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17.06.09 06:51


박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릴 때 박사라면 그야말로 모르는 게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박사제도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텔레비전에 이름 다음에 박사가 붙으면 그만큼 권위가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사란 학문을 가장 깊이 있게 알고 연구하는 전문가를 일컫는 호칭이다.



박사를 영어로 ‘Ph. D’로 표기한다. ‘Doctor of Philosophy’의 준말이다. 그런데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도 ‘Ph. D’,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도 ‘Ph. D’. 박사제도가 생길 때 철학자에게 수여했던 게 시초가 됐는지 모르지만 모든 박사는 모두 ‘Ph. D’로 표기한다. 그런데 이름대로 Philosophy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택시를 타고 회의에 참석했다가 볼일이 있어 먼저 나왔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전혀 감이 안 잡히던 황당한 일을 경험한 일이 있다. 낯선 길도 아니고 가끔 다니던 곳인데 어디가 어딘지 구별이 안 된다. 몇 번이나 헤매다가 결국 택사를 탈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다. 살다가 이런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방향감각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박사학위를 비롯한 온간 스팩을 쌓은 사람인데 사는 걸 보면 영 아니다. 하긴 박사라는 칭호가 이효석의 생애에 대한 연구로 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고 한국의 인사행정에 대한 고찰로 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으니 그런 사람이 어떻게 철학을 제대로 알까?


철학이 사람과 세계의 관계를 밝혀주고 사람들에게 관점과 입장을 갖도록 하는 학문인데 학교는 이런 철학교육을 하기는 할까? 하긴 중·고등학교에는 도덕이나 윤리라는 과목이 있다. 도덕이나 윤리가 철학일까? 도덕이나 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을 일깨워 주는 학문이다


윤리책에는 윤리사상과 사회사상의 의의, 동양과 한국윤리사상, 서양윤리사상, 사회사상이라는 단원이 설정 돼 있다. 동양의 사상인 유교나 불교, 도가·도교를 알면 삶의 방향감각을 깨달을 수 있을까? 서양의 그리스도교의 윤리사상이나 실용주의 철학을 배우고 외우면 도덕적인 사람으로 길러지는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건 지식이 아니라 지혜요, 철학이다. 도덕점수나 윤리점수를 잘 받는 학생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 본질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데 학교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덕분에 외모나 현상을 보고 진실이라고 착각하게 함으로서 이와 연관된 산업이 상황을 이루고 있다.


철학없는 사회는 막가파가 판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거나 상업주의가 활개를 친다. 우리사회를 보자. 공맹사상이 유교철학 외에 이렇다 할 철학이 없는 우리나라에는 국적불명의 외래철학이 활개를 치고 있다. 수많은 철학박사들이 내로라면 권위를 자랑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철학이란 것은 결국 서양의 실용철학이나 실존철학, 신토마스주의, 인격철학, 신실증철학 등이다.


얼마나 철학이 궁핍했으면 무분별하게 도입한 철학이 마치 우리철학 행세를 함으로서 한국은 구미사상의 시궁창이라는 야유까지 받을까? 설사 서구사상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안내하는 지침서라도 된다면야 배척하고 비판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무분별하게 들어 온 철학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에 유입된 서구 철학의 대표적인 철학이 실용철학과 실존철학, 분석철학(신실증철학), 신학철학 등 4대철학 사조로 인정한다. 죤듀이로 대표되는 실용주의 철학이란 이기주의를 찬양하고 절대화하는 대표적인 철학으로 인간의 이기심을 천성으로 본다. 실용주의에 점령당한 교육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 미국식 생활양식을 정당화하는 철학이다. 오늘날 사회적인 존재의 인간을 이기주의인간으로 길러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어떤가? 실존주의 철학하면 학생들은 윤리시간에 키에르케고르나 야스퍼스 하이데크나 샤르트르가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달달 외우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는 죽음의 철학이다. 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죽음을 미화하던 철학이 실존주의 아닌가? 어차피 사람은 한번 죽기 마련인데 형편이 돌아가는대로 살아보자는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논리가 숨겨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나 했을까? 실용철학이 인간의 이기심을 절대화하는 철학이라면 실존철학은 죽음을 절대화하고 이상화하며 예찬하는 철학이다.


스콜라철학, 신토마스철학이 운명론적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신학철학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한 분석철학이니 과학철학, 신실증주의 철학이란 꽁트가 철학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과학철학이니 분석철학, 논리적 실증철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 믿을 수 있으며 감성의 세계를 벗어난 지식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철학을 거부한다.


학창시절 윤리를 배워 남아 있는 게 무엇인가? 기껏해야 시험에 대비해 철학자 이름이나 외운 게 전부다. 이렇게 관념철학자들은 산다는 게 무엇이며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를 안내해 주지 못한다. 의식과 물질 중 의식이 먼저기 때문에 의식이 없으면 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론으로는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과학적 세계관을 배우자 못한 서민들은 이기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 자본의 충실한 소비자로 운명이 따르다 인생을 마치게 된다. 과학적 세계관이 없는 인생은 자본의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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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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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철학2016.03.06 07:00


89년 민주화투쟁 전후의 우리사회는 거대한 민중교육의 장이었습니다. 월간 말지의 등장과 한겨레신문의 창간, 전교조 교사 학살... 어쩌면 4월 혁명의 분위기보다 89민주화대투쟁은 국민들의 정신혁명을 불러온 의식개혁운동은 이 시기에 나탄난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대학 앞에는 사회과학 서적이 눈이 부시게 등장하고 웬만한 서점에는 사회과학 책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등장한 것이 철학 책이었습니다. 물론 민중사관으로 씌여진 거꾸로 읽는 역사와 민중의 함성이나 세계사 편력같은 서적도 인기가 있었지만 우리시대의 철학, 노동자의 철학, 세계 철학사, 강좌철학, 사람됨의 철학, 철학사비판, 철학과 세계관의 역사, 철학문답, 철학사 비판, 모순과 실천의 변증법, 철학의 기초이론, 변증법적 지평의 확대... 등 수많은 철학 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철학하면 관념철학만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마르크스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유물철학이 나오자 세상은 보는 눈, 노동을 보는 눈, 교육과 종교...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연관과 변화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관념적이고 단편적인 시각으로 보는 세상과는 한 차원 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된 게지요. 


유물철학으로 보이는 세상은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중들의 의식세계를 바꿔놓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필자도 철학이라는 책을 서가에 나오기 바쁘게 구입해 밤 잠을 설치며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당시의 경험과 투쟁의 현장에서 권력과 맞서면서 얻은 경험으로 판단컨데 학교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우민화교육이라고 단정하고 싶습니다, 내가 누군지 공부는 왜 하는지, 왜 사는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를 알도록 안내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지식만 암기하도록 하는 교육은 우민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유럽의 교육선진국에서 필수교과인 철학을 우리는 채택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본의 시각, 독재권력의 시각을 갖도록 만드는 순치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지식도 필요하고 기술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가치관이 달라 갈등이 그치지 않는 세상에 정말 반드시 필요한게 무엇일까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현실을 분별하는 판단력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장님이 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학교교육을 사회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교과서만 암기하면 사회화가 될까요? 그래서 썼던 글입니다.     

   





학교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



2002.10.24




식민지 시대 해방을 주장하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다. 무력으로 주권을 빼앗고 백성을 종살이시키는 권력에 저항하는 선각자가 있으면, 식민지 종주국은 존립의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 시대 지식인은 권력의 주구가 되거나 민족해방을 위한 전사가 되는 길밖에 없다. 


당연히 식민지 시대 교육은 식민지 종주국에 복무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식민교육은 인간을 각성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충견을 만드는 이데올로기 교육일 수밖에 없었다. 


독재권력 하의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독재정권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독재정권은 폭력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이 아니라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예스맨'이 필요할 따름이다. 독재권력은 민중들을 마취시키기 위해 교육 이외에도 드라마와 섹스와 스포츠를 이용한다. 


독재정권이 원하는 것은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독재권력 하의 교육은 똑똑한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인간을 키운다. 교육과정도 당연히 관념적인 학문중심으로 짜여진다. 


벌(閥)이라는 문화도 독재권력 아래서 약점을 가진 패거리들의 공생을 위해 생존방식으로 뿌리내린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관념적인 윤리는 필요하지만 실천적인 철학을 가르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철학이란 철학자가 한 말 몇 마디를 외우는 것이 아니다. 학파나 외우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이며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철학이다. 


철학이란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는 학문이요, 인생관, 행복관, 국가관을 확립하는 과정이다. 허무주의나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 내가 귀한 존재이듯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시비를 알고 해서 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철학이다. 돈을 위해 양심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삶이 아니라 신념을 위해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다. 


내 민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분단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 눈앞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감각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다는 것만으로 약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참뜻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철학을 배우면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자라지 않는다. 이해타산하고 배신하는 비겁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학교가 왜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냉전시대는 체제수호 이념 때문에 관념철학은 가르쳐도 유물철학은 가르치지 못했다. 이념의 시대는 가고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했는데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맹종하는 인간'이 필요하기 때문인가? 


이성적인 인간, 합리적인 인간은 철학을 배우면서 각성된다. 옳고 그름이,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은 철학을 통해 배출된다. 


식민지 시대나 독재권력이 철학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비판적인 지식인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사회, 이성적인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냉철한 지식과 비판과 상호비판이 필요하다.


내 생각과 다르면 적으로 생각하고 붉은 색을 칠하는 흑백논리는 독재정권에서 필요했던 논리다. 학벌이나 혈연이나 지연으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발상은 디지털시대에 청산되어야 한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로 평가받는 사회는 이성적인 사회가 아니다. 공사를 구별 못하고 사회적 지위가 인간의 가치가지 결정짓는 사회는 청산되어야 할 사고방식이다. 실속은 없고 허세와 과장이 지배하는 사회는 사람다운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왜 국어, 영어, 수학인가? 왜 영어를 못하면 사람취급 못 받는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언어의 소통은 가까운 장래에 해결될 전망이다. 함수와 미적분이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국어, 영어, 수학 점수로 사람의 가치로 서열 매기는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 수학문제를 잘 풀이하는 사람보다는 의리 있는 인간을 키워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고 역사와 민족 앞에 겸허한 사람이 영어를 잘 하는 사람보다 존경받아야 한다. 철학이 필수과목이 돼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는 인간을 키우는 교육을 그칠 때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옛날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2년 01월 24일 (바로가기▶)'학교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라는 주제로 쓴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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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철학2015.09.24 06:54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궁금증은 모르고 살면 편할까? 세계는 정말 인식할 수 없는 것일까? 모르고 살면 편하기만 할까?

 

<이미지 출체 : 아하경제>

 

인구는 25년 주기로 2배 성장하는데 생활 자료의 생산은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도 그것보다 엄청 떨어진다. 인구와 식량의 비례는 200년 후에는 2569, 300년 후에는 4,09613으로 되며 그 괴리는 갈수록 늘어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빈민들이 굶어 죽는 것, 범죄, 살인행위를 막을 필요도 없으며 전염병이나 전쟁 등으로 인간들이 죽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중고등학교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 글이 누구의 주장인지 금방 감을 잡았을 것이다. 인구론의 저자 맬더스는 산업혁명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실직자들은 거리로 내몰려 기아와 빈곤으로 살길을 찾아 방황하고 있을 때 학자들 중에는 빈곤과 사회악의 원인이 사유재산에 있다며 빈곤, 탐용, 축재욕의 사회악을 뿌리 뽑기 위해 사유재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 때 나온 이런 이론을 내놓았다. 철학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이론들은 계급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이렇게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해 분별력을 찾지 못하고 헷갈리게 한다.

 

영국의 목사이며 경제학자인 맬더스는 이런 인구론으로 통치자나 자본가들에게 자신도 놀랄 정도로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국경을 넘어 구미제국에 널리 전파되어 갔다. 방황하는 사람들... 살다보면 온갖 일을 다 만난다. 어려운 일이야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거나 인터넷을 찾아 해결하면 될 일이지만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판단일 필요한 문제는 자기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주관이 없다는 것, 소신이 없다는 것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우를 범하거나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다.

 

맬더스의 인구론을 비롯해 4대철학사조라고 일컫는 실용철학(Pragmatism)과 실존철학, 분석철학(신실증철학), 신학철학을 읽으며 철학이란 골치 아픈 학문이라 그런 것은 모르고 사는게 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맬더스의 인구론에서 볼 수 있듯이 관념철학이 이데올로기로서 역학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제 글 철학...? 그런거 정말 몰라도 될까?()에서도 밝혔지만 철학이란 나를 아는 학문이요, 세계에 대한 관점이다. 철학을 모른다는 것은 자아관, 인생관, 종교관, 역사관...이 없는 암흑의 세상을 사는 불쌍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사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4대철학사조라고 일컫는 실용철학(Pragmatism)과 실존철학, 분석철학(신실증철학), 신학철학과 같이 배울수록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철학은 관념철학이라고 보면 맞다. 이에 반해 변증법적 유물론이니 사적 유물론하면 말도 꺼내기 전 겁부터 집어먹는 마르크스 철학, 즉 유물론이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에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시무시한 법이 건재하고 있어 마르크스경제학이니 유물철학은 이상은 사람들이나 아는 위험한 철학으로 생각한다.

 

 

철학이란 철학자 이름이나 외워서 점수 잘 받기 위해 배우는 공부가 아니다. 철학의 근본문제는 물질과 생산의 문제, 존재와 의식의 문재, 이론과 실천의 문제다. 세계관을 배움으로서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는 원칙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철학은 세계에 대한 인식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是非),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을 보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생존 방식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의 기본 문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서 어느 것이 일차적이고 어느 것이 2차적인 가하는 문제다. 관념철학에서는 정신과 물질이 따로 존재한다고 (정신이 1차적이고, 물질이 2차적) 보지만 유물론에서는 물질이 정신보다 먼저 있어서(물질이 1차적이고 정신이 2차적) 물질이 정신을 탄생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철학의 둘째문제는 인간이 물질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물질세계는 인간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의식에 반영되어 세계를 있는 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관념론은 그 반대다. 물질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세계는 물질이 변화한다는 것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성립되는 철학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변증법적 유물 철학변화와 연관의 법칙, 모든 사물의 현상은 양적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형태로 변화 발전한다는 양질전화의 법칙, 사물현상은 대립되는 (음전기와 양전기, 북극과 남극,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과 같이 모순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새것이 발생하고 낡은 것이 부정되는 부정의 부정의 법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밖에도 유물변증법은 범주, 원인과 결과, 본질과 현상, 내용과 형식, 필연성과 우연성,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가능성과 현실성에 대한 이해를 함으로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인식론이며 실천의 문제까지 외연을 확대해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을 때 철학은 호기심의 대상이 삶의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식만 있고 그 지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 지를 모르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죽음이란? 행복이란? 사람답게 사는 길이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 학문의 학문이 세계관이요, 철학이다. 지식이 많다고 삶의 문제. 행복에 대한 문제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칙도 기준도 없이 옳고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삶은 방황이다.

 

겉으로는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면서 교육권을 장악하고 교육내용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삶을 안내하지 못하고 지식만 주입해 서열이나 매겨 내는 교육은 우민화 교육에 다름 아니다. ‘자본이나 약점이 많은 정부가 필요한 인간을 길러내는 일을 교육이라고 강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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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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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박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릴 때 박사라면 그야말로 모르는 게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박사제도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텔레비전에 이름 다음에 박사가 붙으면 그만큼 권위가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사란 학문을 가장 깊이 있게 알고 연구하는 전문가를 일컫는 호칭이다.

 

 

박사를 영어로 ‘Ph. D’로 표기한다. ‘Doctor of Philosophy’의 준말이다. 그런데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도 ‘Ph. D’,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도 ‘Ph. D’. 박사제도가 생길 때 철학자에게 수여했던 게 시초가 됐는지 모르지만 모든 박사는 모두 ‘Ph. D’로 표기한다. 그런데 이름대로 Philosophy에 대해 잘 알고 있기나 할까?

 

택시를 타고 회의에 참석했다가 볼일이 있어 먼저 나왔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전혀 감이 안 잡히던 황당한 일을 경험했던 일이 있다. 낯선 길도 아니고 가끔 다니던 곳인데 어디가 어딘지 구별이 안 됐다. 몇 번이나 헤매다가 결국 택사를 탈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다. 살다가 이런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방향감각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박사학위를 비롯한 온간 스팩을 쌓은 사람인데 사는 걸 보면 영 아니다. 하긴 박사라는 칭호가 이효석의 생애에 대한 연구로 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고 한국의 인사행정에 대한 고찰로 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다. 이 복잡한 인문계나 무한한 자연계의 비밀을 눈곱만큼 아는 걸 박사라는 호칭하나 달랑 붙인다고 학문을 가장 깊이 있게 알고 연구하는 전문가’라고 인정해도 좋은? 아니 그런 사람들이 삶을 제대로 살기나 할까?

 

철학이란 사람과 세계의 관계를 밝혀주고 사람들에게 관점과 입장을 갖도록 하는 학문인데 학교는 이런 철학교육을 왜 하지 않을까? 하긴 중·고등학교에 도덕이나 윤리라는 과목이 있다. 도덕이나 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을 일깨워 주는 학문이다. 윤리교과서에는 윤리사상과 사회사상의 의의, 동양과 한국윤리사상, 서양윤리사상, 사회사상이라는 단원이 설정 돼 있다. 동양의 사상인 유교나 불교, 도가·도교를 알면 삶의 방향감각을 깨달을 수 있을까? 서양의 그리스도교의 윤리사상이나 목적론적 윤리설이나 의무론적 윤리설을 배우고 외우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까?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지식보다, 지혜요, 철학이다. 도덕점수나 윤리점수를 잘 받는 학생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 본질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데 학교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외모나 현상을 보고 본질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누가 유리할까?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누가 덕을 보게 될까?

 

철학 없는 사회는 막가파가 판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거나 상업주의가 활개를 친다. 우리사회를 보자. 공맹사상이 유교철학 외에 이렇다 할 철학이 없는 우리 국민들에게 국적불명의 외래철학이 물민 듯이 밀려와 활개를 치고 있다. 수많은 철학박사들이 내로라하며 권위를 자랑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철학이란 것은 결국 서양의 실용철학이나 실존철학, 신토마스주의, 인격철학, 신실증철학 등이 전부다.

 

얼마나 철학이 궁핍했으면 무분별하게 도입한 철학이 마치 우리철학 행세를 함으로서 한국은 구미사상의 시궁창이라는 야유까지 받을까? 설사 서구사상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안내하는 지침서라도 된다면야 배척하고 비판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무분별하게 들어 온 철학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에 유입된 서구 철학의 대표적인 철학이 실용철학(Pragmatism)실존철학, 분석철학(신실증철학), 신학철학 4대 철학 사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죤듀이로 대표되는 실용주의 철학이란 이기주의를 찬양하고 절대화하는 대표적인 철학으로 인간의 이기심을 천성으로 본다. 실용주의에 점령당한 교육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 미국식 생활양식을 정당화하는 철학이다. 오늘날 '내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 되는 상업주의와 사회적인 존재의 인간을 이기주의인간으로 길러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어떤가? 실존주의 철학하면 학생들은 윤리시간에 키에르케고르나 야스퍼스 하이데크나 샤르트르라는 철학자 이름이나 달달 외우던 기억이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실존주의철학이란 죽음의 철학이다. 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죽음을 미화하던 철학이 실존주의 아닌가? 어차피 사람은 한번 죽기 마련인데 형편이 돌아가는 대로 살아보자는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논리가 숨겨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실용철학이 인간의 이기심을 절대화하는 철학이라면 실존철학은 죽음을 절대화하고 이상화하며 예찬하는 철학이다.

 

 

 

스콜라철학, 신토마스철학이란 운명론적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신학철학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한 분석철학이니 과학철학, 신실증주의 철학이란 꽁트가 철학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과학철학이니 분석철학, 논리적 실증철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 믿을 수 있으며 감성의 세계를 벗어난 지식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철학을 거부한다.

 

학창시절 윤리를 배워 남아 있는 게 무엇인가? 기껏해야 시험에 대비해 철학자 이름이나 외운 게 전부다. 이렇게 관념철학자들은 산다는 게 무엇이며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를 안내해 주지 못한다. 의식과 물질 중 의식이 먼저이기 때문에 의식이 없으면 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관념철학이다. 관념론으로는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과학적 세계관을 배우지 못한 서민들은 이기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 자본의 충실한 소비자로 혹은 운명론자로 살다 인생을 마치게 된다. 과학적 세계관이 없는 인생은 자본의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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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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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칠흑같이 깜깜한 밤 혼자서 길을 나섰다. 처음 가는 길이다. 누가 곁에서 도와 줄 사람도 없다. 내가 가는 길에는 숲인지 냇물인지 바위돌이 가로막고 있는지... 아차 하는 순간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질 지도 모른다. 이런 길을 가는 나그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인생의 길이 그렇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내 부모, 우리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행복이란 무엇이며, 사랑이, 역사가. 종교가 무엇인지, 문화가 무엇인지... 그런 걸 모르고 먹고 자고 입고 살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무조건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전교에서 몇 등하고... 그렇게 학벌과 스펙을 쌓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가 그렇게 살기를 바랄까?


‘고비처’라는 기관이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라는 기관의 준말이다. 청와대, 국회의원, 판사, 검사 등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를 전담하는 상설 국가기관이다. 오죽하면 이런 기관이 다 생겼을까? 실제로 우리나라 지식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고위공직자 청문회 중계를 보면 비리 백화점을 연상케 한다. 특히 언론인 종교지도자, 교육자, 교수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지식인들, 사회지도층 인사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 많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 얻은 지식인가? 얼마나 힘들게 얻은 자리인가? 물론 모든 지식인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자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지위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고 있을까? 한마디로 철학부재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지식인들은 오늘의 나는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얻은 결과라고 단정한다. 내가 땀 흘리고 수고해 얻은 결과니 그 결과 특혜를 누리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학교가 사회적인 존재가 아닌 이기적인 인간, 개인적인 존재로 길러놓은 결과가 아닐까?


‘내가 공부한 것은 내 돈 내고 배웠으니, 내가 똑똑해서 일류대학을 나와 오늘날 이 자리까지 왔으니 과실도 내가 따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다닌 학교는 누가 지었는가? 그들이 배운 선생님의 월급은 누가 주었는가? 그들이 먹고 입고, 길을 걷고, 자동차를 타고... 살아온 모든 것은 돈으로 대가를 모두 다 지불한 것일까? 숨 쉬는 공기 매일같이 마시는 물은 자신이 잘나서 얻은 것인가?


역사를 배우지만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은 이기적인 인간이다. 민주주의를 배우지만 소통하고 양보하고 타렵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런 자세를 체화하지 못한 사람은 민주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개인출세시켜주는 교육은 부모에 대한 고마움도, 전통문화에 대한 감사와 선배들의 땀 흘린 수고도 모르는 관념적인 인간을 만들어 놓는다. 내 몸만 귀하고 이 땅에 같이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감사도 모르고 ‘내게 좋은 것이 선(善)’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각박해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아파트 복도까지, 상가며 거리 곳곳에... 유치원이나 학교 안까지 구석구석까지 CCTV를 설치하고 지킴이 까지 세워놓고 있다. 사로가 서로를 밎지 못하고 도덕이니 법이라는 게 있지만 그런 건 지키는 사람들이 손해보는 세상이 돼기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들을 고발하고 아파트 아래 윗 층 사람들이 소음문제로 칼부림까지 하는 세상이 됐다.

 

 


고급 아파트에 산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임대 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며 공동학군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돈이 많다고, 잘 생겼다고, 지위가 높다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경원시하고 과시하고 공동체 삶을 거부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먹방이 되고 편파왜곡 방송을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하고 있다. 소외와 차별 과시와 허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철학이란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의 이름이나 외우는 공부가 아니다.  시비를 가릴 줄 알고, 사람을 사람답게 사는 길을 안내 해 주는 공부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법, 행복하게 사는 길을 안내해 주는 공부다. 옳고 그름을 분별해 악을 미워하고 선을 추구하며 정의롭게 사는 길로 이끌어주는 교육이 철학이다. 아무리 머릿속에 든 게 많아도 이기적인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모른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안내 하는 철학을 가르쳐 주지 않는 학교에 어떻게 훌륭한 사람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철학을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은 우민화교육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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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3 21:49


지난 2006년 8일 일이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 경내에서 태고종 총무원 쪽 승려와 선암사 쪽 승려들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처가 되겠다고 수도하는 분들이 죽봉으로 치도 때리고 막가파들이나 할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폭행을 하게 했을까? 이날 몸싸움 과정에서 5명의 승려가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직원과 26명의 승려가 경찰에 연행되는 추태를 보였다.


자비를 실천해야할 수행자가 이해관계 때문에 상대방에게 폭행을 가하는 저들이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의심이 간다. 싸움의 발단이란 게 총무원장이 누가 되느냐 주도권 다툼인데 막강한 재산이 걸려 있는 문제 때문이다.  

불교의 추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려시대 불교의 번성과 타락상, 일제시대 친일불교,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의 ‘정화운동’과 비구 대처의 폭력적 종권다툼,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법란’과 군사정권에 순응했던 승려들….

        <선암사 승려들으 몸싸움-사진 SBS에서>

기독교는 어떤가?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을 부르짖으면서도, 근대 세계사의 절반을 피로 물들이고 지금도 그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서기 1096년부터 시작, 무려 200년동안 계속된 십자군 전쟁이 그렇고 이스람권 문화와 기독교 문화 간의 충돌은 지금도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보복이라는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문제를 말하려면 ‘신(神)이란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BC. 6c 이후 그리이스의 자연철학 이래로 모든 철학의 가장 첫 물음은 ‘세상(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였다. ‘물질과 정신 중 무엇이 근원적인가?’ 이것이 신학을 비롯한 철학의 근본문제요 사물을 보는 관점의 차이다. 이 질문에 대해 ‘물질은 정신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 한다‘고 보는 유물론과 ’물질은 정신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론으로 나뉘어 진다. 유물론에서 보면 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관념론에서는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물철학에서는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관념철학에서는 신이나 영혼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유물론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스탈린은 ‘물질, 자연, 존재는 의식 외부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고, 물질은 감각, 표상, 의식의 원천이므로, 물질이야말로 제 1차적인 것이다. 의식은 물질의 반영이고 존재의 반영이므로 2차적인 것이고 파생적인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신이나 영혼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관념론이 아니면 종교란 존재할 수가 없다.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종교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현세구복적인 종교였다면, 서양의 기독교는 내세 지향적이다. 불교가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한 고행의 과정’이라면 기독교는 우주의 창조주요, 전지전능의 신을 믿고 따르는 유신론의 입장에 선다. 공통점이 있다면 불교에서는 제화갈라보살(과거불), 석가모니불(현세불), 미륵불(미래불)이 존재하는데 반해 기독교는 성부인 야훼와 성자인 예수와 성신인 성령이라는 절대적인 신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일까? 아니 불교가 무소유의 사상이라면 기독교는 공유사상의 차이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부처님이나 예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른다는 이들이 부처님과 예수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승불교의 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에는 ‘색즉시공.공즉시색,일체유심조‘라고 말이 있다. ’색(空)과 공(空)이 다르지 않고 공과 색이 다르지 않아,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空)인데 소유를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서로 많이 가지려는 불자는 부처의 제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지향하는 세계 천국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의 이상과 닮았는데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부인하고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 세계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외피는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다른 형식으로 남아 있지만 교의는 실종되고 없다. 무소유를 지향하고 보시를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교가 그 많은 재산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것은 불교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또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라’는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으니 ‘교회 안에만 예수가 없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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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농민이 똑같이 한 달 동안 일했는데 소득의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가끔 뚱딴지같은 이런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곤 했다.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럼 먹지 않고 살 사람도 있나?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 백성들은 뭘 먹고 살지?” 똑같이 가치를 생산하는데 왜 의사가 생산하는 가치는 크고 농부가 생산한 가치는 적을까?”

“의사들은 농부보다 공부를 더 많이 했잖아요?”

“그럼 대학졸업자가 현장 노동자로 일하면 왜 임금이 적을까?”

“.........?????”

 

학생들은 말이 없다.

한번은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성명서가 발표됐기에 이런 얘기를 한 일이 있다.

“모든 폭력은 악인가?”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으로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윤봉길의사나 안중근 의사는 폭력을 행사했는데 왜 애국자라고 하지?”

“4.19는 학생들이 경찰서에 불도 지르고 했는데 왜 ‘폭도’가 아니고 ‘혁명’이지?”

“그건 특수한 경우잖아요?”

“그럴까? 특수한 경우는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모든 폭력은 악이 아닐 수도 있겠네?”

“.......”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에는 ‘사회·문화현상의 탐구’라는 단원이 있다. 이 단원에는 사회를 보는 시각을 길러주기 위해 ‘기능론과 갈등론’이라는 소단원이 있다. 기능론으로 보는 세상은 ‘사회의 유지와 존속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사회유기체설)’을 사회·문화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갈등이론에서는 사회란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 집단 간에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계급의 관점에서 사회를 이해하지 않으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준이 없는 관점은 혼란의 연속이다. 노사간의 갈등, 빈부갈등과 같은 문제는 ‘사회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보기 때문에 ‘본질’을 볼 수 없다. 갈등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회문제는 ‘현상과 본질, 부분과 전체, 보편과 특수, 필연과 우연, 원인과 결과’ 의 관계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운명론이나 결정론적 세계관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세계관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기득권 세력이요, 지배계급이다.

유기체설라는 거울로 세상을 보면 노동자는 노동자의 역할을... 자본가는 자본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부자가 자본가의 영역을 넘보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 된다는 말이다.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관념철학과 유물철학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기능론의 외피를 쓴 관념철학은 자본가의 시각을, 갈등론이라는 외피를 쓴 유물론 중 어떤 것이 세상을 보는 안경이라고 하지 않고 방황하게 만든다.

‘상위 소득수준 20%가 지출한 월평균 사교육비는 32만1천253원이요, 하위 20%의 지출액 4만6천240원의 6.9배다.’

‘2인 이상 도시근로자가구 중 대학을 졸업한 가구주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지난해 346만1천원으로 전년보다 21만원 증가한 반면 고졸 학력을 가진 가구주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233만5천원으로 전년보다 7만7천원 늘었다.’

‘지역별로도 서울의 1인당 월 사교육비가 29만6천 원으로 읍면 지역(12만5천 원)의 2.4배에 달했다....’

‘교육을 통한 사회경제적인 대물림!’ 기능론에서 이러한 현상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사람의 눈에는 현상만 보인다. 게으른 사람인지 정직한 사람인지, 신의가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겉으로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다. 사회·문화현상도 겉만 보인다. 소득의 양극화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 되는 현상을 운명론적인 시각(결정론적인 세계관)으로 혹은 기능론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불평등’은 하느님의 뜻이 된다. 총체적인 관점, 상대주의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 한 사시(斜視)의 한계를 벗어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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