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라고 다 같은 노동이 아니다
가톨릭 사제인 이반 일리치는 인간의 노동을 ‘자급자족 노동’, ‘임금 노동’, ‘그림자 노동’ 등 세 가지로 나누었다. ‘자급자족 노동’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직접 생산하는 노동이며, ‘임금 노동’은 남이 필요한 재화를 임금을 받고 생산하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은 어떤 사람이 임금 노동을 통해 임금과 소득을 얻으려 할 때 임금 노동자 뒤에서 그림자처럼 무보수로 도움을 주는 노동을 말한다.
이반 일리치의 분류와는 달리 김호기 교수는 2005년 발표한 논문 “문화 산업 시대의 해석 노동"에서 문화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해석 노동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석노동’은 어떤 직책이나 직위가 낮은 계급의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사람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하는 노동형태를 말한다. 사회적 약자는 모든 상황을 자기 나름으로 해석하기보다 권력을 가진 자의 눈으로 보려고 한다. 어차피 현실 상황은 권력자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해석노동은 ‘조직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상급자는 하급자의 존재감을 의식하지 않는다. 반면 하급자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기 위해 대시하고 상급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히며 상급자의 기분을 살핀다. 경쟁이나 서열을 중시하는 조직에서는 공감의 노력이 좀처럼 아래로 향하지 않는다. 동료나 부하직원을 연민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다 보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과 해석노동>
해석노동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면 상급자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조직에서는 해석노동을 경감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개인은 해석노동을 단호히 거부할 때 심리적 마취상태에서 각성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노동은 ‘자신감의 저하, 스트레스 증가, 그리고 자존감 하락이나 업무의 효율성 저하시키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해석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자기성찰과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운영하고, 직원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문화 조성, 그리고 직원들의 업무 성과를 타인의 시선이 아닌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노력을 함으로써 건강한 조직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21년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해오고 있다. 2006년 1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이 시행되었으나 장애인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 보강 노력이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누리는 사회는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다. 그런데 장애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다룬 언론 기사를 보면 부정적인 댓글이 넘쳐난다. 일상에서 불편하고 불쾌했던 경험이 반영된 결과겠지만 장애인 관련 이슈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문제에서 약자가 약자를 비방하고 손가락질하는 일이 만연하다면, 그 사회는 ‘해석노동’에 길든 사회라 할 수 있다.
중앙대 행정대학원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하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송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양정호박사가 《해석노동》이라는 책을 펴냈다. 도서출판 ‘생각비행’에서 펴낸 《해석노동》은 노동의 가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을 펴냈다. ‘생각비행’은 이윤의 극대화가 목적인 상업주의에 추종하는 책이 아닌 ‘대한민국 공무원 민원응대 설명서’,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노동법 100’, 일본의 판타지 백관사전', '플라톤 , 이게 나라다'. '아리스토텔레서 이게 행복이다', '공자 이게 인(仁)이다', 묵자 이게 겸애(兼愛)다, 한비자 이게 법치(法治)다', ...와 같은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양정호박사가 쓴 《해석노동》은 해석노동의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해석노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1장에서는 해석노동의 개념을 소개한다. 2장에서는 일상에서 해석노동을 유발하는 사례를 다루고, 해석노동을 조장하는 여건을 확인해 본다. 3장에서는 공감을 통해 해석노동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모방이며, 해석노동의 확산이 인간의 공감력을 발판으로 이루어짐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공감 격차에 관해 설명한다. 해석노동 수혜자와 해석노동자 사이에는 공감 격차가 존재한다. 하급자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그 입장에 서본 경험이 없는, 해석노동의 수혜자일수록 꼰대거나 갑질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 농후하다. 해석노동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상급자에 대한 심리적 동조를 통해 동료나 하급자에게 불합리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동료 간에 반목이 형성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조직은 해석노동을 경감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개인은 해석노동을 단호히 거부할 때 심리적 마취 상태에서 각성할 수 있다. 갑질이 만연하고 강자의 논리에 수긍하는 해적노동에 길든 사회의 초상.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어떻게 나를 옥죄는 독이되는가. 상업주의가 만연한 출판업계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생각비행'이 펴낸 《해석노동》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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