만나지 말라고 했단다. 졸지에 필자는 마귀들린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마 좋은 말로 마귀들린 사람이라고 했겠지만 사실은 마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은 신자들 수준만큼 보인다. 하느님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라 공포의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격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보다 더 깊고 넓은 아카페 사랑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과오나 실수도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라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목회자들이 신자들에게 지옥을 강조하고 불안감을 심어주는 것은 목회자로서 올곧은 자세가 아니다. 성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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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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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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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되면 내탓,못되거나 안 되면 하느님이나 조싱탓을 합니다 ㅎㅎ

    2018.07.03 07: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예리하신 지적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야훼(여호와)는 하느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민족신입니다!

    2018.07.03 09: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진짜로 마귀 들린 사람은 정작 따로 있는 듯싶군요. 반성해야 할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2018.07.03 15: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비온후 날씨가 무척 덥네요~
    건강 유의 하시고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2018.07.03 18: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사는 이야기2018.01.01 06:31


무술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올 한 해에도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사랑과 화평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계획하신 모든 일 뜻대로 이루시고 웃음꽃이 그치지 않는 한해가 되시기를 두 손 모아 비나이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17백만 주권자들이 만들어 놓은 촛불 민주주의 대한민국... 올해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모두가 주인 대접받는 국민주권 헌법을 만들어 소외되지 않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권자가 사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단군할아버지께서 이 땅에 나라를 세우신지 4351...

무술년 정월 초하룻날 아침....

 

영험하신 천지신명님께

엎드려 다시 간절히 비나이다.

 

부족한 게 없는 풍요의 땅, 대한민국에 언제부터인가 잡귀들이 나타나 알토란같은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순하디 순한 사람들을 사는 나라를 침범해 괴롭히며 못살게 굴고, 잡아가 노예로 삼고 못살게 굴었나이다.

 

몽고귀신, 중국귀신, 쪽바리귀신, 미국귀신, 프랑스귀신도 모자라 가짜 예수귀신, 부처귀신, 최순실귀신, 박근혜귀신까지 나타나 착하기만 한 우리 국민들의 주권을 빼앗아 못살게 굴었나이다. 용감한 우리 국민들은 이들을 잡아 가두어 다시는 못된 잡귀들이 주인 노릇 못하도록 잡아 감옥에 가두고 주권을 되찾았나이다.

 

그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선한 양이라며 순진한 국민들을 속이고 착취하며 못된 짓을 골라가며 했습니다. 정의를 말하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눈과 귀를 막고 말을 못하게 만들었나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네들이 주인이라며 혹은 외세로 혹은 유신귀신과 광주학살 귀신들이 한패거리가 되어 주권자들을 못살게 굴었나이다. 그들은 우리 것은 추한 것이고 후진 것이라며 못나고 못 배운 것은 운명이라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질렀나이다.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사람들, 바른 말을 하겠다는 사람들, 외세를 몰아내겠다는 사람들, 잡귀를 쫓아내겠다는 사람들을 종북이니 빨갱이로 몰고 혹은 간첩으로 몰아 혹은 감옥에 혹은 바보로 만들어 온갖 고초를 당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배신자들이 애국자가 되고 역적이 주인노릇을 하는... 그래서 권력에 혹은 돈에 혹은 사이비 종교에 혹은 언론에 맛을 들인 공모자들이 권력을 나눠 갖고 주인행세를 하며 살았습니다.

 

쪽발이들 귀신, 미국놈 귀신과 소련놈 귀신들이 이 땅을 동강내 동족이 원수가 되어 피땀흘려 번 돈을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살상무기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나이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이익을 위해 평화의 한반도를 분단의 땅, 증오의 땅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나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이 땅을 잿더미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으로 만들고 부자간에 형제간에 혹은 친척간에 원수가 되어 서로 죽이고 짓밟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극의 땅이 되었습니다.

 


분단 73....

착하기만 했던 우리네 조상님들이 알토란같은 자식들을 키우며 살던 축복받은 땅, 대한민국이 마피아 잡귀들이 득실거리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모자라 총잡이들이 나타나 민주주의를 작살내고 바른 말하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절하고도 잔인하게 죽이기도 했습니다.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고 비위를 맞추는 자가 애국자가 되고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든 땅이 되고 말았나이다.

 

남북이 분단된 것도 모자라 동서가 분단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 서울 사람, 촌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낮은 사람...으로 나누고 분열돼, 서로를 반목하고 미워하고 무시하고 업심여기며 살고 있나이다.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라도니 경상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혹은 구박당하고 멸시받고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친일귀신, 유신귀신, 군대귀신, 언론귀신, 종북귀신, 얼짱귀신, 몸짱귀신, 유행귀신, 종북귀신, 빨갱이 귀신, 박정희귀신, 전두환귀신, 최순실귀신, 박근혜귀신들이 득실거리는 이 땅을 제발 보통사람, 정직한 사람, 순진한 사람들도 소외되고 병든 사람도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땅이 되게 해 주소서.

 

무술년 올 한해는 이 땅 분단의 땅 한반도에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양심을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 바른 말하는 사람...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마음놓고 살아 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투기꾼이 판을 치고 병역을 기피한자, 탈세를 밥 먹듯이 하는 자, 혹은 부동산에 투기하며 큰소리치는 사람, 논문을 표절하고... 혹은 돈에, 권력에 눈이 뒤집혀 양심 같은 건 팽개치고 텔레비전에 얼굴만 나오면 유명인사가 되고.. 권력 앞에 충견이 되어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것을 출세라고 착각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세상을 그치게 하소서.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었던 시대에도 신문고가 있어 억울하면 호소할 곳이 있었는데, 대명천지 민주주의라는 나라에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며 가만 있어라는 말만 믿고 참고 기다리던 천사같은 우리의 아들딸 304명이 병이 되어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이, 부처님이 정말 있기는 있는 것입니까? 정말 부처님이 정말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인두겁을 쓴 늑대의 무리들을 잡아 가소서. 그들을 죽어 저 세상에 가서 지옥에 보내기 전에 이 땅에서 저들이 저지른 만큼만 고통받게 하소서. 하느님과 부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나쁜 짓 하는 놈들이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지요? 그 영험하다는 부처님, 전지전능하시다는 예수님은 왜 침묵만 하고 계시는 겁니까?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착하기만 한 사람,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 그들이 아들딸 키우며 사는 금수강산 한반도 이 땅, 분단의 사슬 걷어내고 제발 사악한 잡귀들은 잡아 가시어, 다시는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소서. 사람이 사람대접 받고 사는 세상이 되게 해 하소서, 돈이 아닌, 권력이 아닌, 생김새가 아닌, 보통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가난한 사람도,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장사를 하는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병든 사람도 사람취급 받고 사는 세상... 남녀가, 장애인이 차별이 아닌 차이라는 걸 알고 그들도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비나니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제발 무술년 새해에는 갑질하는 귀신거짓말 하는 귀신도둑질 하는 귀신병력 기피하는 귀신부동산 투기하는 귀신논문표절귀신학벌귀신약한 사람 못살게 하는 귀신, 철새 정치 귀신, 종북몰이 귀신, 찌라시 언론귀신, 예수귀신, 부처귀신...들이 개과천선하여 나라의 주인을 섬기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이 모든 악귀들이 다시는 이 한반도 평화의 땅에서 얼씬도 못하게 썩 물리치시고 이 땅에는 나라의 주인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 가난한 사람 눈에 눈물 흘리지 않는 세상, 어린이들, 청년들, 장애인들, 가정주부들, 노동자들, 노인들, 그들 모두 모두가 안녕한 한 해,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비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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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올해는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래 봅니다.

    2018.01.01 06: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2018년은 정말 정의로운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8.01.01 16: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참교육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울러 바라시는 바 모든 것들이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서민들이 마음 놓고 기를 펴는 원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8.01.01 17: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잘 보고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01.01 22: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17.08.19 07:08


착한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던 시절... 나는 그 때 주일만 잘 지키고 십일조만 잘 내면 천당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살다 잘못을 저지르면 교회에 나가서 잘못했다고 빌면 죄가 씻겨지고 또 잘못하면 속죄하면 용서받고 ...이렇게 사는게 기독교인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 그러니까 다른 종파는 가짜요, 우리 목사님이 하나님이 선택한 유일한 분이요, 다른 종교는 마귀요, 적그리스도라고 알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성경책을 펴 눈에 들어 오는 성경 귀절이 하나님이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알고 읽으며 살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과 만나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이중인격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그것은 마귀가 나를 시험하는 줄 알아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서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였으니 목사님이 가르쳐 주는 것은 모두 진리다고 믿지 않을 수 없었지요. 신학이라는 게 있고 해방식한이나 민중신학이라는 것도 있고 종교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한 참 후에나 알았습니다.

그 후 내가 다니는 교회 장로님이기도 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 감리고 권사였던 나를 제명처분시키고 학교에서도 직권면직당하면서 마취에서ㅗ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자가 성경대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 때 깨달았으니까요. 그 후 종교는 신학이라는 걸 알고 믿어야 한다는것, 그리고 종교나 돈, 권력과 손잡으면 부패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후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였습니다. 지금은 교회고 성당에도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글은 교회를 다니지 않던 시절 오마니 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     


참회할 줄 모르는 한국교회

평신도의 눈으로 본 기독교

07.07.27 09 : 25 김용택(kyongtt)

 

몇 년 전 퇴근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께 띠를 두른 교인들이 아래 구호와 함께 행인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예수 믿고 천당 가십시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그런데 홍보지를 받아 지나가려는 데 건장한 남자 한 분이 필자를 보는 순간 "! 선생님!"하고 아는 체를 했다. 필자도 몇 십 년 만에 만난 옛 교우(?)가 반가워 "아이구 오랜만입니다"라고 악수를 했다. 

10여 년 동안 같은 감리교에서 권사직을 맡아 일했던 분이다. 그런데 이분, 다음 말씀이 "선생님도 이제 교회 나와 천당 갈 준비나 하셔야지요?" 였다. 신호가 바뀌어 급히 인사를 하고 건너오기는 했지만 말을 어떻게 저렇게 할까 섭섭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당신도 이제 나이께나 먹었으니 죽을 준비나 하라는 뜻인가? 같은 말이라도 '' 다르고 '' 다른데 어떻게 60도 안 된 사람에게.' 

<기독교와의 맺은 묘한 인연>

필자와 기독교는 묘한 인연이 있다. 사립학교에 근무했는데, 학교설립자인 교장이 장로였고, 어쩌다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됐다. 주일학교 부장까지 맡아 일하던 필자는 그 뒤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되면서 몰라도 될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개인적인 존경심이 바뀌어 감정적인 앙금까지 남은 채 직권 면직 당한다. 

순진하게도 평소 존경하던 교장 선생님(장로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참교육의 열정을 이해해 주시고 오히려 함께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교장 선생님을 평소 존경해 왔다. 그러나 결국은 참교육이라는 갈림길에서 서로 각각의 길을 걷게 됐다. 그 후 기독교에 대한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그 때의 감정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만이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전혀 민족적이지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한 종파는 군수산업을 해 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여기선 그 얘긴 덮어 두자. 그 외에도 최근 사립학교법이며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이랜드의 파업사태를 보면서 기독교가 이렇게 막나가도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멀지 않은 지난 역사에 황사영의 백서사건을 보자. 1801년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1775-1801)이 신유박해를 피해 충북 제천의 한 토굴에 숨어 지내던 중 한국 천주교의 위기와 이 땅을 천주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청나라와 서구 열강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장문의 편지를 작성한다. 

신앙의 자유도 좋고 천주교선교도 좋다. 그러나 백서에는 '청이 조선 조정에 압력을 가하거나 조선을 아예 한 성으로 편입시켜 천주교를 공인하거나, 프랑스 등 서양의 천주교 국가들에게 호소하여 군사 수만과 군함으로 조선을 협박하거나 정복해서 천주의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담겨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위해 나라를 외국에 바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백성들이야 전장에서 죽든 말든 천주교만 전파된다면 나라고 역사고 필요 없다는 종교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립학교 부정과 비리를 두둔하기 위해 '사학법 개악을 막자'는 사람들을 마귀로 규정하는 기독교인들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부패한 사학 편에 서서 사학을 바로 세우자는 시민들을 마귀로 단정할 권리는 누구 한테 받은 것일가? 

그들 교회는 식민지시대에는 또 무슨 짓을 했는가? 19366월 감리교 총리사 양주삼 목사는 총독부에서 신사 참배에 응할 것을 밝히자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이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장로교도 이에 뒤질세라 19389월 제27차 총회(총회장:홍택기 목사)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신사가 종교가 아니요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 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勵行)하고 추히 국민정신 동원에 참가하여 비상 시국 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 誠 )을 다하기로 함." 

십계명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도 십계명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진정한 예수의 제자의 모습일까?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조선여성을 동원했을 때 고황경, 김활란, 이숙종, 조기홍 등 대표적인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은 대세순응론을 들고 나와 미나미 총독이 추진하는 어용단체에 협력해 동족을 내선일체, 황국신민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일제 때만 아니다. 광주시들이 전두환 부하들의 총칼에 무참히 난도질당할 때, 전두환을 위한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목사님들은 아직도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198086일 원한을 품고 죽어간 무고한 시민들의 피가 채 마르기 전, 롯데호텔에서 기독교 지도자라는 분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었다. 이 기도회에서 문만필 목사가 사회를 맡고 설교는 한경직 목사, 기도에 정진경 조향록 김지길 목사와 김인득 장로가 참여했다. 

이들이 하나님께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이 조찬기도회는 KBSMBC를 통해 현장 중계됐으며 다음날 두 번에 걸쳐 녹화 중계방송됐다. 

한경직 목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박정희 = 모세'라고 찬양했던 바로 그분이다. 양의 탈을 쓴 종교지도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교회지도층의 카멜레온 같은 삶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1972년에는 <대한기독교연합회> 등에서 유신헌법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보안법수호 국민대회를 열고, 2001부터 연이어 3년 동안 세 차례에 걸친 미군철수반대와 숭미집회를 열기도 했다. 

1년간 약 11300여만원의 십일조를 낸다는 한 목사의 경우 연간 약 113000만원의 소득있다는 말인데, 이 목사에게 국가는 세금 한 푼도 매기지 않고 있다.

 '종교법인법 제정추진 시민연대' 이드(52) 사무처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가 한국 뿐"이라며 "한국 종교계는 헌법 11조 국민평등권을 위배하고 있고 헌법 38조에 납세의 의무까지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2007711)

 종교와 자본, 종교와 권력이 손잡으면 어떻게 될까? 멀쩡한 사람도 권력의 맛을 보면 '맛이 간다'고들 한다. 역사적으로 불교가 권력화 됐던 지난날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사람이나 종교도 시행착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인이나 단체가 개인이나 국민 앞에 저지른 죄악을 회개할 줄 모르고서 어떻게 신자들을 천국으로 안내할 것이며 본인은 천국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2000년 전에 예수님은 말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 없이 천국은 없다.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은 회개를 통한 양심회복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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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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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교인 과세만큼은 물러서선 안됩니다
    기필코 과세해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국민 아닌가요?

    2017.08.19 08: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과세 반대하는 자들은 대한민국국민 자격이 없습니다.
      헌법 어느 조항에도 납세의 이무 면제 받는 국민은 없습니다.

      2017.08.19 20:07 신고 [ ADDR : EDIT/ DEL ]
  2. 회개하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죠~
    신의 오류가 아닌, 인간의 이기심.

    선생님 오랜만에 뵈어요^^

    2017.08.19 11: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종교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적이 거의 없었지요.
    특히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며 국가와 손잡은 것이 가장 컸습니다.
    우리의 호국불교가 이상한 형태로 뒤바뀐 것이지요, 현재의 기독교는.
    예수는 혁명가였는데 그들은 정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2017.08.19 15: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종교의 본질을 가르쳐야 하는데...
      신학은 없는 종교는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지요.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불교가 전래 되는 가정을 보면 너무 잘 알 수 있는데.. 학교는 종교교육 않고 있습니다.

      2017.08.19 20:10 신고 [ ADDR : EDIT/ DEL ]
  4. 또 뒤로 물러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과세...해야합니다.

    2017.08.19 15: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제 인생 블로그 인것 같네요
    글자 하나하나가 보석같습니다.
    자주방문하겠습니다

    2017.08.20 06: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덩치만 키우며 속죄할 줄 모르는 일부 종교는 사회악입니다. 이들을 견제할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합니다

    2017.08.20 16: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자본주의에서는 돈과 결합하면 모든 게 다 썩습니다. 변절한 종교, 타락한 종교는 마약입니다.

      2017.08.20 18:05 신고 [ ADDR : EDIT/ DEL ]

종교2017.04.20 06:58


친박 연대체인 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에 나와 막말하는 목사들을 보면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인지 의심이 든다. 불의의 편에서 범법자를 두둔하는 목사와 변호사 그리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뉴라이트계 기독교인을 보면 그들이 사랑의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가 전지전능하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할 예수를 믿는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일까? 2000여년이 지나도 풀이지 않는 수수께끼. 예수는 신인가, 인간인가


2000여년전 이스라엘 땅 나사렛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 예수. 전 인류역사를 통해 이 사람만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사람,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을까? 유럽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다 아니 예수의 역사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를 놓고 벌이는 전쟁의 역사. 교황권의 확대를 위해 벌이는 십자군전쟁을 비롯해 예수를 못박아 죽인 유대인 박해로 인한 광란의 역사가 바로 유럽의 역사다.



예수 그는 누군가? 인간인가? 아니면 신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2000여년을 두고도 풀리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예수는 신이다. 그것도 보통 신이 아닌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신이다. 예수를 신이 아닌 인간이라고 하는 순간 그는 바로 적그리스도가 되고 이단이 되고 사탄으로 낙인찍힌다. 의문조차도 입에 올리기 불경스러운 말, 예수는 인간인가? 신인가? 인간인가?


지구상에 사는 사람치고 예수를 만나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성서를 통해 혹은 선교를 통해 천주교로, 개신교로, 그리스정교로, 혹은 이슬람교로... 세계선교통계에 따르면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 총인구는 235452만여 명이며 개신교 인구 43956만여 명까지 합치면 70억 세계인구의 1/4~1/3을 차지하는 숫자다. 기독교 교파가 44000여 개 라는 통계 하나만 보더라도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예수가 신인가 사람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 즉 신관(紳觀)에 관한 문제다. 예수가 하나님이 된 것은 니케아공의회(BC 325)에서 정통신조로 공인된 후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추인되어 정식교의로 확정되었다. 삼위일체 교의에 따르면 하나님 안에는 성부 성자 성신의 3()가 존재한다. 예수는 성자다. 고로 예수는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예수=하느님이라는 등식은 여러 가지 이율배반이 따른다. 우선, 성서적으로 볼 때 부활하여 하늘로 올리어진 예수는 하느님과 합쳐져야(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16:19)거나, 예수가 감람산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십자가 죽음을 면케 해 달라’(22:42)고 애원한 구절 등은 설명할 길이 없다. 이들 구절은 예수와 하나님을 엄연히 구분 짓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 지도자들은 왜 예수를 신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나는 가끔 지옥이란 것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인면수심의 인간들... 사람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못된 짓을 골라가면서 하고도 가장 도덕적인 채 하는 철면피 목회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기독교인을 잡으면 십자가 형틀에 매달았던 시절,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게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가 신이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 아니었을까?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모든 종교가 다 그렇듯이 교조는 절대자이거나 완전한 존재다. 계급사회에서 미륵불이 필요했듯이 사람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서민과 노예들은 누군가 그들을 구해 줄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그래서 난생설화나 정상분만이 아닌 옆구리탄생 혹은 겨드랑이에 날개가 난 장수가 아니었을까? 사실, 예수가 하나님이면 어떻고, 하나님이 아니면 또 어떤가. 불교에서도 중생이 곧 부처라 하고, 천도교도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하지 않은가? 기독교에서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촛불정국에서 탄기국집회에 참석해 중세 유럽 기사의 방패를 본딴 피켓과 창, 투구를 쓴 십자군을 흉내 낸 퍼포먼스를 벌이며 '계엄령 선포가 답이다', '군대여 일어나라', ‘보톡스 안 맞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를 외치며 범법자를 비호하는 개신교 목회자를 보면 그들이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성직자라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예수가 신이요,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그런 행동이며 말을 내 뱉을 수 있겠는가? 자본의 정령당한 예수, 이데올로기가 된 기독교가 아니라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처럼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그런 기독교라면 신인들 어떻고 인간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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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2일 열린 첫 공판 이래 7년째 재판을 방청, 기록한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가  57명의 증언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엮은 800여쪽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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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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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예수는 인간이면서 신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예수를 신으로 믿는 자들이 그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것이지요.
    오늘도 건강하세요.

    2017.04.20 07: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기독교가 우리나리에 들어와
    이상하게 변질된 것 때문에 생기는
    불상사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뭐든 이상하게 왜곡시켜 버리는 데에는
    다들 선수들이니까요..^^

    2017.04.20 07: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자기가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는건 자유입니다만
    선동하는게 문제입니다
    본질을 왜곡합니다

    2017.04.20 08: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모든 기독교가 전부 그러지는 않을진대 이러한 몇몇 사람들이 교단 전체를 흐리고 있네요

    2017.04.20 13: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웃 사랑 하기를 내 몸처럼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기독교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7.04.20 18: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가 인간으로 잇을 때의 삶이지요.
    저는 인간의 아들로 온 예수를 믿습니다.
    천주교의 교리대로라면 지옥은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도, 그의 교리대로 살아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자를 벌하기 위해 있기도 합니다.

    2017.04.20 2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문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죠.
    종교를 타락시킨 것도, 신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것도 모두 인간입니다.

    2017.04.21 00: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미꾸라지 한 마리가...전체를 흐린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에고...ㅠ,ㅠ

    2017.04.21 05: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나는 요즈음 SBS 월화드라마 ‘무사 백동수’를 보고 있다. 이 프로가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그 시간대에 별로 볼게 없으니까 보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계속보고 있다.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잔인한 국적불명의 사극을 계속 볼 것인가를 몇 번인가 망서렸지만 끊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 시대상황이나 줄거리도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역사적인 고증을 얼마나 거친 예긴지, 왜 그렇게 잔인한 내용으로 그려지는지, 사실인지 허구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독재정권시절 백성들의 정치의식을 소거(消去)하기 위해 사극을 많이 방영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요즈음에도 텔레비전에는 사극이 유행이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계백>과 <광개토대왕>, <공주의 남자>를 비롯해 얼마 전 인기를 모았던 <선덕여왕>, <대조영>, <주몽>, <대왕 세종>, <천추태후> <태조왕건>,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등 사극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언젠가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던 중, 자기는 학생들에게 ‘사극을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단다. 이유인 즉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을 보면 역사의식은커녕 픽션(fiction)인지 논픽션(nonfiction)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사맹(史盲)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거기다 정체불명의 인물이며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인물의 등장이나 환경, 그리고 상업주의로 찌든 폭력으로 채워지는 잔인성 등 이런 드라마를 계속 보면 ‘애들 다 버리게 된다’는 이유다.

사극 중에는 ‘퓨전사극’이라고 해서 태왕사신기나 연개소문처럼 등장인물의 말투를 현대인처럼 만들어버린 사극이 유행하지만 내가 요즈음 보고 있는 ‘무사 백동수’의 경우 ‘사극을 꼭 이렇게 만들어야 할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용이야 어차피 작가의 상상력에 맡겨진다고 치더라도 왜 저토록 잔인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공중부양을 하고 화살을 손으로 잡는가 하면 맨손으로 칼날을 잡아채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만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 받은 역사교육 정도로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이해하고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은 사관(史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마치 기독교 신자에게 신관(神觀) 없이 신(神)만 가르쳐 놓으면 맹신주의 신앙인이 되듯, 사관이 없는 역사인식은 역사의식도 시민의식도 길러내지 못한다. 편년체니 기전체가 어떻고 사건중심의 원인, 경과, 결과를 필기해 주고 시험에 나올 확률이 높은 문제를 외우게 하는 역사교육으로 역사교육이 지향하는 목적 달성은커녕 사극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렵다.


사극 ‘백동수’의 줄거리를 보면 노론과 소론이 치열한 당파싸움을 벌이던 때인 영,정조 시대 얘기다. 사도세자의 오른팔인 백사광이 사도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노론과 병자호란 이후 청국이 조선의 반역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만든 흑사초롱의 음모로 참수를 당한다. 백사광의 아들인 백동수가 검객 김광택으로부터 무술을 배워 어지러운 정치로 피폐해진 민중들을 살린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교과서 시각에서 사극을 보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극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 계급사회를 정당화시킨다. 대부분의 사극들은 퇴행적인 대중문화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왕조사관으로 그려진다. 사극에서 그려지는 영웅은 오늘날 대통령을 비롯한 재벌, 고급관료 등 지배계급의 다른 얼굴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왕이나 귀족은 인기연예인이 되고 일반 백성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초라한 모습의 대역배우다.

드라마가 의도하는 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은 잘생기고 똑똑하고 유능해 ‘존경받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이러한 시각은 운명론적인 세계관으로 연결돼 ‘못생기고 무식한 인간’은 고생해도 싼‘ 그런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자신은 서민이면서 귀족을 응원하는.... 몸은 노예이면서 머리 속의 생각은 귀족으로 만드는 ’자발적 복종‘이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경험하게 한다.

둘째 오늘날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대부분의 사극은 상업주의로 뒤범벅이 된 폭력과 음란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돈이 되는 게 선(善)이 되는 사회에서 시청율이란 드라마의 생존을 위한 숨구멍이다. 사극이 언제부터 칼싸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지 그 잔인성에 몸서리가 쳐진다. 상업주의 방송에서 교훈적인 내용만으로 전개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요즈음 드라마 내용은 도가 지나치다.

왕을 둘러싸고 여인들의 사랑싸움이나 권력투쟁이 사극의 전부가 아니다. 왜 주인공은 항상 양반이어야 하는 왕조사관에 입각한 사극만 만들까? 물론 역사가 영웅사관이나 왕조사관 중심의 기록이었기 때문에 민중에 대한 기록의 빈약을 핑계 댈 수도 있다. 왜 동학혁명과 같이 민중의 저항이나 교과서에 ‘농민의 난’으로  표현한 민중사관에 입각한 민중의 역사를 사극으로 만들지 못하는가? 아직도 사극이 권력이 서민들에게 저항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써 먹던 낡은 이데올로기로 재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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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왜 우리나라는 철저한 역사고증에 의한 사극이 없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굳이 상업성을 하지 않아도 역사 자체가 얼마나 드라마틱한줄 저들은
    모르나 봅니다.

    2011.09.01 08: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드라마 작가와 제작진은 이렇게 말하지요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역사를 제대로 아는데 좀 먹는 자들입니다.

    2011.09.01 09:04 [ ADDR : EDIT/ DEL : REPLY ]
  4. 극적이어서 사람들이 혹해야 하니까요.
    픽션과 논픽션을 구별 못하니 문제지요.
    같은 역사를 만들었어도 사극마다 내용이
    다른 것도 혼란스럽지요.

    2011.09.01 09:13 [ ADDR : EDIT/ DEL : REPLY ]
  5. 2000년대이후부터인가 사극열풍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2011.09.01 09: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ㅎㅎ

    대한민국은 역사교과서 부터가 가짜죠.
    아직도 이마니시 류의 주장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이마니시 류의 제자가 이병도인데, 그 후계자들이 아직도 당당히 큰소리를 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죠

    2011.09.01 11:08 [ ADDR : EDIT/ DEL : REPLY ]
  7.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

    2011.09.01 12:59 [ ADDR : EDIT/ DEL : REPLY ]
  8. 퓨전 사극은 역사를 충분히 아는 사람들을 위한 오락거리인데...
    역사 교육이 부재인 상황에서 퓨전 사극만 범람을 하는 점이 참 아쉽죠..
    실제로는 이랬는데 드라마에서는 어느 부분이 창작되었구나..
    이 점을 충분히 알고 봐야 재미있을텐데...
    이젠 그냥 이야기로 생각하나 봅니다
    특히 영웅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건 상당히 문제가 많아요..
    덕분에 민중 중심의 '짝패'같은 이야기는 외면당하기도 합니다..

    2011.09.01 13: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꽃기린

    걱정스러운 부분이라 생각이 들어요.
    사맹의 우려....
    가끔 아이들과 보긴 하는데, 지나치게 잔인해서 봐야하나 고민할때 있어요.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1.09.01 14:15 [ ADDR : EDIT/ DEL : REPLY ]
  10. 장동규

    작가의 정치적 의도를 너무 강조한것으로 보입니다. 님의 말씀대로라면 사극작가는 모두 정치가나 정치가의 사주를 받은자들 뿐이겠군요.
    님의 말씀대로라면 모든 사극의 주제가 얼마 없는 동학이나 민중혁명을 주제로 해야만 하겠군요.
    오래되긴 했지만 장길산, 임걱정도 드라마로 반영되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열나 잔인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냥 님이 머리속이 온통 민중, 서민.. 뭐 이런것들이어서 드라마도 그리 보이는거겠죠.
    어떤 방식으로던 정치를 하실분으로 보입니다. 선생이면 전교조를 할것이고, 동대표, 시의원.. 뭐라도 하게 생겼네요... ㅎㅎ

    2011.09.01 14:28 [ ADDR : EDIT/ DEL : REPLY ]
  11. 역사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오해의 여지도 있고 특히 잔인한 부분에서는 여러 우려가 생기기도 하는 거 같아요. 드라마는 드라마이긴 한데..어떤 기분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11.09.01 16: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지나가다

    대부분 사람들이 드라마는 드라마 일뿐이라고 하죠. 하지만 알게모르게 잠식당한답니다.

    의학드라마의 경우...엉터리 의학드라마로 인해 잘못된 정보로 환자 건강에 해가 된다는 연구논문까지 무려 4,5편까지 나왔죠.

    사극도 마찬가지...근데 그리 따지다 보면 볼만한게 없을 듯.

    2011.09.01 16:20 [ ADDR : EDIT/ DEL : REPLY ]
  13. 왜 이런 글을 썼을까?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 드라마를 역사로 착각하게 가르쳤다면 그건 문학교육의 문제다. 삼국지연의도 정사와는 다르다. 그래서 조선조때는 읽지도 못하게했고.. 드라마때문에 역사교육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전에 아이들한테 어떤 교육을 했는지를 생각해볼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2011.09.02 07:54 [ ADDR : EDIT/ DEL : REPLY ]
  14. 음음

    맞는 말인데, 사극이 인식의 왜곡을 주는 거라는 얘기인데,

    문제는 사극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인식의 왜곡은 모든 영화나 드라마 장르가 다 줍니다.

    상당히 엄청난 힘을 발휘하죠.

    결론은 드라마 영화 보지 말라는 이야기 이군요.

    진짜 말 그대로 드라마나 영화 완전 끊으면 무언가 논리적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도 한동안 드라마 같은 거 정말 미친듯이 빠져있다가 너무 감정적이고 흥분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젠 드라마 영화 안 봅니다.

    생각이 논리적이 되었습니다.

    너무 드라마 영화에 길들여지면 금단현상이 옵니다.

    뭔가 더 감정적이 되어야 될 것 같고 뭐라도 좀 흥분되는 걸 봐야 될 것 같고 그런 느낌.

    드라마 영화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지만 인식의 왜곡도 같이 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전체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소비가 줄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드라마영화 시청과 논리력은 반비례합니다.

    한마디로 tv많이보면 무식해진다는 거죠.

    꼭 사극만 많이 본다고 무식해지진 않습니다.

    2011.09.02 10:32 [ ADDR : EDIT/ DEL : REPLY ]
  15. 최고의 사극

    風林火山

    2011.09.02 11:07 [ ADDR : EDIT/ DEL : REPLY ]
  16. 참..

    시쳥률이냐 vs 역사보존이냐

    2011.09.03 16:34 [ ADDR : EDIT/ DEL : REPLY ]
  17. ad

    그냥 쳐봐 기자색히야....

    2011.09.04 10:59 [ ADDR : EDIT/ DEL : REPLY ]
  18. 전 요즘 뿌리깊은 나무 재밋게 보고 있네요 ㅎ
    사극에서 역사를 배우는게 아닌 기본은 재미이고 거기에 덤으로 역사를 배우는 것으로 인식해야 되는데
    대부분이 반대로 알고 있는듯 하네요 ㅎㅎㅎ

    2011.11.06 15: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어떻게 지내십니까?

    2012.04.05 19:29 [ ADDR : EDIT/ DEL : REPLY ]
  20. 무슨?

    2012.05.08 20:59 [ ADDR : EDIT/ DEL : REPLY ]
  21.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2012.05.10 23:31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11.08.12 05:00



교회나 성당에서 가장 강조하는 게 신도들의 기도생활이다. 성직자들은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떤 기도라도 기도만 하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가르친다.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1-13)."
기도를 강조하며 신도들에게 가르치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하느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다 아신다고 했다. 그런데 왜 기도를 해야 들어주신다고 했을까? 그렇다며 모든 기도는 전능하신 하느님이 다 들어 주실까? 그러면 천만 기독교인들이 반세기 넘게 기도하는 통일은 왜 이루어주지 않을까? 천주교에서 벌이는 4대강 반대는 기도는 왜 신이 들은 척도 안할까?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아들이 일류대학에 붙게 해 달라는 기도, 남편의 불치의 병을 낫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는 과연 신이 들어주고 있는가?

기도란 무엇인가?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이라는 책을 저술한 루이 에블리‘기도란 사람이 신에게 무엇을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 라고 정의한다. 그는 ‘사람들이 잘못된 기도로 하느님을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폭군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기도란 ‘인간은 제안하고 하느님은 그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인간을 하느님의 노리개로 전락시키고, 하느님을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폭군으로 만든다.’고 설파하고 있다.


교회나 천주교에서 성직자들이 가르쳐주는 기도와 왜 루이 에블리의 해석이 다를까? 애블리는 ‘그리스찬의 기도란 주문을 외움으로서 위기가 사라진다는 마술은 기독교회 기도에는 없다.’고 단언한다. 산신령에게 드리는 기도는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기슭에서 산삼을 찾는 심마니들이 입산 직전에 드리는 기도문이다. 심마니의 경우 산삼을 발견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절실한 바램이다. 이 바램이 산신령의 게시로서 꿈을 통해서 응답할 때 심령과 심마니는 서로 융화되어 그 심마니의 응답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성서가 가르치는 기도란 ‘하느님의 뜻인 성서나 신의 계획이나 그분의 의지에 순종하려는 노력’이라고 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마니에게 축복이란 산신령에 의해서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언제나 자기 욕망이나 의지에 신령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일은 무속적(巫俗的)인 기도가 된다. 그러나 ‘자기 의지가 신의 의지를 따른다’는 것은 성서에서만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통해 역사 속에서, 고난을 당하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신도들이 하는 기도란 어떤 것일까? 그들은 기도를 ‘신의 의지에의 순종하는 것이라 보기 보다는 능력이나 권능, 불행이 없어지는 것, 물질의 번영, 성공 등,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내용들이다. 자본주의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말하면 바보취급 당하기 일쑤다. 직장 안에서 원칙을 말하거나 잘못을 비판 하는 사람은 직장사회에서 동료로 취급받지 못한다. 직장에서는 무조건 상사의 명령에 따르고 충실하게 복종하는 게 살아남는 길이다.

이런 경우 교회에 나가 우리 상사가 회개하고 바른 마을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기독교인의 도리일까? 살인강도가 들어와 식구들을 죽이고 있는데 앉아서 하느님께 강도를 물리쳐 달라고  기도하면 들어주실까? 대통령이 잘못된 정치로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데 하느님께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기도만 하면 하느님은 들어주실까?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교육의 위기를 맞고 교실이 무너지고 있는데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교육이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하느님 스스로 역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양을 탈을 쓴 목자는 시류에 따라 혹은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고 혹은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때로는 재벌의 목소리를 신의 목소리라고 거짓증언하기도 한다. 지혜로운 양은 누가 선한 목자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교회에서 앉아 입술로만 하는 기도, 실천 없는 기도는 주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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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도와 주술...다르지요.
    그래도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잘 보고가요

    2011.08.12 05: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녁노을님 말에 동의합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겠지요
    요즘은.. 하나님을 믿는것보다 목사를 많이 믿는거같아요.

    2011.08.12 07:21 [ ADDR : EDIT/ DEL : REPLY ]
  3. 비밀댓글입니다

    2011.08.12 07:52 [ ADDR : EDIT/ DEL : REPLY ]
    • 유입경로 이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휴대폰에 비번을 입력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바쁘실텐데 제까지 번거롭게 해드려 뭐라고 감사드려야할지.. 감사합니다.
      제주도에 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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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건지 몰라서요.. 비번으로 직접확인해 보십시오.
      제 실력이 이 정도입니다.
      죄송합니다.

      2011.08.12 10:33 신고 [ ADDR : EDIT/ DEL ]
  4. 좋은 글 마음에 담고 갑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죠.

    2011.08.12 08: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주술을 기도인냥
    교묘히 위장하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지요..

    2011.08.12 08:10 [ ADDR : EDIT/ DEL : REPLY ]
  6. 사람들이 성경도 제 좋은대로 해석하고. 기도도 욕심으로만
    구하면서 하나님 이름을 헛되게 하지요.
    정말 기도와 주술의 차이는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2011.08.12 08:27 [ ADDR : EDIT/ DEL : REPLY ]
  7. 강춘

    이 글이 웅변이었다면
    "옳소~!"라고 외치겠습니다 ^^*

    2011.08.12 08:31 [ ADDR : EDIT/ DEL : REPLY ]
  8. 기도는 하나님 뜻을 알아가는 과정이지요.

    2011.08.12 09:55 [ ADDR : EDIT/ DEL : REPLY ]
  9. 실천하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ㅡ^/
    잘보고 갑요

    2011.08.12 10: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좋은 글 잘읽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몇몇 성직자들의 잘못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존경받을만한 성직자도 분명 있구요. 종교를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세상만사 모두가 그렇듯이 실천과 행위가 반드시 수반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2011.08.12 10: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실천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천국은 모든 크리스찬들의 소망이지만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요.
    저 역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011.08.12 12:23 [ ADDR : EDIT/ DEL : REPLY ]
  12. 저는 말과 글 ,행동 모두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최선을 다하고 겸손히 기도를 하면
    그일이 나쁜일이 아니면 하느님이 다 이뤄주시지요.
    더불어 보너스도 많이 주십니다.
    남들이 저를 어떻게 평가 하느냐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됐습니다.
    하느님이 저와 동행하시며 돌봐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2011.08.12 15:47 [ ADDR : EDIT/ DEL : REPLY ]
  13. 신록둥이

    교육의 첫째는 가정교육이겠지요~
    저는 좋은 엄마인지 .....다시 자신을 되돌아 봅니다.

    2011.08.13 13:28 [ ADDR : EDIT/ DEL : REPLY ]
  14. 웹사이트 입니다 완전 참조 ! I 이 없습니다 에 I 친구 !

    2011.12.17 13:53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11.05.21 05:00



예수님의 동생이자 초대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교인들에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한 뜻은 지도자가 받을 더 큰 심판보다 지도자 때문에 발생할지도 모를 교회 공동체의 엄청난 피해를 더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도자를 잘못 만났거나 잘못 선택한 바람에 불안과 공포에 떨고, 끔찍한 비극을 겪어야 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물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에 취한 교회 지도자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교회가 병들어 가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교회는 늘어나는데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질까요?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성서에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태복음 5:3)’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목회자들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세요?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 십일조관행을 제정(祭政)이 분리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바꾸지 않고 있습니까? 세금은 세무서에서 따로 내는데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는 게 맞나요? 그리고 시민들이나 기업들은 세금을 다 내는데 왜 교회는 세금을 내지 않는지요? 교회가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이 조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양심적이지 못한 일이 아닌가요? 십일조 안내면 왜 하나님 재물을 훔치는 도둑이라고 강조하시나요?

성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는 하느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기도(祈禱)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야고보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예배는 강조하고 실천을 강조하지 않는지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절) 하지 않았나요?

교회는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제시대는 황국신민화에 앞장서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면서 왜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불의한 권력을 두둔하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왜 독재자를 두둔하고 살인자를 비호해야 할까요? 하느님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하셨던 분이 아닌가요?


정의보다 순종을 강요하는 게 하느님의 뜻인가요? 야훼를 강조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성령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하느님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건 상식입니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는 상식을 목회자는 왜 역사의 고비마다 신자들에게 정의보다 순종을 강요해 불의에 침묵하도록 가르쳐 왔습니까?

교회가 하느님보다 소중한가요?
교회란 무엇입니까? 초대교회를 생각해보세요.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교를 하다 잡히면 십자가에 달리는 희생을 당해야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순교를 각오하는 모임이 교회의 시작이 아니었던가요? 죽음의 결의를 다지는 장소, 실천의 각오를 다지는 장소가 교회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런 교회가 하느님이 바라는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인자하시고 순한 양 같으신 예수님이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 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장하는 사람들의 집으로 예수님의 꾸중을 듣지는 않을 런지요?

교회는 죄를 씻어주는 세탁소가 아닙니다.
누구나 회개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고요? 전두환처럼 수많은 광주시민을 죽여 놓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 속죄가 되는 걸까요? 진정한 회개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요나서 3장 8절)이라고 했습니다. ‘강포’란 히브리어로 ‘하마스’ 즉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의를 뜻하는 말로 ‘억압과 착취와 박해 등 인간에게 저질러지는 사회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회에서 행하던 일상적 폭력에서 떠나 정의와 공평의 삶을 살 때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황이 허락한 성직자들 외에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신부들이 전하는 것만 신자들은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교황의 생각이 그들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떨까요? 성서를 가르치는 신부님. 목사님. 그분들의 시각에 따라 강론이 달라지고 신자들의 신앙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교회에만 하느님이 없다’는 비판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그 것은 교인들과 교회지도자가 만든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을 겸허하지 받아들일 때 교회는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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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가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참교육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ㅎㅎ

    2011.05.21 06: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교회가 권력시녀가 되었을 때 망했습니다. 중세교회가 방증합니다.

    2011.05.21 08:08 [ ADDR : EDIT/ DEL : REPLY ]
  3. 소금이 맛을 잃으면 독이 됩니다~ 그보다 더무서운것은 없죠~
    즐거운휴일 편하게 보내십시요~

    2011.05.21 08:11 [ ADDR : EDIT/ DEL : REPLY ]
  4. 예수님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를 확 불에 태우고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쓸모가 없다는 이야길 왜 목사들은
    모르고 살까요? 말로만 하는 그들이 예수님 앞에서 어떤 말을 할까요?

    2011.05.21 08: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어우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

    2011.05.21 08:25 [ ADDR : EDIT/ DEL : REPLY ]
  6.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이 탐하고 있는 <족수=하나님의 영광> 같은 등식을 하루라도 빨리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목회자 부터 먼저 정신차려야 합니다.

    2011.05.21 08: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꽃기린

    교회에만 하느님이 없다???
    공감이 갑니다.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런지요?.......


    주말, 편안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2011.05.21 09:18 [ ADDR : EDIT/ DEL : REPLY ]
  8. 소금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고 기독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목사가 되고....

    2011.05.21 09: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100% 동감합니다. 참교육님 말씀처럼 교회는 죄를 씻어주는 세탁소도 아니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교회는 자꾸생겨나지만 더더욱 가고 싶지 않는곳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2011.05.21 10: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이담

    저도 동감합니다 ^^

    2011.05.23 11:14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11.01.05 07:15



며칠 전 저는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독자로부터 필자를 아끼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소중한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왜 대책없이 기독교를 비난하느냐고요.... 제가 000님의 진정성이 담긴 이-메일을 받고 어떤 형식으로라도 해명이랄까 변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제 글에 대한 필자로서의 책임 때문입니다.

제가 저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글을 적지 않게 썼던 게 사실입니다. 그것이 질문하신 분의 표현처럼 ‘적지 않은 영향력'으로 비쳐졌건 아니면 ’악의적인 비난‘으로 비쳐졌건 간에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무감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를 비판하는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기독교만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데올로기가 된 종교. 하느님의 뜻(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거부하고 부정한 권력(그 권력이 식민지 종주국이든, 주권을 도둑질한 쿠데타의 주역이든, 주인을 살해한 살인정권이든간에...)의 시녀가 된 종교를 싫어합니다. 무소유사상의 종교가 교의를 거부하고 현실과 손잡고 신자들의 눈을 감긴 종교는 모두가 싫습니다. 특히 예수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이비 교회지도자를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사진 :웃는 돼지의 쉼터에서>


제가 권력이 된 기독교(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하는 목회자를 보고난 후부터입니다. 국민의 주권을 빼앗은 독재자를 위해 또 광주시민을 죽인 살인자를 위해 ‘권력을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축복을 하는 목회자를 보고 저 사람들은 예수를 판 가롯 유다의 후신이거나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확신했습니다.

권력의 편에서 약자의 목을 조르는 양의 탈을 쓴 교회 지도자들. 하느님 대신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기독교 지도자들. 부자들의 편에서 가난한 자의 숨통을 조이는 권력가가 된 목사와 신부들. 좀 더 넓게는 공유사상의 예수를 사유사상으로 정당화시켜 천민자본주의와 손잡은 변절한 목회자들, 종교 지도자들... 그들이 예수님을 팔아 스스로 존경을 받는 기독교나 불교가 싫었기 때문에 침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서양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전쟁에서부터, 가까이는 중동전쟁에서 기독교 국가의 잔인성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이스라엘의 편에서 아랍을 악의 화신으로 규정하고 무기를 팔아먹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 그 미국에 편에 서서 사랑을 말하고 정의 운운하는 이명박류의 기독교인들... 우리 역사에도 황사영의 백서사건에서부터 식민지시대 민족을 배신한 부끄러운 기독교 역사며 불의한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건국초기의 변절한 기독교 지도자들....

타락한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정부가 무소유를 교의로 삼는 종교단체에 왜 그렇게 많은 특혜를 베풀고 면세까지 해 주겠습니까? 타락한 자본주의와 손잡고 체제이데올로기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종교는 기독교든 불교든 그것은 교의와 무관한 억압자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종교를 파트너로 삼고 시혜를 베풀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역사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말 천주교의 박해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현대에도 해방신학이 왜 권력의 미움을 받고 있는지... 민중 신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악행을 일삼는 종교지도자는 내세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들이 진짜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면 권력의 편에서 억압자가 되어 약자의 숨통을 조이겠습니까? 진짜 하느님이 살아 있고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믿는다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기를 자원할 리 있겠습니까?

‘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천국을 말하고 지옥을 논할 자격을 주었단 말인가? 권력의 시녀가 되어 약자의 숨통을 조이면서 어떻게 사랑을 말하고 정의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신도의 귀에도 하느님의 진노하신 목소리를 듣는데 권력의 맛을 알고 있는 사이비 목자에게는 하느님의 진노가 들리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내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

진부한 얘기지만 한 가지 예를 들고 제 변명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술 취한 운전자가 좌충우돌 계속 사람들을 치어 죽이고 있다면... 다친 사람을 구해주는 일과 술 취한 운전자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리는 일 중 어떤 일이 선차적일까요? 따뜻한 성당에 앉아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과 눈보라치는 거리에서 약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시위에 나서는 일 중 어떤 일이 먼저일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기도하기 전 하느님은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 지 다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순을 온몸으로 투쟁하지 않고 방안에서 기도만 하라고 가르치는 목자는 신자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목회자일까요? 자본이나 권력이 약자의 목을 조를 때 자본주의가 저질러 놓은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한 자선행사를 하는 일과 체제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에 나서는 일 중 어떤 일이 선차적일까요?

고백컨데 저는 기독교에 대해서 또 자본주의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논리적인 체계를 갖춰 주장할 만큼 배우지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손잡고 가난한자와 소외받은 자들의 숨통을 조이는 모습을 보고 침묵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침묵한느 것은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체제모순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나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예수님의 질책이 저를 침묵할 수 없게 만든 사연입니다.

* 어쩌다 지워져서 다시 올렸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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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력자와 결탁해서 시민들을 억압하고,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보다 우선이고
    돈으로 성도들을 평가하는 시대.흡사 중세 시대 타락한 기독교와 같지 않습니까?
    기독교인들은 눈물로 회개하고 반성하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닥을 기면서 고개를 조아리며
    죄인이라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종교는 종교를 실천할 때 종교인이지 그냥 있으면 종교가 아닌 사회단체일 뿐입니다.
    회개해야 할 죄인들이 잘 낫다고 떠드는 모습은 성경에서 제일 비판받았던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는 최악의 모습입니다.

    2011.01.05 07: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자칫 이런 글을 쓰면
      '당신은 얼마나 잘났어? 얼마나 신앙생활잘해!'
      그런 욕을 먹을 것 같아
      망서려지지만 종교지도자들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 같습니다.

      평범한 신자 중에는 정말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2011.01.06 06:26 신고 [ ADDR : EDIT/ DEL ]
  2. 어제도 읽고 오늘도 읽었습니다. <타락한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종교인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1.01.05 07:42 [ ADDR : EDIT/ DEL : REPLY ]
    • 제 수준이 그렇습니다.
      어쩌다보니 열심히 댓글 달아주신분들께
      답을 올리고 했느네...
      날아가버렸으민 죄송합니다. 성심원님!
      늘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고 삽니다.

      2011.01.06 06:27 신고 [ ADDR : EDIT/ DEL ]
  3. 그러게요. 권력과 종교가 어울리는건
    가르침에 어긋하는 것 같습니다.

    2011.01.05 07: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종교가 순수 신의 교의를 실천하고 전달만 해도
      세상이 훨씬 살기좋아질텐데.. 그게 아니더군요.

      종교가 부패한 권력의 편에서서
      순진한 국민들의 눈을 감기면 어떻게 되게습니까?
      찬 안타깝지요.

      2011.01.06 06:29 신고 [ ADDR : EDIT/ DEL ]
  4.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함임을 ...
    결국 스스로에게 답이 있는 게 종교인 듯...

    잘 보고가요

    2011.01.05 08: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잘못된 종교지도자들...
      그들은 보면 말로는 천당지옥하면서
      실제로 자신은 그런 걸 믿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면
      관주시민을 학살한 대통령에게 '권력은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게 없다'며 조찬기도나 하는..
      그런 짓거리를 하겠습니까?

      2011.01.06 06:32 신고 [ ADDR : EDIT/ DEL ]

종교2010.12.16 19:01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가 열흘이나 남았는데 교회는 물론 창원시청 광장에는 화려한 성탄 장식을 하고 성탄을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민족의 명절처럼 들뜨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왜 나라의 축제 날이 됐을까? 크리스마스를 명절처럼 들뜨는 사람 중에는 크리스마스의 뜻을 제대로 알기나 할까? 크리스마스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즐길 의미가 있는가? 해마다 온 누리를 떠들썩하게 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구세주 탄생이라는 의미의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Christmas,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

로마역사에서 보면 크리스트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B.C.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12월 25일일까?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된 데에는 많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12월 25일설이 하나님인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날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 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 
               
 
                 <사진 : 창원시청광장>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B.C. 4C 후반부터라고 한다. 어원으로서의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크리스마스’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예수가 세상에 태어났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순진하게 예수가 12월 25일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난센스다. 탄생한 날이 12월 25일이냐 아니냐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예수라는 분이 하느님이냐 아니냐?'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가 삼위일체신의 한 분으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전통신앙이다.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는 전통신학에서 주장하는 예수의 신성을 상당부분 부인하고 있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에 대한 논란은 수천년간의 논쟁거리였다. 《신약성서》기록 외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은 그렇게 흔치 않다. 성서가 아닌 역사에 기록된 예수는 로마시대 역사가 C. 타키투스에 의해 기록된 짧은 기록이 있다. 그가 예수에 대해 기록한 것은 당시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 때 그리스도 처형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연대기 15:44).

또 다른 기록은 로마의 저술가 수에토니우스는, 크레스투스의 꾐에 빠져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킨 이유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고 쓰고 있다.(《황제전》 클라우디우스 25:4), 그런데 이 크레스투스가 그리스도를 지칭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유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곱이 돌로 맞아죽은 형(刑)에 관하여 말하고 있고《유대고대지》유대교의 랍비 전승에는 예수가 마술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미혹시키고 배교(背敎)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탈무드》 산헤드린 43a)고 적혀 있을 정도다.

예수의 신성여부를 여기서 논쟁거리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해마다 성탄절을 보내면서 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제자들, 자녀들이 그대로 지키고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전통신학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그는 신(神)을 배반한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 세상에 나타났고(聖誕) '원수를 사랑하라', '너 이웃(여기서 이웃은 가까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게 정설이다)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 너와 오리를 같이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를 같이 가주고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 주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예수를 ‘빨갱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로 비유한 김정란 상지대 교수가 네티즌들의 호된 비판을 받은 일이 있지만 예수가 오늘날 사회주의 사상과 가깝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약뿐만 아니라 성서의 일관된 사상은 '공유사상'이며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던 생시몽이나 프리에는 기독교 사상인 공유사상을 실천하려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기독교의 경제관은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요 인간은 하느님의 것을 잠깐 빌려 쓸 뿐이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궁합에 맞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용가치보다 효용가치가 더 큰 제도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며 욕망의 충족이나 감각적인 기준 위에 세워 놓은 집이 자본주의다.


대표적인 예가 성탄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지은 집이 깔고 앉은 땅까지 개인의 소유로 인정하는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코드가 맞지 않다.

두 벌 옷을 가지지 말고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과 오늘날 부자가 된 교회와는 전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는 오늘날 그 화려한 교회에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올 수 없는 예수를 왔다고 성탄을 축하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기만이요 지극히 자본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세계 6,888,108,765(2010년 12월 14일 현재)명의 세계인구 중에 12억 명이 하루에 미화 1불로 연명하고 있고 1억 5000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으며 그 중 8,000만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게 오늘날 지구촌의 모습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인 미국은 무기를 팔아 부를 축적하고 이라크를 침공해 노약자와 임신부 그리고 어린이를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네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기독교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중 이 계명을 지키고 살아가는 교인이 얼마나 될까? 돈이라는 신(우상)을 섬기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크리스마스. 만약 예수가 이 땅에 온다면 뭐라고 할까?

사랑은 없고 상업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 회칠한 무덤 같은 인간들..."이라며 진노하지는 않을까? 수십만원인가 수백만원인가 들여 거대한 트리를 만들고 징글밸을 울리는 교회. 예수는 사랑은 없고 겉치레에 바쁜 교회를 좋아 하기나 할까? 먹고 마시고 타락하는 명절(?)이 되어가는 크리스마스. 구세주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날 하루만은 가족끼리 손잡고 불우이웃을 찾아가 따뜻한사랑을 나누는 하루를 만들면 어떨까? 올해는 구세주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는 뜻 깊은 크리스마스가 됐으면 좋겠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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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요즘의 개신교도들은 크리스마스의 참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의문입니다...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추운 날씨 건강 유의하십시오^^

    2010.12.17 07: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알 필요가 없겠지요.
      상당 수의 기독인들이
      예수를 닮지 않고 사는 모습만 봐도요.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기독교인들 비판할 자격이 있을지....

      2010.12.17 09:31 신고 [ ADDR : EDIT/ DEL ]
  2. 참으로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젊은이들이 그러는것은 철없다 그럴수 있지만 어른들가지 덩달아서...
    그 본연의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날씨가 매우 차갑습니다. 항상 건강 챙기세요~

    2010.12.17 08:30 [ ADDR : EDIT/ DEL : REPLY ]
    • 자본주의의 전형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가 교회에 있다면
      신자는 그 수가 10분의 일 수준이라도 될까요?

      없으니까 편하지요.
      어차피 지금 교회는 자본주의 와는 거리가 머니까요.

      2010.12.17 09:32 신고 [ ADDR : EDIT/ DEL ]
  3. 성탄절을 비롯해 국경일 왜 쉬는지 의미 없이 보냅니다.
    아무쪼록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살펴보는 계기를 가졌으면 좋겠네요.

    2010.12.17 08:47 [ ADDR : EDIT/ DEL : REPLY ]
    •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맨날 즐길 수 있지만
      그나마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라 하루쯤
      쌓인 피로를 푸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글쎄요.
      건강은 생각해야겠지요.

      2010.12.17 09:34 신고 [ ADDR : EDIT/ DEL ]
  4. 의미있는 날이길 바래 봅니다.
    너무 잘 사는 한국이 된 느낌입니다. 쩝...

    2010.12.17 09: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새로운 문화는
      스ㅡㅅ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망년회를 한다고
      고주망태가 건강 망치고 바가지 긁히고.. 하기보다
      가족과 함께 선행을 하는 날로 만들면....

      직장동료들 뿌리치고
      그게 그리 쉬우면....
      세상 모르는 소리라고 핀잔듣겠지요?

      2010.12.17 09:37 신고 [ ADDR : EDIT/ DEL ]
  5. 저는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정말 우리나라나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모르고 사는 거 같습니다...
    전도를 할 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를 깨치는 일을 먼저해야 할 거 같은데요...

    2010.12.17 10:33 [ ADDR : EDIT/ DEL : REPLY ]
    • 예수없는 교회.
      구세주 없는 성탄..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명절.
      가족들에게 따뜻한 정이 오가는 선물을 주고 받는 날이라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2010.12.17 13:24 신고 [ ADDR : EDIT/ DEL ]
  6. 어떤 개그맨이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지
    연인들이 아기를 만드는 날이 아니여~
    라고 일갈했다더군요.

    종교인 여부를 떠나서
    '성탄'의 의미를 새기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2010.12.17 12: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연인들 아기 만드는 날 아니라..ㅎㅎ
      재밋네요.

      의미도 없이 먹고 마시고 악을 쓰듯이 떠들고...

      남의 나라 문화가 들어와 우리국민들의 정서를 망쳐놓고 있습니다.

      2010.12.17 13:22 신고 [ ADDR : EDIT/ DEL ]
  7. 예수가 삼위일체신의 한 분으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전통신앙이다.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는 전통신학에서 주장하는.

    2012.01.12 22:16 [ ADDR : EDIT/ DEL : REPLY ]
  8.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2012.05.11 00:51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09.04.22 09:28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 가톨릭(천주교), 기독교, 그리스정교회, 이슬람교...는 같은 야훼라는 신을 믿는 다른 종파들이다. 가톨릭이 종교개혁 후 갈라진 개신교만 해도 넉넉잡아 50개 종파가 넘을 것이다. 기독교는 왜 이렇게 종파가 많을까? 그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예수라는 분이 하느님인가 아닌가에 따라 나눠진 것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하느님으로 믿는 기독교 신자들은 같은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

                                           <사진 자료 : 오마이뉴스에서>

뉴스위크지가 미 중앙정보국(CIA)과 세계 각국 통계자료를 기초로 해 작성한 종교분포를 보면 세계 인구 64억5300만명 중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교인은 21억3300만명이다. 아마 확실한 통계치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교도 2억 수천만명 중 ‘같은 하느님’은 믿는 신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가 만난 하느님의 경우의 예를 들어 보자.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나의 신관(神觀)에 따라 하느님은 같은 분이 아니었다. 다른 신자들은 어떨까?

친구 따라 간 교회. 그 교회가 천주굔지, 그리스도굔지 또 그리스도교라면 예수교 장로교인지 기독교장로교인지, 감리굔지, 제7일 안식교인지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리도 없었다. 목사님을 통해 가끔씩 들은 하느님은 어떨 때는 ‘야훼하느님’이라 했다가 어떨 때는 ‘성자(예수) 하느님‘이라 했다가 어떨 때는 ’성령 하느님‘이라고 표현해 어떤 분인 진짜 하느님인지 알 리가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이 교회에서 처음 만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고 우주를 창조하신 무서운 하느님이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늘이나 땅이나 땅 속 어디에 있는 사람의 마음 속 생각까지 샅샅이 알고 계시는 분이라고 알았다. 그런데 궁금한 건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면 왜 가난하고 병들고 억울한 사람들을 그냥 두실까?‘ 또 ’어떤 사람들은 귀하게 또 어떤 사람들은 천하고 힘들게 살아가도록 버려두실까?’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들긴 했지만 그런 것은 다 ’하느님의 뜻‘이니 사람이 간여할 일이 아니라는 성경 말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중학생 수준의 필자의 신관(神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늘날 수십년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치고 똑같은 신관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떤 신자는 ‘권위의 하느님을, 또 어떤 분은 공포의 하느님을, 또 어떤 신자는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 알고 믿고 있다. 3위 일체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신자는 몇이나 될까? 사실 신자들 중에는 어떤 분은 야훼를, 어떤 분은 예수를 하느님이라 믿는다. 같은 교회에 나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전통적인 다신교수준인가 하면 신자들 중에는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에 근거한 신자들도 없지 않다.

하느님의 모습뿐만 아니다. 신자들의 기도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신자는 하느님을 ‘우는 아이가 젖 준다’는 우리 속담처럼 내가 필요한 것을 부지런히 빌기만(祈福)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기복적인 혹은 구복적인 신앙을 가지 신자들은 신앙의 대상만 바뀌었지 천지신명에게 빌던 전통 신앙과 전혀 다른 게 없다. 입시철이 되면 수능시험에 ‘내 아들, 딸이 합격하게 해 달라(다른 집 아들딸이야 떨어지든 말든...)고 기도하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자녀들의 취업을 위해 철야기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어떤 분(神觀)인가에 따라 종교의 본질에 얼마나 접근했는지의 여부가 결정된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요한복음 강의에서 "구약 성경을 믿는 것은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말해, 기독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일이 있다. 나는 이 논쟁에 말려들 수준의 성서학자도 아니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러나 평신도의 눈에 비친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은 전혀 다른 분이다. 복수의 하느님. 형식과 권위의 하느님인가 아니면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인가에 따라 ‘하느님의 뜻(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이 달라진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토마스 뮌쯔가 승리하고 마르틴 루터가 죽임을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날 기독교가 살아남은 이유는 신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가 아닐까?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코드가 맞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변질했든지 아니면 기독교가 변질해야 공존이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공존은 기독교의 변질 즉 정교분리가 아니라 정교공존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밝혔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이러한 명제는 오늘날 부자교회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예수의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은 ‘내가 만난 성직자’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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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구약은 과거 이스라엘 인민들의 동화책이랄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인데, 그것에 목을 메다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2009.04.22 13: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반갑습니다.
      제가 짧은 성서 지식으로 용감하게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유는 오늘날 교회가 사회 모순의 한 축이 되고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9.04.22 17:17 신고 [ ADDR : EDIT/ DEL ]
  2. 무슬림도 추가해야 합니다. 야훼가 아랍어로 알라일 뿐입니다. 아멘이 아랍어로 이슬람이죠. 알라를 우리말로 옮기면 하느님이 됩니다.

    2009.04.25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3. 오늘날 수십년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치고 똑같은 신관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떤 신자는 ‘권위의 하느님을.

    2011.12.31 23:13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09.03.23 07:55



모든 역사는 진실만 기록한 것일까?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아직까지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5·16을 혁명이라고 할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서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다. 누가 왜? 무엇을 ? 어떤 목적에서 기록한 것인가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광해군은 대단히 나쁜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훌륭한 임금으로 기록 된다면 인조의 반정은 쿠데타가 되기 때문에 광해군은 나쁜 임금으로 기록되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에서 중립외교를 통해 국가의 안위를 지킨 탁월한 외교적 안목을 가진 지도자이지만 사가들은 그를 좋게 기록하지 않고 있다.

 성서의 예를 들어 보자. 성서를 무오(無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적인 표현으로 기록하거나 은어(隱語)로 기록되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뜻이 다를 수도 있다.  예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최초로 기록으로 남긴 책은 마가 복음이다. 마가와 마태는 둘 다 예수의 제자가 아니면서 그런 기록을 했다는 것은 구전된 자료를 모아 기록했다는 뜻이다. 최초로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사람은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알려진 마가다.

마가는 네로 황제의 박해가 최고조에 달했던 무렵인 A.D.65-70년경에 마가복음을 기록했다. 예수 사후 6~70년이 지난 뒤 직접 듣지도 않은 예수의 행적을 구전을 모아 기록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글자의 일 점 일 획도... '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액면대로 믿어도 좋을까? 하긴 '전능'에 갖다 붙이면 무오(無誤)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마가 뒤에 기록된 마태와 누가와 요한이 기록한 다른 복음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6장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가 마태복음 5장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로 기록되어 있어 마태복음에는 '마음이..'라는 없던 글자가 들어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기록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후세 사람들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하나는 마태는 유대인 중심으로 기술하였고, 누가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기술하였는데 마태는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가난이 곧 행복이고 청빈의 기쁨과 무소유의 자유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반면 누가는 가난한 자가 행복한 자라는 예수의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마태가 기록할 당시의 부자들에게 선교를 위해 권력자니 부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음이..'라는 글자를 삽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성서가 아니라도 왕의 입장에서 쓴 역사와 서민의 입장에서 쓴 역사는 다르게 기록될 수밖에 없다. 굶주린 민중이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관아를 습격해 관청의 창고에 썩어 가는 곡식을 나누어 먹은 사건을 왕의 입장에서 보면 '민란'이 되고 서민의 입장에서는 '봉기'로 기록될  것이다. 관(觀) 없이 기록을 남길 이유도 없지만 관(觀) 없이는 올바른 해석도 불가능하다. 역사나 성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서가에 있는 소설조차도 작자의 세계관에 따라 등장인물이나 줄거리가 같을 수가 없다. 시가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만나는 미디어는 어떤가? 객관적 보도, 객관적인 진실이 담긴 미디어가 가능할까? 설사 사건보도야 객관적이라고 하더라도 해설이나 논설이란 글쓴이의 주관이나 가치가 담기지 않을 수 없다. 가치가 담기지 않은 논설이란 없다. 역사나 성서가 이데올로기가 담긴다면 그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신문이나 방송을 비롯한 메스 미디어들이 이해관계나 가치관에 따라 객관적인 진실이 보도되지 않는다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80년 광주민중들이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이 저지른 폭거에 저항한 민중을 '폭도'로 매도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권력의 하수인이 된 언론인, 곡학아세하는 지식인. 학자, 권력의 당근에 길들여진 종교 지도자, 권력에 혼을 판 예술인. 이들은 시대를 초월해 변절하고 권력의 편에 서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이들의 변절에 의해 마취 당한 민중은 가해자의 편에서 수탈과 억압을 당해왔다. 현재도 변절한 학자와 언론인과 종교인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거대한 음모는 약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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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2008.12.07 22:56



교회를 나가보면 목회자들이 가장 강조하는 게 기도다. 그런데 참 이해 못할 일이 있다. 성서를 보면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8)라고 했는데 왜 자꾸 기도를 하라는 걸까? 다른 성경을 보면 이런 구절도 나온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9-13) 마가복음서에는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구하기 전에 다 채워준다고 했는데 누가 복음서에는 구해야 주신다고 했다.

기도란 무엇인가? 목회자들은 기도를 많이 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기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바르게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다. 사전을 보면 기도(祈禱)란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떤 절대적 존재에게 빎.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정의해 놓고 있다. 기독자라면 기도를 할 줄 알아야한다. 그렇다면 신에게 무엇을 빌 것인가? ‘내가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앉아서 하루 종일 앉아 빌어도 밥을 차려다 줄 그런 신은 없다. 우리남편이 출세하고 내 아들이 유명대학에 합격하고.. 이런 기도를 들어 줄 신도 없다.

기독교나 불교의 교의는 샤머니즘에서 하는 ‘가정의 평안이나 개인의 부귀영화를 주문’하는 것을 기도라 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기도라면 해탈을 위한 자기희생이요, 중생을 위한 보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라고 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도는 구복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자기 헌신이며 구체적인 봉사의 실천이 아닐까? 예수가 자신을 제물로 내놓아 속죄의 제물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내 아들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라면 이웃의 아들은 낙방해도 좋다는 건 기도가 아니라 주문(呪文)이다.  

내 아들이 합격하면 누군가 떨어져야 하고 내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는 상대론적 시각이 없이 ‘내게 이익만 된다면...’ ‘무조건 복을 주십시오’라는 기도란 주문에 가깝다. 지도자의 책임이 크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게다. 나와 가정의 행복을 비는 것이 기도라고 아는 신자들이 사는 공동체는 진정한 신앙공동체가 아니다. 나의 희생으로 상대방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끝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나 보시를 실천해 중생구제를 하겠다는 부처의 마음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나의 이익이나 추구하는 좀스런 기도를 하고 있다면 그런 기도를 들어줄 신이 있을까?
1987년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 비명에 갔다. 젊은이를 끌어다 수배된 친구의 행적을 대라며 온갖고문을 하다 죽자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해 온국민이 분노했을 때다. 60항쟁의 발단이 되기도 했던 당시 감리교의 한 속회모임에서 필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박종철의 죽음에 부쳐

주여 !
우리는 방관자들입니다.
21살의 꽃다운 젊음을 죽인 공모자들입니다.

그가 욕조에서 숨막혀 할 때
우리의 손들이 그의 목을 졸랐고
우리 눈들이 외면하고 우리 입들이 조소하였나이다.

그렇게도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고
정의를 외치던 작은 예수가
주님의 가신 길을 십자가를 지고 따라갔습니다.

주님 !
몇 명의 이삭이 더 있어야 이 땅이 하늘나라가 되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젊음이 피를 흘리고 질식하고, 피멍이 들어야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박종철 열사와 역사 앞에
더 이상의 방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침묵의 미덕을 운운할 면목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가슴을 치고 통회할 위선을 벗어야겠습니다.
불의의 들러리가 될 수 없습니다.
위선으로 화장하고 위선자의 가면을 쓰고 있을 면목이 없습니다.

주여 !
우린 이제 밥값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나이 값을 해야 할 때도 됐습니다.
피 값을 외면할 면목이 없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아픔이, 그 가족의 가슴에 맺힌 한을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아 ! 그는 갔습니다. 우리의 불의를 꾸짖기 위해 갔습니다.

찬란한 승리자가 되어 고통도 죽음도 불의도 이기고
삼천리 방방곡곡에 부활의 씨앗이 되기 위하여 갔습니다.

주님 !
이제 그의 영혼을 쉬게 하시고
그가 못 다한 일들을 감당하는 도구로 저희들을 써 주십시오.


이 땅의 온갖 불의와 거짓과 위선의 껍질을 벗게 해주시고
이일을 계기로 주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살아 있음이 그의 죽음을 욕되지 않게 해 주소서 !
예수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 멘-

 생선장수에게는 생선냄새가 나야 하듯 예수를 믿으면 예수냄새가 나야 한다. 날아갈듯한 옷을 입고 성당에 앉아 짜여진 형식에 맞춰 가슴을 치고 울부짖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다. 최루탄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고 죄없는 젊은이가 고문으로 혹은 녹화사업으로 죽어 가고 있을 때 가장 확실한 기도는 불의한 자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이다. 총을 들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있는데 성당에서 거룩하게 ‘내탓이오, 내탓이오‘하고 가슴을 치는게 어떻게 기도라고 할 수 있는가? 나의 기도가 이루어진 셈일까? 필자는 이 기도 후 구속수배를 당하면서 해직의 길을 걸어야 했다.

 신은 어떤 존재일 때 찬미의 대상이 되는가? 십자가의 길이나 외우고 묵주기도 몇 단을 바치면 하느님이 기뻐하실까? 울부짖고 매달리는 사람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는 신은 찬미의 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이미 구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어야 옳다. 신앙은 신자의 신앙수준에 따라 신의 수준도 달라진다. 이름은 같은 하는님이지만 신자들은 각각 다른 신을 섬긴다면 이는 목자의 책임이다. 어떤 이는 구복 신을, 어떤 이는 공포의 신을, 어떤 이는 사랑의 신을, 어떤 이는 자비의 신을 섬기면서 같은 천국에 가기를 바랄 수 있을까? 어떤 신을 섬기든, 기도는 주문(呪文)이 아니고 사랑의 실천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은 스스로 돕는 이를 돕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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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도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일 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신에게 무엇을 해달라,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는 데만 익숙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신을 향해 너무 큰소리로 기도하기 때문에, 정작 신이 말하는 목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2008.12.08 11: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신도들을 가만히 보면 천태만상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교회에 나오지만 신은 가각 다른 모습...
      그 책임이 목회자들에게 있는데 말입니다.

      2008.12.08 22:29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09.02.24 01:40 [ ADDR : EDIT/ DEL : REPLY ]
  3. 당신의 웹사이트은 대단해요! 내가 블로그를 체크 아웃하는 동안 일반적으로, 나는 단지에도 불구하고이 기​​회에 나는 내가 아주 좋은 정보로 구성된 현재 블로그 사이트를받은 동안 솔직히 놀랐다되었고, 베짱이 이상 발생. 와 함께 환호 애호가를 사용하면,이 특정 전기 방식을 가지고 다니십시오.

    2011.08.14 15:25 [ ADDR : EDIT/ DEL : REPLY ]
  4. 는 끝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나 보시를 실천해 중생구제를 하겠다는 부처의 마음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나의 .

    2011.12.23 23:38 [ ADDR : EDIT/ DEL : REPLY ]
  5. 그들이 준비되기 전에 잘 퇴직에 직면 사람의 증가에 금욕 패키지 및 이중화의 도래와 함께. 그들은 기업이 자신의 시작을 위해 돈과 에너지와 열정을 가지고. 문제는, 그의 새로운 사업을 실행하는 경험의 주식이없는 사람보다 더 적은 없습니다.

    2012.01.16 17:13 [ ADDR : EDIT/ DEL : REPLY ]
  6. 마케팅은 소비자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도록 설계 프로그래밍, 홍보, 유통 및 가격, 제품 및 서비스에 경제 활동을 의미합니다.

    2012.08.27 16:30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08.11.30 18:24


- 지난 해 성탄절을 보내면서 느꼈던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예수는 없고 크리스마스 트리만 있는 도시, 교회가 아니라 성대하지 못해도 예수의 사랑이 어려운 서민들의 마음에도 포근하게 내리는 그런 성탄절이 되기를 기우너해 봅니다 -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교회마다 성탄을 알리는 화려한 추리를 장식하고 성탄을 맞았다.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다 한 사랑을 준비하느라고 성탄 전날부터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해마다 온 누리를 떠들썩하게 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진 자료 : 한겨레신문>

크리스도(구세주 찬생이라는 의미의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Christmas,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 로마역사에서 보면 크리스트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B.C.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12월 25일일까?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된 데에는 많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12월 25일설은 하나님인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날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 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B.C. 4C 후반부터라고 한다. 어원으로서의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크리스마스’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예수가 세상에 태어났다는데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순진하게 예수가 12월 25일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난센스다. 탄생한 날이 12월25일이냐 아니냐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예수라는 분이 하나님이냐 아니냐'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가 삼위일체신의 한 분으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전통신앙이다.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는 전통신앙에서 주장하는 예수의 신성을 상당부분 부인하고 있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에 대한 논란은 수천년간의 논쟁거리였다. 《신약성서》기록 외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은 그렇게 흔치 않다. 성서가 아닌 역사에 기록된 예수는 로마시대 역사가 C. 타키투스에 의해 기록된 짧은 기록이 있다. 그가 예수에 대해 기록한 것은 당시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 때 그리스도 처형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연대기 15:44).

또 다른 기록은 로마의 저술가 수에토니우스는, 크레스투스의 꾐에 빠져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킨 이유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고 쓰고 있다.(《황제전》 클라우디우스 25:4), 그런데 이 크레스투스가 그리스도를 지칭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유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곱이 돌로 맞아죽은 형(刑)에 관하여 말하고 있고《유대고대지》유대교의 라비 전승에는 예수가 마술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미혹시키고 배교(背敎)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탈무드》 산헤드린 43a)고 적혀 있을 정도다.

예수의 신성여부를 여기서 논쟁거리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해마다 성탄절을 보내면서 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제자들, 자녀들이 기대로 지키고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전통신학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그는 자신(神)을 배반한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 세상에 나타났고(聖誕) '원수를 사랑하라', '너 이웃(여기서 이웃은 가까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게 정설이다)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 너와 오리를 같이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를 같이 가 주고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 주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예수를 ‘빨갱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로 비유한 김정란 상지대 교수가 네티즌들의 호된 비판을 받은 일이 있지만 예수가 오늘날 사회주의 사상과 가깝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약뿐만 아니라 성서의 일관된 사상은 '공유사상'이며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던 생시몽이나 프리에는 기독교 사상인 공유사상을 실천하려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기독교의 경제관은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요 인간은 하느님의 것을 잠깐 빌려 쓸 뿐이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궁합에 맞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용가치보다 효용가치가 더 큰 제도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며 욕망의 충족이나 감각적인 기준 위에 세워 놓은 집이 자본주의다.

대표적인 예가 성탄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지은 집이 깔고 앉은 땅까지 개인의 소유로 인정하는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코드가 맞지 않다. 두 벌 옷을 가지지 말고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과 오늘날 부자가 된 교회와는 전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는 오늘날 그 화려한 교회에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올 수 없는 예수를 왔다고 성탄을 축하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기만이요 지극히 자본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세계 60억의 세계인구 중에 12억 명이 하루에 미화 1불로 연명하고 있고 1억 5000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으며 그 중 8,000만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게 오늘날 지구촌의 모습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인 미국은 무기를 팔아 부를 축적하고 이라크를 침공해 노약자와 임신부 그리고 어린이를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네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기독교 십계명을 중 첫 번째 계명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계명을 어기고 있다. 돈이라는 신을 섬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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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표적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미국보다 더하죠 미국이 뭔스런 상황이라고 다른나라가 미국을 비판할 상황은 좀..

    2014.04.27 01:59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08.10.31 15:44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 그 이웃이란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예수라는 분에 대한 호기심과 성경에 대한 관심으로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된다.

성경을 읽으면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에 대해 희망을 주는 '팔복(八福)'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구약의 지혜서나 잠언서를 읽고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에 감화돼 교회 문을 두드리지만 교회에 나가보면 성서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르다.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해야 할 교인들 중에는 성서의 가르침과 너무나 다르게 사는 사람이 많다. 부유한 교회는 문을 걸어 잠그고 국민의 의무인 세금조차 내지 않는다.

공유사상의 교리가 거꾸로 사유사상을 가르치고 이 땅에 천국을 만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주공간 어디에 천국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부와 권력이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면서 권력에 복종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교회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역사의 고비마다 교회는 오히려 가해자의 편에서 개인의 평안을 축복이라고 가르친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성도들끼리 사랑하라’고 축소하고 살인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교회 밖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매몰돼 체제를 바꾸자고 가르치는 교회는 한 군데도 없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라’는 가르침은 뱀처럼 지혜로움을 빼고 권력 앞에 복종하라는 순종만을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 역사상 ‘모든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불의한 권력에 맞서야 한다는 정의가 아니라 타협과 굴종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정의감을 거세당하고 부를 축적하고 권력 화되고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십자가에 높이 못박아놓고 세상 밖에서 죄를 짓고 교회에 와서 헌금 몇 푼 내고 죄사함을 받았다고 착각하게 하고 있다.


성서는 역사와 마찬가지로 신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신관(神觀)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통적인 신관은 권력과 타협해온 변절의 기록으로 진짜 신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성서는 누구든지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성령께서 인도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성서만큼 어려운 책도 없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보자. 교인들에게 “예수님은 누군가?”라고 물으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하느님은 누군가?”라고 다시 물으면 “야훼”라고 한다. 실제로 신자들 중에는 3위 일체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3위 일체 신이 아니라 전통 신앙과 기독교가 뒤섞인 ’퓨전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예수님은 어디 계시는가?”라고 물으면 “하늘에 계신다”고 답한다. 하늘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인간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를 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도 있고 자기가 있는 어느 곳에나 하느님은 계신다’는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인간 세상에 계시는 하느님을 ‘마지막 날 공중에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면 영광중에 재림하신다’고 기록해 보통사람들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 어렵기는 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가 처녀로서 성령이 잉태해 예수님을 낳았다는 기록도 그렇다. 과학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기록은 ‘전능하신 하느님’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과학으로 신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처녀의 잉태는 건국신화에 나오는 설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예수님이 누군지, 하느님이 누군지 바로 알지 않고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약 4천7백만명의 한국인 중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인구는 2천497만명(53.1%)이나 된다.

불교 신자 1,072만을 빼고도 개신교 861만명과 천주교 514만명을 합하면 기독교 인구만 무려 1,375만명이다. 개신교도 수를 5백만명으로 잡아도 1년 교회재정(헌금액수)은 무려 2조 5천5백억원이다. 서울 강남 대형 S교회의 1년 예산이 270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 부자교회는 우리나라  미취학 아동과 ‘부끄럽다’는 이유로 지원을 신청하지 않은 결식아동을 제외된 전국의 결식 아동 수만 30만5112명(정부의 급식비 지원 학생 수)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할까?

1년 예산 300억 원 규모의 서울 강남 대형교회 담임목사의 경우, 월급과 판공비를 합쳐 모두 연봉 5억 원이나 받으면서 세금까지 내지 않는 성직자가 믿는 하느님이 진짜 하느님일까?

‘이웃 사항하기는 네 몸처럼 하라’는 성경대로라면 그들의 이웃은 대체 누구며 그들의 눈에는 결식 아동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들이 강조하는 지옥이란 확실하게 없거나, 아니면 그들이 믿는 신이 가짜임에 틀림없다.

왜 기독교를 일컬어 네티즌들은 ‘개독교’라 하는 지 그들만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하느님의 자비심에 비추어 ‘지옥이란 없다’고 믿지만 이들을 보면 지옥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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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정한

    교인들을 위해 진정한 교회와 목사님들을 위해서라도 저런 사회의 쓰레기 악과같은 교회와 목사들 교인들이 이땅에서 사라졌으면 합니다 전재산 기부하고 시골에서 교회운영하며 어려운 이들 돕는 목사님들도 계시는데 저런 놈들때문에 싸잡아욕먹는다는게 참...성경을 어찌 읽는건지 이해가 안됩니다..눈이 있으면 읽을것인데 읽고도 그러한건지 눈이없는건지..

    2010.05.25 13:17 [ ADDR : EDIT/ DEL : REPLY ]
  2. 종교가 변절한게지요.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팔아먹는....
    성직자가 부처가 되고 예수가 되고서야 어찌 성불이며 이 땅이 하늘나라가 되겠습니까?

    2010.05.25 23: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2012.01.01 00:17 [ ADDR : EDIT/ DEL : REPLY ]
  4. 짚신도 짝이 있다

    2012.01.07 04:14 [ ADDR : EDIT/ DEL : REPLY ]
  5.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2012.04.04 01:45 [ ADDR : EDIT/ DEL : REPLY ]
  6. 얼마?

    2012.04.06 05:24 [ ADDR : EDIT/ DEL : REPLY ]
  7.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2012.05.09 02:52 [ ADDR : EDIT/ DEL : REPLY ]
  8.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2012.05.11 05:17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08.10.24 07:19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와서 불교나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가르쳤는데 사립학교법을 개악하고 세금도 내지 않겠다면서 문화재관람료는 받겠다고 생떼를 쓰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불같이 화를 내며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지는 않을까? 3법인 4성제 8정도를 통해 부처가 되라고 가르치신 부처님이 서로 지분을 많이 가지려고 몽둥이질을 하고 부자가 되어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과연 성 내지 않을까?

대웅전에 모셔둔 부처님은 한결같이 금 색깔이며 얼굴은 또 왜 또 그렇게 권위에 차고 살이 쪘을까? 그런 모습을 쳐다보면 평화와 자비심을 느낄 수 있을지… 수양부족인 중생의 눈에는 부처님의 덕을 가리는 사이비 승려들의 적악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역사기행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불상을 만나게 된다. ‘저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부처님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부처님의 모습도 시대별로 다양하게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누워 있는 불상, 않아있거나 서 있는 불상, 또 깡마른 부처와 뚱뚱하게 살이 찐 부처, 천진난만하게 생긴 부처와 범접할 수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의 불상도 있다. 철불과 동불이 있는가 하면 금동불과 금불상도 있다. 왜 이렇게 생김새가 다양한 불상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반가사유상>                    <입불>                     <좌불>
세상은 보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탈레반이 잡아둔 한국 인질을 보고 한 편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던 착한 사람들이 사악한 테러세력이 잡고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순교는 그들이 원했던 게 아닌가’, ‘유서까지 써놓고 죽으러 갔으니 죽게 내버려두자’, ‘전지전능한 신이 왜 선교활동을 하러 간 교인들을 어쩌지도 못하는 무력한 신이 됐는가…?’라고.
왜 이렇게 상반된 반응이 나올까? 아프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가 뭔지 또 아프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면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불상이란 불교의 신앙대상으로 창조된 부처의 모습이다. 불상은 불격에 따라 불타. 보살. 명왕. 천부. 나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불타는 여래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풀이하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불상은 재료의 종류에 따라 석불, 마애불(磨崖佛. 커다란 암벽에 부조 또는 선각 등으로 얕게 새긴 불상), 목조불, 은불, 금동불, 철불, 소조불(塑造佛. 점토로 만든 불상), 건칠불(乾漆佛. 나무로 간단한 골격을 만들고 종이나 천 같은 것으로 불상을 만든 후 옻칠을 하고 다시 금물을 입힌 것이다) 등이 있다. 불상을 생김새로만 이해해서는 불교의 진수를 모른다. 부처님은 너무도 거룩한 분이라서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 자체가 자칫 그분의 성스러움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초기에는 불상이 없었다. 불상을 대신해 불사리탑이나 법륜, 보리수 연화좌, 금강좌와 같은 상징물들을 부처님의 위치에 표현해 놓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부처님이 입멸한 지 500여년의 세월이 흐르기까지는 불상이 아니라 이러한 부처님의 상징물이나 사리를 모신 탑이 예배의 대상이었다. 

                     
                          <철불>          <법주사의 도금한 불상>        <금불상>  
부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면서까지 불상을 만들게 됐을까? 불멸 후 500년까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지켜왔지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부처님의 불사리를 놓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때 향성 바라문의 중재에 의하여 사리는 8등분되어 여덟 개의 불사리 탑 및 병탑(사리를 담았던 항아리), 회(재)탑을 건립하여 사리가 모셔진 탑이라는 형상을 통해 부처님을 대하듯 숭배하였던 것이다. 불상의 기원을 보면 가장 일찍 편찬되었다고 하는 <아함경(阿含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보면 코삼비(Kaus mb)국의 우다야나왕이 향나무로 석가의 모습을 조각하도록 했다는 것이 불상조각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철불 법주사의 도금한 불사 금불상 무신론인 불교가 부처가 신앙의 대상이 됐다는 것부터가 불교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해탈자이기 때문에 그분이 가신 길,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 해탈의 길을 가자는 것이 불상을 만들고 절을 많이 하고 시주를 많이 하면 극락왕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불교가 권력과 밀착해 승려들에게 계급을 하사하고 불전을 줘 수탈자로 만든 것은 권력의 뜻이다.

                       
                              <도금한 범어사 불상>                                       <마애사 석불>
절대왕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불교는 왕이 곧 부처(왕즉불-王卽佛)가 되게 마련이다.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불교는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정체성을 달리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해탈의 경지를 터득해야 할 불교가 부처라는 신을 만들어(형상화) 구복과 기복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처음의 불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러한 불상의 제작과정을 보면 순수하게 민간신앙 차원에서는 목불이나 소조불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다 국가차원에서 불교가 받아들여지고 권력과 결합하면서 철불이나 금동불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의 표정도 처음에는 ‘깡마르고 고통에 찬 모습 -> 천진난만한 친근감이 넘치는 모습 -> 차츰 살이 찌고 근엄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왕이 곧 부처’가 되는 고려시대는 외모나 권위 면에서 종전의 천진난만하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어지고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과 함께한 불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주류를 이룬다. 흥미 있는 사실은 동남아시아국가들처럼 외세의 지배를 받은 국가는 대부분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 외침을 받지 않은 주권국가들은 대승불교가 흥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종주국은 식민지배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개인의 해탈에 전념하는 것은 식민통치에 방해가 될 리 없기 때문에 방치한 것이고 대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이 아니라 중생의 아픔을 구제해야 하기 때문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즉 식민지배의 저항에 나서게 된다. 식민지 종주국은 당연히 대승불교를 용납할 수 없었고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가 권력과 유착하지 않고 식민사회의 모순에 나선다면 식민지배가 순조롭지 못했을 것이라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 소승불교 소승은 열소(劣小)한 수레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타고 피안(彼岸)에 이를 수 있는 큰 수레가 아니라고 한다. 부처님 입멸 후 캇사파가 중심이 되어 경전을 결집하고 계를 지키며 수행하는 전통적 보수 교단을 소승불교라고 한다. 소승은 자리, 즉 자신의 구제(해탈)만을 목표로 삼은 출가주의로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여 엄한 계율을 지키고 수행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본다.

2. 대승불교 ‘대승’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 대승과 소승은 어떻게 다른가? 내가 있는 곳이 욕계요 강건너 저쪽의 세계가 열반의 세계라면 ‘어떻게 강을 건너가느냐?’가 문제다. 소승불교에서는 출가자가 자기 위주의 독선적 사고에 빠져 석가의 근본정신을 잊어 버렸다고, 대승불교는 소승불교를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석가 본래의 정신에 되돌아와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의 신자들도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불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다.
[불상의 모습]

왜 어떤 부처는 누워 있고 어떤 부처는 앉아 있고 어떤 부처는 서 있는가? 와불(臥佛)부터 살펴보자. 와불은 부처님이 ‘열반에 들 장소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형상’을 상징하고 입불은 서 있는 불상이며 좌불은 결가부좌한 자세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것과 설법을 하는 자세’를 뜻한다. 초기는 입상이었다가 후기로 가면 앉아 있는 불상으로 바뀌는데 이는 권력화되고 권위적인 부처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상의 모습도 바뀜을 알 수 있다. 보통 대웅전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은 부처님이 삼매에 드신 상태(삼매인)와 설법하시는 모습(전륜법인)을 형상화하고 있다. 반가상은 부처보다 주로 관음보살 등의 보살에 많이 쓰이며 주로 사유상 즉 생각하고 있는 자세다. 반가상은 ‘현생의 중생들의 고달픔을 생각’하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불상은 왜 그렇게 살이 찌고 권위에 차 있는가?]

초기 불상은 재료는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 진 목불이거나 토불이었다가 후기로 가면서 철불이나 금동불 혹은 금불로 바뀐다. 모습도 처음에는 고뇌에 찬 갈비뼈가 앙상한 모습,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찐 건강한 모습으로 바뀐다. 불교가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게 되고 권력화되면서 외모도 그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 승과제도가 도입되고 왕사나 국사와 같은 계급을 차지하고 사원전을 받아 경제력까지 가지면서 불상의 모습도 그에 상응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불상을 통해 보는 불상은 본래의 부처님 얼굴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불상이 권력과의 위계관계에 따라 다정다감하고 천진난만하다가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이다. 귀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귀족이고 싶었고 왕 또한 살아서도 죽어서도 왕이어야 했다. 결국 왕은 살아서 부처요(王卽佛)이요, 죽어서도 부처였던 것이다.

[과거불, 현재불 그리고 미래불 ]

우연의 일치일까? 미륵불을 뜻하는 ‘미르’와 야훼 태양신(미트라(Mithra)=메시아)는 어원이 ‘미르‘로 같다. 기독교의 3위일체 신인 야훼와 예수, 그리고 성령처럼 불교에서도 과거불인 약사불과 현재불인석가불, 그리고 미래불인 아미타불이 있다. 역사적으로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혼자이지만 교리적으로 "진리를 깨닫은자", "진리의 발견자"로서 부처님은 얼마든지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부처님은 오래된 성(城)을 발견한 사람에게 비유하기도 한다. 즉 자신 속의 불성을 일구어 내어 깨달음을 얻으면 바로 부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종교가 이데올로기로 바뀌면...]

역사적으로 종교가 권력화되면서 민중의 억압자로 군림한다. 그 증거가 입불이나 좌불, 와불로 나타난다. 불상의 얼글도 자애로운 모습에서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지배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고 종교는 당근을 받아먹으면서 공생한다. 불교만 그런게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권력화되면서 그 종교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교의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거대한 불상을 만들고 도금을 하고 그래서 그런 붙상이 더 영험이 있다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3법인 4성재 팔정도를 통해 해탈을 지향하는 불교가 부처님을 신으로 만들어 구복, 기복신앙으로 바뀌어 간다.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자와 민중을 호도하는 사이비 불교 지도자 때문에 애꿎은 부처님만 수모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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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une

    "역사적으로 종교가 권력화되면서 민중의 억압자로 군림한다.
    지배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고 종교는 당근을 받아먹으면서 공생한다. 불교만 그런게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권력화되면서 그 종교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교의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올리신 글의 말미 이 부분이 현대 종교의 변질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나 절이나 기타 종교에서
    비뚤어지고 어긋난 모습들...
    그 원인을 핵심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은 "권력획득"(세력확장,부의축적)이나 어긋난 탐욕이라는
    불편한 진실의 종착지에 도달하니까요.

    하지만 현재 종교에 몸담은 분들에겐
    그저 "불편한 진실"일 뿐이죠...
    이왕이면 모르는 사람들에겐 쉬쉬하고,
    알게된 사람들에겐 좋은게 좋은거라고
    슬쩍 눈감아 달라거나 덮어두자고 하는...

    2008.10.28 15:51 [ ADDR : EDIT/ DEL : REPLY ]
    • '제사'를 생각하면 참 웃습지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렇게 저렇게 의례를 치러라고 가르쳐 준 일도 없는데 사람들은 그 '의식'을 금과옥조로 생각하곤 하지요.
      그것도 남의 나라 '주자'라는 사람의 가문의 의식을 말입니다.
      불교의식이나 기독교 의식도 마찬가지지요.
      교조는 그런 일이 없는데 후세 종교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교의는 무너지고 껍데기만 남아....
      안타까운 일은 종교뿐만 안겠지만 말입니다.

      2008.10.29 07:11 신고 [ ADDR : EDIT/ DEL ]
  2.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2012.01.02 13:00 [ ADDR : EDIT/ DEL : REPLY ]
  3.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2012.01.07 04:35 [ ADDR : EDIT/ DEL : REPLY ]
  4.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2012.04.04 00:35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해가 안갑니다.

    2012.04.06 05:13 [ ADDR : EDIT/ DEL : REPLY ]
  6.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2012.05.09 01:01 [ ADDR : EDIT/ DEL : REPLY ]
  7. 다 먹었습니다.

    2012.05.11 12:48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08.10.21 17:04



개신교에는 ‘부흥회’나 ‘신앙 간증‘이라는 걸 가끔 한다. 여기에는 단골손님으로 지옥이나 천국에 갔다 온 사람이 등장해 신자들에게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게 하거나 공포심을 갖게 한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해서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갔다 왔다는 지옥이 한결같이 똑같은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짜 이분들이 갔다 온 지옥이 실체적인 사실이라면 목격한 곳이 같아야 할 텐데 모두가 다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이 보고 왔다는 지옥이나 천국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교인들에게 ‘왜 교회를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천당 가기 위해서..’란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교인은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기정사실로 한다. 물론 종교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기독교와 같은 종교 이전에도 종교는 있었다. 미개한 사람들은 자연의 신비나 공포,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힘은 신의 영역으로 알고 신과 통하는 사람(巫)이 우두머리가 되어 다중을 지배하던 제정일치시대도 있었다. 이러한 사회 즉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를 거치면서 범신론을 비롯한 온갖 신을 섬기는 ‘신인공존’의 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이 중에서 특이한 유대인의 종교가 등장한다. 유일신 사상은 유대인의 민족신앙으로 아직도 예수가 크리스도인가 아닌가를 좋고 유대교와 기독교를 분리되지만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보는 기독교와 유대교는 각각 제갈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원시종요인 샤머니즘을 빼고는 종교가 정치에 이용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지 않은 때가 없다. 불교가 삼국시대를 지배한 이데올로기였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유교는 엄밀하게 따져 종교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중국사회의 정신적인 지주요, 조선시대 지배이데올로기가 된다. 인도의 힌두교가 그렇고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약소국들은 불교라는 종교가 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감당해 왔다. 어떤 종교치고 정치와 무관할 수 없지만 지구상의 종교 중 인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가 기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인의 민족 종교가 서구의 사상사를 지배한 연유는 메시아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유대인의 민족종교인 기독교가 서양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지배하게 된 연유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겠지만 메시아사상과 천국, 지옥이라는 교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대 땅 이스라엘에 탄생한 예수. 그를 두고 구세주인 크리스트냐 아니냐는 논쟁은 지난 시간 정리한 바 있다. 예수가 구세주로 믿는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는 영생과 천국을 믿는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믿는 천국이란 객관적으로 실존하는가?

 성경에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 3:2),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가복음 9:1)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와 같은 표현으로 천국이 진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가? 성서에 보면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막9:48)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  "천사들을 보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불구덩이에 처넣는다."(마13:41-42)와 같은 구절이 있다.

  이 세상에 살다보면 함께 하늘을 이고 같이 함께 산다는 게 부끄러울 만큼 철면피한 사람도 없지 않다. 어린 아이를 유괴해 죽이고 부녀자를 납치해 어떻게 하고 무고한 사람을 수백 명이나 죽이고 뻔뻔하게 귀족행세를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지옥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짐작컨데 요한게시록과 같은 경은 로마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고통을 신에게 하소연한 게 아닐까? 그런데 그들. 하나같이 똑똑하고 잘난 그들은 그런 지옥에 겁을 먹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마 예수의 시대 로마의 식민지에서 세리들이 이들과 같은 무리가 아니었을까?

 신앙은 ‘사탕을 주기 때문에 시키는 일을 잘하는 어린이'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나의 선행이 천국을 가기 위한 아니면 지옥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믿는 행위라면 그건 엄밀한 의미의 종교가 아니다. 영악스럽게도 범법자는 그런 수준의 종교에 겁을 먹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옥이 그 구실을 못하고 오히려 착한 사람의 공포감을 불러오게 한다는 것은 목적전치가 나닐 수 없다. 이는 종교지도자의 직무유기가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라‘는 신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자본과 손잡고 회칠한 무덤이나 돌보는 목회자는 성경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에 대한 강조도 예외가 아니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더니....’ 어쩌고 그래서 ‘지옥 있습니다. 천당 있습니다’나 강조하면 없는 지옥이나 천국이 존재하게 되는가? 천당을 강조하면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선행조차도 신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객관적 실체로서 지옥과 천국이 존재하느냐의 유무는 그것이 있기 때문에 유인요소는 될망정 그것 때문에 겁이 나서 신의 눈치를 보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릴 때는 단단한 것을 먹지 못하지만 장성한 후에는 그친 음식도 소화시킬 수 있듯이...' 건강한 신앙은 신의 눈치를 보는 차원을 초월해야 한다. 지옥과 천당이 없어도 예수님을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신자일 때 건강한 신앙이 가능한 게 아닐까?....(계속)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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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une

    하지만 현재 한국의 기독교의 모습들을 보면
    선교의 주된 방법이
    "착한 사람의 공포감을 불러오게" 뿐이 아니라,(예수천국 불신지옥)
    "부자되고 싶은 사람 돈 많이벌게 축복해주는"으로,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라는 신의 가르침을 외면한채
    자본과 손잡고 성경을 왜곡하고 있죠.(A)
    (결국은 교회의 "권력획득"-세력확장,부의축적-을 위해 말이죠)

    그 들 스스로 성경을 왜곡하고 있기에
    신도들의 신앙이
    "사탕을 주기 때문에 시키는 일을 잘하는 어린이"수준에
    머무르기만을 바라고,(B)
    의도적으로 왜곡된 성경을 신도들로 하여금
    바로보지 못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A)와 (B)는 각각의 2가지 현상이 아니라,
    (A)를 유지하기 위해 (B)가 행해지고 있는 유기적 관계죠.

    2008.10.28 16:21 [ ADDR : EDIT/ DEL : REPLY ]
  2. Zune

    종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천주교 혹은 불교 기타 무슨 종교이던 간에
    종교 지도자들이 교단의 권세를 공고히 하기위한
    권력자와의 영합과 진리의 왜곡에 휘둘리지 말고
    예수님과 석가모니가 전했던 메세지의 참의미를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때에 위의 "진리"는 불교에서의 "해탈"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요?

    veritas liberabit vos

    2008.10.28 16:33 [ ADDR : EDIT/ DEL : REPLY ]
  3.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2012.05.11 08:05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