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임을 하기 전, 수업시간에 '자아 정체성'이라는 용어가 나오기에 좀 더 쉽게 설명할 말이 없을까 하고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내가 나라고 확신 할 수 있는 근거...' 라고 풀이해 놓았다. '남들과 다른 나(남과의 차이점)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거. 자기의 개성에 확신을 가지는거. 내가 어떤 위치에 설지. 또 그 위치에서 뭘 해야할지. 이런걸 확실하게 알고 있고 인정하는...' 라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현재 내가 무엇으로 있다 라는 것을 아는 게 자아정체성'이라고 마무리 했다. 교과서에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자신의 위치나, 인간관계에서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는 설명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재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말에 못지 않게 정보화시대에 나를 알고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의 시대, 급변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나를 안 다는 것. 그리고 나를 지키고 주체성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준법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닌 삶의 질과 연관된 문제가 됐다. 물질문화의 발달은 자칫 내용은 없고 형식이, 본질보다 껍데기가 더 소중한 주객전도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남보다 더 똑똑해야(똑똑함의 기준도 없이 남보다 지식의 양이 많고 적음으로...) 하고,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하고 더 좋은 학교(?)를 나오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있어야 .... 사람대접을 받는 가치혼란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아노미시대에는 죽도록(?) 일해서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우선 남의 눈에 가난하고 천박(?)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좋은 명품가게를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탤런트의 모습으로 성형을 하고 다음은 차를 그것도 더 비싼 차를 구입한다. 다음은 돈 많은 사람,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과 결혼하고 좀 더 부티 나는 아파트를 사고 아이가 생기면 '남에게 지는 것은 패배자'라는 철학으로 기저귀를 찬 아이에게 수십만원이나 하는 영어 과외를 시키고... 이렇게 '나는 잘난 사람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남에게 과시하고 사는 것이 성공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요구하는 자본의 논리인 '이익이 선'이라는 가치체계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계급사회에서는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고 곡학아세하는 철학이 등잔하기 마련이다. '왕권 신수설'과 같은 논리가 우연히 등장할리가 없고 또 아러한 주장이 무지한 민중을 마취시키는 지배논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지배와 피지배라는 계급이 정당화되면 귀족계급에 군침을 흘리는 무리들이 혹은 철학으로 혹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의 눈을 감기는 일에 동원되고 충성을 하게 된다. 민중이 각성하기까지 수많은 세월이 지나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깨어나기까지는 약자의 희생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고 사람이 아닌 자본이 주인이 되는 사회에서는 이 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모든 초점이 모아지게 마련이다.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위해 철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며 종교가 이러한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루터는 살아남고 토마스 뮌처는 제거되듯이, 전통적인 성리학자는 살아남고 양명학파는 숙청 당하듯이 체제순응적인 외피를 쓰지 못한 세력은 권력에 의해 제거되어 왔다. 정보화시대에는 한술 더 떠서 모든 메스미디어를 비롯한 학자들까지 자본의 논리에 줄 세우고 체제유지에 동원된다. 교육 또한 이러한 프로그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식민지시대 교육이 개인의 각성이나 출세가 아니라 '황국신민화'에 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논리에 배치되는 가치관을 교육을 하는 학교가 살아 남을 리 없는 것이다.
왜 종교인이나 종교재단이 가진 재산에 특혜를 주는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채찍이나 당근이 함께 동원된다. 자본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거대한 음모(?)에 의해 약자는 경쟁에 내몰리게 되고 내용보다 형식에, 삶의 질보다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하는 인간,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인간을 양성하면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온전할리 없다. 자본주의는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 되기 때문이다.
TV라는 마술상자가 순기능이 아니라 역기능을 하는 이유가 그렇고 인성교육이 아닌 지식의 암기 량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경쟁교육이 그렇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객관적인 보도가 아닌 편파·왜곡보도로 민중을 속이면서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수많은 책사의 책 속에 담긴 내용이 순진한 사람들을 마취시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방황의 시대 아노미시대에는 이렇게 선량한 민중의 피해의 대가로 반사이익을 보는 세력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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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꿈꾸는 생각의 혁명!’ 생각비행의 신간입니다. '내몸은 내가 접수한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 100', '모두의 희망', '숲의 생태계'를 출간했네요, 생각비행은 제 블로그의 글을 모아 책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와 ‘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 두권의 책으로 엮어 주신 인연으로 여기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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