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영재만 필요할까? 제대로 된 사회라면 국가경영을 할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도 있어야 하고 기계를 다룰 기술자나 병을 치료할 의사도 있어야 한다. 학교가 의무교육기간을 두고 보통교육을 실시하는 이유도 민주사회에 필요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영재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학생이 전부 영재일 수도 없지만 영재이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 내야할 학교가 영재만 키우겠다고 예산을 집중투자하고 수월성만 외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10년만에 전국 초등학교 4~6학년생을 대상으로 진단평가를 치렀다. 사진은 청운초등학교 학생들이 가림막을 세운 채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겨레신문에서->
재능이 있어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배움의 길을 막을 수 없다는 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기회균등이다. 이러한 보편적 가치까지 무시하고 평준화를 깨고 자사고니 특목고를 설립하고 영재학교도 모자라 외국인 학교까지 세우면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한가? 세계화의 바람은 그나마 유지되어 오던 교육의 평준화 정책이 수월성우선정책으로 바뀌면서 초등학생에까지 일제고사를 시행해 학생과 학교, 지역까지 서열화시키고 있다.
사회양극화와 함께 우리사회가 풀어야할 시습한 과제가 교육양극화 해소다. ‘가난의 대물림을 교육으로 끊겠다’면서 서울시는 2012년까지 모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1개 이상의 영재학급을 만들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2007년 전국 자사고 6곳의 재학생 4907명 가운데 기초생활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등 저소득층 자녀는 0.52%인 26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강원 횡성 민족사관고와 부산 해운대고에는 저소득층 가정 학생이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말로는 영재학급이라면서 사실은 SKY 준비반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연간 수천만원이나 하는 자사고는 미국의 수학능력고사(SAT) 점수까지 가산점을 줘 학생을 선발하고 외국어 학교는 법으로 금지한 재학생들의 어학연수를 조직적으로 주선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교육개발원(KDI)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특목고의 효과가 학교 교육의 효과라기보다 좋은 환경과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을 선발해 얻게 되는 선발 효과’임이 밝혀진 이상 수월성이며 특목고 정책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 마땅하다.
세계화시대 영재를 길러 내는 일이란 소홀히 할 수 없는 국가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구체적인 프로그램, 전문 인력의 확보도 없이 영재 교육원이나 영재학급을 설치 운영한다는 것은 관료주의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오죽하면 ‘영재학교에는 영재가 없다’는 말까지 나올까? 영재 판별 능력과 기준은 물론 영재 교육 전문가도 프로그램조차 없이 운영되는 영재학교가 제대로 영재를 길러낼 수 있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준비도 없이 탁생행정으로는 영재교육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공공성과 공익성을 토대로 운영되어야할 학교에서 영재 학급 당 700만원 이상 학교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라는 지침은 과연 교육의 기회균등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라도 있는가? 공교육을 포기하고 영재만 키우겠다는 발상을 바꾸지 않는 한 학교가 교육다운 교육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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