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000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선생님이 어떻게 내게 전화를 다할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말고요. 제가 어떻게 선생님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97년 마산이 연고지인 나를 전교조경남지부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울산하고도 방어진에 발령을 내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이듬해 겨우 연고지 가까운 곳이라고 고성에서도 오지인 동해중학교로 발령을 내 고생을 시키다가 겨우 연고지로 보내 준다고 발령이 난 곳이 0000고등학교였다.

전교조조합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사람취급을 하지 않던 학교장. 심지어 일요일 서울에서 집회라도 있는 날이면 교장실에 불러 ‘내일 집회에 참석할 것인가?’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하면 ‘어제 집회에 참석한 사유서를 내라’는 둥 고문을 당하다시피 했다. 이 시절 나와 가까이 지내는 교사라도 있으면 개별적으로 교장실로 불러 ‘선생님! 그 김 아무개 선생하고 친하면 선생님이 불이익을 당할 건데...’라며 은근히 겁주고 인간관계까지 고립시키던 시절.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나에게 정말 든든한 힘이 되 주시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000선생님 아시죠?” “예, 알고말고요. 조합원 중에서도 아주 열심히 일하던 000선생님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대답을 듣기가 바쁘게 “선생님, 그 선생님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아니 왜요? 그 선생님이 어째서요?” 놀라서 반문을 했더니 선생님 대답에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자기가 계산해 보니 아마 승진이 될 만큼 점수가 모아진 모양이었단다. 그래서 교장선생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온갖 못할 짓(?)을 다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조합원이 아니든지, 탈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라면서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점수가 무엇이며 승진이 무엇이기에 신의나 신념, 동지애를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변절의 길을 걷는단 말인가? 전화를 끊고 한참동안 배신감(?)과 허탈감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출세를 위한 길이라면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배신도 서슴지 않는 사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교장이나 유명인사가 되어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고 목에 힘주고 군림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제자들에게 ‘순수하게... 정의롭게 살아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정직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제자들에게 올곧게 가르쳐 주면 그 제자가 훗날 “선생님! 고맙습니다”며 인사 받을 수 있겠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학교에서는 사람답게 살도록 가르치지도 가르칠 수도 없다. 고등학교 사회 책을 보면 전체 11가지 사회과목을 고등학교 1학년 때 ‘공통사회’라는 과목으로 뭉뚱그려 한권으로 압축해 놨다. 지리를 전공한 선생님도, 역사를 전공한 선생님도, 경제를 전공한 선생님도 그 공통사회를 가르쳐야 한다. 물론 한 두 달간 연수를 받긴 받아 공통사회 교사 자격증을 받지만 4년간 전공한 과목 외 대학4년을 전공한 남의 과목을 쉽게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는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고등학교 2, 3학년 때 배우면 되겠지...’ 하겠지만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자연반과 인문반으로 나뉜다. 자연반으로 간 학생은 인문과목을 윤리나 국어, 국사정도는 배우지만 정치도 경제도 사회문화도 배우지 않는다. 결국 정치의식도 민주의식도 사회의식도 없는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 셈이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민주의식도 정치의식도 없는 주권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긴 지식은 가르치고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는 요리할 재료는 준비해 놓고 요리를 할 칼이나 도구를 주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가 선(善)’이 되는 사회에서는 막가파식 승자가 승리자다. 사기를 치든 도둑질을 하던 돈만 있으면 존경받는 사회에서 신의니 의리가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공무원 사회든, 학교든 군대든... 우리나라 어떤 직장에서든 ‘바른말 하는 사람이 승진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소외당하는 풍토,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고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한 번 빼진 사람으로 찍히기만 하면 인정받고 승진하기는커녕 승진이고 출세고 물 건너간다.

갈수록 살기 어렵다고들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렇거니와 바르게살기가 날이 갈수록 더더욱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배신을 해도 권력만 잡으면 승자가 되고 쌀 직불금을 타먹든 지위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개인의 치부에 이용해 부를 축적하건 ‘부자만 되면...’ 인정받고 대접받는 풍토에서 신의도 정의도 사치다. 이런 풍토에서 참교육이란 웃기는 소리다. 똑똑한 사라보다 상사들의 눈치를 살펴 알아서 기는 풍토에서 ‘바르게 자라라, 올곧게 살아라’ 가르치는 선생님들! 그런 선생님이 대접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사회에서 ‘이 시대 스승이 없다’는 조․중․동의 말, 정말 틀린 말이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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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8.11.07 11:53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게 보셨습니까?
      저는 교육과정이 통합교과로 편성되는 게 옳다는 관점에서 썼는데,,,,
      이과 출신이 민주의식이나 정치의식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요.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뜻에서 쓴 글이 그렇게 들렸군요.
      제가 공부를 더 많이 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이과에서 사회과목을 안 배우는 건 맞습니다. 제가 사회과목 교사로 정년퇴임할 때 고등학교에서 사회문화를 담당했거든요.

      혹 이과에서 문과과목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는 지 모르지만 현행 교육과정은 그렇게 짜여 있지 않고 선택과목으로 사회과의 경우 2~4과목을 선택해 배우게 돼 있답니다.

      그럼....

      2008.11.07 15:0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