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2013.08.07 07:00


정치권에서 ‘한국사 수능필수화 논쟁’이 본격화 되고 있다. 한국사 교육 강화는 지난 6월,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6ㆍ25전쟁이 '69%의 청소년들이 북침'이라는 응답이 나온 후부터다. 박근혜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에도 “역사 과목은 (학력)평가 기준에 넣어 어떻게 해서든지 (성적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밝히면서부터 여야와 교육현장까지 논쟁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교원단체인 교총(교원단체총연합회)은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 찬성 입장을 표명한데 이어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반대 뜻을 밝혀 교원단체와 현직 교사들 간 갈등도 첨예화되고 있다.

 

교총이야 본래부터 정부 정책의 거수기 노릇을 해왔으니까 그렇다 치고 전교조가 한국사수능필수를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 전교조는 박근혜정부가 “정부가 꿈과 끼를 살리자면서 입시 위주로 한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모든 교과를 정상화하는 방향과 근본적인 원인제공자인 수능개편과 함께 가지 않으면 역사 수업을 지식교육 일변도로 왜곡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보수적인 언론은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수준이 ‘3·1절’이 ‘삼점일절’이라고 알고 있다느니, ‘광복절’이 언제 일어났는지, ‘현충일인 6월 6일’이 무슨 날인지, 조기게양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이 몇 %느니 하며 청소년들의 걱정(?)하고 있다. 하기는 고등학생들 중에는 기초수학이나 독해능력조차 없는 학생이 한 둘이 아니다. 학습능력이 뒤진 학생을 두고 전체학생들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아 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박근혜정부가 강화하겠다는 역사교육은...?

 

박근혜정부기 출범하면서 역사교육강화론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뉴라이트계열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교과서 포럼은 현재의 역사교과서가 자학사관, 친북좌파사관, 폐쇄적인 감정적 민족주의, 수정주의 역사관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대안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검인정교과서로 인정받기까지에 이르렀다.

 

사관도 없이 역사적인 지식을 암기한 량으로 서열을 매기는 교육은 자칫 폐쇄적인 자문화중심주의나 국수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학생들이 역사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사관부터 이해해야 한다. 친일사관인지 민중사관인지 영웅사관인지도 모르고 교과서를 천편일률적으로 외워 시험을 치고 나면 끝나는 역사교육강화는 피교육자로 하여금 역사가 지겹게 느껴지게 할 뿐이다.

 

역사교육 강화가 걱정되는 이유

 

우리나라 한국사교과서를 보면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질리게 만들어 놓았다.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선조들의 삶이나 향토사가 아니라 고대사 중심, 사건과 연대순으로 나열해 암기를 많이 하는 게 역사교육의 목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성해 놓았다. 선사시대 석기이름에서 무덤의 형태, 시대별 관직 이름이며 조세제도 토지제도, 종교까지 달달 외워야 하는 국사가 재미있을 리 없다. 거기다 기중, 기말, 전국단위 학력고사, 수능고사로 이어지는 시험문제풀이로 한국사는 지겨운 공부가 되고 만다.

 

역사지식을 많이 암기하는 게 역사인식수준을 높인다...?

 

고대사에서 현대사까지 역사지식을 남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역사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일까? KBS의 ‘골든 벨을 울려라’처럼 역사지식은 사람이름이나 정치제도, 조세나 토지제도 팝타나 건축양식에 이르기까지 달달 이우는 학생이 우수한 학생일까?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사실을 많이 암기한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아 일류대학 진학이 유리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에게 공부할 량을 늘리거나 수능과목이 필수과목으로 바뀐다고 역사인식수준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사실(史實)이 자신의 삶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지 못한다면 그런 사실(史實)을 외워 어디다 쓸 것인가?

 

역사공부를 하는 목적부터 알아야 한다.

 

역사공부를 왜 할까?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애써 배운 지식이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다면 그런 지식이란 남과 겨루는 과시용이 될 뿐이다. 세계사는 대충 배우고 한국사만 달달 외운다든지 사재주의문화나 자문화중심주의에 빠지게 하는 역사교육은 병든 교육이다.

 

역사공부란 과거의 사실을 통해 오늘의 나를 찾는 작업이다. 나의 정체성이며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이정표를 찾기 위해서다. 더구나 세계사 속에서 우리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사만 강화한다면 편협한 국수주의로 빠지고 말 것이다.

 

사관도 없이 역사의식도 높이지 못하는 역사교육 강화로는 역사인식수준을 높이기 어렵다. 정부가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할 의지가 있다면 암기가 아닌 토론중심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습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 역사교육에 대한 국가통제나 대학서열화에 들러리로 만드는 현행 수능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한국사교육 강화니 수능필수는 수험생들만 괴롭힐 뿐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한국사’하면 무슨 생각이 나지요?

 

‘우리역사의 형성과 고대국가’ ‘고려와 조선의 성립과 발전’... 단군신화에서부터 삼국시대....고려와 조선 그리고 근대국가와 현대사회...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우리나라 역사는 학생들에게 참 재미없고 어렵기만 한 과목입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벌써 세 번째 배우게 됩니다.

 

‘국사’하면 머리 아프다. 원시시대 무덤 이름이며 고인돌이 어떻고...복잡한 나라 이름이며 여기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복식이며 식생활, 그 많은 책이름이며 토지제도, 계급, 그리고 그 많고도 많은 사건의 원인, 경과, 결과를 연대까지 외우려면 ‘아! 머리가 아프다’ 그런 생각이 들지요?

 

이렇게 어느 임금 때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데 언제, 왜.. 이런 식으로 외우는 역사는 정말 시험을 위해 준비하는 나와 무관한 관념적인 지식의 암기일 뿐 나를 알게 하고 내 삶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그런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은 역사가 어려운 과목이 아니랍니다. 역사과목이 재미없게 된 이유는 시험 준비를 위해 외우기만 해야하는 암기 과목이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역사를 애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과거의 일(사건)이 내일의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런 지식이야말로 시험을 위한 지식일 뿐이랍니다.

 

예를 들면 동학농민전쟁이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풍수사상과 유(儒) ·불(佛) ·선(仙)의 교리를 토대로 서학(西學:기독교)에 대항하여 ‘인내천(人乃天):천심즉인심(天心則人心)’을 내걸고 일어난 학정에 저항한 운동‘으로 암기한다면 그런 공부란 시험용일 뿐이지요.

 

‘동학도’들이 중심이 되어 1년 동안에 걸쳐 무려 30∼40만의 희생자를 낸 사건을 ‘운동’이라고 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혁명’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현대사의 ‘5·16’도 어떤 학자는 ‘혁명’으로 어떤 학자는 ‘쿠데타’ 혹은 ‘정변’이라고 기술하는 이유가 뭘까요?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사관(史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상 : 고 2~3학년 학생

 

주제 : 사관(史觀)이란 무엇인가?

 

학습목표 : 사관을 이해하고 역사를 보는 관점을 이해한다

 

차시 : 2/3 차시

 

 

역사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우리나라에서 4,345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건의 기록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많은 일들 중 왜 교과서 한권에 담길 내용만 기록해 놓았을까요? 국사 책에 기록된 사건은 누가 선정해 교과서라는 책에 담아놓았을까요?

 

- 역사는 누가 기록한 것일까요?

 

교과서에 담긴 역사는 사실(事實)이기도 하지만 사실(史實)이기도 합니다. 그 많고 많은 사건 중 어떤 건 사실(事實)이 되고 어떤 건 왜 사실(史實)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사가(史家)들이 ‘가치 있다고 선택한 사실(事實)’...을 골라 역사책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事實) 중에 사실(史實)이 되는 건 전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기준에 따른 선택이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과서에 담긴 사건의 내용 즉 사실(事實)은 사실(事實)이 아니라 사실(史實)이 된 것이랍니다.

 

역사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역사책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거 교과서에는 아메리카를 찾은 사건을 두고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기록했던 일이며(사실은 원주민의 입장에서 발견이 될 수 없는데...) 5·16을 혁명이라고 기록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한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기술한 교과서가 그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역사는 사가의 시각 즉 사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역사가의 역사를 보는 시각(가치관, 세계관)을 우리는 사관(史觀) 혹은 역사관(歷史觀)이라고 합니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기록한 역사를 민중사관(民衆史觀)이라하고 지배자들, 양반들의 시각(가치관, 세계관)에서 기록한 역사를 영웅사관(英雄史觀)이라고 합니다.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민족사관이 되고 하느님이 보호하사 오늘의 역사가 존재했다고 보는 사관은 기독교 사관이라고 합니다.

 

역사는 이렇게 민초들의 입장에서 쓰면 ‘민중사관’이 되고 지배자들 입장에서 쓰면 ‘영웅사관’이 된답니다. 삼국유사란 일련이라는 스님이 썼으니 당연히 불교사관이 되겠지요. 기독교사관에 의해 역사를 기록할 수도 있고 중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는 사대주의 사관이 되는 것입니다. 김부식 같은 이가 쓴 ‘삼국사기’란 바로 대표적인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 기록된 역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불교신자가 기독교사관에 의한 역사를 배우면 역사를 이해하기 어렵듯이 서민들이 왕의 시각에서 쓴 역사를 배우면 ‘존재를 배반하는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관을 알기만 하면 사실(事實)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장래 노동자가 될 사람의 머리속에 양반의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배운 역사,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식민사관 학자들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수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주로 식민사관. 혹은 실증주의사관에 의해 기록된 역사였습니다.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학자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 시켜준 은인의 나라라는 가치관을 역사 책 속에 담아놓았지요. 영웅사관에 의한 역사 즉 왕이나 귀족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관이나 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켜준 은인의 나라라는 가치관으로 쓰인 식민사관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우리민족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일본은 위대하다는 사대주의 시각을 갖게 만들겠지요.

 

-왜 ‘민중의 의거’가 ‘민중의 난’으로 기록한 이유...?

 

과거의 역사교과서에는 ‘서경천도운동’을 ‘묘청의 난’으로 만적의 의거는 ‘만적의 난’으로 ‘동학혁명’은 ‘동학 난’으로 기록했었답니다. 현대사에도 제주폭동이니 여수반란사건으로 기록했었고요.

 

단재 신채호선생님은 1175년에 일어났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 1천년간 제1대 사건’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왜 ‘난(亂)이 ‘운동’으로 바뀌었는지는 바로 그 사관이 민족주의 입장이냐 아니면 사대주의 사관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인가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 것입니다.

 

어떤 역사가 진짜 역사일까요? 사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역사라는 것도 모르고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금과옥조로 생각해 외우기만 했던 역사 지식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신학 없이 읽기만 한다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듯이 사관(史觀)도 없이 교과서 지식이 역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쪽 역사, 왜곡된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배운 역사는 어떤 사관(史觀)으로 쓰인 역사지식일까요?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나는 요즈음 SBS 월화드라마 ‘무사 백동수’를 보고 있다. 이 프로가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그 시간대에 별로 볼게 없으니까 보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계속보고 있다.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잔인한 국적불명의 사극을 계속 볼 것인가를 몇 번인가 망서렸지만 끊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 시대상황이나 줄거리도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역사적인 고증을 얼마나 거친 예긴지, 왜 그렇게 잔인한 내용으로 그려지는지, 사실인지 허구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독재정권시절 백성들의 정치의식을 소거(消去)하기 위해 사극을 많이 방영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요즈음에도 텔레비전에는 사극이 유행이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계백>과 <광개토대왕>, <공주의 남자>를 비롯해 얼마 전 인기를 모았던 <선덕여왕>, <대조영>, <주몽>, <대왕 세종>, <천추태후> <태조왕건>,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등 사극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언젠가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던 중, 자기는 학생들에게 ‘사극을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단다. 이유인 즉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을 보면 역사의식은커녕 픽션(fiction)인지 논픽션(nonfiction)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사맹(史盲)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거기다 정체불명의 인물이며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인물의 등장이나 환경, 그리고 상업주의로 찌든 폭력으로 채워지는 잔인성 등 이런 드라마를 계속 보면 ‘애들 다 버리게 된다’는 이유다.

사극 중에는 ‘퓨전사극’이라고 해서 태왕사신기나 연개소문처럼 등장인물의 말투를 현대인처럼 만들어버린 사극이 유행하지만 내가 요즈음 보고 있는 ‘무사 백동수’의 경우 ‘사극을 꼭 이렇게 만들어야 할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용이야 어차피 작가의 상상력에 맡겨진다고 치더라도 왜 저토록 잔인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공중부양을 하고 화살을 손으로 잡는가 하면 맨손으로 칼날을 잡아채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만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 받은 역사교육 정도로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이해하고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은 사관(史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마치 기독교 신자에게 신관(神觀) 없이 신(神)만 가르쳐 놓으면 맹신주의 신앙인이 되듯, 사관이 없는 역사인식은 역사의식도 시민의식도 길러내지 못한다. 편년체니 기전체가 어떻고 사건중심의 원인, 경과, 결과를 필기해 주고 시험에 나올 확률이 높은 문제를 외우게 하는 역사교육으로 역사교육이 지향하는 목적 달성은커녕 사극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렵다.


사극 ‘백동수’의 줄거리를 보면 노론과 소론이 치열한 당파싸움을 벌이던 때인 영,정조 시대 얘기다. 사도세자의 오른팔인 백사광이 사도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노론과 병자호란 이후 청국이 조선의 반역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만든 흑사초롱의 음모로 참수를 당한다. 백사광의 아들인 백동수가 검객 김광택으로부터 무술을 배워 어지러운 정치로 피폐해진 민중들을 살린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교과서 시각에서 사극을 보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극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 계급사회를 정당화시킨다. 대부분의 사극들은 퇴행적인 대중문화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왕조사관으로 그려진다. 사극에서 그려지는 영웅은 오늘날 대통령을 비롯한 재벌, 고급관료 등 지배계급의 다른 얼굴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왕이나 귀족은 인기연예인이 되고 일반 백성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초라한 모습의 대역배우다.

드라마가 의도하는 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은 잘생기고 똑똑하고 유능해 ‘존경받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이러한 시각은 운명론적인 세계관으로 연결돼 ‘못생기고 무식한 인간’은 고생해도 싼‘ 그런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자신은 서민이면서 귀족을 응원하는.... 몸은 노예이면서 머리 속의 생각은 귀족으로 만드는 ’자발적 복종‘이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경험하게 한다.

둘째 오늘날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대부분의 사극은 상업주의로 뒤범벅이 된 폭력과 음란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돈이 되는 게 선(善)이 되는 사회에서 시청율이란 드라마의 생존을 위한 숨구멍이다. 사극이 언제부터 칼싸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지 그 잔인성에 몸서리가 쳐진다. 상업주의 방송에서 교훈적인 내용만으로 전개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요즈음 드라마 내용은 도가 지나치다.

왕을 둘러싸고 여인들의 사랑싸움이나 권력투쟁이 사극의 전부가 아니다. 왜 주인공은 항상 양반이어야 하는 왕조사관에 입각한 사극만 만들까? 물론 역사가 영웅사관이나 왕조사관 중심의 기록이었기 때문에 민중에 대한 기록의 빈약을 핑계 댈 수도 있다. 왜 동학혁명과 같이 민중의 저항이나 교과서에 ‘농민의 난’으로  표현한 민중사관에 입각한 민중의 역사를 사극으로 만들지 못하는가? 아직도 사극이 권력이 서민들에게 저항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써 먹던 낡은 이데올로기로 재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7.30 05:00


'사극을 보지 마라!‘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 한 분의 지론이다. 사극이 역사적인 사실(史實)만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픽션을 사실(事實)로 보는 시청자의 수준 때문이 아니다. 사극이라면 하나같이 사랑타령이나 왕이나 귀족의 업적중심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사극이라는 것 자체가 민중사는 없고 왕의 이야기나 귀족, 양반 중심의 이야기만 전개되기 때문에 서민대중인 민초들이 사극을 보면서 역사의식은커녕 영웅사관에 의한 역사관만 길러주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주로 잘생기고 인기가 있는 멋진 인기 탤런트이고, 노비나 서민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못생기고 추하고 굽실거리는 비굴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극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역사의 주인이 민중이 아니라 왕이나 잘난 귀족이라는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를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가난과 어려움이 못배우고 못난 자신의 탓 때문이라는 운명론적 가치관을 학습하게 된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착시현상이 진리일 수는 없다. 그러나 외모가 준수하고 걸친 의복이 고급스러우면 일단은 한 수 위로 보이게 마련이다.(자본주의가 만든 착시현상이기는 하지만...) 속으로야 아무리 육도삼략이 들어 있다하더라도 겉보기가 꾀죄죄하고 추하게 보이면 한 점수 깎인다. 나중에야 실력이 드러나고 본질이 보이겠지만 선입견이란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첫 인상이란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일까? 그렇잖아도 상업주의문화가 만들어 놓은 착시현상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여지없이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사회양극화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경쟁이나 효율이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분배나 기회균등 같은 공공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로 매도당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식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결혼상대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겠지만 ‘잘 생긴 사람’ ‘돈 많은 사람’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을 선호한다. 잘 생긴 사람과 잘 생긴 사람이 결혼하면 더 잘생긴 2세가 태어난다. 머리가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제대로 된 태교에서 친환경적인 음식을 먹이고 좋은 환경에서 양육하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까?

잘 생기지도 못한 사람,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어 그만그만한 사람이 결혼해  2세가 태어나고 어려운 여건에서 제대로 먹을 것도 못 먹고 자라면 어떤 사람으로 자랄까? 생김새는 제쳐 두고서라도 건강문제 하나만 보자. 산모가 출산에 관련된 지식이 있고 정기적인 검진을 받고 태어나 오염되지 않은 친환경농산물을 먹으면서 주치의의 진단을 받으면서 자라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누가 건강하게 자랄까?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느니 ‘가난한 집 아이가 공부를 더 잘 한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신문을 장식하곤 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어쩌다 구두닦이를 해 가며 주경야독한 학생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입지전적 얘기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지 않는다’는 류(類)의 기사가 종종 보인다.
 


공정하지 못한 경기는 게임이 아니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았건, 머리가 좋건, 아니면 운(?)이 좋아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를 문제 삼자는 게 아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체제니까 자본의 논리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과 의료와 같은 부분은 다르다. ‘사회 계약설’과 이념에 따라 성립된 자본주의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기본적 가치를 전제로 성립한 것이 사회다. 모든 경쟁이 선이라는 막가파식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사회란 존재해서도 안 되지만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기회균등이나 공공성이니 하는 가치를 근본이념으로 하는 ‘공화국’에서 출발하고 있다. 

승패가 결정된 게임은 게임으로서 가치도 없거니와 그런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나 다름없다. 교육 분야를 보자.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양극화가 한계상황에 도달한 나라에서 교육이 수월성을 바탕으로 한 경쟁논리로 가면 어떻게 되는가? 여기다 모든 경쟁구조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면 결과는 뻔하다. 국영수중심의 교육과정 편성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영어공부를 하거나 방학이 되면 해외로 나가 언어연수를 하면서 자란 아이와 학원에도 다녀보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과 경쟁이 되겠는가? 의대에 다닐 정도의 머리가 있어도 가정에서 뒷바라지를 해 주지 못한다면 의사가 되기는 쉽지 않다. 고시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다니면서 고시에 합격할 정도가 안 된다면 일년에 수천만원 이상 들어가야 가능한 고시공준비를 수년 혹은 10여년간 할 수 있을까? 

교육뿐만 아니다. 의료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의료보험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유능한 의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가치로 설정한 체제에서 돈이 없이 치료를 못 받거나 살릴 수 있는데도 돈이 없어 죽어간다면 이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다. 능력이 있어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나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치한다는 것은 ‘좋은 사회’라 할 수 없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가치가 ‘공공성’이다. 이러한 공공성을 포기하고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공성을 말하면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최소한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과 의료를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로 승자를 결정하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소득 재분배나 공공성의 실현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사회적 가치를 배분할 힘을 기득권자가 장악하고 있는 한 공정한 사회도 더불어 사는사회도 꿈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4.02 15:23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대부분 한번쯤은 제주도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여행에서 돌아온 학생들에게
“제주 4·3항쟁에 대해 공부 많이 했느냐?”고 물어보면
“제주 4·3항쟁요? 4·3항쟁이 뭔데요?”라고 반문한다.

“그럼 제주도에 가서 뭘 배우고 왔니?”
“도깨비도로도 구경하고, 한라산에도 가보고.....!”
“그럼 수학여행이 아니라 관광여행을 갔다 온 게로구나”
“........?”
경치구경을 할라치면 서울이나 지리산이 더 낫지 않을까?

오늘은 63년째 맞는 4·3항쟁일이다.

                                            <사진출처 : 제민일보>

4·3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4·3 폭동..?, 4·3 반란...?, 4·3 사건...?, 4·3 항쟁... ?...
나이가 4~50 이상 된 사람들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제주폭동’이라고 배웠다.
1947년~48년 제주 인구의 약 ⅓이상이 희생됐다는(인구의 10분의 1이라는 설도 있고 희생자 수도 10~8만, 최소 2만, 최대 8만이라는 설도 있다) 역사의 비극이 있었던 4·3 항쟁이 있었던 날이다.
그것도 적군이 아닌 경찰과 국군, 그리고 혈맹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살육당한 사건.

‘이산하’라는 시인은 한라산이라는 시에서 4·3을 절규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 여 남녀 중학생을
금악벌판으로 몰고가 집단학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속으로 던져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집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이산하의 시 '한라산' 일부 )

                                           <사진 자료 : 아이엠피터님 블로그에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0년 0월 0일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식으로 사건의 원인, 경과, 결과를 암기해 서열을 매기는 것이 역사공부일까?
역사공부를 한다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의 암기뿐만 아니라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며 ‘역사의식’이란
‘어떠한 사회 현상을 역사적 관점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그 변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관계를 가지려는 의식’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를 전공한 선생님들도 현대사를 잘 모른다고 한다. 현재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좀 나아졌지만 7차교육과정 점만해도 현대사는 4~5쪽 정도 뿐이었다. 그것도 5·16을 혁명으로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왜곡한 교과서를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학교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까?

지식은 가르치지만 사관(史觀)을 가르치지 않는 역사교육은 역사의식을 깨우치기 어렵다. 고조선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이렇게 연대순으로, 사건을 원인, 경과, 결과로 따져 기전체니 편년체가 하며 어떻고 하며 지겹도록 지식을 암기시키는 역사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진절머리가 나는 암기과목으로 기억에 남을 뿐이다.

역사교육은 사관에서 시작해야한다. 사실(事實)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 사실(史實)을 해석하는 것이 역사공부다. 史實이란 史觀이 없이는 곤란하다. 史觀없는 事實은 史實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한 사관이란 어떤 것인가? 사관은 민주의 입장에서 보는 역사도 있고 양반이나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보는 사관도 있다. 입중의 입장에서 본 事實은 민중사관(民衆史觀)이요,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본 事實은 영웅사관(英雄史觀)이다.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영웅사관에 입각한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노예의 머리에 주인의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일이다. 지난 금성교과서 파동 때 조중동과 재벌 등 수구세력들이 금성출판사가 만든 역사교과서가 빨갱이들이 만든 책이라면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민중사관의 냄새 때문이다. 노동자 머리에 주인의 가치관을 심어 주는 교육. 그것이 국정교과서를 고집하는 이유요, 학교 교육을 통해 내일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에게 세뇌시키는 교육이다.

얘기가 옆으로 흘렀지만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관을 통한 역사인식 즉 역사를 보는 안목을 체화하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못하면 차라리 민중사관이니 영웅사관이니 식민사관이니 기독교사관이니 불교사관...과 같은 역사인식의 안목을 키워주기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 교육현장에는 민중사관은 빨갱이 사관이요 식민지사관에 가까운 역사를 전통사관정도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식이란
‘오늘의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도록 한 선조들에 대한 빚(부채)‘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만큼 민주화된 세상에서, 문화적인 여건에서, 지식을 전수해 준... 선조들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이 없으면 어떤 모습의 인간이 되는가? 자본주의가치 , 신자유주의라는 가치관에서 보면 '내가 이정도의 지식을... 이 정도의 자유를..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누리는... 이 정도의 인권이니 복지를 향유하는 것은 저절로 온 것으로 알거나, 돈의 반대급부로 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니 인권이니... 그런 것들은 앞서간 선배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피눈물로 얻게 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백성들이 집단살상을 당한 사건. 그것도 수만명이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재판도 없이 빨갱이로 몰려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이 4·3제주항쟁이다. 역사의식이 거세당한 국민들은 아직도 4·3항쟁은 빨갱이가 저지른 폭동으로 알고 있다.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세월동안 희생자들을 범죄자 취급당하며 살아 왔다. `제주 4 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됐지만 아직도 진상규명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살의 섬. 제주도는 영원히 한의 섬으로 남을 것인가? 63주년을 맞는 제주도민이 맞는 봄은 아직도 봄이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8 07:51



이 기사는 필자가 학교에 재직시절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얘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자기가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인가? “라고 학생들에게 불으면 ‘돈, 여자 권력, 명예…….’ 이렇게들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그건 누구나 갖고 싶은 거지. 그걸 일컬어 희소가치라고 하는 거야. 희소가치[稀少價値]라는 것은 드물고 적기 때문에 인정되는 가치란다. 다이아몬드와 물을 보면 알지. 물은 하루만 없어도 큰일 나는 소중한 물건인데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살지 않니? 그 다이아몬드 값이 비싼 이유가 희소가치 때문이라는 거야.

 그런데 희소가치라고 하는 그 돈과 여자와 권력…….그런 걸 어떻게 자기가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란다. 지금부터 그 얘길 해보자.(이런 얘길 하면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낚시꾼이 고기를 많이 잡으려면 낚시도구만 가지고 아무렇게나 낚시를 던져놓고 기다린다고 되는 게 아니란다. 어떤 바다에는 어떤 물고기가 많고 어떤 물고기는 무슨 먹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아야 원하는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은 낚시꾼처럼 물고기만 잡겠다고 덤비니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지 않겠니?(그렇게 기를 쓰고 잠을 자던 아이들이 이번 시간에는 잠을 자겠다는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내친 김에 ‘한 시간 특강을 하자’ 마음먹고 시작해 본다)

                                                         <사진자료 : 네이버 이미지에서>

-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

길을 가다가 첫눈에 참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고 하자. 그렇다고 “야! 너 나하고 결혼하자!”하고 덤비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순서를 밟아야 할까? 희소가치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현상에는 겉과 속이 다르다. 사과 껍질이 빨갛다고 속까지 빨간 건 아니다. 본질을 모르고 현상이 본질이라고 착각한다면 그 희소가치를 내 것으로 만들기는 영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그 본질을 찾는 여행을 해보자.

- 겉과 속은 다르다 -

우선 ‘어떤 바다에는 어떤 물고기가 많이 사는가?’를 안다는 것. 그게 중요한거야. 그렇다면 그 바다와 낚시, 미끼 그리고 낚시장비는 어떤 것인가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가치를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않니? 그런데 그 희소가치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살아가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니?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 쓴 시라도 그 시를 해득할만한 안목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시의 진가를 모를 수밖에 없단다. 어디 시만 그렇겠니? 정치자금을 준 대가로 특혜를 받고 탈세를 하고 내수가격을 올려 치부하는 재벌의 정경유착을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어떻게 세상이 바뀌겠니?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수준만큼 보이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니? 이런 사람들일수록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무능이나 운명 탓으로 돌리기 마련이거든…….  

                                                        <사진 : 네이버 이미지에서>

희소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옛날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걸 먼저 알아야 한단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왜 농민들은 죽을 지경으로 심한 노동에 시달리면서 일했는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이런 역사를 배워야 하고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그런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철학을 배워야 한단다.

뿐만 아니라 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돈을 벌겠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란다. 그 돈의 흐름이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경제나 경제사를 배워야 한단다.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나 수학을 잘하면 출세도 하고 훌륭한 사람대접 받는 건 생각해 보면 웃기는 얘기란다. 영어나 수학이 살아가는데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어나 수학은 살아가는데 필요하기는 하지만 모두가 영어와 수학을 그렇게 깊이 배울 필요가 있겠느냐는거지.

그러나 이게 옳은지 저게 옳은지 판단하지 못한다면 인생을 실패할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지 않겠니?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세계관이나 철학을 학교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그런 건 중요하다고 취급도 하지 않는 학교가 우습지 않니?(이 문제도 후에 자본주의의 본질을 배우면 이해할 수 있단다)  

먼저 원하는 물고기를 낚기 위해 우선 역사부터 알아보자.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역사란 어떤 것일까? 지금은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이건 필요한 역사적 지식이다‘라고 선별해 골라 묶은 ’국정교과서‘라는 걸 배우게 했지. 요즈음 그 속셈이 드러나고 말았지만 그 국정교과서를 만들던 국정교과서 편수관들이 일제시대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일본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교과서를 그렇게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니? 

특히 고대사를 많이 배우게 하고 현대사는 거의 배우지 못하게 한 이유도 말이다. 하여간 국정교과서라는 걸 배우면 암기한 지식의 량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단다. 이제부터 그 역사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알아보자.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교과서에는 옛날사람들이 살아 온 내력이라는 게 무조건 ‘아무게네 집에 벼를 몇 섬하고 노비는 몇이나 있었고…….’ 이런 지식을 많이 암기하도록 잡다한 지식을 나열해 놓은 식이었단다. '광개토대왕이 장수왕이 몇 년에 태어나 몇 년에 죽었다든지 하는 지식보다는 농부들이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일하지 않은 양반들이 호의호식하며 살았는가?' 그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극을 보면 왕이나 양반은 인기도 있고 잘생긴 사람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뭐가 모자라도 한 참 모자라는 사팔뜨기, 팔푼이가 등장해 양반의 고귀한 삶의 조역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상놈들은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생겼고 못났으니까 저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란다. 그런 걸 자꾸 보다보면 차차 나도 못 배우고 못났으니까 가난하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운명론자가 되고 마는 거란다.

이렇게 나와 무관하게 보이도록 쓴 역사를 영웅사관, 또는 왕조사관이라 고 하는 거야. ‘어떤 색깔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느냐’ 그것도 없이 역사적 지식을 많이 안다고 훌륭한 사람 취급받는다는 건 웃기는 얘기 아니니?(텔레비전에서 돈을 걸어놓고 이렇게 단편적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가의 여부로 보상을 해주는 것도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일반인도 아닌 학생의 상대로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영웅을 만드는 ‘골든 벨을 울려라’와 같은 프로그램도 그런 아류라고 볼 수 있단다.)

나와 무관한 역사적 지식이라는 걸 배우는데 내 소중한 인생을 허비해야 한다는 건 좀 생각해 볼 일이 아니겠니? 그래서 내가 민중이면 민중사관에 의한 역사를, 내가 지배계급에 속한다면 영웅사관이나 왕조사관에 의해 씌어진 역사를 배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분명한 사실은 역사를 배우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내 민족이 우리 문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걸, 우리 선조들이 피땀흘린 대가로 내가 이정도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역사의식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런 역사는 가짜라는 거지. 그런 역사는 배울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개인의 부귀영화를 누렸다면 그 배신으로 다수의 동족이 당한 고통을 덮어둔다면 누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할 것인가?

역사는 안다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요, 나의 정체성을 깨닫는 일이다.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깨닫지 못하는 역사는 가짜다. (계속)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19 06:38



87년 민주화 대투쟁 전후 노동운동단체가 중점사업으로 했던 교육 사업에는 역사과목이 필수였다. 제도권교육에서 국어, 영어, 수학이 필수과목이지만 당시 운동단체에서는 철학, 경제, 역사, 노동법과 같이 세상을 볼 줄 아는 안목과 관련된 그리고 지신과 민족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데 공부에 중점을 두었다고 기억된다. 운동단체가 역사에 관심을 뒀던 일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학교교육이 역사를 암기과목으로 ‘서기 몇 년에 무슨 사건,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 그 원인과 경과, 결과를 베껴서 외우는’ 식의 역사공부를 해 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역사공부는 사전적 지식을 머리속에 옮겨 놓는, 그래서 역사의식을 깨우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였다.

역사란 무엇일까? 역사를 말하라면 E.H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를 연상한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수천만년동안 살아 온 사람들의 생활과 일어났던 ‘모든 사실‘ 안다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한다고 할 때 이렇게 수천만년 전에 일어 났던 모든 일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 과거에 있었던 일 중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일. 그런 일들을 앎으로서 우리의 삶이 보다 더 풍요로워지고 보다 더 알찬 내용으로 채워지게 하기 때문에 역사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지식은 보는 사람들의 안경(史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아는 전문가의 눈을 통해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 전문가가 어떤 안경을 썼는가 하는 게 문제다. 그걸 사관(史觀)이라고 한다. 사관에는 영웅사관도 있고 민중사관도 있다. 불교사관도 있고 기독교 사관도 있다. 민족사관도 있고 식민지사관도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영웅관이거나 식민지사관에 의해 씌어진 역사책이고 그게 역사라고 배워오고 있다. 역사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그런 지식, 그 지식의 양, 암기한 기억력을 서열 매기고 우열을 가렸다. 제도권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증주의라는 외피로 씌어진 식민지사관에 의해 기록된 역사를 공부한 것이다.

나는 재벌이 아니라 평생 서민으로 살아갈건데 민중사관이 아닌 영웅사관이라는 안경에 비친 역사를 알면 어떤 현상이 일어 나는가? 노동자가 영웅사관을 배우면 사람은 노동잔데 생각은 경영자가 된다. 예를 들면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내가 노동력을 제공한 댓가로 임금을 받는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 사장님의 은혜로 내가 입에 풀칠을하고 있으니까 내 몸이 바스라질 때까지 사장님의 은혜를 갚고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웅사관으로 역사를 배운 사람이 많으면 누가 좋을까? 지난 역사교과서 파동 때 재벌들이 금성출판사 교재를 기를 쓰고 거부했던 사연을 알만하지 않은가?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 왕조사관에 의해 기록된 역사책을 보면 왕의 일거수일투족이 곧 역사라고 써 놓았다. 어느 왕이 몇 시에 기침을 하셨고 몇 시에 수라를 드셨다는 것. 왕이 몇 시에 자고 무슨 말을 했는가? 재임기간이 몇년이고 어떤 사람이 왕이 되고 그 사람 다음에는 무슨 왕이 즉위했고... 이걸 역사라고 배웠다.(역사가 아닌건 아니다) 그런 역사는 ‘왕조사관’에 의해 씌어진 역사다. 이런 역사는 평생 노동자로 살아야 할 나의 삶에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모든 학문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면 배울 필요가 없다. 왜 역사를 배우느냐는 것은 나를 알기 위해서다. 오늘이 있게 된 과정, 내가 그 과정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 역사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 정치사와 경제사, 문화사 종교사... 그런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됐는냐?’ 하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역사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역사를 어떤 안경을 끼고 보느냐?’ 하는 역사관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식’이다. 역사공부를 한 목적이 ‘역사에 대한 지식을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안다.’는 그런 역사공부는 관념화된 지식의 습득이다. 예를 들면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자유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 이 자유를 누리게 된 오늘의 나는 역사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내가 먹고 있는 음식. 의복. 그리고 문화적 혜택을 비롯한 오늘의 모든 것이 과거의 희생과 투쟁의 결과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철철이 피는 꽃을 보고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런데 그 꽃을 피우기까지의 개체가 쏟은 눈물겨운 혼신의 노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꺼무튀튀한 흙속에서 그런 신비한 색깔의 꽃을 피워낼 수 있겠는가? 역사는 길가의 이름 모르는 작은 식물 하나하나가 피워낸 절묘한 색깔의 꽃처럼 오늘의 네가 만나는 현실은 과거에 살아왔던 이들의 꽃이라는 사실. 그걸  아는 것이 역사의 식이요, 역사를 바르게 아는 것이다. 농부의 고마움을 모르고 먹는 음식은 과정이 생략된 지식의 암기처럼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지 못한다. 제대로 된 역사공부는 계급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역사. 그리고 오늘의 현실이 투쟁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한지 못하는 한 올바른 역사 인식이란 없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