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5.01.13 10:28


선생님, 제 아들 때문에 상담을 받아보고 싶어서요. 현재 중학교 1학년 학생인데 말끝마다 욕이고 무슨말인지 통 못알아 들어요. 어려서는 얌전하고 착해서 남을 괴롭히지 않았던 그런 애였는데 초등학교 5학년때쯤부터 친구나 여자동생한테 욕을 막 하더라구요....

 

친구한테 전화가 오면 막 얘기를 하는데 거의가 다 욕이거나 말이 거칠어요. X새끼 왜 그러냐?, 뽕까지마!,당근이지,야 뚜껑열린다, 그 여자애 짱이야 등 저는 애가 제 아들인가 싶어요. 깡패나 쓰는 말 같은 천박하고 저속한 욕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당황스럽고 놀랬어요. 가끔씩 제가 잔소리를 좀하면 못마땅하다는 듯이 x나게 기분 나쁘네! 라며 자기방으로 문을 꽝 닫으며 들어가곤 하는데...”

 

 

<이미지 출처 : 정책공감>

청소년 진흥원 상담 복지센터에 올라 온 어느 학부모의 글이다. 요즈음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다른 나라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아이들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말이 어디 상담신청을 한 이 학부모뿐일까?

 

방가방가, 글쿠낭, 당근이지 짱이야... 이런 말을 할 때만 해도 그런 말이 애교로 들렸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알다듣지도 못하는 은어와 비어 국적불명의 외래어, 욕설, 외국어가 범람해 나이든 사람들은 점점 더 알아듣기 어려워지고 있다.

 

말이란 의사소통의 도구다. 의사전달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옛날부터 그 사람의 인품을 짐작하려면 그 사람의 대화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사람의 인품이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다.

 

'생선'(생일 선물), '문상'(문화상품권),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 '행쇼'(행복하십시오), '먹방'(먹는 방송). '화떡녀(화장을 떡칠한 여자)', '여병추(여기 병신 추가요), '광탈'(빠르게 탈락하다), 'sc'(센 척),'박카스'(잔심부름꾼),'골부인'(게임에 맛을 들인 여성), '납세미'(포커게임에서 자주 잃는 사람).... 이정도면 알아들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 남의 나라에 온 것다.

 

SNS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심각성이 더하다. 심멋(심장이 멎을 정도 기분 좋다.) 개취(개인적 취향) 평친(평생 친구) 점약(점심 약속) 노잼(No+재미=재미없다), 노답(No+=답이 없을 정도 답답함), 존잘(엄청 잘 생겼다), 웃프다(웃을지 슬퍼할지 모르는 상황), 화떡녀(화장 떡칠한 여자), 개드립(엉뚱한 발언을 할때), 깜놀(깜짝 놀라다),,등 끝이 없다.

 

<이미지 출처 : 한글학회>

 

 

은어나 비속어뿐만 아니다. 어떤 언론사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언어실태조사 상대로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9명이 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학교 남학생의 99%, 여학생의 95%가 욕을 한다고 답했다. 고등학생의 경우 남학생 93%, 여학생 97%였는데, 특히 욕을 전혀 하지 않는 여학생은 응답자 116명 가운데 3명뿐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30명 중 욕을 하지 않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여기서 옮겨놓기도 낯 뜨거운 욕설이며 은어, 비속어...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을까?

 

언어란 나라사랑의 척도요, 사회의 사상(事象)의 반영(反影)이다. 민족문화를 사랑하는 국민,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회에서는 자기 나랏말을 홀대하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말의 오염은 이승만독재정권과 친일세력이 만든 정권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친일세력의 미청산은 언어문화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훈민정음이라는 아름다운 나랏말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지만 소중한 우리글을 가꾸고 다듬으려는 노력의 부족으로 만신창이 되어 가고 있다.

 

청소년들이 은어와 비어 그리고 거칠고 막나가는 욕설로 뒤범벅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상업주의와 상급학교진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학교, 꿈이 없는 청소년들의 모순된 사회에 대한 반항의식, 그리고 학벌사회로 인해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지 못하는 모순, 여기다 꿈을 잃은 청소년들이 욕구불만과 좌절 분노가 쌓인 청소년들의 정서가 오염된 언어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만을 두고 언제 국적불명의 외래어와 은어, 속어, 비어로 나랏말을 오염시키고 있는 현실을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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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03 14:12



구약성서 사무엘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성에 두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사람은 부자였고 한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부자에게는 양도 소도 많았지만 가난한 이에게는 품삯으로 얻어 기르는 암컷 새끼양 한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 새끼양을 제 자식들과 함께 키우며 한밥그릇에서 같이 먹이고 잘때는 친딸이나 다를 바 없이 품에 안고 잤습니다.

                                            <다윗을 책망하는 나단선지자>

그런데 하루는 부잣집에 손님이 하나 찾아왔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소나 양을 잡기가 아까와서 그 가난한 집의 새끼양을 빼앗아 대접을 했습니다.'


나단이라는 선지자가 다윗왕에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듣고 있던 다윗왕이 괘심한 생각이 들어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인정머리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 없다, 그 양 한 마리를 네배로 갚게 하리라."
듣고 있던 나단이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권력의 상징이었던 다윗왕은 나단 선지자 앞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소!"하고 회개한다. 다윗왕은 어떤 죄를 지었을까?

다윗은 어느날 밧쎄바라는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고 그녀에게 정욕을 품고 권력을 이용하여 그녀를 취한다. 그녀가 임신을 하자 자기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변방에서 근무하는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불러서 아내와 동침하게 한다. 우리야는 충직한 신하였기 때문에 근무중에 아내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법률을 지켰다.

              <다윗왕이 취한 우리아의 아내 밧쎄바 -다윗과 밧쎄바 사이에서 솔로몬 왕이 태어난다>

다윗은 자신의 불륜을 숨길 수 없게 되자, 우리야를 전방에 보내 죽을 수 밖에 없는 전투에 참여시켜 우리야가 전사한 후 밧쎄바와 혼인한다. 이때 선지자 나난이 나타나 다윗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직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윗에게 아내 밧쎄바를 빼앗기고 위험한 전장에 보내져 죽음을 맞았던 우리아>

'가난한 자의 양을 뺏은 죽일 놈'은 바로 다윗 자신이었던 것이다.
성경이 몇천년을 두고 읽힐 가치가 있는 책이 된 이유는 '믿음의 조상인 다윗왕의 나쁜 점까지도 솔직하게 기록해 두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단의 용기"이다.

오늘날 언론이 해야 할 사명은 바로 이 나단 선지자가 하던 일이 아닐까?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비판의 기능을 잃어버린 언론은 나단과 같은 용기가 필요한 때이지만 약자의 목소리를 내야할 때는 벙어리가 되어 권력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언론뿐 아니다.

지식인은 지금 동면중이다.
소수의 양심적인 지식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독재자의 당근 앞에서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해 왔다. 장시간 근무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허덕이는 노동자들, 뼈 빠지게 일해도 빗만 늘어나는 농민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직장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의 원성을 언제까지 귀를 막고 있는 것이다.

서울민국이 되어 전국을 서열화하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박수를 치고 기득권을 대물림에 서민들 입을 막고 눈을 감기고 있다. 권력이 하사한 당근에 취해 이성도 양심도 잃었다. 성서는 말한다. "너희가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라고...

어른과 아이가 쌈을 하는 것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다.

공평하지 못한 싸움에서 방관자는 강자편이다. 일제시대 젊은 이가 총알받이로 혹은 전신대에 끌려 갈때 그들은 일제의 나팔수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승만 독재시대, 박정희 군사파쇼정권,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시대, 이명박독재정치하에서도 권력의 편에서 서민들의 귀를 막고 반민족, 반민주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나단은 없는가?

다윗왕의 말 한마디면 당장 목이 떨어져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나단은 권력 앞에서 민중의 소리를 전달한다.

위장전입에 탈세에 이중 국적을 가지고 애국자행세를 하는 고위층, 자식을 부정입학시키거나 병역을 기피하고 이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치부하며 온갖 범법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양의 탈을 쓴 이리들.... 그들은 아직도 이 땅의 지도자요, 애국자다.

다윗이 민중(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민중) 앞에 철저한 회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과 밧쎄바는 하느님께 용서받고 지혜의 왕이라 불리는 솔로몬을 낳는다. 증오와 저주의 대상이었던 다윗이 축복을 받은 것이다.  

강자의 회개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일이나 진배없다.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느다고 했다. 구경꾼이 된 국민, 실의와 좌절에 빠진 백성을 도와 줄 신은 없다. 이 땅에 나단이 나타나지 않는 한 민주화도 정의사회도 꿈이다. 침묵의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을 살리고 분단을 깨뜨려 민족통일을 가져오는 것, 그것이 분단시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02 19:12



김종서라는 가수가 머리를 닿아 여자처럼 묶었다고 T.V에 출연을 정지 당한 일이 있었다.
보수적인 남정네들은 '어물전 망신은 꼴두기가 다 시킨다'거니 '사네 자식이...' 어쩌고 하면서 말이 많았다.

남자는 머리를 닿아 묶으면 안될 이유가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를 주장하는 사람들. 아직도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느니 하는 양반들... 왜 조선 500년간 더벅머리총각들 머리는 안되고 머리는 단정하게 깎아야 남자답다고 생각하는가? 옛날 조선시대는 결혼하지 않은 총각은 처녀처럼 머리를 묶고 다녔다.(남자가 머리를 묶거나 결혼식 때 신부가 연지 곤지를 찍는 것은 몽고족의 풍속이지만...) 치마도 마찬 가지다.
                                               
                           <사진 ; 지난 30일 마산 만날고개에서 있었던 타향축전>

통일 신라시대 이후 줄곧 남자들도 치마를 입고 다녔음을 기록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다. 지금도 남자들의 두루마기는 분명히 치마형태다. 차가 오른쪽으로 다닌다거나 사람이 왼쪽으로 다닌다든지 하는 것은 머리 모양이나 옷의 모양처럼 사람들이 살아 오면서 편의에 의하여 만들어진 문화 양식이었지 그것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었음을 알수 있다.

남녀가 혼인을 할 때 남자의 나이가 여자보다 많아야 한다든지 키가 여자보다 남자가 커야 한다든지 학식이나 환경 조건도 남자가 여자 보다 좋아야 하는것이 절대적인 조건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법이나 제도란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 오면서 지배계급이 민중을 지배하기 위하여 만들어 진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가 법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가치관이 절대적이라거나 무오류(無誤謬)라고 믿고 있는 경향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필연(必然)이며, 현존하는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속에 모순을 갖지 않는 완전 무결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살아 오면서 편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상호 약속으로 생겨난 것이 말이요 의복이요 관습이요, 도덕이요, 예의요, 법이고 질서, 제도...... 등이다.
이러한 삶의 양식을 문화라고 표현해 보자.

문화란 영어의 Culture로 어원(語源)은 라틴어 Cultra라는 '경작하다' '훌륭하다' '숭배하다'에서 비롯된 Coler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말은 훌륭한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문화는 "인간, 국가, 계급, 사회집단, 개인에 의해 창조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함하는 사회현상"이다.

맨손 사냥의 불편은 칼이나 활을 만들게 되고 사회의 토대(원시 사회,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자본제 사회,공산제 사회)에 따라 가치의식과 도덕, 의복, 언어,생활 양식등의 문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문화가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의한 객관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인 순수한 문화가 아니라 계급성을 지녔거나 이해관계에 관련된 상업성을 띠고 있음은 두말하 것도 없다.
일부 다처 사회에서는 칠거지악이나 여필종부, 개가금지 같은 남성 중심의 도덕을 강조하여 여성에게 예속적인 삶을 강요하여 왔던 것이다.

예를 들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여자들의 신발은 발모양과 반대되는 하이 힐(High Heel)을 신고 성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남성중심의 문화가 등장하게 된다.(중국에서는 전족을 해 도망가지 못하도록 애기발처럼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고려자기가 세계적인 자랑거리로만 배웠지만 90% 이상의 민중이 의식주 해결이 어려운 여건에서 만들어졌고, 미적 감각을 가지고 즐거움과 여유를 누리는 고려자기와 같은 문화는 귀족 계급의 문화임에 틀림 없다.

바이올린 한개의 값이 수천만원 하는 가격이라면 오케스트라와 같은 문화는 민중의 문화가 아니다. 문화란 지배계급의 문화와 서민계급의 문화가 있고, 지배계급에 의하여 문화가 종속되면 민중의 문화는 천박하고 저질문화로 인식되고, 귀족문화는 고상하고 고귀한 표준문화가 된다.

매스 미디어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자본의 논리나 상업주의 문화가 표준문화가 되고, 전파 매체로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린다.
광고비도 편성권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의 노래나 삶의 양식은 저질 퇴폐문화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일년내 농사일에 허리 한번 펴지 못하던 농민이 마을 사람들과 작은 돈을 모아 일년에 한번, 버스를 전세 내어 계곡에서 노래라도 부르고, 춤이라도 추면 퇴폐 향략의 저질 문화로 언론의 집중 매도를 당하기 일쑤다.

문화가 탈정치적이어야 한다거나 순수문화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지배계급의 논리이다. 특정 계급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민중에게 속박으로 작용되는 문화는 좋은 문화라고 볼수 없다. 문화란 이렇게 분명히 계급성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국적불명의 외국문화가 침투하여 민족문화가 열등문화로 배척당하는 양상은 문화에 대한 정책의 부재나 민족의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상업주의 문화가 우리 삶을 오염시켜 감각중심의 향락퇴폐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민족은 그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강대국의 문화가 약소국에 강압적으로 전파를 강요 당하거나 의도적으로 보급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주체성을 무시하고 무분별한 남의 문화를 모방하거나 수용하는 모습은 민족 문화의 수호라는 차원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갖지 못하고 열등의식에 젖어 사는 국민은 독립국가의 국민으로서 긍지를 상실한 불행한 일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세계화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학생들에게 영어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논란을 빚고 있는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화의 질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오늘날 세계화란 이름으로 국적없는 향락문화와 저질적이고 퇴폐적인 외국의 문화가 제국주의 얼굴을 하고 유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은 민족문화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T.V나 컴퓨터문화 시대에 국수적인 우리 문화의 우수성만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조상이 살아 온 자취를 살펴 그들이 누려 온 삶의 양식을 오늘의 삶의 양식에 맞게 계승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예를들면 서구의 가족제도인 핵가족제도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전통가족제도의 대가족제도는 전근대적이라고 해석하는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러한 문화 수용의 자세는 오늘날의 노인 문제를 비롯한 자주성이 없는 마마보이가 등장하는등의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긍지와 외래문화의 선별적인 수용은 민족문화의 수용차원에서 고려되어야할 문제이다. 주택의 양식이나 의생활,식생활등 문화 전반에 대한 정책차원의 노력 없이는 민족문화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