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해방 후 대한민국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논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보수=애국=통일’이요, ‘진보=매국=분단’이라는 이분법적 가치가 마치 일본의 노예생활을 청산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진보와 보수는 애국과 매국이라는 옷을 입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진보는 좋은 것, 보수는 나쁘기만 한 것일까? 진보와 보수, 보혁논쟁이 한창이던 시절, 이를 보다 못한 리영희선생님은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slownew>
국어사전에는 진보란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보수란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다. 그런데 해방정국에서는 좌익사상은 진보로, 우익사상을 보수로 해석해 좌익은 ‘매국이요, 나쁜 사람’으로, ‘우익은 애국으로 좋은 사람’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정말 좌익을 나쁜 것, 보수는 좋기만 한 사상일까?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선이요,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악이 되는 흑백논리는 이렇게 우리사회에서 보수를 매도하는 무기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보통사람들이 좋은 사람을 ‘바람직한 인간’이요, ‘물욕이 없고 바른 가치판단에 따라 행동하며 비겁한 짓을 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보수는 좋은 사람들이요, 진보는 나쁜 사람들일까요? 좀 더 진솔하게 표현하면 ‘좋은 사람’이란 인격적으로 얼마나 인간다운 자질을 갖춘 사람인가의 여부가 아니라 내게 잘 해주는 사람이나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기준이나 원칙이 없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 이해해도 과히 틀린 해석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선량(選良)을 뽑을 때는 다르다. 인간적으로 좋다는 것과 인격적인 자질과 철학이 있는가의 여부는 다른 문제다. 오랜 농업사회, 정의적인 향촌에서 살던 농촌사회의 정서가 남아서 그럴까? 동네에서 웃어른에게 예의바르고 인사성이 있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의리가 있고 남을 배려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 불쌍한 사람을 보면 함께 슬퍼할 줄 알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화목하게 잘 지내는 사람...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이해했다.
<좋은 사람과 훌륭한 사람은 다르다>
농업사회, 농촌사회에서는 그런 판단이면 족했다. 운명에 순응하고 사는 사람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고 이런 신분사회에 저항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자신의 계급을 운명으로 알고 사는 것이 맘 편한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방사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르다.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계층이동이 가능한 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록 공정한 기준이 없어 기득권세력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진 불완전한 사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분사회처럼 폐쇄적인 사회는 아니다.
대한민국에 선거철만 되면 애국자들로 만원이다. 어디서 그 많은 애국자들이 숨어 있었는지 너도 나도 애국자요, 민주투사다. 그런데 잠시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방 들통이 난다. 궁색해진 이들은 결국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상대방을 색깔로 매도한다. 해방정국의 ‘보수=애국통일’이요 ‘진보=매국=분단’의 논리가 복지나 평등이라는 이념조차 종북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순진한 주권자들을 정서에 호소에 사이비 애국자, 사이비 보수가 애국으로 위장해 당선을 노리는 꼼수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다름과 틀림, 비난과 비판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서가 유령처럼 나타나 유권자들을 혼란케 만들고 있다. ‘다름과 틀림’의 이해가 어려우면 반대말을 생각해 보면 뜻이 분명해진다. 다름의 반대는 같은 것이요. 틀림의 반대는 맞는 것이다. 비판은 어떤 대상의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뜻이며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이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써 먹는 수법.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해 비판과 비난조차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정당성이 부족한 정권이 자신의 불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침묵을 강요했던 정책, 잘잘못을 가리는 비판조차 빨갱이로 몰아 생매장을 했던 독재정권의 흑백논리가 선거 때만 되면 부활해 순진한 유권자들을 혼미(昏迷)케 하고 있다.
좋은 사람과 훌륭한 사람은 다르다. 우리는 이웃은 좋은 사람이 족하지만 선량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추고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 그런 정당에서 활동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말은 청산유수지만 행동은 딴판이 이중인격자... 사이비 애국자를 선택해 또 고생을 사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왜 선량이 되려고 하는지 분명한 목적도 없이 나타난 사이비 애국자, ‘좋기만 한 사람’을 지지 하는 것은 개인을 출세시켜주는 헛고생이다. 훌륭한 사람을 선택할 줄 아는 유권자들의 지혜가 훌륭한 선량을 선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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