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세상과 균등한 세상은 다르다
제헌 헌법 이래 9차례 개정된 대한민국 현행 헌법은 전문(前文)과 10장 130조 그리고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1조 총강 ①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해 국가 다음이 국민이다. 국가가 국민보다 더 우위에 둔 것을 국가주의 헌법이라고 한다. 우리 헌법의 배열순은 전문(前文), 제1장 총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3장 국회, 제4장: 정부, 제5장 법원, 제6장 헌법재판소, 제7장 선거관리, 제8장 지방자치, 제9장 경제, 제10장 헌법개정, 그리고 부칙(附則) 순이다.
■ 헌법 맨 마지막에 ‘자유시장 경제’ .... 왜?
대한민국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이라는 전문(前文)으로 시작해 본문(本文) 총강 1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제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 3장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 4장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가장 책임이 큰 대통령, 4장이 정부 4장이 법원... 순이다. 그런데 헌법 10장 중 9장 119조에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가장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헌법의 가장 마지막에 배열했을까.
■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건국강령
일제를 구축(驅逐)한 후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국가 운영 방략을 담은 것이 건국 강령이다.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제1장 총강(總綱), 제2장 복국(復國), 제3장 건국 등 22개조로 구성되었는데, 한마디로 광복 후 나라 운영에 대한 청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강령 제1조는 ‘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 이래로 같은 말과 글과 국토와 주권과 경제와 문화를 가진 최고 조직’이며 강령 2조는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에 역사적 근거를 두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 토지 국유제를 건국강령으로 채택한 대한민국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3조는 부동산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토지제도는 국유(國有)의 유법(遺法)을 두었으니… 이는 문란한 사유제도를 국유로 환원하라는 토지혁명이다”라 돼 있다. 대한민국 건국강령의 토지제도는 국유제다. 식민지시대 사유제를 국유로 환원하는 토지혁명을 실현하는 것이 대한민국 건국정신이라는 취지다. 배타적·독점적 토지 사유제에 익숙한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의 균등은 토지국유제로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강령7조는 “임시정부는 이상에 근거하여 혁명적 삼균제도로써 복국(復國)과 건국을 통하여 일관한 최고 공리인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과 독립, 민주, 균치(均治)의 3종방식을 동시에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화를 뜻하는 삼균주의가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다.
■ 조소앙의 삼균주의
조소앙 선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등을 이루려면 정치·경제·교육의 균등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보통선거제와 주요 산업의 국유제, 국비 의무교육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민족과 민족의 균등을 이루기 위해 소수민족과 약소민족이 압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국가 간의 균등은 제국주의 타도와 전쟁 행위 금지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정치의 균권(均權), 경제의 균산(均産), 교육의 균학(均學)”은 조소앙 선생이 꿈꾸던 나라, 정치·경제·교육의 평등을 기반으로 개인·민족·국가의 평등을 강조한 사상 삼균주의이다.
■ 균등한 세상은 실현되고 있는가
조소앙이 기초한 건국강령의 임시헌법에는 '정치의 균등(균정권)', '경제의 균등(균리권)', '교육의 균등(균학권)'이라는 평등이 아닌 삼균주의 균등권이 담겨 있다. 평등과 균등은 어떻게 다른가? ‘균등’이란 평등을 의미하지 않고 공평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평등‘은 아이나 어른이나 동일하게 같은 양의 먹을 것을 주는 것인데 비해 ‘균등’은 아이에게는 아이에게 필요한 만큼의 먹을 것을 주고 어른에게는 어른에게 필요한 만큼의 먹을 것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이념적 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으며 오로지 평등을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로 보는 정치나 정부 등 권력기관의 레토릭(rhetoric)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도, 운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부분은 수학능력고사가 공정한 경쟁이라고 믿는다. 재능을 무시하고 똑같은 문제지에 똑같은 정답을 요구하는 수학능력고사란 해비급 복싱선수와 플라이급 선수가 벌인 시합에서 해비급 복싱선수가 승자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의 프로 농구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그런 명예와 지위를 누릴 수 있었을까. 자본주의에서 균등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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