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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

성직자가 되고 싶었던 어린시절 이야기

by 참교육 201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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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처음 만난 충격-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던 일이지만 필자가 성경을 처음 읽으면서 받은 충격(?)은 '경이로움' 바로 그것이었다. '책에 씌어진 모든 것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중학교시절, 신학이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고 개신교 장로교회의 고려신학파 목사님이 가르쳐 준 성경은 나의 삶의 모든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열쇠로 받아 들였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은 후에 그 무시무시한 지옥에 갈 수도 있는데 왜 하느님을 믿고 천당에 가려하지 않느냐? '무서운 하느님, 공포의 하느님. 이게 내가 처음 만난 하느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걸 믿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독학을 하던 나는 하루종일 일에 지친 몸으로 새벽기도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야간 공부를 계속했다. 순진하기도 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었는 청소년기의 나는 '성서가 나의 삶의 모든 것'이었고 '성서대로 사는 것'이 나의 전부였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나이가 들면서 험한 일, 억울한 일도 만나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닌데... 나만 행복할 수 있는가? 나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는 어려움과 힘든 일도 만나야한다는 것,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기주의는 나쁘고 개인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논리는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해 하면서 뭔가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다.

-종교의 이데올로기성-

착하게 사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덮어버리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도 보게 된 것이다. 전두환이 광주항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대통령이 됐을 때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은 게 없다'면서 목사님들이 그를 위해 조찬 기도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몸서리를 쳤다. 종교가 본질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종교가 권력과 결탁할 수 있다는 사실과 종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훨씬 뒤에나 알았다. 또한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 왜 독재권력 사회에서 뿌리내릴 수 없는 가를 알지 않고 믿는 종교는 맹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1995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종교를 갖고 있는 인구의 비율은 무려 50.72%나 된다고 한다. 한국인 2명중 1명은 어떤 신이든지 간에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인구중 45.67%는 불교를 믿고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 신도의 비율은 각각 38.77%와 13.06% 였다. 한국사회의 종교인구의 절대 다수가 이 세 종교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땅에 천국'을 세우겠다는 신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날이 갈수록 흉악 범죄가 늘어나고 돈이 되는 일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감각주의 향락문화가 비뚤어진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그 가운 데 깊숙이 종교인들이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추수감사절이면 칠면조를 특별사면 해주면서 죄 없는 이라크 국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미국대통령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를 생각한다. 박홍신부의 모습과 보안법폐지를 결사적으로 막겠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사랑을 가르치는 하나님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한 손으로는 군수산업으로 돈벌이를 하면서 한 손으로 사랑을 말하는 종교인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물론 문익환 목사님이나 문규현신부님과 같은 분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예수라는 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약자의 아픔을 나누어 지겠다는 가장 사람답게 살다 가신 의로운 분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끊임없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거룩하게 폼나게 살기 위하여 가롯 유다처럼 돈과 예수를 바꾸면서 겉으로는 가장 선한 채, 회칠한 무덤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만 예수가 없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예수님이 가장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과 돈을 사랑하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예수의친구가 되겠다는 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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