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 어떻게 기르고 싶으세요? 훌륭한 사람으로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가요? 의사?, 변호사? 판검사? 혹 내가 못 이룬 꿈, 그 꿈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다고요? 아이는 부모의 뜻대로 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하고 그런 꿈을 꾼다고요? 실제로 부모들 중에는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이뤄줄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미지 출처 : 스마트 아줌마>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시겠습니까? 그냥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켜주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 해주고, 다 들어주고, 남보다 더 좋은 학원, 더 좋은 학교에 보내 그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그런데 부모가 되고 싶다고요? 그런제 아이들은 좀처럼 부모 맘처럼 그렇게 자라주지를 않는답니다. 왜냐고요? 아이들은 부모의 그늘에만 보호받고 있을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친구도 만나고 조금씩 세상을 보도 듣고 그리고 생각하고...그래서 부모마음대로 커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세상 모든게 다 변해도 내 자식은..? 이렇게 하늘처럼 믿고 있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부모에게 반항하고 덤비면 살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더군요. 그 때가서 발을 동동 구르고 눈물로 붙잡고 매질도 하고 울고불고 하소연해도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사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이들과 만나고 원칙을 정하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요. 그게 뭔냐고요. 한번 같이 생각해 봅시다.


아이들이 자라는데 가장 소중한 것이 뭘까요?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과 공기 그리고 햇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거든요. 사람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그게 뭐냐고요. 사랑이지요. 마취되지 않는 사랑! 상업주의나 귀가 얇아 이웃사람들 말이나 듣고 남들처럼...하다가는 진짜 사랑을 줄 수 없답니다. 예를 들면 우유가 완전식품이라는 상업주의에 속에 모유를 두고 우유를 먹이는 부모들... 우유는 소가 새끼를 기르기 위해 준비한 완전식품이지 사람에게 완전식품이 아니랍니다. 모유가 부족한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자녀가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입니다. 그런데 맹목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도 아시지요? 아이에게는 때로는 최초리가 필요하고 때로는 믿음과 용서도 필요하답니다. 건강한 인간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 사랑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또 있답니다. 그것은 지나치게 풍족하게 키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은 부모가 다 해는 주는 것. 그것은 아이들에게 독약입니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줘야 하는 게 부모의 책임이라고 신앙처럼 믿고 있는 부모들...


사랑하는 자식에게 자나치게 풍족하게 키운다는 것.... 아이들이 자라는데 이 보다 더 나쁜 독약이 없답니다, 벼를 보십시오, 벼는 수경식물이라 물이 부족하면 튼실한 벼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벼가 물에 잠기도록 키우면 제대로 자라기는커녕 숨을 쉬지 못해 죽고 맙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마음에 병이 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혜로운 농부는 벼가 얼마나 물이 필요하고 언제 물을 빼줘야 한다는 걸 다 알고 있답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넘치는 사랑을 줘서 그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는 인간으로 키워서야 되겠습니까?


셋째는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길러줘야 합니다. 마마보이. 헬리콥터부모라는 말이 있잖아요? 절벽 꼭대기에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우는 독수리들을 보십시오. 독수리는 털이 나기 시작하면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날개근육을 키워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새끼를 키우는 어미독수리의 연단은 어떻게 보면 너무 잔인한 것 같지만 그렇게 키우지 않고서는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어미 독수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미 독수리가 마마보이, 헬리곱터 부모처럼 새끼를 키운다면 새끼 독수리는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요? 하늘의 제왕도 사냥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독수리.... 그래서 그렇게 자란 독수리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군대에 가면 부모가 고맙다는 것을 그 때 깨닫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둔다는 것. 그것은 이성간의 사랑에도 필요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알아야할 자녀 양육의 기본입니다. 자나치게 풍족하게 키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낭비벽이 심한 것, 허영심으로 손가락질 받는 사람은 부모가 지나치게 풍족하게 잘 못 키운 탓이 아닐까요? 감사하는 마음 근검절약하는 마음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품성이기도 하답니다. 어릴 때 질매가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습관이 되어 버린 후 바로 잡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또 있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먹거리에 못지 않게 필요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똑똑하게 키우는 것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시비를 가리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분별력을 갖도록 키우는 일입니다. 세상이 온통 지뢰밭입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도 아이들의 건강을 해칠 불량식품이며 스마트 폰에는 아이들이 만나면 독약이 되는 상업주의 그리고 친구들의 꾀임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는.... 온갖 지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뇌관을 건드리면 감당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많은 사람들은 독서를 권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 진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순수하던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정말 나쁜 책, 돈벌이를 위해 판단력이 부적한 아이들을 유혹하는 감각을 자극하는 나쁜 책들이 책사에 널려 있습니다. 한번 빠지면 도저히 빠져 나오기 힘든... 그런 마약 같은 책들이 우리 주변에 수도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기보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그것이 지혜로운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선택의 문재, 판단을 요하는 문제들을 오늘날과 같은 가치혼란의 시대에는 어쩌면 아이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소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학원에서 영어 수학 점수 몇점 더 잘 받게 하기 위해 정작 필요한 세상을 보고 분별할 줄 아는 지혜(철학)는 왜 가르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 모든 것이 마음 하나 잘못 먹으면 하루아침에 공든 탑이 무너지는데... 보십시오.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처럼 가치혼란의 시대, 4차산업혁명시대에 내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고 싶다면 똑똑한 사람이기보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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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부모들의 사랑경쟁... 이대로 좋은가? 부모들의 자식사랑이 도를 넘고 있다. 아니 그게 사랑이 맞기나 한가?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칭찬이나 사랑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젊은 엄마들 중에는 남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 이겨야 한다... 끝없는 사랑 경쟁으로 무한질주를 하고 있다.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이 아니라 지게지고 시장가는 꼴로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자녀양육법이 정말 교육적일까?

<이미지 출처 : 세종시교육청>


세상 어떤 부모가 내 자식만큼은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엄마들의 자녀사랑은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것 같다. 아침에 아파트 정문 입구에 나가 보면 학원 차들로 뒤범벅이다. 어린이집 차를 비롯해 유치원, 영어학원,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등 그 종류조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엄마들은 왜 아이들을 이렇게 남의 손에 맡겨 키우기를 좋아할까?

어린이를 스스로 돌 볼 수 없는 부모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전업주부들조차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 그리고 학원에 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듯하다. 전문가(?)들에게 아이를 맡겨 키우면 내 아이가 똑똑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어린이 집이나 학원에 안보내면 경쟁에서 뒤지는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일까? 걸음마도 겨우 뗀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 오전 내내 남의 손에 맡겨 키우면 똑똑한 아이,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엄마들의 어린이 집이나 학원 사랑은 초등학교입학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들을 위해 돌봄교실이 있고 방과후학교라는 합법적인 사교육시설도 있다. 돌봄교실이야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런데 방과후학교의 경우는 다르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학원비보다 싸기 때문일까? 자녀들의 소질이나 취미, 특기를 생각하지 않고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재미반, 공부반 참여하는 방과후 정말 좋기만 할까?

사설학원 선호경향은 합법적인 사교육시설인 학교의 방과후로 끝나는게 아니다. 당연히 방과후학교는 방과후학교대로 받고 사교육은 사교육대로 따로 받는다. 시골학교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학원이 따로 없는 농어촌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설치한 방과후 학교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아는 학부모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방과후학교 과목만 무려 6~7개를 수강한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빼앗는 부모들... 이렇게 키우면 부모가 원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늙은 도령의 세상보기>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이를 하루 예닐곱시간씩 학원에 맡겨두는 그것도 모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 일류병 사랑은 아이들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극성엄마의 사랑은 초등학교학생들조차 중고등학생이나 다름없이 사교육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참교육 연구소가 학생들에게 '자신에게 제일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설문을 했던 일이 있는데 설문결과가 1위가 학원, 2위는 성적이었다.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성적 스트레스를 받고 자라는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는게 아니라 사랑을 먹고 자란다. 엄마와 아빠사랑은 넘치도록 받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마치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자란 식물과 그렇지 못한 식물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사랑도 배워야 남을 사랑할 줄 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형제들이 티격태격하며 울고불고하며 자란 아이와 어린이 집과 유치원으로 전전긍긍하며 남의 손에 맡겨 자란 아이가 같을 수가 없다. 당신의 자녀는 어떻게 자라고 있는가?

놀이보다 더 큰 교육은 없다.

인간으로서 사회화는 학교에서 의도적인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이른바 무의도적교육이라는 가정교육이나 또래들끼리 놀이를 통한 사회화는 의도적인 학교교육에 못지않다. 가정교육이 실종된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나 놀이를 빼앗겨 버리고 자란 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처럼 허약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성은 학교에서만 길러지는 게 아니라 놀이를 통해 배우고 체화된다.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민주주의는 놀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렇게 중요한 놀이문화를 잃은 아이가 어떻게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가?

알파고시대 아날로그 교육은 옳지 못하다

전자사전이 등장하고 이어폰 하나로 외국인과의 대화가 가능한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국영수 점수경쟁이 가당키나 한가? 알파고시대에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창의력이다. 부모가 배우고 자라던 시대의 사회와 앞으로의 사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변화의 사각지대에서 이겨야 산다거나 SKY가 교육목표인 경쟁은 자녀들에게 헛고생만 시키는게 아닐까? 아이들에게 놀이와 사랑을 빼앗고 학원으로 내모는 엄마는 현명한 엄마인가? 좋은 엄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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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6.05.12 06:59


2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옥시참극에서 우리는 자본의 민낯을 본다. 세상이 내 마음 같을 것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최고 비산 옷, 최고급의 학용품... 자식을 위해서라면.... 마마보이도 불사하는 엄마들.... 평소 아이들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보상이라도 해 주려는 듯 이벤트성 어린아날 행사에 동원돼 아이들에게 자본이 만든 상업주의를 체화시키는 엄마들...


<이미지 출처 : 분당기자님 블로그>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좋은 엄마 되기란 참 어렵다.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일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아이들 먹고 싶어 하는 것, 갖고 싶어 하는 것, 좋다는 것 다 해주고 고액과외도 시키고, 메이커 제품 옷에, 고급 아파트, 폼 나는 승용차를 태워 다니면 부모로서 역할을 다하는 좋은 엄마일까? 이렇게 키우면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내 아이가 대신 이루어줄까? 그런 자녀가 되기 위해 어떤 희생도 헌신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가 좋은 엄마일까?


자본이 만드는 세상,,, 엄마들은 어떻게 사는가? 아침부터 밤늦도록 좋다는 맛집 찾아다니며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 사실은 맛집을 만들어 주고 댓가를 받는다는 소문까지 자자한데 그런 집을 찾아다니며 사 먹이면 좋은 엄마일까?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을 만들어 주기보다. 마트나 홈플러스에 전시된 화려한 간식들을 한가득 사두고 먹이는 엄마들... 통닭이며 소고기, 돼지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지 그 과정을 알기나 할까?


자본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생산된 과자류... 간식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 한창 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먹고 돌아서면 금방 배가 고픈데 그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이며 초코파이며 통닭이며... 먹고 싶다는 대로 다 사주면 아이들 건강을 지켜낼 수 있을까? 며칠 전 염지하는 통닭 방송을 보고 내 평생 통닭은 절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디 통닭뿐일까? 지금 시중에 파는 식자내며 식당의 음식들은 소비자들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멀거리라고 믿어도 좋을까?


우리가 먹는 식자재에는 600여 종류의 식품첨가물에 3000여가지의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 그 정도의 첨가물도 모자라 유전자변형식품에 방사능 오염 위험까지... 이 정도가 아니다. 새옷을 사 입어도 환경호르몬, 새집에 이사해 살아도 새집 증후군... 놀이터에 노약이며 오염된 놀이기구들... 학용품 하나에서 아이들 장난감에 이르기 까지 믿을 수 없는 게 오늘날의 상품들이다. 이런 현실에서 첨가물이나 오염의 피해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먹거리나 환경오염뿐만 아니다. 오늘날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살아가기는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 됐다. 원론적인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학교성적이 안무리 좋아도 세상 곳곳에는 꽁꽁 숨겨 진 보이지 않는 진실이 있다. 겉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상품처럼 세상도 온통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로 휘황찬란하게 포장되어 있다. 현실을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한다면 자신이 서야 할 곳, 해야 할 말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선택을 잘못해 피해자가 되는 삶을 반면교사로 삼아 살아야겠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몇 년 전 짜가가 판친다는 노래가 유행했던 일이 있다. 세상이 온통 가짜로 뒤범벅이 된 현실... 그런 현실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좋아지기는커녕 위선과 허세로 뒤범벅인 된 세상은 날리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어떻게 이 지뢰밭 같은 세상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인격의 손상을 입지 않고 자신이 살아 갈 길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민주의식도 없이, 역사의식 정치의식도 없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아가면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중앙일보>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 편들어주는 정당을 지지해 평생 가난을 오지랖에 안고 사는 사람이 있다. 자신은 가난하면서 부자들 편을 들어 주는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자신은 노동자이면서 머리는 자본가인 사람들도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주는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생 알뜰하게 모은 재산을 사이비 종교에 속아 날려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리분별도 못하면서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다.


멘붕시대 좋은 엄마는 어떤 엄마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마마보이로 만들고, 과외 하나라도 더 시키기 위해 과외비 마련하느라고 더 많이 사랑하고 안아주지 못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 사랑과 과외 중 어떤 것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데 도움이 될까? 알파고시대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등수나 학벌이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 진위(眞僞)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아닐까? 당신의 자녀가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올곧게 자라게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자본이 만들어 놓은 덫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엄마가 가야할 떳떳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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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12.10 08:41


 

 

 

박근혜 : “생각과 이념, 목표가 다른 사람들이 오직 정권을 잡기 위해 모이는 구태정치다”

 

박근혜후보의 이정현 공보단장 : “안철수씨는 정치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권력, 자리, 명예, 그리고 안랩의 주가 상승이다”

 

안철수 전후보가 문재인을 지지한 사실을 두고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서 퍼부은 막말이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정치 마마보이'라고 비난하고,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선 '새정치가 아니라 구태정치인'이라고 비난했다. 투표시간 연장거부, 최저임금 상향거부, 골목상권 살리기, 부자감세 동조, 4대강 찬성 등과 같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새누리당의 막말이 얼마나 유권자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새누리당이 누군가? 자유당[이승만] ▶민주공화당[박정희] ▶민주정의당[전두환, 노태우] ▶민주자유당[김영삼, 김종필] ▶신한국당[김영삼, 이회창] ▶한나라당[이회창,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새누리당은 지조와 절개를 지킨 정통선명정당인가?

 

친일세력의 이름까지 여기서 거명하고 싶지 않다. 최근에 새누리당에 입당한 사람들을 보면

김영삼, 김종필을 비롯해 전두환정권시절 실세였던 허화평도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나섰다. 선진통일당의 박세일이며 리틀 DJ(김대중 전 대통령)’로 불렸던 한화갑과 한광옥, ‘13번의 당적이전’(무소속 포함)이라는 정당역사의 신기록을 세운 이인제라는 인물까지 새누리당원이라니... 이런 새누리당은 ‘구태정치’의 백화점 아닌가?

 

며칠 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후보가 일본사람보다 더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며 일본군 사관학교장으로부터 금시계를 하사받은 다카키 마사오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라는 얘기가 장안의 화제다. 박정희는 정수장학회며 영남대를 강탈했고, 박정희가 죽은 뒤 전두환으로부터 6억원을 받은 장본이라는게 전파를 타자 유권들이 야단이다. 그 때 돈 6억원이면 서울 강남의 노란자위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는 돈이라니... 이런 사실이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 신기하다.

 

 

안철수를 구태정치의 장본이라고 비난하는 박근혜의 정당 새누리당의 역사를 보자. 한마디로 새누리당의 50년 역사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리기 위한 집권야욕으로 역사에 죄를 지은 장본인들이다. ‘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새누리당의 역사는 친일매국노, 기득권과 부패재벌을 두둔하고 쿠데타와 군사독재, 반통일의 반민중적 정권이다.

 

1945년 친일파들이 이승만과 손잡고 만든 정당이 ‘자유당’이다. 자유당의 죄악상을 필설로 다 하기 어렵다. 제주양민학살에서부터 보도연맹시건.. 등 죄없는 어린아이와 양민, 그리고 정적은 빨갱이라는 색깔 칠해 죽이고 김구와 장준하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를 살해한 정권이 자유당이다. 장기집권을 위해서라면 사사오입개헌이며 3인조 5인조 선거를 통해 부패와 부정도 밥먹듯이 저지르다 4.19혁명을 불러온 장본인이 자유당 아닌가?

 

4.19혁명으로 세운 민주당정부가 무능하다고 총으로 뒤집어엎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다. 일본의 정보장교로서 독립군을 토벌하다 해방정국에서 빨갱이가 됐다가 동료와 형제까지 배신하고 살아남아 해방조국의 장교로 변신한 사람이 박정희 아닌가? 민주정부를 뒤엎은 5·16쿠데타. 결국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수립된 합법정부를 불법으로 뒤집어엎었으니 이를 두고 역사는 쿠데타니 정변이라고 기록했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5·16을 혁명이라고 하지 않고 ‘5·16군사정변’이라고 기술해 놓았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법대로...’니 ‘준법’ 운운하지만 법을 어긴 원조는 박정희요, 박정희의 딸이 박근혜다. 범법자로 말하면 5·16정변만이 아니다. 12·12로 전두환이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를 만들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제 2의 쿠데타로 잡은 정권이 그 이름도 찬란한(?) 민주정의당(민정당)이다. 백주대낮에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정의를 말하는 전두환 일당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만든 민정당이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이다.

 

친일과 쿠데타의 정권의 후예, 학살정권, 변절자의 집결지, 부패와 비리의 온상... 오죽하면 새누리당을 성희롱당, 차떼기당, 군미필당, 매국노당, 부동산투기당, 강부자당, 사교육당, 뉴라이트당, 군면제당, 조중동당, 대운하당, 삽질당, 환경파괴당 등...수십개의 별명이 붙었을까?

 

홍성담화백의 ‘박근혜 출산’ 그림이 시사하듯 막근혜의 당선은 4·19는 혁명이 아닌 쿠데타가 되고, 5·16은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당선된다는 것은 단순히 새누리당의 권력 재창출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정희후보는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박근혜후보를 반드시 낙선시키겠다고 했지만 독재자의 딸 유신잔당의 재집권을 막는 것은 선조들에게 빚진 후손들이 해야 할 역사적인 과제요, 역사의 정언명령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1.12.26 06:22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다.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행복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기뻐할 일이 생겨도 기쁜 줄 모른다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친구가 불행한 일을 만나면 함께 걱정하고 기쁜 일을 만나면 함께 기뻐할 줄 아는 게 사람의 도리다. 그런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친구의 성적이 올라가면 축하해주는 게 정상인데 함께 기뻐해주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사람의 감정일까?

정서(情緖)란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혹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이나 분위기’를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정서는 ‘비교적 강하게 단시간 동안 계속되는 감정’으로 희노애락(喜怒哀樂)·애증(愛憎)·공포·쾌고(快苦) 등과 같은 감정이다. 백과사전에는 신생아 때 선천적 정서는 갑자기 의지할 데가 없어질 때의 공포, 자유를 속박당할 때의 분노, 그리고 육체적 쾌락의 세 가지밖에 없다‘고 J.B.웟슨의 연구 결과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서가 어떻게 희노애락(喜怒哀樂)·애증(愛憎)·공포·쾌고(快苦)와 같은 정서로 성숙하고 발달할까? 정서란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감정이다. 그런데 경험을 빼앗아 버리면 성숙하고 다듬어져야할 정서가 메마르고 삭막해지는 게 정상이다. 가정이나 학교가 아이들의 정서교육을 외면하고 있다. 기쁠 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할 줄 알고 감사하고 만족하고 행복해하고 사랑하고... 이런 감정이나 정서를 가꾸고 다듬어야할 책임이 있는 교육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교실 복도를 지나다 보면 휴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고 가는 아이들... 친구와 지나가며 나누는 말씨가 참 듣기 거북할 정도로 거칠고 삭막하다. 감정이 없는 얼굴... 발랄하고 밝아야할 청소년들의 표정이며 말씨며 행동이 언제부터 저렇게 됐을까? 교실에 휴지가 아무리 흩어져 있어도 그걸 주워 휴지통에 버리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실에 기르는 화분에 꽃이 말라 죽어가고 있는데 물을 주어 살리려는 생각하는 아이도 없다.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보면 덩치는 어른인데 하는 행동이며 생각하는 건 어린아이 수준인 학생들이 많다. 아이들이 왜 저렇게 됐을까? 몸은 자라는 데 정서가 자라지 않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누가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본능이야 타고 나겠지만 정서는 사회화의 결과다. 똑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떤 이는 대수롭지 않은데 어떤 사람은 충격을 받는다. 이는 개인의 정서의 차이요, 가치관의 부재가 낳은 현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태어나서 한 번도 배가 고파보지 못한 아이가 배고프다는 감정을 알 수 있을까? 한 번도 슬퍼보지 못한 아이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깨닫지 못한다. 설사 그게 어떤 것이라는 걸 배웠다 하더라도 경험으로 얻지 못한다면 그건 관념일 뿐이다.

100점만 받으면 최고로 아는 부모들의 과욕이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불면 꺼질새라, 놓으면 날아갈새라 오냐오냐 하고 키운 아이들. 절대로 너만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부모의 결연한 의지(?)가 아이들로 하여금 무력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힘든 일은 시켜서도 해서도 안 된다. 슬픈 일을 당하게 하거나 고생스런 일을 해서는 더더구나 안 된다고 생각하며 고이고이 키우는 자녀들은 정말 건강하게 자랄까? ‘나 밖에 모르고 자라는 아이’ 그런 아이가 건강한 정서를 가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건강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교육도 필요하지만 정서교육 또한 필수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언행과 생활 자체가 아이들의 롤 모델이 되어 보고 배우면서 자라는 게 정상인데 무너진 가정에는 모델이 없다. 놀면 불안한 부모들이 학원으로 학원으로 등떠밀어 그런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어릴 때부터 학원보다 친구들과 많이 놀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회를 줘야 한다.

지식교육은 늦어도 되지만 정서발달은 기회를 놓치면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 놀이가 지식교육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릴 때 놀이는 또래를 통해 역할분담이 무엇인지 배우고 약속과 우정, 신의를 배운다. 해서 될 일과 하면 안 될 일을 깨닫고 배워 건강한 정서가 영그는 것이다.


놀이가 교육이라는 것을 모르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면 불안하다. 친구 00는 영어학원에 다닌다는데... 00는 수학학원에, 00는 태권도 학원에, 00는 미술학원에 다닌다는데.. 자식이 놀고 있으면 불안하고 불안하다. 부모의 과욕이, 학교의 경쟁교육이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정서교육을 외면하고 가정과 학교를 개미쳇바퀴 돌듯 오가게 하는 경쟁만 시킬 것인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1.08.11 05:00



사랑하는 아이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라 먹이고 학교와 학원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보내기만 하면 훌륭한 인격체로 자랄 수 있을까요?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

‘아이가 놀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다’
‘100점만 받아오면...’

이런 생각을 하고 학원으로 학원으로 내 모는 어머니... 좀 더 비싼 학원, 좀 더 고액과외를 시켜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파출부며 노래방 도우미도 불사하는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어머니일까요?


기저귀를 찬 아이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고 영어 본토발음을 하기 위해 혓바닥 수술도 불사하는 극성 엄마가 유능한 어머니일까요?


놀 친구가 없어 학원에서 학원으로 개미 쳇바퀴 돌듯이 쫒기며 사는 아이들은 정말 몸도 마음도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야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무엇을 가르칩니까? ‘이겨야 산다. 지면 죽는다. 학교는 ‘성적지상주의’, ‘승자 독식주의’가 진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인 소중한 것인지 무엇이 귀한 것인지... 행복이 어떤 것인지... 바르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라는 걸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건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르치기 보다는 100점만 받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좋은 그만이라며 정답만 가르쳐주는 교육은 착한 교육일까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기를 저당 잡히고 군대보다 더 엄격한 교칙에 묶여 시험문제 풀이로 날밤을 세우는 아이들.... 학원과 학교를 개미 쳇바퀴 돌듯 오가며 친구가 뭔지 자연의 소중함이 뭔지 모르고 오직 이겨야 산다는 삭막한 경쟁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님들. 내 자식이 지금 이대로 교육받고 자라면 정말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부모님들이 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를 경쟁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식적인 이야기, 사랑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한 번 짚어보기로 합시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할까요?



첫째,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부터 가르쳐야합니다.

성적이 나쁘다고 자살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얼굴이 못생겼다거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혹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고 자살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아지자 뒤늦게 ‘자아 존중감을 길러야 한다고 시범학교니 연구학교를 만들어 쇼(?)를 하고 있습니다. 자아 존중감은 시범학교나 연구학교로 기르는 게 아니라 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교육과정 전체에 녹아 있도록 짜야합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아이가 어떻게 내 부모나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소중하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할 줄 알고 내 민족과 우리문화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고 했습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요? 돈이 사람보다 자산이 사람보다 소중하다는 풍토가 만연해 있습니다. 학교를 비롯해 그 어디에서도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선(善)이요, 승자가 (善)이 됩니다. 내가 승자가 되기 위해 소중한 친구에게 노트조차 빌려주지 않는 삭막한 마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와 너, 우리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 인간존중의 가치관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지요. 교육은 근본은 인간에 대한 예의, 더불어 사는 지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하지요. 말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면서 친구나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교육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셋째, 지식위주의 교육만이 교육이 아닙니다.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 머리는 있어 가슴이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놀이문화를 빼앗기고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하는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인간이 될까요? 실천이 없이 말만 하는 사람을 ‘입만 살아있다’고 하지요.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등학교시절.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 관념적인 지식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약속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이렇게 사전에 나온 내용을 외워서 알긴느 하지만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가요?

친구와 ‘오늘 오후 몇 시 어디에서 만나 기마전 놀이를 하자’는 약속을 하고 실제로 어기지 않도록 해보고 놀이를 하면서 규칙을 지키고 상대방에 대해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고 인내하고 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놀이문화를 빼앗기고 학원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개미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아이들은 그런 귀한 경험하지 못하고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가 놀면 불안 한 어머니... 놀이는 살아 있는 공부입니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지만 그만그만한 나이에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은 나이가 들어 배우기는 어렵습니다.

네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 여름, 어마어마한 폭우와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너무나 아픈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화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또 자연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감했습니다. 사람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닌 자연의 일원입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풀이 어떻게 자라고 꽃은 어떻게 피는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자랍니다.

시멘트로 지은 집에다 시멘트 길을 밟으며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자랍니다.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 얼마나 소중한지, 농부나 어부들의 땅방울의 가치를 모르고 자라고 있습니다. 나의 생명의 근원이 돈이 아니라 수고한 이웃이 흘린 땀의 대가라는 것 모르고 자라고 있다는 말입니다. 수량화된 지식, 칼로리를 따지고 영양가를 따지고 그런 개량화된 지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런 안목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야할 공존의 대상입니다. 자연을 훼손하면 보복을 당합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는 엘리뇨현상, 라니뇨현상이니 하는 기상이변으로 인류의 미래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지식, 서구의 자연관은 정복주의 세계관입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오만한 사고방식이 지구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공존하는 세상의 살아왔습니다.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오늘날 학교교육이 병든 교육이라는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야합니다. 학교교육을 거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지...!’ 하지 마십시오. 교육을 상품이라고 선언한지 오랩니다. 상품이란 수요자가 좋은 상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받는 교육이 삶을 황폐화시키는 반교육이라면 부모들이 나서야합니다.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방심하고 있을 동안 사랑하는 아이는 너무 빨리 자라 좋은 교육 바른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학교운영위원회든, 학부모단체든 나가서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노력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고쳐주지 않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회는 놓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위대한 힘으로 병든 교육, 위기의 교육을 살려내야 합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1.08.09 05:00



기쁜 일을 만나면 기뻐해야 하고 슬픈 일을 만나면 슬퍼하는 게 정상이다. 성낼 일이 있으면 성내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예뻐하고, 귀한 것을 보면 귀하게 생각할 줄 알고.... 그래야 정상적인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 같은 다섯 가지 본능적인 욕구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같은 사람의 일곱 가지 정을 가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정서다.

화를 내거나 미워할 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사랑의 감정이 생기고 슬픈 일을 만나면 슬퍼할 줄 알고, 기쁜 일을 만나면 웃을 줄 알지 못한다면 정상인 아니다. 제대로 생각할 줄 알고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바른 삶을 이어가기 어렵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기 스스로 제어하면서 그런 여유로움 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감정을 죽이거나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일으키고 다스릴 줄 아는 것 그것이 가능할 때, 한 인격체는 비로소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그런데 오늘날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면 그게 아니다. 성낼 일도 아닌데 불같이 성내고 슬픈 일을 만나도 슬퍼할 줄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 자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데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인데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해야할 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있다. 끼니도 먹을 시간에 먹어야 하고 배설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그런데 아침을 그르고 쉬는 시간에 컵라면으로 시장끼를 때우고 군것질을 입에 달아놓고 있다. 방부제가 들었는지 유해색소가 든 음식인지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자기 물건도 챙기지 못하고 값진 물건을 잊어버려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뭘 먹고는 뒤처리를 할 생각도 않고 휴지나 껍질은 아무데나 예사로 버린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 하기보다 ‘너보다 내가 더 잘났다. 나는 너보다 비싸고 고급물건을 가지고 있다...’며 자기 스스로 과시하기를 좋아한다. 가난한 아이들, 그걸 갖지 못하는 친구들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는다. IMF를 맞으면서 줄어들기는 했지만 메이커 신발이나 분에 넘치는 비싼 옷을 찾고 과시하던 분위기는 아직도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 책임감이 없는 아이, 인내심도 창의력도 없고, 스스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   소위 마마보이의 모습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이 정상적이지 못한 유약한 아이로 자란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런 아이들의 병든 모습(?)이 금방 보이는데 부모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랑이라는 안경. 그 안경으로 자녀를 바라보고 양육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배고픔도 겪어보고 슬픈 일, 기쁜 일도 경험해 봐야 한다. 말로 해서 알아들을 일이 있고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따로 있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찾아 먹도록 습관화되지 못한 아이는 스스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배가 고파보지 않은 아이가 남의 배고픔을 이해 하기 어렵다. 외로움을 겪어 보지 못한 아이, 슬픈 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어떻게 정상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가?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사랑이라는 안경으로 끼고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부족한 것 없이, 배고프지 않게, 그리고 자식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해 준다. ‘나는 배고프고 힘들게 자랐지만 너만은 그렇게 키울 수 없다’는 비뚤어진 사랑이 자녀를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실학자 이덕무는 자녀양육의 교훈으로 낙상매의 예를 이렇게 적고 있다. 매는 해안의 암벽에서 주로 번식하며, 알을 낳는 시기는 3월 하순에서 5월 무렵이고 한 배의 산란 수는 3, 4개이다. 새끼는 알을 품은 지 28, 29일 만에 깨고 깨자마자 수컷은 자신이 잡아 온 먹이를 직접 암컷과 새끼에게 나누어 준다. 그 뒤에 35~42일이 지나면 암수 함께 먹이를 찾아 나서고 잡아 온 먹이를 공중에서 둥지에 직접 떨어뜨려 새끼가 알아서 먹도록 한다.

어미 매는 새끼 매를 먹일 때 높은 하늘에 떠서 먹이를 떨어뜨린다. 그 먹이가 어미를 바라보고 있는 새끼들 바로 위로 떨어진다는 법은 없다. 따라서 새끼들은 모험을 해 가며 그 먹이를 차지하려고 위험을 무릅쓴다. 그러다가 절벽의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놈도 생긴다. 어미 매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 먹이를 취하려다가 실패하여 다리를 다친 낙상매인 것이다. 

왜냐하면 새끼 때에 낙상을 한 매가 그 결함이나 열등 보상으로 별나게 사납고 억센 매가 된다는 것을 어미 매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낙상을 먹이로써 유도한다는 것이다. 임금님의 매 사냥을 위해 조정에서 응방을 두고 매를 길렀는데 낙상매는 진상품으로서 금테로 발찌를 하여 여느 매들과 구별했다고 한다.

호랑이도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사냥감을 적당히 상처 입혀서 스스로 싸워보게 만들어 새끼가 스스로 먹이감을 찾을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은 사랑에 눈이 어두워 사랑하는 자녀가 건강하고 올곧게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다. 정서는 관념이 아닌 경험을 통해 습득된다. 이러한 정서를 사회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놀이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소꿉장난이나 게임을 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

추운 겨울에 얼음을 지치다 물에 빠진 발이 시려도 그걸 참으면서 어려움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친구들과 어울려 우정을 배우고 양보하는 마음과 질서를 지켜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배도 고프고 발도 시리고 춥지만 어머니께 꾸중을 들을까봐 참으면서 인내심을 배우고 친구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이다. 놀이나 게임은 이렇게 규칙을 지킬 줄 아는 준법정신이며 친구의 도움을 고마워하는 우정과 인내심과 질서의 필요성을 배우는 소중한  교육이다.

학원에서 영어단어 한두 개 익히는 것과 놀이를 통해 정서가 안정된 모습으로 자라는 것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피아노 학원이며 태권도학원이며 웅변학원, 컴퓨터학원, 미술학원...이렇게 가르쳐 만능인간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웃집 아이는 무슨무슨 학원에 다니는데 우리집 아이는 혹시 경쟁에서 뒤지면 어쩌나 안달하고 불안해 방학도 없이 등 떠밀어 학원으로 보낸다고 부모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인 놀이를 빼앗아 무한 경쟁에 내모는 것이 좋은 부모가 아니다. 학교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이 용서 되는 그래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것이 사랑일 수 없다. 오늘날 마마보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낙상매에게 자녀 양육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1.06.12 05:30



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을 망친다

몇 년 전 일이다. 퇴근 시간에 창원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오는 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퇴근 버스에는 하루의 피로가 가득 담겨 있다. 버스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잠간의 휴식은 보약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 귀한 시간을 빼앗은 작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창원역 근처쯤 왔을까? 어느 정류소에서 젊은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까말까 한 형과 두서너살 아래로 보이는 동생을 데리고 함께 차에 올랐다.

                           <모든 이미지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자리를 잡아 앉는 가 했더니 금방 아이들은 차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총놀이를 시작했다. 당연히 어머니가 “차 안에서는 장난치면 위험해” 하고 꾸중을 할 줄 알았다. 아이들이 계속 차 안을 뛰어다니자 보다 못한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한분이 “이 놈들, 차 안에서 장난하면 안돼!” 그랬고 그 한마디로 아이들은 주눅이 들었는지 금방 조용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아이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이 아닌가?’ 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아이들을 꾸중한 어른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못할망정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면서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이 뭔데 내 귀한 아들의 기를 죽이느냐?’는 항의 표현인 듯 했다. 주변 사람들의 눈이 없었다면 아마 그 말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을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조용해지자 차 안은 다시 잠시 전의 고요가 찾아왔고 언제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나의 행동이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거나 피해를 보게 한다는 건 죄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도리나 예의쯤은 팽개쳐도 좋은 것쯤으로 되고 ‘나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라는 계산적인 이기심이 지배하는 사회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도덕군자 같은 소릴 한다고 힐난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들조차 그런 감각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 사랑하는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무엇이든 사 주면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입니다. 아이가 나쁜 말을 사용할 때, 그냥 웃어넘기면 재치를 키워 장차 더욱 나쁜 말로 이웃에게 상처 줄 것입니다.

잘못된 품행을 야단치지 않고 스스로 잘 할 것이라고 내버려 두고 훈계나 훈련이나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무식해서 용감한 독불장군이 되어 사회로부터 격리 될 것입니다. 아이가 어질러 놓은 것을 모두 정돈해 주면,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모든 잘못된 일은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스프라이즈에 ‘시골훈장’이라는 분이 쓴 ‘자녀를 망치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글 중의 일부다. 젊은 분들이 들으면 ‘꼰대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요즈음 결혼할 젊은 부부들이 한번쯤 새겨 들어야할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을 감당하는 교사에게 자격증을 주듯 ‘신랑 자격증’, ‘신부 자격증’, ‘어머니 자격증’ 이런 걸 주면 어떨까? 가끔 이런 생뚱맞은 생각을 하고 실소를 하기도 한다. ‘결혼 대비 이혼율이 47.4%가 넘었다’는 보도도 그렇지만 요즈음 부모들의 자녀양육모습을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기러기 아빠며 이민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과연 진심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일까? 그렇게 양육하면 부모가 원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이혼율뿐만 아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또 아내가 남편에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자녀가 부모에게. 또한 이웃에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

오늘날 우리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사회적 존재’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정이나 학교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 개인적인 존재가 아닌 사회적인 존재로 자라도록 양육해야 옳지 않을까?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릴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희생의 대가로 누리는 나의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돼도 좋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사회는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한 사회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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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통학버스를 타고가다 보면 저 아이들이 학문을 탐구하고 윤리를 배우는 학생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가까스로 손잡이를 잡고 힘겨워 하고 있어도 고개를 돌리고 못 본채 하는 아이들. 남이야 듣던 말든 목청껏 자기학교 선생님 험담을 하는 아이들. 듣는 사람이 오히려 얼굴이 뜨거워지는 남자 친구와 관계를 주고받으며 희희낙락하는 용기(?)에 어안이 벙벙하다.

통학버스 안에서뿐만 아니다. 교실에서 수업장면을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수업은 사회시간인데 영어 문제집을 풀고 있는 아이들. 다른 공부를 하는 학생은 차라리 낫다. 수업을 시작하자말자 여기저기서 졸기 시작하던 아이들. 수업 중반쯤 되면 거의 반 수 이상이 아예 엎드려 잔다. 나밖에 모르는 아이들.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거나 짝꿍과 잡담을 그칠 줄 모르는 아이들. 자신이 기분 나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왕따를 시키는 일도 다반사다. 
자녀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부모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자녀관은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하나 아니면 둘,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딸에게 힘든 일, 거슬리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지극한 사랑(?)이 아이들을 하여금 버릇없는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이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친구나 이웃에 대한 배려를 하거나, 나의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에는 관심을 가질리 없다.
내 아들딸은 어떨까? 학교에만 보내놓으면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일등만 하면 예의도 윤리도 모르고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자라도 좋을까. 머리는 있어도 가슴이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학교. 일류대학이 교육목표가 된 학교에서는 ‘옳고 그른 것,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출세를 위해, 성공을 위해서라면 친구가 적이 되는 학교에서는 더불어 사는 가슴 따뜻한 인간을 키워낼 수 없다. 대화가 없는 가정, 인간교육이 실종된 교육으로 아이들은 방향감각을 잡지 못하고 있다. 승자지상주의의 입시교육에서는 승자는 없고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학교는 철학도 예의도 버릇없는 아이들을 언제까지 양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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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이태리에서는 '다 큰 애기'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성인이 됐는데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4명 중에 3명 꼴 이라고 합니다. 이에 더해 이혼 10건 중 3건은 어머니와 찰떡처럼 지내는 맘모니(Mommoni : 앞치마에 매달린 아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혼 후에도 배우자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않으면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간다고 해서 생긴 신조어입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취직한 아들의 연봉협상까지 대신하려는 '헬리콥터 맘'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헬리콥터처럼 학교 주변을 맴돌며 사사건건 학교 측에 간섭하는 이들 부모는 아이의 숙제와 점심 메뉴까지 학교에 수시로 전화해서 일일이 간섭합니다. 심지어 대학입학 에세이까지 전문가를 동원해 써 주기도 하구요. 더 가관인 것은 취직시험에 합격 해 놓고서도 "아직 부모와 상의하지 않아 입사 결정을 못하겠다"는 젊은이까지 있다고 합니다.(‘덕향’의 다음블로그에서)

<사진설명 : 지난 7월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열렸던 교육 시장화 저지를 위한 경남교육연대 토론회>  

우리나라는 어떨까? 많아야 한 가정에 한둘을 키우는 가정의 자녀는 아이들은 왕으로 자란다. 불면 날아갈새라 놓으면 꺼질새라 따라 다니며 밥을 먹여주고 하자는 대로 다 해준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서너살이 되면 안하무인이 된다. ‘기를 죽이면 안 된다’는 철학을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사회성이니 공중철학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라는 것을 배우며 자라는 것이다. 부모는 굶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에게는 부족한 것 없이 키우자...’는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 아이로 하여금 점점 무력하고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가 인정한다. 극성엄마의 열정(?)은 원정 출산에다 태어나기 바쁘게 기저귀를 찬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미국식 발음을 위해 혓바닥 수술도 마다하는 블랙 코미디를 연출한다. ‘버릇이야 자라면 다 고쳐진다.’거나 ‘일등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부모의 굽힐 수 없는 신앙(?)은 아이들로 하여금 가치혼란의 아노미 인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사는 곳에 따라 신분이 바뀌는... 그래서 저들이 사는 세계는 ’너 몇평짜리 아파트에 사니?"와 같은 신 계급사회를 만들어 '마음의 평수'까지 차별화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폭력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좋은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은 급기야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성장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가장 기본적 윤리의식마저 실종된 아이로 성장하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는 부모의 아카페사랑(?)은 군대를 다녀와 좋은 직장에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면 부모는 폐기처분(?) 한다. 퇴직금을 받아 사업자금으로 내놓고 늙고 병들면 갈 곳조차 없이 방황하는 부모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부모의 자식사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노래방 도우미며 심지어 매춘을 해 자식 과외비를 마련했다는 눈물겨운 미담(?)조차 있다. 남의 자식이야 어떻게 되든, 내 자식만 잘되게 하기 위해 담임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진학담당교사를 능가하는 입시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취업시험장까지 따라 다니기도 한다. 극성 치맛바람은 군대에 있는 아들의 중대장을 찾아가 아들의 적성에 안 맞으니 보직을 바꿔 달라는 엄마까지 등장하고 있다.

시험문제만 풀이하는 학교가 있고 일등만 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풍토에서는 마마보이 양산이 그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내 자식은 내가 못 이룬 꿈을 대신해 줄 ‘나의 분신’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마마보이는 끝없이 양산 될 것이다. 자식은 나의 분신도 아니요, 부모의 의지대로 살아야 할 존재도 아니다.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나의 보호로 존재가 가능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인식할 때 비로소 내 자식은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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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있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닐런지요? 사랑의 대명사, 헌신과 희생의 대명사이기도 한 이 땅의 어머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나눠 주고도 자식을 위해 더 많이 해 주고 싶어 안타까워 하시는 사랑의 샘. 어머니... 가장 어려운 여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을 만드는 사람. 자식과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 그런 어머니가 언제부터인지 옛날 어머니의 모습을 잃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옛날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어떻게 길렀을까요? 한석봉의 어머니 상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 상과 오늘날 마마보이로 키우는 어머니 상은 양육 방식에서 크게 다른 모습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세월이 지났다고 달라질 리 있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본질적인 마음이야 마찬가지지만 양육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키워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머니들은 어떻습니까? 놓으면 꺼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오냐오냐 하고 키우는 가정이 대부분입입니다.

어머니 역할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할 수 있을까요? 동물의 세계를 봅시다. 독수리는 둥지를 꼭 절벽 위 높은 곳에 짓는다고 합니다. 새끼들을 하늘의 왕자로 키우기 위해 알에서 깨어나 일정 정도 시기가 지나면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 낸다고 합니다. 그 새끼가 살기위해 날개 짓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의 왕자로 키우기 위해 어미는 잔인할 만큼 강한 새끼로 키우는 동물은 독수리뿐이 아닙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훌륭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훈련을 시켰다는 것은 읽히 알고 있는 예깁니다. 옛 어른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길러라’라고 하셨습니다. 옛 어른들이라고 왜 자식을 품에 안고 키우기를 싫어했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놓으면 꺼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오냐오냐.. 1등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영어학원, 미술학원, 컴퓨터 학원... 5~6군데 학원에 보내야 안심이 되고.... 이러한 어머니들로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것이 요즈음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입니다.


어머니가 아름답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정을 위해 자식을 위해서라며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사랑 때문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지금처럼 놀 친구도 없을 만큼 학원으로 내몰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라면 무엇이라도 해주는 식으로 사랑 해야 내 자식이 훌륭한 인재로 자랄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5~6군데 학원을 개미 쳇바퀴 돌듯이 내 몰면 ‘우리 아이가 장차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혹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이 살만하게 됐다고 고생고생해서 키운자식이  어머니까지 대수롭지 않게 아는 안하무인의 오만불손한 그런 인간이 되기를 원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우습게 아는 그런 인간이기를 원하시는 건 더더욱 아니시겠지요? 지금처럼 키우시면 장차 우리 아이가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자라 있을까?’를 예상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어머님들 중에는 아이가 놀고 있으면 불안해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혹 놀이가 공부보다 낫다는 말을 들어보신 일은 없으신지요? 요즈음은 학원이다 텔레비전 앞에 시간을 뺏기면서 옛날 아이들처럼 딱지 따 먹기나 말타기, 고무줄 놀이, 공기돌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산업화되기 전만 하더라도 동네마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하루같이 골목 안이 시끌벅적 하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과 모여 해가 지는 줄도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놀다 “00아! 고만 놀고 밥 먹어라~!” 라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서야 “우리 내일 또 놀자”며 하나 둘 뿔뿔이 흩어지곤 했습니다. 봄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감꽃을 주우러 가고 여름이면 구슬치기, 딱지 따먹기로, 밥 먹을 시간도 잊고 놀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겨울에는 형이 만들어 준 나무판자를 엮어 굵은 철사로 만든 썰매타기가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었지요. 얼음판에서 넘어지고 물에 빠져 양말을 다 젖어 발이 어는 줄도 모르고 얼음지치기를 하던 기억은 60이 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양말이 젖은 줄도 모르고 놀다가 젖은 양말이 들킬 것 같아 젖은 채로 신고 견디던 일이며 소먹이는 친구 따라 산에서 씨름도 하고 이름 모르는 풀꽃을 따던 일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말 타기며 숨바꼭질이며 하루해가 언제 지는 줄도 몰랐고 여름이면 냇가에 서 수영이며 고기잡이며, 비가 오는 날이면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냇가에서 고기를 잡고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논둑사이로 메뚜기를 잡느라 어둠살이가 들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제기차기며 딱지 따먹기, 구슬치기, 말 타기, 술래잡기 등 친구들끼리 놀이는 놀이도 다양했지만 놀고 또 놀아도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사립문 밖에서 “00야! 노올자~!” 하고 부르면 잠도 깨지 않은 눈을 비비고 나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놀이에 빠졌던 재미는 세월이 가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정말 불안하기만 할까요?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그냥 재미를 위해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놀이를 통해 규칙도 배우고 질서며 협동심, 인내심, 상대방에 대한 배려, 양보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이러한 놀이를 통해 배우는 친구 간의 우정이나 사회성은 학원이나 교실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우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런 지식은 관념이지 체화된 인성은 아닙니다. 인내심을, 규칙과 질서를 양보와 타협을 점수로 가치 내면화 시킬 수 있겠습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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