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2018.02.12 06:58


우리도 세금 좀 많이 냅시다혹 이런 소리 했다가 몰매를 맞을지 모르지만 조세부담율이 높다고 국민들이 반드시 못살거나 불행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내는 세금은 전체 소득의 약 20%정도다. 100만원을 벌면 20만원의 세금을 낸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세부담율이라고 하니까 납세자와 담세자가 동일한 직접세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동네 문방구에서 사는 학용품 하나, 심지어 마트에서 사는 아이들 과자류에 까지 세금(간접세)을 물고 있다는 사실을 계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한국경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게 돈이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는 돈이 주인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온다.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개인이나 가정뿐만 아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살림살이를 규모있게 하는 가정은 부채 없이 흑자운영을 하는 가정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e-나라지표'에 고시된 2018210일 기준 국가채무는 6715784억원으로 국민 한 사람이 13006200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채무는 해마다 약 8.29씩 증가해 왔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2021년에 9335천억원, 2022년에는 111조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민들이 1년간 살림살이를 하라고 내놓은 세금이 올해 4007000억원으로 지난해 3864000억원보다 3.7% 늘어났다. 이 돈으로 정부가 공무원 월급도 주고 나라를 지킬 국방비와 보건·복지, SOC와 산업, 외교, 통상, 통일, 문화...등 살림을 맡아 살게 된다. 이런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이 내는 세금 즉 조세 부담률은 18.5%(2015년기준). 정부는 지금까지 나라의 주인이 낸 세금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었을까? 세금을 적게 내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덴마크의 경우는 조세부담율이 49.5%, 아이슬란드 35.2%에 비하면 우리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낮은 편이다.

조세부담율이 아무리 높아도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느가에 따라 국민들의 삶의 질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박근혜전대통령은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라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국민들을 속여 왔지만 어떤 세금을 줄이느냐를 감추고 국민들을 기만해 대통령이 됐다. 그가 줄이겠다는 세금은 서민의 세금이 아니라 재벌이 내는 법인세를 줄이겠다는 친부자정책이었다. 이명박은 후안무치하게도 부자플렌들리라는 친부자정책으로 노골적으로 재벌이 내야할 세금을 서민들에게 떠넘기는 파렴치한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 덴마크 같은 나라는 자기 소득의 거의 반이나 세금으로 내지만 덴마크는 국민들이 불평하기는커녕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을 어떻게 운영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국민들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도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운명론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일부는 맞지만 틀린 말이다. 지난 백남기 농민이 쌀 수매가를 올려달라고 시위를 하다 경차의 물대포에 맞아 사망하는 참사를 겪기도 했지만 농민의 삶은 농산물 가격 쌀의 수매가나 농산물 가격 여부에 다라 혹은 유가변동을 비롯해 비료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공산품도 정부의 조세정책이나 원자재 가격, F·T·A, 은행의 이자율...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유불 리가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물가정책을 비롯한 정책이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다라 국민들의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도 문재인정부 출범 후 아파트 규제정책으로 건설업체는 울상이지만 아직은 속단을 내리기는 이르지만 집 없는 서민들은 내 집을 마련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조세정책 하나만 봐도 그렇다. 전술한바와 같이 세율이 그렇고 예산을 집행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어떤 직업의 국민들이 더 유리해 질수도 있고 불리해 질수도 있다. 대통령이 누군가 어떤 철학을 가진 사람인가, ·도지사가 어떤 철학을 가진 사람인가의 여부에 따라... 혹은 정부를 견제할 국회의원이나 시·도의회의원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국민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중요한 정부의 인적구성을 좌우 하는 것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정치의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국민의 수준, 즉 정치의식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 그것은 오는 6월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붙이겠다는 개헌이 그것이다. 개헌이란 우리가 살 집이다. 어떤 재료로 어떤 방향에 가구며 집기의 재료를 어떤 것을 사용하는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집을 짓는데 공사인부들에게 맡겨놓는 주인이 어디 있는가? 자신이 살 집을 마련하는데 구경꾼인 사람은 주인이 아니다. 개헌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서야 어떻게 주권을 가진 국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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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7.11.11 06:30


사랑하는 친우(親友),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18] 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죽어간 사람 그것도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뜨겁게 산화해 간 노동자 전태일 열사가 마지막 남긴 유서다. 요즈음 사람들, 아니 오늘을 사는 노동자들에게 전태일을 아는가?’라고 물어 보면 아마 전태일이 누군데?’ 하며 반문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평화시장에서 16살부터 시다로 시작해서 재단사가 되기까지 6년여를 일하다가 19701113일 스물 둘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살라 죽은 사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면서 세상을 향해 한 송이 불꽃이 되어 죽어간 사람이 전태일 열사다.


옛사람들은 말한다. ‘이 설음 저 설음 다 겪어보아도 굶는 설음만한 것이 없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이런 소리 하면 은행에 가서 찾으면 되지...?’라거나 아니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지 않나...?’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196~70년대는 정말 배고픈 시절이었다. 허기진 창자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먹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당시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바램이요,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한 자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


한 달 월급은 15백 원이었다. 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 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 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짜장면 한 그릇 값이 오십 원이었던 시절, 전태일같은 노동자들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짐승처럼 일해 받는 품삯이 달랑 오십 원이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예같은 아니 짐승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당시의 노동자들의 삶의 전부였다. 거짓말 같은 이런 현실 앞에 그것도 주인 맘에 들지 않으면 당장 그만 두어야 했다. 한 달에 두 번, 첫째와 셋째 일요일만 놀고 나머지는 점심시간에 30분을 제외하고는 햇볕도 안 드는 다락방에서 꼼짝없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탄원서는 탄원서라기보다 오히려 절규었다. 노동운동을 하면 빨갱이 취급받던 시절 그는 어렵게 재단사가 되었지만 열서너살 어린 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짐승처럼 사는 모습을 보다 못해 박정희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쓰기도 하고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모든게 허사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차비로 굶주리는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한시간도 넘는 집으로 걸어 다니기도 했던 사람... 전태일.


그가 떠나고 난후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내탓이요를 외치며 노동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며 피맺힌 절규를 한지 반세기기 다가오고 있지만 현실은 어떤가? 오늘날 노동자들은 전태일열사가 바라던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약자도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 197011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9월 한국회관(음식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아직도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은 감옥에 있다.


노조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도 정책적으로 노력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새 정부 중요한 국정목표 중 하나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조 조직률을 높여가겠다는 것이다. 전태일열사의 분신 후 반세기. 이제 노동자도 사람 대접받는 세상.... 약자를 배려하는 세상이 열릴까? 노동자들의 삶이 질이 1970년 당시보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태일열사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세상을 향해 외친 마지막 절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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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논어<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느날 자공이란 사람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어진가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말입니까?”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이렇게 과유불급은 공자의 대답에서 유래한 말로, 지나게 욕심을 부리면 애써서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명예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 스포츠동아>


음식을 필요이상 많이 먹는 것을 과식이라고 합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을 탐욕이라고 하고요. 공부도 무조건 많이 배우기만하면 좋을까요? 공부도 과목에 따라 배워야할 때가 있다. 자신의 소질과 특기를 무시하고 무조건 어릴 때부터 많이 만 배우면 좋을까요?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는 사람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관념적인 공부는 마치 소화가 안 되는 음식처럼 기형적인 인간을 길러냅니다. 오늘날 입으로는 만리장성을 쌓는 영혼 없는 지식인들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 있는가 하면 필요 없는 지식도 많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필요한 지식만 가르치고 있을까요? 교육이란 미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예비 사회화과정입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살아 갈 세상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가르칠까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보듯 우리는 지금 천지개벽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지식, 현재의 직업 그리고 음식문화에서부터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변화를 예상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꼭 필요한 게 있고 몰라도 불편 없는 지식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절실할 것 같지만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가 되고 말 지식도 수두룩합니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배워야 되는 것도 있고, 안 배워도 불편하지 않은 지식도 많습니다. 무엇이 가장 절실아게 배워야할 것인지는 학교가 판단하고 선택해야할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알파고 시대에 지식기반사회에나 필요한 지식을 암기시켜 한 줄로 세우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의 청소년들이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으로 키워 수 있을까요?

자기수준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삶의 질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수준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교육을 보십시오. 유럽의 교육선진국들은 교육이란 필요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공공재로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교육을 상품이라고 봅니다. 교육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내놓으면 어떤 사람들이 구매할까요? 상품이란 수요자의 구매능력에 따라 상품의 질이 달라집니다. 능력이 있는 수요자는 고급상품을, 능력이 없는 수요자는 저질 상품을 구매하기 마련입니다.


<이미지 출처 : 한겨레신문>


어머니의 자녀 사랑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가르쳐 남들에게 못지않은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부모의 마음이 누군들 다르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들의 소질이나 취미조차 무시하고 다가올 미래가 어떤 세상으로 바뀔 것인지도 예상 못하고 닥치는대로 많이만 가르치면 기대하는 사람으로 자라날까요? 국어, 영어, 수학, 미술, 무용, 피아노, 한자, 음악, 태권도, 수영, 마술, .. 등등 방과후학교 과목이라는 과목은 모조리 섭렵하면 엄마가 원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요?  

새벽 230분에 잠들어 아침 7시에 깨어나기. 오전 8시에 등교해서 오후 3시 하교. 3시간 더 영어학원에서 공부하고 저녁식사. 10시까지 수학학원. 집에 돌아와서는 새벽 230분까지 영어·수학학원 숙제에 피아노, 한자, 중국어 공부.’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이 조사한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직접 그린, 둥근 돈가스 접시 크기의 일과표에는 잠자는 시간이 4시간30분에 불과했습니다. 카페인 음료를 마셔가며 하루 ‘3시간만 자는..’ 아이들은 바르게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그들이 배우는 지식이 앞으로 5, 10년 후에도 과연 필요할까요? 사랑과 학대를 구별 못하는 엄마들의 사랑이 아이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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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5.11.18 06:59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내 의지가, 내가 일고 있는 것, 내 뜻이, 내 주관대로 움직이고 행동에 옮겨지고 있을까요?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배운 것들은 모두가 진실일까요? 내 뜻과 다르게 누군가의 생각과 의지가 나도 모르게 내 뜻이 되고 내 삶의 지침이 되어 내가 남의 주장에 광대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화가 기준도 원칙도 원칙도 없이 상업주의에 억매여 내 삶을 옭죄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 : 불교신문>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니계수니 상대적 빈곤율이니...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의 질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지금 우리네 서민들이 삶은 하루가 다르게 척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 연간 노동시간 2079시간으로 OECD국가의 2위로 평균보다 300시간 많고 비정규직 비율은 OECD 평균의 2배라고 합니다. 노인빈곤율이 45%로 세계 1위요, 노인 자살율도 1위, 전체 자살율도 OECD국가 중 1위랍니다. 그런데 TV를 켜면 공주파들은 1인당 GNP가 어떠니 OECD국가 중 몇 번 째 잘 사는 나라라며 떠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수치가 피부로 와 닿지 않을까요?


내가 누구일까요? 내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나의 힘만으로 가능할까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이웃의 땀과 희생 그리고 생명이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먹은 쌀이며 채소나 반찬들이 그냥 생긴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름 내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 하나하나를 맺기까지 얼마나 힘든 노력과 정성을 쏟았겠습니까?


농부의 수고가 어부의 땀과 노력이 없었다는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을까요? 계란 하나, 멸치 한 마리, 돼지고기...등 그 많은 뭇 생명들이 나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희생했음에 우리는 감사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준 결과로 내 생명이 살아 있고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오늘 내가 숨 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자연의 위대한 결실이 내 몸속에 찾아 온 덕분이 아닐까요? 물과 공기가 그렇게 햇볕이 그렇고 새소리 바람소리 그 너느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몇 살 더 먹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루가 다르게 시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지지만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 생각 못했던 살아 있다는 뜻을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숨 쉬고 살아 있다는 게 내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내 생명을 있게 해준 부모가 그렇고, 내가 입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이며 말하고 듣고 쓰고 하는 문화가 그렇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수고와 피와 땀과 노력이 있었겠습니까?


세상에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그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말하고 웃고 행복을 느끼며 누리는 일상이 모든 것들은 의미 없이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생명과 땀과 노력의 결실이며 자연이 내게 베풀어 준 은혜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인간이 세상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혼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더불어 나누고 서로 믿고 도울 때 비로소 삶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입은 은혜에 감사하며 서로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연의 고마움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게 생명을 베풀어진 햇볕과 공기와 물과 이름 모르는 풀과 꽃들에게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연이 나를 위해 존재하다고 착각하고 오만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원리는 그런 것이 아닌데, 인간중심의 세계관은 그런 오만한 단정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나우뉴스>


성서에 이르기를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진 빚을 갚지 못하면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는게지요. 자연이 내게 준 은혜. 이웃이 준 고마움, 내 생명을 있게 하기 위해 희생된 이름 모르는 뭇생명들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 무엇일까요?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 줘야할 의무, 그들이 흘린 땀과 피와 노력을 갚을 수 있는 길은 그들이 못다한 일을 대신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웃음도 나누고 지식도 나누고 사랑도 나무면서 살아야 하는 게 사람이 가야할 길이요, 해야할 책무가 아닐까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살아 갈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바빠도 오늘 하루 쯤은 나를 한번 쯤 뒤돌아봅시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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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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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5.03.01 07:00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때 아닌 '태극기 사랑' 바람이 불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핵심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이런 가사가 있지 않느냐"며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부터다.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라를 사랑하자는 대통령이 이 말이 왜 네티즌들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까? 박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을 인용해 나라사랑을 강조한 말에서 70년대 새마을운동의 그림자를 본다. 박대통령의 이 말한마디로 1999년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지된 민간 건물에 국기 게양대 설치를 의무화하고 주택 신증축 때 국기꽂이 설치 여부를 확인한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아파트 각 동 출입구에 태극기를 걸 수 있도록 하고 관리 비용을 아파트 관리비에서 지출할 수 있도록 한다....

 

학생들은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게양한 뒤 인증샷을 찍어 학교에 제출하고 일기와 소감문 등을 발표한다. 유치원생도 국기 교육을 받고, 각 교실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지 등도 점검된다. 국기 게양·강하식도 실시된다... 

 

대통령의 애국가 발언 후 행정안전부의 나라사랑 계획이다. 이런 계획대로 온 나라에 태극기 물결치는 사회가 되민 모든 국민이 행복한 세상이 될까?   

 

유신 독재시절, 교련시간에는 여학생들까지 총검술에 재식훈련, 화생방 훈련까지.... 학교별 교련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군사문화를 보급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통행금지, 두발단속도 모자라 학교까지 병영화하면 애국심이 살아날까? 태극기게양교육으로 국수주의 교육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상에 번득이는 유신의 그림자가 보인다. 숨막히던 유신시대를 살았던 나의 과민한 반응 때문일까? 

 

학교가 길러내야 할 인간상은 시대착오적인 국수주의 인간이 아니다. 학교가 길러내야할 인간은 자주적인 능력을 갖춘 민주시민이다. 민주시민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태도,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의 태도와 주인 의식, 관용의 정신,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태도, 공동체 의식을 갖춘 인간이다. 이런 사람들은 최소한 합리적 사고대화와 토론 과정의 중시’, ‘관용정신’, ‘양보와 타협’, ‘다수결에 의한 의사 결정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춘 사람이다.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면서 의무를 다하고, 공공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책임 있게 활동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어떻게 유신교육의 잔재인 애국이라는 형식과 관념으로 길러낼 수 있겠는가? 어린 학생들까지 금요일마다 군대식 ‘국기 하강식’에 동원되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과을 위해 몸고  마음을 바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기해 고취하려 했던 게 진정한 애국심일까?

 

그런 인간을 길러놓으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진정한 나라사랑이란 나라를 국기의 물결로 덮어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신의 삶에 보람과 긍지를 누리는 민주시민일 때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보화시대, 세계화시대, 한 여름밤의 꿈에서 깨어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애국심 강조보다 더 시급한 일이 아니겠는가?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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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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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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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4.07.23 06:30


‘먹기 위해 사는 가? 살기 위해 먹는가?’

 

한 때 이런 말이 유행됐던 일이 있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자조적인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한 때 한 대학생이 꺼낸 화두 ‘안녕하십니까?’가 유행처럼 번졌던 일이 있다. 삶의 질을 말하고 복지를 말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 온 사람들... 그 쫓기듯이 살아 온 사람들이 그 말 한 마디에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는 너도 나도 안녕하지 못한 삶에 공감하며 허탈해 했던 일이 있다.

 

 

 

주객전도라고 했던가....?!

먹거리, 숨 쉴 공기, 마실 물..... 어느 것 하나 깨끗하고 온전한 게 없다. 매연과 소음으로 도시는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공간 속에 사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쫓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상업화로 대대로 살던 고향을 버리고 너도 나도 도시로 몰려들어 잘 살아보자고 혼신의 노력을 쏟았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들 일했지만 그 결과 그들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치를 코미디로 만들고 있는 정치인들의 후안무치한 정치 쇼,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앗아 가는 양극화사회,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사회 구속구석의 비명소리, 살인, 방화, 사기... 등 차마 순진한 아이들 보기 부끄러운 민망한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더 추악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더 이상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환경문제, 양극호문제, 교육문제, 종교문제, 노인문제 등등...

 

가난하지만 서로가 믿고 도우며 의지하고 살던 때도 있었다. 강대국의 이해다툼 때문에 동족간의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긴 전쟁을 치르고... 그랬으면 이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가자고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아가야할 텐데... 권력욕에 눈이 어두운 세력들은 민족의 비극을 이데올로기로 이용, 순진한 국민들을 속이고 짓밟고 수탈했다. 자신들은 이용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가해자편에 서서 서로가 미워하고 헐뜯는 참혹한 이전투구가 계속됐다.

 

경제를 살린다고 하고, 혹은 정의를 말하고,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세상은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조금만 참으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온갖 미시여구로 달래고 다독였지만 그런 세상은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우리 앞에는 힘의 논리 장사꾼의 이윤추구가 절대 절명의 진리가 되고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밟고 이겨야만 살아남는다는 삭막한 경쟁논리가 진리가 됐다.

 

겉으로 보면 참 화려한 세상이다.

 

돈만 있으면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못 할 게 없다. 문화발전이라는 이름으로 , 성장이니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겉보기는 참으로 화려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뜨고 들여다보면 그 화려한 문화 속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더 즐기고, 더 편하고, 더 많이, 나만 좋으면, 내게 이익만 된다면...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만들고 있는 세상은 모두를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조미료로, 발색제로, 방부제로 유전자변형으로... 그렇게 다듬고 만든 상품으로 세상은 승자 독식사회로, 외모지상주의로 이익지상주의로, 스펙을 쌓고 그 껍데기가 인격이 되고, 참이 되고, 진실이 되고... 그래서 속고 속히고...

 

가난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사회, 수단과 방법을 기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 사람이 존경받고 대접받는 사회.... 민족을 배신하든 법을 어기든, 동지를 배신하든, 소비자를 기만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 유명인사가 되고 존경받는 세상은 막가파세상이다.

 

믿음이 사라진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불신이 판을 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물도 공기도 먹거리도 오염돼 껍데기만 화려하게 포장된 사회에서 삶의 질이나 행복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순수한 사람들이 바보 취급당하고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 복지를 말하는 것은 기만이요, 사기다. 사람이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사회에 어떻게 국민행복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4.03.11 06:57


"국민 건강과 생활에 밀접한 분야에서 국민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해 피해를 끼치는 행위는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최근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행동 움직임이 있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앞으로 정부는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대화엔 적극 임하겠지만, 비정상적인 집단적 이익 추구나 명분 없는 반대,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묻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미지 출처 : 처와대 홈페이지에서>

 

지난 6일, 박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의료민영화의 시각도 그렇다. 그는 "서비스산업 육성은 내수 활성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투자의 가장 큰 장벽인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보건의료분야 등 이른바 5대 유망 서비스산업 분야 육성을 위해 관련분야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박대통령이 말하는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국민은 누구일까?

 

의료시장을 개방하면 정말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원격의료의 추진에 이어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을 허용을 추진이 영리법인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사협회의 주장이 정말 '비정상적인 집단적 이익 추구나 명분 없는 반대,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 일까? 의사들의 파업이 정말 '국민을 볼모로 하는 집단행동으로 국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일까? 의료민영화를 하는 게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레프트 21>

 

의료민영화란 ‘보건의료체계를 국민의 건강권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닌 자본의 진출이 용이하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철폐해 의료체계를 시장화 함으로써 자본이 수익창출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일련의 정책’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보건의료체계를 자본의 새로운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만들려는 정책'이다. 정부는 ‘원격의료’니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허용’이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예를 들어 보자.

 

보건복지부의 발표를 보면 원격진료 대상자는 전체 870만명, 이들이 원격의료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가 구매한다면, 하나당 80만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무려 6조가 넘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닌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이다.

 

‘자본은 의료기관의 설립과 소유를 할 뿐이지, 자본이 직접 진료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변할지 몰라도 ‘이윤창출’이라는 자본의 목적을 충족시켜줄 의료 민영화는 환자에게 더 많은 진료비를 부과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보다 많은 진료비를 부담ㅎ야 하는 환자는 국민이 아닌가?  

 

<이미지 출처 : 노동과 세계>

 

민영화가 불러 올 결과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얼마나 황폐화  시켜놓았는지는 국내에 소개된 수많은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영리병원의 원조인 미국이나 태국 등에서는 영리병원이 돈을 잘 벌어들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공 병원에 비해 민간 영리병원의 질이 월등하게 높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가격이 엄청나게 비쌀 뿐만 아니라 공공 병원의 유능한 인력들이 자꾸 빠져나가 서민들이 체감하는 의료서비스 질은 전체적으로 나빠졌다는 것이 태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의료 민영화는 개별 병원들은 수익이 늘어나 좋을지 모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의료비 증가와 국민 건강 수준이 악화된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이미지 출처 : 레프트 21>

 

사실이 이러함에도 '내수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정책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고 싶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그 국민은 서민들이 아닌 재벌과 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책이 아닌가? 말로는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니 복지증진을 주장하면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철도와 교육, 의료민영화 등 5대 유망 서비스산업 분야 육성이란 자본의 이익,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이 아닌가?

 

재벌과 대자본에게는 특혜를, 서민에게는 의료비 폭등과 의료서비스 저하를 가져올 의료민영화는 중단해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투자활성화대책은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돼 있는 의료법인이 영리자회사를 설립해 영리행위를 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영리자회사가 수행하는 영리사업의 허용범위를 환자편의를 위한 부대사업을 넘어 의료재료 및 의료기기 구매, 호텔사업과 온천사업, 건강보조식품 및 화장품 판매 등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든 의료부문의 사업까지 확장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한 만큼, 그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 유엔 ‘세계인권선언’에 명시하고 있는 규약이다. 의료는 국민들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다. 국민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을 무시하고 어떻게 국민 삶의 질을 말할 수 있겠는가? 박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겠다면 국민을 기만하는 투자활성화대책은 원점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

 

관련 글 보기 ☞

의료 수가 올려주는 대신 민영화하겠다...?

영리병원 찬성 박근혜, 서민복지 말할 자격 있나?

한미 FTA는 의료 민영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3.24 07:00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똑 같이 한평생을 살다 가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한목숨 잘 먹고 잘 입고 즐기다 마치는 인생도 있고 일류에게 큰 사랑과 빛을 남기고 가는 삶도 있다. 같은 시간에 일을 해도 효용성이 큰 상품,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많은 노동력을 투자해도 돈이 되지 않는 상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노동의 질이나 삶의 질이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 삶의 질 평가>

 

삶의 질에 따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보자.

 

첫 번째로 보호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영아나 유아들 또는 나이가 너무 많거나 병이 든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의와 무관하게 살아야 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논외로 덮어두자.

 

둘째 자기 자신의 문제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중심적인 사고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심한 경우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권력에 편승해 치부를 하거나 민중의 눈을 감긴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의 비위를 맞추거나 상사에게 아부해 출세하는 것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한다. 역사의 왜곡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나타난다. 소수의 욕망을 채워주는 대신 역사는 질곡으로 치닫고 다수의 약자들은 엄청남 고통을 치러야 한다.

 

셋째 불우한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다. 인정이 많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사업이나 이웃을 위한 봉사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손해를 입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

이런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 구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동정심이 깊어 이들을 도울 생각은 하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든지 구조적인 모순에 의해 나타나는 구제의 대상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은 모른다. 사회의식이 없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스스로 한 행위에 대해 위로를 받으며 만족해한다.

 

 

넷째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이치를 이해하는 사람.

 

이런 류의 사람들은 몇 몇 사람의 동정이나 자선보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이들을 일컬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자. 이들은 주로 농민운동이나 노동운동, 교육운동 환경운동과 같은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한다. 물론 이러한 단체에 소속됐다고 해서 다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사회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사람,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람, 끝없는 자기희생과 봉사로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제 잘난 멋에 산다'고 했던가?

 

그러나 다같이 1백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똑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불꽃같은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사람도 있고 1백년 가까이 살면서 남에게 해악을 끼치며 손가락질 받으면서 산 사람도 있다. 세상분별 못하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의식을 갖고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도 있다. 불행한 사람은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산 사람이 아니라 모르면서 아는 채 고집불통으로 산 사람이 아닐까?

 

내세가 없는데 평생 죽은 후의 세상을 준비하다 일생을 마친 사람이 있다면 이 보다 더 억울한 삶이 있겠는가? 자신이 금과옥조로 알고 있던 지식이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면 이보다 더 비참할 수가 없다. 보람 있는 산다는 것은 어떤떻게 사는 것일까? 한 번뿐인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 없는 삶, 보람 있는 인생을 산 사람들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안녕하세요?

불친님들과 구독자님들 덕분에 제가 운영하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단법인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서울시가 후원하는 제 4회 2013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부문에 문화/예술 부문 Top100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는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심사 및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옆의 주소로 가셔서 투표 부탁드립니다.    http://snsawards.com/iblog/vote2012_0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7.07 05:00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똑 같이 한평생을 살다 가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한목숨 잘 먹고 잘 입고 즐기다 마치는 인생도 있고 일류에게 큰  사랑과 빛을 남기고 가는 삶도 있다.

같은 시간에 일을 해도 효용성이 큰 상품,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많은 노동력을 투자해도 돈이 되지 않는 상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노동의 질이나 삶의 질이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삶의 질에 따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보자.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첫 번째로 보호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영아나 유아들 또는 나이가 너무 많거나 병이 든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의와 무관하게 살아야 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논외로 덮어두자.


둘째 자기 자신의 문제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심한 경우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권력에 편승해 치부를 하거나 민중의 눈을 감긴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의 비위를 맞추거나 상사에게 아부해 출세하는 것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한다. 역사의 왜곡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나타난다. 소수의 욕망을 채워주는 대신 역사는 질곡으로 치닫고 다수의 약자들은 엄청남 고통을 치러야 한다.

셋째 불우한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다. 인정이 많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사업이나 이웃을 위한 봉사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손해를 입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 구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동정심이 깊어 이들을 도울 생각은 하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든지 구조적인 모순에 의해 나타나는 구제의 대상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은 모른다. 사회의식이 없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스스로 한 행위에 대해 위로를 받으며 만족해한다.

넷째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이치를 아는 사람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몇 몇 사람의 동정이나 자선보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이들을 일컬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자.

이들은 주로 농민운동이나 노동운동, 교육운동 환경운동과 같은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한다. 물론 이러한 단체에 소속됐다고 해서 다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사회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사람,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람, 끝없는 자기희생과 봉사로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제 잘난 멋에 산다'고 했던가? 그러나 다같이 1백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똑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불꽃같은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사람도 있고 1백년 가까이 살면서 남 못살게 굴며 손가락질 받으면서 산 사람도 있다.

세상분별 못하고 시비를 구별하지 못하고 살다 간 사람도 있고 사회의식에 눈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앉을 자리 누울 자리 알아 보람 있는 삶을 산 사람도 있다. 정말 불행한 사람은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산 사람이 아니라 모르면서 아는 채 고집불통으로 산 사람들이다.

만약 다음 세상이 없는데 이 세상을 포기하고 죽은 후의 세상을 준비하다 일생을 마쳤다면 이 보다 더 억울한 일이 있겠는가? 자신이 금과옥조로 믿고 알던 지식이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면 이보다 더 비참할 수가 없다. 진실로 보람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한 번뿐인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 없는 삶, 보람 있는 인생을 산 사람들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6.27 05:00



사람이 태어나서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혼자서 자라면 어떤 모습이 될까? 당연히 사람 짓을 할 수 없는 망나니가 되고 말 것이다. 한 인격체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배우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걸 사회학에서는 ‘사회화’라고 한다. 인간으로서 사회화하면 인간이 되고 동물로서 사회화하면 동물이 되는 것이다.

학교가 무너졌다고 야단이다. 교육학을 했다는 학자님들, 평생을 교육을 한다는 교육자들,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교육 관료들... 무너진 교육을 살리겠다고 온갖 이론을 개발하고 도입하고, 시범학교, 연구학교를 만들고 법석을 떠는 연구자들... 그 많은 전문가들이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공들이는 교육, 그런 학교는 아직도 살아날 가능성을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교육이 무너지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란 간단하다. 가르치지 않는데... 배우지도 않는데 어떻게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아니 가르치기는 가르치는데 사회적인 존재인 개인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고 있는데 교육이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가정은 어떤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부모와 대화시간조차 없이 새벽같이 등교해 12시가 가까워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 자녀와 대화조차 단절된 가정에서 어떻게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배울 수 있는가?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청소년 자녀를 둔 전국의 2,5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아버지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답한 청소년은 33.5%, "어머니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말한 자녀는 11.7%(YTN)나 된다. 가정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구성원들 간에 만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상호작용이 없는 가정은 생물학적인 욕구충족의 기능 외에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인 존재로 자라야할 아이들이 가족간의 대화시간이며 놀이문화까지 빼앗겨 학원으로 또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학교나 학원에만 많이 다니면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는가? 학원이나 학교는 유능한 개인. 개인적인 능력을 길러 줄뿐 사회적인 존재로서 역할을 가르치지 않는다.

사회는 어떤가? 가정이나 학교 밖을 한 발 짝만 나가도 만화방이며 오락실, 게임방이 기다리고 있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버스에서, 시장에서, 관공서에서, 도서실에서... 눈에 보이는 것, 만나는 게 모두가 교육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인 배려를 하는 곳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청소년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상업주의가 시퍼렇게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회적인 존재로서 개인이 할 일을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교육은 더불어 살아가는 역할이나 공존의 윤리를 가르치지 않고 경쟁 속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길,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바이벌 식 경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천국에 못갈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가야할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승자가 아니면 모두가 패자가 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만 가르쳐 승자만이 살아남도록 가르치는 사회에서 교육의 위기는 사필귀정이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화는 가정에서 맡아야 한다. 다음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학교에서 옳은 일이 사회에서 틀리면 학교교육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피교육자로 하여금 이중인격자로 만든다.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 시부모의 역할을 모르는데 어떻게 훌륭한 아내 훌륭한 시어머니가 될 수 있겠는가? 성인교육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한 청소년기의 지식으로 평생 동안 살아가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비싼 가구들만 잔뜩 모아 두었다고 살기 좋은 집이 아니듯, 판단의 기준(철학)이 없는 지식만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없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수십년 전의 지식으로 변화에 적응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목적이 없는 경쟁이 공허하듯 시험을 위해 준비한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폐기 처분해야할 대상이다.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는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학교가 가정이나 사회와 괴리된 곳으로 남아 있는 한 학교의 위기를 극복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격변하는 사회에서는 가정과 학교와 지역 사회와 메스 미디어가 함께 하는 교육, 교육 대상자가 어린이와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들도 교육으로 대상으로 하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 때다. 교육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상업논리의 대상이 된 피해자들에게 삶의 길을 안내해주지 못하는 교육은 피교육자로 하여금 피해자가 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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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잘난 멋에 산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똑 같이 한평생을 살다 가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한목숨 잘먹고 잘입고 즐기다 마치는 인생도 있고 일류에게 큰  사랑과 희망을 남기고 마치는 삶도 있다.
 
같은 시간에 일을 해도 효용성이 큰 상품,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많은 노동력을 투자해도 돈이 되지 않는 상품을 만들 수도 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노동의 질이나 삶의 질이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삶의 질에 따른 사람들의 모습을 몇 가지로 나눠보자. 

                                                    <사진 : 다음 이비지 검색에서>

첫 번째로 보호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영아나 유아들 또는 나이가 너무 많거나 병이 든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의와 무관하게 살아야 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논외로 덮어두자.

둘째 자기 자신의 문제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심한 경우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권력에 눈이 맞아 치부를 하거나 민중의 눈을 감긴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의 비위를 맞추거나 상사에게 아부해 출세하는 것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한다. 역사의 왜곡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나타난다. 소수의 욕망을 채워주는 대신 역사는 질곡으로 치닫고 다수의 약자들은 엄청남 고통을 치러야 한다. 

셋째 불우한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 주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다. 인정이 많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사업이나 이웃을 위한 봉사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손해를 입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 구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동정심이 깊어 이들을 도울 생각은 하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든지 구조적인 모순에 의해 나타나는 구제의 대상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은 모른다. 사회의식이 없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스스로 한 행위에 대해 위로를 받으며 만족해한다. 

넷째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이치를 아는 사람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몇 몇 사람의 동정이나 자선보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이들을 일컬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자. 이들은 주로 농민운동이나 노동운동, 교육운동 환경운동과 같은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한다. 물론 이러한 단체에 소속됐다고 해서 다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사회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사람,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람, 끝없는 자기희생과 봉사로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제 잘난 멋에 산다'고 했던가? 그러나 다같이 1백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똑 같은 삶일 수 없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불꽃같은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사람도 있고 1백년 가까이 살면서 남 못살게 굴며 손가락질 받으면서 산 사람도 있다.

세상분별 못하고 콩팥을 구별 못하고 살다 간 사람도 있고 사회의식에 눈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앉을 자리 누울 자리 알아 보람 있는 삶을 사람도 있다. 정말 불행한 사람은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산 사람이 아니라 모르면서 아는 채 고집불통으로 산 사람들이다.  만약 다음 세상이 없는데 이 세상을 포기하고 죽은 후의 세상을 준비하다 일생을 마쳤다면 이 보다 더 억울한 일이 있겠는가?

자신이 믿고 알던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면 이보다 더 비참할 수가 없다. 진실로 보람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한 번뿐인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 없는 삶, 보람 있는 인생을 산 사람들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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