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역사2021. 3.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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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유신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5·16’이 혁명이라니...? 그리고 또 이념은 무엇인가? 혁명을 뒤엎으면 혁명인가? 4·19혁명정부를 총칼로 뒤엎은 쿠데타를 혁명이라니... 도대체 헌법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니...? 박정희가 만든 유신헌법을 읽으면 코웃음이 나온다. 헌법 전문은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시작한다. 4·19혁명을 무너뜨린 것이 부끄러운 줄은 알았는지 4·19를 ‘의거’라고 끼워 넣었다. 하긴 ‘국민투표(투표권자는 국민이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하여 개정’했으니 합법이라고 해야 하나?

 

유신헌법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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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으로 세운 정부를 출범 9개월 만에 무너뜨리고 나타난 박정희가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한다”더니 쿠데타를 일으킨지 11년만에 다시 긴급조치로 헌정을 중단시키고 유신헌법을 만들었으니 혁명은 혁명인데 이런 혁명을 역급혁명이라고 해야하나? 4·19혁명정부는 9개월만이 무능하다고 무너뜨리더니 군사정권은 11년동안 통치해도 또 비상조치로 자기부정을 하고 나서 유신헌법을 만든 사람이 박정희다.

 

<계엄과 국회해산 그리고 헌법 정지까지...>

놀랍게도 유신헌법 제 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이런 헌법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모르니까 민주주의라고 해도 찬성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역사 이래 국민투표가 부결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까?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켰으니 누가 감히 반대표를 던지겠는가? 이런 공포 분위기에서 유신헌법은 국민투표로 통과되고 합법적인 암흑의 시대가 시작된다.

 

<유신헌법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나>

미얀마헌법을 보면 박정희의 유신헌법이 생각난다. 미얀마헌법은 아웅산 수치여사가 대통령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헌법 제 59조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국가와 시민에 대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 부모가 다 미얀마인이어야 한다. 45세 이상이어야 하고 20년동안 미얀마에 거주해야 한다.’고 못박아 놓았다. 또 ‘국회의원의 25%를 무조건 군부에 할당하고 헌법을 고치려면 국회의원 75%가 찬성해야 한다.’고 해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도록 합법화했다.

 

<사진출처 : 고발뉴스-아이엠피터>

 

박정희가 만든 유신헌법에는 「1. 대통령 직선제의 폐지 및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 선거. 2.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 3. 대통령에게 헌법 효력까지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 부여. 4. 국회 해산권 ,법관 임명권, 법률 거부권 등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을 늘려 대통령이 3권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보장. 5.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고, 연임 제한을 철폐하여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해 대통령이 헌법위에 군림하는 초헌법적인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유신헌법은 우리 역사이래 가장 비극적인 사건>

학자들은 유신헌법의 탄생을 우리 역사이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기록했다. ’기본권 제한의 사유로서 국가안전보장이 추가되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조항을 삭제하였다. 또 자유권적 기본권이 약화되고, 노동3권의 주체와 범위가 대폭 제한되었다. 회기의 단축과 국정감사권의 부인 등으로 국회의 권능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내각제 국가에서 국회의 내각불신임권에 대응하기 위해 총리에게 주는 국회해산권을 유신헌법에는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주어졌다. 또 대법원장을 비롯한 모든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 또는 보직하거나 파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법권의 독립을 위협하였으며 헌법위원회를 설치하여 위헌법률심사권 · 위헌정당해산결정권 · 탄핵심판권 등 헌법재판권을 부여하였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더니...>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이라는 열매를 맺는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더니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시민단체들이 전권을 비판하면 “왜 세상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느냐”며 힐란(詰難)한다. 정말 그런가? 3·1운동이 없었다면, 제주 4·3항쟁,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촛불항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정도의 민주주의가 가능했을까? 주권자가 주인으로서 책무를 포기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3·1운동이 그랬고, 제주 4·3항쟁,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촛불항쟁이 그렇지 아니한가? 피흘려 찾고 지킨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주인은 주권자인 모든 국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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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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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얀마사태를 보면 과거의 우리가 생각이 납니다

    2021.03.22 06: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국민들이 헌법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2021.03.22 06: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국가가 해야할 일이 많기는 하지만 헌법의 평생교육의무에서 헌법교육 필수과목으로 넣었으면 좋겠어요.

      2021.03.22 11:57 신고 [ ADDR : EDIT/ DEL ]
  3. 유신헌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첨 봅니다...그야말로 법위의법이네요..

    2021.03.22 07: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지금 미얀마가 겪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박정희 시대를 생각합니다.
    제가 그 시대에는 아주 어린 나이라 경험이 없지만, 그 뒤 전두환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녀서 그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권위주의 군사문화가 남아있는 시절...

    2021.03.22 07: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의 경우 이웃에 사는 누구누구가 잡혀ㅆ다더라...그런 소문 후 몇달 뒤에 나온 사람을 보면 멀쩡했던 사람이 이상하게 변했더라고요.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 가 폭력과 고문을 얼마나 당했으면... 정말 소릅끼칩니다. 그 후예들이 국민의힘이잖아요.

      2021.03.22 12:01 신고 [ ADDR : EDIT/ DEL ]
    • 제 시대에는 이웃이 그런 적은 없는데 아버지 세대 이야기는 더러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 이종사촌이 사법고시 3차 면접에서 연좌제에 걸려 탈락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참 버라이어티한 한국입니다

      2021.03.22 22:13 신고 [ ADDR : EDIT/ DEL ]
    • 연좌제...ㅜ 생각만해도 소름 끼칩니다.

      2021.03.23 07:11 신고 [ ADDR : EDIT/ DEL ]
    • 그러게요. 8촌 중 누가 일본에서 건너온 간첩으로 처벌받아 그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었는데, 아버지 이종사촌은 그 사람과 촌수가 멀다보니 들은 이야기가 없다가 나중에 탈락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하네요. 그 뒤 그 분 인생이 어찌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2021.03.23 08:03 신고 [ ADDR : EDIT/ DEL ]
    • 연좌제... 빨강색만 칠하면 사돈 팔촌까지 멸문지화를 당하는... 아직도 빨갱이 종북을 울궈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21.03.24 07:06 신고 [ ADDR : EDIT/ DEL ]
  5. 역사는 흐르는 것이고
    그때의 상황을 오늘의 잣대로 평가할 수만은 없겠죠..

    2021.03.22 07: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역사 공부를 하는 이유는 역사의 잘잘못을 가려 다시 그런 일이 만복되지 않게하기 위해서지요. 덮어두면 가해자들이 좋아하겠지요. 지금도 죄없는 순진한 대다수 구김들이 그 피해자들인데요.

      2021.03.22 12:03 신고 [ ADDR : EDIT/ DEL ]
  6. 3·1운동이 없었다면, 제주 4·3항쟁,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촛불항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정도의 민주주의가 가능했을까?이 말씀에 너무나 공감합니다.

    2021.03.22 13: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역사의식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무임승차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감샇는 마음조차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21.03.22 17:49 신고 [ ADDR : EDIT/ DEL ]
  7. 옛날 학교다닐 때 배웠던 것같아요.
    지금 다시 상기해보니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1.03.22 23: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이런 내용을 국민이 좀 많이 알아야하는데...ㅠ.ㅠ

    잘 보고 가요

    2021.03.23 05: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헌법/헌법교육2021. 1. 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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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



이승만을 국부로 또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와 수구세력들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1948년 제헌헌법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적시했다. 헌법 전문의 이 조항은 4·19혁명 정부가 4차개헌까지는 그래로였다.

<유신정권이 삭제한 임시정부 법통>

그러나 박정희정권은 5차개헌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부분을 아예 삭제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라고 하여 3·1운동만 남긴 채 임시정부를 삭제하고, 대신 5·16 이념을 삽인한다. 박정희는 총칼로 4·19혁명정부만 뒤집은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법통까지 부정한 헌법까지 유린했다.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하다 쫓겨난 이승만이 국부가 되면 대한민국헌법 전문의 불의에 저항한정의는 무엇이 되는가?

사라질뻔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은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노력으로 어렵사리 현행헌법인 제 9차 개헌에서 살아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에 저항한 3·1운동이 없었다면 상해임시정부가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대한민국은 2차대전 때 일본의 패망으로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임시정부는 1919년 발표된 3·1 독립선언서 및 3·1 운동에 기초하여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망명 정부이다.

<해방은 2차대전의 패망이 안겨 준 것...?>

임시정부는 ‘19193.1 운동 직후 대한국민의회, 상해 임시 정부, 한성정부 등 각지에 수립된다. 그 뒤, 상하이를 거점으로 대한국민의회, 상해 임시 정부, 한성정부 등 국내외 7개의 임시 정부가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40년 중국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광복군이 조직,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다가 1945815일 광복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한 일제의 항복선언으로 국내진공작전을 기회를 잃었을 뿐 우리가 앉아서 얻은 해방이 아닌 것이다.



<노태우정권의 총리직 수락을 거부한 김준엽>

헌법 전문에서 사라졌던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 조항은 6월항쟁으로 9차개헌 현행헌법에 살아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개헌 논의가 한창이던 1987년 여름 어느 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이종찬 당시 민정당 의원을 불러 임시정부 법통 승계를 헌법 전문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것이다. 김준엽총장은 노태우 정권의 국무총리직 제의에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제자들이 많은데 그 정부의 총리가 될 수 없다며 고사한 일화는 후세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헌법의 조문 앞에 있는 공포문으로 헌법 제정의 역사적 과정, 목적, 헌법 제정권자, 헌법의 지도이념이나 원리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전문이 효력에 대해서는 부정설인정설이 있어 개별적인 기본권으로 도출해 내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는 영미법학자들의 견해를 쫓아 본문과 마찬가지로 중요성을 인정, 재판 규범성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한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전문을 부정하고 1948년 정부수립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헌법조차 부정한 논리다.

해마다 제헌절이 되면 재현되는 건국절 논란이며 이승민을 국부라고 주장한 세력들은 4·19혁명도 헌법도 부정하는 세력들의 괴변(怪變)이다. 이들이 이러한 주장은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은혜를 입은 친일의 후손, 4·19혁명을 부정하고 민족분단에 일조한 이승만정권, 그리고 박정희의 5·16쿠데타와 전두환·노태우 살인정권에 복무한 세력들이다. 친일과 친미 그리고 외세에 결탁해 분단을 고착화하고 경쟁과 성장만이 살길이라면 복지를 부정하고 국정농단을 하다 감옥으로 간 이명박·박근혜를 추종하는 태극기부대들이 그들이 아닌가? 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면서 애국이니 법대로..’를 주장하는 그들의 민주주의란 어떤 민주주의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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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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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를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왜곡해서는 안되겠지요
    국가는 유구하지만 정권은 일시적입니다

    2021.01.23 08: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헌법 전문에 3.1운동이 쉽게 써진게 아니었네요.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잘 배웠습니다.

    2021.01.23 09: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각자의 생각이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정부수립일을 건죽절로 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그들은 왜 자랑스런 독립운동의 역사를 애써 지우려 할까요?

    2021.01.24 10: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해야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친일과 군사독재, 유신의 후예가 살아 남기 위해서요.

      2021.01.24 12:44 신고 [ ADDR : EDIT/ DEL ]
  4. 건국절이라는 의미는 일반인들에게는 관심이 적은 분야이기는 합니다 덕분에 잘 알고 갑니다

    2021.01.24 12: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국가의 정체성이 문제지요. 친일과 독재, 친유신의 정당성을 우해서 그들의 존재 근거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2021.01.24 12:46 신고 [ ADDR : EDIT/ DEL ]
  5.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행복이 넘치는 주말되세요~~

    2021.01.24 13: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건국절 논란 종식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1.01.25 06: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1. 1. 1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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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왜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었을까? 주권자인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럴 리가 없다. 그는 헌법이든 주권자든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못 할 것 없이 밀어부쳤다. ‘반공이라는 무기로, ‘통일이라는 무기로 자신의 진로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면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국민을 속이이다 못해 최후에는 지존(至尊)이 되려다 부하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은 인물.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 혹은 유신교육에 마취된 순진한 국민들은 아직도 그를 못잊어 하고 있다.



<박정희의 야망 그리고 헌법개정>

4·19혁명을 짓밟은 박정희 첫 번째 헌법은 혁명공약이었다. 총으로 대의기관인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결정하는대로 그의 야망을 채워 나간다.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권력을이양한다는 공약은 스스로 참신한 정치인이 되어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기 시작한다.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6차개정헌법인 3선개헌을 통해 집권을 정당화 나간다. 결국 그의 야망은 7차개헌인 유신헌법에서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유신헌법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19721227일 제 7차 개헌헌법을 유신헌법이라고 한다.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의 유신이란 한국 헌정사상 7차로 개정된 제4공화국의 헌법이다. ‘평화적 통일지향·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표방한 이 유신헌법안이 개헌반대 발언이 완전히 봉쇄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확정, 국민투표에 회부돼 투표율 91.9%91.5% 찬성으로 의결·공고되어 대통령 취임일인 1227일 공포·시행되었다.

전문과 12126조 및 부칙 11조로 되어 있는 유신헌법의 특징은 전문에 민족의 평화통일이념을 규정하고, 법률유보조항을 두어 기본권 제한을 보다 쉽게 하였으며,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하였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영도적(領導的) 국가 원수(元首)로 하였으며, 정당국가적 경향을 완화하고, 정부가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연대성을 가지게 하였으며, 국회의 회기를 단축하고 권한을 약화하였으며, 위헌법률심사기관을 대법원에서 헌법위원회로 개정하고,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하였으며,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거하도록 하였고, 국민투표제를 채택하였으며, 헌법개정절차를 2원적으로 하였고, 지방의회를 통일달성시까지 구성하지 않게 한 것 등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리>

상해임시정부의 임시헌장에서 입시헌법 그리고 제 1,2,3,4치개헌 헌법에 담긴 기본정신은 국민주권주의와 기본권 존중주의, 그리고 권력분립주의, 기본권 보장, 방어적민주주의, 평화통일주의, 국제평화주의, 수정자본주의적 기본질서, 그리고 법치주의. 그러나 권력에 눈이 먼 박정희에게는 이러한 헌법의 기본정신 따위란 안중에도 없었다. 반공이라는 칼로, ‘부패와 구악을 일소그리고 국토통일을 위해서 방해되는 것이라면 모두가 적이요, 빨갱이로 몰아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스스로 무덤을 판 박정희의 욕망>

박정희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장애가 되는 주권자의 기본권이란 안중에도 없고 헌법 위에 어용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어 무소불위의 대통령, 영도적(領導的) 국가 원수(元首)로 자리를 굳혀 나간다. 놀랍게도 총칼로 민주주의의 꽃 4·19혁명을 짓밟아놓고 그가 만든 헌법에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고 그가 몸담은 정당조차 민주공화당이다. 박정희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 공화주의와는 그 뜻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맞춰 헌법을 제단하고 뜯어고쳐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영도적 국가원수인 박정희 앞에 누가 감히 그에게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었겠는가?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다운 사람 박정희>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다카기 마사오 박정희, 일본에서는 자민당 부총재 오노 반보쿠(大野伴睦)는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되는 박정희의 취임식 특사로 가면서 박정희 대통령과는 (피차에) 부자지간을 자인할 만큼 친한 사이라고 자랑하면서 대통령 취임식에 가는 것은 아들의 경사를 보러 가는 것 같아 무엇보다도 기쁘다고 했다. 박정희는 일본육군사관학교 우등 졸업 기념으로 만주국 황제 푸이로부터 금시계를 하사받으면서 교장인 나구모 중장으로부터 "일본인보다도 일본인 답다"는 칭송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의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모습은 한일국교정상화에서 여지없이 진가를 발휘해 민족의 원한을 일본의 입장에서 마무리하기도 했다.

<박정희를 미화한 국정교과서>

박정희의 딸 유신공주 박근혜는 왜 국정교과서를 만들지 못해 안달을 했을까? ‘국정교과서를 가르칠 수 없다는 전교조가 눈에 가시로 법외노조 처분을 당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효녀가 되고 싶어 했던 딸. 그는 아버지 박정희에게 좋은 딸이 되기 위해 역사를 거꾸로 돌린 역사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아버지의 거짓말을 업그레이드한 유체이탈화법으로 주권자를 유린하다 감옥에 갔다. 박정희와 박근혜가 만든 국정교과서에는 일본의 침략을 '진출', 의병 탄압을 '소탕·토벌'로 기술하고 정부수립을 '건국절',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정으로부터 통치권을 인수한 합법 정부로 건국의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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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헤받은 건 없지만 잊히지는 않습니다...

    2021.01.19 07: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덕분에 다시 한번 유신헌법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21.01.19 07: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누더기 헌법을 만들었네요

    2021.01.19 07: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선생님 아리아리!

    정확한 역사를 알아야겠습니다. 국민이 개. 돼지가 되지 않으려면요!

    2021.01.19 11: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아직 맹종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게 큰일입니다.ㅠ.ㅠ

    2021.01.19 18: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어릴 때 동네 어귀에 커다란 구조물로 만들어진 10월 유신 탑이 기억납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은 시골이었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서 놀던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그러한 것은 철 몰랐을 때의 놀이터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느끼기에 과거의 유물로 더이상 미래에는 나타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2021.01.19 22: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많은 생각이 들어요...

    2021.01.20 06: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1. 1. 1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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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눈이 멀면 이성을 잃는다. 독재자들이 그랬다. 헌법을 통해 본 우리 역사는 정부수립 후 아홉 차례의 개헌 과정을 밟는다. 그중에서 4.19 혁명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자유당 정부가 무너진 후 과도정부가 구성된 후 개정된 헌법에만 유일하게 복수정당제를 보장, 헌법재판소 설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국민의 기본권 보호 강화..’와 같은 주권자를 위한 내용이 담긴 내용의 개헌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역사이래 12명의 대통령 중 주권자를 위한 개헌은 4.19 혁명정부가 유일하다. 


<사진출처 : 한영외고 한국현대사 수업 유튜브>


놀랍게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526·25전쟁 임시수도 부산에서 그리고 6·25전쟁 직후인 1954년 두 차례의 개헌을 한다. 그것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서... 195277일 개정된 1차 개헌은 1950년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여 대통령이 국회에서 재선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당시 여당과 야당은 정치적으로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각각의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여야는 그 해결책으로 두 개헌안의 내용을 절충하기로 하고 여당 안에서 대통령직선제와 국회 양원제를 야당 안에서 국무원 불신임제를 채택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2차 개정은 전쟁 직후인 19541127일에 이루어진다. 1954520일 실시된 제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이 압승하였다. 이에 여당은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하고자 초대대통령에 한하여 3선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표결 결과 국회 재적의원 203명 중 135명만이 찬성하여 한 표 부족으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이틀 후 여당은 '사사오입'원칙에 의하면 2033분의 2135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통과된 것으로 번복하여 선포하였다. 초대대통령에 한해 삼선 제한을 삭제하고 주권제약·영토변경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도입하고 국무총리제를 폐지하며 경제체제를 자유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이었다.

<4·19혁명으로 주권자를 위한 개헌>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사상 처음으로 19487월 제헌헌법 후 13년만에 주권자의 권리 신장을 위한 헌법을 만든다. 이 헌법이 바로 4·19로 이루어진 의원내각제의 3차개헌 헌법이다. 1960315일에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에 대하여 항의하는 학생과 시민의 4·19의거에 의해 이승만 정권은 붕괴되고 과도정부가 구성되었다. 이에 국회는 헌법개정기초위원회를 구성하여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변경한 개헌안을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1960615일 공포하였다.

3차개헌의 특징은 이승만 정부의 개헌과 달리 정부형태의 변경 이외에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현재와 그 역할이 비슷한 헌법재판소를 설치하였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검열을 금지하고, 법률에 의하여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본질적 내용은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본권 보호를 강화한 내용이 담긴 헌법이다. 이어서 이루어진 제4차 개헌은 196011293·15부정선거의 주모자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군중을 살상한 자들을 처벌할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루어졌다.



<박정희는 헌법 파괴자이다>

5차 개헌. 박정희가 종신대통령으로 절대권력자가 되려고 만든 헌법이 유신헌법이다. 19721017일에 박정희는 4·19혁명으로 이루어진 민주적인 헌법을 헌법을 파괴하고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유신헌법을 만든다. 유신헌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횟수의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또 대통령 선출 방식이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관제기구나 다름없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로 바뀌었다. 유신 체제는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모두 쥔 대통령이 종신 집권할 수 있도록 설계된 1인 영도적(절대적) 대통령제였다.

유신헌법은 내용적인 면에서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이념, 그중에서도 정치생활영역에서의 민주주의 이념인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헌법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헌법개정 절차조차 무시한 위헌적 개헌을 통해 탄생한 헌법이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의 공포를 위해 19721017일에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킨다. ‘1017 비상조치라는 당시의 제3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에게는 국회해산권뿐만 아니라 헌법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어떠한 권한도 대통령에게는 없었다.

<종신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의 최후>

5~7차 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5차 개헌의 주요 골자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환원과 참의원 폐지 등이었다. 6차 개헌은 대통령의 3선 허용을 위해 1969년 이뤄졌다.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불리는 7차 개헌에선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연장, 중임제한 규정 폐지와 함께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보장하는 등 막대한 권력을 대통령으로 집중시켰다. 신군부가 주도한 8차 개헌은 대통령의 7년 단임제와 간접선거시민의 기본권 부활유신헌법 독소조항 삭제가 골자다. 박정희의 종신대통령의 꿈은 그의 부하 김재규에 의해 197910·26사태로 18년의 독재정치는 막을 내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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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민을 위한 개헌이 되면 좋을 거 같아요 역사가 제대로 심판 하겠지만 말이지요

    2021.01.14 06: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래야 하는데 우리나라 역사에는 4,19혁명 후 개정한 헌법 외에는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만든 헌법이 없습니다.

      2021.01.14 19:32 신고 [ ADDR : EDIT/ DEL ]
  2. 오욕의 역사입니다

    2021.01.14 07: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어떤 제도이던 장담점은 있기 마련이고
    결국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 같아요

    2021.01.14 07: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라의 주인이 국민인나라를 민주주의라고 하지요. 주인이 주권의식이 없다면 껍데기뿐인 민주주의입니다.

      2021.01.14 19:34 신고 [ ADDR : EDIT/ DEL ]
  4. 우리의 아픈 역사들입니다.ㅠ.ㅠ

    자 ㄹ보고가요.

    2021.01.14 08: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선생님 아리아리!

    답답함으로 가득찬 우리의 역사입니다.

    2021.01.14 12: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나서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헌법을 읽고 알아 헌법대로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21.01.14 19:35 신고 [ ADDR : EDIT/ DEL ]
  6. 헌법의 역사 잘 배웠습니다.

    2021.01.14 22: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세상읽기2020. 12. 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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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나 국화(國花)가 있듯이 국가마다 그 국민이 살아오면서 형성된 시대의 정신. 민족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시대정신(민족정신)이란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이다.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를, 독일은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 일본의 사무라이, 미국의 개척정신을 자기네들의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민족정신)은 무엇일까? 혹자는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헌법에는 홍익인간이 아닌 정의를 우리민족이 지향하는 가치로 정의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정의 인도의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고 해 대한민국의 정신, 시대정신은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 정의임을 밝히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순박하기 이를데 없는 백의의 민족이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어김없이 앞장서 나서 폭력과 불의에 저항해 나라를 지켰던 나라 사랑이 그렇고 외세에 저항해 목숨을 바친 저항정신이 그렇다.


학자들 중에는 민주주의의 연원(淵源)'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혁명에서 찾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선조들은 그보다 훨씬 앞서 인간 존중 사상을 위해 투쟁해 왔다. 100여년간 이어진 고려 무신정권 시절, 75건의 민란이 일어났지만, 그중에 11985월에 일어난 사노비 만적이 일으킨 봉기가 대표적이다. 만적은 권력을 휘두르던 자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천출이었다. 하늘이 사람을 세상에 처음 낼 때는 귀천없이 내시었거늘, 왕후장상의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천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지 않겠는가? 우리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면서 채찍 아래에서 고생만 당하겠는가?”(고려사 열전 최충헌)라며 양반의 폭력에 저항했다.


민주주의의 효시를 말하면 사람들은 흔히 프랑스혁명을 거론한다. 정말 프랑스혁명이 민주주의의 효시인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사상은 1198년 천출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만적의 봉기가 프랑스혁명(1789)보다 무려 600년이나 앞선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왜 인간 평등사상을 주장한 역사를 왜 혁명이 아닌 으로 기술해 놓았을까? 경인년(1170)과 계사년(1173) 이래로 높은 관직도 천예에서 나왔으니 장상에 어찌 타고난 씨거 따로 있겠는가?”라는 만적의 봉기나 동학혁명정신을 두고 프랑스혁명(1789)을 앞세울 수 있는가?



<동학혁명 사상 인내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사상은 평등세상을 주장한 만적의 봉기뿐만 아니다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동학혁명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의 정신은 시천주인시천인내천이다. ‘사람이 곧 한울이라고 주장한 동학의 인간 평등의 사상은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들의 세계를 지향한다부패하고 무능했던 봉건정부에 저항해 만인 평등사상 인내천을 내걸고 나선 동학혁명이야말로 우리민족사 뿐만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내가 동학혁명을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다고 한 이유는 프랑스혁명은 봉건영주에 저항한 부르주아혁명이지만 남녀노소 어린이까지 포함한 만인평등의 인간 존중사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동학혁명의 인내천사상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해 남녀평등을 포함한 평등사상으로 프랑스의 부르주아혁명을 뛰어넘는 온,ㄹ날 민주주의의 평등사상이 아닌가?


<외세에 저항한 3·1혁명>

헌법 전문의 3·1혁명이야말로 외세에 저항한 민족정신이요, 불의에 저항한 민주주의 정신이다. 나라를 잃은지 9,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을 때 우리민족은 외세의 폭력과 불의에 홀연히 일어난다. 3·1혁명이 없었다면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했겠는가? 대한민국의 뿌리는 상해임시정부다. 임시정부의 이념은 불평등의 봉건주의가 아니라 만인펑등의 민주주의다. 우리민족의 불의에 저항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망이 망소의 봉기에서부터 일제의 폭압에 맞서 나선 의병이며, 동학혁명과 3·1운동, 그리고 여·순항쟁, 제주 4·3민중항쟁, 4·19혁명과 광주민중항쟁, 촛불항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 정의가 곧 우리민족의 혼이요, 뿌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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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이 언제나 오려는지요?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2020.12.07 06: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말로는 평등이라면서 약육강식 힘의 논리는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주권자가 깨어나지 못하는 한은요..

      2020.12.07 15:16 신고 [ ADDR : EDIT/ DEL ]
  2. 우리나라의 민족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2020.12.07 06: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우리나라는 워낙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민족이라
    강자의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도 많은 것 같아요
    자생하려는 의지는 극히 일부 소수자에게만 있는 것 같아요

    2020.12.07 07: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권력에 붙어 비겁하게 민족을 배신하고 부역한 자들이지요. 청산을 하지 않은게 더러운 인간들이 살아남는 이유이지요.

      2020.12.07 15:17 신고 [ ADDR : EDIT/ DEL ]
  4. 불의에 결연히 대항하는 민족입니다
    그런 정신들이 계승되어야겠습니다.

    2020.12.07 07: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우리나라 좋은 민족, 코로나도 잘 극복하면 좋겠습니다

    2020.12.07 09: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선생님 아리아리!

    정의가 살아있고 실현되는 사회가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2020.12.07 13: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래서 헌법을 읽어 주권자가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한다면 그런 세상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20.12.07 15:20 신고 [ ADDR : EDIT/ DEL ]
  7. 미국의 이번 선거부정도 이런 문제가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헌법의 정의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 되어야 하는데 미국도 심각합니다.

    2020.12.07 21: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국가를 떠나서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주권자와 정치인의 관계가 뒤바뀐 나라들이 많습니다. 기득권자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겠습니까?

      2020.12.08 04:38 신고 [ ADDR : EDIT/ DEL ]
  8.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우리의 민족정신의 한 단편이네요. 그러고 보니 역사에서 서구의 정의구현을 위한 혁명보다 우리가 먼저라는 게 와닿습니다.

    2020.12.07 22: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존화주의사관 친일 친미사관의 학자들이 만든 세상입니다. 사람은 조선사람인데 머릿속의 생각은 중국 사람, 일본 사람 미국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문화, 우리 역사가 눈에 보이겠습니까? 사대주의 인간들이 만든 세상입니다.

      2020.12.08 04:42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10.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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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시대, 친일세력에게 후대했다고 일제시대가 좋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폭군이라도 따지고 보면 한두 가지는 잘한 일도 있다. 박정희라고 폭정만 한 것이 아니다. 가끔 옳은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4·19혁명 정부를 뒤엎은 쿠데타를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일제가 조선을 침탈한 것이나 박정희가 혁명정부를 뒤엎은 것은 불의한 일이다. 일제가 조선을 강탈한 일이나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을 아무리 미화하려고 해도 정의로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19791026, 오늘은 박정희가 당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 김재규에 의해 생을 마감한지 41년째 되는 날이다. 박정희는 4·19혁명정부를 뒤엎은 반역자다. 반역자가 잘한 일이 있다고 그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독재자에게도 공과가 있으니 잘한 것은 칭찬해야 한다는 말은, 일제 식민지도 좋은 점이 있었고 히틀러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독일에서 그런 발언은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는 일제 강점기 시절을 그기워 하고 독재자를 못잊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제에 혹은 유신정권에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할지언정 드러내 놓고 일제 강점기나 유신을 찬미하고 큰소리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박정희는 재임 기간 중 경부고속도로 건설, 수출 증대, 국민의 소득 증대, 저축 장려... 등 한국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본 인프라를 구축했다며 박정희를 추켜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그가 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속내가 따로 있었다. 예를 들어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처음으로 화훼의 시대를 열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유신시대를 열기 위해 통일을 이용한 사특한 정치행위였음이 훗날 사가들이 밝히고 있다. 또 한일 국교정상화를 일본과의 관계개선 운운하지만 박정희는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비상계엄까지 선포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까지 굴욕적인 식민지살이를 무상 3억달러와 맞바꾼 굴욕이었다.


41년 전, 그는 민주주의을 부정하고 유신헌법을 제정, 종신대통령을 꿈꾸다 그의 부하의 손에 처참한 종말을 맞았다. 그가 집권한 18년은 민주주의를 부정한 기만과 공포의 시대였다. 5·16은 혁명이요, 유신은 한국적민주주의가 아니라 5·16은 쿠데타요, 한국적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포장한 대국민 사기다. 박정희는 불의에 저항하는 양심적인 세력을 반공이라는 무기, ‘국가보안법이라는 무기로 수많은 애국자들을 학살했다. 경제를 살린다면서 경제구조를 대미종속적인 경제로..., 재벌을 키워 서민경제를 말살한 사람이 박정희다. 오늘날 양극화의 뿌리는 박정희의 악덕 재벌은 키워내 서민경제를 파탄 낸 결과가 아닌가?


그들이 얼마나 사기행각을 벌였는지는 정당 이름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5·16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와 김종필은 정당 이름조차 민주공화당으로 포장했다. 독재자 이승만은 전쟁중인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헌법을개정해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했듯이 박정희 또한 419혁명으로 수립된 제 2공화국 헌법을 민의원 참의원 및 지방의원등 대의원 헌법기관을 해산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체제로 바궜다가 그것도 부족해 3번이나 헌법을 바꿔 기어코 유신헌법을 만들어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가 선출하는 참정권까지 박탈한 반민주적인 폭거를 자행한 장본인이다. 박정희가 만든 유신헌법에는 뻔뻔스럽게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기만극을 벌이기까지 했다.



박정희가 만든 유신헌법 제8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했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의 공포정치에 얼마나 불안에 떨어야 했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유신헌법은 가증스럽게도 제9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으나 박정희야말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독점재벌을 양성해 서민경제를 파탄내고 대미, 대일 종속경제구조로 만든 장본인이다.


박정희가 그의 부하 김재규의 손에 죽었지만 박정희가 남긴 유신교육의 마취에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국민들이 많다. ’혁명공약으로, ’국민교육헌장으로, ’한국적민주주의라는 유신교육으로,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분단을 고착화시킨 장본인이 박정희다. 일제잔재청산을 못한 결과가 오늘날 한국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뿌리라면 박정희의 유신교육의 후유증은 그의 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식민지시대를 청산하지 못한 후유증이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가 됐듯이 박정희를 청산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 민족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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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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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 꾹 누르고 다녀갑니다.
    행복한 월요일되세요.

    2020.10.26 06: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모두가 다 좋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드는 분입니다.ㅠ.ㅠ

    잘 보고가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

    2020.10.26 06: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극과 극이지요. 우리역상 박정희만큼 평가가 이렇게 극과극인 사람은 박정희 한 사람뿐이 아닐까요?

      2020.10.26 11:07 신고 [ ADDR : EDIT/ DEL ]
  3. 아직도 그 환상을 못 벗어 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2020.10.26 07: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박정희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촛불 세력들... 친일 세력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2020.10.26 11:13 신고 [ ADDR : EDIT/ DEL ]
  4. 오늘이 그날이군요..

    2020.10.26 07: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우리나라엔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그후론 단 한명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불행입니다

    2020.10.26 07: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보는 눈에 따라 다르지요.
    나쁜 것만 찾는 눈과 좋은 것만 찾는 눈이 있으니....

    2020.10.26 07: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근본적인 이유 하나만... 그는 헌법을 파괴한 사람입니다. 헌법을 어겨도 탄핵대상인데 헌법을 파괴한 사람...

      2020.10.26 11:10 신고 [ ADDR : EDIT/ DEL ]
  7. 벌써 세월이 흘렀군요...역사 책으로만 배웠는데 시간이 덧없이 흘러갑니다.

    2020.10.26 08: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박정희의 공과 과가 확실한것 같아요.
    민주주의를 먼저 이루게 한 건 김재규의 힘도 있었던 것 같구요.

    2020.10.26 10: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김재규에 대한 평가 는 많이 늦었지요. 혁명가인가 학살자인가.... 이제 겨우 운운 뗀 수준입니다.

      2020.10.26 11:11 신고 [ ADDR : EDIT/ DEL ]
  9. 선생님 알리아리!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2020.10.26 11: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주권자가 주인으로 대접받는 세상. 그런 나라를 만든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2020.10.26 11:12 신고 [ ADDR : EDIT/ DEL ]
  10. 좋은 글 잘보고 감동받아서 +공감+구독 누르고 도망갈께요!!ㅎㅎ혹시 시간나실 때 제블로그 잠시 방문하셔서 신생블로그 부족한점 지적 한 번 부탁드릴께요!!😆

    2020.10.26 14: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비밀댓글입니다

    2020.10.26 19:17 [ ADDR : EDIT/ DEL : REPLY ]
    • 우리나라는 박정희를 최고의 지도자로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독재자로서 국민을 못살게 한 독재자라는 평가까지... 극과 극입니다. 피해자를 짝사랑하는 국민들이 있어 국민들의 삶은 더 나아지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2020.10.26 20:01 신고 [ ADDR : EDIT/ DEL ]
  12. 유신정권 시절의 경험한 사람이 아직까지 살아 있고 그런 분들이 정치권에 관여 하면 여전히 악행을 반복을 겪어야 합니다.

    2020.10.26 20: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저도 그 때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마을에 출장을 나가 유신헌법을 홍보하라는 강요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020.10.26 21:20 신고 [ ADDR : EDIT/ DEL ]
  13. 객관성있게 바로 잡아야 할 일들이 많지요
    오늘날 한국의 어지러움과 두파로 나누어진 책임 역시 시작이 어디서 비롯되었나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싯점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의 명예과 보상이 빨리 회복되었으면 합니다

    2020.10.26 22: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첫단추를 잘못 꿰면 마지막 단추는 꿸자리가 없다잖아요? 첫단부 란 식민지시대를 청산못한 잘못이요 둘째는 유신을 청산못한 잘못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기다 시비를 가리는 철학조차 가르쳐 주지 않으니....

      2020.10.27 03:51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역사2020. 10. 16.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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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은 어쩌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아슬아슬하게 비키며 살아남았다. 내가 태어난지 7개월째 되던 1945. 815. 일본 제국의 쇼와 왕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종전 조서를 발표함으로써 193991일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고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는다. 6·25전쟁 때도 그랬다. 영덕에서 채 입학할 나이도 되지 않았지만 부모를 졸라 초등학교(현 초등학교)2개월도 되지 않은(당시는 41일이 학년도 시작이었다) 625일 전쟁을 만나 피난을 간다는게 격전지 포항으로 피난을 갔으니... 용케도 살아남았다.



부마항쟁도 그랬다. 경부 칠곡군에서 교직생활 시작한지 꼭 10년이 되던 해인 197991일 마산여상(현 무학여고)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내가 마산으로 학교를 옮긴지 2개월도 안된 1016일 유신의 종말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사는 현실에 대한 청맹과니였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교사는 교과서나 잘 가르쳐주는 사람... 그것도 대부분 국정인 교과서만.... 교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사람이었다. 세상 물정을 까마득히 모르고 살아온 세월, 만약 내가 마산으로 오지 않았다면 아마 점수를 따서 대구로 들어가 교장을 하다 정념퇴임을 했을 것이다.


제가 내려가기 전까지는 남민전이나 학생이 주축이 된 데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160명을 연행했는데 16명이 학생이고 나머지는 다 일반 시민입니다. 그리고 데모 양상을 보니까 데모하는 사람들도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주먹밥을 주고 또 사이다나 콜라를 갖다 주고 경찰에 밀리면 자기 집에 숨겨 주고 하는 것이 데모하는 사람과 시민들이 완전히 의기투합한 사태입니다. 주로 그 사람들의 구호를 보니까, 체제에 대한 반대, 조세에 대한 저항, 정부에 대한 불신 이런 것이 작용해서, 경찰서 11개를 불질러 버리고, 경찰 차량을 10여 대 파괴하고 불지르고, 이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41년 전, 박정희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이었던 고 김재규씨가 부마항쟁의 현지를 시찰한 뒤 내린 결론이다.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박정희는 10월 유신정권으로 평생 권좌에 앉아 주권자를 노예로 부려먹을 줄 알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박정희를 종신대통령을 하도록 두지 않았다. 부마항쟁이 시작된 후 10일 후인 1026일 박정희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참모 김재규의 손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른바 10·26사건이다. 4·19혁명을 뒤집어엎은 쿠데타 5·16처럼 10·26도 그랬다. 무주공산이 된 대한민국을 탐내던 전두환과 노태우 등 하나회 세력들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체포하고 국권을 침탈하는 제2의 군사반란을 일으켜 역사를 바꿔 놓는다.


41년 전 오늘. 19791016일 철권통치 10월 유신도 부산직할시(현 부산광역시)와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유신에 저항해 부마항쟁이 일어 난 역사적인 날이다. 1016일에서 20일가지,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유신철폐"의 구호와 함께 시위를 시작하자 다음날인 17일부터 시민 계층으로 확산된다. 유신의 저항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날 18일과 19일에는 마산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박정희 유신 정권은 10180시를 기해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66명을 군사 재판에 부쳤으며, 10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군을 출동시킨 후 민간인 59명을 군사 재판에 부쳤다.


우리 민족의 정의감,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 선열들은 구경꾼이 되지 않고 주인으로서 그 몫을 어김없이 감당해 왔다. 노예 취급을 당하며 살아온 민중들이 권력을 가장한 폭력에 저항한 동학혁명이며 나라를 빼앗은 일제에 저항한 3·1혁명이며, 분단과 미군사정권에 저항한 4·3제주항쟁, 독재에 저항한 4·19혁명과 부마항쟁, 전두환 노테우의 학살에 저항한 5·18광주민중항쟁과 6월항쟁이 그렇다. 헌법에 적시했듯이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 그것이 정의요, 우리 민족의 혼이다.




현실이라는 안경으로 보면 역사의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사관... 역사를 보는 안경. 그것도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 역사의식이 없이 보는 역사는 한낱 종이에 적힌 관념적 지식일 뿐이다. 우리 선열들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주인으로서 그 몫을 외면하지 않고 희생을 감내해 왔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대한민국이 이렇게 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사를 배워도 역사의식을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은 혼이 없는 껍데기 지식이다. 나는 나의 주인이요, 역사의 주인이며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우리 선열들의 저항정신인 정의가 우리 역사 속에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 오늘의 나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자, 역사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마항쟁 41주년인 오늘 부산대학교 교정에 뿌려진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청년학도여. 지금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조국은 심술궂은 독재자에 의해 고문받고 있는데도 과연 좌시할 수 있겠는가. 이 땅의 위정자들은 흔히 민족을 외치고 한국의 장래를 운운하지만 진실로 이 나라 이 민족의 영원한 미래를 위하여 신명을 바칠 이 누구란 말인가. 청년학도여!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돌이켜 보게나... 소위 유신헌법을 보라!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무모한 정치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고도 우리 젊은 학도들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회 문제에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너희들의 정열은 어디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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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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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정열로 인해...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잘 보고가요

    2020.10.16 06: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오늘이 있게 한 반석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부마 항쟁이 없었다면 지금이 없었을겁니다.

    2020.10.16 06: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한창 오래된 일인줄로만 알았는데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덕분에 잘 보고 가요

    2020.10.16 07: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세월이 정말 잠간 지나갑니다. 그런데 안타깝기도 부마항쟁이 사람들이 잊고 있습니다. 부마항쟁이 없었다면 6월항쟁이 있었겠습니까?

      2020.10.16 18:32 신고 [ ADDR : EDIT/ DEL ]
  4. 요즘 정치를 보노라면
    유신 때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되는 모양입니다

    2020.10.16 07: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역사, 새롭게 알고갑니다. 이런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2020.10.16 08: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국정교과서에는 그런게 나올리 없지요. 그래서 하루 빨리 주권자가 주인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2020.10.16 18:35 신고 [ ADDR : EDIT/ DEL ]
  6. 벌써 부마항쟁 41주년을 맞이했군요. 이분들이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겠죠.

    2020.10.16 09: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역사2020. 3. 16.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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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용서는 해 주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유대인들의 수난사를 재현해 놓은 ‘야드바셈’이란 역사박물관 출구에 적혀있는 글귀다. 히틀러에게 6백만명이 학살당한 역사를 두고 이스라엘 국민들의 가슴에 새기자는 글이다. 우리국민들은 60년 전, 1960년 3월 15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어제는 경남 마산에서 일어난 3·15의거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코르나 19 때문이기만 할까? 2·28대구의거, 3·15마산의거... 일찍이 민족의 선각자 단재신채호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1. 4할 사전투표: 선거당일 자연 기권표와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전체 유권자 4할 정도의 표를 미리 자유당 지지표로 만들어 투표함에 넣어둔다.

2. 3인조 5인조 공개투표: 미리 짜둔 3인조, 5인조 별로 조장의 확인 아래 투표하여 자유당 선거위원에게 보여준 다음 투표함에 넣는다.

3. 완장부대 활용: 자유당 완장을 찬 사람들을 여럿 투표소 주변에 배치시켜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자유당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한다.

4. 야당 참관인 축출: 민주당 측 참관인을 매수해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구실을 붙여 투표장에서 축출한다.

이승만정권이 장기집권에 눈이 어두워 민주주의를 파괴한 부정선거. 투표함 교체, 개표 시 표 바꿔치기 등 모든 투표구에서 자유당 후보 득표율이 85프로 이상이 되게 할 것... 등을 지시한 부정선거 행동지침이다. 이승만의 자유당은 대선 직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유세기간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이승만의 당선이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당시, 85세의 고령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승만 사후를 대비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 계획을 세운다.

투표함의 30%정도를 이승만 이기붕으로 미리 채워놓고, 선거 전에 미리 이기붕 표로 채우거나 이기붕 표로 채워진 투표함으로 바꿔치기, 선거 전에 미리 이기붕 표로 채우거나 이기붕 표로 채워진 투표함으로 바꿔치기, 선거에 익숙하지 않은 국민들을 지도한다며 3~5인씩 한 조로 투표하게 한 것. 물론 각 조의 조장은 당연히 자유당 후보를 찍게 유도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재물을 뿌리면서 자유당 투표를 독려하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선거인 명부에 올리기까지 했다.

선거 결과는 당연히 이승만과 이기붕이 당선되었다. 그런데 선거결과, 조작을 너무 열성적으로 한 나머지 이기붕의 득표율이 99%를 찍고, 일부 지역은 총유권자를 넘긴 115%가 나오기도 했다. 당황한 그들은 이승만 80%, 이기붕 70%로 줄여서 발표하는 어이없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권자들은 이 기막힌 부정선거에 투표권을 우롱당한 마산시민과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다.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던 경찰은 무차별 발포와 체포·구금으로 경찰과 충돌하게 된다. 1·2차 마산 시위에서는 마산시내 8개 고등학교가 모두 참가 하자 당황한 결찰이 무차별 총기를 발사. 80여명의 사상자(14명 사망)가 발생하고 주모자로 구속된 26명은 공산당으로 몰려 참혹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부정선거에 항의한 3·15의거를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월 11일 3·15의거 후 행방불명이 됐던 마산상고 입학생(당시는 4월 1일이 개학 일이었다) 김주열군의 시신이 27일 만에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중앙부두에 떠올랐던 것이다.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처참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전 국민적 저항과 군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고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6·15 개헌)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4·19혁명은 이렇게 3·15의거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4·19혁명은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난 혁명이 아니다. 장기집권에 눈이 어두웠던 이승만정권은 3·15선거승리를 위해 공무원을 통한 선거운동 망을 조직하고, 전국 경찰에 지시하여 이를 감시·독찰하는가 하면 야당선거일에 학생들의 소요가 두려워 일요일인 2월 28일 등교를 지시한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며 자유당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된 2·28대구학생의거. 그리고 경찰의 총칼에 맞서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마산의거가 없었다면 어떻게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한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은 선열들의 피흘려 싸운 결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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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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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19 의거의 전조 운동이죠..
    벌써 60주년이군요.

    2020.03.16 06: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코르나 19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2.28대구학생의거나 3.15마산의거는 자꾸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2020.03.16 11:48 신고 [ ADDR : EDIT/ DEL ]
  2.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 잊지않겠습니다

    2020.03.16 06: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어제가 3.15였네요.
    뉴스에서 보고 알았는데 올해는 이렇게 지나가는게 안타깝네요.

    2020.03.16 07: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2,28 대구학생의거나 31.5의거 그리고 5,18광주민중항쟁은 일을 수도 잊어서 안되는 우리의 아픈 역사입니다

      2020.03.16 11:50 신고 [ ADDR : EDIT/ DEL ]
  4. 어제였군요.
    최근에 몸이 좀 좋지 않아서...뜸 했습니다.
    아직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종종 방문하겠습니다.

    2020.03.16 15: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그런 곳인데, 지금은 반민주의 선봉에 서는 정당을 골수 지지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2020.03.17 05: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붕의에 맞서 싸우던 정의의 도시가 지금은 불의한 세력들의 텃밭이 되어 있으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루빨리 명예회복을 해야겠습니다.

      2020.03.17 07:01 신고 [ ADDR : EDIT/ DEL ]

민주주의2020. 2. 28.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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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1960년 2월 28일 오후 12시 55분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학생부 위원장이 조회단에 올라 읽은 결의문이다. 8개 학교 총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그 중 12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된 반독재의 횃불은 이렇게 정부 수림 후 대구에서 처음 불타올랐다.



<왼쪽 사진 - 3,15선거 당시 3인조 5인조로 조직된 유권자들 투표소로 가고 있는 모습>


1960년 2월 28일 오후 12시 55분,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학생부 위원장등이 조회단에 올라가 격앙된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자 흥분이 고조된 학생들은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2·28대구학생의거는 1926년 6·10 만세운동,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이은 의거로 전후 학생 운동의 효시가 되기도 한 학생의거다. 2·28 대구 학생의거는 3·15의거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던 역사적인 학생의거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대한민국은....’ 으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4·19는 3·15의거거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마찬가지로 3·15의거도 2·28대구학생도 의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2·28 대구 학생의거는 2018년에 가서야 뒤늦게 '2·28민주운동 기념일'이 법정 국가기념일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2·28 대구 학생의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때는 발췌 개헌(1952년), 사사오입 개헌(1954년), 진보당 사건(1958년) 등 자유당 정권의 실정에 분노하고, 대통령 선거(3월 15일)가 다가온 시기였다. 이승만정권은 장기집권에 눈이 어두워 학생들이 3·15선거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일요일인 3월 15일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이유로 경북고등학교를 비롯해 7개 국공립학교에 등교지시를 내린다. 등교 사유도 토끼 사냥, 영화 관람과 같은 황당한 이유도 있었다. 보다 못한 학생들은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학생부 위원장 집에 경북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학생 8명이 모여 부당한 일요등교 지시에 항의를 하기 위해 시위를 모의했다.


1960년 3월 15일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일이었다. 1959년 1월 6일, 일찍이 대통령 불출마를 표명한 바 있던 이승만(李承晩)은 다시 4선 출마의사를 밝히고, 자유당 조직확대의 일환으로 전국청년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같은 해 1월 22일 대한반공청년단을 발족시켜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획책한다. 2월 10일 유력한 야당의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이 미국에서 사망하게 되자 이승만이 대통령 후보로 단독 입후보 하게 되었다.



문제는 부통령 선거였다. 당시 이승만은 86세의 고령이었으므로 당선 후 임기를 제대로 수행할 지 확실하지 않았다. 대통령 유고시에는 부통령이 그 직위를 물려받게 되므로 여당인 자유당에서는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 선거를 획책하였다. 자유당은 학생들이 야당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에 강제 등교를 시키고, 사전 투표 및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를 실시하는 등 온갖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선거 결과 이승만과 이기붕이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러한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다.


2·28 대구 학생의거나 3·15의거, 4·19혁명은 당시정부의 탄압으로 학생소요사태 혹은 폭동으로 취급해 탄압을 받았지만 그것은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감이었다. 이해관계로부터 초연한 학생들의 정의감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가장 앞장에 섰다. 2·28 대구 학생의거와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독재와 유신 그리고 살인정권에 앞장서서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 이 정의감이야말로 나라를 지킨 버팀목이 아닌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이렇게 학생들의 불의에 저항한 고귀한 정신으로 세워낸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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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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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 기념 행사도 취소 되었을겁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2020.02.28 06: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군요.
    잘 보고가요

    2020.02.28 07: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런 분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 날 우리가 이 정도의 민주주의라도 누리고 있는데... 안타깝지요.

      2020.02.28 11:55 신고 [ ADDR : EDIT/ DEL ]
  3. 2월 28일이 역사적으로 꽤 뜻깊은 날이었다는 것을 알고 갑니다.
    이러한 날에, 아니 내일과 모레,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몰지각한 일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20.02.28 07: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정치2020. 2. 21.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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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 공화당 ▷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1951년 12월 17일 이승만대통령을 당수로 한 보수정당 자유당이 탄생한 이래 무려 9차례 바뀐 정당이 자유한국당이다. 그들은 당이 안팎의 위기에 몰릴 때마다 당명을 바꾸고 당복 색깔이며 로고까지 바꾸면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바꾸겠다’고 엎드려 큰 절을 올린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영국의 보수당은 1834년 당명을 186년간 그대로요, 미국의 공화당은 1854년 이후 166년간 그대로다. 자유한국당은 왜 이렇게 이름을 자주 바꾸었을까?



<법치 바탕의 공정사회 구현, 북핵위협 억지와 안보 우선 복합외교, 민간주도·미래기술주도 경제 발전> 미래통합당의 정강·정책이다. 이제 주권자들도 정당의 정강·정책이란 어차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공허한 구호쯤으로 알고 있지만 이승만이 자유당을 창당한 이래 현재의 미래통합당까지 역사를 돌아보면 법치니 공정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아니 이런 구호와는 정반대로 테러와 암살, 쿠데타로 무법천지 공포사회로 만들었던 장본인이 마래통합당의 전력이다. 진정으로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면 당명이나 당 복의 색깔, 로고가 아니라 과거 그들이 국민과 역사 앞에 저지른 참혹한 죄악부터 반성하고 참회하는게 순리다.


미래통합당 황교안대표가 누군가? 그는 국정농단과 뇌물을 받아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을 구형받은 대통령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 아닌가? 국정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한 일을 문재인정부에 떠넘기는 유체이탈화법으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후안무치하게도 ‘법치’와 ‘공정사회구현’을 주장하면서 실정법을 어긴 박근혜가 무죄라고 우기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진정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국정농단에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과거부터 용서를 구해야 하는게 도리다. 그런데 그들은 친박이라는 이름으로 똘똘뭉처 합법적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제주 4·3항쟁이며 여순항쟁, 보도연맹사건, 대구 10·1 사건,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4·19혁명, 5·18광주항쟁에서 수많은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사람이 누군가? 이승만정권에 복무한 학살의 공범자들, 4·19혁명을 총칼로 무너뜨리고 유신정권에 복무한 사람들, 5·18광주학살의 공범자들이 아닌가? 입맛 열면 ‘법대로..’니 ‘법치’를 말하면서 자기네들은 법을 제대로 지켰는가? 헌법을 어긴 대통령을 법대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풀어 달라는게 법을 지키는 준법 자세인가? 법의 목적이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소린가?


그들이 왜 동족을 빨갱이로, 악마로 만들었는가? 북한보다 수천 수백배 더 나쁜 짓을 한 왜놈들과는 우방이라며 굽실거리면서 ‘빨갱이=악마=종북’는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다. ‘찬탁=빨갱이=매국’ 논리로 분단을 불러온 장본인이 아닌가? 빨갱이와 반공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었던 정권, 분단이 필요한 정권이 누구인가? 왜 이승만이 반공정책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권이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고 3s정책을 도입했는지는 역사를 보면 들통이 난다. 비판세력을,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빨갱이로 만들고 폭력배 청소를 한다면서 삼청교육대로 끌고 가 죽인 사람들이 누군가? 그들이 만든 간첩이, 빨갱이가 70년이 훨씬 지난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있지 않은가?



법대로라면서 법치를 하겠다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법래로 하려면 자신들이 어긴 법부터 먼저 자복하고 참회하는게 순리가 아닌가? 미래통합당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면 그들이 영입하고 있는 인재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미래통합당 출범식 이후 인재영입 1호로 발표한 사람이 돈 봉투를 받아 벌금 80만 원과 추징금 100만 원의 형의 선고를 받았던 사람이 아닌가? 영입 인재 1호로 내정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바꿔치기한 부부갑질 의혹의 장본인 박찬주가 아닌가?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 백경훈, ‘목발 탈북’ 지성호, 대전 MBC 사장 이진숙,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 태영호...이들이 누구인지는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인물들이다.


연죄제가 없어진지 언젠데 왜 과거 일을 되씹느냐고...? 용서는 가해자들이 할 말이 아니다. 이승만이 지은 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가 지은 죄는 현재진행형이다.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부대가, 학계에서 국정교과서를, 자유한국당이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꿔 국민기만극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가해자가 용서를 구할 수 없듯이 법을 어긴 장본인들이 법치를 주장하는 것은 과거를 반복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그들이 저지른 폭력으로 가해자들은 지금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용서는 그 다음에 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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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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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입니다.

    2020.02.21 05: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맞습니다. 태생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지요. 회개없는 욕망이 점점 더 사악한 좀비로 바뀌고 있습니다.

      2020.02.21 09:33 신고 [ ADDR : EDIT/ DEL ]
  2. 우리 국민들...바보 아닌데...ㅠ.ㅠ

    2020.02.21 06: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번 4.15 선거 결과가 기대됩니다.
    솔질히 말씀 드리면 이러한 정당은 사라지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2020.02.21 08: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름만 바뀐다고 달라지나요..ㅠ
    구독하고 갑니다^^

    2020.02.21 11: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민주주의2019. 6. 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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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10항쟁 32돌을 맞는 세종시 기념식에서 시민대표로 발표한 기념사입니다. 

존경하는 세종시민 여러분! 오늘은 32번째를 맞는 6·10항쟁 기념일입니다. 6·10항쟁은 4·19혁명정권을 뒤엎고 군사통치, 유신통치로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가 그의 부하 김재규의 손에 죽자 전두환일당들이 12·12쿠데타와 광주시민을 학살, 폭압적인 군사통치를 자행해 왔습니다



32년 전인 1987년 6월 10일 그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국민대회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도시에서 약 24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나 전두환정권은 6만여명의 경찰을 투입,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무차별 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6.10항쟁하면 우리는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경찰의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열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정권장악에 혈안이 된 전두환정권은 광주학살도 모자라 서울대 박종철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비롯해 ‘유신헌법철폐와 민주정부수립’을 원하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최루탄을 발사. 이한열군을 숨지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전국 34개 도시, 4개 군에서 150만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떨쳐 일어나 전두환의 4·13호헌조치를 철회하고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하는「6·29선언」을 쟁취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요, 민주주의를 수호한 자랑스러운 국민들입니다. 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저항하는 우리민족의 국민성, 정의감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은 동학혁명의 정신이요, 이 정신이 일제에 저항한 3·1혁명으로 4·19혁명과 광주항쟁 그리고 6·10항쟁으로 이어져 마침내 촛불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역사를 조망하면 진실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민족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입니다.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리, 국회의원과 사법부 그리고 경찰이 행사하는 권리는 주권자인 우리가 행복하게 살도록 하라고 잠시 맡겨 둔 권리입니다. 주권자가 주인의식, 민주의식을 갖지 못하면 그 주인은 노예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선조들, 선배들이 지켜온 민주주의는 우리가 다듬고 가꿔야 합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대한헌법 헌법 제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해 모든 국민이 행복추구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국가는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촛불이 만든 문재인정부는 지난 2017년 취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약속고했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라고 약속했습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2년,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모든 국민이 주인인 나라. 주권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주권자인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동학혁명과 3·1혁명, 4·19혁명과 6·10항쟁의 정신은 불의에 저항하는 숭고한 민족정신입니다. 이제 우리도 남아공이나 스위스같이 좋은 헌법을 만들어 주권자인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우리의 소원인 민족통일을 앞당겨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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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의 민족정신...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2019.06.10 06: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도 그날이 기억납니다.
    당시 대전 출장중이었습니다.
    학생들 무리를 보고 한동안 응원하다가 최류탄 발사에 이리 저리 도망(?)
    다녔던 기억이 나는군요..

    2019.06.10 06: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벌써 32년 전의 일이네요.
    당시 학교 수업만 끝나면 아버지 따라 시위대 뒤를 따랐던 기억이 납니다.
    중간중간에 단속나온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는데...ㅎㅎ..
    대부분 그냥 묵인했던 것 같은...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6.10 항쟁 이전의 모습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는 듯 합니다.
    늘 청산하지 못한 역사 때문이겠지요. 답답한 역사의 그날입니다.

    2019.06.10 15: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미완의 혁명을 촛불이 이어받았듯이 혁명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2019.06.10 17: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안녕하세요 글 잘 보고 공감 꾸욱 누르고 갑니다~

    2019.06.10 18: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선생님 내려주신 마지막 결론 저도 공감합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방탄소년단의 진과 슈가가 강제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의무라고 하지만 국방의 의무 정말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유는 잘 알지만 강요에 의한 국방의무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에요. ㅠ

    2019.06.10 21: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교사관련자료/언론2019. 5. 2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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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도 노무현처럼 대접해야 민주주의다’...? 24일자 조선일보 최보식선임기자가 쓴 ‘光州와 봉하마을, 누가 불편하게 만드나’는 기사 중 일부다.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민주주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이런 기사를 썼을까? 박정희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이런 기사를 썼을까? 알고도 이런 기사를 썼다면 이는 기자로서 기본적 자질도 갖추지 못했거니와 언론인으로서 기본적인 자세조차 갖추지 못한 추태다. 도둑이나 최보식선임기자는 도둑이나 살인자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존경하는가?



박정희가 누군가? 일본의 천왕에게 혈서로 충성맹세를 하고 독립군을 잡아 학살하던 일본군 정보장교 다카키 마사오다. 박정희를 두고 대한민국 경제를 살린 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경제정책의 상징인 ‘경제개발계획’은 실상 5·16 군사반란 이전인 2공화국 시절에 세워져 있었다.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이를 추진할 경제기획원 설립 구상도 2공화국 때 이미 마련돼 있었다. 박정희 시대의 경이적인 양적 성장은 정경유착, 각 부문의 불균형 성장, 관치금융 등 어두운 구석을 배경에 깔고 있다는 사실을 덮어두고 말해서는 안 된다.

41·9혁명으로 세운정부를 뒤엎은 쿠데타의 주역이요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대통령을 기도했던 반민주, 반헌법적인 독재자가 박정희 아닌가? 헌법을 파괴한 위헌 하나만으로도 탄핵의 대상인데 박정희는 그 정도가 아니다. 그의 집권 18년은 친재벌, 친일·친미적 성향, 독재적 성향, 반공주의,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로 민주주의, 정의, 평등, 인권, 인명, 병역과 납세 등 국민 의무, 실정법에 대한 무시, 배금주의, 지역차별 등 강력한 지역주의, 부정부패, 정경유착, 반노동자·반민중적 태도, 개인숭배 성향 등 한국보수의 부정적 특성...도 이때 확립된 것이다.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그리고 헌법 개정 선언과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멀리는 동학혁명에서 3·15의거와 4·19혁명... 주권자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싸워 세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만고역적이 박정희다. 헌법위에 군림한 역적을 존경하라는 말을 언론인이 할 소린가? 박정희는 총칼로 정권을 찬탈하고 헌법위에 군림한 초헌법적인 군주였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권자들이 피흘려 싸워서 세운정부, 국민이 선출한 국회를 해산해 헌정을 파괴한 자다. 5·16 쿠데타에 이어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한국적민주주의라고 하지 않았는가?

유신체제 7년동안 국가보안법, 반공법, 긴급조치 위반으로 엮어서 감옥으로 끌고 간 청년과 학생만 무려 1,197명, 노동자 농민 275명, 성직자, 종교인 132명, 언론인 문인 84명, 교사 52명, 정치인 70명 등... 유신체제 하의 양심수만 무려 2,704명이다. 빨갱이 간첩이 존재해야 유지할 수 있었던 정부가 박정희정권이 아닌가? 독재 권력에 저항한 민주화세력을 빨간색으로 칠해 국가전복을 기도한 집단으로 만들어 사형시킨 인혁당사건을 비롯해 사형 8명,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9명, 12년 이상 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20명이나 된다. 4~50년이 지난 후 무죄임이 확정된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인가?



박정희가 친인척에 엄했고 공사가 분명하고 청렴결백했다고...? 더불어민주당 국민재산 찾기 특별위원장 안민석 의원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자금 규모가 당시 돈으로 8조9000억원, 지금 돈으로 300조가 넘는 돈. 그리고 그 돈으로부터 최순실 일가 재산의 시작점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 밝혀지면 파장이 클 것 같다'는 손석희 JTBC 앵커의 동조성 질문에 안 의원은 "화산이 폭발하는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1조 300억원 규모에 이르는 정수장학회,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

나는 노무현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하면 이라크에서 미군에 각종 물품을 제공하던 한국 군납업체 직원 김선일씨가 생각난다. 김씨가 피살되기 직전 노무현정부는 무장단체와 석방을 위한 교섭에서 무장단체는 이라크에 대한 한국군의 2차 파병철회를 요구했고, 요구 사항이 수용되지 않자 김선일씨는 피살됐다. 국익과 국민의 생명을 두고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 노무현대통령은 국익을 선택했고, 결국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은 생을 마감했다. "이라크 파병과 수많은 FTA, 재벌위주의 경제정책, 서민경제 악화...를 두고 노무현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단순 비교해 ‘박정희도 노무현처럼 대접해야 민주주의다’라니... 개인은 그렇게 말할 수 있어도 대한민국 일등신문(?)의 기자라는 사람이 할 말인가? 조선일보를 두고 대한민국이 참다운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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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서는 법이지요.
    에고...ㅠ.ㅠ

    2019.05.27 06: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조선일보는 없어져야할 신문입니다.

    2019.05.27 07: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세치 혀가 세상을,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몰아넣을 때가 많지요.
    조선일보가 그 단적인 예입니다

    2019.05.27 09: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자칭 한국 보수의 한계인 듯 합니다.
    이러니 극우가 될수밖에요...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뿌리가 친일파니 김구 선생같은 진짜 보수주의자는 외면하고 엉뚱하게 이승만이니 박정희니...
    조선일보도 우리나라 가장 큰 언론이지만 보수언론으로 인식하는 사람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2019.05.27 11: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한국의 정치는 부패정치가 완전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젠 기성세대는 물러나고 새로운 청년들을 정치에 참여 시켰으면 좋겠어요.

    2019.05.27 20: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하여간에 ♫♬♩♩들이 가지가지합니다

    2019.05.28 17: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세상읽기2019. 5. 18.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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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은....?”

수업시간에 들어오신 국어선생님이 흑판에 이렇게 쓰셨다. 아이들은 저마다 “뜰에 깐 콩깍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입니다.”, “아닙니다. 작년에 솥장사 헛솥장사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어려운 말을 앞 다투어 말했지만 선생님은 흑판에 “아니오입니다”라고 쓰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은 ‘아니오’라는 말이란다. 듣고 있던 아이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 말이 뭐가 어려운데...’ 당시 아이들은 아니오가 왜 어려운지를 깨닫지 못했다.



오늘은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난지 39년째 되는 날이다. 광주민주화운동 혹은 광주민중항쟁으로 부르는 5·18혁명이란 무엇인가? 워낙 많이 들어온 얘기라 5·18민주화운동이니 5·18광주민중항쟁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행사가 행사로 끝난다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그야말로 건조한 행사를 위한 행사로 끝난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거창하게 많은 예산을 투자해 금남로 거리에서 그날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1회성 행사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행사의 참뜻을 알고 체화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청주에 가면 흥덕구에 모충사(慕忠祠)라는 사당이 있다. 1894년(고종 31) 10월, 충청병영의 영관 염도희는 7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대전방면의 동학군을 해산시키기 위해 출진하였다. 그러나 청원군 강내면 지역에서 동학군의 매복에 걸려 몰살당하고 만다. 그해 11월 청주목사 임택호는 남석교 밖에 모충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으며 광무 7년(1903년) 모충단이라는 호를 받아 당산에 단을 쌓고 기념 비각을 건립, 1914년 모충사를 건립 제사를 지냈다. 그 후 일제의 신사건립으로 옮겨 다니다 1975년 이 자리에 옮겨 남아 있다. 동학혁명군을 토벌하려다 희생한 관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라...?

역사를 지우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청주 흥덕구 모충사가 있는 이 동네 이름이 모충동이다. 사당이야 사적으로서 역사적인 보존의 가치가 있지만 모충동(慕忠洞)이라는 동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니.... 그러고도 동학은 난(亂)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동학운동이든 3·1운동, 광주민주화운동은 왜 혁명이 아니라 운동이니 항쟁일까? 세월이 지나 혁명이 원하던 가치는 사라지고 1회성 행사를 치르고 끝난다면 그런 행사를 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역사인식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해마다 거창하게 치른다고 항쟁의 정신을 되살려 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제에 저항해 나라를 되찾겠다는 3·1혁명을 혁명이 아니라 3·1운동이라고 부른다. 삼정문란과 외세에 저항해 일어난 농민들의 거룩한 희생이 Play인지, Movement인지는 알 수 없어도 왜 혁명으로 명명하기를 꺼리는 것일까? 동학혁명, 3·1혁명, 여순사건, 제주항쟁, 부마항쟁, 4·19혁명,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은 “아니오”다. 불의에 저항하는 목숨을 내건 투쟁이 혁명이 아니라 사건이니 운동이니 항쟁으로 비하하는 것은 역사를 가해자의 편에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저항의 핵심의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가 아닌가? 정의가 실종된 역사는 민중은 없고 가해자의 수탈과 노예만 살아남는다.

동학운동, 3·1운동, 제주항쟁, 6월항쟁, 광주민주화운동...은 혁명으로 고쳐 불러야 하지 않을까? 불의에 저항한 정신은 정의다. 우리는 선조들의 거룩한 이 저항의 정신이 있었기기에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진 빚(負債意識)을 덮어두고 어떻게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정의를 살려 낸 숭고한 저항은 혁명으로 부르지 못하고 폄훼(貶毁)하는 이유는 가해자가 주인으로 행세하기 있기 때문이 아닌가? 가해자가 기득권 세력으로 남아 있는 한 저항의 반란이다. 친일사관의 학자들이 기록하는 역사를 거부하라. 운동이니 항쟁은 혁명이 아니다. 진정한 해방의 정신, 저항의 정신이 정의요, 혁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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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날의 의의와 가치를 훼손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2019.05.18 08: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100% 공감합니다.

    2019.05.18 12: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ㅠ.ㅠ

    2019.05.19 02: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정치2018. 2.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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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1960228일 낮 1255, 대구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 등이 조회단에 올라 외친 선언문이다.



대구하면 보수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대구는 원래 "동양의 모스크바"라 불린 우리나라 진보의 본산이었다. 대구는 박정희 정권 때까지 서울, 부산과 함께 3대 야도(野都)로 불리어 왔다. 그런데 어쩌다 대구하면 박정희를 떠올리게 되지만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기 전까지는 대구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도시였다. 역사적으로 대구는 외침(外侵)이 있을 때마다 의병을 일으키고 국채보상운동, 3·1운동 등 항일운동에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된 도시다.

불의에 항거한 저항의 도시 하면 3·15마산의거나 5·18광주항쟁을 떠올리게 되지만 일제강점기 3·1운동과 함께 대구는 대동청년단,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가 대구를 무대로 활동했다. 또 유림단(儒林團) 독립청원운동, 신간회 대구지회 활동, 의열단 무력항일운동,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 태극단 활동, 대구 24부대 학병의거 등 수많은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곳이 대구다.

3·15의거와 4·19혁명은 알아도 2·28의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4·19혁명은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학생의 눈에 미제 최루탄이 박힌 비참한 사진을 보고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의 불의에 저항한 혁명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2·28이 먼저다. 2·28의거는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 현장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 화근이 되긴 했지만 단순히 학생 몇몇이 주도해 일어난 사건이 아닌 3·15의거와 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불의에 대한 저항이다.

<2·28의거의 시대적 배경>

1945815일 광복 이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되었다. 이후 유엔은 한반도의 정부 수립을 위해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지만 소련이 방북을 거부하였고, 결국 선거가 가능한 남한에서 단독선거를 치르게 된다. 1948510일 드디어 총선거가 치러져 임기 4년의 대통령 간선제의 헌법이 만들어진다. 대통령간선제로 국회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 정부로 승인하게 된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진 이승만은 1952년 집권이 어려워지자 대통령의 선출 방식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어 재집권에 성공한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승만은 3선에 성공하지만 미국의 무상 원조가 줄어들면서 경제 사정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민심이 흉흉한데다 대통령의 중임이 불가능한 헌법을 개헌하는 과정에서 집권당이 자유당은 무리한 개헌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960315, 4대 정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집권당인 자유당은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을 다시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그의 측근들이 내무부 관료들과 자유당 소속 정치 폭력배를 동원하여 3인조 5인조를 조직하는 등 노골적인 부정 선거, 개표 조작을 시도했다. 5·18이 광주시민만의 분노가 아니라 전두환의 집권야욕이 광주시민의 저항으로 나타났듯이 2·28의거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정부의 부정부패와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대구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적인 불신이 저항정신이 강한 야성의 대구라는 도시에서 2·28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2·28의거의 경과>

1960228일 낮 1255,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 등이 조회단에 올라 격앙된 목소리로 백만학도여~!”로 시작하는 결의문으로 시작된 반독재의 횃불은 대구에서 처음 불타올랐다. 대구 경북고등학교는 일요일인 이날 등교 지시를 내린다. 학생들을 일요일에 등교지시를 내린 사연은 3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현상은 경북고 뿐만 아니라 대구 시내의 국공립 7개 고등학교 마찬가지로 일요일인 228일 등교를 지시한다.



1960227일 오후 대구 동인동 이대우 경북고등학교 학생부 위원장 집에 경북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학생 8명은 부당한 일요등교 지시에 항의를 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해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도 작성하게 된다. 228일 오후 1시 학생 800여 명이 대구 반월당을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점점 늘어나 1,200여명의 참여해 120여명이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은 시위의 확산을 우려해 시위를 주도한 학생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석방하게 된다.

이승만정부의 관제 데모에 동원되기만 했던 학생들이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의사표시를 한 2·28의거는 한 알의 불씨가 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3.15마산의거, 4.19대학생시위, 4.26 이승만대통령 하야로 이어져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 민주주의 혁명의 도화선이 된게 2·28대구학생 민주의거다. 2·28의거는 가난과 독재,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대구 시민정신이 표출이요,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2·28의거는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자유당 12년 독재를 종식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2·28의거,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은 5·16군사쿠데타로 무너지기는 했지만 불의에 항거한 저항정신은 이후에도 부마항쟁, 5·18광주항쟁 그리고 6월항쟁과 2017년 촛불집회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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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의 아픈역사이지요

    잘 보고 가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18.02.28 06: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대구에선 의미있는 날입니다
    지역감정은 박정희외 김대중 대통령의 참모였던 염창록이라는 사람의 전략이기도
    전샥이기도 했습니다

    2018.02.28 08: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김주열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야도였던 영남이 수구의 소굴이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2018.02.28 10: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렇게 역사는 흐른다....

    2018.02.28 20: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문대통령의 말씀처럼 어쩌면 오늘날의 촛불도 228의 도화선 덕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2018.02.28 22: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12. 8.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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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올림픽열기로 뜨겁습니다. 아니 펄펄 끓고 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경영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자질을 검증해야할 중요한 시기에 방송 3사와 종편들은 오직 올림픽 소식 뿐입니다.

 

올림픽에 정치도 실종되고 경제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기회를 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지난 30일 슬그머니 가석방 됐습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도 모두 뭍혀가고 있습니다. 분규 중인 자동차부품업체인 에스제이엠(SJM)과 만도(문막·평택·익산 공장)에는 대규모 용역 인력이 쇠파이프와 곤봉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공장을 급습해 집단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열기로 대선후보가 역사조치 왜곡하고 있지만 이를 검증할 기회도 올림픽 열기로 뭍혀가고 있습니다.  역사왜곡은 어디 5·16뿐이겠습니까? 친일잔재청산문제며 정신대문제도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오늘은 왜곡된 우리역사문제를 짚어볼까 합니다. 아무도 말하기를 꺼려하는 문제. 신탁통치 문제입니다. 이 원고는 졸고 '현대사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역사가 왜곡되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진실을 밝힐까 하는 마음에서 1994년에 틈틈히 썼던 글입니다.

 

앞으로 시간 나는대로 '현대사 자료집'을 소개하겠습다. 

 

 

‘찬탁=친소=매국, 반탁=친미=애국’

 

건국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된 신탁통치찬반논쟁이다. 신탁통치는 ‘36년간 일본의 종살이를 하다 우리민족이 스스로 자주독립 국가를 세워야지 왜 또 강대국의 통치를 받아야하나’하는 백성들의 정서가 반영되어 처절한 찬반논쟁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이승만은 이러한 백성들의 정서를 이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이끌어 자신의 지지기반은 물론 미국이 원하는 반탁여론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승만과 미국의 의도는 '반탁- 6·25전쟁-분단'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5·16을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쿠데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기고만장하고 있다. 4·19혁명을 부정하고 5·16을 혁명이라는 사람들... 신탁통치 찬반 논쟁은 어떤가? 신탁통치 찬반논쟁 64년이란 세월이 지난 오늘, '만약 한반도를 유엔이 신탁통치를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6·25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과 64년간의 분단이 있었을까?

 

6·25전쟁과 분단이라는 문제를 신탁통치문제와 연관선상에서 보자. 

 

신탁통치란 ‘국제평화와 안전 촉진, 신탁통치지역의 자치와 독립 도모, 인권과 UN 회원국의 평등 보장’하기 위해 ① 종래의 위임통치지역, ②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후 패전국에서 분리된 지역, ③ 자발적으로 신탁통치를 원하는 지역을 ‘국제연합(UN)의 대리통치를 일정 기간 받는 것을 말한다.(백과서전)

 

우리나라는 8·15해방 후,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의로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한반도는 '앞으로 5년 동안 4개국(미국·영국·중국·소련)에 의한 신탁통치를 한다’는 결정이 발표된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 찬반논쟁이 격렬하게 전개된다.

 

 

 

이 논쟁에 참가한 수많은 백성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것이 자주독립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고 있었다. 사실이 그럴까? 찬탁이나 반탁에 참가한 백성들은 신탁통치가 어떤 내용인지 ‘신탁통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었을까? 신탁통치를 제안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신탁통치가 시행되면 정말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없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나 판단을 할 능력도 겨를도 없었다.

 

역사에 가정(假定)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당시 한반도에서 신탁통치가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족의 비극인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일어났을까? 만약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64년간 동족분단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을까?

 

신탁통치에 얽힌 진실을 보자.

 

신탁통치를 처음 제안한 나라는 소련이 아닌 미국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세계 대전 중, 1943년 3월 27일 워싱턴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 구상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미국이 구상했던 신탁통치 안은 ‘미, 중, 소 3국이 향후 20~30년간 한반도를 신탁통치한다’는 내용이다. 이 안은 얄타회담(1945.2.11)에서 재확인되었다.

 

그 후 1945년 7월 17일 포츠담 회담에서는 미국이 수정 제안한 ‘신탁통치가 합의될 때까지 북위 38도선 이북에는 소련이, 이남에는 미국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함으로써 38도선이 확정’되었다. (1945.9.2 극동 사령관 일반 명령 제 1호)

 

 

 

미국보다 뒤늦게 제안한 소련의 신탁통치 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소련은 미․영․중․소 4개국에 의해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로서 한국의 독립을 준비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조선인민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원조하기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를 설치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소련은 이 안을 모스크바 삼상회담(1945.12.27)에 제출, 최종 확정되었다.

 

건국 초기에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거국적인 반탁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소련의 신탁통치 안이 제출 된 후 ‘즉시 독립’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민주적 통일전선의 형성’이라는 노선의 차이로 격렬한 좌우 대립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차 미소 공동위원회(194.3.20)가 서울에서 열렸으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협의할 정당, 사회단체 선택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혀 결렬되고 2차 미소 공동위원회(1945.5.21)가 서울(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렸으나 끝내 결렬되고 한국 문제는 미국 측에 의해 유엔에 이관하게 되었다.

 

※ 참고글 및 자료

 

【모스크바 삼상 결정 전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박세길, 돌베개, p.53),

(분단자료집, 편집실, 한백사, p.49~50)

 

모스크바 삼상 결정 전문

 

1. 조선을 독립국으로 부흥시키고 조선이 민주주의 원칙 위에서 발전하게 하며 장시간에 걸친 일본 통치의 악독한 결과를 쾌속히 청산할 제 조건을 창조할 목적으로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창건되는데 임시정부는 조선의 산업, 운수, 농촌 경제 및 조선 인민의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필요한 방책을 강구할 것이다.

 

2. 조선 임시정부 조직에 협력하여 이에 적응할 제 방책을 예비 작성하기 위한 남조선민군사령부 대표들과 북조선 소련 사령부 대표들로써 공동위원회를 조직한다. 위원회는 자기의 제안을 작성할 때에 조선민주주의 제정당 및 사회단체와 반드시 협의할 것이다. 위원회가 작성한 건의문은 공동위원회의 대표로 되어 있는 양국 정부의 최종적 결정이 있기 전에 미․영․중․소 제국 정부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3. 공동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참가시키고 조선민주주의 제 단체를 인입하여 조선 인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보와 민주주의적 자치 발전과 조선 독립의 확립을 원조 협력(후견)하는 제방책도 작성할 것이다. 공동위원회의 제안은 조선 임시정부와 협의 후 5년 이내의 기한으로 하는 조선에 대한 4개국 후견의 협정을 작성하기 위하여 미․영․중․소 제국 정부의 공동 심의를 받아야 한다.

 

4. 남북 조선과 관련된 긴급한 제 문제를 심의하기 위하여 그리고 남조선 미군 사령부와 북조선 소련 사령부의 행정 및 경제 부문에 있어서의 일상적 조정을 확립하는 제방책을 작성하기 위하여 2주일 이내에 조선에 주둔하는 미․소 양국 사령부 대표로써 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미 국무장관 번즈가 제출한 한국 신탁통치 원안】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남풍신서, p.36)

 

1. 미·영·중·소 4개국이 신탁통치 체제의 최고 권한자가 되어 유엔헌장 79조에 규정된 기본 목적에 따라 행동한다.

2. 1인 공통 판무관과 4개 신탁통치의 대표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를 통해서 통치권한과 기능을 수행한다.

3. 한국의 통일 행정 체제 즉 신탁통치 체제에는 한국인을 행정관 상담역 고문으로 사용한다.

4. 신탁통치 기한은 5년으로 하되, 필요하면 4개 통치국간의 협정으로 다시 5년을 연장할 수 있다.

 

미국측 안에 대한 소련이 제출한 대안】

 

1. 조선은 독립국가로서 재건하는 것을 전체로 하고 조선 임시 민주정부를 수립한다.

 

2. 이 정부의 수립을 원조하고 일정한 조처를 미리 정해두기 위해서 미․소 양군의 대표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이 위원회는 이 제안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조선의 민주주의적 제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한다. 이 위원회 권고는 미·영·중·소 4국 정부 앞으로 제출된다.

 

3. 공동위원회는 임시조선민주정부와 조선의 민주주의 단체들의 참가 하에 조선 개혁안을 마련한다. 공동위원회는 또한 5개년간의 조선에 대한 4개국 신탁통치에 관한 협정안을 임시 조선 정부와 협의한 후 결정하여 4개국 정부에 제출한다.

 

4. 미․소 양군의 대표자 회의를 2주 이내에 한번씩 개최한다.

 

【미소 공동위원회에 참가를 신청한 단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 p.172)

∙남 한 : 425개

∙북 한 : 36개

∙등록된 회원 총수 : 7천만명(전체 인구의 2배)

 

【미국의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

 

(해방전후사의 인식2, 한길사, p.84)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는 20년 내지 30년간의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제안하여 스탈린으로부터 “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단서가 붙은 구두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남북 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 공동성명서】

1948년 4월 30일

남조선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전조선 사단체 대표 연석 회의에 뒤이어 평양에서 4월 30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의 협의회가 진행되었다.

 

이 협의회에서는 상정된 문제를 충분히 토의한 결과 다음과 같이 제문제에 대하여 협의가 성립되었다.

 

1. 소련이 제의한 바와 같이 우리 강토에서 외국군대가 즉시 철거는 것은 우리 조국에서 조성된 곤란한 상태 하에서 조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정당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미국은 이 정당한 제의를 수락하고 자기 군대를 남조선에서 철퇴시킴으로써 조선 독립을 실지로 원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제가 우리 조국에서 구축된 이후 우리 조선 인민은 자력으로 외국의 간섭 없이 우리 문제를 우리 민족의 힘으로 능히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장성되었으며 우리 조국에는 이것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간부들이 다수 있다.

 

2. 남북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은 우리 강토에서 외국 군대가 철퇴한 후에 내전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또 그들은 통일에 대한 조선 인민 지망에 배치하는 여하한 무질서의 발생도 용허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 정당 사회단체들 간에 전취 약속은 우리 조국의 완전한 질서를 확보하는 튼튼한 담보이다.

 

3. 외국 군대가 철퇴한 이후 하기 제 정당 단체들은 공동 명의로써 전조선 정치 회의를 소집하여 조선 인민 각층 각계를 대표하는 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즉시 수립될 것이며 국가의 일체 정권은 정치 경제 문화생활의 일체 책임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정부는 그 첫 과업으로 일반적 직접적 평등적 비밀투표로써 통일적 조선 입법기관을 선거할 것이며 선거된 입법 기관은 조선 헌법을 제정하여 통일적 민주 정부를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4. 상기 사실에 의거하여 본 성명서에 서명한 제정당 사회 단체들은 남조선 단독 선거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1948년 4월 30일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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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0년이면 역사가 바로잡아 질까요?
    반 세기는 걸려야 할까요?

    2012.08.01 07:50 [ ADDR : EDIT/ DEL : REPLY ]
  2. 과거가 해결 안되면 항상 역사의 발목이 잡힐 것 같네요

    2012.08.01 08:15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