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부 아세요? 중고등학교 추억 중 잊지 못한 추억 중의 하나가 교문을 통과하며 당했던 인권침해가 아닐까? 출근하다 보면 학교 당장 안에서 명찰을 친구에게 던지는 학생을 가끔 본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명찰을 달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 등교한 친구에게 명찰을 던지라고 부탁해 남의 명찰을 달고 교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다.



정직하게 교문을 들어오다 선도부에게 적발된 학생은 벌점을 받거나 혹은 아침부터 단체기합을 받고서야 교문을 통과하게 된다. 남의 명찰을 달고 등교하는 학생과 정직하게 복장위반으로 적발된 학생 중 누가 더 정직한 학생인가? 정직한 학생은 벌점을 받은 불량학생이요, 요령껏 선도생을 속인 학생은 모범생인가?


지금도 교문에는 선도완장을 찬 학생들이 교문 앞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복장위반이나 지각을 단속하기 위해 서서 지키고 있다. '학교에서 정해 둔 교칙을 잘 지키는가, 준법정신의 생활화'(?)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지금은 많은 학교에서 선도부를 없애는 대신 학생안전지킴이’ ‘캠페인 활동’ ‘학생회 아침 맞이 인사담임교사 중심 생활지도 전교생 윤번제 학칙 준수 활동 참여..등과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지만 아직도 지역에 따라서는 선도생이 교문을 지키고 있다.


교문지도는 학생을 '통제와 단속의 대상으로 보느냐' 아니면 '가치관의 내면화를 통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교육으로 보는가의 교육관 차이다. ’가만있어라는 순종을 체화시키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순치(馴致).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모르게 하는 교육, 침묵을 강요하는 교육은 비굴한 이중인격자로 길러내는 반교육이다. 더구나 선도부의 눈을 속여 요령을 피우는 학생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교육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육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헌법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 대부분이 노동자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노동 3권도 근로기준법도 가르쳐 주지 않으며,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민주의식, 시민의식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 필자는 지금부터 16년 전 오마이뉴스에 반교육도 교육이다’ -학생을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칙-(클릭하시면 보입니다) 이라는 주제로 기고했던 일이 있다.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학생들이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 가고 싶은 학교로 바뀌었을까


반 교육도 교육(?)이다

학생을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칙

2001.12.23 김용택(kyongtt)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 가장 관념적인 말이 '사랑'이라고 했던가? 사랑이 담겨 있지 않는 사랑만큼 공허한 사랑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관념들이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시행되는 반교육도 이러한 관념의 하나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서 어른의 기준에 맞추어 교칙을 만들고 그 기준이 사랑으로 둔갑하여 아이들을 길들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수많은 사이비 교육이 그렇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되는 낡은 교칙들이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만큼 비민주적인 곳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학교장의 지시가 법이 되는 학교사회에서는 학생지도도 예외가 아니다. 


하기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잘못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배속에서 어떻게 '나는 내가 가진 인권을 국가에 위임한다'는 계약을 하고(사회 계약설) 태어날 수 있을까? 


학교도 마찬가지다. 입학하기 전 관행적으로 시행되어 오던 낡은 교칙을 지켜야 한다고 대표를 통해 선서를 시키면 그것으로 끝이다. 내용이 무엇이건 학생들이 알 필요도 없다. 입학식 때 "나는 교칙을 준수하고...


"그렇게 요식적인 선서를 하면 끝난다. 학생의 인권이 이렇게 간단한 요식 절차를 거쳐 반납 받고 졸업할 때까지 모든 생사여탈권을 학교가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도 통신의 비밀도 보장받지 못한다. 학교의 필요에 의해 귀밑 몇 센티미터는 모범생이고 그보다 1센티미터만 길어도 불량학생이 된다. 학교에 배달되는 우편물은 언제든지 개봉 가능하다. 불량학생(?)의 인권은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교육방침이다.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는 교육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선(善)이 된다. 교칙은 헌법을 능가하는 절대절명의 권위를 지닌다. 그것은 교사의 권위로도 활용된다. 교칙의 부당성을 항의라도 할라치면 죽음(퇴학)을 각오해야 한다. 교칙이라는 절대적인 권위가 존재하는 한 학교는 '순종'만이 미덕이다. 


학교는 이제 교육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결전의 자세라도 할 각오다. 두발을 '자율화'하자는 주장이라도 하는 교사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한다. 학교의 착각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교육부장관은 교육의 위기가 보충수업을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믿고 시도 교육감이 알아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류대학이 있는 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점수다. 학교는 지금 교칙이라는 기둥으로 붕괴의 위기를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지키도록 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어른들의 기준으로 교칙을 만들어 놓고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키라고 한다. 


두발검사에서 고속도로(?)를 만든 교사를 보고 '죽여버리고 싶다' 또는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아이들의 말에서 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순진한 학생들의 가슴에 원한을 심어주는 교칙이 어떻게 교육으로 둔갑해 정당화 될 수 있는 지 이해가 안 된다.


상식 이상을 규정한 법이 지켜지기 어렵듯이 학생의 정서를 외면한 교칙은 교육이 아니다.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교칙을 만들면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은 문제아가 된다.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 교칙을 만들면 구두를 신으면 마찬가지로 불량학생이 된다. 머리핀의 색깔까지 통제하고 단속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만드는 교칙은 교육의 효과 따위는 관심 밖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용납될 리 없다. 


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교칙을 위반하면 즉결심판이 떨어지고 바로 집행이 된다. 변명 따위는 오히려 형량(?)을 더 무겁게 한다. 항변권이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교칙은 아이들을 이중 인격자로 키운다. 


복장을 위반한 학생은 선도교사가 오기 전에 일찍 등교하거나 선도 생이 철거한 후에 교문을 통과한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학생은 한 술 더 뜬다. 


같이 오던 학생이 교문을 통관한 후 담벽을 돌아 자기 명찰을 던져 주면 남의 명찰을 단 학생은 유유히 통과한다. 


고지식하게 명찰이 없어 교문에서 벌을 서는 학생은 '요령도 푼수도 없는 놈'이 된다. 일찍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반 교육적인 요령(?)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학교는 이렇게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반 교육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하는 교사가 우대 받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반 교육적인 교육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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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한 번에 1, 명찰 미부착 한 번 1, 마시지 말라는 시간에 음료수 마시면 1, 비싼 신발이나 책가방을 쓰면 벌점 3, 부모의 차를 타고 등교하면 벌점 1, 익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책가방의 크기가 학생의 가방으로서 크기가 좀 작거나 너무 큰 가방으로 등교하는 학생에게 벌점 5점을 매기기도 했다. 또 어떤 학교는 친구의 흡연 사실을 알리는 고자질을 하면 상점을 주는 학교도 있다.


상벌점제 폐지에 대한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떨까? ‘지난 2013EBS의 조사에 따르면 72%의 교사들이 학생대상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교총과 같은 단체나 선생님들 중에는 상벌점제 폐지를 반대한다. 그러나 벌점이 당장의 생활지도에 잠시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선생님들 중에는 체벌도 금지했는데 상벌점제까지 폐지하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통제 하라는 말이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상벌점제란 지난 2009년부터 체벌 없는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시범적으로 도입한 생활 평점제(·벌점제). 상벌점제가 201011, 전국적으로 체벌이 금지 되면서 학교에서 체벌대신 도입하게 된 것이다. 상벌점제는 그린 마일리지 제도라고도 하는 상벌점제는 도입시작단계에서부터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고 상을 받기 위한 가식적은 행동을 강요해 자칫 학생들을 2중인격자로 키우는가 하면 학생들이 잘못에 대한 반성할 기회를 빼앗는 반교육적인 조치라며 찬반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상벌점제가 또다시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교육적이다, 아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라. 교육이 아니라 길들이기다... 등 상벌점제가 시행되는 동안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상벌점제가 시행되는 동안에도 학교에 따라서는 상벌점제 없이 학생생활지도를 하는 학교도 많았다. 실제로 기숙형공립대안학교인 경남 태봉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전체 의견을 반영한 생활지도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지만 생활지도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상벌점제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와 학생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학생생활 평점제를 2학기부터 폐지하도록 권유하고 내년부터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0148월에 폐지를 확정했으며, 전북교육청은 상벌점제 대안적 지도를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린바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상벌점제가 일부러 '착한' 행동을 하고, 벌점을 피하기 위해 '나쁜' 행동을 삼가는 것은 가치내면화가 아닌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반교육적이라는 교육적 판단 때문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상벌점제 폐지대신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시민들이 토론을 통해 대안으로서 상벌점제 대안을 찾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에게 생활지도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말 잘 듣는 학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급헌장(규칙)’을 만들어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겠다는 관점에서 상벌제와 같은 당근과 채찍이 아닌 민주적인 자발성에 근거한 인권차원에서 생활지도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시작부터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는 상벌점제에 대한 존폐논란은 해법이 없는게 아니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학생생활 문제가 대부분 그렇듯이 원인을 두고 결과를 치료하다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상벌점제가 대단한 치료제처럼 도입했다가 문제가 있으면 폐지하고 또 다른 대책을 내놓아 교단을 혼란케 할 것이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처럼 단순히 말 잘 듣는 학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급헌장(규칙)’을 만들어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겠다는 관점에서 민주적인 자발성에 근거한 인권차원에서 생활지도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말 잘 듣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당근과 채찍은 교육이 아니라 순치다. 생활지도의 편의를 위해 학생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드는 상벌점제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통제와 단속이 아닌 자발성에 근거한 생활지도가 불가능한 게 아니다. 모든 학생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상벌점제는 폐지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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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교과서를 가르쳐야할 선생님들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다. 정부에서 만든 국정역사교과서 때문이다. 정부가 만든 국사 교과서는 올바른 교과서일까? 교육이란 내일의 주인공들에게 이렇게 사는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안내 하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그런데 박근혜대통령은 주권이 국민이 아닌 대통령에게 있다고 믿고 국민들과 한판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 꿈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게 박근혜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보일까? ‘저런 대통령이라도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높은 사람(?)=훌륭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요즈음 아이들 세계는 새로운 욕이 하나 더 생겼다. ‘최순실 스럽다’ ‘박근혜스럽다가 그것이다. 그들을 반면교사로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한다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꿈꾸는 아이들에게 그 꿈이 오아시스가 아니라고 가르쳐야 한다면 이 시대 교사들은 가면을 쓴 광대가 되어야 할까?

요즈음 아파트에는 출입구 문이 잠겨 있는 곳이 많다. 고층아파트를 오르내리는 출입구에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출입이 가능하다. 고층에 사는 사람과 저층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불편을 감수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 그 공간에서 흔히 만나는 일들이 엘리베이트를 기다리며 타고 오르내리는 일이다.

아파트입구에 출입구 잠겨 있어 먼저 들어 간 사람이 밖에서 출입구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릴 텐데도 엘리베이트를 기다리던 사람이 출입구로 쪽으로 몇 발짝만 다가오면 문도 열리고 함께 타고 갈 수 있을텐데... 밖에서 비번을 누르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타고 올라가 버리는 경우를 종종 만난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아 하는가를 계산하기 때문일까?

혼이 비정상이니 멘붕이라는 말이 요즈음처럼 실감 날 때가 없다. ‘얼굴 없이 살 수 있는 시대라서 그럴까? 나만 좋으면... 나만 편하면 상대방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을 그대로 당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나도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복수심(?)이라도 발휘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주 이런 일을 당하면서 살다보면 적응이 되기 때문일까?

탄핵정국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누굴까? 초롱한 눈망울. 선생님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그 순진한 눈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선생님들은 요즈음 같은 세상에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치기가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304명의 학생들이 침몰하는 배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는 이런 사람에게 존엄성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대통령이 진실이라고 하는데 선생님이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뒤집을 권위가 없는데... 그들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혹시 학생들 중에서 선생님이 대통령보다 더 똑똑합니까라고 묻기라도 한다면 뭐라고 답해야할까? 사람답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도덕을 가르치고 윤리와 정의를 가르쳐야하는 선생님들은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는 말이 있다. '이중인격자' 혹은 '다중인격자'를 일컫는 의학적 용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또는 인격의 통일성에 장애가 일어나서 생기는 이상 성격을 지닌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과 사회현상이 다를 때 이러한 성격을 지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정에서는 한없이 자애롭고 다정한 아버지가 사회에서는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저녀들... 학교에서는 원칙을 가르치는데 사회에서는 변칙이 판을 치고 모습을 보고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 걸리는 병(?)이다.

학교가 무너졌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학교만 무너졌을까? 최순실정국에서는 가정도 세상도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이 깨지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원하는 학교에 갈 수도 있고 출세도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진 세상을 보면서 자라는 내일의 주인공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에게 어떻게 도덕과 윤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 어떻게 정의를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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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무너졌다고 난리다. 학교뿐만 아니다. 가정도 교육을 포기한 지 오래다. 맞벌이를 해야 살아가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가족들이 밥상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어졌다. 오죽하면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자는 구호를 내건 대통령 후보까지 나왔을까. 가정교육이 사라진 아이들... 좀 더 많이 벌어 더 좋은 어린이 집, 더 좋은 유치원, 더 비싼 과외를 시키기 위해 자녀들과 대화시간까지 포기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25분 이하(26.5%), 2650분 이하(42.7%), 51100분 미만(20.2%) ... 부모와 하루 대화시간이다. 하루 50분도 자녀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가정이 무려 70%에 가깝다. 한국교육개발원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위탁을 받아 전국의 초··고 학부모 15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부모의 자녀교육 및 학교 참여 실태조사 연구' 결과다. 고등학생의 경우 2명 중 1명은 하루 평균 가족과의 대화 시간이 30분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 소재 고등학생 5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교생 50.8%'가족 간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이 30분 이내'라고 답했다. 이 가운데 '10분 이내'14.2%, 10~30분이 36.6%였다. '30~60(26.4%)', '1시간 이상(22.8%)'으로 나타났다.’ 고교생 절반 가까이가 부모와 하루 30분도 대화를 채 못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 얼굴보기도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제대로된 가정교육이 가능할까? 가정교육없이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장이 가능할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재사회화 과정이 필요하다. 학교나 사회에서 하지 못하는 사회화 과정이 있다. 그것이 가정에서의 사회화다. 인간의 정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대부분 부모로부터 배우고 체화한다. 아이들이 젖을 먹는다는 것은 영양분의 보충뿐만 아니다. 엄마 체온에서 사랑을 느끼고 엄마의 눈을 쳐다보며 안정감을 갖는다.


사랑을 느끼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하는 정서란 대부분 이렇게 엄마아빠와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이러한 정서란 어떤 것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정서란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또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이나 분위기. ‘흥분, 고통, 불쾌감, 불안, 분노, 웃음, 기쁨, 고통, 사랑, 즐거움, 노여움, 혐오, 두려움, 열등감...과 같은 감정, 생각, 행동이 곧 정서다. 이러한 정서는 대부분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형성되고 길러지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유전적인 요소만 전수하는 게 아니다. 후천적으로 환경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부모의 삶에서 혹은 말과 행동에서 기쁘고 슬프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감사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고 불안해하고... 이런 감정, 이런 정서는 엄마 아빠의 말과 행동, 스킨쉽을 통해 느끼고 배운다. 아름답고 추하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부모의 모습을 통해 체화되고 습득한다.


건강한 정서는 부모와의 사랑과 접촉을 통해 길러진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기쁠 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 하는게 정상적인 사람의 정서다. 시도 때도 없이 웃고 우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화를 내야할 일인지 기뻐해야할 일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즐거워 할 줄 아는 사람이 정서가 안정된 사람이다. 이웃을 의심하고 불안감에 싸여 사는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돈을 많이 벌어 과외를 많이 시키면 이런 정서가 길러질까? 유치원이나 학원에 맡기면 내 아이의 정서는 안정적이고 정상적이 될까? 아이들에게 말붙이기도 겁난다는 부모들이 있다. 2학생은 북한군도 겁낸다는 말도 한다. 불안감에 싸여 있다든지 성을 내야할 일인지 미안해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면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렵다. 이렇게 중요한 정서는 대부분 가정에서 배우고 길러진다는 뜻이다. 부모 얼굴 보기도 어려운 아이들이 이런 정서교육이 가능하겠는가? 불안한 정서는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해결될까?



<이미지 출처 : 한겨레신문>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르면 아이들은 이중 인격자로 자란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고 한다. 미움 받고 자란 아이들은 적개심을 체화한다. 정서가 안정되지 못하다는 것은 학교든 직장이든 군대든 사회생활이 어렵게 된다. 부모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정서는 어디서 길러질까? 걸음마도 하기 전 남의 손에 맡겨 길러지는 아이들... 엄마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남의 손에 맡겨져 눈치를 보며 자라면 안정적인 정서가 형성될까?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보내면 더 많이 배우고 더 똑똑해질까?


부모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친구들과 놀이를 통해 질서와 믿음을 배우고 배려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배우면 성장해야 한다. 가정교육도 실종되고 친구조차 빼앗겨 학원에서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정서가 길러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어나 수학문제 몇 개 못 풀어도 살아가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정서가 불안한 사람은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렵다. 내 아이 점수 몇 점 더 올려 더 좋은 학교 보내려다 아이들의 정서가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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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6.01.21 07:00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살기 위해서 먹는지 먹기 위해서 사는지... 향락문화, 감각주의가 끝 모르게 질주하는 사회에는 법이니 도덕이니 원칙 따위란 별 의미가 없다. 경쟁이 지상과제가 되다보니 서바이벌 게임조차 정당성을 인정받는 막가파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무한경쟁, 일등 지상주의, 외모지상주의...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껍데기가 주인 노릇하는 주객이 전도된 사회.. 우리는 지금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주간경향>


어쩌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됐을까? 누가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까? 선거철만 되면 이상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건널목 주변에 빨강 옷을 입고 차를 보고 절을 하는 이상한 사람.... 하긴 혼자 걸어가면서 비실비실 웃는 사람도 있는데 자동차 따위에 절을 하는 게 새삼스럽게 이상하게 보일 것도 없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는 유권자들은 어떨까? 열심히 절을 하는 사람들에 감동해 표를 찍어주고 말까? 저 정도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정활동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속단하고 있을까?


사람들 눈에 가장 잘 띠는 높은 건물에는 예외 없이 기호 1번 빨간 색 선거홍보물이 붙어 있다. 집권당 후보니까, 돈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끝일까? 이런 사람일수록 홍보물을 보면 스펙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최고의 학벌에 박사학위에 어김없는 고위공직에... 재산도 많고 화려한 이력에 뭐 하나 나무랄 게 없다. 성공(?)한 인생을 살아 온 사람들...


유권자들은 누구를 선택할까? 당연히 학벌이나 경력부터 보게 된다. 남들이 하나같이 부러워하는 SKY가아니면 고시합격자... 장차관을 지냈거나 대학교수, 전직 국회의원 혹은 판검사 의사들이다. 세상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 서민들의 애환을 알아서 처리해 줄 선량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일까? 이런 사람들을 선택해 대표로 내보내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까?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어떤가? 원칙이 통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인가? 보통 사람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한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인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정부가 수립되면서부터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온 세상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머리에 먹물 든 사람, 화려한 학벌과 경력, 스펙... 거기다 인물까지 잘생기고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 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왜 이 모양인가? 왜 헬조선이 됐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병든 사회다. 병도 아주 깊은 병이 들었다. 고치기조차 어려운... 원칙이 아니라 변칙이 지배하는 세상.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힘센 사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 세상이다. 신문을 보기 겁이 난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후보자들의 구호를 보면 금방 천국 같은 세상을 만들어 줄 것 같은 구호로 포장해 놓았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한 약속이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진 게 있는가? 왜 속히고 속히면서 미련을 버리지 몫하고 짝사랑하는가? 가해자를 짝사랑하는 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


가짜일수록 더 진짜로 보인다. 가짜는 그만큼 변장술에 능하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은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 허리가 90도로 꺾일 정도로 인사를 하는 예의바른 사람이지만 당선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본성이 드러난다. 당선되고 나면 하루아침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콧대가 높아져 만나보기조차 어렵다. 이런 사람일수록 변장술에 또는 웅변술에 능해 4년 내내 섭섭해 하다가도 선거철에 만나 악수한번으로 섭섭한 감정은 눈 녹듯이 녹이는 기술(?)이 있다.


태어나기만 했지 당선되고 나면 내내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 고향사람이라고, 초등학교니 중학교 동문이라고 혹은 동향입네 친구의 사돈의 팔촌까지 인맥을 들먹이면서 자기가 아니면 정치를 할 사람이 없다는 듯 가장 도덕적이고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포장하고 과시하는 사람일수록 예외 없이 빨강옷을 입고 나타나 또 유권자들에게 구원의 천사처럼 변장해 표를 구걸하지만 순진한 사람들이 그들의 본색을 분별할 수 없다.


배가 고파보지 않고 산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사리를 모른다. 고생하지 않고 자란 사람, 호의호식하고 없는 것 없이 살아 온 사람이 서민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전세를 마련하지 못해 서러움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이, 고급 승용차로 버스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서민들의 삶, 농민들, 노동자들을 아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평생 동안 손끝에 물 한번 뭍이지 않고 살아 온 사람이... 잠자는 아이를 안고 어린이 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엄마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했던가? 속이 보이지 않으니까... 겉보기와 다를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학벌이나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거짓말을 하고 사기꾼일수록 말은 청산유수다. 말로서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면 100100은 모두 오판이다. 그것도 본인이 아닌 참모가 써준 원고를 읽으면 감동해 박수를 보내는 유권자들... 그런 사람들의 진짜 모습, 본질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살았으며 어떤 정당에 가입해 있는가를 보면 안다.


<이미지 출처 : 참여연대>


새누리당은 부자정당이다. 중산층 운운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그런 정책을 하지 않았는가? 이명박, 박근혜가 서민을 위해 정치를 했는가? 사람이 다르다고? 정당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사람이 아니다. 정당의 정강이다. 새누리당의 역사를 보면 도덕적이지도 민족적이지도 서민정당도 아니다.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이 된 책임은 새누리당에 있다. 이런 당을 선택한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계급과 반대되는 가해자를 짝사랑하는 사람들이다. 3, 5, N, 헬조선이란 바로 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가 아닌가?


더불어민주당은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지만 그들 또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당을 밥먹듯이 하는 철새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당정치는 하는 나라에서 정당을 바꾼다는 것은 정치 철학을 바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우리나라에는 서민을 위한 정당이 없다. 있다면 국민들이 각성할 까 두려워 해체시켜 버린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 정도뿐이다.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수 없는 나라. 탈당과 가입을 밥먹듯이 하고 필요하면 부자정당에 갔다가 서민을 위한다는 정당에 가는 철새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나라. 군소정당...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할 수 없는 군소정당으로 어떻게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서민들은 서민을 위한 정당편이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가난한 사람이 중산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법전에나 있다. 마찬가지로 양극화도 N포 세대도 헬조선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가해자를 짝사랑하는 유권자들이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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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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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3.05.25 07:00


 

                      <사진은 글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에서>

 

교사들은 1년에 한두번씩 공개수업을 한다. 학부모와 장학사 그리고 동료교사들이 참가 해 수업을 공개함으로써 수업에 대한 교사의 자신감 향상 및 학생․학부모․교사의 학교교육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란다. 공개수업을 함으로써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지표로 활용하고 수업 전문성과 실천 지식을 공유할 수 있으며 동료교사 간 수업공개를 통하여 수업멘토링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공개수업을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학부모나 학생들은 이런 행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수업을 공개하며 조금 더 자기 수업에 대해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며 바람직한 수업모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공개수업을 하고난 어느 담임교사의 변이다.

 

학부모는 공개수업을 참관하고난 후 뭐라고 평가할까?

 

‘선생님 언제나 얼굴엔 미소로 가득하시고, 마음은 부드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언제나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모습이 정말로 부러웠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4반을 칭찬하는 소리(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이라는)에 마음이 더욱 뿌듯해졌구요. 오늘 완전 감동이었어요~~ ♥’

 

동료교사의 소감을 들어 보자.

 

‘모둠학습에서 간과되기 쉬운 각 학습자별 성취정도의 분석이 필요하였으며 따라서 형성평가 과정에서 수업내용에 대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성취정도를 분석해 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 한시간 수업을 위해 그 많은 준비를 한 담임선생님의 노력에 부응하는 효과적인 결과라고 평가해도 좋을까?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담임선생님의 수업을 객관적으로 공정한 잣대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매일같이 만나는 직장동료의 수업에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기록으로 남겨 놓기가 쉬운 일일까? 그것도 참관록을 후에 본인이 모두 볼수 있는 공개된 장부에... 

 

                   <사진은 글의 내용과 직접관련이 없습니다...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공개수업은 음악 수업을 음악선생님들만 참관해 평가하는 게 아니다. 미술수업이나 수학수업을 국어선생님도 과학선생님도 국사선생님도 참관하고 평가한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교육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학부모도 있겠지만 학창시절 도 음악을 전공한 학부모가 영어나 물리 공개수업을 참관하고 평가를 할 수 있을까? 결국 위에서 예시한 참관후기처럼 칭찬 일변도 혹은 영양가 없는(?) 일반적은 얘기로 끝나고 만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런 행사를 뭐라고 할까?

 

“아빠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있잖아요,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존댓말을 다 쓰고 평소 수업시간에 안하던 자료를 가지고 와서 엄마들 앞에서 수업을 하는 걸 보니 역겨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공개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이 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학부모들은 공개수업 한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담임교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 하는 지 알기나 할까? 그것보다 평소 수업을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다.

공개수업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새로운 수업모형을 공개하는 것도 아닌 연례행사로 또는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수업은 학생들에게는 ‘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학교는 이런 행사를 수십년동안 계속해오면서 개선의 여지도 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교사들이 승진을 하기 위해 시행하는 수업연구대회를 비롯한 행사는 또 어떤가? 승진을 꿈꾸는 교사는 평소 학생들과 소통하고 준비하고 자기수업을 성찰하는 기회보다 어떻게 하면 대회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을까 준비하는 데 더 골몰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평소 교실은 남이 볼까 겁날 정도다. 35명 수업에 불과 4~5명만 수업이 참가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다른 과목 문제를 풀이를 하거나 잠을 자거나 잡담을 수업을 방해한다. 이름하여 무너진 교실....

 

사회수업시간에 수학문제를 풀이하는 학생에게 ‘야! 넌 왜 내 수업에 참가하지 않고 문제풀이를 하느냐’고 질책하면 ‘선생님이 제 인생 책임질 수 있습니까?’라는 힐문이 돌아온다.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럴 때 뭐라고 학생들에게 대답해 줄 수 있을까?

 

‘교육 쇼!’로 표현되는 공개수업이니 수업연구발표대회같은 행사중심의 수업으로 ‘학생․학부모․교사의 학교교육 만족도를 높이고, 수업 전문성과 실천 지식을 공유해 수업멘토링제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교사로 만들고 제자를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육 쇼는 중단해야 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잇단 자살을 두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 했던 말이다. 본인의 급여나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가 입사 시 신원 보증인이나 연대보증인, 심지어 본인이 가입한 모든 금융상품에 까지 가압류를 해 생존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노동자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대한 차이는 엄청나다. 대학수학능력고사를 치르고 난 고 3학생들에게 정상수업을 하라고 공문을 내려보내는 교육부의 시각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배우던 책까지 폐, 휴지처리장으로 보내고 빈손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정상수업 하라면 욕먹어도 싸다. 배울 의욕도 가르칠 것도 없는 학생들을 왜 붙잡아놓고 졸업을 시키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수능이 끝난 3학생들은 졸업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 첫째 이유는 교육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말이나 가방 색깔까지 규제하던 교칙은 수능이 끝나기 바쁘게 3학생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수능 전까지 5분만 늦으면 벌점을 받거나 운동장 돌림을 당하던 교칙은 수능 끝난 이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무용지물이다.

 

일관성이 없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어제까지 A가 오늘은 B가 될 수 없듯이 어제까지 지켜야 하던 교칙이 오늘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기회주의자로 만들거나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반 교육이다.

 

후배들에게도 이런 모습은 교육적이지 못하다. 머리에 염색까지 하고 책가방도 없이 슬금슬금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아예 등교하지 않고 대학이 제공해 주는 교통편을 이용해 입시설명회장으로 직행하기도 한다. 통제나 길들이기를 위한 교칙은 폐지해야 한다. 일류대학 입학이 목적이었던 학교라면 수능이 끝나면 당연히 졸업을 시켜야 옳다. 그러나 수능 끝난 고3 학생들은 교육과정을 팽개치고 입시설명회나 자연보호활동, 미용강좌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이다.

 

 

아까운 등록금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황금기인 청소년기에게 무려 4개월이라는 공백을 준다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손해다. 전국의 수십 만 명의 수험생이 방황하는 4개월 간의 공백을 방치해서는 국가적인 수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도하던 수만 명의 교사들도 가르칠 대상이 없다. 수업도 하지 않는 교사들에게 월급을 지급한다는 것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침묵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수십 년 간 반복되어 온 상식이 통하지 않은 관행이 반복되고 있는 사회가 학교다. 사실상 졸업한 학생을 붙잡아 놓고 등록금을 내게 하고 출석일수는 채우는 졸업생관리가 그렇고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학생생활지도 규정이 그렇다.

 

학생생활지도를 한다면서 가치내면화가 아니라 들키는 순간부터 죄인이 되는 통제와 단속 위주의 생활지도가 그렇다. 잘잘못을 지적하면 문제교사가 되는 사회에서는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할 리 없다. 사람답게 사는 길을 안내해줘야 할 학교는 시험문제를 잘 풀이하는 기술만 외우면 출세하고 대접받는 그래서 그런 사람끼리 패거리를 만드는 사회가 된다. 학교에서는 원칙을 가르치고 사회에 나가면 변칙이 지배하는 풍토에서는 교육자란 무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제도를 그대로 두고 개인에게 손해를 보라면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학기는 2월에 끝나면서 수능을 11월에 치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수능고사를 2월에 치르든지 아니면 수능이 끝나면 졸업을 시켜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어렵다면 학기제를 바꿔야 한다. 아니면 수능 후의 효율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란 교육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하는 곳이라고 믿기에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해놓고 할 일을 다했다는 교육부다. 이러한 관행에 길들여진 학교는 교육부가 죽으라면 죽는 흉내를 내야 한다. 학교는 있어도 교육이 없는 학교, 학생은 있어도 가르칠 것이 없는 교사는 아이들 앞에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교와 교과부는 지금 학교폭력과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학교가 교육만 제대로 하면 폭력도 사교육문제도 해결될 텐데 교육은 뒷전이고 학교폭력과 전쟁을 치르느라 교육은 뒷전입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원인도 따지고 보면 학교가 교육을 하지 않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 준비를 하느라 엉뚱한데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교육을 제대로만 하면 폭력은 저절로 없어지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학교폭력문제는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는 걸 깨달을 텐데, 남을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친구가 소중하게 보일 리 있겠습니까? 친구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면 안 되고 나보다 더 잘생기거나 더 출세를 하거나 부자가 되도 안 되는... 나만 잘되면 모든 게 그만인...그런 걸 가르치는 학교에 인간의 존엄성이나 우정이나 신의나 의리나 정의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목적전치현상이라고 하나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현상’을 일컬어 ‘목적전치현상’이라고 하지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목적 자체가 되어 버린 현상을 우리는 ‘목적전치현상’이라고들 합니다.

 

요즈음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교육 관료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유치한 얘기 같습니만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곳이지요. 남을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친구가 소중하고 내 부모 내 이웃, 내 고향, 우리의 문화가 소중하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선조들이 고맙고 감사하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게 학교지요.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마치 ‘100점’이 학교 교육의 목적인냥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건 뒷전이고 국어, 영어, 수학, 점수가 더 소중하고 친구보다 몇점 더 잘 받았는가를 소숫점까지 계산해 그 점수를 더 잘 받기 위해 보충수업에 야간자율학습에 선수학습에 고액과외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원정출산이며 해외연수며 혓바닥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게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입니다.

 

 

내 자식이 얼마나 사람다운 생각, 올곧은 심성을 지니고 있는지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100점만 받으면, 일등만 하면, 서울대학만 입학하면... 내 자식만 출세하는 길이라면 노래방 도우미도 기러기아빠도 불사하는 게 우리나라 부모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학원, 더 비싼 고액과외를 시킬까 그런 걱정을 하느라 자식과의 대화할 시간도 얼굴 볼 시간도 없습니다.

 

‘폭력과의 전쟁'만 해도 그렇습니다. 학교에서는 ’해서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르쳐 주고 습관화되도록 반복하는 게 학교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학교의 생활지도를 보면 가르쳐 이끌어 주기보다 단속이나 규제가 먼저입니다. 교칙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지켜야할 주체들의 의사가 반영도 되지 않는 교칙을 입학도 하기 전에 먼저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으면 나쁜 놈 취급입니다.

 

왜 그런 걸 지켜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들키면 죄인이 되도록 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문제아를 색출하는 이중인격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교육이란 가치내면화를 위해 시비를 분별하고 사리를 판단하고 사물을 올곧게 볼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게 선결 문제입니다. 지식이란 필요하지만 그런 건 사람이 되고 난 뒤에 가르쳐도 늦지 않습니다.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구별도 못하는 멍청한 인간에게 머리 속에 육도삼략의 지식과 기술만 가르친다고 그게 어디 쓸모가 있겠습니까?

 

교과부는 학교를 학원으로 만들어 놓고 폭력과의 전쟁을 하겠다는 목전치의 정신 나간 생각을 버리고 학교가 교육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학교를 살리는 길이요 폭력을 근 본적으로 뿌리 뽑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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