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방해로 기어코 대통령발의 개헌안이 6월 선거 때 국민투표가 시효를 넘기고 말았다. 대통령의 공약인 6월 지자체 단체장 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는 헌법 130조에 따라 공고일(3월26일)로부터 60일 이내인 5월24일까지 본회의에서 가부를 의결해야 하지만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24일 현재 19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통과 가능성은 사실상 물건너가고 말았다. 개헌이 되면 존립의 근거를 잃게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낀 야당이 온갖 어깃장을 놓더니 마침 터진 드루킹 사건을 빌미로 국회까지 보이콧하며 개헌안을 무효화시키고 만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서울의 소리>
야당의 어깃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국민 3명 중 2명인 64.3%가 긍정적인 평가를 할 정도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대통령발의 개헌안에는 촛불혁명의 정신에 비추어 아쉬운 점이 있지만 ‘대통령 4년 연임제, 수도조항 헌법 1장 총강에 삽입,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감사원 독립성 강화, 대통령의 특별 사면권 제한 및 헌법기관에 대한 인사권 축소 조정, 선거연력 18세로 하향조정, 국회의원 소환제와 국민발안제 도입..’등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국회에서 국민투표법 개정이 무산된 것에 관해 “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며 국민들께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국회는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모아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단 한 번의 심의조차 하지 않은 채 국민투표 자체를 하지 못하게 했다”며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다고 국민께 다짐했던 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면서 유감을 표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왜 개헌에 반대했을까? 그들이 지난 해 여야가 개헌에 합의할 때는 권력구조를 개편해 빼앗긴 권력을 나눠먹기를 위한 꼼수가 숨겨 있었다. 그러나 국회가 책무를 방기하고 정쟁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시효에 쫓겨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 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 내용을 보니 자기네들이 원하던 개헌과는 거리가 먼 토지공개념을 비롯한 경제민주화나 국민저항권 그리고 선거연령 하향과 같은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의 존폐가 걸린 혁신적인 내용의 개헌안을 현 야당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 수 없어 사회주의 헌법이라며 어깃장을 놓다 시효를 넘겨 무효화 시키고 만 것이다.
수구적인 성향의 야당,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주권자인 국민들의 권익을 위한 헌법을 만들 의지가 있을까? 서울에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개헌안에 지방분권이니 토지공개념제를 넣으면 찬성할리 없다. 선거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하향하면 다음 선거에서 생존의 위기를 느껴야 하는 그들로서는 개헌이란 듣기조차 싫은 소리다. 개헌으로 잃을 것이 더 많은데 스스로 개헌을 하겠다고 나설리 없다는 예기다.
현행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제9차 전면개정헌법으로 국회표결 찬성 254표, 반대 4표, 국민투표 93.1%의 찬성으로 성립되었으며, 1987년 민주화 산물로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이다. 5년도 지속 못한 과거 헌법에 비교하면 30여 년간 사용되고 있는 최 장수 헌법이다. 무엇보다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요구가 헌법에 담기지 않고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은 권력을 통제할 국회의원 소환제와 국민발안제 같은 제동장치가 없다. 청렴의 의무 하나만으로 피감기관의 로비로 외유성 여행을 관행처럼 다니는 국회의원이나 권력의 눈치를 보는 사법부의 독선을 주권자는 구경꾼이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야가 합의한 개헌의 필요성은 국민권익이나 복지는 뒷전이요,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집중에서 빚어지는 폐해를 바로잡자는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이원집정제냐, 또는 대통령 임기를 몇 년으로 하며 중임을 허용할 것인가 등이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도 문제가 많다. 과반수 정당이 없으면 2-3개 정당이 연정을 해야 하며 분열이 극심할 것이다. 또한 국민들이 불신하는 국회의원들의 천국으로 전문성이 결여된 의원들이 장관이 되어 임기도 보장 없이 수시로 바뀌면서 정책의 일관성이 어렵다.
현행 헌법은 헌법개정을 위한 절차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①국회 또는 대통령의 발의 → ②국회의 개정안 의결 → ③국민투표 → ④개헌 확정 및 공포 순이다. 첫째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며,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에 공고하고, 국회는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 재적인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의결된 개정안은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의 찬성을 얻어야 확정되며, 대통령은 즉시 공포하여야 한다.”(헌법 제 28조~제 30조 개헌절차)
문 대통령이 발의를 철회하지 않는 한 발의일로부터 60일까지는 유효하기 때문에 국회는 5월24일까지 본회의에서 가부를 의결해야 한다. 만약 표결을 강행할 경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24일 현재 19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6월 개헌은 저만의 약속이 아니었다” “2014년 7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위헌이 된 국민투표법을 3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 것도 제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은 완전히 철회한 것이 아니라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9월 개헌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6월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저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다.
새술은 새부대에 넣어야 한다. 31년이 지난 낡은 헌법으로는 촛불시민들이 요구하는 민주주의시대를 열어 갈 수 없다. 야당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권익과 복지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 나뭐먹기 기득권 지키기로 국민의 개헌요구를 무시한다면 오는 6월선거와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 냉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회는 이런 엄중한 요구를 외면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기본권 강화, 직접민주주의 확대, 성평등 강화, 국정농단 같은 사태를 예방할 민주적인 권력구조, 분권과 자치의 실질화,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 등 시민사회의 요구하는 온전한 개헌을 위한 “개헌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주권자의 명령을 무시하는 정당이 어떻게 역사의 심판을 피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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