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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역사

이승만이 국부요 존경받을 인물인가?

by 참교육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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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으로 무얼 얻겠다는 것인가?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아마 국민의힘의 뿌리이고 그들이 롤 모델로 삼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국민의힘이 국민을 주권자로 알고 헌법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이들의 사진을 걸어놓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9월 1일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를 ‘따라 배우겠다’는 윤석열...”이라는 주제의 글을 써 여기서는 생략한다. 오늘은 수구세력과 국민의힘이 국부로 추종하겠다는 이승만의 실체에 대해 밝히려 한다.

<이승만 그는 누구인가?>

이승만은 우리 역사에서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될 부끄러운 인물이다. 아니 없었으면 오히려 좋을뻔한 사람이다. 사관도 없이 지식만 배운 사맹(史盲)들은 이승만을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을 국부로 모시고 싶겠지만 그는 4·19혁명에 의해 부정된 인물이다. 부끄럽게도 장기 집권을 위해 전쟁 중인 1952년 7월 4일 부산의 피난국회에서 이승만의 재선을 위한 대통령 직선제와 상·하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정부측 안과, 내각책임제와 국회단원제를 골자로 하는 국회안을 절충해서 만든 ‘발췌개헌 헌법'을 만든다. 1954년에는 제3대 국회에서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에 대한 3선제한의 철폐를 핵심으로 하는 사사오입개헌(四捨五入改憲)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키시도 했다.

<대한민국 탄핵 1호는 이승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이 어떤 인뮬아지 알 수 있다. 이승만은 1919년 9월 상해에서 임정의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임정 초기 이승만이 ‘위임통치사건’으로 그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기 시작해다. ‘위임통치사건’이란 이승만을 비롯한 외교독립론(외교를 통한 독립을 이루자는 사람들)을 주장하는 측이 1919년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위임통치를 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낸 사건이다. 이승만은 미국에 대한 ‘위임통치’를 사과하라는 임정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신채호는 1919년 4월 임정 시기의 ‘국회’인 임시의정원회의에서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한 매국역적“이라면서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었다”고 거세게 비판, 임시의정원은 1925년 3월 이승만을 탄핵했다. 임정은 이승만을 면직시켰고 동시에 박은식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승만이 대통령에 오른 지 약 5년 반이 지난 뒤 벌어진 일이었다.

<“제주 4·3항쟁은 이승만과 무관한가?>

이승만의 악행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고 넘친다. 2003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확정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3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당시 이승만 정부가 주도한 강경진압작전으로 제주도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만9285동이 소각됐다. 이 사건 직후 미군정 보고서에는 “제주도는 70%가 좌익정당에 동조적이거나 가입해 있을 정도로 좌익의 본거지”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73년만이 1921년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 희생자에 대한 진상회복과 보상을 받게 됐다.

<이승만의 빨갱이 사냥과 국가 보안법>

이승만의 반공주의의 원조다. 그는 빨갱이, 좌경, 용공, 간첩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했던 정권이다. 철천지원수 왜놈들, 아니 왜놈들보다 더 악랄하게 동족을 괴롭히고 수탈하던 친일세력이 해방 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빨갱이가 필요했다. 해방공간에서 그들은 비판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방법은 두 가지를 고안해 냈다. 하나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해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방법이요, 또 하나는 일본의 치안유지법을 이름만 바꿔 이승만정부를 비판하는 양심적인 지식인들... 민족주의 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만든 ’국가보안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

1950년 6.25전쟁 때 ‘서울은 안전하니 생업에 종사하라’고 방송하고는 본인은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탈출한 인물이 누군가? 이승만은 자신의 안위나 정권유지를 위해 주권자인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국가보안법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법,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유신헌법을 만든 박정희, 전두환·노태우와 학살정권이 금과옥조로 활용한 보검이다. 국가보안법은 정부수립 103주년인 지금까지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특히 국가보안법이 어떤 법인가는 관객 수 1,137만명이나 보았다는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보도연맹사건, 국민방위군사건 그리고...>

6.25 전쟁 중 이승만 정부가 조직적으로 벌인 최대 규모의 자국 민간인 대량 학살한 사건 보도연맹. 사전을 찾아보면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과, 10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을 살해한 대학살 사건’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학계나 민간단체들은 여순사건, 제주 4·3사건, 국민방위군사건, 보도연맹 부역 혐의 희생자 등을 모두 더하면 최소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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