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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비친 세상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by 참교육 2010.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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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 지나는 길목에서 -

실비단 안개님의 '혼자보기 아까운 미친 만추'를 보고
그리 멀지 않은 진해니까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나선 길. 진해길이 생소해 몇번이나 물어물어 찾아 간 곳. 진해 생태학습체험관.   
그러고 보니 나는 별 하는 일도 없이 지난 가을 내내 단풍구경 한 번 못 갔다는 후회가 한꺼번에 밀려와 열병을 앓는 환자처럼 카메라를 들고 나섰습니다. 아니 가을 의 끝에서 겨울이 다가 오고 있다는 조급함이 나를 끌어냈는지도 모릅니다. 


자연이 만든 예술 앞에 자신이 자꾸만 움추려 들고 작아지는 이유는 초겨울의 스산한 바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이 허허로움은 차마 채우지 못한 마음이 텅비어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4대강이다 뭐다 하며 인간의 저지르는 횡포. 그 오만함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저렇게 시리도록 아름다운 색깔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 넉넉함이 저토록 시리도록 아픈 가을을 만들고 있었는가 봅니다. 어저면 혼자서 카메라를 메고 가을을 찾아 헤매는 가난한 나그네에게 자연은 가을 끝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성급한 나무는 벌써 월동준비를 마치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거울 앞에 섰습니다. 
'저 나무들은 겨울에 뭘할까?' 갑지기 생뚱맞은 생각이 들면서 '겨울잠을 잔다'는 글쟁이의 표현에 코웃음이 나왔습니다. 
정말 나무들은 겨우내내 잠이나 자는 개으름 뱅이들일까요? 아니 나무들은 이제부터 봄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이 오면 어느날 갑자기 새순을 티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겨우내 혼신의 힘을 다해 새순을 만들고, 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내년에 찾아 올 손님들을 위해 한 시도 쉴틈이 없는 나무들. 그래서 저들은 추위도 잊고 저렇게 당당하게 겨울을 만들고 있는가 봅니다. 


저는 자연을 만든 예술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곤합니다.
저런 색. 어떻게 저 꺼무티티한 흙에서 저런 시리도록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미치도록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고 지우는 저 자연의 위대함 앞에 숙연해 질 때가 있습니다. 자연이 선물하는 저 넉넉한 아름 다움은 천방지축으로 내닫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하고요. 말없이 던지는 메세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좀더 순수하고 좀더 겸손할 수는 없을까? 채워도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욕망! 바밸탑을 쌓는 인간은 스스로 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제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꾸미지 않고도 저렇게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기에 저토록 한상적인 모습을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물과 만나 연출하는 화려함 앞에 만추를 찾은 나그네는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잡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 있었습니다. 가을이 지나간 자리조차 저토록 의연함과 화려함을 감추려 하지 않고 선 저 당당함 앞에.... 


 꽃꽂이가 아닙니다.
자연이 연출한 예술은 인간의 서툰 솜씨를 꾸짓기나 하듯 아름다움을 뽑내고 있더군요.
인간의 솜씨로 표현하는 아름다움이야 자연의 기교에 비할 수 있을까? 서투른 예술가에게 보란 듯이 하려하면서도 다소곳하고 겸손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있습니다.
겨울에 숨어서 피는 꽂. 동백은 또 어떻습니까? 겨울과 봄 사이에서 겨울을 지키는 그 고집스런 고고한 모습. 동백은 추위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그네를 맞아 부끄러운 듯 숨어서 피어 있었습니다. 



가을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진해자연생태학습체험관. 겨울을 맞는 나무들은 이제 그추장스런 나뭇잎들을 훨훨 다 털어내고 바쁘게 아주 바쁘게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만추를 만끽하고 돌아 오는 나그네는 어느새 자연의 넉넉함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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