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은 교육일까, 아닐까? 

체벌얘기만 나오면 '교육적인 차원에서 어느정도 체벌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인데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논란이 끝이 없다. 학생의 인권...! 학생이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권을 유린당해도 좋은가?, 아니면 학생인권도 성인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가? 


'학생은 교육적 차원에서 체벌을 허용한다.' 

보통 사람도 아닌 교육부가 이런 철학으로 학생들을 지도 하라고 한다면....? 물론 초기에는 육체적 체벌조차 허용했지만 국민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간접 체벌권을 허용한다는 게 교육부의 방침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권을 유린해도 좋은가? 학생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 인간의 로서 기본권을 포기해도 좋은가? 





<현행 법은 체벌을 어디까지 허용할까?>

 

우리나라는 2011년 3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8항은 "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에 따라 학생을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여 직접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 즉 직접체벌은 금지하고 있지만 간접체벌은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 되면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도구나 신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학생에게 심각한 인격적 모멸감이나 신체적 고통을 주는 간접체벌'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

  

체벌의 역사를 보면 1966년 5월에는 서울시내 국·공·사립학교의 교장단이 결의한 행동강령 중에 '일체의 체벌 금지'가 하나의 항목으로 포함되었고,1979년에는 문교부에서 생활지도지침을 통하여 각 학교내의 체벌·폭언·기타 단체기합을 금하였다.1990년대 후반에는 국민의 정부에서 주도한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교내 체벌이 금지되었다. 그 결과 교권이 실추되어다는 보수적인 교원단체의 반발이 끊이 없이이어지다 지난 해 말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권보호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진보교육감의 진출!>


2011년 3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도구·신체 등을 이용해 학생에 고통을 주는 방법'에 의한 처벌을 금하면서 학칙에 의한 '간접 체벌'을 허용하였으나,현재 서울특별시, 강원도, 경기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서는 교육감의 권한으로 모든 체벌이 금지하고 있다.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2010년 10월 공포)를 시작으로 서울특별시(2012년 1월 26일 공포)와 광주광역시(2012년 1월 1일 시행)와 전라북도(2013년 7월 12)가 전부다.인천광역시와 충청북도 그리고 경상남도강원도전라남도는 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부산광역시·대전광역시·울산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충청남도·경상북도는 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아래 글은 14년 전 (바로가기 ▶)'체벌로 교육 살릴 수 있나'라는 주제로 썼던 경남도민일보 사설입니다. 같은 내용을 (바로가기 ▶)'매들면 공교육 산다'는 주제로 경향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의식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어떻게보장받고 있는 지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체벌로 교육 살릴 수 있나


2002년 7월 8일


공교육내실화를 위해 체벌을 허용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으로 말썽이 그치지 않고 있다. 1996년 교육개혁위원회는 ‘민주시민교육의 방향과 개혁과제’라는 연구안을 발표하면서 ‘체벌과 폭언 등 학교 안에서 비민주적인 요소를 없애고 학생들에게 주인 의식을 심어주자’며 체벌을 금지한바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난 3월 공교육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체벌허용’으로 방향을 바꾸고 이번에는 다시 각급 학교 ‘생활규정 예시안’이 발표되면서 체벌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체벌을 금지했던 방침에 따라 현재 대부분의 학교는 체벌을 금지하는 ‘생활지도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체벌금지가 마치 공교육의 위기를 불러 온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다시 체벌을 허용해 교육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생활규정 예시 안에 따르면 ‘남자는 둔부, 여자는 대퇴부로 한정하고, 체벌도구는 지름 1.5㎝ 내외, 길이는 60㎝이하’로, 명시하는가 하면 ‘1회 체벌횟수는 10회 이내’로 한다는 친절한 안내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부의 체벌허용규정 예시안이 발표되자 인권단체를 비롯한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체벌이 교육적인가’의 여부는 차치하고 교육정책을 개발, 적용해야 할 교육부가 학생들의 체벌부위까지 예시해 가면서 체벌을 권장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체벌을 허용하겠다는 교육관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가 동물도 아닌 인간을 때려서 교육하라는 발상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교육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교육부는 전근대적인 체벌을 허용해 시대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학습태도가 불성실한 경우’나 ‘교사의 훈계나 반복적인 지도에 변화가 없는 경우’와 같은 체벌 기준은 교사의 주관적 감정이나 자의적으로 해석할 소지를 안고 있다. 



백번 양보하여 체벌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민주적인 절차가 무시된 규정은 교육적인 방안이 아니다. 민주적인 생활지도 규정은 자신이 지킬 생활지도규정은 학생들의 합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교칙이니 지켜야 한다’는 식의 관료주의적 발상이 오늘날 교육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체벌 허용이 아니라 체벌없이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정책마련에 나서기를 바란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옛날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2년 07월 08일 (바로가기▶)'체벌로 교육 살릴 수 있나'라는 주제로 쓴 경남도민일보 사설입니다. 관련 글 ☞ 매들면 공교육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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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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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20년 전, 학교현장의 인권 유린이 안타까워 '학생은 학생이기 전에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인권을 찾아줘야 한다'는 안타까운 생각에서 썼던 글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구 헌법 제 10조는 이렇게 명문적으로 선언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를 배우지 않은 학생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너무나 명확한 이 명제 앞에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는 아직도 학생이 학생이기 전에 지고의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오죽하면 학생인권조례까지 만들어 인권교육을 하겠다지만 학생들에게 인권을 허용하기는 아직도 어른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고 있다. 아래 글은 2006년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라는 주제의 글이다. 이로부터 20년... 학생 인권은 아직도 교문 앞에서 멈춰 서 있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


2006. 3. 15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석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배우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린 공간을, 학생들의 학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이상적인 현장학습장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원이 되거나 참관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이 지켜야 하는 교칙도 그렇다. 입학할 때 학생대표가 학교장 앞에서 '나는 교칙을 준주하고...‘라고 선서했다는 이유만으로 내용도 알지 못하는 교칙을 지키지 않으면 범법자가 된다.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은 법이나 규칙을 강요하는 것은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화됐다는 정부에서조차 학생인권이나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해서는 관심도 의지도 없다.


3월 12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다르면 "학생은 교내에서 22시 이후 일체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야간통행금지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고 “졸업 전까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결혼금지' 항목까지 있다. 보다 어이없는 것은 상당 수 학교의 정부회장 선거규정에는 헌법까지 부인하는 초법적 규정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모 고등학교의 학생정부회장 선거규정을 보면



(피선거권) 피선거권의 자격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품행이 방정하고 지휘 통솔 능력이 있는 자

(2) 본교 재학생으로 전(前)학기 성적이 전체 교과목수의 1/2이상 교과목에서 석차가 1/2 이내인 자

(3) 징계 또는 유급을 받은 사실이 없는 자.

(4) 출석 사항이 90%이상인 자

(5) 담임교사의 추천에 의하여 지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위원장이 승인한 자…


라고 못 박고 있어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까지 무시하고 있다. 학생성저인 일정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은 아예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막가파식 교칙은 어느 특정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급회장 되려면 양, 가가 없어야’한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


아이와 어른의 인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어른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하고 아이들의 인권은 유린해도 좋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는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 보장과 표현의 자유는 물론 신체, 종교, 사상, 행복 추구권조차 침해하고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교복과 양말, 운동화, 머리핀, 심지어 속옷까지도 통제하는 학교도 있다. 학교가 이렇게 인권의 삭각지대가 된 가장 큰 원인은 교사와 학교장의 인권의식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학생은 교복을 단정히 입고 두발은 학생답게 스포츠형이나 귀밑 3Cm로 단정하게 해야 한다’는 주관적인 학생관이 학생들로 하여금 반세기가 넘도록 인권을 유린당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학생. 보호받지 않으면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보호한다는 교육적인 필요(?) 때문에 ‘두발이며 복장을 아무리 자유화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다수의 학생‘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는 학부모나 학교운영위원의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기만 한다면 위헌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칙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학생들의 두발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교육부는 단위학교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교육부가 간섭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사들의 계기교육 내용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학생들의 두발문제며 비민주적인 학생생활지도 규정을 방치한다는 것은 교육부의 직무유기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조차 무시하는 교육. 지시와 복종, 통제와 단속으로는 인간교육도 민주시민교육도 그림의 떡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제가 방송에 출연했던 원고, 경남도민일보 사설이나 칼럼, 대학학보사, 일간지, 우리교육, 역사교과, 국어교과모임, 우리교육,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6년 03월 15일 (바로가기▶)'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라는 주제로 한겨레신문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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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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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생인권을 말하면 어김없이 따라 붙는 말이 교권[敎權-educational authority]이다. 교권을 사전에 찾아보면 ‘교육자로서의 권리나 권위’ 또는 ‘가르쳐 권함’이라고 정의해 놓고 있다. 이런 정의를 보면 정부가 1983년에 제정한 '교권보호법'을 면상케 한다. 교권보호법은 ‘체벌을 할 권리’와 교원에게 상해나 모욕을 할 경우 형량에 1/2배를 더하는 ‘신체불가침권’, 그리고 학생지도를 위해서' 유흥업소, 유원지에 출입할 수 있는 ‘유흥업소 출입권’, 교육시간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교사의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청소년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용어와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 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인권조례를 제정하면 어김없이 등장 하는 말이 교권이다. 더더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스스로 우리나라 최대의 교원단체라는 교총조차 2011년 서울시가 학생인권조례제정에 대해 “학생인권조례를 시행·추진되면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의 본질적 기능이 위축된다”며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보수적인 시민단체는 한 술 더 뜬다. 그들은 교권을 ‘교사의 권위’로 착각하고 있다. 교권이란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침에 있어서 권위적인 측면과 권력적인 측면’ 혹은 ‘권력, 권위보다 봉사와 희생으로 존경을 받음으로서 아래로부터의 권위를 받는 형식’이라는 의미를 애써 외면한다. 그들은 학생인권을 존중해 주면 ‘교권확립’은 물론 ‘교권이 추락‘되거나 혹은 ‘교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면 정말 교권이 무너지고 교육을 할 수 없을까?

 

인권과 교권은 상충되는 가치인가?

 

 

 

교총을 비롯한 보수적인 시민단체들은 교권을 ‘교사가 폭군처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인 것처럼 호도 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권이란 헌법 제 31조 2, 3, 4항에 명시하고 있는 교육기본권이다. 헌법 제 31조 2항은 교육기회의 보장을, 3항은 무상의무교육제도를 명시하고 있다. 또 4항에서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김언순은 교권을 ‘학생들의 교육기본권 보장을 위한 교사의 교육권과 교사의 인간으로서 권리 그리고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원칙준수’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김언순 교권의 기초-교육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P312)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충되는 명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인권실현은 물론 교원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러운 교권 침해의 역사....

 

 

우리는 지난 세월, 권력의 의지에 따라 교권이 침해된 부끄러운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국가가 필요한 지식만 피교육자인 학생들에게 전달해 국가가 원하는 인간을 양성해야 하는 꼭두각시노릇을 해 왔던 과거를 말이다. 이러한 권력에 의한 교권의 침해는 지금도 교사는 교과서 이외의 학습지도서를 수업 중 활용할 수 없도록 한 현실이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교사들은 이러한 교권침해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일제강점기나 유신정권 시절뿐만 아니다. 민주정부로 자칭하고 있는 박근혜정부도 뉴라이트교과서 파동 후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어 국가(정부)가 원하는 지식을 주입하는 역사왜곡을 시도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교권침해에 대해 전교조교사들의 반발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하고 권력의 의지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포기 하지 않고 있다.

 

 

교권이란 교사들이 국민의 교육기본권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학부모로부터 교육권을 위임받아 수행하는 책무다. 이러한 책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주어진 교권 즉 교육의 자유와 교육의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국민의 교육권’인가 ‘국가(정부)의 교육권인가’를 구별도 못하는 교권침해를 당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교사를 권력의 아바타로 간주하는 정부가 존재하는 한 민주적인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생인권을 말하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무한정의 자유를 주면 교권이 무너지고 학생들의 ‘생활지도 붕괴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유다. 실제로 진보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안을 의회에 제출하면 이런 시비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최대의 교원들의 모임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시행되면 학교현장이 황폐화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미지출처 : 경기도 교육청>

 

도대체 인권이 무엇이기에 어른들은 되고 학생에게 주어지면 안 되는가? 인권이란 ‘사람의 권리’다. 여기서 사람이란 남자나 여자, 어른이나 어린아이.. 그런 구별이 아니라 'Human' 즉 남자나 여자나 갓난아이나 피부의 색깔, 장애인과 같은 특징을 구별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에게 누가 주어서 가지게 된 권리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권리(천부인권)... 그게 인권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부자라도 자신이 가진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면 그 재산이란 있으나 마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인권도 그렇다. 인권이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알도록 하고 그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학교가 해야 할 교육의 핵심이요, 기본이다. 학생인권조례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이기에 누구나 정당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인권교육이요,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게 학생인권조례다.

 

인권이란 학생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유보시켜놓거나 제한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도 ‘학생도 인간이며 인간으로서 향유할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주체이며, 인간으로서의 누릴 인권을 가진 주체’라는 것은 헌법정신을 실현하는 길이다. 학생은 성숙과정에 있기 때문에 판단력이 부족해 인권을 유보시켜놓아도 좋다는 그런 규정은 그 어느 헌장이나 법에도 없다.

 

 

<이미지 출처 : 경기도 교육청>

 

그런데 왜 이렇게 중요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과 충돌해 한국교총과 같은 단체들까지 반대하고 있을까? 교권이란 ‘정치나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말한다. 이런 교권이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면 무너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 ‘교권이란 0000 것이다.’라고 정의해 놓지 않았다. 다만 1983년 제정된 '교권보호법'에 명시된 내용에 다음과 같은 권리를 교권인 것처럼 정리해 놓았다.

 

1. 체벌을 할 권리 : 교육상 필요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학생에게 체벌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그 한도는 대통령령이 정한다.

2. 신체불가침권 : 교원에게 상해, 모욕을 할 경우 형량에 1/2배를 더한다.

 

3. 유흥업소 출입권 : 교외활동교사 허가증이 있으면, '학생지도를 위해서' 유흥업소, 유원지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정당한 이유없이 출입을 방해하면 5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4. 학생의 인명사고에 대한 면책특권 : 교육시간 중에 일어난 각종 인명사고에 대해서, 교사가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배상을 하지만 교사에 대해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

 

교권이란 정치세력으로부터 간섭 즉 ‘정치나 외부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교육할 권리’이지만 흔히들 교권을 ‘인권과 사법절차를 무시하고 교사가 폭군처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교권이라고 하면 ‘교권확립’이니 ‘교권추락‘ 혹은 ‘교권침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해 학생인권과 상충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어처구니없게도 자칭 20만 교원들의 가입단체라는 한국교총까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에게만 일반적이고 과도한 자율권을 줘 여타학생들의 학습권과 교권은 물론 학교운영의 자율성 등 학교의 고유한 권한마저 침해’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우리헌법은 교육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두 가지 제도를 두었다. 하나는 교육기회보장을 위한 ‘무상의무교육제도’(헌법 제 31조 2항과 3항)를, 다른 하나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헌법 제 31조 4항)「김언순 '교권의 기초P.329」이다.  교육의 정치적인 중립을 위해 교사들에게 허용한 ‘정치나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교육할 권리’인 교권을 인권조례와 상충한다는 주장은 교권을 왜곡 주장한  논리다. 학생인권 없는 학교에 어떻게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인권교육의 포기는 교육의 포기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돈을 빌려줬는데 누구에게 얼마를 빌려줬는지 모른다면 그 사람은 돈 받기는 틀렸다. 은행에 돈을 예금해뒀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을 하자면 난리가 난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걸 가르쳐 주면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인권교육을 하면 교권이 무너진다는 거다.

 

<이미지 출처 : 학교폭력 SOS지원단>

 

인권조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을 하면 정말 교권이 무너지고 교실이 더 황폐화될까? 권리를 아는 것이 인권교육이라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 어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면 아무쓸모도 없다. 인권이란 사람 인(人)자와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처리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나 힘’인 권리권자가 합쳐서 만들어진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인권이란 ‘사람의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 1조다. 2조에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이 선언에 나와 있는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헌법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고 했다.

 

학교폭력이란 무엇인가? 교육부가 전국 시․도교육감이 공동으로 실시한 2014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서 학교폭력 피해학생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결과에 자화자찬 분위기다.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약 498만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3월 24일부터 4월 30일까지 실시한 결과를 보면 조사참여 학생 중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62천명, 피해응답률은 1.4%로, ‘13년 2차 1.9% 대비 0.5%p 감소했다. 이런 결과는 초․중․고 모든 학교급에서 피해응답률이 감소하였고, 특히 중학생의 피해응답률 감소폭(0.7%p↓)이 크게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미지 출처 : 민중의 소리>

 

최근의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래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 이미 관행이 돼 버린 돈 상납에, 학교 운동장에서는 성폭행 사건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안경이 부러질 정도의 집단폭행이 3년 동안이나 계속된 학교도 있다. 처벌을 받은 가해 학생들도 6천 200여 명에서 2만 명으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전문가들의 말이 따르면 숨겨진 학교 폭력이나 드러나지 않은 자살 사건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폭력의 수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지만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폭력과의 전쟁선포나 학교담당제니 안심 알리미를 통해 자녀의 위치추적이 전부다. 사건만 터지면 “검사 및 경찰관의 학교 담당제”, “학교폭력신고센터 설치”, 학교폭력대책기획위원회(교육인적자원부), 자치위원회(학교), 상담실설치 및 전문상담교사, 그리고 학교폭력책임교사 배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제정... 하는 등 부산을 떨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교폭력....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일탈행위일까? 솔직히 말해 학교폭력은 개인의 도덕성이 빚어 낸 일탈이라기보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의 총체적인 결과다. 가정환경과 인성교육부재와 그리고 청소년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하는 상업주의...가 학생들을 나락으로 내 몰고 있는 것이다. 처벌만능주의가 학교폭력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번 폭력실태조사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바 있다. 혁신학교에서 학교폭력이 줄어드는 이유를 정부당국이 알기나 할까? 교육하는 학교를 만들지 못하는 한 학교폭력은 통계상 수치로만 줄어들 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당신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선뜻 자신 있게 “네,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으신지요?” 아무리 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어도 그 보석이 귀한 것이라고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부자가 아닙니다.

 

 

 

천도교(天道敎)의 중심 교리는 ‘인내천 (人乃天)’입니다. 인내천이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천도교의 교리가인 이돈화(李敦化)는 자신의 신인철학에서 "인내천의 신은 노력과 진화(進化)와 자기관조(自己觀照)로부터 생긴 신이기 때문에 인내천의 신은 만유평등의 내재적 신이 되는 동시에 인간성에서 신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희소성의 원칙이 작동하는 걸까요? 인구가 많다보니 사람의 가치가 자꾸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 자본주의 세상에는 사람보다 돈이 더 귀하게 대접받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사는 세상, 돈을 벌기 위해 남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헌법 제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헌법을 비롯한 세계인권선언이 한결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뭘까요?

 

왜 사람만이 존귀한 존재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모두 다 다르게 때문이에요.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얼마나 다른데요. 사람이 존엄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 바로 이런 점 때문이어요. 지구상에는 70억이라는 인구가 살고 있지만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은 독특하고 고유한 존재라는 거예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존재이니 귀한 거지요. 다른 존재와의 다름. 곧 차이 때문에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차이가 바로 존엄과 가치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거예요.

 

 

<이미지 출처 : 민중의 소리>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자고 하면 보수단체나 수구언론들은 야단법석을 떱니다. 인권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교권과 인권이 얼마나 다른가를 안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너머학교가 출간한 ‘사람답게 산다는 것(저자 오창의)’을 보면 우리가 간과하고 사는 인권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합니다.

 

인권이란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것, 인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있으면 인권이요, 어떤 사람에게 있으면 특권이 된다는 것, 인권이 있으면 특권이 사라지고, 특권이 있으면 인권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 이런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자별과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남과 다르다는 것.... 남자와 여자가, 건강한 사람과 장애를 가진 사람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나이가 다르다는 것,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 출신 지역이나 출신국가가 다르다는 것,.... 이렇게 다르다는 것 때문에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별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제 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제 12조 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제 13조 ①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 되지 아니하며

제 14조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이렇게 못 박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라고 명시한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남성만이 아닌, 일정 이상의 소득이 있는 사람만이 아닌, 비장애인만이 아닌... 그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참언론 대구시민연대>

 

예를 들면 헌법 제 31조에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그냥 국민이 아니라 '모든 국민'입니다. 교육을 받을 권리가...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혹은 돈이 많다는 이유로 혹은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등 교육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권이 무시당하고 있는 현실.... 우리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유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가 유린당하고 있는 현실은 헌법만 차분히 한 번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학교인권조례를 포함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만나는 비숫한 인권침해 사례를 쉬워도 너무 쉽게 너무 재미있게 풀어 놓은 책이 바로 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라는 책입니다. 124쪽 밖에 되지 않은 책이 이렇게 많은 깨우침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며 교권과 인권을 구별 못하는 수구 언론인들에게 이 Cor 필독서로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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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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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권수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니까 정부와 보수적인 언론, 교원단체가 교권이 무너진다고 안달을 했다. 학생인권만 있고 교권이 없다면 교사가 설자리가 없다는 이유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하 교총)이 무너진 교육을 살리기 위해 교권을 찾아야겠다며 ‘교권보호법 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총 기관지 한국교육신문은 ‘교권보호법 제정 시급하다’는 6월 18일자 사설을 통해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자긍심, 교사로서의 보람과 존경을 강조하며 교권보호법 제정을 운동을 주장하고 있다.

 

교실현장을 들여다보면 이게 교육을 하고 있는 교실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교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업에 참가하는 학생이 겨우 몇 명밖에 안되는 과목도 수두룩하다. 수업뿐만 아니다. 생활지도를 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학부모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일도 일어나곤 한다. 이러한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건 교사는 물론 교원단체도 정부도 그 심각성을 인식한 지 오래다. 교권을 살리는 것이 시급하다는데 이이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교총이 이토록 바라는 교권을 요구하는 건 맞다. 그런데 학생인권을 반대하던 단체가 왜 교권을 요구하고 있을까? 교총이 요구하는 교원이란 ‘교사가 학생을 물리적으로 강제하는 함’이다. ‘학생들을 강제하는 물리적인 힘’이 없어서 우리 교육이 이지경이 됐을까? 진정한 교권이란 학생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힘이 아니라 ‘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교육하는 것’, ‘교육이 정권의 교체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중립성을 지키는 것’이다.

 

교총은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체벌을 허용하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끊임없이 반대해 왔다. 학생들의 인권을 반대하면서 교권을 주장하는 교총의 교권은 ‘교사로서 지니는 권위나 권력’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교권이 무너지면 교사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등 위기의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 교사들에 사법권을 주어야 한다고 법안까지 제출하지 않았을까?

 

교육이란 가치 내면화를 통한 피교육자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자는 강제는 교육이 아니다. 물리적인 힘으로 학생들을 제압하겠다는 것은 자칫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면 자력구제라도 하겠다는 대응 아닌가? 설사 그런 법이 만들어져 있다 하더라고 제자들을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은 교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교사들이 학생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학교폭력이 줄어들고 죽은 교실이 되살아날까?

 

 

교총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쳐다보기 어려운 존재'(?),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되는 존재'로 군림하고 싶을까? 교사는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피교육자인 학생들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 즉 지성과 감성, 의지, 신체적이 측면의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게 교육이다. 사랑은 없고 권위와 위엄으로 군림하겠는 교사가 지정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교육이 소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실력(?)이 없으면 힘이나 매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가? 힘으로 아이들을 제압하겠다는 그들이 찾는 권위는 교사가 가져서는 안 되는 위험한 힘이요. 그런 힘으로 군림하는 권위란 훈장시절이나 식민지시대 교육에서 필요했던 폭력이다.

 

진정한 교권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학생과 교사, 스승과 제자들 간에는 공포나 억압이 아닌 사랑과 신뢰로 만나야 한다. 힘으로 누르고 복종을 강요하는 건 교육이 아니라 억압이요, 폭력이다. 그런 권위로 군림한다는 것은 겉으로는 달라질 것 같지만 학생들을 ‘이중인격자’로 키우게 된다.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힘 앞에 굴복하는 것은 권위가 아니다.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불의와 맞서서 싸운 사람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아도 고민거리가 있으면 스스로 찾아와 사생활에 대한 문제를 상담하러 오는 선생님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폭력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겠다는 발상은 전제군주 시절이나 식민지시대에 가능했던 가치다. 그런 미련이 남아 있어서일까? 권위가 떨어지면 체벌로, 체벌이 모자라면 경찰권을, 그것도 모자라면 총을 달라고 할 것인가? 가당치도 않은 권위를 주장하는 것은 사이비 교육자들이나 할 일이다.

 

교육을 살리겠다며 힘이 필요하다는 사람들... 그들은  교육의 기초원리에 ‘라포(Rapport)’라는 게 있다는 것조차 잊었는가?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건 교사들의 교권보호법보다  그들을 격려해주고 믿어주고 사랑한 주는 일이다.  아이들을 위해 교육을 살리고 싶다면 그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입시위주 교육과 학벌문제부터 해결에 나서는 게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경기도 부천에 있는 A중학교에서 흡연자를 적발하기 위해 학부모들의 서면동의도 없이 반강제로 소변검사를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흡연 습관을 바꾸기 위해 흡연검사를 해 여섯 차례 적발당한 학생에 대해 선도위원회에 회부하고 있다. A중학교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200만 원을 지원 받아 소변 검사를 통해 흡연을 적발하고 있다. 소변 흡수 막대 한 개 당 가격은 2000원이다.

 

학교에서는 ‘전에는 운동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도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 여러 방법 가운데 소변 검사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지만 전체 학부모의 서면 동의를 받지 않은데다 학생 소변을 사실상 반강제로 채취, 금연지도를 하고 있어 인권 침해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천교육청에서 지난 해 말과 올해 1월, 2차례에 걸쳐 이 학교의 흡연습관 바꾸지 학생지도 우수사례발표까지 진행해 다른 학교에도 시행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소변 검사를 통한 흡연 적발 방법은 여주 A고등학교에서도 있었다. 이 학교 골프부 코치들이 흡연 여부를 조사한다면서 남학생은 물론 여학생들의 소변까지 받아오게 해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3월초 기숙사 생활 중 절대 금기사항인 흡연과 구타, 이성교제 등을 통제하기 위해 흡연검사 키트, 소변검사 등을 실시한다고 알렸고, 학부모들의 동의를 받아 문제가 안 된다”며 “소변검사가 학생들의 흡연율 감소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분노하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도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민주주의를 매장하겠다는 ‘유신헌법’을 만들기 위해 교사들에게까지 홍보를 하라고 가정방문을 강요했다. 어떤 교사들은 순순히 교육청의 지시를 따라 학부모들을 만나 설득했지만, 어떤 교사들은 학부모들을 만나 나라의 장래와 민주주의 앞날에 대해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인권 문제도 그렇다. 진보교육감 지역에서 학생인권 조례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일부 교사와 학부모들은 “전교조와 좌파 교육감들은 「학생인권조례」라는 사탕발림으로 우리 아이들을 선동하고 있다”며 ‘사랑의 매’까지 금지시킨다면 선생님들의 정당한 훈육수단마저 빼앗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전교조와 같은 단체에서는 학생도 학생이기 이 전에 한 사람의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를 포함한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허용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사람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체벌을 포함한 어떤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교육은 순치가 아니며 가치 내면화를 통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폭력과 같은 방법으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으며 이는 교육이 아니라 순치라고 본다. 고로 인권의 존중이야말로 폭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보고 있다.

 

 

 

담배는 마약보다 더 해롭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에서의 금연지도는 건강차원이 아니 도덕적인문제로 접근해 왔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불량학생’으로 어떤 처벌도 불사한다는 게 학교의 방침이었다. 이러한 가치관에서 금연지도를 한다면 강제로 소변을 채취해서라도 흡연을 막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목적이 선하면 과정은 어떻게 돼도 좋다는 논리다. 금연을 위해서라면 학생들의 인권과 같은 것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 그런 방법으로 금연지도가 가능하다면 찬성하는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교육적인 지도가 아니다. 폭력문제를 포함한 흡연과 비행에 관한 모든 지도는 교육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흡연의 경우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건강차원에서 지도하는 게 옳다. 청소년의 경우 세포 조직이나 그 밖의 기관들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서 흡연하게 되면 성인들보다 3배나 위험하다고 한다. 담배가 청소년기에 해롭다는 이유로 인권을 유린하는 반교육은 학교가 할 일이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학교에 어떻게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진보교육감의 핵심 정책의 하나인 학생인권조례가 사문화됐다. 학교규칙(학칙)에 학생의 두발·복장은 물론 휴대전화 사용 여부 등 학생 생활에 관한 세부 사항을 명시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과한 시행령(9조1항)에는 학칙에 의무적으로 기재할 내용으로 △학생의 두발·복장 등 용모 △교육목적상 필요한 학생의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사용에 관한 사항이 추가됐다. 또 학칙을 개정할 때 ‘학생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조항을 ‘학생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로 바꿨다.

 

지난 2월에는 교육감의 학칙 인가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데 이어 이번에 학칙의 구체적 사항을 명시한 시행령까지 국무회의에 의결됨으로써 경기도를 비롯한 진보교육감들의 학생인권을 위한 학생인권조례는 사실상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인권’이란 교과부가 교육과정에 담아야 할 핵심적인 가치요,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 중 하나이다.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교과부는 학생인권을 보장하고 민주주의가 학교현장에서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책과 법안을 다듬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인권교육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지금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또 폭력에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안타가운 현실이다. 정부에서는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 10년간 보존되고 고교 및 대학에 입시전형자료로 제공하는 등 수많은 대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다.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학교폭력의 원인은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학벌 구조, 가정교육의 부재, 사회경제적 양극화, 맹목적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대중 매체 등. 어느 것 하나 간과할 수 없고 서로 연관된 탓에 쉬이 매듭을 풀 수 없는 것들이다. 인권의 신장을 통해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다양한 사회적 폭력이 해결 될 수 있듯이 보편적 인권의 성장은 그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무시당해도 좋은가? 학교폭력의 근본원인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인권의식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했다. 제11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해 인권존중이 모든 교육의 기본이 돼야함을 밝히고 있다.

 

 

 

우리사회는 학생이란 미숙한 판단력을 깨우치기 위해 '교육벌(간접체벌 포함)‘도 불사해야한다는 반인권적인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다. 수구적인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협의회(교총)이 그렇고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중동이며 교육을 책임지고 잇는 교육부와 이명박대통령의 의식구조가 그렇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등이 체벌과 함께 끊임없이 지적해왔던 학생의 용모에 대한 부당한 규제를 지적한 국제사회의 충고조차 이들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도 학생이기 전에 사람이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대통령이 나찌와 파시즘이 득세하던 20세기에나 나올법한 인간관과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과부장관이 학생들의 인권을 제한하겠다는 나라... 국가권력이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을 제한하라는 법령을 만드는 나라를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7.01 05:00


 

시험 감독을 들어가 답지를 먼저 나눠주고 문제지를 나눠주는데 엎드려 있는 학생이 있다. “야! 넌 시험도 안치고 자니?”하고 물으면 귀찮다는 듯이 “다 했는데요” 하면서 답지를 내 보인다. 문제지도 보지 않고 OMR카드에 답을 다 적었단다. “너는 문제지도 안보고 답을 다 아는 귀신이냐?” 했더니... “문제지요? 보나 안보나 마찬가집니다!” OMR카드를 보니 1번에서 20번까지 같은 번호에 답을 마킹해 놓았다.

시작종이 치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첫 시간부터 하루 종일 열심히 잠만 자는 아이들도 있다. 수업은 들을 생각도 않고 한 시간 내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노는 아이들... 차라리 잠을 자는 아이들은 나은 편이다. 수업에는 관심도 없고 짝지와 끊임없이 잡담을 하고 있어 복도에 보내놓으면 장난치며 더 크게 떠드는 아이들, 수업을 시작한지 10여분이 지나면 삼분의 일이, 20여분이 지나면 반 가까이... 수업이 끝날 시간이면 몇몇 아이들만 듣고 나머지는 취침시간이다.

                        <아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학교별, 남여학교별 교과별 차이는 있지만 이게 오늘날 교실의 모습이다. 도대체 교실에서 이런 현상이 언제부터였을까? 필자가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됐다가 실업계 학교에 복직한 1994년 3월. 윗글과 너무나 흡사한 현상을 보고 기겁을 했던 일이 있다. 해직기간이 약 5년이었으니까, 5년 전인 1989년과는 너무나 다른 교실 모습에 황당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교실붕괴의 현장, 교실에서 급우들끼리 폭력이 일어나고, 왕따시키고, 교실 밖에서 금품갈취나 절도와 같은 비행으로 담임교사가 경찰서를 드나들고... 이런 현실을 두고 교실붕괴니 학교가 무너졌다는 표현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옛날이야기요, 교실의 일반적인 현실을 왜 갑자기 수구 언론이 교실이 무너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을까? 교실이 이 지경이 된 현실을 경영자인 학교장이나 장학을 한다는 장학사님, 교육 관료들, 교육학자들, 언론인들, 정치인들은 정말 몰랐을까? 알고도 모른채 했을까? 진짜 모르고 있었을까? 교육자들이 이런 현상을 모르고 있었다면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고, 알면서 모른채 했다면 직무유기다. 그런데 교실붕괴현상이 시작된 지 20년이 가까워 오는데 왜 언론에서 갑자기 교실붕괴 타령인가? 물론 전보다 더 세련되게(?) 지능적으로, 더 잔인하게(?) 달라진 점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갑자기 나타난 일도 아닌데 언론이 학교붕괴를 들고 나온 이유는 따로 있다.

언론이 교실붕괴를 새삼스럽게 들고 나온 이유는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무상급식이며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자 교육개혁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교육개혁이 이루어지면 입시교육으로 돈벌이를 해 오던 학원과 이해관계에 있는 세력들이 생존권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하자 교총은 ‘체벌 전면금지와 학생인권조례시행 후 학교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는 등 교육관료와 수구언론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4월에도 교총은 서울·경기지역 초·중·고 교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생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교사가 줄어드는 등 교사의 열정과 사명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교실붕괴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신기루가 아니다. 교실붕괴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육정책과 입시위주의 교육, 그리고 일류대학이라는 학벌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전국단위 일제고사로 개인은 물론 학급, 학교, 지역사회까지 서열화하는 성적지상주의의 교육이 교실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실붕괴는 개인의 소질이나 개성을 무시하고 일류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교육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는가? 수학문제까지 외워야 살아남는 교실에서 하루 15~6시간씩 앉아 견디는 학생들에게 인내심을 강요하는 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까지 포기하라는 폭거다.


교권문제만 해도 그렇다. 교권은 문제 학생을 체벌해 복종을 강요하거나 벌점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 사람을 짐승처럼 두들겨 길들이겠다는 발상을 교육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가치내면화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교육학의 기초상식이다. 놀이문화도 가정교육도 실종된 아이들이 사회의 모순과 위선, 폭력, 상업주의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교권이나 교실붕괴는 사회적인 병리현상과 환경, 입시위주교육정책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막을 수 없다. 사회가 병들었는데 교실붕괴만 막겠다는 '교실붕괴타령'은 저질 코미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1.05.01 22:34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교사의 52.8%가 “반대한다”는 대답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달 1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교사의 반응검사에서 나온 결과다.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는 29일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에서 열린 ‘학생인권 긍정적 정착을 위한 대안 모색 정책토론회에서 82개 중·고교 교사 3778명을 대상으로 한 학생인권조례 설문조사다.

놀랍게도 이 설문에서  교사의 82.8%가 "조례 시행이후 학생생활지도의 어려움이 가중되었다"고 말했다.

 

                             <이미지 출처 : 청소년 인권 행동 아수나르>

민주의식이 없는 교사가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을까? 교사에게 인권의식이 없다면 학생을 민주시민으로 기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인천의 한 중학교 여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논란이 뜨겁다. 체험학습을 갔다가 모임시간에 늦게 왔다는 이유로 화가 난 교사가 학생에게 체벌을 가한 것이다. 체벌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학생을 인격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순치의 대상으로 감정풀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폭사회에서나 가능한 행위... 그런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여교사가 학생을 구타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교사가 학생을 저토록 무지막지하게 폭행할 수 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바닥으로 뺨을 수없이 때리는 것도 모자라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고 발로 학생을 걷어차는 모습은 도저히 교육자로 보이지 않았다.


체벌이 교육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그런 폭력으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농부가 농작물을 아무리 빨리 자라게 하고 싶다고 벼 포기를 뽑아 올릴 수는 없다 벼 포기를 뽑아 올리면 벼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말라 죽고 만다. 교육이란 벼 포기를 뽑아 올리는 게 아니라 벼가 필요한 것.. 거름을 주고 김을 매주고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농부가 사랑으로 농사를 짓듯이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이 스스로 자라기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교육이란 영어로 education 즉 ‘끌어낸다〔引出〕’·‘이끌어낸다〔導出〕’라는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e’의 ‘밖으로’와 ‘ducare’의 ‘끌어낸다’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피교육자가 가지고 있는 천품과 개성을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뜻이며, 또한 ‘그 가능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최대한 끄집어 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체벌을 통해서라도 학생들의 행동변화를 강제하겠다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앞에서도 확인했듯이 체벌은 외부에서 강제해 외면적인 변화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식의 내면화라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위다.
외면적인 변화를 시키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순치(馴致)다. 순치(馴致)란 피교육자의 가치내면화가 아니라 ‘길들이는 것’이다. 동물원의 원숭이나 마약을 찾기 위한 경찰견을 길들이듯 ‘원하는 목적에 맞게 길들이는 것’이 순치(馴致)다.

우리가 사형제를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만에 하나가 그렇다. 사형은 무고한 사람이 처형됐다면 될 돌려 살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체벌로 길들여진 인간은 한 삶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체벌로 받은 상처는 인격을 망가뜨리고 돌이킬 수 없는 폭력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왜 학교는 교도소도 군대도 금지한 체벌을 정당화하자는 것일까?

체벌이 왜 교육의 수단으로 이용됐을까? 체벌이란 인간을 순치시키던 식민지시대의 교육, 독재정권, 군사정권, 유신시대의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순치는 학칙으로, 교육으로 포장해왔다.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생각을 하게하고 순종을 미덕이라고 가르쳤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특정기준의 지식이 가치 있다고 선정해 놓고 그 지식을 달달 외우는 학생이 우등생이 되고 출세하고 유명인사가 되도록 길들여 왔던 것이다.

우등생이라는 이름으로 범생이를 만드는 교육은 중단해야 한다. 폭력으로 똑같은 생각,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유신의 망령, 군사독재의 망령... 교육이라는 이름의 강압과 체벌이 있는한 학교가 교육하는 곳아 되기를기대할 수 없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