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8.01.01 06:31


무술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올 한 해에도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사랑과 화평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계획하신 모든 일 뜻대로 이루시고 웃음꽃이 그치지 않는 한해가 되시기를 두 손 모아 비나이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17백만 주권자들이 만들어 놓은 촛불 민주주의 대한민국... 올해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모두가 주인 대접받는 국민주권 헌법을 만들어 소외되지 않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권자가 사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단군할아버지께서 이 땅에 나라를 세우신지 4351...

무술년 정월 초하룻날 아침....

 

영험하신 천지신명님께

엎드려 다시 간절히 비나이다.

 

부족한 게 없는 풍요의 땅, 대한민국에 언제부터인가 잡귀들이 나타나 알토란같은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순하디 순한 사람들을 사는 나라를 침범해 괴롭히며 못살게 굴고, 잡아가 노예로 삼고 못살게 굴었나이다.

 

몽고귀신, 중국귀신, 쪽바리귀신, 미국귀신, 프랑스귀신도 모자라 가짜 예수귀신, 부처귀신, 최순실귀신, 박근혜귀신까지 나타나 착하기만 한 우리 국민들의 주권을 빼앗아 못살게 굴었나이다. 용감한 우리 국민들은 이들을 잡아 가두어 다시는 못된 잡귀들이 주인 노릇 못하도록 잡아 감옥에 가두고 주권을 되찾았나이다.

 

그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선한 양이라며 순진한 국민들을 속이고 착취하며 못된 짓을 골라가며 했습니다. 정의를 말하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눈과 귀를 막고 말을 못하게 만들었나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네들이 주인이라며 혹은 외세로 혹은 유신귀신과 광주학살 귀신들이 한패거리가 되어 주권자들을 못살게 굴었나이다. 그들은 우리 것은 추한 것이고 후진 것이라며 못나고 못 배운 것은 운명이라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질렀나이다.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사람들, 바른 말을 하겠다는 사람들, 외세를 몰아내겠다는 사람들, 잡귀를 쫓아내겠다는 사람들을 종북이니 빨갱이로 몰고 혹은 간첩으로 몰아 혹은 감옥에 혹은 바보로 만들어 온갖 고초를 당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배신자들이 애국자가 되고 역적이 주인노릇을 하는... 그래서 권력에 혹은 돈에 혹은 사이비 종교에 혹은 언론에 맛을 들인 공모자들이 권력을 나눠 갖고 주인행세를 하며 살았습니다.

 

쪽발이들 귀신, 미국놈 귀신과 소련놈 귀신들이 이 땅을 동강내 동족이 원수가 되어 피땀흘려 번 돈을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살상무기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나이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이익을 위해 평화의 한반도를 분단의 땅, 증오의 땅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나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이 땅을 잿더미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으로 만들고 부자간에 형제간에 혹은 친척간에 원수가 되어 서로 죽이고 짓밟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극의 땅이 되었습니다.

 


분단 73....

착하기만 했던 우리네 조상님들이 알토란같은 자식들을 키우며 살던 축복받은 땅, 대한민국이 마피아 잡귀들이 득실거리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모자라 총잡이들이 나타나 민주주의를 작살내고 바른 말하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절하고도 잔인하게 죽이기도 했습니다.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고 비위를 맞추는 자가 애국자가 되고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든 땅이 되고 말았나이다.

 

남북이 분단된 것도 모자라 동서가 분단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 서울 사람, 촌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낮은 사람...으로 나누고 분열돼, 서로를 반목하고 미워하고 무시하고 업심여기며 살고 있나이다.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라도니 경상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혹은 구박당하고 멸시받고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친일귀신, 유신귀신, 군대귀신, 언론귀신, 종북귀신, 얼짱귀신, 몸짱귀신, 유행귀신, 종북귀신, 빨갱이 귀신, 박정희귀신, 전두환귀신, 최순실귀신, 박근혜귀신들이 득실거리는 이 땅을 제발 보통사람, 정직한 사람, 순진한 사람들도 소외되고 병든 사람도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땅이 되게 해 주소서.

 

무술년 올 한해는 이 땅 분단의 땅 한반도에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양심을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 바른 말하는 사람...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마음놓고 살아 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투기꾼이 판을 치고 병역을 기피한자, 탈세를 밥 먹듯이 하는 자, 혹은 부동산에 투기하며 큰소리치는 사람, 논문을 표절하고... 혹은 돈에, 권력에 눈이 뒤집혀 양심 같은 건 팽개치고 텔레비전에 얼굴만 나오면 유명인사가 되고.. 권력 앞에 충견이 되어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것을 출세라고 착각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세상을 그치게 하소서.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었던 시대에도 신문고가 있어 억울하면 호소할 곳이 있었는데, 대명천지 민주주의라는 나라에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며 가만 있어라는 말만 믿고 참고 기다리던 천사같은 우리의 아들딸 304명이 병이 되어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이, 부처님이 정말 있기는 있는 것입니까? 정말 부처님이 정말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인두겁을 쓴 늑대의 무리들을 잡아 가소서. 그들을 죽어 저 세상에 가서 지옥에 보내기 전에 이 땅에서 저들이 저지른 만큼만 고통받게 하소서. 하느님과 부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나쁜 짓 하는 놈들이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지요? 그 영험하다는 부처님, 전지전능하시다는 예수님은 왜 침묵만 하고 계시는 겁니까?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착하기만 한 사람,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 그들이 아들딸 키우며 사는 금수강산 한반도 이 땅, 분단의 사슬 걷어내고 제발 사악한 잡귀들은 잡아 가시어, 다시는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소서. 사람이 사람대접 받고 사는 세상이 되게 해 하소서, 돈이 아닌, 권력이 아닌, 생김새가 아닌, 보통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가난한 사람도,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장사를 하는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병든 사람도 사람취급 받고 사는 세상... 남녀가, 장애인이 차별이 아닌 차이라는 걸 알고 그들도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비나니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제발 무술년 새해에는 갑질하는 귀신거짓말 하는 귀신도둑질 하는 귀신병력 기피하는 귀신부동산 투기하는 귀신논문표절귀신학벌귀신약한 사람 못살게 하는 귀신, 철새 정치 귀신, 종북몰이 귀신, 찌라시 언론귀신, 예수귀신, 부처귀신...들이 개과천선하여 나라의 주인을 섬기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이 모든 악귀들이 다시는 이 한반도 평화의 땅에서 얼씬도 못하게 썩 물리치시고 이 땅에는 나라의 주인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 가난한 사람 눈에 눈물 흘리지 않는 세상, 어린이들, 청년들, 장애인들, 가정주부들, 노동자들, 노인들, 그들 모두 모두가 안녕한 한 해,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비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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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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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올해는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래 봅니다.

    2018.01.01 06: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2018년은 정말 정의로운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8.01.01 16: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참교육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울러 바라시는 바 모든 것들이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서민들이 마음 놓고 기를 펴는 원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8.01.01 17: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잘 보고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01.01 22: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분류없음2016.07.31 06:42


“돈만 밝히는 기복신앙, 한국불교와 인연 끊겠다”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 현각 스님이 실망한 한국불교와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문화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현각스님이 한국불교에 살망한 이유는 '상명하복식 유교적 관습, 국적·남녀차별, 신도 무시, 기복신앙을 비롯한 돈만 밝히는 한국 불교가 싫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해 못할 일도 만나고 오해를 살 일도 있지만 돈을 밝히는 종교의 타락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거대한 교회 그리고 가람마다 거대한 불사를 일으키기 위해 모금을 하는 모습을 보면 비위가 상하도 못해 역겹다. 얼마나 돈이 필요했으면 스님과 수녀가 한 웨딩 업체 광고에 손을 잡고 등장해 두 성직자가 결혼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가 광고를 나돌기도 할까? 

실제로 교회나 성당에 가 보면 종교단체가 참 돈을 밝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빈손으로 교회나 절에 가기 어렵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안칙처가 되어야 할 종교가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심터가 되지 못하고 부자들의 안식처기 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생각이 들 정도다.

교회나 성당, 절이 운영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목회자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기 위해 또는 더 큰 교회 더 큰 성당, 더 큰 절을 짓고 헌금을 강요하다시피하는 교화나 가람은 가난한 이들이 맨손으로 가기 부끄럽게 만든다. 헌금시간이 끝나면 목사님들이 헌금한 손에 축복을 하고... 빈손으로 간 사람이 얼마나 위축되고 미안하고 부끄러울까? 

헌금을 낸 사람을 주보에 게시하고 가람에는 기왓장에 명단을 적고 석탄일이 되면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등에 새기고... 더 많은 돈을 낸사람이 주지나 목사님으로부터 대접받고.... 남루한 옷을 입고 세상 근심 한기득 짊어진 초라한 모습의 신자를 함께 아파하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 않는가? 돈을 밝히는 종교...얼마나 꼴볼견이었으면 연각스님이 '한국불교와 인연을 끊겠다'고까지 했을까?

 2000여년 전에 예수는 천국에 가고 싶어 잿밥에만 맘에 있는 청년에게 말한다. “만일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믿는 예수님이 그렇게 호화롭고 거대한 성당을 지어라고 가르친 일이 있는가? 스님에게 묻고 싶다. 부처님이 그렇게 화려한 불사를 일으키고 격식 차린 예불로 부처님를 경배하라고 가르친 일이 있는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아닌 사람의 눈, 권력의 눈치나 보는 세상 지향적인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그런 교회는 예수님이 미워하신다. 그런 가람은 부처님이 싫어 하신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싫어하는 교회는 종교가 아니다. 타락한 종교가 어떻게 내세를 말하고 어떻게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겠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라고... 당신네들의 귀에는 예수님의 목소리거 들리지 않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왜 귀를 막는가? 권력에 기생하고 자본에 기생해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교회여, 가람이여....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7년 09월 23일 (바로가기▶)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기독교가 타락했을까, 자본주의가 변절했을까?

2007.09.23 14:02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공유사상의 기독교와 사유사상의 자본주의는 물과 기름처럼 공존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어떻게 기독교는 자본주의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가? 모순된 이념이나 체제가 상호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 변절했거나 아니면 타협했다는 증거다. 자본주의가 변질됐거나 아니면 기독교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게 기독교와 자본주의 관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가족은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수백년동안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세상바라보기>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이론상 공존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기독교는 재산의 공유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반면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기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기독교의 사상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한 사회를 이상적인 국가로 규정하는 반면 자본주의는 자유라는 가치를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혹자가 평등이나 기회균등을 말하면 서슴없이 빨강 색칠을 당해야 한다. 또한 기독교의 선(善)은 아카페 사랑이지만 자본주의는 ‘이익이 선’이라는 자본의 논리, 상업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기독교의 이상은 천국이다. 천국이란 무한경쟁으로 경쟁대상자를 밟고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는 자본의 생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감각적이고 이기적인 사람, ‘이익이 선’이라는 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은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이다. 예수를 보라! 기독교인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예수다. 원수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다.

자본주의는 어떤가? 지본주의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된 사회, 이름 그대로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 주인인 사회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가 자본주의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집행유예 판결과 배임ㆍ횡령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이념으로 한다지만 이러한 이념이 완벽하게 실현되고 있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공존할 수 없는 기독교와 자본주의가 공생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기독교의 변질이다. 오늘날 교회는 공유사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천민자본주의를 빼 닮았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어주며,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벗어주며, 오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가주고,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의 사상이다. 

한 청년이 예수께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생명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청년이 대답했다. 

“저는 언제나 그 계명들을 다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다시 청년에게 이르셨다. 

“만일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말씀을 들은 젊은이는 큰 부자였으므로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은 떠나는 부자청년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오늘날의 교회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교회는 이미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의 길을 부자청년처럼 떠난 지 오래다.

이제 남은 답은 분명하다. 교회가 변절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정체성을 찾던지 아니면 기독교라는 이름을 ‘자본주의교’라고 바꾸든지 해야 한다. 신의 뜻을 저버리고 어떻게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인가? 자본주의와 어정쩡하게 한 지붕 두 가족처럼 공생하는 것은 하나님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속이는 이중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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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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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교마저 자본주의에 제대로 물든 판국이니 여타의 영역은 보지 않고도 뻔할 것 같습니다

    2016.08.01 06: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정치2013.11.13 07:05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全義面) 다방리에 있는 천년고찰. 비암사...!
11월 3일. 세종시 제 1기 블로그 기자단이 찾은 비암사는 천년 고찰답게 화려한 가을 옷으로 갈아 입고 있었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왜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을까요?
 
불교가 이땅에 들어 오게 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재위 371~384) 2년인 372년으로, 전진(前秦: 315~394)의 왕 부견(符堅: 재위 357~385)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어 불상과 불경을 전하면서 부터라는 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비암사 전경>

 

종교가 생겨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불교가 이땅에 들어 오기 전에도 자연을 숭배하고 태양신이나 조상신을 모시는 원시종교가 있었지요. 

 

종교란 자연의 위대함에 비추어 인간의 나약함을 극복하려는 마음에서 부터 비롯된 것임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이 오늘날 불교를 비롯한 종교가 뿌리 내린 계기가 된 것이지요.  

 

'죽음'을 이기기 위해...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원초적인 욕망일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불교도 교주인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내세에도 극락왕생하고 싶은 욕구가 불교라는 형식을 빌어 뿌리 내리게 됩니다. 오늘날의 불교는 구복신앙과 접목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되었지요.    

 

 

<비암사를 지키고 있는 800년 묵은 느티나무 - 이 거대한 느티나무는 수령이 800년이나 됐습니다. 800년 전이면 서기 1200년 경, 서기1200년경이면 최충헌의 집권시기 정도가 아닐까요? 몽고군이 침입한 게 1231년이니까 그 때부터 살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분교를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은 3법인 4성제이지요. 삼법인이란 “모든 존재는 변하고 있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모든 사물은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열반의 세계만이 고통이 없는 진리의 세계이다”라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세 가지 명제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열반적정은 “모든 것은 괴롭다”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로 대체되어 말해지기도 합니다.


 

4성제란 《란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원시 불교 가르침으로 불교 기본 교의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諦 · Satya)"는 진리 또는 깨우침을 뜻하지요. 사성제는 "네 가지 높은 깨우침(Ārya: 높은, Satya: 깨우침)" 또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Four Noble Truths)"라는 뜻인데, 고제(苦諦) · 집제(集諦) · 멸제(滅諦) · 도제(道諦)의 4가지 진리 또는 깨우침을 의미합니다. 흔히 이 네 가지를 간단히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부르지요.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는 방법이 8정도지요. 깨달은 자, 부처가 되는 길이 이 8가지 실천덕목입니다.

  1.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2. 정사유(正思惟) ·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3.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4.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5.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6. 정정진(正精進) · 정근(正勤): 바르게 정진하기
  7.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8.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사진 설명: 탑이란 거칠게 말하면 부처님의 무덤이지요. 아니 사리를 모셔놓은 곳입니다. 탑파는 시대에 따라 다얀한 양식으로 나타나게 되지요. 흔히 통일신라시대 탑의 모양은 3층석탑이랍니다. 비암사 3층석탑은 신라양식을 빌려 고려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탑은 1960년 3층석탑 꼭데기에서 계유명전씨 아미타불 3존불상이 발견되어 국보 106호로 지정되었답니다.>  

 

욕망이 고통을 만들어 그 업보로 3도 6계를 윤회하는 세계.. 그 세계를 벗어나는 게 부처가 되는 길이거늘... 욕망에 눈이 어두운 중생들은 스스로 죄의 업보에서 벗어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 8정도를 통해 6계를 벗어나도록 수도를 하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오늘날 불교는 '세상이 헛되고 헛되다'는 진리를 잊고 그 반대로 고의 원인이 되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찰은 화려하게 짓는 것도 고집멸도에 역행하는 길이 아닐까요?

 

부처님의 모습도 목불에서 철불, 금동불, 금불로... 자비로운 모습에서 근엄하고 위엄서린 모습으로 바뀌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종교가 권력과 결탁하면서 민간신앙인 구복신앙과 접목하면서 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권력이 필요로하는 종교. 그래서 종교는 종교가 가지는 본질적인 목적보다 권력이 필요로 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 증거가 바로 고려시대에 나타난 승과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현실이란 영생을 위한 수도의 과정이어야 하고 그래서 부처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수행의 과정이어야 하지만 승려들에게 국사니 선사와 같은 품계를 주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불교의 변질은 민간신앙에서는 토속신앙과 결함함으로써 구복신앙으로 나타나게 되기도 했고요. 


 

 

인간의 욕망과 결합한 종교...!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불상의 모습에서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서 백제후기의 작품으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띄고 있는 서산의 마애삼존불상의 경우와 오늘날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부처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특히 거대한 부처님상을 만들고 서민들의 정서에 영합해 구복신앙을 조장하는 모습은 부처님이 원하는 불상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불교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않는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겉으로는 날이 갈수록 하려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가람 배치도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제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구복신앙. 특히 상업주의와 결합한 현세 구복적인 신앙을 부추기는 사찰과는 다르게 비암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니 유명사찰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닌 천년고찰을 그대로 보존하고싶어하는 스님들의 순수한 마음이 예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비암사 얘기를 해야겠네요.

비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입니다. 이 절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극락전 앞뜰에 있는 높이 3m의 고려시대 3층 석탑 정상 부분에서 사면군상(四面群像)이 발견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석상 중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三尊石像)은 국보 제106호이고,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과 미륵보살반가석상(彌勒菩薩半迦石像)은 각각 보물 제367호, 제368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비암사는 국보 1점, 보물 2점이 발견된 절로도 유명하지만.... 


 

                                              <사진 설명 :괘불탱화함입니다>


 

                                 <사진출처 : 문화재청 -- 괘불탱화(486×863㎝)입니다>

 

비암사에는 일년에 한번씩(매년 4월 15일)만 공개합니다. 그러나  괘불탱화(486×863㎝) 사본을 따로 만날 수 있습니다.

 

비암사 괘불은 석가모니의  영축산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청중들을 함께 묘사한 그림으로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을 장엄하게 표현한 탱화입니다.

 

이 괘불탱화는 17세기 충청도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인 신겸이 여러 명의 화승들과 함께 그린 것입니다. 비록 화면의 상단부 일부가 없어져 다시 제작한 것이지만 남아있는 부분의 뛰어난 필치와 안정된 색감, 상승감을 유도하는 인물의 배치 등에서 17세기 괘불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화기를 통해 조성연대와 시주자, 화승, 봉안사찰 등을 확인할 수 있어 동 시기 괘불 및 불화 양식의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비암사라는 절 이름이 왜 비암사라 부르게 됐는지 아세요?

 

옛날 이 절에는 비구니들이 거처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해질 무렵, 낯선 청년이 찾아와 밤새 탑돌이를 하다가 아침에 돌아갔습니다. 보통 방문객들은 아침에 찾아와 저녁이 되면 돌아가는데 이 청년은 저녁에 왔다가 새벽에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청년은 탑돌이를 끝내고 비구니에게 물한잔을 청했답니다. 

 

궁금했던 비구니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저녁에 와서 밤새 탑돌이를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사연은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다는 듯 빙그레 웃기만하고 돌아갔습니다.

 

궁금해 진 비구니가 이 청년이 가는 길을 미행을 했더니 산 속 커다란 바위 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비구니가 따라 들어갔더니 갑자기 청년은 간곳이 없어지고 청년이 사라진 자리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청년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바라보고 있는 비구니를 향해 구렁이는 "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인데 100일동안 탑돌이를 하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탑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의 모습을 보았으니 사람이 될 수 없어 평생동안 구렁이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비구니는 자기 때문에 평생동안 구렁이로 살아야 하는 비운의 구렁이를 위해 수발을 들며 함께 지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절 이름이  비암사가 된 사연은 '뱀의 사투리' 즉 '비암'이 사는 절이라는 뜻에서 비암사라고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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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800년 된 느티나무의 아름다움도 보고 싶고
    보물들도 만나보고 싶은 곳이로군요
    고운 가을날 되십시오

    2013.11.13 08:15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암이란 이름을 보자마자 배암이 생각나더군요.
    사람은 사랑하고 살아야 하고
    사랑 받기를 원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비암의 눈에 사람이 행복해 보인 건 도발인가요.
    인간이 비암을 사랑할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할 듯 싶은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그 어떤 존재로 태어났듯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인 거 같습니다.
    사는동안 사랑하고 살아야 할 참 불쌍한 존재...^^

    2013.11.13 08: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난 또 비암사가 뱀을 지칭하여 부르는 어느 지방의 사투리를 따다가 비암사인줄로만 알았지요^^

    그리고 불교교리의 핵심에 대하여는 내가 일찌기 아고라에서도 밝혔듯이
    불교학자들이나 사전에서나 볼 수있는 실제적인 불교인이거나 사찰에 출입하는 자들에게는 듣기 힘들지요.

    오늘 말씀하셨던 팔정도는 앞서 붓다가 깨달은 사제팔정도의 기초로 도제의 내용에서 따온 팔정도이지요^^

    가끔씩 제가 강연을 다닐 때마다 나름 피력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해버나이스 데이하세요^^

    2013.11.13 09:48 [ ADDR : EDIT/ DEL : REPLY ]
  4. 역시...뱀과 연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
    요즘에 서양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데,
    유럽이 그리스도교를 지배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우리나라에 불교를 왕실이 앞장서 받아들인 것도 보면
    다 권력의 유지를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로 사람을 다스린다...뭐 그런 의도인가 봅니다.

    2013.11.13 10:01 [ ADDR : EDIT/ DEL : REPLY ]
  5. 다음주에 세종투어가 있대요. 저는 수안보로 내려가야해서 가보진 못하겠지만....
    이렇게 보니 아쉽네요. 세종시엔 지나쳐만 갔거든요.
    종교가 사람들의 욕심과 권력에 휘둘린단 느낌이 강한데 이곳은... 본분을 지키려 애쓰나 봅니다.

    2013.11.13 10:34 [ ADDR : EDIT/ DEL : REPLY ]
  6. 비암사를 보고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뱀 때문이었네요 ㅎㅎ
    농담으로 뱀 때문이라고 적으려고 했던 제가 다 머슥해졌습니다 ㅋ

    2013.11.13 11: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뱀 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2013.11.13 14:48 [ ADDR : EDIT/ DEL : REPLY ]
  8. 저런..슬픈전설이 있군요....
    뱀을 연상하긴 하였지만..마음이 짠합니다....

    2013.11.13 15: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simpro

    슬픈이름의 전설을 간직한 사찰이군요
    비암사..부처가 되는 8덕목도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2013.11.13 16:04 [ ADDR : EDIT/ DEL : REPLY ]
  10. 안타까운 전설을 안고있는 비암사네요..
    요즘 주위에보면 부처님 가르침보단 신도들 관리하는데 신경을 많이쓰는 사찰도 많더라고요..
    일종의 세 불리기에 힘을 쏟는듯 합니다..

    2013.11.13 19: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비암사...
    슬픈전설 알고 갑니다.^^

    2013.11.13 20: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정말 뱀이랑 연관이 있었네요..늘 마지막에 안 되는 ㅠㅠ..안타깝습니다...

    2013.11.13 20:50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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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3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12.09.24 07:00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인,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종교’를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고 했지만 철학이 없는 삶은 방황의 연속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할 얘기가 많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은 꼰대 소리를 듣는가 보다. 오늘은 종교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오늘 전개하는 얘기는 나의 개인적인 종교관일 뿐 신실한 종교인들을 비하하거나 남의 종교를 비난할 목적이 아니라는 걸 먼저 밝혀둔다.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한두 번 절에 가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절에 가면 시주를 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돌아오는 것.... 부처님께는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정성을 다해 빌면 비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그런 불교신자들이 많다. ‘절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은 삼신도 모시고 조상신도 모시고 한울님...도 모시면서 산다.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다녀 본 성경학교나 커서 이성에 호기심을 느낄 나이가 되면 교회나 성당의 따라가다 기독교 신자가 되거나 아니면 부모가 신실한 기독교인이어서 배속에서부터 종교인(?)이었던 사람도 있다. 그런데 불교신자건, 기독교 신자건 종교인들에게 ‘종교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속 시원하게 ‘종교는 이런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종교란 ‘죽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 난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어떤 힘’에 자신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신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 싱안의 대상이야 시대나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일 믿고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 그런게 종교가 아니까?

 

신관(神觀)이 없는 종교란 위헌 천만이다. 기독교의 경우를 보자. 고등학생들에게 ‘기독교가 뭔가?’라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학생들이 없다. 국어사전을 보면 ‘基督’이란 머리에 성유 부음을 받은 자, 곧 왕 또는 구세주라는 뜻으로, ‘예수’를 이르는 말, ‘그리스도’의 음역어‘이라고 풀이한다. 크리스트라는 말의 한자 방음이란 뜻이다. ‘기독=천주=크리스트=구세주=예수’라는 의미다.

 

기독교인이라는 학생 들 중에는 구교와 신교, 천주교, 개신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다. 종파 얘기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천주교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여호와 증인신자든 자신이 믿는 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분이 사랑의 신인지 권위의 신인지 구별조차 못한다면 옳은 신앙인 아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종교가 철천지원수가 되어 수천년간 앙숙의 관계로 이어지는 종교란 그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 복잡한 뿌리는 어쩌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요. 이슬람교는 만인의 신인 알라(야훼,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야훼, 여호와)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민족종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름만 다른 ‘알라’와 ‘야훼’(신은 같은 여호와)라는 차이인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앞으로도 타협이란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원한이 깊고도 복잡하다.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답은 신앙인의 신관(神觀)이다. 신관에 따라 천주교와 개신교, 이슬람교..로 나눠진다. 개신교 만해도 장로교, 침례고, 감리교, 퀘이커교, 기독교 한국루터회,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제 7일 안식재림교회...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장로교는 다시 고려파 장로회, 기독교 장로회, 통합파와 합동파....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의 기독교는 신관에 따라 분열되었다기 보다 이해관계로 얽혀 분열된 경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한 신자가 ‘어떤 종파가 진짠가’의 여부로 따진다면 신앙도 갖기 전에 실망감으로 신을 믿을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종교의 핵심은 자신이 신앙하는 ‘신이 누군가?’라는 문제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신앙의 핵심이다. 똑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이명박장로, 뉴라이트의 김진홍목사, 서경석목사...같은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문익환목사, 문규헌, 문정현신부, 이태석신부.... 같은 분도 있다. 누가 믿는 예수가 진짜일까?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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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돌돌이

    종교에도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위대한 사상가 참교육님 ㅋㅋ

    2012.09.24 08:36 [ ADDR : EDIT/ DEL : REPLY ]
    • 돌돌이

      전체주의자답게 종파의 차이는 분열주의로 보고 비판하는 모습은 오늘글의 백미임

      2012.09.24 08:38 [ ADDR : EDIT/ DEL ]
    • 분탕질은 그만쳐.병맛들아. 일제시대 참배한것도 사과안한 개독들아.
      니들이 왜 욕을 먹는지나 알아보지? 종교가 분열됐으면서 지네들끼리도 단합이 안되는 주제에 무신론자보고 욕하니 욕먹는거?거기에 전체주의가 왜나와?니네들이야말로 기독교 아니면 무조건 지옥간다고 지롤옘병 떨잖아.^^

      2014.05.01 14:09 [ ADDR : EDIT/ DEL ]
    • 한마디 더 하겠는데 평등이란 사상은 말이야.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특성이란다.
      병신아. 이거 뭐 북한사람도 똥을 싸고 우리도 똥을 싸니 종북이란 헛소리나 다름없지? 뭐눈엔 뭐만 보인다고 예수 안믿으면 무조건 지옥간다고 하는 너같은 개독들한테는 배타성만 보이겠지?^^

      2014.05.01 14:13 [ ADDR : EDIT/ DEL ]
  3. 예수 믿으면 천국,
    예수 안 믿으면 무조건 지옥!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써진 전단지를
    가슴과 등판에 붙인 사람 보면서
    이건 완전히 협박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갈수록 종교도 세속화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 많습니다.

    2012.09.24 08:45 [ ADDR : EDIT/ DEL : REPLY ]
  4. 종교문제는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 입니다.
    사실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2012.09.24 09: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많은 역사를 통해 정치를 위해 종교가 이용된 적이 많이 있고,
    한 때는 종교가 정치였던 적도 있었지요.
    그런 역사들을 돌이켜보면서 종교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깝깝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종교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인류의 사상과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다보니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참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2012.09.24 09:53 [ ADDR : EDIT/ DEL : REPLY ]
  6.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셨지
    개인의 욕심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지요
    앞에 분들은 욕심
    뒤에 분들은 구원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

    2012.09.24 10: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신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군요. 차안에 이야기하셨던 그것이네요. ^^ 잘 들어가셨죠? 온몸이 뻐근하긴 하네요.

    2012.09.24 10:18 [ ADDR : EDIT/ DEL : REPLY ]
  8. 성서를 독점하던 중세 로마 카톨릭에 저항하여서 인쇄문화의 발전에 힘입은 루터의 독일어 성서번역에서 종파의 갈림이 시작되었지요....


    카톨릭의 보편성과 통일성 일체를 거부하고 개인과 신의 1대1 대면과 실존의 문제로 철학과 종교사조를 옮기는 부분에 성서의 라틴어 정경에서 독일어로 그리고 다른 언어로의 번역과정에서의 종파의 갈림도....



    댁들 표현대로 하면 표현의 자유와 인간양식의 다양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인,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종교’를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고 정의하셨는데, 그 원칙은 누구를 위한 원칙인가요?



    노동없는 부라고 하였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그럼 지금 이 사회의 자본가들은 다 죽어야겠네요...^^



    이윤추구의 측면에서 양심 다 따지고 장사하는 이들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장사가 되겠어요?^^



    동물과의 교감이란 전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 인간들을 위한 각종 동물실험은 인간성있는 과학인가요? ^^



    헌신의 대상과 이를 수행하는 이들 사이의 교감이 100%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헌신이나 좋은 취지의 일들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고 비틀려서 행위의 주체를 매도하고 숨통을 끊는 일이 하나도 없던가요?^^



    7가지 사회악에 대한 고견~~~ 잘 보고 갑니다~~~^^



    2012.09.24 1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자본가들은 놀고 먹나요? 사장이나 회장 밑에것들 관리해야 하죠.
      회사 운영해야하죠. 정책 결정? 자기가 해야하죠?
      이건희는 놀고먹는 존재인가요? 자본가라고 노동없는 부라는 건 뭔지???? 노동없는 부는 불로소득을 말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백수같은 인간들. 그리고 저 말은 필자의 말이 아니라 간디의 말입니다.
      따질거면 간디가 잘못됐다고 하시면 끝날일...

      2014.05.01 14:50 [ ADDR : EDIT/ DEL ]
    • 2년지난 글에 답글 다기가 좀 그런데 그래서요?
      지금 기득권층 하는 태도를 보라니까요? 개독,재벌,국개의원 들을 하는 꼬라지들을 보라고요! 새누리당 민주당 지들끼리 싸울때는 언제고 임금인상은 잘도 합심하더라. 역시 그놈이 그놈들이지요.뭐.우리나라에 뭘바랍니까? ㅉㅉㅉ

      2014.05.01 14:52 [ ADDR : EDIT/ DEL ]
  9. 오늘은 비교적 짧은 본문속에 뼈가 있네요.
    저도 고등학교때 친구따라 멋모르고 다닌 적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가 믿는 신이나 종파등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 독실하지 않은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호와에 대해 궁금한게 참으로 많은데 말입니다.
    기분 좋은 한주 보내십시요~^^

    2012.09.24 12: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좋은 글 잘 보구 갑니다.
    아무쪼록 평안한 하루 되시기 바래요.

    2012.09.24 13: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요즘 종교때문에 세계가 어수선하니....뭐라 하기가 좀 그러네요.
    행복한 한주 되세요...^^

    2012.09.24 14: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2012.09.24 15: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뿌리는 같아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들...
    어쩔때 보면 절대 이기주의자들이 그들인것도 같습니다...저는 비종교인이라서..ㅎㅎ

    2012.09.24 16: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전통신학과 민중신학의 차이 잘 봤습니다.
    9월 마무리 주네요, 마무리 잘 하시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

    2012.09.24 16: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삶에 있어서 사람은 끊임없이 고민하는것 같아요.

    2012.09.24 17: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목사로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2012.09.24 20:49 [ ADDR : EDIT/ DEL : REPLY ]
  17. 믿음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나를 위한 것이길...
    누군가를 끌어들여 세를 확장하는 것이 되지는 않기를...
    바랄 따름이에요.

    2012.09.24 22:06 [ ADDR : EDIT/ DEL : REPLY ]
  18. 전통신학과 민중신학의 차이 잘 보고 갑니다.

    2012.09.24 22: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좋은포스팅 잘보고갑니다^^
    월요일 마무리 잘하시고, 좋은꿈 꾸세요^^

    2012.09.24 23: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역시 어딜가나 수꼴들은 넘쳐나는군. 마치 이글루스를 보는 듯한 느낌. 그 새끼들은 어디가나 왜 비슷한 주장들 뿐이고 자기잘못을 지적하면 인정을 안할까?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것들이. ㅉㅉㅉ 넷상에서만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다.
    노동없는 부도 정당하다 이딴 개소리를 하지.ㅉㅉㅉㅉㅉㅉㅉㅉㅉ

    2014.05.01 14:16 [ ADDR : EDIT/ DEL : REPLY ]
  21. 의견과 비판이 난무하네요 ^^ 핵심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아무튼 알곡도 가라지도 같은 밭에서 같이 자라지요. 추수때가 되면 알겠지요.
    핵심은 내가 누구인가입니다.

    2015.10.27 10: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08.12.08 22:19


딸아이가 사는 청주에 들렸다가 예까지 온 김에 속리산에나 갔다 오기로 했다. 속리산에 가면 법주사 입구에서 거부감을 느낀다.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 공원 입구를 막고 입장료를 내야한다며 지키고 있는 사원의 태도부터가 그렇다. 신라 신흥왕 때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고색창연한 내력보다 경내를 들어서면 거대한 금불상(법주사 미륵대불)에 대한 위압감에 주눅들게 한다.

<사진 : 속리산 법주사 부상의 크기가 또 금으로 칠하면 더 영험으라도 있다는 듯 사원마다 경쟁적으로 크고 화려한 부처님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국보 제5호인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을 비롯하여 국보 제64호인 법주사석연지(法住寺石蓮池), 보물 제15호인 법주사사천왕석등(法住寺四天王石燈), 보물 제216호인 법주사마애여래의상(法住寺磨崖如來倚像), 보물 제848호인 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 보물 제1259호인 법주사괘불탱 등은 높이가 33m나 되는 금동미륵대불의 위압감에 질린다. 100여Kg(불상의 무게 160여톤)이나 되는 금으로 도금을 했다는 불상 앞에 중생은 계급적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부자 부처님에 대한 거부감은 그것 말고도 부처님 앞으로 가고 싶은 중생들을 가로막고 무엇에 필요한 지 좀 더 많은 모금을 위한 모금요원이 버티고 앉아 있었다.

부처님은 왜 이 세상에 오셨을까?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大正藏, 3, 463, 下)과 〈태자서응본기경(太子瑞應本起經)〉(大正藏, 3, 473, 下) 두 경을 내용을 합해보면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 뜻은 바로 ‘괴로움을 해결하여 안락(安樂)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이 고통을 벗어나 안락의 세계에 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신 것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중생구제’라고 한다. 바로 부처님은 사바세계의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오신 분이다. 이를 제도(濟度)라고도 표현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한마디로 말하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생은 왜 법주사 경내를 들어서면 위화감이나 위압감부터 느기니 웬 일일까?

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이 ‘중생’은 누굴까? 사전은 중생을 ‘감각이 있는 모든 생명. 지·수·화·풍 네 가지로 합성된 몸을 가진 모든 물건’이라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평범한 삶을 사는 ‘민초’들이요, ‘민중’이다. 이들이 애환을 해결해 주기 위해 내놓은 화두가 ‘생노병사’ 문제일 것이다. 종교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생’을 강조하느냐 아니면 ‘사’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존재의 이유가 달라진다. 불교에서는 ‘생(生)노(老)병(病’)보다 ‘사(死)’를 강조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부처님이 사를 강조하라는 가르침은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듯이 ‘산다는 것’을 ‘허무’나 ‘무상’으로 본다. 부처님이 살아계셔서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분명히 ‘사는 것이 곧 죽는 것이요,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잘 살지 못하면 잘 죽지 못한다’는 연기법이 이와 같은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가난이 죄’라고 했다. 여유 있는 집에서 제대로 사랑과 교육을 받고 자란다면 평범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도 친구나 이웃을 잘못만나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 이런 뜻에서 보면 ‘생에 대한 애착’으로 고(苦)를 만든다는 ‘고집멸도(苦集滅道)’도 해석하기 따라 다른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생’를 강조하느냐? 아니면 ‘사’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불교의 정체성을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불교가 중생의 삶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중생의 ’생‘의 질을 높이기보다 사원의 축적을 위해 정교유착해 온 것이다. 문제는 ’권력의 맛‘, ’돈의 맛‘을 보면 교조의 진의를 살리기 어렵다. 거대한 부처님! 황금 옷을 입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개미만한 속물(?), 인간이 굼틀거리고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면 가소롭게 보시지는 않을까? 배가 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의 고통을 모른다고 했다. 가난의 애환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설움을 알 리 없다. 물론 부처님은 그런 분이 아니지만 종교지도자는 자꾸만 부처님을 속물로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세상이 극락보다 좋고서야 해탈이 어떻게 가능할까? 불교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부처님의 뜻을 쫒으려면 거대한 불사를 위해 서민들의 주머니를 축내는 일부터 중단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부처님이 입고 계시는 그 도금한 옷과 부처님의 얼굴에 붙은 권위를 털어내야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금을 내지 않고 치부하고 있는 사원, 그 사원이 입고 있는 ‘부자'라는 옷부터 벗어야 중생이 보인다. 그런 다음, 사원이 잘 사는 길이 아니라 중생이 잘 사는 길을 제시하고 안내해야 한다. 가난할수록 중생들은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허무주의로, ‘운명론자’로 만든다. 부처님의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이세상에서도 극락을 누리고 다음 세상도 극락왕생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사원이 있는 한 거대한 불상에는 부처님도 영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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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2008.10.24 07:19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와서 불교나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가르쳤는데 사립학교법을 개악하고 세금도 내지 않겠다면서 문화재관람료는 받겠다고 생떼를 쓰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불같이 화를 내며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지는 않을까? 3법인 4성제 8정도를 통해 부처가 되라고 가르치신 부처님이 서로 지분을 많이 가지려고 몽둥이질을 하고 부자가 되어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과연 성 내지 않을까?

대웅전에 모셔둔 부처님은 한결같이 금 색깔이며 얼굴은 또 왜 또 그렇게 권위에 차고 살이 쪘을까? 그런 모습을 쳐다보면 평화와 자비심을 느낄 수 있을지… 수양부족인 중생의 눈에는 부처님의 덕을 가리는 사이비 승려들의 적악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역사기행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불상을 만나게 된다. ‘저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부처님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부처님의 모습도 시대별로 다양하게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누워 있는 불상, 않아있거나 서 있는 불상, 또 깡마른 부처와 뚱뚱하게 살이 찐 부처, 천진난만하게 생긴 부처와 범접할 수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의 불상도 있다. 철불과 동불이 있는가 하면 금동불과 금불상도 있다. 왜 이렇게 생김새가 다양한 불상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반가사유상>                    <입불>                     <좌불>
세상은 보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탈레반이 잡아둔 한국 인질을 보고 한 편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던 착한 사람들이 사악한 테러세력이 잡고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순교는 그들이 원했던 게 아닌가’, ‘유서까지 써놓고 죽으러 갔으니 죽게 내버려두자’, ‘전지전능한 신이 왜 선교활동을 하러 간 교인들을 어쩌지도 못하는 무력한 신이 됐는가…?’라고.
왜 이렇게 상반된 반응이 나올까? 아프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가 뭔지 또 아프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면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불상이란 불교의 신앙대상으로 창조된 부처의 모습이다. 불상은 불격에 따라 불타. 보살. 명왕. 천부. 나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불타는 여래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풀이하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불상은 재료의 종류에 따라 석불, 마애불(磨崖佛. 커다란 암벽에 부조 또는 선각 등으로 얕게 새긴 불상), 목조불, 은불, 금동불, 철불, 소조불(塑造佛. 점토로 만든 불상), 건칠불(乾漆佛. 나무로 간단한 골격을 만들고 종이나 천 같은 것으로 불상을 만든 후 옻칠을 하고 다시 금물을 입힌 것이다) 등이 있다. 불상을 생김새로만 이해해서는 불교의 진수를 모른다. 부처님은 너무도 거룩한 분이라서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 자체가 자칫 그분의 성스러움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초기에는 불상이 없었다. 불상을 대신해 불사리탑이나 법륜, 보리수 연화좌, 금강좌와 같은 상징물들을 부처님의 위치에 표현해 놓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부처님이 입멸한 지 500여년의 세월이 흐르기까지는 불상이 아니라 이러한 부처님의 상징물이나 사리를 모신 탑이 예배의 대상이었다. 

                     
                          <철불>          <법주사의 도금한 불상>        <금불상>  
부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면서까지 불상을 만들게 됐을까? 불멸 후 500년까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지켜왔지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부처님의 불사리를 놓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때 향성 바라문의 중재에 의하여 사리는 8등분되어 여덟 개의 불사리 탑 및 병탑(사리를 담았던 항아리), 회(재)탑을 건립하여 사리가 모셔진 탑이라는 형상을 통해 부처님을 대하듯 숭배하였던 것이다. 불상의 기원을 보면 가장 일찍 편찬되었다고 하는 <아함경(阿含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보면 코삼비(Kaus mb)국의 우다야나왕이 향나무로 석가의 모습을 조각하도록 했다는 것이 불상조각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철불 법주사의 도금한 불사 금불상 무신론인 불교가 부처가 신앙의 대상이 됐다는 것부터가 불교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해탈자이기 때문에 그분이 가신 길,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 해탈의 길을 가자는 것이 불상을 만들고 절을 많이 하고 시주를 많이 하면 극락왕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불교가 권력과 밀착해 승려들에게 계급을 하사하고 불전을 줘 수탈자로 만든 것은 권력의 뜻이다.

                       
                              <도금한 범어사 불상>                                       <마애사 석불>
절대왕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불교는 왕이 곧 부처(왕즉불-王卽佛)가 되게 마련이다.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불교는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정체성을 달리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해탈의 경지를 터득해야 할 불교가 부처라는 신을 만들어(형상화) 구복과 기복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처음의 불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러한 불상의 제작과정을 보면 순수하게 민간신앙 차원에서는 목불이나 소조불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다 국가차원에서 불교가 받아들여지고 권력과 결합하면서 철불이나 금동불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의 표정도 처음에는 ‘깡마르고 고통에 찬 모습 -> 천진난만한 친근감이 넘치는 모습 -> 차츰 살이 찌고 근엄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왕이 곧 부처’가 되는 고려시대는 외모나 권위 면에서 종전의 천진난만하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어지고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과 함께한 불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주류를 이룬다. 흥미 있는 사실은 동남아시아국가들처럼 외세의 지배를 받은 국가는 대부분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 외침을 받지 않은 주권국가들은 대승불교가 흥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종주국은 식민지배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개인의 해탈에 전념하는 것은 식민통치에 방해가 될 리 없기 때문에 방치한 것이고 대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이 아니라 중생의 아픔을 구제해야 하기 때문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즉 식민지배의 저항에 나서게 된다. 식민지 종주국은 당연히 대승불교를 용납할 수 없었고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가 권력과 유착하지 않고 식민사회의 모순에 나선다면 식민지배가 순조롭지 못했을 것이라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 소승불교 소승은 열소(劣小)한 수레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타고 피안(彼岸)에 이를 수 있는 큰 수레가 아니라고 한다. 부처님 입멸 후 캇사파가 중심이 되어 경전을 결집하고 계를 지키며 수행하는 전통적 보수 교단을 소승불교라고 한다. 소승은 자리, 즉 자신의 구제(해탈)만을 목표로 삼은 출가주의로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여 엄한 계율을 지키고 수행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본다.

2. 대승불교 ‘대승’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 대승과 소승은 어떻게 다른가? 내가 있는 곳이 욕계요 강건너 저쪽의 세계가 열반의 세계라면 ‘어떻게 강을 건너가느냐?’가 문제다. 소승불교에서는 출가자가 자기 위주의 독선적 사고에 빠져 석가의 근본정신을 잊어 버렸다고, 대승불교는 소승불교를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석가 본래의 정신에 되돌아와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의 신자들도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불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다.
[불상의 모습]

왜 어떤 부처는 누워 있고 어떤 부처는 앉아 있고 어떤 부처는 서 있는가? 와불(臥佛)부터 살펴보자. 와불은 부처님이 ‘열반에 들 장소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형상’을 상징하고 입불은 서 있는 불상이며 좌불은 결가부좌한 자세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것과 설법을 하는 자세’를 뜻한다. 초기는 입상이었다가 후기로 가면 앉아 있는 불상으로 바뀌는데 이는 권력화되고 권위적인 부처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상의 모습도 바뀜을 알 수 있다. 보통 대웅전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은 부처님이 삼매에 드신 상태(삼매인)와 설법하시는 모습(전륜법인)을 형상화하고 있다. 반가상은 부처보다 주로 관음보살 등의 보살에 많이 쓰이며 주로 사유상 즉 생각하고 있는 자세다. 반가상은 ‘현생의 중생들의 고달픔을 생각’하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불상은 왜 그렇게 살이 찌고 권위에 차 있는가?]

초기 불상은 재료는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 진 목불이거나 토불이었다가 후기로 가면서 철불이나 금동불 혹은 금불로 바뀐다. 모습도 처음에는 고뇌에 찬 갈비뼈가 앙상한 모습,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찐 건강한 모습으로 바뀐다. 불교가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게 되고 권력화되면서 외모도 그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 승과제도가 도입되고 왕사나 국사와 같은 계급을 차지하고 사원전을 받아 경제력까지 가지면서 불상의 모습도 그에 상응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불상을 통해 보는 불상은 본래의 부처님 얼굴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불상이 권력과의 위계관계에 따라 다정다감하고 천진난만하다가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이다. 귀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귀족이고 싶었고 왕 또한 살아서도 죽어서도 왕이어야 했다. 결국 왕은 살아서 부처요(王卽佛)이요, 죽어서도 부처였던 것이다.

[과거불, 현재불 그리고 미래불 ]

우연의 일치일까? 미륵불을 뜻하는 ‘미르’와 야훼 태양신(미트라(Mithra)=메시아)는 어원이 ‘미르‘로 같다. 기독교의 3위일체 신인 야훼와 예수, 그리고 성령처럼 불교에서도 과거불인 약사불과 현재불인석가불, 그리고 미래불인 아미타불이 있다. 역사적으로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혼자이지만 교리적으로 "진리를 깨닫은자", "진리의 발견자"로서 부처님은 얼마든지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부처님은 오래된 성(城)을 발견한 사람에게 비유하기도 한다. 즉 자신 속의 불성을 일구어 내어 깨달음을 얻으면 바로 부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종교가 이데올로기로 바뀌면...]

역사적으로 종교가 권력화되면서 민중의 억압자로 군림한다. 그 증거가 입불이나 좌불, 와불로 나타난다. 불상의 얼글도 자애로운 모습에서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지배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고 종교는 당근을 받아먹으면서 공생한다. 불교만 그런게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권력화되면서 그 종교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교의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거대한 불상을 만들고 도금을 하고 그래서 그런 붙상이 더 영험이 있다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3법인 4성재 팔정도를 통해 해탈을 지향하는 불교가 부처님을 신으로 만들어 구복, 기복신앙으로 바뀌어 간다.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자와 민중을 호도하는 사이비 불교 지도자 때문에 애꿎은 부처님만 수모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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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une

    "역사적으로 종교가 권력화되면서 민중의 억압자로 군림한다.
    지배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고 종교는 당근을 받아먹으면서 공생한다. 불교만 그런게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권력화되면서 그 종교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교의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올리신 글의 말미 이 부분이 현대 종교의 변질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나 절이나 기타 종교에서
    비뚤어지고 어긋난 모습들...
    그 원인을 핵심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은 "권력획득"(세력확장,부의축적)이나 어긋난 탐욕이라는
    불편한 진실의 종착지에 도달하니까요.

    하지만 현재 종교에 몸담은 분들에겐
    그저 "불편한 진실"일 뿐이죠...
    이왕이면 모르는 사람들에겐 쉬쉬하고,
    알게된 사람들에겐 좋은게 좋은거라고
    슬쩍 눈감아 달라거나 덮어두자고 하는...

    2008.10.28 15:51 [ ADDR : EDIT/ DEL : REPLY ]
    • '제사'를 생각하면 참 웃습지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렇게 저렇게 의례를 치러라고 가르쳐 준 일도 없는데 사람들은 그 '의식'을 금과옥조로 생각하곤 하지요.
      그것도 남의 나라 '주자'라는 사람의 가문의 의식을 말입니다.
      불교의식이나 기독교 의식도 마찬가지지요.
      교조는 그런 일이 없는데 후세 종교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교의는 무너지고 껍데기만 남아....
      안타까운 일은 종교뿐만 안겠지만 말입니다.

      2008.10.29 07:11 신고 [ ADDR : EDIT/ DEL ]
  2.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2012.01.02 13:00 [ ADDR : EDIT/ DEL : REPLY ]
  3.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2012.01.07 04:35 [ ADDR : EDIT/ DEL : REPLY ]
  4.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2012.04.04 00:35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해가 안갑니다.

    2012.04.06 05:13 [ ADDR : EDIT/ DEL : REPLY ]
  6.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2012.05.09 01:01 [ ADDR : EDIT/ DEL : REPLY ]
  7. 다 먹었습니다.

    2012.05.11 12:4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