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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by 참교육 201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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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세상을 삐딱하게 부정적으로만 봅니까? 좀 긍정적으로 볼 수 없습니까?” 교육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긍정적으로 보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사실이나 생각 따위를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사사건건 따지거나 시비를 가리지 말자는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져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좋은 것이 좋다'거나 '부정적을 보지 말라는 사람들은 자기 약점이 많아 그 약점을 감추기 위해 대충 넘어가자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사회현상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기능론과 갈등론으로 사회를 보는 거시적 관점이요, 하나는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과 행위의 개인적 의미에 중점을 두는 미시적 관점이 있다. 

                                              <사진 : 베버와 마르크스-출처 '네이버 이미지'에서>

여기서는 거시적인 관점 즉  기능론적 관점과 갈등론적 관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기능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사회문제란 있을 수밖에 없고 능력에 따라 빈부격차나 차등이 존재한다고 본다. 기능론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회문제란 당연한 것이며 그런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본다. 사람이 유기체이듯이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도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는 기능주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는 사회란 사회의 각 부분은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통합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며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사회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베버를 비롯한 보수적인 사람들의 사회관이다.

이에 반해 ‘부정적으로 본다’는 갈등론은 사회란 희소가치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 강제와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간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투쟁이 반복되며 이러한 갈등이 사회변동에 기여한다고 본다. 사회가 구성요소들 간에 모순과 갈등, 대립과 긴장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갈등론은 사회구조는 억압되어 있고 잘못된 구조이므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소유하지 못한 계급간의 대립과 투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진보적인 사람들의 사회관이다.

 사회를 거시적인 관점이나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과 상관없이 시비를 가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와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는 동안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면서 민족을 배신하거나 독재권력과 야합해 민중을 배신한 대가로 자신의 이익을 챙긴 세력들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를 싫어한 나머지 시비를 가리는 것을 싫어 하면서 나타난 풍조다. 그들은 바른 말을 하거나 사실을 사실이라고 하면 ’빨갱이나 하는짓’이라고 색깔을 씌우거나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며 좋은 게 좋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란 ‘좋은 것은 좋다‘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도 좋고 나쁜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다. 박정희 시대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박정희시대는 데모가 없었던 것은 정치가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위가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할 말은 많지만 폭력이 무서워 침묵하거나 바른 말을 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계산적으로 침묵하는 현실을 두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다거나 정치를 잘해서 그렇다고 해서는 안 된다.

입이 있어도 바른 말을 하지 못하거나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좋은 게 좋다‘고 얼버무리는 사람이 사는 사회는 더더욱 그렇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비판이 허용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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