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기독교2018.08.06 06:30


평등. 복지, 분배, 기회균등, 형평성, 약자배려, 공유사상....과 같은 가치는 기독교가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이념이기도 하다. 그런데 교조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자본주의와 공생하는 기독교는 평등이나 복지, 분배, 기회균등, 공유사상을 우선가치로 보지 않는다.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기 때문일까? 기독교가 가장 싫어하는 게 사회주의다. 약자배려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왜 앙숙관계가 됐을까?


<이미지 출처 : 기독교 개혁신보>


기독교는 아나빔의 종교다. 유대어의 아나빔(anawim)이란 예수가 사랑한 사람들즉 하느님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예수는 어부를 자기 제자로 삼고, 전염병자, 과부와 고아, 창녀, 앉은뱅이... 와 같은 버림받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산 사람이다. 이러한 기독교란 결국 하느님밖에 의지할 이 없는 아나빔의 친구되기를 원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종교다.

예수는 내일을 위해 부를 축적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어느 날 부자가 된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묻는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는 이 부자 청년에게 말한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나서 나를 따르라고 했다. 예수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가르친다. 예수의 이웃이란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당장 도움을 받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즉 아나빔을 뜻하는 말이다.

기독교는 자본주의와 공생하면서 점차 변질된다. 스스로 부자가 된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은 뒷전이요, 돈을 사랑하는 종교로 바뀌고 이상세계인 천국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을 왜곡한다. 간증대회라는 모임에 가 보면 사경을 헤매던 그들이 본 천국은 각각 모두 다른 천국으로 간증해 그들이 다녀왔다는 천국의 모습을 사실로 믿기는 어렵다. 예수가 가르쳐 준 주기도문에는 이 땅이 곧 하늘나라라고 했지만 기독교 신도들이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실천하는 모습은 그렇게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마산교구 명례성지 이제민신부는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난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고 단언하며, 부활이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산자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죽은 자들이 가게 된다는 저승(천국이라 부르든 극락이라 부르든)을 나는 믿지 않는다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후(死後)’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가르친다. 이제민 신부가 말하는 천국과 부활은 같은 예수를 믿는 보수교인들의 천국, 부활과는 왜 그렇게 다를까?

사회주의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임금 노동자. 무산자)란 기독교의 아나빔(anawim-가난한 사람들)이다. 사회주의는 나라의 주인이라는 이들이 기독교에서는 왜 홀대 받을까? 물론 현실에서는 이론적인 사회주의, 이론적인 공산주의가 원론대로 실천되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부자들이 만든 자본주의보다는 수정된 사회주의 에 더 가까워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 옳다.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를 적대시하고 사회주의와 서로 앙숙관계(怏宿關係)가 되었다/

보수를 참칭하는 우리나라 수구세력들은 북한을 사회주의라고 억지를 불리며 북한체제를 따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종북이라고 하지만 북한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아니라 인민민주주의국가다.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란 생산 수단의 공유를 통한 최대다수의 행복 실현을 최고 가치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며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념, 협동 경제와 모든 민중이 노동의 대가로서 정당하고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 사회주의다. 기독교의 천국이 이런 세상이 아닌가? 

기독교가 지향하는 가치는 평등. 복지, 분배, 기회균등, 형평성, 약자배려, 공유사상...’이다. 사회주의는 기독교의 아나빔 사상과는 같은 길을 걸어야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앙숙관계가 되어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이유는 기독교가 변질됐거나 아니면 사회주의가 이념을 수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완전무결한 이념은 없다. 생시몽이나 프리에 같은 사람들이 주장했던 공상적 사회주의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어 버림받지 않았는가? 역사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발전을 외면하고 돈은 사랑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이다. 샤머니즘으로 바뀌고 있는 기독교가 그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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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경제2017.12.29 06:30


당신네들, 하늘을 나는 저 새를 보시오. 저 새가 오른쪽 날개로만 날고 있소? 왼쪽 날개가 있고, 그것이 오른쪽 날개만큼 크기 때문에 저렇게 멋있게 날 수 있는 것이오.”

리영희교수의 평론집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 나오는 글이다. 조금만 약자배려라는 가치의 글만 보이면 어김없이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현실을 개탄한 글이다. 해방과 분단의 과정을 겪으며 살아 온 국민들은 복지니, 평등, 약자배려라는 가치란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살아왔다.



약소국의 비극일까, 아니면 분단의 상처 때문일까? 우리민족은 유난히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에 민감하다. 조금만 왼쪽으로 치우쳐도 어김없이 종북이나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고 만다. 이런 분위기는 아마 남북이 분단되면서 북쪽은 동족이 아닌 빨갱이, 빨갱이는 매국이요, 악마로 포장 되었다. 누구든지 한번 그런 낙인이 찍히면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해야 했던 상흔 때문에 입밖에 꺼내면 안되는 금기어가 됐다.


혈연보다 무서운 이 좌우논쟁은 남북분단과정에서 시작된다. 집권에 눈에 어두운 친일과 독재 세력들은 유엔이 내놓은 한반도 신탁통치문제를 놓고 찬탁=반미=매국으로, ‘반탁=친미=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진보세력 토벌작전에 나선다. 정권의 지지기반이 약했던 친일세력과 이승만정권은 제주항쟁과 진보세력 토벌작전... 그리고 지역의 진보성향의 비판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토벌작전을 벌인 것이다.


좌우논쟁이라는 빨갱이 타령은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 남에서 북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었던 정권, 북에서는 남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었던 정권이... 서로가 필요해 빨갱이니 매국세력을 이용해 왔던 것이다. 좌익이 뭔지 우익이 뭔지 모르는 선량한 사람들은 6,25전쟁 발발일이 되면 학생들을 동원해 반공궐기대회를 열고 반공웅변대회, 반공글짓기 반공포스터 그리기와 교련교과목을 통해 여학생들에게까지 총검술과 재식훈련으로 반공교육, 멸공교육을 일상화 했다.


교련대회는 물론 윤리교과를 비롯한 교과서마다 반공교육으로 의식화시킨 덕분(?)일까? 민주주의 반대를 공산주의로 배운 학생들이 좌익이니 우익에 대한 개념보다 빨갱이는 악마요, 제거의 대상으로 확신한다. 악마들이 살고 있는 곳이 북한이요, 동족이 살고 있는 북한은 제거의 대상이 되고 북한을 조금이라도 좋게 말하면 이적찬양 고무죄라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받아야 했다.


좌와 우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상대적으로 사회변동에 온건한 지롱드당이 의회의 오른쪽 부분에, 급진적인 몽테뉴당이 의회의 왼쪽 부분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친일과 독재 권력의 세뇌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좌익은 과격한 사람들... 불순한 세력이요, ‘우익은 보수적이고 애국적인 사상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칫 좌익은 복지를, 평등이라는 가치를 우선적인 가치라고 호의적으로 말했다가는 가차 없이 빨갱이니 종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좌익은 평등이라는 가치, 분배와 복지, 약자배려라는 가치요, 자유라는 가치, 경쟁이나 효율이라는 가치보다 우선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우익은 복지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경쟁과 효율을 우선적인 가치로 믿는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는 이 지구상에 없어진지 오래다. 소련과 중국까지 폐기한 원론적인 공산주의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기독교의 이상사회와 같은 맥락이지만 그런 원론적인 이념은 이미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터놓고 예기해 보자.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정권이나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북한정권이 왜 서로의 장점을 따라하면 안 되는가? 북한이 하는 건 무조건 나쁜 것, 종북으로 매도하고 남쪽이 하는 일은 더러운 친미매국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칠 때도 사회주의, 평등이나 약자배려라는 가치를 도입해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로 변신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정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혹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조작한 언어는 폐기처분해야 한다. 비록 적일지라도 좋은 점은 본받고 배우는 게 성숙한 시민의 자세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가? 친일의 후예 독재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작언어로 자신의 약점을 덮으려는 비겁한 자세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약자를 배려하는 가치, 평등이라는 가치, 복지라는 가치가 정말 악마의 얼굴인가 그런 악마가 지구상에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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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와 마르크스... 하면 무슨 생각이 드세요? 참 어울리지 않은 이름. 사람들은 마르크스는 종교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는 종교는 사회에 해악을 전염시킨다고고 생각하고 헤겔 철학비판이라는 책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며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보면 마르크스와 종교 특히 마르크스와 불교는 공통점이 참 많다.

<붓다와 마르크스>

공산주의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악마로 알고 있는 체재 순응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야 말할 가치도 없겠지만 사실은 마르크스가 추구한 이상이나 부처님이 추구한 이상은 같은 점이 많다. 불교는 엄밀히 말해 기독교처럼 전지전능한 조물주를 신앙하는 종교가 아니다. 중생들이 어떤 괴로움도 없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극락세계와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이상향은 다른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둘 다 생산 수단 공공화 및 중앙 집중적 계획체제에 바탕을 두고 사용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는 체제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실적(행위)에 따라 분배를 받는 사회주의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는 불교의 극락과 이상향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와 부처님은 다같이 인간의 평등, 계급 없는 세상...’ 꿈꾸던 사상이다.

<불교과 공산주의의 같은 점과 다른 점>

마르크스와 붓다는 다같이 인간의 평등, 계급 없는 세상...’ 꿈꾸던 분들이다. 그러나 불평등을 만든 원인에 대해서는 두 분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붓다는 불평등의 원인을 인간의 욕망이, 마르크스는 계급사회가 만든 결과로 본다. 당연힌 해법도 같을 수가 없다. 부처님은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를 통해,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을 통해 이상향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불교를 비롯한 종교는 마르크스를 적대시하고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을까?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만나지 못하는 이유>

마르크스는 인간의 평등을 믿은 사상가요, 붓다는 인간의 평등이라는 교의(敎義: doctrine)를 가르친 인류 역사 최초의 사상가였다. 마르크스는 역사발전의 단계설에서 불교는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평등 사회를 옹호한다. 마르크스나 붓다는 다같은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목표가 같은데 왜 서로 적대시하고 대립과 반목으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까? 붓다와 마르크스가 다같이 계급 차별이 없는 사회를 이상사회라고 간주하면서도 약육강식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행을 통해 해탈을 꿈꾸는 불교와 계급투쟁을 통해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마르크스는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달리는 철도처럼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지 모른다. 인간의 욕망이 역사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계급투쟁이나 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탐, , 치라는 삼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교는 어쩌면 인간 그 자체가 안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가 아닐까?

<불교는 종교인가?>

불교는 중생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 인간 외부에 별도의 신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절대자를 숭배하거나 도움으로 고통 없는 이상향을 찾는 종교와는 다르다. 그러나 비유신론적 종교로서 불교와 과학적인 사상으로서 마르크시즘은 신 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하고 물신화를 비판하는 사상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널드 토인비는 불교와 서양의 만남은 20세기의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극락과 공산주의라는 동상이몽을 꿈꾸는 이 두 사상은 현대과학인 유전자 변형기술로 이종교배를 할 때만 만남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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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7.05.20 06:51


자본주의가 뭐야?”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공부를 열심히 한 고등학생이라면 아마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사회 구성체정도로 대답할까?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어 가 자본의 본질이며 정체성에 대해 물어보면 쉽게 정의해 말할 친구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운명적으로 태어나 이 땅에서 살다 떠나야 할 체재. 그 체제 속에서 평생 살아가야 할 사람들... 자신이 평생 살아갈 자본주의의에 대한 속성과 변천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독점 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왜 자본주의는 이런 변천과정을 겪어 왔을까? 자본주의의 이런 진화는 무죄인가? 누구에게 유리할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자본주의만 있는게 아니다. 사회주의도 있고 공산주의도 있다. 그런데 분단의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체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 남도 북도 마찬가지다. 분단시대 그 반쪽을 사는 우리민족은 운명적으로 태어나 체제우월 교육을 받은 탓일까?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내가 살고 있는 체제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상적인 체제일까? 학생들에게 민주주의가 뭐냐고 물어보면 공산주의의 반대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요, 공산주의는 경제체제건만 학교에서는 그런 구분조차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체제는 소유형태해결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으면 자본주의요, 국가나 공공단체가 소유하면 사회주의 경제체제라고 한다. 국가가 경제계획을 통제하고 있다면 그런 경제는 계획경제라고 부른다. 혼합경제 혹은 수정자본주의란 두 가지 체제가 조합되어 있는 체제다.


시장경제는 상업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에서 다시 독점 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작은 정부)라는 변천의 과정을 겪어 왔다. 시장경제 체제는 창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생산력 증대(효율적인 자원배분과 기술진보), 풍부한 물질생활로 생활수준 향상(사회전체 부 증대) 시킬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경제적 불평등(빈부격차 심화), 지나친 경쟁으로 과잉생산 자원낭비, 만성적 실업과 불황 초래해 실업문제와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해 소득재분배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여기까지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자본주의다. 원론만 가르친다면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실적(행위)에 따라 분배한다(사회주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공산주의)’는 다른 쪽의 원론은 왜 가르치지 않을까? 원론대로 돌아가는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원론만 배우고 성인이 된 후 현실을 모르고 살면 어떤 삶을 살까? 과정을 생략되고 결과로 승패를 가리는 경쟁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점령당한 교육, 자본에 예속된 언론, 자본에 점령당한 종교, 이런 세상에 자본과 결탁한 정치는 어떤 세상을 만들까?



착한 자본주의는 있는가? 자본은 휴머니즘과 공존할 수 있는가? 자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155. 삼성서울병원이 정부로 하여금 메르스 노출 병원의 발표를 미루게 함으로서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사실을 보면 자본을 이해할 수 있다.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이윤의 극대화, ‘돈이 되는 것은 좋은 것이 자본의 논리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원칙을 지키는 순진한 사람이 희생자가 된다. 자본이 독점한 먹거리는 안전한가? 자본이 장악당한 의료, 자본이 주인이 된 주거와 생활용품들은 믿고 사용해도 좋은가? 자본주의에 몸담고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면 한번 쯤 금융위기에 폭락하는 자산가치, 해고된 노동자들, 엄청난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대규모 공장 설비들, 영리 병원과 철도, 그리고 수도, 전기까지 민영화하겠다는 자본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는 이상적인 체제가 아니다. 성서에 이르기를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라라고 했다. 자본주의가 왜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독점 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 진화했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자본의 점령단한 교육을 받고 살아가는 소비자들... 자본이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기 어렵다. 내가 아니라 남이 만든 지식과 가치관, 자기 생각이 아니라 남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들, 현상을 본질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지본이 만든 온갖 이데올로기에 감염되어 살아가는 감각주의, 외모지상주의에 감염되어 살면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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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7.04.07 06:58


분단의 나라 대한민국에는 언제부터인지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유령이 있다. 빨갱이라는 유령, 종북이라는 유령이다. 이제 약효도 지날 때가 됐지만 약국의 감초처럼 등장해 어부지리로 덕을 보는 세력이 있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서럼 기다렸다는 듯이 북쪽에서는 한방을 터뜨리고 남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거에 이용해 먹는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3월, 1976년 이후 역대 최대규모로 북한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훈련, 사드 운용 절차를 점검하는  키리졸브(KR)훈련이 이루어지고 북한에서는 이에 장단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응답(?)해 왔다. 


<이미지 출처 : 키스세븐>


분단의 나라. 한반도에 남쪽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된다. 빨갱이로 낙인찍히거나 연좌제에 걸리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연좌제는 폐지 됐지만 아직도 국가 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사상범, 빨갱이가 되면 본인은 물론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을 갖거나 비판적인 사람, 평등이나 복지를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한다. 빨갱이니까 빨갛게 생긴 줄 알고 살아 온 사람들... 6.1510.4선언 후 레드 콤플렉스도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빨갱이는 같은 사람이 아닌 종북이요, 마귀요, 악의 축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빨갱이요, 종북이다. 빨갱이라는 약효가 떨어져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빨갱이 대신 종북으로 이름만 바뀌었지 낙인찍히기 마찬가지다. 빨갱이나 종북유령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나 종북이 무엇인지 모른다. 빨갱이란 나쁜 것이고 종북은 악의 축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세상에서 복지니 평등을 말하면 종북딱지가 붙는다. 이유불문이다. 선과 악, 사유와 공유를 이분법적 계산인 흑백논리로 재단하면 끝이다. 사상의 자유란 말조차 꺼내지도 못하는 금기사항이다.


도대체 종북이니 빨갱이란 무엇일까? 빨갱이의 역사는 해방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에 빌붙어 동족에서 차마 못할 직을 하던 악귀와 같은 친일분자들은 해방이라는 상황이 공포로 닥아왔다. 1945년 12월 모스코바에서 삼상회의가 열리고 소련이 조선의 신탁통치를 주장하자 찬반논쟁이 들끓게 되고 친일세력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애국대 매국'을 '좌익대 우익'구도로 몰고가 '찬탁=매국=친미'요, '반탁=애국=친일'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다. 친일세력은 애국자, 우익으로 민족주의자는 좌익으로 매도해 정적숙청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익의역사, 빨갱이의 역사는 이렇게 등장해 친일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 정적을 숙청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승만과 친일세력들이 이용해 먹던 빨갱이 '좌익=악'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친일세력, 유신세력, 군사정권, 독재권력이 애용해 먹던 금과옥조였다. 분단이 필요했던 세력들은 자유라는 가치는 선이요 평등이라는 가치는 빨갱이라는 논리를 정착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빨갱이의 진화는 마침내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른쪽(우익=애국), 평등이라는 가치, 복지라는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왼쪽(좌익=빨갱이=종북)으로 분류했다. 오른 쪽은 경쟁이나 효율이라는 가치를 주장하는 승자지상주의,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우익이요, 왼쪽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자유보다 평등이니 복지가 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좌익이 되고 만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가치요 사회주의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인가? 공유()는 악이요, 사유(私有)는 선인가? 평행선을 달리는 두 가치. 자유와 평등, 이 두 가치를 융합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력은 오래 전부터 시도되어 왔다. 그 결과가 생산수단의 사회적(공적) 소유와 사회적(공적) 관리에 의한 사회의 개조를 민주주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실현하려는 사상 즉 사민주의라는 이념이 유럽에서 등장하게 된다.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이 바로 그런 가치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집권한 사회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러한 이념은 이제 무한경쟁이 최고의 가치라는 막가파식 경쟁 지상주의와 다른 가치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분단의 나라 대한민국은 국토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이념조차 분단되어 있다. 분단의 나라 한반도에는 어떤 가치가 더 국민들이 살기 놓은 가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한반도의 남단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민주주의가 선이요, 북쪽에 태어난 사람은 사회주의가 선이다. 원론적으로 무산자 계급인 프로레탈리아가 북한의 주인 노릇을 하는지의 여부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다. 북한의 현실을 거짓없이 전해주는 매체도 없거니와 알려는 사람도 없다. 북쪽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 햇살누리의 누리 블로그>


북한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었던 정권, 남한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는 북한정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선이요 상대방은 악으로 만들어 70년 세월을 지내온 역사가 분단된 한반도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민주주의는 선이요 사회주의는 악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진리요, 그 진리가 바뀌기를 기대할 수 없다. 선과 악의 흑백논리로 남북을 분단시키고 이념으로 갈라놓아야 유지되던 남북의 정권은 분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발 이번 장미선거에는 이 빨갱이 귀신, 종북귀신이 나타나지 않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헌법가치를 실현하려는 지도자. 한반도에 평화를 심는 지도자가 집권할 수 있기는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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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6.10 06:30


 

 

“나는 빨강색이 좋다!”

“넌 빨갱이구나. 왜 빨강색을 좋아해? 넌 나쁜 놈이구나. 우리와 함께 살 수 없어...!”

“나는 검은 색이 좋아!”

“검은 색..? 파란색만 좋아해야지 왜 그런 더러운 색을 좋아하는 거야? 너 같은 놈은 상종할 수 없어, 다른 나라로 꺼져!”

 

누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얼마나 유치하게 들릴까? 지금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북논쟁 수준이 이 정도다. 

 

푸른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빨강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아파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단독주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양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한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민주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에 따라 옷의 색깔, 집의 크기, 생각이나 가치관, 생활양식까지 규제를 받고 통제를 당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 계급사회도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나와 다르면 이단자 취급하는 논쟁은 참으로 유치하고 저질스럽기까지 하다.

 

 

종북주의 논쟁이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종북주의란 말은 국어대백과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위키백과사전에 겨우 찾아 그 뜻을 보니 ‘종북주의(從北主義) 또는 종북(從北)은 대한민국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인 조선노동당과 그 지도자인 김일성, 김정일 등의 외교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라도 적혀있다.

 

대명천지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매카시선풍이 일고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다. 세상 어느 나라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국가보안법이라는 전근대적인 악법이 있어 북한의 좋은 점을 말하거나 북한에서 발행된 책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만 해도 ‘이적찬양고무죄’로 처벌 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북한의 모든 것은 다 나쁠까? 부자 세습과 같은 문제는 사회주의 국가에도 없는 북한 특유의 체제로 비판받지만 북한의 제도나 문화 중에 분명히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모든 것은 악이라는 사고방식은 북한의 폐쇄적이고 획일적 사고와 다를 게 없다.

 

 

‘어께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놀아라, 어께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놀아라.’

‘비야 비야 오지마라 우리 누나 시집갈 때 가매꼭지 물들어 가면 비단치마 얼룩진다.’

‘방구 방구 나가신다. 대포방구 나가신다. 먹을 것은 없어도 냄새나 맡아라. 뿌웅’

..........................

 

아름다운 말. 우리생활의 일부이기도 했던 동요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노랫말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인 지금 들어도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친근감이 드는 말이다. 들길을 내달으며 친구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놀던 추억은 나이 든 사람에게는 고향과 같은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동무’라는 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북한에서 쓰기 시작하자 남한에서는 ‘동무’라는 말 대신 ‘친구’라는 말로 바뀌어 버렸다. 동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간첩으로 의심받거나 빨갱이들나 쓰는 말이 됐기 때문이다.

 

 

어디 동무라는 말만 그럴까? ‘노동자’는 ‘근로자’로 ‘인민’은 ‘국민’으로 바뀌었다.

분단 60여년... 대한민국은 영토와 언어만 분단된 게 아니다. 문화니 역사니 종교니 사상이니 가치관까지 쪼개지고 또 쪼개져 하나 되기는 날이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 믿음만 있다면 상처야 쉬이 치료될 수도 있으련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조짐을 찾아 보기 어렵다.

 

남북정부간에 믿음은커녕 상대방을 헐뜯고 잘되면 배가 아파 못 견디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북에서는 ‘자본주의’라면 미제국주의의 앞잡이... 상종 못할 인종들이 사는 곳, 남에서는 빨갱이’라면 마귀나 악마를 연상케 하는 그런 관계, 그런 원수지간이 되어 있다.

 

종북주의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가 빌미를 준 ‘종북주의’ 논란이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의 탈북자 폄훼 발언으로 불을 붙이고 급기야는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까지 사상검증이니 자격심사를 해야 한다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기호의원은 “십자가 밟게 해 천주교 신자여부를 가린 것처럼 북한에 관한 질문으로 종북국회의원들을 가려낼 수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종북주의 논쟁으로 덕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 역사적으로 빨갱이 타령은 해방 이후 정통성이 결여된 친일세력들이 상해입시정부를 부정하고 집권 시나리오로 시작된 이데올로기다. 이후 반민특위과정에서 혹은 여순사건이나 제주항쟁, 거창양민학살사건 그리고 보도연맹에 이르기까지 혹은 빨갱이를 만들고 혹은 빨갱이로 몰아 적대세력을 축출하고 매도하고 죽였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당한 사람만 무려 30만명이 넘는다. 지배세력이 외세를 엎고 몸서리치는 살육전이 종북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목적이야 친일세력의 후예, 유신잔당의 후예, 쿠데타의 후예, 군사정권과 이들에게 은혜를 입은 세력, 이들을 키워 낸 수구언론, 그리고 반공교육으로 세뇌를 당한 사람들이 자기네 세상을 만들기 위한 꼼수겠지만... 

 

중북논쟁은 새누리당의 재집권 시나리오에 야당이 휘말려 논리도 이성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종북주의 논쟁 속에는 진정한 이념은 없다. 오직 대선 새누리당의 정구너 재창출을 위한 상대방의 정치생명을 매장시키기 위한 음모가 숨겨 있을 뿐이다.

 

겉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면서 속으로는 분단의 유지가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유리하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 추억이 담긴 동요도 말도, 역사도 사라져가고 있다. 종북주의, 빨갱이, 색깔논쟁, 메카시선풍이 거셀수록 정의도 민주주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민들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은 종북논쟁이 아니라 서민들의 복지요, 민주주의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 어떻게 민주며 복지를 말할 수 있는가? 내 생각이 아니면 다 틀린 생각이라는 광기어린 종북주의, 색깔논쟁은 이제 그칠 때도 되지 않았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5.28 06:30


 

 

지난 22일 오후 방송된 MBC '100분토론'에서 한 시민논객이 이석규통합진보당 당선자에게 물었다.

 

 "당권파의 종북주의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데 통합진보당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당권파의 종북주의 때문 아닌가 이런 의혹이 있다"

 

"북한 인권, 3대 세습, 북핵과 같은 주요 사안에 대해서 이상규 당선자의 정확한 입장을 표명해 달라"

 

이상규당선자가 대답했다.

 

"종북이라고 하는 말이 횡횡하는 것은 아직도 군사독재 시절 남북의 대치가 벼랑 끝까지 됐던 그런 색깔론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라 유감이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불거진 바가 있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사상 검증은 양심의 자유를 옥죄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질문과 그러한 프레임이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논객이 다시 물었다.

 

"말을 돌리지 말고 좀 더 정확한 입장을 말씀해 달라"

이석규당선자

 “........”

진행자 “답변을 유보하는 것이냐?”

이석규당선자

“네”

 

이 광경을 지켜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신성한 국회에 빨갱이가 입성하다니....’ 이석규당선자를 보는 조중동의 시각이다.

 

‘간첩 복역자 국회 입성’ 국민은 구경해야 하나(동아일보)

공직자가 ‘북한 문제’ 답하는 건 의무다(중앙일보)

왕재산 간첩단과 민혁당과 이석기 당선자(조선일보)

 

이석규 당선자를 보는 조중동의 시각이다.

 

이석규당선자를 두둔하자는 말이 아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우리시대의 흑백논리기기 기가 막혀 하는 말이다.

 

이석규당선자의 사상검증으로 표현되는 수구세력들의 색깔논쟁은 27일 KBS일요진단 ‘통합진보 한 지붕 두가족, 해법은?’ 시간에 출연한 국민대 홍성걸교수의 질문에서도 드러났다. 홍교수는 손석춘교수와의 토론과정에서 이석규당선자를 종북주의로 규정, 이당선자를 두고 ‘국회의원이 되셨는데 종북파, 주사파 논란이 있기 때문에 국가기밀을 북한에 그대로 보고하는 것 아닌가,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해묵은 색깔논쟁을 꺼내 이슈화하려는 저의를 드러냈다.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만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6·15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또 금강산 관광을 다녀오고, 개성공단을 개설해 남북이 함께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는 빨갱이요, 빨갱이는 악마라는 흑백논리에 소름이 끼친다.

 

수구세력들이 악용하는 종북이니 종북주의란 무슨 뜻일까?

 

 

위키백과사전은 종북주의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인 조선노동당과 그 지도자인 김일성 전 국가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의 외교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석규당선자가 왜 종북주의라는 공격에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권투시합에서 한사람은 클럽을 끼고 한 사람은 맨손으로 시합을 하면 공정한 경기일까? 대한민국 헌법에는 양심의 자유는 허용하지만 사상의 자유가 없다. 사상의 자유도 없는 나라에 국가보안법까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이석규 당선자가 종북에 대한 설명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가?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국가보안법 제 7조 ①, ③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공개토론석상에서 종북주의 이석규당선자가 알고 있는 북한의 얘기나 자신의 철학을 말하라는 것은 이석규 당선자를 사상 검열하겠다는 악의적인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석규 당선자가 사퇴를 하지 않고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다 친북관력행위를 한다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다른 법으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이상규당선자의 전력을 문제삼아 이슈화하겠다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색깔논쟁을 재현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

 

역사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꺼내는 ‘빨갱이 타령’... ‘사회주의=친북=매국=악마’라는 흑백논리는 이승만독재와 박정희의 유신시대, 그리고 전두환군사정권이 써먹던 선거용이요, 사상탄압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기득권세력들이 이석규당선자의 사상을 이슈화해 매카시선풍을 일으키겠다는 비열한 ‘종북주의 논리’는 중단해야 한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3.28 07:00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國有化) △전국 학령아동(學齡兒童)의 전수가 고등교육의 면비수학(免費修學=무상교육)과 교과서 무상공급 △전국 각 동·리·촌과 면·읍과 도(島)·군·부(府)와 도(道)의 지방자치실현 △적산(敵産=일본 재산) 몰수와 국유화 △몰수 재산을 빈공(貧工=가난한 노동자)·빈농·무산자(생산수단이 없는 사람)를 위한 국영·공영 집단 생산기관으로 충당"한다.

 

사회주의 북한의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건국강령에 나와 있는 건국세력들이 만들고자했던 건국얼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건국강령에는 "△노공(老工=늙은 노동자)·유공(幼工=어린 노동자)·여인의 야간노동 금지 △고리대금업과 사인(私人)의 고용농업의 금지 △농공인(=노동자·농민) 면비의료(免費醫療=무상의료)로 질병 소멸·건강 보장" △18세 이상 남녀 선거권보장, 20세 이상 남녀 피선거권...까지 보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건국강령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좌·우를 넘어서 당시 독립운동세력 대부분이 합의해 만들고자 했던 해방된 대한민국의 이상적인 국가상이다.

 

 

부모의 유지(有志)를 받들지 못하면 불효라고 했던가?

 

‘쏘련식 민주주의가 아모리 좋다 하여도 공산독재정권을 세우는 것은 싫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모리 좋다 하여도 독점자본주의의 발호로 인하여 무산자를 괴롭게 할 뿐 아니라, 낙후한 국가를 상품시장화 하는 데는 악질(惡疾)이다.’

 

이 말씀은 1949년 김구선생님의 신년사다. 2002년 권영길대통령후보가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놓았을 때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수법이라고 많이도 매도(罵倒)당했다. 그런데 1949년 김구선생님을 비롯한 당시의 임시정부요인을 비롯한 독립운동세력들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의 강령에는 무상교육, 무상의료뿐만 아니라 토지의 국유화와 노동자, 농민들의 무상교육까지 실현하려 하지 않았는가?

 

누가 감히 사회주의자도 아닌 김구선생님의 주장을 빨갱이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건국강령 발표 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직도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포퓰리즘으로, 18세 이상 선거권 보장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무상교육은 空約을 남발하는 새누리당의 4·11총선에 구색 맞추기로 나와 있을 정도다. 식민지시대 적산(일본인 재산) 몰수는커녕 친일분자의 후예들이 재산 찾기 소송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독립운동의 후손들은 아직도 달동네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가 하면 친일세력에 학살자의 후예와 그들과 한통속이 된 공모자들이 함께 만든 정당이 집권당이 되어 해방 70년의 대한민국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일찍이 김구선생님이 우려했던... 북한은 독재정권이, 남한은 미국식 독점 재벌에 의해 가난한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해방 70년이 가까워 오는 독립국가 대한민국은 분단의 상태에서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조차 친일분자들이 작곡, 작사한 노래를 부르고 친일분자가 된 자가 만든 태극기를 게양하고 살고 있다.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하고 10월 유신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려 했던 쿠데타의 주역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유신을 찬양하던 언론인도 밀수를 하던 재벌도 민주화운동을 때려잡던 사법부 인사도 권력이 되어 민주주의를 말하면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나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현행 대한민국의 헌법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건국선현들이 강령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세상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꿈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는커녕 나라는 온통 재벌 공화국으로 만들어 놓고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가난한사람들이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일제의 강점을 온몸으로 저항했던 독립운동가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조국 대한민국의 건국강령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건국강령으로 만들고저 싶어했던 이상적인 나라는 언제쯤 가능할까? 

 

건국강령 원문을 보시려면...

대한민국 건국강령-2.hwp☜ 클릭하십시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거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2.11 07:00



“빨강색이 좋지 않겠어요? 색깔도 예쁘고 자기주장도 강하게 드러나니까요.”

“선생님은 왜 빨강색을 그렇게 좋아 하세요? 북한사람들처럼...!”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린가?

아마 공식석상만 아니었다면 “선생님은 빨갱이니까 역시 빨강색을 그렇게 좋아하지요.”
했을 것이다.

며칠 전 교직원회의에서 교감선생님이 ‘신입생 명찰 색깔을 무슨 색으로 했으면 좋겠는가 생각해 보라’고 숙제로 냈던 얘기를 확인하는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내 얘기를 받아 빨강색깔이 빨갱이 색이라서 싫다고 반대한 선생님은 미술선생님이었다.
결국 신입생 명찰은 빨강이 아닌 파랑색으로 결정 났다.


전교조 경남지부장을 지냈다는 죄(?) 때문에 마산이 연고지인 나를 울산, 방어진으로 발령냈다가 마산에서 하루에 차를 왕복 6번씩 갈아타야 하는 경남 고성의 시골의 한 중학교로 다시 발령 나 근무할 때의 얘기다.

‘전교조는 빨갱이다!’

‘전교조는 빨갱이’라는 딱지는 어디를 가든 따라 다닌다. 아니 전교조뿐만 아니다. 민주노동당이며 진보적인 시민단체에 약국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별명이 빨갱이다.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해 진보세력에게 친일 후예세력(새누리당의 뿌리)들의 정적은 무조건 좌익이요, 빨갱이세력이다.

이들이 좌익이요, 친북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전교조와 진보적인 시민단체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이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니 경쟁, 효율이라는 가치보다 평등과 분배, 복지를 우선가치를 주장하는 세력들이다. 이념적으로 보면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은 맞다.


‘빨갱이, 좌익, 친북세력...’ 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악마의 상징이요, 제거의 대상이 됐을까? 도대체 진보적인 세력들에게 땔래야 땔 수 없는 빨갱이라는 딱지는 왜 붙어 다닐까?

빨갱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17년 V.레닌에 의해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자, 소련에서는 L.트로츠키에 의해 '붉은 군대' 즉 '적군(赤軍)'이 창설된다. 또 중국에서는 1927년 '홍군(紅軍)'이 결성되어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의 김일성에 의해 '붉은 군대'가 창설되어 북한 내에서의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하게 된다. 빨강색이 사회주의를 상징한 색깔이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라는 말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친일세력들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미제국주의자와 친미사대주의자, 그리고 북에서 쫓겨 내려온 친일파세력들과 손잡고 항일독립운동세력에게 덧씌웠던 이름이 빨갱이다.(당시 항일독립운동은 사회주의계열이 주도함) 다시 말하면 변절한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친일행동을 독립운동으로 은폐하고 기득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다.

이승만 반공정권의 탄생은 1948 제주 4.3사건, 10월 여순사건을 시작으로 빨갱이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민족독립운동세력을 빨갱이 ‘살인마’라고 선전하면서 ‘좌익=빨갱이요, 이들은 이땅의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렇게나 죽여도 좋은 존재’로 만들어 나갔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제주에서 8~10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데 이어, 1950년부터 6.25사변을 겪으면서 보도연맹사건을 조작, 무려 20만명(위키백과사전)을 학살하기에 이른다. 그 후 박정희군사정권을 비롯한 친일세력들은 정적을 제거의 대상인 빨갱이요, 악마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빨강색만 보면 몸서리를 치는 레드콤플렉스(Red compiex).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과장되고 왜곡된 공포심과, 그 공포심을 근거로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는 정적 제거용이 바로 빨갱이수법이었다. 이승만독재와 박정희 군사정권은 국민들로 하여금 빨강색만 보아도 몸서리를 치도록 하는 반공교육을 시켜 왔다. 

한국사회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독재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집권 세력들은 과거 반공교육으로 길들여 놓은 레드 콤플렉스를 체제안정과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빨갱이=악의 상징’이라는 논리는 자신과 정치적인 이념이 다른 정적제거용 이데올로기다. 미술선생님까지 빨강색이 악마를 상징하는 색이 어떻게 새누리당의 색깔이 됐는지 모르지만 이제 빨강색으로 흑색 선전하는 후진정치는 마감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당의 색깔로 선택한 이상 ‘빨강색=악마=친북=좌익’이라는 흑백논리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의식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 위의 이미지들은 다음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1.05 06:30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김정일이 서거한 후 KBS의 보도 태도를 보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잘 죽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흉악한 인간인가를 홍보할 수 있을까? 더 악마와 같은 존재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그런 보도 태도다. 마치 ‘여기가 평양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며칠동안 하루 종일 김정일에 대한 보도뿐이었다.

“3대 세습이 뭐야? 세계에서도 저런 나라가 어디 있어? 백성들을 굶어 죽는데 어떻게 김정일 혼자만 저렇게 호화생활을 할 수가 있어?”

뉴스를 보고 있던 아내가 하는 말이다.

“잘 모르면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 하지 마시오”

“모르긴 뭘 몰라요? 며칠 전 KBS ‘긴급입수 김정일, 숨겨진 과거’를 보니 백성들은 굶어 죽어 가는데 코냑 값만 1년에 65만~80만 달러를 쓰고 세계 각국에 여러 채의 별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잘하는 일이오?”

“글쎄요. 세습이 잘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북한 나름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봐주면 안 될까? 그리고 북한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얘기나 코냑 값이 몇만 달러라는 게 사실이겠어요? 설마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에서 보면 사실보다 더 부풀려 보도할 수 있지 않겠어요?”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김정일 성토로 목청을 높이던 아내다. KBS 특집방송을 보고 화가 잔뜩 나 있었던 모양이다.

“KBS보도를 보니 김정일은 자신의 70번째 생일파티에 1천만 달러(약 110억원)를 투입해 호화잔치를 했다는데... 그런데 북한 사람들 옷 입고 다니는걸 봐요! 우리나라 60년대 사람들이 입던 옷 같잖아요?”

“허 ~ 그러면 북한 사람이 굶어 죽는 걸 보고 있는 게 인도주의란 말이요? 옷이란 자본주의 시각에서 보면 사람의 가치나 신분을 나타내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의복을 우리처럼 그런 기준에서 보는 게 아니랍니다. 그리고.... ”

“당신은 북한에 가면 환영 받을테니 북한으로 가시오!”


이쯤 되면 대화 끝이다. 더 이상 계속하면 싸움이 될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북한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아내와 나는 적대관계가 된다. 아내는 북한을 성토하고 나는 변명해주는... 그래서 결론은 “당신은 북한에 가서 살아라”다.

아내만의 시각이 아니다. 조중동이나 찌라시 방송을 들으면 북한의 적이요, 그쪽을 조금만 좋게 말하면 빨갱이요 상종 못할 종북주의자가 된다. 하긴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북한을 좋게 표현하거나 북한관련 책을 보면 ‘이적찬양고무죄’로 처벌의 대상이 되니 입 다물고 살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 중에 나꼼수를 좋아한다는 블로거가 있다. 그분은 자신블로그에서 주진우 기자가 ‘김정일 서거’라는 말을 썼다고 ‘’실망했다‘고 기사를 썼다. 우리 속담에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계란 같다고 구박한다."고 했던가? 조중동을 접하고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북한이 잘 되면 배가 아프거나 좋은 점을 두고 못 본다. 동족이 적이 되고 지질이도 못살고 굶어 죽는 모습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지.... 그래놓고 통일을 하자는 얘긴 왜 할까? 


나는 성격상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한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만 나도 처음 성경을 읽고 참으로 신비한 경험을 했다. 예수님이라는 분. 그분이 사람인지 신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성경을 몇번씩이나 읽다가 의문이 풀리지 않아 결국은 서양사, 서양 철학사, 종교사, 민중신학, 해방신학까지 읽고서야 겨우 감을 잡았다. 결국 ‘예수는 없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비판적인 책까지 섭렵(?)하고서야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에서 특히 유신시절 국민윤리를 가르치면서 북한에 좋은 점이라고는 없는 그래서 증오하고 적대감을 갖도록 하는 책이 맘에 안 들어 진짜 북한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했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고등학교에서 윤리, 세계사, 역사, 지리, 정치, 일반사회, 사회문화... 를 가르치다 보니 세계 사상사니 종교사니 유물론이며 마르크스 철학까지 기웃거려야 했다.

통일이나 북한문제도 마찬가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북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북한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제시대부터 분단과정이며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부루스커밍스를 읽고 송건호, 강만길, 마찌니 평전, 프랑스 파뇽과 루이저린저를 읽었다. 역사를 가르치는데 이데올로기조차 이해하지 못 하고서는 사실(事實)과 사실(史實)도 구별할 줄 모르는 제자들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사상에 대한 문제, 사회주의니 공산주의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을 윤리 교과서처럼 가르칠 수 없었다.

 


나의 독서욕은 금서도 가리지 않았다. 대학교수연구실에 가면 버젓이 꽂혀 있는 책, 현대 조선사며 북한의 역사책을 왜 고등학교 교사는 읽으면 안 되는가? 북한의 주사철학이며 마르크스 철학에 빠지기도 하고 북한의 역사(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며 유물론까지 정신없이 읽었다. 그 후 기회가 있어 평양과 개성 백두산까지 갔다 올 수 있었지만 북한에 대한 궁금증은 완전히 가지지 않았다. 내가 고민하고 읽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종합해 보면 나름대로의 사회주의나 북한이 어떤 나라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런 나는 왜 아내에게 종북주의자요, 북한에 가서 살라는 얘기를 들어야 하는가? 

양심의 자유는 허용되는 나라에 사상의 자유가 없다. 형법이 있는데 왜 국가보안법이 필요한가?  분단의 현실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해도 안 되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하면 ‘수상한 사람, 빨갱이, 종북주의자, 좌빨이 된다. 나는 이글을 써 블로그에 올려지는 순간 수많은 알바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한 집에서 수십년을 함께 살아 온 아내도 내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는데 누구를 욕할 수 있겠는가?

나꼼수를 좋아하다 주진우기자에게 ‘김정일 서거’라는 말을 듣고 실망했다는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호된 꾸중(?)을 들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고 했던가? 최소한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마취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도 마찬가지다. 그 틀을 깨고 통일로 성큼 다가 갈 날은 언제쯤일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9.20 05:00


                                <아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교육자는 누구인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 미성숙한 인간을 성숙한 인간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 언제부터인가 ‘교육자’란 ‘학교에서 교육과정대로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그렇다면 그 교과서에 담긴 내용은 ‘교육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을 완벽하게 양성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까? 교육자들 중에는 ‘내가 지금과 같이 가르치면... 지금처럼 학교를 경영하고, 지금처럼 장학을 하면.... 완벽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하는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면 교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고위공직자가 될 사람들,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우등생이었다. 학교가 길러낸 ‘출세(?)한 사람’ 그들은 왜 하나같이 ‘부정부패와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사회지도층 인사들 중에는 왜 병역기피,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이중국적소유자들이 많을까?...’, 일류대학을 나와 고위공직자나 재벌이 되면 당연히 도덕결핍증환자(?)가 되는 것일까?


교육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이수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해 교단에서 교과서를 전달하는 사람’을 교육자라 한다. 그런데 그 교과서에는 진실만을 담고 있을까?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교과서 내용에 기득권의 논리, 자본의 논리인 이데올로기가 숨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르치는 교사는 얼마나 될까? 교과서만 잘 전달해 주는 교사는 완벽한 교육자일까? ‘내가 교사이니까, 전공한 지식을 교과서대로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교사의 책무의 전부라고 믿어도 좋을까?

부모들은 어떤가? 자녀 교육에 대해, 학교 교육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기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 좋은 식자재에 관심이 없는 부모는 없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 담긴 내용은 어떤 것인지, 현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그대로 배우면 훌륭한 인격자로 자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민해 봤을까? 학교에만 보내면...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 하면... 좋은 성적만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학교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 학교교육을 일컬어 의도적인 교육이라고 한다. 대통령령으로 ‘교육과정’이라는 걸 만들어 교과목을 정하고 내용을 정선해 담아 연간 시수에 따라 교육법이 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게 학교교육이다. 목표치에 도달한 정도, 성취도 평가를 잘 받은 학생이 교육의 목표를 잘 달성했다고 믿고 있다. 점수만 좋으면 내가 가르치는 제자가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교사의 믿음처럼, 학부모의 믿음처럼 자녀들은 기대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교육이 무너졌다고 아우성이다. 위기의 걱정을 하고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이 나서서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대안들이 하나같이 효력을 얻지 못하고 수십년을 혼란과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전문가의 역량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대안이 없어서일까?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필요나 요구보다 사회가 필요한 인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성한다.


봉건제 사회에서는 봉건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사회주의에서는 사회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는 게 교육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 자본주의가 길러내 주기를 바라는 인간은 어떤 인간상일까?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은 '홍익인간(홍익인간의 핵심은 '이타주의')이다.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의 양성'(교육법 제1조)이 교육의 목표다.

그렇다면 학교는 홍익인간이라는 교육목표,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을 보면 하나같이 ‘근면한 사람'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사람’을 길러내겠다는 학교도 많이 생겼다. 그런데 학교는 그런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목표수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학교는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식민지시대 학교는 피교육자인 학생들을 똑똑한 사람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충직한 일본인(황국신민)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직, 성실, 근면’한 사람은 오늘날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이 맞을까? 교육수요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일까? ‘근면, 정직, 성실’은 상대적인 가치개념이다. ‘정직, 성실, 근면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여건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의식이 없는 노동자, 의무만 있고 권리가 없는 노동자에게 ‘근면한사람, 성실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자본이 바라는 기대치이다. 정직, 성실, 근면한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은 개인이 행복한 사람,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교사나 학부모가 원하는 인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로 승자를 가리는 사회를 막가파식 사회라고 한다. 요즈음 텔레비전을 보면 온통 서바이벌 게임투성이다. 패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세상. 교육을 비롯해 모든 게 상품이요, 약자는 공존이 아니라 폐기처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교는 왜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르치지 않는가? 사람다운 생각,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존하는 가치보다 영어수학 점수 몇점이 더 중요한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사리분별을 할 줄 알고 선악을 가릴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진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불의한 권력이나 자본이 원하지 않는 인간상이기 때문은 아닐까?
 


독과점은 시장에서만 나쁜 게 아니다. 교육이 상품이 된 지 오래지만 교육수요자의 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내 아이를 학교에 맡겼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는 정서가 남아 있는 사회에서 교육수요자는 아직도 죄인이다. 독과점체제가 된 공급자는 양심적일까? 시장에서 공급자는 비판받고 검증하면서 교육의 수요자는 공급자의 독과점에 순응해야 착한 수요자인가? 7차교육과정 이후 교과서가 공급자의 의도대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초·중·고교 역사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 놓았다. 영어수학과 같은 도구적인 교과는 예외로 치더라도 도덕과 사회, 정치와 같은 교과에 담긴 이데올로기는 수요자인 피교육자가 원하는 가치를 담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인민민주주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도 있다. 그 수많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자유민주주의’로 한정하면 피교육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주로 '반공'과 동일시되고, 이렇게 되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독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었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걱정이다. 친일의 후예들, 수구세력이 교과서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요자는 공급자의 폭력에 속수무책일 뿐이다.


전교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교육내용을 말하면 색깔칠을 당한다. ‘왜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지 정치투쟁이나 하느냐?’고.. 10월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요, 5·16을 혁명이라고 기록한 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가 되라고... 교과서가 틀렸으니 고쳐서 바른 역사관을 갖게 하자는 교사와 틀린 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중 누가 더 훌륭한 교사인가? 누가 더 교육자다운가?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농부는 농사나 짓고 선생들은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라’고 한다.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정규직 노동자가 불이익을 받는데.. 한미 FTA가 통과되면 죽도록 농사를 지어도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는데...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들에게 자본가의 가치관을 갖도록 의식화하는 교육을 열심히 하라고 한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들 한다. 죽도록 일해도 일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라면만 먹고 돈을 모으다가 병이 걸려 병원비로 다 날리고 노숙자가 된 사람들에게 그런 말이 통할까? 기본과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 마취된 교과서로 병든 가치관을 갖도록 갈치는 교육은 차라리 폭력이다.

- 이 기사는 경남민예총 ‘시사IN 예술人’에도 보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5.12 17:41


- 이명박정부의 시장화정책, 그 끝은 어디인가? -


이명박후보가 당선되고 착잡한 심정으로 썼던 글입니다. 당선되기가 바쁘게 쏟아냈던 신자유주의 친부자정책을 보고 '노동사회교육원' 회지에 썼던 글입니다.

세월이 지난 글을 본다는 게 진부한 면도 없지 않지만 예상했던대로 경제문제며 청년실업문제, 남북문제, 교육, 환경 등 참담 그 자체입니다.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놓고 이제 그가 꿈꾸던 부자들의 세상, 마지막 의료보험민영화가 그 절정을 이룰 것 같습니다. 
그 때, 무엇을 걱정했는지 걱정했던 일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 지 한 번 뒤돌아 보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옮겨 놓습니다.

홍세화씨가 말했던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라고...

‘자신은 노동자이면서 머릿속에는 노동자가 아닌 경영자라고 착각하는 사람’
을 일컬어 그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병리학적으로는 자기치료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본인은 물론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닐까? 덕분에 이명박 정부가 나타났고 부자들을 위한 정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영어 몰입교육’,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학교자율화 추진 3단계 계획’...등 점입가경이다. 오죽하면 2메가바이트(2MB)라고 했을까? 머지않아 ‘철수한 아프칸에 파병 추진’, ‘의료보험 민영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법인세 인하’... 등 메가톤급 폭탄정책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를 살립시다’에 희망을 걸고 이명박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목을 죄는 정책이 드러나자 허탈하고 참담해 하는 분위기다. 이명박대통령의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대한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자업자득이다’, ‘당해도 싸지’, ‘국민들도 식겁 먹어봐야 한다’...라는 등.


이명박정부의 탄생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서민들이 선택한 결과요,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른 사람들의 업보다.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자식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서민들... 그러다 훌쩍 중병에라도 걸리면 파산을 당해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피해자들이 스스로 가해자(?)를 선택한 것이다. 이제 이명박정부 5년동안 당할 서민들의 애환은 ‘학교자율화 추진 3단계 계획’에서 알 수 있듯이 상상을 초월한다.


'강부자 내각'이나 '고소영 청와대' 혹은 '2MB'도 모자라 '매드 카우(Mad Cow) 프렌들리 보이'(MB)라는 별명까지 붙은 이명박대통령의 정책은 노골적이고도 엽기적이다. 조중동이나 기득권 세력과 코드를 맞춰 ‘짜고 치는 고스톱. 부자들을 위한 준비된 정책이 몰고 올 파장은 출범초기부터 후폭풍이 만만찮다. 그가 추진했고 앞으로 추진하려는 ‘시장화정책’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들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한 배제하고 ‘시장의 질서’에 나라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철학에 바탕을 둔 이들 시장 지상주의자들은 복지니 평등과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내다버려야 할 가치로 안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조금이라도 졸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이들이 추구하는 세상이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몰고 왔던 고전 자본주의의 한계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요, 자업자득이었다. 소위 ‘시장실패’로 일컬어지고 있는 고전자본주의의 한계는 자본주의 수호자들에 의해 스스로 수정된다.

자본의 횡포로 위기에 처한 자유주의자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수정자본주의라는 간판으로 바꿔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큰정부, 개입주의 혹은 복지국가라 붙인 이름이 말해주듯 자본의 논리 시장만능주의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는 ‘시장실패’란 무엇인가?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란 ‘외부요소의 개입이 없는 완전경쟁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나 공급자는 다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컴퓨터 뚜껑을 열고 무슨 칩의 가격이 얼마며 어떤 공정절차를 거쳐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소비자는 몇 명이나 될까? 소비자가 시장정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도 없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질서란 인플레나 독과점이나 인플레이션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시장실패란 이렇게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나 재화의 특성상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독과점이나 인플레이션, 환경오염, 공공재의 부족, 실업의 증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장만능주의는 1930년대 사상 최악의 세계대공황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일선에서 후퇴한다.

사회주의의 등장으로 위기를 느낀 자본주의는 재기의 기회를 노리다가 레이건이나 대처와 같은 자유주의자의 도움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으로 가장한 신자유주의는 FTA라는 이름으로 세계시장을 누비다가 이명박정부와 코드를 맞춰 한반도에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명박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처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멀리는 김영삼정부시절 민영화니 자율이니 하는 이름으로 서서히 서민의 목줄을 죄어왔던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책봉(?)을 받기 위해 방미 길에 오르고 진상품과 하사품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진상품을, 미국은 한국국민들이 비자 없이 왕래할 수 있는 하사품(?)을 주고받았다. 알 수는 없지만 아프칸에 군대파견이나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연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진상품을 바쳤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대통령은 미국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오는 5월부터 미국산 'LA갈비'를 전면 개방해 서민들의 밥상에 올릴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광우병위험을 걱정하지만 잠복기가 평균 10년가량이고, 길게는 30년~60년 정도 지나서야 증세가 날수도 있으니까 이명박대통령으로서는 걱정할 일이 아니다.

대운하건설은 또 어떤가? 삼면이 바다인 국토 환경에서 손쉬운 해양 물류를 외면하고 내륙에 운하를 파서 물류를 개선한다는 발상부터가 황당하다. 건설비용만 해도 무려 16조가 투입된다는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면 홍수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와 재난, 문화재 망실... 등 그 피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국민의 생명도 국토 파괴도 안중에 없다는 투다. 이대통령이 살리겠다는 경제는 재벌과 강부자내각, 강부자 청와대의 이익이지 서민들의 경제가 아니라는 걸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교육은 어떤가? 교육과학부가 지난 4월 15일 발표한 ‘학교자율화추진 3단계 계획’을 보면 어이가 없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생까지 일제고사를 실시해 그 석차에 따라 우열반을 편성하고 건강문제로 폐지됐던 0교시와 야간보충자율수업도 허용했다.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과 후 학교에 학원 강사가 수업을 할 수 있게할 뿐만 아니라 학원이 아예 방과 후 학교를 위탁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학업성취도에 따라 수준별로 우열반을 편성하고 서울대반 고려대반, 연세대반...과 같은 특정대학 진학반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각종 규제지침 29개를 폐지한 것을 ‘학교자율화’조치라 했다.


교사들의 채택비리로 금지했던 학습 부교재 선정지침과 아직도 교사들의 리베이트문제로 말썽이 그치지 않고 있는 사설모의고사 금지지침도 폐지하고 심지어 초등 어린이신문 강제구독 예방 지침이나 교복 공동 구매 지침, 촌지 안주고 안 받기 운동까지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 학교자율화란다. 학교자율화란 학교가 부패와 불의로터 지켜야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폐지한다고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진정한 학교자치란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하고 형식적인 교사회나 학부모회가 법적기구로 보장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시장논리의 끝은 어딜까? 선거공약에도 명시했듯이 이명박정부의 다음 카드는 의료민영화가 될 것 같다. 현재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요, 국민은 국가로부터 당연한 권리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의료나 교육을 공공성을 포기하고 자본의 논리에 맡겨 돈의 가치를 사람의 가치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영화 ’식코‘에서 볼 수 있듯이 돈으로 사람의 생명을 사고파는 미국의 의료 민영화를 이명박정부가 공약으로 내걸었고 서민들은 그를 지지해 의료 민영화도 코앞에 닥쳐왔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역사인식‘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내놓았다. 어찌 대안 교과서뿐이겠는가? 사경을 헤매던 국가보안법도 부활시키고 노동운동이며 시민운동의 숨통을 끊어놓을 때까지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나 ‘개구리 경영론’(개구리를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 자신은 그 온도를 감지하지 못한 채 50도가 되면 죽어버린다는 이론)처럼 서서히 주권자들을 마취시켜 무력화하고 있다. 삼성특검은 삼성 살리기로 끝내고 철수한 아프칸에 재파병도 시간문제다.

이명박정부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노동권(근로권), 노동3권, 교육권, 보건권, 환경권과 같은 사회구너적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차별을 정당화하고 그들만의 자유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것이 1% 내각이 지향하는 세계다. 이명박정부의 각료와 청와대구성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해 평균재산이 35억을 넘고 있다.

그들이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성장 후 분배를 해도 늦지 않다’던 자본의 목소리는 이제는 대물림으로 정당화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그들의 천국, 3공, 5공의 부활이 아닐까?

- 이 글은 노동사회교육원회지(연대와 소통 2008년 여름호)에 실린 원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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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1.01.10 07:07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령.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 정치판을 두위ㅣ집어 놓는 유령! ‘빨갱이’

이 빨갱이라는 이 유령은 수구세력들의 단골 선거 전략으로 그 대상이 전교조가 되기도 하고 민주노총이 되기도 하고 통합진보당이 되기도 한다.

지난 대선 때에도 새누리당 대표로 대권에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정계 은퇴까지 선언한 이회창씨가 대통령출마 때에도 빨갱이를 사냥하겠다며 나타났다. 수구세력들이 필요하면 꺼내는 전가보도(傳家寶刀) ‘빨갱이’. 해방 후 수없이 많은 선거를 치루면서 기득권 세력들은 정적을 퇴치 혹은 선거 전략으로 애용되어 왔다.


도대체 요술 방망이와 같은 이 빨갱이의 실체는 무엇일까? ‘빨갱이=마귀’라는 등식은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는 수구세력들이 애용하는 금과옥조의 보물이다. 분단과정에서 진보적인 인사, 민족주의성향의 지식인 사냥을 위해 보도연맹을 조직, 30여만명을 빨갱이로 몰아 처형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4.3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주도세력과 무고한 제주도민 10여만명을 빨갱이로 몰아 희생의 재물로 삼기도 했다. 박정희군사정권은 물론 12. 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이나 독재정권이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애국인자를 처형하던 ‘좌익=빨갱이’라는 수법이었다.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이 ‘빨갱이’란 무엇일까? 어원을 살펴보면 `좌익(左翼)'은 `왼쪽 날개'라는 뜻이요, 우익(右翼)은 ‘오른쪽 날개'라는 뜻이다. 좌익(좌파ㆍ左派)은 진보, 혁신 또는 사회주의적 사상이나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를, 우익(우파ㆍ右派)은 보수, 자본주의적 사상이나 경향을 의미한다.  

좌우익의 역사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왕 루이16세(1793년 1월에 처형됨)의 처리 문제를 위해 지롱드파(봉건귀족을 대표하는 체제보존적인 성향)와 자코뱅파(봉건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이념인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의 필연이라고 봄)가 의회에 모였는데 지롱드파는 오른 쪽에, 진보적인 성향이었던 자코뱅파는 왼쪽에 앉는데서 비롯된 말이다.

우익과 좌익은 이렇게 아주 우연하게 앉은 좌석의 위치에서 비롯됐지만 이후 근대 인류 역사에 중요한 정치․경제적 용어로 또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우․극좌, 중도우익, 중도 좌익 등 세분화되어 씌어 지곤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우익과 좌익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수구세력을 우익으로, 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추구하는 세력을 좌익으로 표현하고 있다.

좌익과 우익을 구체적으로는 살펴보면 자유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은 우익으로,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을 좌익으로 분류된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끊임없이 경쟁과 효율,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새누리당이나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신문과 재벌들은 우익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평등이나 기회균등, 복지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이나 민조노총, 전교조와 같은 노동단체는 좌익에 가깝다. 

우익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정부 규제 철폐를 주장한다. 자본의 편에서 복지 관련 공공지출의 대폭축소와 임금 동결 및 삭감, 외국 기업을 위한 완전한 시장개방, 기업에게 세금 감면, 노동조합 무력화 등이 우익이 추구하는 이념이요, 지향점이다.

한국에서의 우익은 탈세와 비리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몸통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시대에는 친일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좌익은 식민지잔재청산과 친독재 세력의 청산을 주장하고 민족의 자존과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경제적 독립을 주장했던 친일세력에 비해 무장투쟁을 통한 완전독립을 주장했던 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해방과정에서 좌익을 악마로 둔갑시킨 이승만정권의 이념공세가 ‘좌익=빨갱이’라는 공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약자배려나 복지 평등과 같은 가치는 불교나 기독교의 사상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가 무신론의 입장에 선다는 이유로 이들 종교는 오히려 교조(敎祖)의 사상과 반대편인 우익세력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좌익(빨갱)=마귀’라는 논리는 사회주의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불의한 권력이 집권 연장이나 정당화를 위해 정적을 몰아내기 위한 숙청도구로 기능했던 것이다.

빨갱이의 역사는 해방과정에서 권력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친일세력들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북한=사회주의=친소=악마=매국’으로, 남한=민주주의=친미=애국=천사‘라는 등식을 만들어 ’반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뇌를 시켜왔다. ‘좌익=북한=사회주의=빨갱이=악마’라는 지론을 펴는 사람치고 공산당선언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보거나 좌익이 원론적으로 약자를 배려하고 복지를 지향하는 평등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념을 알고 있기나 할까?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수하다거나 자유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보다 우수하다는 식의 단순 비교란 무리다. 인간이 만든 제도는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지도 않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민주의’가 대두되고, 사회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이니 '흑묘백묘(黑猫白猫)론', ‘3개대표론(三個代表)론'으로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중요한 것은 체제비교가 아니라 체제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토론문화의 정착이다. 한반도 통일방안처럼 정부안 외에는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이 되는 현실에서는 사회복지도 인간해방도 기만이다.

기득권 세력들이 집권 전략으로 애용해 오던 ‘색깔 뒤집어씌우기’는 아직도 유효하다. 사상의 자유와 토론문화의 정착 없이는 인간이 만든 제도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완벽하지 않는 제도가 인간의 삶을 옥죄는 굴레가 되어 진보적인 사람들의 사상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모순투성이 제도가 기득권 세력의 권력을 장악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될 때 다수의 민중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은 실종되고 인간이 수단 가치로 대상화될 뿐이다. ‘빨갱이’라는 괴물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도 인간 해방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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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2010.11.24 06:43



노인을 일컬어 ‘꼰대’라고 한다.
모든 노인은 다 꼰대가 되는가?
인터넷에서 ‘꼰대’라는 말을 검색을 했더니
아버지, 또는 선생님과 같은 의미에서 남자에게만 씌여지는 말로 : 
1. 아버지를 욕할 때 쓰는 말.
2. 나이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
3. 선생들을 부르는 말.
4. 세대차이 나는 아저씨들을 지칭하는 말.

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아버지를 어떻게 이런 말로 비하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언제부터 이런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

국어사전에는 꼰대를
1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 이라고 풀이했다.

흔히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혹은 ‘나이 값을 못하는 사람을 비꼬아서 쓰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꼰데라는 말은 "꼰데기(번데기)"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이 든 어른들이 번데기처럼 주름이 많은 것에 빗대어 "꼰데기, 꼰데, 꼰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꼰대라는 말이 생각 날 때가 가끔 있다. 남의 얘기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닫힌 사람들이 그렇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
또 지식인들 중에서도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하면서 마음을 열지 않은 사람이 이런 류(類)에 속하지 않을까?

우리사회의 갈등과 대립도 사람들의 이러한 폐쇄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농업사회인 정의적인 사회를 지나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날이 갈수록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종교인들의 흑백논리가, 정치인들의 정파적인 이익에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만들어 놓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일부 언론들이 언론의 사명을 망각하고 우리 사회를 이해관계로 풀어가려는 왜곡보도가 이러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해 놓은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그밖에도 이익이 선(善)이 되는 상업주의 논리와 학교교육의 부재가 우리사회를 꼰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규칙이 무너진 경기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우리 사회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상업주의 논리가 지배하면서 선입견이나 편견, 아집, 흑백논리, 고정관념과 같은 전근대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이 때문이다.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물음에 ‘자기 자신’이라고 답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객관이 아닌 주관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들은 얘기 중에 '경상도 사람들은 의리가 있고 전라도 사람들은 신의가 없다'고들 말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전라도에 대해서, 또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재정권이 만든 이데올로기인 ‘빨갱이’ 논리도 그렇다.

사회주의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빨갱이’하면 이를 간다. 민주주의는 '선'이고 공산주의자들은 '악'이라 생각한다든지, 선한 사람이 아니면 모두 다 악한 사람이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류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사회주의가 뭔가?, 왜 사회주의가 나쁜가?”라고 물으면 한마디도 대답을 못한다.
'선이 아닌 건 모두 악한 것'이라는 흑백논리가 이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을 불쌍하게 본다든지 ‘자신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하는 편견이 있고 자기중심의 생각이나 소견 또는 그것에 사로잡히는 아집도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


진정한 자아(自我)를 아는 것. 그것은 자신의 인격이기도 하고 원만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집이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중동의 왜곡보도를 금과옥조로 알고 살아간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자기 성찰과 남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진정한 자아를 가꾸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선입견이나 편견, 아집, 흑백논리,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인색하지 않는 것, 이런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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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는 선이고 진보는 악인가? -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쓴 책의 제목이다. 조의원의 꿈은 전교조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다.

‘전교조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악의 축이다(선진미래연대) 전교조는 김대중, 김정일의 사주를 받은 이적, 적화 통일의 야욕을 가진 이적 단체다. 우리나라는 전교조 때문에 망할지도 모른다.’(Redout)

‘아무것도 모르는 초.중.고등학생들이 전교조에 의해 친북,좌익 반미.반일사상을 세뇌당하고 있다.’(자유지성)

전교조 때문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은 누굴까? 뉴라이트계, 조중동, 한나라당, 재벌들... 이들은 한결같이 전교조는 ‘초기는 순수한 열정,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범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은 팽개치고 데모나 하는 정치집단으로 변질됐다’며 개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전교조는 교육을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세뇌나 하는 단체일까?

경남도교육감으로 출마한 고영진(63) 한국국제대 총장은 "이번 교육감 선거는 좌파와 좌파에 대항하는 세력 혹은 집단 간의 대결"이라고 규정하고 나서 "좌파세력인 전교조의 교육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학부모와 시민을 결집해 선거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혀 전교조와 한판승을 벼루고 있다.

오는 6·2선거에 출마준비를 하고 있는 모인사는 ‘선거 때 전교조 전자도 근처에 얼씬해서는 안된다.’며 전교조와 가깝다는 게 득표에 불리하다며 선을 그었다. 전교조가 득표에 불리하다는 이들은 전교조를 비난하는 것이 득표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반전교조 전선’을 선거 전략으로 내걸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선거에서 전교조 조합원이었거나 전교조성향이라는 이유로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고 오는 선거에서도 상당 수 후보들이 친전교조는 득표에 불리하다고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확립과 교육민주화 실현을 위해...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위해 창립된 전교조가 왜 악의 세력의 대명사처럼 오도되고 있는가? 조전혁의원의 책 이름처럼 전교조 없는 세상이 오면 누가 살맛나는 세상을 만날까? 학부모나 전교조교사에게 배우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의 전교조교사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고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인기교사라는 대답이 지배적이다. 그런 전교조가 왜 미움을 받고 살까?

일부 극우세력들의 말처럼 ‘전교조는 좌파요, 악이요, 반민족세력’이요, ‘반전교조인 우파는 선이요, 민족주의자’일까?

참가자 중 1명이 '경쟁의 벽을 허무는 당당한 반란'을 내용으로 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교육희망)
 

좌우파란 말이 생겨난 연원부터 살펴보자. 「좌파(左派)란 사회개혁과 변혁을 추구하는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과 집단을 일컫는다. 세계적인 기준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와 생태주의를 좌파로 본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상대적으로 사회변동에 온건한 지롱드당이 의회의 오른쪽 부분에, 급진적인 자코뱅당이 의회의 왼쪽 부분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위키백과)」

그렇다면 우파인 「보수주의(保守主義)는 어떤가? 보수주의란 ‘종교나 문화 및 민족의 기존 가치관 유지를 주장하는 정치 이념’이다. 보수주의자들 중에는 현체제(status quo)를 유지하려 하는 이도 있고, 구체제(status quo ante)로의 복귀를 원하는 이도 있다.(위키백과)」

중고등학교 윤리교과서를 보면 ‘민주주의 반대가 공산주의’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개념이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경제개념인데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라는 식으로 서술한 것은 악의적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기독교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등이 있고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개념이 아니라 무산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독제체제요, 사유재산을 허용하는 자본주의의 반대개념이다.

‘좌파(사회주의)=악’이라는 주장은 참인가? 사회주의란 ‘사유 재산 제도를 폐지하고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여 자본주의 제도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극복한 사회 제도를 실현하려는 사상. 또는 그 운동.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사회 민주주의 따위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국어사전) 원론적으로 보면 사회주의란 악의 축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서 배분을 통한 평등사회건설을 이상으로 하는 정치체제다. 악의 축이라는 표현은 자본가나 기득권층이 자신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경계하는 뜻에서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다.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는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자원을 분배하며 운영하는 공동 경제와 모든 민중이 노동의 댓가로써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다양한 사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위키백과)이다. 자율이니 효율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평등이니 분배니 하는 주장은 악의 세력이라고 거품을 물 수도 있다. 원론적인 해석대로라면 평등이니 분배를 통한 사회건설을 주장하는 전교조나 민주노총 등 진보적인 사회단체들은 좌파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좌파란 얘기만 나오면 펄펄 뛰는 진보세력은 왜 자신들이 좌파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은 있어도 보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보수라고 자칭하는 세력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친일세력과 그 아류들이요, 친미, 독재, 군사정권의 후예들이다. 이와 함께 불의한 권력에 기생해 치부를 한 재벌과 이들에게 은혜를 입은 부류들이 이에 속한다. 현재 권력의 시혜를 입어 성장한 재벌과 한나라당이 그렇고 권력의 나팔수도 마다않는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과 기득권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가 드러남이 두려워 전교조를 포함한 진보세력을 정적(빨갱이 혹은 친북)으로 몰아 끊임없는 숨통조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좌익 혹은 친북으로 매도되는 진보세력은 누군가? 빨갱이로 매도되고 민주노총과 전교조,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은 역사적으로는 항일운동에 참가했거나 독재권력에 저항한 민주주의, 민족주의 성향의 인사들이다. 이들은 해방 후 노동운동, 교육운동 또는 사회운동을 통해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에 저항하고 있는 세력이다. 수구세력은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권력과 언론, 종교와 교육으로 압살을 기도하고 있지만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들은 복지사회와 민주사회 건설을 위해 분배와 평등이라는 가치로 권력과 맞서고 있다. 그 한 가운데 전교조가 있어 수구세력들은 눈에 가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니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빨간 거짓말이 통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친일세력과 그 아류들이 언론이나 교육을 통해 ‘좌익은 친북세력이요 악이며, 우익은 친미세력이며 선’이라는 세뇌교육(반공교육)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해방과정에서 보도연맹과 4·3사건에서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통해 사회주의는 악의 세력이요, ‘나서면 죽는다.’는 마취요법으로 진보세력은 반민족 매국세력으로 매도한 결과다. 언론을 통한 세뇌도 모자라 학교를 병영화시키고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빨갱이 논리를 세뇌시킨 결과다.

보수의 가면을 쓴 수구세력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해방정국에서 보도연맹과 4·3항쟁 진압을 통한 빨갱이 사냥 그렇고, 이승만정권은 한국노동운동총연합회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동청년단, 서북청년회라는 어용단체를 조직, 독재권력을 정당화하는 바람막이 역할을 감당하게 했다. 박정희정권시절, 새마을 청년회나 새마을 부녀회를 조직, 독재를 미화, 정당화시키고 종교단체들의 대통령조찬기도회, 문화단체를 통한 독재권력 찬미, 언론을 통한 땡전뉴스가 각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극우세력의 상징인 뉴라이트와 같은 단체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구멍가게와 재벌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몰아가는 보혁갈등은 시합 전에 승패가 결정난 경기다. 독재정권과 수구세력은 권력지향적인 세력에게는 당근을, 비판세력에는 재갈을 물리거나 색깔을 뒤집어 씌워 진보세력을 말살한다. 독재권력은 약점을 가진 인사나 단체를 끌어안아 불의한 권력의 방패막이로 만든다. 뿐만 아니라 어용노동단체와 어용교원단체를 조직하고 대한부인회, 4H클럽, 토지개량조합... 등을 조직, 사상통제와 권력방어에 이용해 왔던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는 대국민 사기극은 중단해야 한다. 소수의 사람들을 잠간 속일 수는 있지만 다수의 민중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해방정국에서 배태한 비극은 친일잔재청산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대한민국의 탄생은 독립운동세력의 숙청에서 출발해 사대주의로  존립의 근거를 마련한다. 폭력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불의가 권력의 나팔수에 의해 두둔되는 분위기에서는 전교조는 악의 세력이요 이적단체다. 귀 한개를 가진 토끼가 사는 마을에서는 두 개의 귀를 가진 토끼는 병신 취급을 당하기 마련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09.01.27 06:44



기독교는 왜 사회주의를 그렇게 싫어할까? 기독교의 공유시상과 사회주의의 공유사상이 닮았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이상인 사회주의와 '기쁨과 안식만이 있고, 죄와 악이나 고통과 괴로움도 없는 천국'과 많이 닮았는데 말이다.

'약자배려'와 '소외된 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평등의 가치도 둘이 너무 닮아있는데 왜 기독교는 사회주의를 '마귀'로 규정하는 것일까? '평등'이라는 가치는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지만, 기독교가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사회주의는 유물론의 입장에 서는데 반해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게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 김영사
만들어진 신
<구약 성서>의 야훼는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다". 그 신은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는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등장한다.

기독교 광신주의자들의 행태는 거의 모두 이 신을 빼닮았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은 <만들어진 신>에 나오는 얘기다.

하느님을 보는 시각은 솔직히 극과 극이다. '지금은 신약시대이기 때문에 구약의 야훼 하느님과 현재의 예수님의 시대는 다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분명히 성부인 '야훼' 하느님과 성자인 '예수', 그리고 성신인 '성령' 하나님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를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한쪽에서는 유일신을 '사랑의 화신'으로 보는 가하면 한쪽에서는 '사악한 마귀'와 같은 존재로 해석하는 것일까?

'원수를 사랑하라', '이웃 사랑하기는 네 몸처럼 하라', '만약 누가 너희에게 오리를 함께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 십리를 함께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거든 속옷까지 벗어주어라….'

우리나라의 경우 개신교인 수만 하더라도 무려 900만명, 천주교인 수까지 합하면 1천300만명을 넘는다.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산다면 어떻게 범죄는 날이 갈수록 늘고 환경오염이며 사회양극화가 심화 되는가?

80만원도 못 받는 1천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르고 사회복지기금으로 130억을 내는 홈에버-이랜드 사주는 사랑의 기독교인 맞는가? 살상무기를 만들어 치부하는 기독교는 과연 예수의 사랑을 실천한다고 볼 수 있는가?

 
  
ⓒ 현암사
예수는 없다
'성경엔 일자 일 획의 오류도 있을 수 없다는 축자영감설이나 성경무오류설'을 믿는 이들이 리처드 도킨스의 야훼관을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몇 해 전 오강남 교수가 쓴 책 <예수는 없다>가 출판됐을 때도 그랬다. "예수를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문제인 것이 그릇 믿는 것이다. 바로 믿지 않는다면 차라리 믿지 않는 게 낫다"는 내용의 책이 <예수는 없다>라는 책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책의 제목만 보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중세였다면 오강남 교수는 종교재판에 회부돼 마귀로 규정, 화형에 처해 졌을지도 모른다.

<성서>와 <만들어진 신>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존재에 대한 사유' 자연에 대한 정신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이러한 극과 극의 견해차로 나타난 것이다. 한쪽은 '물질'을 세계의 근원으로 보고 정신은 물질의 반영이라고 보는 반면, 다른 쪽은 '정신을 세계의 근원'으로 보고 물질은 정신으로부터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차이다.

물질은 소멸하지도 않고 창조되지도 않는다는 사람들의 생각과 정신이 있기 때문에 물질을 인식할 수 있다는 생각의 차이가 두 관점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철길처럼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으로 수백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극과 극의 견해차'를 보이는 문제를 두고 시비를 가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논리적인 사고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또는 '신의 뜻'으로 합리화하는 사고로는 대화가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방법은 '행위'로 누가 진리의 편에 서는가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한국교회가 '개정 사립학교법 시행을 앞두고 사립학교의 정관개정 및 개방이사 선임을 거부하는 불복종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는 이미 진리의 편에 서기를 거부하고 있다. 부패사학을 옹호하고 불의의 편에서 예수의 가르침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어찌 사학법 개악뿐이겠는가? 식민지시대 신사참배로 10계명조차 팽개친 기독교 지도자들이다. 해방 후 혹은 독재자 편에서 혹은 자본의 편에서 기독교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팽개친 지 오래다. <만들어진 신>에 나오는 구약의 야훼 신의 횡포가 아니라 사랑의 신인 예수의 시대조차 불의의 편에서 약자의 가해자로 또는 수탈자로서 구실을 마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탈레반 인질사태에서 네티즌의 불 같은 질책이 바로 예수님의 목소리가 아닐까?

이 땅의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재림할까?' 생각해 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황금 옷을 입고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팔을 불면서 공중에서 내려오는 그런 신일까? 아니면 이 땅에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백성의 모습으로 나타날까?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복음 25:42-46>

약자 위에 군림해 수탈하는 그런 하나님이라면 누가 예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을 것인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