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9.06.28 6·29선언 32주년 ‘속이구선언’을 아세요? (6)
  2. 2019.05.20 피묻은 붓으로 광주를 모독하지 말라! (2)
  3. 2019.05.17 광주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학살자를 처벌하라! (4)
  4. 2019.04.29 5월이 오면... (4)
  5. 2018.05.16 ‘5·18 광주민중항쟁’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11)
  6. 2018.01.03 <1987> 당시 우리가 데모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 (5)
  7. 2015.05.19 세월호 닮은 광주항쟁, 항쟁은 아직도 진행 중... (13)
  8. 2015.04.05 역대 대통령의 거짓말, 어느 정도일까? (9)
  9. 2014.02.23 시법부와 검찰, 국정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8)
  10. 2013.10.29 전교조, 법외노조로 바뀌면 해체될까? (12)
  11. 2013.08.03 뉴라이트, 전사모, 종편, 일베... 그리고 (14)
  12. 2013.06.13 수구세력들이 역사왜곡을 하겠다는 진짜 이유 (13)
  13. 2013.05.17 다시 보는 12·12사태와 5·18광주민중항쟁 (13)
  14. 2012.11.18 야권 단일후보가 당선되면 교육을 살릴 수 있을까?(하) (8)
  15. 2012.06.08 학살의 주범 손녀 결혼식. 사회는 친일 인사의 손자가... (83)
  16. 2012.04.09 헌법을 파괴한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기겠다고요? (9)
  17. 2012.01.16 전교조와 동아일보, 누구 말이 참말이지...? (30)
  18. 2012.01.03 제자 앞에 수갑 채워 취조당하는 기분, 어떨까요? (28)
  19. 2011.12.10 한나라당 재창당..?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20)
  20. 2011.11.15 조선일보가 ‘불편부당, 정의 옹호’...? 소가 웃을 일이다 (25)
  21. 2011.06.03 자유민주주의 사회에는 자유만 있고 평등은 없다 (17)
  22. 2011.05.18 광주의 진실, 5. 18의 진실 (38)
  23. 2011.05.17 박정희시대가 그리운 사람들, 5·16은 아직도 혁명인가? (49)
  24. 2011.04.18 4·19혁명 앞에 부끄러운 51주년’을 맞으며... (29)
  25. 2011.03.21 교육의 중립성이 가능한 사회인가 (34)
  26. 2011.03.08 역사 속에 숨은 진실 찾기 (41)
  27. 2011.01.10 '빨갱이'의 역사를 밝힌다 (18)
  28. 2009.07.30 ‘모르는 게 약’이라고...?
정치/역사2019.06.28 04:31


1.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2.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3.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사범들의 석방

4.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5. 자유언론의 창달

6.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7.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8.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



1987년 6월 29일 08:30분....!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발표한 6·29선언이다. 당시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 6·29선언이 얼마나 감동적인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땀과 눈물과 최루탄으로 뒤덤벅이 되었던 그날, 아니 마치 신들린 사람들처럼 학생은 학업을 포기하고, 직장인들은 퇴근하기 바쁘게, 교사들은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거리로 거리로 내달았다. 연인원 600만명이 참여한 6·10항쟁. 거리는 사람들의 물결과 최루탄연기로 밤낮없이 호헌철폐를 외치고 살인마 전두환정권은 미쳐 날뛰며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무차별 발사했다.

1979년 10월 26일 18년의 유신쿠데타 독재자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지고 유신체제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은 12·12 사태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인 10.26 사건의 수사를 방해를 하고 조기에 종결하려했던 구군부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1980년 광주항쟁 12·12전두환일당의 쿠데타... 이 숨막히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전두환은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되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8차개헌에 의해 수립된 제5공화국의 헌법은 간접 선거를 통한 7년 단임제, 국회해산권, 비상 조치권, 헌법개정제안권‘ 등의 어마어마한 권한을 대통령이 갖는 헌법이었다.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죽었는데 그 절호의 기회를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일당이 어부지리로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우리 국민들이 아니었다. 5·18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세력은 과도기 1년에다 단임 7년을 정하면서 8년의 집권에 만족하지 않고 5공헌법대로 단임을 끝내고 정권연장을 위한 모종의 계략... 광주항쟁으로 광주에 빚진 국민들은 살인마 전두환일당들에게 몸처리를 치고 있었는데, 소위 이 학살집단의 ‘8년을 포함한 20년 집권 시나리오’ 를 보고만 앉아 있을 국민들이 아니었다. ‘호헌철폐...!’ 국민적인저항 연세대학생이 경찰의 최루탄 직격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모습을... 서울대 박종철학생의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정부의 발표는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위기를 느낀 전두환일당은 극에 달한 시민들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은 항복밖에 없다. 그런데.... 그 항복선언 속에 살인마들의 음모가 숨어 있을 줄이야 순진한 국민들이 어떻게 알 수가 있었겠는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도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위와 최루탄의 범벅이 되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 피와 땀과 눈물의 승리 연인원 400~500만이 그렇게 간절한 소원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평화적 정권이양...!’이었다. 그런데 왜 이 감동적인 승리가 왜 ‘속이구 선언’이라고 명명하게 되었을까?

1987년 6월 29일 전두환이 지명한 차기 대통령 후보자 노태우는 6·29 선언을 통해 상술한 8가지 선언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6·29 선언이 미얀마에서 박철언이 작성하고, 박철언의 주도하에 노재봉, 이홍구, 김학준 등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팀이 참여하여 최종 문건으로 완성된 속임수였음을 순진한 국민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내일이 바로 32년 전 6·29 선언이 발표된 바로 그날이었다. 노태우는 이러한 속임수로 발표한 6·29선언에 따라 1987년 10월 27일 총 유권자의 78.2%에 해당하는 20,038,672명이 국민 투표에 참여하고 이 중 93.1%가 찬성한 선거에서 현행헌법이 확정된다. 이 9차개헌 헌법에 따른 대통령선거에서 양김의 단일화실패는 결국 살인마 노태우에게 대통령이라는 당선을 안겨주고 ‘속이구선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아~ 민주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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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경제2019.05.20 04:29


“광주항쟁 39주년, 이제 서로 껴안을 때”

중앙일보의 지난 5월 18일 사설 주제다. 이제 세월도 지날 만큼 지났고 법정에서 심판도 끝났으니 이제 그만 서로 용서하고 껴안을 때라니...? 당신이 그날 광주에서 군홧발에 짓이겨지고 총검으로 난자당했어도 그런 말을 할 것인가? 당신의 누이가 강간당하고 자식이 이유도 모르고 개죽음을 당했어도 용서하고 껴안자고 할 수 있는가? 발포명령을 내린자는 국가원로로 대접 받으며 회고록을 쓰면서 그의 아내는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며 피해자들을 히롱하는데 용서해야 하는가?



12·12 쿠데타 진압군측 장성들이 ‘반란 주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검찰이 반란죄로 고소한 12·12 주모자 34명은 전두환 노태우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 박희도 장세동 김진영 허삼수 이학봉 허화평 정도영 김정룡 우경윤 성환옥 최석립 이종민 조 홍 신윤희 정동호 고명승 박희모 이상규 소응섭 서수열 박덕화 박종규 신우식 구창희 이필섭 등이다.

12·12, 5·18 사건 재판 1심에서는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무기징역의 판결을 내렸다. 고등법원에서는 전두환에게는 무기징역으로 감경, 그나마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 보복은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김영삼 대통령은 12·12, 5·18 사건 관계자를 특별 사면했다. 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두살배기 아이와 당시 72세의 노인까지 무차별 학살은 그들은 39년이 지난 지금 수천억의 재산을 가지고 5, 6공화국 때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위 공직을 맡아 지금도 떵떵거리고 살고 있지 않은가?

5·18을 폭동이라고 왜곡·보도한 언론이 대한민국 일등신문이 되고,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정권에 복무한 자들이 국회의원으로 학자로 재계와 종교계에서 지도자로 유명인사로 행세하고 사는데 ‘이제 그만 서로 껴안을 때’라고...? 도둑질을 한 자가 부자가 되고 살인강도를 한 자들이 사회지도층인사가 됐어도 그런 말을 할 것인가? 39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망자, 행방불명자, 부상자 등 피해자 4천296명이나 된다. 그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왜 총칼에 난자당했는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이제 그만 서로 껴안자는 게 말이 되는가?

“80년 광주 폭동이 10년, 20년 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됐다. 이제 40년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다시 (폭동으로) 뒤집을 때다. 80년 5월 전남도청 앞에서 수십 수백명 사람들이 사진에 찍혔는데, ‘북괴(북한)군이 아니라 내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이종명 의원)

“좀 방심한 사이 정권을 놓쳤더니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를 이용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유공자를 색출해야 한다"며 "우리가 반드시 반드시 5·18의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김순례 의원)

“저는 5·18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전당대회에 나온 사람들 이러니저러니 해도 5·18 문제만 나오면 다 꼬리를 내린다”. "다만 이번에는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국민 혈세가 들어갔으므로 우리는 알 권리가 있다"(김진태 의원)

자유한국당의 이종명의원과 김순례의원 그리고 김진태의원의 5·18관련 막말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자식을 잃고 혹은 남편이나 아내를 읽고 39년을 병원에서 죽지못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이들이 오히려 큰소리치고 사는데... 반성은커녕 징계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광주항쟁의 가족들이 당대표라는 사람이 광주를 찾아온 것은 광주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항의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5,18항쟁이 무엇인가? 유신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를 회복해야할 절대절명의 기회를 전두환일당이 가로채 12·12라는 제 2의 쿠데타를 보다 못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계엄령을 선포하자 대한민국은 공포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광주는 모두가 숨죽이며 침묵하고 있을 때 계엄령이 선포된 거리를... 탱크 와 총칼앞에서 혼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도시여.

호남의 광주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나요?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요?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져서

어디에 가 파묻혀 있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들은

또 어디에 눈을 뜬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어디에서

찢어져서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산산이 흩어졌나?....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나요?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요?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져서

어디에 가 파묻혀 있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들은

또 어디에 눈을 뜬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어디에서

찢어져서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산산이 흩어졌나?...... “

김준태시인의 ‘아아,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라는 눈물과 분노와 피로 쓴 절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할 군인들이 부모와 형제들을 향해 총칼로 무차별 학살하고 헬기로 어린이와 임산부 그리고 노약자들까지 무차별 난사했지만 광주는 총칼 앞에 의연히 죽음으로 맞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가 광주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불의에 맞서 죽음으로 항쟁하는 정의로운 도시 광주는 그렇게 역사와 국민 앞에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로 우뚝 선 것이다. 누가 민주주의를 지킨 광주를 모독하는가? 학살자들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피묻는 펜으로 어떻게 감히 광주를 모독 하는가? 어떻게 감히 5·18을 폄훼 하는가?

5·18기념공원에 공개된 피해자 명단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공개 사직서다. 전남매일 기자 외에 어떤 언론인 어떤 기자가 독자들 앞에 석고대죄 하나 한 일이 있는가? 용서하자고...? 용서니 서로 껴안자는 말은 북한군이 들어와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국민들의 눈을 감긴 사이비 언론이 할 말이 아니다. 그들은 학살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임산부가,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폭동이니 폭도라고 왜곡보도한 장본인이 아닌가? 5·18을 왜곡보도하거나 침묵했던 언론 따위가 어떻게 용서니 서로 껴안자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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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9.05.17 06:20


내일은 5·18광주민중항쟁 3주년 째 맞는 날이다. 항쟁 39년을 맞지만 학살자는 여전히 큰소리치고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대한민국국민 중 누가 5·18로부터 자유로운? 지금도 학살자가 큰소리치고 살고 있는 세상에 광주항쟁은 끝난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역사는 박정희쿠데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박정희 일당이 만든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동토(凍土)의 공화국이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라고 준 총칼로 4·19혁명을 뒤 업고 권력을 도둑질한 박정희는 그렇게 역사를 거꾸로 돌려 놓은 것이다.



박정희역적의 무리들은 이렇게 박정희정권 19년과 전두환, 노태우 13년간의 군사정권의 시대 서막을 연다. 이름은 거창하게 군복을 벗고 ‘민정으로 이양’했지만 사실은 국민의 입과 귀에 자물쇠는 채우는 ‘국가보안법’으로 무장하고 보도 자료로 언론에 입에 족쇄를 채워놓고 ‘한국적민주주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까지 지어내 유신시대, 군사정권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충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이 박정희를 향해 “각하도 죽어 주십시오!”라며 방아쇠가 당겨졌고 박정희공화국 한국적 민주주의 유신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왜왕에 충성맹세를 했던 오카모토미노루(岡本 實) 박정희는 갔지만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동토의 왕국 대한민국을 전두환이라는 살인마기 보고만 있을리 없었다. 1979년 12·12일 전두환과 박희도, 노태우, 유학성 정호용, 황영시를 비롯한 하나회는 독재자 박정희의 자리를 재빨리 꿰차고 제 2의 5.16군사반란인 12·12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다. 권력의 맛을 본 군인과 통제에 길들여진 언론 그리고 유신교육에 마취된 민주시민들은 침묵하고 미국의 묵인으로 대한민국은 다시 정치군인들에 의해 13년간의 군사정권의 시대. 국정농단이 시작된다.

유신헌법의 대통령 권한은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시키고, 정부나 법원에 대해서도 긴급 조치를 할 수 있다. △긴급 조치는 사업 심사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와 같은 무한권력을 전두환 일당들이 이용해 군복을 민간복으로 재빨리 갈아입고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다.△대한민국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대한민국(유신)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할 수 있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 군법 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는 긴급 조치 1호로 대한민국은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얼어붙고 말았다.

참을성 많은 대한민국국민들이었지만 불의를 보고 침묵할 수 없다는 정의감은 최악의 상황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 번의 국정농단으로 짓밟히고 시달린 고통만 해도 견디기 어려웠는데 또다시 등장한 전두환정치깡패 무리들을 용납할 만큼 인내심이 후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계엄령이 선포된 5월의 대한민국은 숨조차 쉬기 어려운 공포의 분위기에서 광주민중들만 불의와 맞서 일어섰다. 4·19혁명을 일궈낸 학생과 대한민국 주권자 민중들조차 공포에 질려 숨죽이고 있던 대한민국에 광주는 침묵하지 않고 도도히 일어섰다.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및 옥내 외 집회 시위의 금지,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의 사전 검열, 각 대학의 휴교령, 직장 이탈 및 태업, 파업의 금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전두환 등의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과도 정부를 무력화하고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체포하면서 12·12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12·12사태 이후 점차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신군부 세력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외면하였으며 5월 17일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시키는 한편, 휴교령을 내리는 등 민주 세력에 대한 탄압에 들어갔다.

<광주민중항쟁 전개과정>

5월 18일 광주에서 전남대생 200여명이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들어가려다 계엄군과 충돌하여 다수의 사상자들이 발생하였고, 이를 본 시민들이 합세하여 시위를 벌였으나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항쟁이 촉발되었다. 5월 19일 시위대가 5,000여명으로 불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5월 20일 20여만 명의 시민이 군경 저지선을 뚫고 시청 건물을 장악하였고, 계엄군은 모든 시외전화를 끊어 광주를 고립시켰다.

5월 20일 밤 11시경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자 이를 보다못한 시민들은 무장을 하고 시민군을 조직하였다. 5월 22일 시민군은 도청을 장악하고 5·18 사테 수습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거부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5월 27일 병력을 증강시킨 계엄군은 도청으로 진격으로 최후 항전을 벌이던 시민군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등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남기고 광란의 살상극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학살자는 단죄 되었나?>

정상적인 법치국가라면 아니 언론이 깨어 있고 유권자들이 진실여부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면 광주는 살아나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기고만장하고 피해자는 여전이 죄인으로 살아 있는 현실은 광주가 아직 청산되지 못한 고립의 도시로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노를 비롯한 학살자들에게 부역한 세력들은 여전히 유명인사로 권력의 주변에서 유권자들을 종롱하고 있는 현실을 언제까지 구겨만 하고 있어야 할까?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은 민주 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 없이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한다.’ 학살자 노태우가 3당야합의 정당개편을 하면서 발표한 성명이다. 권력에 눈이 어두운 김영삼은 국민의 열망을 외면한 체 유신세력이 만든 신민주공화당과 광주학살자들이 만든 민주정의당 그리고 권력에 눈이 먼 김영삼이 주도한 통일민주당이 합당해 유신과 학살자들과 손을 잡는다.



유신세력, 광주학살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받았는가? 김영삼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워 12·12쿠데타를 주도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혐의 등이 인정돼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개월을 선고받는다. 항소심에서 각각 무기징역(추징금 2205억원)과 징역 17년(추징금 2628억원)으로 감형됐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이들을 모두 특별 사면시켰고 1998년 복권됨으로서 광주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살인자들은 면죄부를 받는다. 세월이 지나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무장 폭도들의 난동'에서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고, 1988년 11월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가 개최되었으며 1995년에는 '5․18 특별법' 제정, 1997년 5월 18일에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저항권으로 인정되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살인자가 사면·복권되고 국가원로 노릇이라니...>

‘건국훈장대한민국장, 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일지무공훈장,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국선장, 수교훈장 광화대장’. 전두환이 12·12군사반란 후 자신이 스스로에게 수여한 셀프훈장이다. 그는 전두환일가에 대한 비자금수사가 진행되기 4일 전 이 훈장들을 모두 반납했지만 노태우가 받은 훈장 11개는 여전히 반납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두환은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면서 연금, 치료, 비서관 지원 등의 예우를 박탈당했지만 ‘대통령이 예우를 박탈당했다고 하더라도 필요한 기간 동안 경호 및 경비는 받을 수 있다’는 예우조항 때문에 1600억여원의 추징금을 아직도 내지 않고 있다. 이런 학살자에게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경호를 위한 인건비 6억6700여만 원과 차량‧장비구입비 등 총 7억 원의 국가 예산으로 지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전·노 두 전직대통령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는 죽은 후에도 ‘국가장법’상 전직 대통령은 형벌의 확정 여부를 불문하고 정부 재정으로 장례식이 진행되고 전국에 빈소를 마련할 수 있다. 또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에 형벌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을 제외한다는 규정이 없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도 있는게 현행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5·18 추념사에서 ‘불온한 국가권력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운 광주항쟁’이요 ‘외면할 수 없는 분노’요 ‘부채감’이라고 했다. 그러나 39년을 맞는 지금도 학살자는 국가원로로 대접받고, 전사모는 건재하고 있으며, 모교인 대구공고에는 ‘모교를 빛낸 동문’으로, 그의 고향 합천에는 일해공원(전두환의 호)을 건립해 그를 추모하고 있다.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살인자가 존경받는 나라에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하고 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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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역사2019.04.29 04:36


“(전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을 이뤄서 지금 대통령들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지 않느냐”,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가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남편이 사람을 그렇게 죽이는 일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무고한 그 많은 시민을 죽인 남편을 ‘민주주의 아버지’라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살인마 전두환 일당이 1980년 5월 18일. 소름끼치는 생각하기도 싫은 5·18광주학살... 빛고을 광주에서 전두환 일당이 저지른 학살의 전말을 국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80년 5월 광주는 고립된 섬이었다. 광주의 상황은 살아있는 도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핏발이 선 계엄군은 군홧발로 시민들을 짓밟았고 총칼을 휘둘렀다. 남자와 여자가, 학생과 직장인이, 임산부와 어린아이가 죽거나 상처를 입었다. 국민 안위라는 신성한 의무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정치군인들로, 광주는 주검의 도시로 변해버렸다...’ 수많은 시인들,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청년과 학생들이 숨죽여 울부짖고 가슴을 치던 날.. 그날, 침묵하던 다른 도시의 청년과 학생들을 대신해 그렇게 광주시민은 도륙을 당했던 것이다.

5·18 민주 유공자 유족회와 부상자회, 5·18 기념재단 등 4개 단체가 공식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5·18 사망자는 모두 606명으로,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고, 행방불명이 65명, 상이 후 사망 추정자는 376명이다. 1980년대 중반에는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과 무차별적인 연행으로 인해 사망자가 2천여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5·18 종료 직후에 정부에 신고된 사망 추정자, 실종 추정자는 2천여 명에 달했고, 일부 학생운동권이 이를 인용한 주장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985년 윤성민 국방부 장관은 1980년 당시 사망자 및 실종자로 신고된 인원은 2천 명이 맞다면서, 그중에는 체포 구금된 자, 사망자, 부상 입원자, 피신자도 포함돼 있어, 이들 인원이 사망자로 잘못 전파된 것이라고 답했다....

사망자는 저항 하는 학생들뿐만 아니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이나 어린아이를 업고 가는 여성이나 초등학생까지 무차별 살해하고 3천여명에 달하는 수많은 시민이 계엄군에 의해 폭행당하고 트럭에 실려 광주교도소·상무대에 연행됐다. 연행자는 영창으로 넘겨지기 전 보안대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다. "워커발로 얼굴 문질러버리기", "눈동자를 움직이면 담뱃불로 얼굴이나 눈알을 지지는 '재떨이 만들기'", "발가락을 대검 날로 찍는 '닭발요리'", "사람이 가득 찬 트럭 속에 최루탄 분말 뿌리기", "두 사람을 마주보게 하고 몽둥이로 가슴 때리게 하기", "며칠째 물 한 모금 안 먹어 탈진한 사람에게 자기 오줌 싸서 먹이기", "화장실까지 포복해서 혀끝에 똥 묻혀오게 하기", "송곳으로 맨살 후벼파기", "대검으로 맨살 포 뜨기", "손톱 밑으로 송곳 밀어넣기...."

이런 짓을 한 살인마 전두환일당들은 권력을 도둑질한 후 ‘건국훈장대한민국장, 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일지무공훈장,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국선장, 수교훈장 광화대장’. 등 셀프훈장을 받았다. 전두환일가에 대한 비자금수사가 진행되기 4일 전 이 훈장들을 모두 반납했지만 노태우가 받은 훈장 11개는 여전히 반납조차 하지 않고 있다. 셀프훈장뿐만 아니다. 살인자 전두환의 고향에는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고 그의 모교 대구공고 중앙현관에는 전두환의 초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언론의 진실 왜곡은 어느 정도였을까? 조선일보는 1980년 8월 23일 “인간 전두환”,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을 통해 “이해관계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운동이면 못하는 것 없고 생도 시절엔 축구부 주장”, “사에 앞서 공, 나보다 국가 앞에서,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 회피 안 해...”, “위대하신 우리의 영도자 전두환 장군”이라고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던 조선일보는 사태발생 5일째 되는 날 “전국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서울을 이탈한 학원소요 주동학생과 깡패 등 현실 불만 세력이 대거 광주에 내려가 사실무근한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퍼뜨린 데서 기인됐다”며 ‘통대소집 공고, 새 역사의 장이 열리는 날, 8월은 정녕 민족의 달’이라고 했다.

전두환, 노태우일당은 김영삼정권 때 '12·12, 5·18 재판'으로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중요임무 종사”, “상관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 무기장역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피고인 14명 모두 복역 8개월 만에 특별 사면됐다. 광주학살 39년이 지난 올해부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비 인력을 모두 철수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전두환의 경호를 위해 경호원은 11명이 그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그의 사저에도 지난 해 까지 10명의 경호 인력이 지켜주고 있었지만 올해부터 5명으로 줄였고, 경비 인력은 80명에서 20% 감축했다가 올해부터 완전히 철수한 상태다.

‘전사모’(전두환을 사모하는 사람들)는 살인자 전두환을 못 잊는 회원수 1만 8475명의 단체다. 전사모는 "전사모 운영진은 화려한 휴가 제작사와 제작진, 감독, 출연배우 등 왜곡된 사실로 진실을 숨기고 전사모를 정신병자로 치부해 버린 그들을 상대로 최고 300억원의 소송을 준비하기도 하고 합천에서는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돼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전두환경호실장이었던 안현태는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전두환의 출신 대구공고 홈페이지에는 단임제대통령을 실현한 ‘한국정치 민주화에 불멸의 초석’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전재산 29만원밖에 없다던 전두환. 12.12사태 촉발책임과 5.18광주시민 학살, 수 천억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에 관한 죄를 물어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의 실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 받았던 전두환은 재산 29만원밖에 없다던 전두환. 12.12사태 촉발책임과 5.18광주시민 학살, 수 천억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에 관한 죄를 물어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의 실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 받았던 전두환은 은닉 재산으로 의심되는 경기도 용인 땅이 456억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현재 전두환은 선고받은 추징금 2205억원 중 1000억원이상은 아직까지 환수되지 않은 상황이다.

2006년 국무회의에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등 3년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등을 환수키로 의결했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서훈 취소 대상자 절반 가까이가 훈장 반환 요구에 대해 반환 기한 일까지 반환은 커녕 사유서조차 내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학살자가 국가원로로 대접받고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떠벌이고 다니며 97억1천만원짜리 호화저택에서 살면서 회고록을 쓰며 사는 나라에 정의는 어디 있는가? 오는 18일은 광주민중항쟁 39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주학살에 동참했던 부역자들은 아직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만든 민주공화당은 현재 촛불정부의 제 1야당으로 당당하게 큰 소리 치며 살고 있다.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어 ‘사회악 제거하는 의인’이라던 기독교인.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대한민국 일등 신문(?) 조선일보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주인 노릇을 하며 주권자들을 개, 돼지 취급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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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8.05.16 06:47


고등학교학생들의 단골 수학여행지가 되다시피한 제주. 제주를 다녀 온 학생치고 제주항쟁에 대해 한마디라도 들었다는 학생을 만난 일이 없다. 수학(修學)이란 닦을 수() 배울 학()의 뜻 그대로 학교 안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여행을 통해서 알고 배우는 공부. 아직도 정확하게 희생자 수를 파악 할 수조차 없지만 인명 피해 규모만 해도 당시제주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5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제주에 수학을 하러 가는 학생들이 4·3제주항쟁을 모르고 돌아온다는 것은 수학의 포기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5·18 광주민중항쟁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제주를 다녀 온 학생들이 4·3제주항쟁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가오는 518일은 5·18광주민중항쟁 38주년 째 맞는 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광주시민에 대한 부채(역사의식)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내가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1980년 광주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보루(堡壘)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일당이 만든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얼어붙은 땅 동토(凍土)공화국이였다. 국민의 혈세로 키운 대한민국군인들이 419혁명으로 일군 민주주의를 짓밟고 총칼과 대포로 국민을 협박하고 권력을 도둑질한 게 5·16군사쿠데타다.

박정희역적의 무리들은 이렇게 박정희정권 19년과 전두환, 노태우 13년간의 군사정권의 시대 서막을 알리며 등장한다. 이름은 거창하게 군복을 벗고 민정으로 이양했지만 사실은 국민의 입과 귀에 자물쇠는 채우는 국가보안법으로 무장하고 보도 자료로 언론에 입에 족쇄를 채워놓고 한국적민주주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까지 지어내 유신시대, 군사정권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충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이 박정희를 향해 각하도 죽어 주십시오!”라며 방아쇠가 당겨졌고 박정희공화국 한국적 민주주의 유신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197910·26으로 왜왕에 충성맹세를 했던 오카모토미노루(岡本 實)' 박정희는 갔지만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동토의 왕국 대한민국을 전두환이라는 살인마기 보고만 있으리 없었다. 197912·12일 전두환과 박희도, 노태우, 유학성 정호용, 황영시를 비롯한 하나회는 독재자 박정희의 자리를 재빨리 꿰차고 제 25.16군사반란인 12·12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또다시 도둑질하게 된다. 권력에 맛을 본 군인과 통제에 길들여진 언론 그리고 유신교육에 마취된 민주시민들은 침묵하고 미국의 묵인으로 대한민국은 다시 정치군인들에 의해 13년간의 군사정권의 시대를 열어 국정농단이 시작된다.

유신헌법의 대통령 권한은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시키고, 정부나 법원에 대해서도 긴급 조치를 할 수 있다. 긴급 조치는 사업 심사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와 같은 무한권력을 전두환 일당들이 이용해 군복을 민간복으로 재빨리 갈아입고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다.




대한민국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대한민국(유신)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할 수 있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 군법 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는 긴급 조치 1호로 대한민국은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얼어붙고 말았다.

참을성 많은 대한민국국민들이었지만 불의를 보고 침묵할 수 없다는 정의감은 최악의 상황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 번의 국정농단으로 짓밟히고 시달린 고통만 해도 견디기 어려웠는데 또다시 등장한 전두환정치깡패 무리들을 용납할 만큼 인내심이 후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계엄령이 선포된 5월의 대한민국은 숨조차 쉬기 어려운 공포의 분위기에서 광주민중들만 불의와 맞서 일어섰다. 4·19혁명을 일궈낸 학생과 대한민국 주권자 민중들조차 공포에 질려 숨죽이고 있던 대한민국에 광주는 침묵하지 않고 도도히 일어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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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8.01.03 06:30


<1987>... 엊그제 같은데 벌써 31년이란 세월이 지난 옛날 얘기다. 그 시대를 살던 우리는 모두가 데모꾼이었고 옷에는 최루탄 냄새로 찌들어 있었다. <1987> 1987년 그 때 나는 마산여상에 근무하면서 현직쇼사였다.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데모꾼이 되어 거의 매일같이 마산 어시장에서, 창동 불종거리로, 혹은 경남대학 앞에서 최루탄을 마시며 시위를 하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당시 수업시간에 겁도 없이 학생들에게 광주비디오 얘기며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김준태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양성우의 낙화, 문익환의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와 같은 시를 읽어 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마창고협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독서모임을 하기도 하고 밤이 되면 시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성은교회라는 대한감리교회에 다니며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속회라는 성서 공부시간에 참석했다. 속회 회원들은 잡히면 영장 없이 구속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항쟁에 대한 비디오를 보면서 영화의 장면과 같은 전두환의 학살 현장을 지켜보면 발을 동동 굴렀다. 이 비디오를 본 사람이라면 데모꾼이 아니더라도 <1987>의 주인공처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예수쟁이는 예수 냄새가 나야 한다며 삶의 현장에서 각자가 십자가를 지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실천에 옮기기로 결의했다.


전두환의 호헌발표와 박종철군의 죽음은 필자가 사는 마산뿐만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그칠 날이 없었다. 특히 대학이 있는 곳이면 그곳은 곧 해방구였다. 당시 대학의 총학생회는 민주주의의 산실이요, 터놓고 경찰이 침범 못하는 안전지대였다. 게시판이나 빈공간에는 어김없이 민그림이며 대형 걸게 그림이 걸리고 저녁이면 교문 앞에서 경찰과 맞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1987>은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 장면이 계속된다. 남영동은 김근태의장의 고문당한 곳으로 공포의 상징이었지만 데모현장에는 영화의 한 장면같은 폭력이 남무했다. 당시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설마 저렇게 까지...라며 믿으려 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내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한번은 시위대와 함께 창원경찰서에 잡혀가 학생들과 시멘트 바닥에 밤을 새우면서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하는지, 경찰서 유치장의 인권유린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백주에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과 노태우 그리고 박종철군을 고문하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전두환은 13대 국회의 증언대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을 '자위권 발동'이라고 했다. 그는 1995년에 구속·기소되어 1심에서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사형을,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971222일에 사면·복권돼 현재도 국가 원로로 대접받으며 회고록까지 출간하며 살고 있다.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있고, 전두환 모교인 대구공고에는 모교를 빛낸 동문으로 그의 고향 합천에는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그를 추모하고 있다.


<1987> 주인공 중의 한사람 이근안은 1970년 경찰에 발을 들인 후 대공분야에서 16차례의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86년에는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순경에서 경감 승진까지 특진으로만 올라간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20여년간 수배·투옥을 반복하다 2008년 대한예수교 장로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정식 목사가 된다. 그 후 2012년 지난 행적이 들통 나면서 목사직에서 면직되었다. 며칠 전 이근안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대담에서 아내가 미용실을 경영하는 돈으로 생활한다며 당뇨와 합병증, 고혈압에 심부전증까지 앓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고문기술자, 살인마는 전두환, 노태우 이근안... 몇몇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박종철을 죽이고 이한열에게 직격탄을 쏜 경찰은 어디서 무얼하는지 알지 못한다. 짐작컨대 유신의 후예, 광주학살에 함께한 자들,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고 선량한 시민의 인권을 짓밟은 자들이 지금도 가족의 고통과 병원생활을 하고 있는 피해자를 비웃으며 법의 보호를 받으며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영화는 <1987>으로 끝났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으로 싸웠던 사람들은 아직도 가난과 고통으로 종북세력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고 있다. 예를 들면 전교조의가 그렇다. 전교조가 권력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0월유신과 광주항쟁 그리고 속이구선언(6·29선언의 다른 이름  6.hwp의 진실을 밝혀 역사를 바로 가르치겠다는 전교조는 늘 독재 권력의 미운오리새끼였다. 촛불정부가 출범한 후 달라지고 있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는 기회주의자나 방관자가 만든 게 아니다.


정의사회는 가능할까? 언제쯤이면 역사의 구비마다 등장하는 악마들의 가면을 벗겨 정의의 편에 선 사람들이 대접하는 세상이 될까? ‘노동자가 존중 받는 세상, 반칙과 특권 없는 원칙과 정의가 바로 서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는 언제쯤 가능할까? 아직도 이 땅에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억울하게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은 사면·복권과 원상회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87> 다음에는 폭력정권이 만든 미운 오리새끼 전교조의 법외노조와 종북 가면을 벗길 수 있는 후편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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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5.05.19 06:04


세월호를 보면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한곳에 끌어다 놓은 것 같다. 선박회사며, 해경이며, 선주며, 어린 학생들을 두고 도망쳐 나온 사람의 마음까지...

 

“너희가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리라”

성서의 말씀이다. 내일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4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성격규정이 얼마나 황당한 얘긴지는 여기서 덮어두자.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정치군인들이 일으킨 시민학살의 광란극은 민주화가 아니라 항쟁이란 말이 옳지 않을까?

 

 

어제 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 참사가 "또 하나의 광주"라고 했다가 새누리당으로부터 집단 성토를 당하고 있다. 그들이 왜 광주 얘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랄까? 친일을 한 인사도, 학살의 장본인도 건재하는 나라. 이제 세월호에 얽힌 기막힌 범법자들도 시간만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큰소리 치며 살겠지....?

 

34년 전. 1980년 광주 일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980년 5월, 정치군인 전두환일당은 자기네들의 집권야욕을 채우기 위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 국민들에게 숨죽이고 ‘가만있어라’고 윽박질렀다. 자기네들의 집권 계획에 방해하지 말라며 국민들을 협박했다. 온 나라가 숨죽이며 공포에 질려 있을 때 광주는 ‘가만있기..’를 거부하고 소리쳤다.

 

 

‘김대중 석방하라, 전두환은 퇴진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시민들의 저항에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광주시민을 향해 무차별 발포했다. 하늘도 땅고 겁을 먹고 전국이 납작 엎드렸다.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에 이력이 난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언론은 전두환일당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쏟아냈다.

 

‘광주는 지금 북한 무장공비들이 나타나 소란을 피우고 있어 용감한 우리 국군병사들이 토벌중’이라고 앞 다퉈 보도했다.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그리고 광주는 조용히 역사 속으로 잦아들어 갔다. 그게 ‘광주민주화운동’이란다.

 

 

12·12사태란 무엇인가?

 

5·16쿠데타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없지만 ‘12·12사태’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전두환일당은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죽자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들과 함께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 실권자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를 포함한 정치인과 재야인사들 수천명을 감금하고 군 병력으로 국회를 봉쇄했다.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계엄 포고령 10호를 선포하여 정치활동 금지령·휴교령·언론 보도검열 강화 등의 조치를 내렸다. 5월 18일 16시 이후 광주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이 운동권 대학생뿐만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까지 닥치는 대로 살상·폭행하는 광란의 살인극을 벌였다.

 

 

정권을 장학한 전두환이 만든 제5공화국 정부는 5·18 광주민중항쟁을 불순분자 또는 김대중의 사주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호도, 전 국민을 침묵케 하고 민주정의당을 창설, 집권을 정당화한다.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반란의 수괴들은 이렇게 광주시민과 민주주의를 학살하고 국민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국민들의 요구는 결국 부마항쟁으로 나타나고 10. 26으로 박정희의 뒤를 잇겠다는 전두환 일당의 야망이 광주항쟁을 유발케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두환 일당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전두환일당이 시민을 학살하는 광란극을 벌이고 있는 모습은 보고서도 이를 지지하고 국민의 눈을 감긴 자들은 누군가? 그들은 다름 아닌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언론들이다. 모든 언론이 자신들의 책무를 다했다면 전두환 일당의 권력 찬탈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일신의 안일을 위해 나라를 배신했던 친일 세력이나 광주학살을 눈감고 그들과 손잡은 언론과 수구세력들은 광주시민의 처절한 저항에 구경꾼이었다.

 

 

결국 3당 합당으로 김영삼이 집권 후 전두환, 노태우일당은 법정에서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감형으로 출소했지만 쿠데타의 공모자 수구언론을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그들은 광주희생자들에게 사과한 번 제대로 한 일이 없다. 아니 오히려 서로 사회정의에 앞장선 민주언론이라며 정의를 말하고 정통성운운하고 있다. 세월호를 보도하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광주항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 광주학살의 공모자들은 청산 되었는가? 문재인의원의 발언에 경기를 하다시피 놀라는 이유는 그들이 광주항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새누리당의 역사를 보면 학살의 공모자가 누군지 볼 수 있다. 4·19의거를 부인하고 혁명의 원인제공자인 독재자 이승만을 국부로, 건국의 아버지로 추종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새누리당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쿠데타를 지지하고 권력의 편에서 기득권을 지키고 반사이익을 누려 온자들... 그들이 바로 자유당,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아닌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민주주의와 공화제’를 말하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일당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말하는 게 한국의 민주주의요, 정당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미지 출처 : 도서출판 생각비행>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게 오늘날 사회악의 뿌리라면 광주학살을 정당화시키고 쿠데타세력에 기생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게 오늘 날 새누리당 아닌가? 세월호는 절대로 청산하지 못한다. 세월호의 몸통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뒤에는 관피아, 해피아, 학피아... 들이 있고 이 마피아들 뒤에는 든든한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새월호와 닮아도 너무 닮은 고아주항쟁....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광주에 진 빚을 갚을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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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5.04.05 19:52


20026,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어 김수환 추기경을 혜화동 처소로 찾았을 때의 일이다. 노후보는 자신이 영세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받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못 나가 종교를 무교로 쓴다고 했다. 추기경이 하느님을 믿느냐?’ 고 묻자 애매한 대답을 했다. 희미하게 믿는다고 했다. 추기경이 확실하게 믿느냐?’ 고 다시 묻자 노후보는 잠시 생각하다가 앞으로 종교 란에 방황이라고 쓰겠다.’라고 대답했다.

 

 

진실의 길이기명기자가 노후보와 단 둘이 있을 때 노무현 후보에게 물었다.

누가 시비할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대답을 하셨습니까? 그냥 믿는다고 대답하시지 않고요?

노무현 후보가 대답했다.

 

거짓말 하면 고통스럽습니다.’

 

진실의 길에 나온 기사다. 노무현대통령의 후보시절 기사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박근혜대통령의 거짓말을 말하느니 참말을 얼마나 하는지 찾는 게 오히려 쉽겠다. 입만 열었다하면 거짓말에 유체이탈화법. 하긴 어디 박근혜뿐일까? 백주에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도둑질한 전두환 살인정권이 만든 정당 이름이 민주정의당[]이였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이미지 출처 : 민중의 소리>

 

역대대통령의 거짓말을 말하면 초대대통령이었던 이승만부터 빼 놓을 수 없다. ‘전쟁이 발발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 패기는 어디가고 수도서울이 함락됐음을 알고 자신은 대구로 도망쳐 놓고 적을 물리치고 있으니 서울시민들은 안심하라면서 한강다리까지 폭파해 수십만의 서울시민이 죽거나 죽임을 당하게 했던 사람이 이승만이다.

 

박정희는 어떤가? 그는 4·19혁명으로 쟁취한 민주정부를 뒤엎고 혁명공약이라는 걸 발표하면서 한 말이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고 했다. 그 후 63227일 시민회관에서 전국민이 생중계로 방송하는 자리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면서 자신은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서식을 했지만 헌법까지 개정해 영구집권을 꾀하다 19년만에 가장 신뢰하던 부하의 손에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미지 출처 : Addons 트윗트에서>

 

초등학생들에게 ‘29만원 할아버지라는 놀림감이 된 전두환은 어떤가? 무고한 광주시민을 폭도로 분류, 학살하면서 북한의 특수부대가 침투,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어 용감한 국군들이 소탕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사람이 전두환이다. “예금 29만원밖에 없다.”던 그는 퇴임직후인 19881123일 사과·해명 담화에서 그는 가족의 재산이 부동산 4건과 금융자산 23억원 등이 전부라고 밝혔다.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 받은 후 17.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며 추징금을 낼 돈이 없노라고 잡아떼 전두환은 추징금 1672억 원을 내지 않으면서 골프를 치며 호화생활을 누려 왔다. 가족이나 친지의 명의로 숨겨놓은 재산이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에 달한다는 그의 재산은 전두환 추징법으로 20135월까지 추징한 금액은 모두 53273484436만 원을 내고 무기명채권 188억 원에 대한 이자 100억 원을 몰수당한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군사정권을 종식시킨다면서 전두환, 도태우일당과 합당해 정권을 잡은 정치9단 김영삼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늘어놓던 이명박과 박근혜의 거짓말에 비하면 잇빨도 나지 않았으니 여기서 논외로 치자.

 

이명박의 거짓말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은 반값 등록금이나 전재산 기부공약은 덮어두고라도 당선 초기부터 국민건강은 안중에도 없이 미국소고기 수입개방으로 국민들의 촛불시위에 시달려야했다. 대운하사업을 4대강사업이라고 사기를 쳐 금수강산을 오염공화국으로 만들어놓고 국민의 혈세 22조를 날린 사람이 이명박이다.

 

7% 성장, 4만불소득, 세계 7대 선진국이라는 747공약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 나고 BBK 주가조작사건에 퇴임 후 끊임없이 국정감사요구를 받고 있는 사자방의혹은 우선 드러난 것만으로도 우리역사에 둘도 없는 사기꾼이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이명박 폭탄. 이제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한 그의 사기행각을 밝혀야할 책임은 주권자인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됐다.

 

역대대통령 중 뭐니뭐니해도 최고 거짓말 상을 받아야할 사람은 박근혜다. 거짓말도 자꾸하면 는다고 했던가?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말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줄푸세를 말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말하더니 이제는 유체이탈화법에 멘붕시리즈까지 등장했다. 당선 초기만 해도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자 예산이 부족해 점진적으로 실현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의 대부분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바뀌면서 대선 당시 내놓았던 대부분의 공약이 총체적인 사기극이었음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등록금 부담 절반으로, 고교무상의무교육시대, 맞춤형 보육서비스, 취업 스팩타파, 어르신 인플란트도 건강보험으로, 아이들 돌봄 서비스 확대.... 같은 공약이 어느 시민단체에서 내놓은 개혁안을 베끼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부자들,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위해 뻔질나게 해외로 나들이 하면서 발 빠르게 FTA를 체결해 주식인 쌀까지 완전 개방해 식략주권을 다국적 자본에 맡기고 전작권을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만행도 불사한다. 더구나 공공성으로 남겨 둬야할 교육이나 의료, 철도 민영화도 마무리 단계까지 와 있다.

 

 

눈 뻔히 뜨고 404명 죽어간 세월호에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정치,경제,사회,문화,남북관계, 언론,종교... 어느곳 하나도 멀쩡한 곳이 없다. 그의 유체화법의 백미는 단연 문고리권력이니 만만회니 십상시니 하는 국정 농단 사건이다. 부끄러워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사실을 밝혀야할 사람이 문건유출은 국기문란으로 단정하고 엄벌하라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고 있다. 도둑질한 놈이 나쁜게 아니라 도둑질을 왜 신고했느냐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역대대통령의 거짓만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왜 우리국민들은 이런 거짓말쟁이 정치인을 좋아할까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국민이 속으면서도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를 혹자는 국민의 수준을 혹자는 그들의 마취술에 놀아나고 있다고도 하고 혹은 그들의 거짓말이, 혹자는 언론의 책임론을 말한다. 기득권자들에게 장악당한 국민들의 주권. 그들이 자본가의 이익, 초국적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구경꾼이 된 민초들이 깨어나지 않는 한 소외와 배신의 정치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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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4.02.23 07:00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무결할 수 없다. 업무상 ‘과실’이란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 자신의 권리를 이용해 출세를 하기 위해서 고의로 저지른 일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특히 권력의 주변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검찰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의 마름이 되기를 주저치 않는다면 이는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선량한 국민들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된다.

 

<이미지출처 : 와이뉴스>

 

동백림 사건( 1967년 7월), 부림 사건( 1981년 9월), 수지 김 사건( 1987년 1월), 오송회 사건(1982년), 인민혁명당 사건( 196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1974년 4월), 학림 사건(1981년), 한민통 간첩사건(1977년), 이수근 간첩 조작의혹사건(1967년 3월), ‘울릉도 간첩단 사건’(74년 2월).... 검찰이나 사법부가 저지른 추악한 범법이력은 끝이 없다. 이들로 인해 무너진 인생.. 그들의 한은 누가 풀어줄 것인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시절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조작한 사건을 보면 검찰이 국민을 위한 검찰인지 권력의 마름인지 구별할 수 있다. 억울하게 간첩의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르거나 죽어간 사람...

 

분단국가에서 빨갱이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비록 연좌제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빨갱이로 찍히면 한국사회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취급 받기는 끝난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본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손가락질과 수모를 당하면서 살아야할 가족들에게는 죽기보다 더 비참한 삶이다.

 

독재정권아래서 검찰이나 국정원이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이의 수많은 간첩단 조작사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고의로 생사람을 잡아 간첩을 만들어 남의 인생을 파괴해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출세의 가도를 달려 왔다. 그래서 그럴까. 최근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출처 : 와이뉴스>

 

소위 <서울시 공무원 간첩단 사건>이라는 이름의 간첩조작사건이 국정원 개혁 물타기용인지 국가기관선거 개입, 물타기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작된 간첩사건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사건은 2013년 1월, 국정원과 검찰이 탈북자로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주무관으로 근무하던 유우성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지령을 받고 자신이 관리하는 탈북자 명단 등을 북한에 넘겼다며 간첩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검찰의 후안무치한 두 얼굴... ‘돈 있고 권력 있는 자에게는 관대하다. 최근만 해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재상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2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해서도 상고를 포기했고, 민주당 이석현 의원과 새누리당 이성헌 의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한겨레신문)

 

검찰이 한 짓이 권력의 마름노릇만이 아니다. 며칠 전, 33년만에 강기훈유서대필사건이 무죄가 선고됐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3년의 옥살이와 자격정지 1년6월도 모자라 33년간 파렴치범으로 몰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손가락질을 받으면 살아온 인생.... 가슴이 한이 맺혀 암이 온 몸에 번져 간암세포 제거수술을 받은 뒤 현재 투병중인 환자다. 멀쩡한 사람에게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씌워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 검찰... 강기훈씨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대법원에 상고 했다는 기막힌 소식이다.

 

 

<이미지 출처: Ddankook>

 

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억울한 사람이나 약자를 위해서다. 검찰이나 사법부의 존재이유도 그렇다. 그런데 국정원이나 검찰, 사법부는 오히려 권력의 편에 서서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권력의 시녀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약자들은 어디서 보호받아야 하는가? 이들이 고의로 저지른 간첩사건이나 정치적 국면전환용 범죄는 어떻게 처리 되는가? 대부분 2~30년 혹은 피해자가 죽은 후 무혐의나 무죄로 밝혀지지만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는 까마득하게 잊혀진 후다.

 

결국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나 가족들의 고통만 고스란히 남게 되는 것이다. 인혁당사건의 경우 서울중앙지법은 2007년8월 사형이 집행된 8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24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 지난 6월 인혁당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전창일씨 등 피해자와 가족 등 67명에 대해서는 235억원을, 민족일보 조용수사건과 관련해 무죄가 확정된 조씨의 유족들에 대해 6,000여만원을, 이수근 간첩조작 의혹사건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세준씨에 대해서는 3억원을 지급...

 

이런 조작을 한 검사나 억울하게 죄를 씌운 사법부 판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김용원 변호사가 전하는 법조계 이야기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에서 저자는 ‘이 나라 판검사들이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아니라 고래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한탄하고 있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 반대파를 물어뜯는 동물농장의 개들에 비유하는 이땅의 판검사들... 언제까지 개들에게 주인이 물어뜯기는 모습을 구경만 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책보러 가기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원단체/전교조2013.10.29 06:59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여기가 어딘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다니... 수갑을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포승줄에 칭칭 묶여 검사실에 조사를 받으러 간 나에게 느닷없이 젊은 여성이 나를 보고 한 말이다.

 

그 곳에는 나와 같이 수갑에 포승줄까지 묶인 또 한명의 여성이 조사를 받다 머리가 허연 남자가 들어오는 걸 보고 힐끗 쳐다보다 마찬가지로 “선생님!”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검사실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하고 있던 여성도 또 수갑에 채워 조사를 받고 있던 여성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졸업생이었다. 자신이 졸업한 학교 선생님이 그것도 수갑에 포승줄까지 묶여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검사실에서 타이피스트로 취업해 있는 제자는 울며 어쩔 줄 모르다 사무실을 뛰쳐나가고 수갑에 포승줄까지 묶인 제자는 나를 쳐다보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뒤에 안일이지지만 이 제자는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미제침략사’라는 책 소지를 ‘이적찬양고무죄’로 끌려와 조사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벚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던 4월 어느 날. 당시 전교조 경남지부장 이영주선생님과 부지부장을 맡았던 안족복 그리고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이인식, 그리고 김용택은 창원경찰서 지하 유치장에서 끌려가 알몸수색까지 당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연은 전교조 간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된 1990년 3월. 경남의 67명 해직교사를 비롯한 전교조 교사들은 고영진교육감에게 산적한 교육문제와 비리척결을 주장하며 경남도교육청에 대화를 하자며 찾아 갔다.

 

박정석 당시경남교육감은 찾아간 선생님들과의 대화는커녕 교사들이 마치 파렴치범이나 폭력배라도 된다는 듯 경찰을 불러 폭압적으로 끌고 가 고발까지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 앞에 맨손으로 찾아간 우리들을 팔을 비틀리고 허리를 꺾여 끌려가 창원경찰서 지하실에 처넣었다. 3월이라고는 하지만 경찰서 지하실에는 냉기가 서렸지만 잡혀간 선생님들은 누구하나 두려워하거나 의기소침한 사람이 없었다. 교도소로 이감된 우리 네사람들은 그렇게 포승줄에 묶여 중죄인이 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제자들을 울렸던 것이다.

 

전교조 출범 비사를 말하려면 밤을 세워가며 해도 다 못한다. 1989년 여름. 전교조에 가입해 탈퇴 각서에 도장을 찍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 전교조를 지켜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열정은 그 뜨거운 열기보다 더 뜨거운 분노가 되어 명동단식농성장으로 몰려들었다. 더 이상 아이들 앞에서 10월 유신은 한국적민주주의며 불의한 사회에 침묵하는 게 미덕이며 민족의 반쪽을 적으로 취급하는 반교육, 반통일 교육을 할 수 없다며 그렇게 전교조는 결성됐고 전교조는 그래서 지켜냈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일까?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장악한 노태우군사정권은 전교조라면 이를 갈았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가르치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전교조는 군사정권에게 눈에 가시였다. 1600여명의 조합원 교사들은 정당한 절차도 없이 혹은 중죄인이 되어 끌려가고 짓밟히고 그렇게 교단에서 쫓겨나 거리의 교사가 되어 학교민주화, 사회민주화를 뛰어 다녔다.

 

폭력을 당하면 두려워하고 물러서는 게 인간의 보편적 심리다. 그런데 전교조 교사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교단에서 파면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짓밟혀도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다. 교사이기 때문에 양심을 지켜야 하고 교사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신념, 그것이 우리들을 지키는 힘이요, 신앙이었다.

 

참으로 순진했던 선생님들이었다. 정직과 근면, 성실을 가르치던 선생님들이었기에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옳은 일이기에 물러설 수 없었고 부끄럽지 않은 일이기에 당당했던 것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권은 제자들 앞에서 정의를 가르치고 진실을 말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요구를 파면과 직권면직을 맞섰다. 온갖 탄압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지켜 낸 전교조는 1999년 합법화된 후에도 참교육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전교조가 걸어 온 길...

 

참교육 실현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교조는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일어나 학교운영의 투명화와 민주화 실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경쟁과 통제위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교육관계법 개정과 정책개발, 사학민주화투쟁 그리고 교육 대안을 마련하며 오직 한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전교조의 노력으로 지금 학교 현장에는 촌지문화가 사라지고 채용기부금 근절운동을 벌여 사립학교법 개정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또한 수업 혁신을 추구하는 혁신학교도 전교조 교사들이 주축이 돼 나온 최근의 성과다. '입시위주,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도입한 혁신학교는 현재 전국적으로 총 575곳이 운영되고 있다. 그밖에도 학교현장의 권위주의 척결을 비롯해 '심야자율학습 금지' 등 강제적인 보충ㆍ자율학습 폐지도 전교조가 노력해 이룩한 성과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다고 했던가?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는 처음부터 전교조와는 공생할 수 없는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1999년 교원노조가 합법화 된 지 14년. 25년을 지켜 온 전교조. 그것이 교사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이기에 전교조는 그 길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박근혜정부는 이러한 전교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배치된다는 이율 또 다시 불법딱지를 붙여 거리로 내몰았다.

 

처음부터 조합원 9명을 조합원 자격 운운한 것은 전교조를 해체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했다. 박근혜대통령이 전교조를 거리를 내 몬 것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일까? 4.19혁명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박정희정권은 영구집권을 꿈꾸던 유신헌법제정과 12.12를 맞기까지 전교조의 민주화투쟁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결국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박근혜정부는 ‘법외노조’라는 선물을 전교조에게 안겨 준 것이다.

 

다시 법외노조를 선택한 전교조. 전교조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명박정부도 감히 못한 전교조 축출을 박근혜는 해냈다. 그들은 승리에 취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까? 착각은 자유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보 후 극우에 가까운 신문을 비롯해 비교적 온건한 보수성향의 신문까지 학교운영의 투명화ㆍ민주화와 촌지 추방·체벌 금지·사학비리 근절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정부의 정책에 경고를 하는 등 비판하고 있다.

 

전교조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1600여명의 교사들이 해직까지 당하면서 지켜낸 전교조가 박근혜정부의 탄압으로 무너지지 말 것인가? 단언컨대 전교조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합법이면하고 불법이면 하지 않는 참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근 조합원의 현장복귀며 사무실 임대철회라는 경제적인 탄압까지 가하겠지만 전교조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사랑하는 아이들 곁으로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교육자의 길이요, 제자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어제(10. 28일 17:00) 경남교육청 가자실에서 '전교조를 사랑하는 원로교사 일동 명의로 발표한 기자회견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 구글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8.03 07:00


“욕을 하려면 노무현이를 욕해야지 왜 박근혜대통령을 비판해? 임기라도 채워봐야지... 일도 제대로 하지 않은 대통령을 두고 무슨 말이 많아? 당신네들 빨갱이 아니야? 왜 북한과 똑같은 소리 하는 거야?”

 

엊그제 대전역을 지나오다 목격한 현상이다. 시민단체들이 ‘국정원선거개입 규탄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현장을 나이가 70이 넘었을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한사람이 주최 측에 대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집회만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시비를 거는 할아버지들이 있다. ‘대한민국어버이 연합’ 회원들이다. 이 단체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반대, 북한 핵 실험 및 미사일 실험 규탄, 북한인권법의 통과 촉구, 한미 FTA의 비준 촉구, 광명성 3호 발사 규탄을 앞장서 해오던 단체다.

 

어버이연합은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를 공격하기도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해 논란이 빚기도 했다. 이들은 광우병 보도 무죄 판결을 낸 이용훈 대법원장 공관 앞에서 출근 차량을 저지하며 관용차에 계란 투척을 했던 공격적인 행동파이기도 하다.

 

어버이 연합이라는 단체뿐만 아니다. 우리사회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분단되어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갈라놓은 동서분단도 있고 노동자와 자본가, 보수와 진보라는 통합의 가능성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이 분단보다 무섭게 도사리고 있다. 다른 분단이야 세상이 진보하면 갈등의 골이 거두어지겠지만 남북분단이 만들어 놓은 이념의 갈등은 쉬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분단의 땅을 또 갈라놓은 이념의 갈등!, 그 갈등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빨갱이니 종북타령의 뿌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지지배를 반대하고 자주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세력을 향해 겨누던 칼이 ‘사상범 보호 관찰령’이요, ‘치안 유지법’이다. 지지기반이 약했던 이승만정권은 친일세력의 지원이 필요했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도입한 사상이 바로 ‘반공’이라는 전가의 보도였다.

 

 

‘반공’이라는 무기는 이승만 집권 내내 진가를 발휘한다. 그들은 제주항쟁이며 여순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보도연맹 사건 등과 같은 민중의 저항을 반공이라는 무기로 제압하고 정치적인 주도권을 장악, 독재정권의 기반을 다져왔다.

 

이런 반공이라는 무기를 포기할 쿠데타 세력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으로 이어져 오던 불의한 집권 세력들은 한결같이 전가의 보도로 애용했던 게 반공이라는 무기요, 이를 뒷받침 하기위해 만들어 놓은 게 국가보안법이다.

 

권력에 기생해 생존을 유지했던 관변단체는 물론이요, 교육의 중립성을 주장하는 학교에서조차 반공교육은 도덕이나 윤리교육보다 우선시했고, 사상검열은 대를 이어 후손들까지 불이익을 당하게 했던 연좌제까지 기승을 부렸다.

 

김대중, 노무현과 같은 민주정부가 수립됐지만 반공이라는 무기는 잠시 모습을 감추고 있었을 뿐, 이명박,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신세력과 노골적인 반공이념으로 무장한 극우세력까지 등장해 민주세력을 향해 빨갱이,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며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공이라는 무기, 국가보안법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이들 단체는 누군가? 분단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보수란 없다. 반공이라는 무기로 존립의 근거로 마련해 민족주의를 공격하던 친일세력의 후예, 그들이 오늘날 집권세력인 새누리당이다.

 

이승만의 적자, 박정희 독재정권, 유신정권의 후계자, 전두환 누태우와 같은 학살자와 그 공모자들, 그들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 그들에 기생해 부를 축적한 재벌, 그들을 지지해 준 대가로 스스로 권력이 된 수구언론들.... 반공교육, 유신교육으로 마취된 불쌍한 민초가 보수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빨갱이 혹은 종북세력으로 매도당하면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바로 진보세력이요. 진보적인 성향의 단체다. 친일세력, 매국세력, 반공이라는 무기로 위장한 보수세력들은 민주화를 주장하는 단체를 종북세력으로 빨갱이로 매도해 선거 때를 비롯해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민주주의를 주장해도 빨갱이요, 통일을 주장해도 종북세력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도, 친일잔재 청산을 주장해도 종북세력이요, 빨갱이가 된다. 그들은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조중동매와 종편이라는 이름으로 일베라는 이름으로 위장해 그들의 생존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쓰러진 이승만의 동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박정희 기념관을 짓고 백선엽장군상을 만드는 세력이 그들이다. 심지어 이들은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전사모까지 만들어 분단의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주류로 행세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다. 민주주의 헌법에는 양심의 자유는 허용하지만 사상의 자유가 없다.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면 종북이나 빨갱이가 되는 이상한 나라. 그게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기득권 세력들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6.13 07:00


 

 

"6월 민주항쟁은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분수령이었다"

박근혜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26주년 기념식에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한 말이다. 그는 또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골을 넘고 국민화합의 꽃을 피우는 일이 시급하다"고도 했다.

 

말이라고 하면 다 말이 되는가? 6·10이 무엇인가? 전두환의 호헌 조치와,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혁명에 버금가는 민주화운동이 아닌가? 전두환 노태우가 국권을 찬탈하기 위해 광주시민을 학살한 것도 모지라 대학생을 고문해 죽이는 폭압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요, 주권회복운동이다.

 

백주대낮에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는 간악한 무리들이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만든 정당이 어이없게도 민주정의당이다. 민주나 정의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태생적으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정권이 민주며 정의를 말하는 것은 광주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짓이다.

 

전두환의 민주정의당과 임영삼과 김대중의 통일민주당, 그리고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만든 게 민주자유당(민자당) 아닌가? 한나라당의 전신이 민주자유당이라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친일당이라는 별명도 모자라 차떼기당, 날치기당, 성추행당, 부동산 투기당, 군면제당...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려고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꾼게 아닌가?

  

그것도 입만 열면 빨갱이 타령하던 그 빨강색으로 말이다. 한나라당의 본질을 간파한 국민들의 지지 이탈이 두려워 박근혜가 간판을 바꿔 새로 누리겠다고 붙인 이름이 새누리당 아닌가? 국정원의 선거개입, 유신정권 시절 수구인사의 등용, 역사왜곡, 진주의료원 폐업 물타기, 남북대화 무산, 뉴라이트 국사교과서 국정인정, 전두환 추징법을 반대하는 하는 이유 등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다시 인구(人口(인구))에 회자(膾炙(회자))되고 있다. 한겨레신문이 '크라우드 소싱'이라는 형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긴 재산 찾기에 나서고 부터다. 전두환이 납부해야할 추징금은 1,672억, 노태우는 230억이 아직 미납상태로 남아 있다. 법대로 하면 벌금을 추징금은 자진납부 아니면 은닉재산을 추적해 강제로 거둬들여야 한다.

 

여론이 악화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전두환과 선긋기에 나섰다. 여당대표로 있었던 자신의 책임을 덮어두고 지난 정권에 책임을 돌리겠다는 의지다. 으ㅢ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는 전두환과의 관계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6억수수 사실)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게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민족을 배신한 사람, 역적 짓을 한 사람, 나쁜 짓한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치고 당당하게 산다. 일제 때 일본 사람보다 더 일본인다웠던 박정희를 비롯한 친일세력이 그렇고, 권력의 시녀가 된 언론이 그렇고, 주권을 훔친 쿠데타세력이 그렇고 교주를 배신한 종교지도자들이 그렇다.

 

전두환의 경우를 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정식으로 등재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인명피해만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이다. 지금도 무고한 희생자들의 가족의 한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병실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정작 그 가해자인 전두환은 귀족행세를 하며 수구세력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중죄인을 전직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그가 살고 있는 연희동 사저 경호비용만 연간 8억5천2백만원씩 들어가는가 하면 그밖에도 대통령 특수경호대 비용은 따로 더 국민의 혈세로 부담해야 한다니 이런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을 두둔하고 추징금 1672억을 눈감아 주겠다는 정당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새누리당과 공생관계에 있는 뉴라이트의 역사교과서를 개악하겠다는 진의를 알만 하지 않은가?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5.17 07:00


 

 

 

역사란 무엇인가?

학생들 중에는 ‘국사나 세계사가 어려워서 싫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왜 그럴까? ‘외워야할 게 너무 많은데다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용어들이 너무 많아 시작부터 정나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역사는 암기 과목이다...?

5·18광주 민중항쟁 33주년을 맞으며 역사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에게 역사가 나와 무관한 암기과목으로 배워 역사의식조차 없는 관념적인 인간을 만들어 놓는 역사교육이 안타까워하는 얘기다.

 

내일은 광주민중항쟁 3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행사 주최가 되어야 할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가 기념식에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기념행사에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 기념곡 지정을 국가보훈처 등 정부가 ‘공식답변 시한까지 단 한마디의 언급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한달여동안 광주일대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사람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이니 광주민중항쟁‘이라고 한다.

 

광주에서 왜 민중들의 항쟁,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것인가?

 

33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당시 10대 청소년들이 4~50의 나이가 됐으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때가 되어서일까?

 

다른 역사는 잊어도 좋지만 그날 빛고을 광주에서 일어나 사건을 절대로 잊어서 안된다. 왜냐하면 광주를 제외한 다른 도시의 사람들은 광주시민에게 크다란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고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르다 1979년 10월 26일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중앙정보부장(현국정원 전신)의 손에 암살당한다.

 

10·26사태로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평소 박정희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권력의 비위를 맞추던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같은 무리들이 제2의 쿠데타인 12·12사태로 권력을 다시 찬탈한다.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한 정치군인들의 만행에 분노한 청년, 대학생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자 겁을 먹은 전두환 일당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해 침묵을 강요한다.

 

1980년 5월. 광주는 살육의 도시가 됐다.

 

 

‘80년 5월 광주는 고립된 섬이었다. 광주의 상황은 살아있는 도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핏발이 선 계엄군은 군홧발로 시민들을 짓밟았고 총칼을 휘둘렀다. 남자와 여자가, 학생과 직장인이, 임산부와 어린아이가 죽거나 상처를 입었다. 국민 안위라는 신성한 의무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정치군인들로, 광주는 주검의 도시로 변해버렸다...’

 

수많은 시인들이,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청년과 학생들이 숨죽여 울부짖고 가슴을 치던 날.. 그날 침묵하던 다른 도시의 청년과 학생들을 대신해 그렇게 광주시민은 도륙을 당했던 것이다.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고 공모자 노태우까지 대통령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처절하게 짓밟은 사건을 우리는 이름붙여 ‘광주민주화운동’이니 ‘광주민중항쟁'이라고 부른다.

 

1980년 광주에는 ‘북괴의 무장간첩들이 나타나 난동을 부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용감한 우리 국군이 진압 중’이라는 조중동 기만에 힘없는 국민들은 소리 죽여 속으로 울어야 했다.

 

 

 

그 살인자 전두환을 못잊는 회원수 1만 8475명의 ‘전사모’(전두환을 사모하는 사람들)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제작한 5.18기념재단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합천에서는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돼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전두환경호실장이었던 안현태는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전두환의 출신 대구공고 홈페이지에는 단임제대통령을 실현한 ‘한국정치 민주화에 불멸의 초석’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전재산 29만원밖에 없다던 전두환. 12.12사태 촉발책임과 5.18광주시민 학살, 수 천억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에 관한 죄를 물어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의 실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 받았던 사람이 은닉 재산으로 의심되는 경기도 용인 땅이 456억원에 매각하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호국 영웅들에게 주어지는 ‘태극무공훈장’의 반납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7년째 거부하고 있다.

 

살인자 전두환의 경호를 위해 경호원은 11명, 그의 사저에는 경비시설 5개소에 6명이 경비하고 있으며,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국민의 혈세 8억 193만원이 소요되고 있다.

 

 

사망자가 163명, 행방불명자가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명, 아직 연고가 확인되지 않아 묘비명도 없이 묻혀 있는 희생자 5명 등 총 5,189명....

 

전두환 일당이 호의호식하며 ‘각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라며 존경받는 나라에는 민주주의도 정의도 없다. 그날 목매어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부르지 못하는 나라에는....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11.18 07:00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문재인과 안철수후보의 단일화 협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의 단일화 협상을 지켜보면서 김영삼후보와 김대중후보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민감한 때문일까?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 협상은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몰아내고 빼앗긴 주권을 찾을 것인가를 놓고 숨죽이며 지켜보던 국민들은 결국 협상에 실패, 파국을 맞고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뼈저린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18대 총선을 일컬어 유신세력과 민주세력, 수구기득권세력과 진보세력, 보수대 진보의 한판승부라고들 한다. 과연 두 후보가 국민들의 열망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단일화를 이루어 민주주의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이루어 줄 수 있을까? 야권 단일후보가 당선되면 백척간두에 선 우리 교육을 살려 낼 수 있을까?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교육공약을 보면 누구의 공약이 더 좋은 지 구별하기 어렵다. 전문가가 아닌 유권자들에게 학부모의 감성적이고 달콤한 유혹의 말잔치로 표를 얻겠다는 속셈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모두 입시 지옥과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입시제도를 단순화하고 기회균등 선발제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문재인의 경우, 고등교육 재정을 GDP 1%로 확대하는 것, 국가교육위원회 등을 공약하였다. '행복한 중2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공교육 12년 동안에 1년 정도는 공부를 쉬고 진로를 찾는 특이한 공약도 제시하였고, 지금처럼 획일적인 일제고사를 개선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외국어고, 국제고, 자립형 사립고의 학생우선 선발권을 없애는 방안, 지역별 거점대학과 특성화 혁신대학을 육성하고 지역고용할당제를 실시하는 방안, 정부책임형 사립대를 각 대학 희망에 따라 실시하는 방안 등을 내걸었다.

 

 

 

안철수 후보는 며칠 전 한겨레신문 기자와 인터뷰에서 교육 문제의 핵심을 묻는 질문에 “공교육강화다. 교육은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다. 사회의 문제가 교육의 문제와 얽혀 있다. 교육의 문제가 풀리면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학벌사회가 무너져야 한다. 대졸자와 고졸자 사이의 격차가 해소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까지 변화해야 하는 문제다. 점진적으로 나아가겠다.”고 확신에 찬 소신을 밝혔다.

 

후보들이 당선되며 공약이 실천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당선된 대통령이 100% 공약을 지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후보의 공약에 귀기우리는 이유는 우리교육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전력을 보면 안다, 특히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박근혜의 살아 온 길, 박근혜 주변의 인물들과 문재인 안철수의 주변 인물들은 어떤가?

  

 

그래도 판단이 어렵다면 그들의 교육관을 보자.

 

18대 대통령선거는 교육문제도 정치문제나 사회문제와 만찬가지로 철학이 문제다.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가 아니면 공공재로 보는가의 차이다. 박근혜후보와 문재인, 안철수후보의 차이는 한 줄로 세울 것인가 아니면 여러줄로 세울 것인가의 차이다.

 

박근혜후보는 학벌사회를 눈감고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무한경쟁의, 승자독식주의, 경쟁지상주의교육을 하겠다는 것이요,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기회를 균등히 해 여러줄로 세우겠다는 차이다.

 

‘상품’으로 보는가 ‘공공재’로 보는가의 차이.... 박근혜후보의 교육관은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과 복사판이다. 그래서 박근혜를 말할 때 ‘이명박근혜’라고 한다.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가치관은 한나라당의 철학이요, 이명박의 철학이요, 박근혜의 철학이다.

 

문재인후보나 안철수후보의 철학은 교육을 상품이 아닌 공공재로 보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균등히 하고 한 줄이 아닌 여러 줄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안철수후보의 말처럼 학벌이란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다. 정치계, 경제계, 학계, 법조계, 언론계, 사회문화와 종교계 그리고 재벌사회에까지 학벌은 거대한 마피아세력을 연상케 한다.

 

학벌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기 어려울만큼 견고한 성을 쌓고 있다. 지도자만 깨어 있으면 그리고 그 지도자가 사람을 골라 쓸 분별력과 철학이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우리가 단일후보에 숨죽이며 기대하는 이유도 그렇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6.08 06:30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일제시댄지 유신시댄지 착각이 들 정도다.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던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의 손녀 결혼식에 친일인사의 손자 윤인구 KBS 아나운서가 맡았다는 결혼식 예기다. 결혼을 왈가왈부하자는 얘기다 아니다. 전두환은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군형법상 반란·내란과 뇌물수수죄 등으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이 확정돼 그 중 231억 원을 미납한 상태다.

 

“전재산이 29만원 뿐”이라던 광주학살의 주역인 전두환. 벌금조차 231억을 체납한 사람이 손녀의 초화결혼이라니... 전두환 손녀 전수현(26)의 결혼은 예식을 치르는데 만 무려 1억원대 비용이 든다는 초 화화판 예식장이다. 이 신라호텔의 다이내스티홀은 장동건·고소영 부부와 전지현, 강호동 등 톱스타들이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두환 손녀의 결혼식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또 한가지 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사람이 KBS아나운서 윤인구다. 윤인구가 누군가? 공영방송 아나운서가 지인의 결혼식 사회를 맡는 문제에 대한 시비는 여기서 논외로 칮자.

 

윤인구아나운서는 일제 침략기 최고의 악질 친일파 매국노 윤치영의 손자다. 찢겨진 산하의 저자 정경모선생의 폭로에 따르면 윤치영(伊東致映-이토치에이, 1898-1996)은 태평양 전쟁지원과 참가를 독려하고 시국강연을 다니며 친일 기고문 발표했던 인물로 여운형과 김구의 암살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손자가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의 손녀 결혼식 사회자라니....  윤치영은 해방정국의 제헌 국회의원과 초대 내무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공화당 의장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식민지잔재청산 없이 출발한 해방정국은 친일세력들이 득세했다. 지지기반이나 정당성이 약한 세력들이 믿을 수 있는 곳이란 외세에 의존하는 길밖에 없었고 5.16, 12.12를 통해 쿠데타세력이 재벌과 친일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지배계급을 형성하게 된다. 정당성이 필요했던 그들은 거창양민학살, 여순사건, 제주양민학살, 보도연맹사건을 통해 양민을 학살하면서 기득권으로 자리를 잡은 세력들이요, 그들이 해방 66주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 지배세력의 의 맨얼굴이다.

 

 

1980년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 노태우는 아직도 전직대통령으로서 현행법에 따라 ‘경호 및 경비, 교통·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지원, 본인 및 가족에 대한 치료 등의 예우를 받고 있고 4.19 혁명을 뒤집어엎은 5.16쿠데타 세력과 그 후예들은 그의 딸 박근혜를 중심으로 재집권을 꿈꾸고 있다.

 

학살자 전두환이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탄생한 제5공화국, 아직도 전두환의 출생생지인 경남합천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일해공원이 관광객을 희롱하고 있고 전두환의 고매한 인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전사모카페'를 만들어 각하의 만수무강을 비는 용비어천가를 노래하고 있다.

 

전두환의 손녀 전수현(26)의 결혼식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반동세력, 수구언론, 쿠데타의 후예들이 지배하는 암흑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과 쿠데타 세력의 후예 새누리당은 종북세력 척결을 외치며 공안정국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침략기 최고의 악질 친일파 매국노의 손자가 득세하고 백주대낮에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 학살한 전두환이 존경받는 사회. 4.19 혁명의 고귀한 피로 일궈낸 민주주의를 박살낸 5.16쿠데타의 주범, 박정희의 딸이 내일의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나라.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어떤 모습인가? 혹은 정치를 말하고 혹은 도덕을 말하고 윤리를 말한다.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말하는 그들... 그들에게 민주니 자유니 정의니 평화를 말 할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일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4.09 07:00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읽다보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나라라니...? 김구선생님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은 친일세력에 의해 암살당하고 그들이 권력을 장학했는데...!

 

대한민국이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 나라가 맞기나 할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한 헌법 전문에서 밝힌 4·19 민주이념을 계승' 나라라면 왜 혁명으로 세운 제 2공화국을 군사쿠데타로 뒤집어엎은 박정희의 딸이 '새누리당'의 대표일까?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을 살펴보면 이승만이 집권하면서 친일세력을 등용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인들을 암살하거나 제거하고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경찰, 군대까지 친일 세력들이 장악하고 이승만의 ‘자유당’이 집권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해방 70년의 세월이 가까워 오는데 아직도 대한민국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자유당에 뿌리를 둔 새누리당이라는 정당이 집권당이 되어 있다. 새누리당은 헌법이 명시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 세력들이 아니라 총칼로 4·19를 짓밟은 5·16세력들이 아닌가? 5·16이란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도 혁명이 아니라 정변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옛날 말로 하면 반역을 하면 집안의 3족을 멸한다는 반역이요, 역적질이다.

 

5·16이 뭔가? '5·16 군사정변(쿠데타)은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소장 박정희, 중령 김종필, 소령 이낙선 등을 비롯한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8기, 9기 출신 일부 장교들이 장면 내각의 무능력과 사회의 혼란을 명분으로 제6군단 포병대, 해병대,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해 청와대를 장악,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이다.'(위키백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에도 5·16을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제2공화국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헌법이란 ‘한 나라 최고의 상위법’이요, ‘국가의 통치 체제에 관련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 따위를 규정’한 나라의 정체성을 규정한 최고의 법이요, 국가권력의 남용을 억제하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는 기본법이다.

 

4·19를 짓밟은 세력들이  ‘4.19 민주이념을 계승' 한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니...?

새누리당은 헌법에 명시한 '4·19정신'을 계승할 수도 해서는 안되는 정당이다. 헌법을 총으로 무너뜨린 세력들이 어떻게 나라의 살림살이를 맡은 집권당이 될 수 있는가? '헌법 전문에 4·19정신을 계승한다는 국가가 어떻게 정권을 장악하고 또 다시 총선에서 집권을 하겠다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을까?

 

 

4·19란 ‘1960년 4월에 학생을 비롯한 국민들이 이승만 자유당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벌인 민주 항쟁이다. 

 

혁명을 총칼로 무너뜨리고 헌법을 유린한 세력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집권당인 새누리당이다. 친일에 뿌리를 둔 이들이 자유당이요. 자유당은 5·16 쿠데타세력로 세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으로 계승한 게 아닌가? 

 

19년간 민주공화당의 뒤를 이은 세력이 백주에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도둑질한 전두환일당들이 만든 정당이 민주정의당이 아닌가?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것도 모자라 정당이름까지 ‘민주’니 ‘정의’라고 했으니 이건 전체 백성들을 기만한 코미디라고 보는게 옳지 않은가? 

 

집권의 야망을 위해 유신잔당과 전두환살인정권과 손잡은 김영삼대통령이 만든 당이 ‘민자당’(민주자유당)이요. 그 민자당이 신한국당이니 한나라당이니 하며 이름을 바꿔오다, 오늘의 새누리당이 아닌가? 북한이 권력을 세습한다고 욕하지만 따지고 보면 권력 승계면에서는 대한민국의 권력도 북한에 못지 않게 불의한 세력들이 세습해 오지 않았는가?

 

해방 70년이 다가 오는데...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말하는 사람들이 4·19정신을 계승한 나라의 주인이라니...  혁명으로 세운 제 2공화국을 뒤앞은 쿠데타 세력이 집권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왜 법은 그들에게 그렇게 관대할까?

입으로는 정의니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부추기는 군사정권의 후예들을 왜 좋아할까?

 

돈벌이를 위해 탈세를 하고 땅투기를 하는 온갖 부패와 비리의 근원지가 된 정당을 지지할까? 왜 백주 대낮에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세력들을 지지할까? 헌법을 짓밟고 쿠데타를 일으킨 반역자의 딸에 열광할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와 평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나고 싶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1.16 07:00



나는 지난 13일. 동아일보 사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교조 간부가 변절을...?’

 


그런데 그날 전교조 홈페이지에는 ‘동아일보의 치졸한 보도에 분노한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아니..? 어떻게 된거야? 어제는 동아일보 사설에서 전교조 간부가 조직의 입장과 다른 말을 해 동아일보가 칭찬을 하더니....

 

                                                         <이미지 출처 : 다음검색에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동아일보는 1월 13일자 전교조 간부 “인권조례로 학생보호 어렵다”는 사설에서 전교조 생활지도국장이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간 인권침해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어렵고, 학생에 의한 교사 인권 침해를 막는 데도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며 ‘학생생활 문제를 담당하는 간부가 전교조의 공식 방침과는 다른 의견을 용기 있게 제기’했다는 보도를 한바 있다.

동아일보의 이런 보도에 대해 전교조는 ‘동아일보의 치졸한 보도에 분노 한다’며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는 자신이 참교육실천대회 참가자라 속이고 참석했다가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발각되어 관련 자료집을 회수 당하고 행사장에서 쫓겨났으며 학생생활국장과는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며 ‘동아일보의 치졸한 보도태도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전교조의 억울함은 보도 자료에서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사건의 내용은 전교조 학생생활국장이 발표문을 통해 ‘학생인권조례는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이지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을 뿐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며 기자와 인터뷰를 하지도 않고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동아일보는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조차 상실하고 있으며 오직 전교조를 음해하고 학생인권조례를 훼손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전교조와 동아일보는 오랜 세월동안 앙숙의 관계였다. 학교폭력에 대한 시각의 차이도 극과 극이다. 전교조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한 학생의 인권존중과 경쟁이 아닌 인성교육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동아일보는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 교사를 가해자로 몰아세우고 그들의 손발을 묶어 놓는 조치’라며 우려하고 있다.
동아일보뿐만 아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적인 교원단체인 교총조차도 학생인권조례는 ‘인권의 탈을 쓴 반인권적인 조례요, 학교붕괴조례’라며 학생들을 망치고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학생인권조례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동아일보는 자사를 민족지라고 소개한다. 동아일보는 진정 민족주의 철학을 실천했는가? 1920년 ‘민주주의 지지’, ‘문화주의 제창’이라는 사시를 내걸고 창간한 신문이 동아일보다. 일제시대 베를린 올림픽 때 ‘일장기 말살사건’을 두고 동아일보는 애국을 말한다. 

일장기 말살사건은 동아일보의 입장이 아니라 당시 이길용기자 개인이 한 일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동아일보가 얼마나 반민족 친일신문이었는가는 최근 법원이 사주 김성수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는 판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승만, 독재를 미화하고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는 유신정권, 군사정권을 지지 미화한 신문! 자사의 이익을 위해 독자들의 눈과 귀를 막아왔던 신문. 선정적인 기사(2006 "클릭해, 다 보여줄게")까지 마다않는 신문이 민족지인가? 동아일보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라는 사시에 부끄럽지 않게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1.03 06:37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민주화운동의 대부 김근태님이 타계하셨다. 1985년 9월 고 김근태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년)의장 시절,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경감에게 차마 사람으로서 당할 수 없는 악랄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한 후유증을 앓다가 올해 64세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1988년까지 김근태님을 고문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은 목사가 되어 지금은 진리를 외치고 사랑을 말하고 있다.


"본인은 9월 한 달 동안,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 정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위해 가했습니다. 고문을 하는 동안 비명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었습니다. 그리고 비명 때문에 목이 부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 즉각 약을 투여하여 목을 트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9월4일 각 5시간씩 두 차례 물고문을 당했고,9월5일,9월 6일 각 한차례씩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골고루 당했습니다. 8일에는 두 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고....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본인은 알몸이 되고 알몸상태로 고문대 위에 묶여졌습니다. 추위와 신체적으로 위축돼 있는 상태에서 본인에 대해 성적인 모욕까지 가했습니다. 말씀드리면 제 생식기를 가리키면서 "이것도 좆이라고 달고 다녀? 민주화 운동 하는 놈들은 다 이따위야!" 이렇게, 말하자면 깔아뭉개고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고문을 할 때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눕히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 발목과 무르팍과 허벅지와 배와 가슴을 완전히 동여매고 그 밑에 담요를 깝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 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하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와 (이때 방청석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 본인도 울먹이며 진술함) 이때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러한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인간적인 절망에 몸서리쳤습니다.,,,,         

                                                                              -  김근태 고문의 법정진술 중에서 -  


김근태고문이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수기, '남영동'을 읽으면 소름이 끼친다.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한 짓을 할 수 있을까? 당시를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군사정권이 저지른 잔인한 폭력을 필설로 차마 다 전달하기 어렵다. 권인숙성고문사건을 비롯해 삼청동 지하에 끌려가 멀쩡한 사람이 고문을 당해 병신이 되거나 죽어나가기도 하고 개처럼 짓이겨 지기도 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 지난 날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지켜내겠다는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암흑의 시대, 박정희 유신정권과, 광주시민을 무참히 학살한 전두환, 노태우시대를 우리는 공포의 시대 암흑의 시대라 한다.  한반도 반쪽이 최루탄연기로 뒤덮이던 그 때,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권력으로 가장한 폭력이 얼마나 인간을 처절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가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인간의 탈을 쓴 무리들은 주권을 말하고 진실을 말한다는 이유로 잡아다가 물고문, 전기고문을 가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멀쩡한 사람을 병신을 만들어 놓기 다반사였다. 김근태고문 혼자만이 당한 얘기가 아니다. 생사람을 잡아 간첩을 만들어 처형하기도 하던 인간의 얼굴을 한 악마...
 
그들이 도대체 누굴까? 그들은 다름 아닌 오늘날 국회의원 중에도 있고, 이 나라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는 인물 중에도 있다. 거짓말 같은 사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민중을 짓밟은 가해자들이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 안니가? 민족지 운운하는 조중동이요, 보수로 위장한 수구세력들이 아닌가?


군사정권의 후예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을 왜 사람들은 못 잊어 지지하고 연연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침이라는 이데올로기...
경제를 살린다는 이데올로기...
안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빨갱이라는 이데올로기...

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난 빈민들도 성장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노동자들도,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들도 거리로 뛰쳐나가 민주화를 외쳤던 게 1980년대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생활의 터전을 박차고 민주화를 외치다 감옥으로 혹은 수배자가 되어 쫓기며 살아 왔을까? 


교육민주화를 외치다 빨갱이가 되어 거리로 쫒겨난 교사들...

김근태고문의 타계 소식을 들으며 필자가 겪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채운 채 제자 앞에서 제자와 함께 취조를 당했던 아픈 기억이다.

‘선생들이 아이들이나 가르치지 않고 무슨 데모냐?’고... 욕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최루탄으로 뒤덮혔던 당시의 학교에는 군사문화의 잔재가 여학생들에게 군사훈련까지 시키며 교과서는 온통 지배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참다못한 교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가 2000여명이 교단에서 쫓겨났다. 이런 잘못을 항의하러 교육청에 교육감을 면담하러 갔다가 교육감의 고발로 잡혀 포승줄에 수갑을 채우고 검사 앞에 조사를 받으러 갔던 일이 있다. 평생 거짓말도 잘 못하고 아이들과 교실을 쳇바퀴 돌듯 살던 사람이 유치장에 교도소에 끌려 다니다 잡혀 간곳....

포승줄에 묶여 수갑을 채우고 제자 앞에 나타나....


“선생님~!”

당시에는 여상을 졸업한 제자들이 취업해 간 곳은 은행을 비롯해 기업체와 생산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타자를 잘 치는 학생은 법원이나 검찰청에도 취업이 됐던 것이다. 제자 앞에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꼴꽁 묶여 수갑이 채워진 모습으로 나타난 선생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들락거리던 제자,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기막힌 일은 내가 들어 간 검사실에는 웬 앳된 여성이 나와 마찬가지로 포승줄에 묶인 채 수갑을 채워 의자에 중죄인처럼 앉아 있었다. 이 여자! 나를 본 순간 “아~ 선생님!” 그 죄인도 내가 재직하던 학교의 졸업생이었다. ‘미제 침략사’라는 책 한 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잡혀 온 노동자 제자.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을 잡아야하는 승진도 하고 출세를 할 수 있는 실적 때문에 가택수색을 하다 나온 미제침략사'라는 책 한권... 그 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이적찬양고무죄’로 잡혀 왔던 것이다.

김00 검사. 이름도 잊을 수가 없다.
“오늘 잘 됐군. 사제지간에 심문하번 해 보자!”
그 징그러운 웃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인간백정 이근안은 목사가 되어 사랑을 말하고, 당시 민주주의를 짓밟던 판검사와 경찰 고위간부, 조중동, 한나라당은 아직도 이 땅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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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1.12.10 06:30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한나라당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권력의 앵무새 찌라시가 한나라당 위기를 강조하면서 왜 위기인가는 한미디도 없다. 위기를 맞았으면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부터 할 일이지 제2 창당이 어쩌고 하는 건 뭔가? 간판만 바꿔단다고 딴나라당, 부자당, 성희롱당, 차떼기당, 뉴라이트당... 정체성이 바뀌고 개과천선할 수 있나? 거기다 독재자의 딸 반근혜가 등판이라니...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한나라당이 재창당하려는 진짜 이유?

정당이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당연히 그런 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정체성이 없다. 이름은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지만 그들이 서민을 위한 정치는커녕  재벌들을 위한 정치,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왔다. 지금까지 순진한 유권자들에게 속내가 들킬만하면 쇄신이나 뭐니 하며 이름도 바꾸고 간판도 바꿔봤지만 결국 달라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박근혜라니..? 박근혜가 누군가? 그는 쿠데타의 주역, 옛말로 하면 3대의 씨를 말린다는 역적의 딸이 아닌가? 4·19혁명으로 세운 정권을 총칼로 무너뜨리고 군사정권을 세운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독립군을 잡아내던 일본군 정보장교의 딸이 아닌가? 통일이 될 때까지 주민자치를 하지 않겠다고 유신헌법에 못 박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킨 장본인의 딸이 아닌가? 그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무슨 일을 했기에 집권당의 대표를 할 자격이 주어지는가? 그의 뒤를 따라는 떨거지들은 하나같이 권력에 눈이 어두워 한자리를 얻어 보겠다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나라당이 진짜 위기라는 걸 알면 그들이 한 짓을 국민들 앞에 통회하고 반성부터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피흘려 이룩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얼마만큼 후퇴시켰는지,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고, 교육을 황폐화시켜 사교육비에 시달리게 했는지. 종교갈등을 심화시켜 또 다른 분단을 만들어 놓고, 부자감세로 서민들이 얼마나 지치고 힘겹게 버티고 사는지...

4대강 사업인가 환경파괴인가를 한다고 얼마나 많은 혈세를 낭비했는지... 한미 FTA로 농민들과 영세업자들이 파산의 위기에 내몰릴 처지에 놓였는지... 시도 때도 없이 날치기로 주권자의 권리를 얼마나 도둑질 했는지... 주권자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종편을 만들어 언론 소비자들의 주권을 빼앗고 언론 생태계를 파괴했는지...

이제 더 이상 쇼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유권자들도 알만큼 안다. 그들에게 손뼉을 치는 세력이 누군가? 독재 권력의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소수의 사람들이나, 권력의 시혜를 쫒아 다니는 주변인들, 권력의 비위를 맞춰 이권을 챙기는 장사꾼... 재벌.., 한자리 해먹겠다고 양심도 버리고 호시탐탐 권력의 주변을 맴도는 쓰레기들을 제외하면 한나라당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군가? 유권자들도 속힐만큼 속았고 알만큼 안다. 왜 또다시 창당인가 뭔가를 하겠다는 것인지를...

창당을 하면 정말 당이 달라질까?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분명한 사실은 한나라당이 제 2의 창당을 하겠다는 뜻은 유권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못된 짓을 한 게 들통나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간판을 바꿔단다고 딴나라당이 우리나라 당이 되겠는가? 그들은 애초부터 주권자를 섬기겠다고 당을 만들었던 게 아니다. 한나라당의 전신이 누군가?

민족을 배신한 일제시대 친일, 부일세력들의 후손이라는 것까지는 거론하지 말자. 1949년 11월 독재자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창당한... 4·19혁명으로 무너진 자유당이 그들의 원조다. 이 자유당의 후예들은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박정희 일당이 흡수, 1963년 2월 26일 민주공화당으로 간판을 바꿨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 무리들이 만든 후신이 창당한 민주정의당을 모태로 태어난 사생아 아닌가?

한나라당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창당이 아니라 속죄부터 해야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할 수도 있고 오해 살 일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용서를 했다느니 간판만 바꿔 달아놓고 민주수호 천사로 나서는 꼴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피해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 있는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기만과 변명으로 위장한다고 계속 속힐 것이라고 믿는가?

한 두번 속이니까 넘어간 순진한 백성들에게 또다시 그 버릇이 도져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당신네들이 한 짓을 호리라도 다 갚기 전에는 역사의 심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도....한나라당이 지금 할 일은 창당이 아니라 유권자들 앞에 속죄하는 일이라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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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1.11.15 06:30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불편부당, 정의 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


조선일보 사시(社是)다. 조선일보가 ‘정의(正義)를 옹호’하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기사를 쓰는 신문이라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겉으로는 ‘특정 계층의 표현 기관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대변지’로 자처하면서 기사를 보면 특정계층의 대변지 노릇을 철저하게 하고 있다. 사회적 쟁점이 되는 갈등문제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나서서 기득권 세력을 지지, 옹호하는 편파왜곡보도를 마다하지 않는 신문.

특히 선거철만 되면 이성을 잃고 특정후보의 선거운동본부가 아닐까 오해할 정도로 심각한 편파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는 신문이 조선일보다. 아니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조중동을 비롯한 기득권을 수호하는 수구 언론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조선일보는 현재 ‘스포츠조선, 소년조선일보, 월간조선, 톱클래스, 여성조선, 이코노미플러스, 위클리조선, 월간산, 헬스조선, 디지털조선일보, 에듀조선, 조선아이에스(주), (주)맛있는공부, (주)조광 출판인쇄, 조선일보생활미디오(주), 주간조선, 월간낚시, 가정조선, 여성잡지Feel, 중학생조선일보, 키위닷컴, 카리뷰, 모닝플러스, 조선닷컴 싱글N, 더자연 등을 운영하는 언론산지 재벌 계열산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조선일보가 얼마나 후안무치하고 개념 없는 신문인가는 조선일보가 운영하고 있는 계열사 이름을 보면 안다. ‘징병제 실시에 감사하고, 근로동원을 고취하고, 일본어 상용 주장,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던... 잡지가 조광(朝光)이다. 이런 매국잡지의 이름을 해방된지 70년이 가까워 오는 나라의 인쇄사 이름으로 버젓이 사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만하지 않은가?

과거는 덮어두자. 재벌계열사를 방불케 하는 조선일보는 대자본가와 친일족벌일가들이 소유한 신문사다. 조중동과 삼성, 그리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등 한국사회 지배계층은 모두 한집안(?)이다. 조선일보는 태평양, 롯데(농심), 조양상선, 김치열 전 내무부 차관, 대전 피혁, 효성그룹을 거쳐 이명박 현 대통령의 자녀와 연결되어 있다.

식민지시대 천황의 적자이기를 원하던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 신문이  ‘불편부당, 정의 옹호’ 신문이라고 하는 것은 독자들을 기만하기 위한 가면이다. 일제시대는 황국시민을... 이승만, 박정희 시대는 독재자를... 전두환, 노태우시대는 살인정권을... 친부자정권 이명박시대는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하면서... 한미 FTA비준만이 살 길이라고 강변한다. 매국과 친독재 친미를 살길이라는 신문, 조선일보는 1%의 부자들을 위해 99%의 서민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감기는 사이비 언론이다.
 


빛은 어둠을 싫어한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뭘까? 당연히 자신의 과거를 건드리는 사람이나 단체요, 자신의 이익에 흠집을 내는 세력이다. 조선일보가 전교조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렇다. 곽노현을 싫어하고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당선될까 노심초사했던 신문이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의 전교조 보도는 발악적이다.

막말 좌편향 수업... 학생들, 보름새 4번째 인터넷에 고발(2011. 11.14)/지금 서울시장 선거는 크게 잘못 가고 있습니다(2011. 11. 14)/노동자들의 막말 좌편향 수업..(2011. 11. 14)/“민주노동당 해산 법적 근거 충분하다”(2011. 11. 8)/초등생이 ‘FTA 반대 집회’ 무대 올라 4행시 하며 “리명박, 천벌 받아라” 외쳐(2011. 11. 14).... 


하루동안 보도한 악의적인 전교조관련 보도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조선일보가 보여준 편파보도는 또 어떤가?

박원순 후보 학력 위조 논란 계속 이어져/박원순의 위선의 가면 벗기고 보니/박원순 가족 전체가 벌여온 난잡한 굿판들/박원순, 통영의 딸을 짓밟지마라/박원순, '프레임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박원순이 시장되면 안되는 세가지 이유/박원순, 나경원에 밀리는 이유/박원순, 의혹 또 의혹... 지지율 추락....

10월 14일 하루동안의 기사가 이 정도라면 조선일보가 얼마나 악랄하게 박원순후보 낙선운동을 했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불편부당, 정의 옹호’라는 조선일보의 사시(社是)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가를 보여주고도 남는다. 이런 신문이 권력의 온갖 시혜를 입고 오는 12월 1일부터 종합편성체널(CSTV 조선) 방송을 시작한다. 'CSTV 조선'이 어떤 내용으로 방송될 지는 불문가지다. 조선일보는 말한다. ‘정론직필’... 그리고 ‘불편부당, 정의 옹호’가 회사의 경영 방침이라고... 조선일보가 신문이 아니라는 걸 알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도 언론의 자유도 허망한 꿈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6.03 05:30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그리고 전교조와 같은 조직은 좌익이니 빨갱이라고 한다. 이들이 좌익이니 빨갱이라는 표현은 ‘악의 상징’으로 제거되어야할 대상’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우익세력이 좌익을 매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 아닌 좌익의 진짜 뜻은 무엇일까?

‘반공을 국시’로 배운 세대들은 좌익이니 빨갱이란 말은 마귀나 악마를 연상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익은 무조건 좋고 좌익은 무조건 나쁜가?


일찍이 리영희선생님은 ‘새는 양쪽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오른쪽 날개가 있으면 왼쪽 날개도 있어야 날 수 있다는 양익(兩翼)의 균형을 주장해 좌익이니 빨갱이가 나라를 거덜 낼 것 같이 매도하는 풍토를 경계했던 있이 있다.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좌우익이란 말의 어원은 프랑스에서 왕정이 폐직되고 공화정이 수립됐을 때 소집된 국민공회는 부유한 부르주아지를 대변하는 『지롱드파』소시민층과 민중을 지지를 받는 『자코뱅파』로 양분되어 있었다. 두 정파는 국왕 처리 문제로 대결하고 있을 때 의석 자리가 왼쪽에 『지롱드파』파, 의석 왼쪽에 『자코뱅파』가 앉았던 데서 유래한 말이 좌파 혹은 우파다.

좌·우파에 대한 말은 해방정국에서 친일지주와 집권 세력을 대변하는 우익이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과 민족주의 세력을 척결하는 과정에서 좌익은 악의 세력으로, 우익은 애국세력을 선전하게 되면서 굳어진다. 미·소간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당시에 ‘반공’을 이데올로기로 보도연맹 사건과 제주도양민학살사건을 좌익세력의 준동으로 보고 우익은 집권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좌익=빨갱이=친북세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게 되면서 정형화된다.


좌익은 악의 축이요, 우익은 애국이요, 천사인가?

좌익 (左翼, left)
이란 정치사상의 경향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좌파’라고도 하며 ‘우익(우파)’와 대립되는 말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안정보다는 변화, 성장보다는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경향을 지닌 정치사상이나 정치세력을 가리킨다.(네이버 백과사전)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민주노총이나 전교조와 같은 대부분의 민주시민단체들은 경쟁이나 효율보다 분배나 복지라는 가치를 존중한다. 좌우익으로 따지만 좌파가 맞다. 이들은 분배나 복지라는 가치뿐만 아니라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평등사회실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독재 정권이나 군사정권에서 모진 핍박과 탄압을 받으면서도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가치실현을 추구해 왔다. 언론 쪽에는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이 자유라는 가치보다 평등이라는 가치 실현을 추구하고 있다. 좌파, 혹은 좌익을 진보주의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익은 어떤가? 우익(右翼, right)이란 정치사상의 경향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우파’라고도 하며 ‘좌익(좌파)’와 대립되는 말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해 변화보다는 안정, 분배와 복지보다는 성장과 경쟁, 평등보다는 자유를 강조하는 경향을 지닌 정치사상이나 정치세력을 가리킨다.(네이버백과선전)

한나라당이나 자유선진당, 한국노총, 바르게살기협의회니 새마을운동단체, 뉴라이트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변단체들은 우파로 분류된다. 이들은 독재 권력과 야합해 불의한 권력을 비호해 준 대가로 시혜를 받은 세력들이다. 친일세력이나 박정희정권의 유신잔당이나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살인정권 후예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조중동이나 수구신문들의 비호를 받고 있기도 하다. 보수로 위장하고 있지만 이들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다.

좌익의 사상 즉 안정보다
는 변화, 성장보다는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사상은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체제다. 사회민주주의 [社會民主主義, social democracy]란 ‘생산수단의 사회적(공적) 소유와 사회적(공적) 관리에 의한 사회의 개조를 민주주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실현하려고 하는 주장 또는 운동’을 총칭하는 체제다.(네이버백과사전)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을 비판, 극복하려는 지향을 가지며, 그 실현방안을 민주주의에서 찾는다는 점이 정통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구별된다.... 사회민주주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모델의 ‘사유와 시장’을 사회주의 모델과 결합시킨 혼합경제체제이다.(한림대 윤팔무교수)

여기에 반해 우익의 사상 즉 안정, 분배와 복지보다는 성장과 경쟁, 평등보다는 자유를 강조하는 사상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Liberal democracy)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원리 및 정부형태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쟈유, 평등, 인권의 보장, 시민'국민people주권, 헌법'입헌주의, 사상,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권력분립, 대의제도, 복수정당제도, 민주적 선거제도,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되는 사회다.(네이버백과)

‘자유민주주의는 좋고 사회민주주의는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옳지 못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사람이 살고 사회민주주의에서도 사람이 산다. 자유민주주의에는 부르주아(bourgeois: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정치체제이며 사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proletaria:노동자)에게 유리한 정치체제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비판하는 세력을 빨갱이로 매도해 적대시하거나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사고방식은 극우세력의 정치공세다.

자유와 평등, 인권이 보정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만인에게 보장되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평등과 분배와 복지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도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된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가치를 우선으로 할 것인가는 그 사회 구성원의 의식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계급사회에서 노예해방을 시키겠다면 제일 먼저 반대했던 사람들이 노예들이다. 노예가 노예인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나 사회민주의 사회나 다를 게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구성원들의 의식수준에 달려
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5.18 05:00



사망 218명(신청자 수), 154(정부가 인정한 수)
행불 363명(신청자 수), 70(정부가 인정한 수)
합하면 581명(신청자), 224명(정부 인정), 551명(신청자 중 취하한 수를 뺀것)..!

오늘은 광주민중항쟁 31주년이다. 
1980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궁정동 지하에서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죽자, 그를 아버지라고 따르던 전두환일당이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다.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걸 알게 된 시민들의 시위가 확산되자 전두환 일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전두환과 이명박.. 이 사진 어떤 느낌이 드세요?>
 
시위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광주는 멈추지 않았고 전두환 일당은 이러한 기회를 이용, 공수부대를 투입, 시민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탱크와 비행기까지 동원,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고... 언론들은 북한특수부대가 침투해 소탕 중이라고 보도하고... 

1980년 5.18, 그날 전후 한달간, 광주와 주변지역은 피의 살륙이 진행된다.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처녀의 가슴을 도려내는 참혹한 살상을 저지른 전두환 노태우 일당은 31년이 지난 지금도 고고하게 살아 '각하'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오늘은 그날의 동영상 몇편을 모았습니다.        
 

 


 


 - 5. 18광주민중항쟁 31주년입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광주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냐고...!

과연 그럴까요? 비록 이명박대통령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5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을망정 5. 18은 우리역사에 민주화의 성지... 가장 아픈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김남주 시인외 광주관련 시만 모았습니다.(이 자료는 목포상고 48회 동기동참모임카페에서 퍼왔음을 알려드립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시 모음>  

김남주 시인의 '학살2' 외



+ 학살2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김남주·시인, 1946-1994)


+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왔다 피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오월은 왔다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오월은 왔다 자유의 숨통을 깔아뭉개는 미제 탱크와 함께 왔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일어섰다 분노한 사자의 울부짖음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파괴된 인간이 내지르는 최후의 절규와 함께
그것은 총칼의 숲에 뛰어든 자유의 육탄이었다
그것은 불에 달군 철공소의 망치였고
그것은 식당에서 뛰쳐나온 뽀이들의 식칼이었고
그것은 술집의 아가씨들의 순결의 입술로 뭉친 주먹밥이었고
그것은 불의의 대상을 향한 인간의 모든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서는 풀잎으로
풀잎은 학살에 저항하는 피의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피의 학살과 무기의 저항 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광주 1980년 오월의 거리에는!
(김남주·시인, 1946-1994)


+ 아아,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도시여.
호남의 광주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나요?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요?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져서
어디에 가 파묻혀 있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들은
또 어디에 눈을 뜬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어디에서
찢어져서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산산이 흩어졌나?

꽃떼들도 나비들도 흩어져버린 광주여.
호남이여.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너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광주여. 불사조여.
남도의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 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려들고
때로는 무덤만 뒤집어쓸망정
광주여,
이 나라의 민주화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넘어 삼천리 언덕을 넘어가는
온 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조국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죽어버렸나.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지금 우리들은 다만 쓰러져서
울어야만 하는가요?
공포와 목숨 어떻게 숨을 쉬어야만 하는가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 서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아가자.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나라의 민주화를 짊어지고
삼천리 구비구비 떠도는
조국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한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튼튼하구나.
아, 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만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 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쳤다.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김준태·시인, 1948-)


+ 광주에 바치는 노래

1.
그해 5월
광주는 달도 밝았다
호남선 특별열차로
헬리콥터로 떼몰려온 흡혈귀들이
온 시가지를 쑥밭으로 만들 때

2.
광주는 그러나
달도 둥그러이 밝았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침략자와 같은 몽유병자들이
피에 굶주려 날뛸 때

3.
그해 5월
광주는 끝없는 바다였다
갈매기가 날으고
돛이 오르고
파도가 나는 바다였다
섬, 섬들도 사람들로 울부짖는

4.
그해 5월
광주는 고독한 십자가였다
학살자들이 황구(黃狗)를 그슬리며
시뻘겋게 웃을 때
신부와 스님들도 잡아가서
부랄이 깨져라고 두들겼을 때

5.
그해 5월
광주는 부러진 십자가였다
발가벗겨 내팽개쳐진 부처의 알몸이었다
그러나 그해 5월
광주는 또 다시 볓 번이고
치솟아오르는 불사조!

6.
아아, 그해 5월
광주는 달도 밝았다
사람들의 마음이 강물처럼 흐르고
길가의 가로수도 어깨동무 해주고
사람 세상 통일 세상 강강술래였다

7.
총칼뿐인 악마들이
사방팔방 미친 듯이 들쑤셔도
온 시가지가 보리밭으로 출렁이고
사람들은 서로를 아껴주고
이 땅의 갈 길을 향하여
살과 뼈의 깃발을 흔들었다

8.
아아, 그해 5월 광주는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었다
함께 쓰러져 죽으면서도
함께 일어나 살고야 마는
하늘 같은 하늘 같은 펄럭임이 있었다
(김준태·시인, 1948-)


+ 금남로 사랑  

금남로는 사랑이었다
내가 노래와 평화에 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세월에 머리를 적시는 거리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
금남로는 연초록 강 언덕이었다
달맞이꽃을 흔들며 날으는 물새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입술이 젖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발바닥에 흙이 묻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보리피리를 불고 있었다
어린애와 나란히 출렁이는 금남로
어머니와 나란히 출렁이는 금남로
아버지와 나란히 쟁기질하는 금남로
할머니와 나란히 손자들을 등에 업는 금남로
할아버지와 나란히 밤나무를 심는 금남로
누이와 나란히 감꽃을 줍는 금남로
금남로는 민들레와 나비떼들의 고향이었다
그리움의 억세디 억센 끈질김이었다 그래, 좋다!
금남로는 멀리 청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 좋다!
금남로는 가까이 마을로 찾아가는 길 금남로는
어머니의 젖가슴이었다
우리가 한때 고개를 파묻고 울던 어머니의 하이얀 가슴이었다
(김준태·시인, 1948-)


+ 오월곡(五月哭)

푸르디푸른 조선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인간성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젖가슴 잘리고 대포 총칼에 흐트러진 살점으로
낯익은 거리에 피바다로 흐르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근육을
우리를 배반한 것은 백주의 대낮이었습니다
대낮에 끔찍한 일이 저질러졌던 것입니다
은밀한 죄악의 밤조차 진저리쳤던 대낮이었습니다

그러나 쓰러진 자는 다시 살아 이렇게 외칩니다
그해에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쓰러진 자의 거대함
상처투성이 목숨의 찬란함 보았는가 그해에
무엇을 보았는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는
목숨 다해 피 철철 흐르는 붉은 태양 보았는가
자유여 가난이여 목숨이여 공동체여
무엇을 보았는가 이 골목 저 신작로에 쌓인 시체더미
그 위로 치솟는
번역이며 총칼의 이빨이며 웃음소리며
보았는가 어둠의 얼굴을 어둠의 정체를
어둠의 개백정을 어둠의 양민학살을
찬란함이여 비린내여 펄펄 살아 뛰는 목숨의 비명소리여
지치고 지친 목숨의 끝
죽음이 끝내 한줌 남은 목숨보다 위대한 시간
쓰러짐이 인산인해로 나뒹구는 피비린내 끓는 학살의 끝
그렇다 우리는
결코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우리들 가난의 힘이 스스로 죽창으로 치솟아
푸르디푸른 하늘을 이루는 것 보았다
우리들 쓰러짐이
정의와 간사한 도배들 확연히 갈라놓는 것 보았다
쓰러지고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우리들 가난의 공동체여. 짓밟힘이여, 신음소리여
차라리 목놓아 울부짖을
맨땅이 갈라질 함성소리여
아아 그렇다 우리는
피맺힌 굶주림이 스스로 불끈불끈 솟는 근육을 이루는 것 보았다
피맺힌 것은 분노뿐 아니라 사랑뿐 아니라
굶주린 목숨 그 자체인 것 보았다
그것이 백성임을
그것이 우리임을 보았다
아아 피맺힌 자유, 피맺힌 제3세계여 공동체여
피맺힌 평야, 핏발 서린 눈동자여
아아 피골상접이여 사막이여 위대한 싸움터여

푸르디푸른 조선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인간성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젖가슴 잘리고 대포 총칼에 흐트러진 살점으로
낯익은 거리에 피바다로 흐르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근육을
우리를 배반한 것은 백주의 대낮이었습니다
그 대낮에 끔찍한 일이 저질러졌던 것입니다

은밀한 죄악의 밤조차 진저리쳤던 대낮이었습니다
(김정환·시인, 1954-)


+ 누이의 헌혈가

사랑하는 오빠
사랑하는 조국의 총칼에 찢겨
오월 푸르름 한가운데가 질퍽이도록
뜨거운 피를 쏟으시다가
뜨겁던 가슴이 식어간다고
우리들의 도시가 외쳐대는 오후에
당신의 곁으로 달려갔어요
피어린 거리를 지나 찾아간
대학병원은
우리들의 주검과 신음으로 출렁대고 있었어요

오빠 보셨지요
제 가느란 팔목에서 흘러나가던 영산강의 마음
저의 꿈은 먼 훗날 착한 지어미
하늘처럼 눈이 맑은 아들 딸 낳아
이 땅의 자유를 지키는 아들이 되고
이 땅의 자유를 사랑하는 딸이 되게 하는 것
그 꿈도 식지 않고 흘러 나가는 것
오빠 보셨지요

지금도 들리는 총소리 총소리
누가 누구의 이름으로
누가 누구의 가슴을 향해
저렇듯 싸늘하게 총을 쏘아야 하나요

아아
귀를 막고 돌아선 해지는 거리에서
젊음이 지는 거리에서
오빠 저는 무등산을 보았어요
뜨거운 산의
몸부림을 보았어요
(김해화·시인, 1957-)


+ 오독

어느 시에서 나는
'화염 속의 내 고향 광주'를
'화엄 속의 내 고향 광주'로
잘못 읽었는데

그렇게 읽길 잘했어

화엄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옆에서 죽는 놈 짠하고 불쌍해서
내 목숨 들이붓고 피 뿜는 짓이 있다면
그것이 화엄 아니겄냐?
그것이 불타는 엄숙함 아니것냐?
(홍헌호)


+ 망월동

언니 오빠들이 봄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무덤 속의 오빠들에게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안경 쓴 할머니가
비를 맞으며
엉엉 웁니다.
무덤 속의 언니가
보고 싶은가 봅니다.
노래 소리를 듣고
무덤 속에서
제비꽃이 피어납니다.
엉엉 우는 소리를 듣고
풀잎들이
할머니 머리를 만져 줍니다.
5.18 묘역에서는
비가 와도
깃발이 펄럭입니다.
(김진경·광주 서석초등학교 4학년)


+ 그리운 남쪽

그곳은 어디인가
바라보면 산모퉁이
눈물처럼 진달래꽃 피어나던 곳은
우리가 매듭 굵은 손을 모아
여어이 여어이 부르면
여어이 여어이 눈물 섞인 구름으로
피맺힌 울음들이 되살아나는 그곳은
돌아보면 날 저물어 어둠이 깊어
홀로 누워 슬픔이 되는 그리운 땅에
오늘은 누가 정 깊은
저 뜨거운 목마름을 던지는지
아느냐 젊은 시인이여
눈뜨고 훤히 보이는 백일의
이 땅의 어디에도
가을바람 불면 가을바람 소리로
봄바람 일면 푸른 봄바람 소리로
강냉이 풋고추
눈 속의 겨울 애벌레와도 같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곽재구·시인, 1954-)  


+ 무등(無等)


절망의 산,
대가리를 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 산, 생의산, 희생의
산, 숨가쁜 산, 치밀어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황지우·시인, 1952-)


+ 무등산

한 몸이 되기도 전에
두 팔 벌려 어깨를 꼈다
흩어졌는가 하면
다시 모이고
모였다간 다시 흩어진다
높지도 얕지도 않게
그러나 모두는 평등하게
이 하늘 아래 뿌리박고 서서
아 이것을 지키기 위해
그처럼 오랜 세월 견디었구나
(김규동·시인, 1925-)


+ 당신 가고 봄이 와서

바라보는 곳마다 꽃이요 잎입니다
피는 꽃 피는 잎잎이 다
그리운 당신입니다
당신은 죽어
우리 가슴을 때려 울려
이렇게 꽃 피우고 잎 피웁니다
꽃 피고 잎 피면
이리 마음 둘 데 없는 것은
괴로움만큼이나
훗날 서로 눈물 닦아줄 기쁜 날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겠지요
당신 죽어 재로 뿌려져
시퍼런 강물에 흐를 때
우리 얼굴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서로 바라보며
우리 가슴 깊은 곳에
당신 모습 고이고이 심었었지요
당신 모습이 찬바람 찬서리 지나고
봄이 와
이렇게 꽃 피고 잎 피는 곳
한편 슬프고 한편 기뻐요
커다란 충격이 서서히
잔잔한 그리움과 지긋한 아픔으로 고여 피어나듯
우리 가슴마다 당신 모습 꽃으로 고여 피어나듯
우리 가슴마다 당신 모습 꽃으로 피어나기를
우리들이 기다리는 봄이 오면
우리 가슴 속에서
당신은 꽃으로 걸어나와
우리랑 저기 저 피는 꽃들이랑
봄 빛 돌아오는
저기 저 남산에 꽃산 이루겠지요

저것 보세요
보는 곳마다
걷는 곳마다
저렇게 걷잡을 수 없이
만발하는 꽃과 잎들
누가 다 막고
우리 눈 누가 다 가리겠어요
(김용택·시인, 1948-)


+ 벗들이여 우리는 승리합니다

벗들이여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기는 싸움입니다.
아직은 비록 우리가 소수이고
힘 또한 저들보다 적은 듯하여도
이 싸움은 반드시 우리가 승리하는 싸움입니다.
옳지 않은 자들과의 싸움이므로
거짓된 자들과의 싸움이므로
어쩌면 이미 이기고 있는 싸움입니다.
지금 이렇게 외로운 우리 몇몇만 손을 잡고 있다 해도
결국은 많은 이들이 함께 이 길에 나섭니다.
내 그대들과 만나면
오월 나뭇잎처럼 마음 기쁘게 사래치고
그대들 아름다운 발걸음과 함께 가노라면
정겨운 물소리에 발목을 담근 듯한 것은
우리 반드시 승리하리란 솟음치는 믿음 때문입니다.
벗들이여 그때까지 마음을 잃지 않는
굳은 믿음만이 남았습니다.
그날이 정녕 가벼이 오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오고야 말 그날까지
굳게 잡은 손 놓지 않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벗들이여 이 싸움은 반드시 승리하는 싸움입니다.
이미 우리가 이기고 있는 싸움입니다.
(도종환·시인, 1954-)  


* 경기도 교육청에서 만든 5. 18광주민중항쟁 계기교육자료입니다. 


 * 경기도 교육청 발행 '
5․18 민주화 운동 제31주년 계기교육 교수학습자료'를 첨부했습니다. 학생지도에 참고해 주십시오.

* 5.18 관련 파워포인트가 필요하신 분은 경기도 교육청 교수학습지원센터 자료실
http://goe.go.kr/?menugrp=380400&master=bbs&act=view&master_sid=130&sid=883 에서 다운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5.17 05:09



- 역적의 딸에게 줄 서는 더러운 세상 -

5·16쿠데타 50주년이다. 교과서에 까지 '정변'으로 기록된 5·16 을 두고 언론이 미쳐돌아가고 있다.

[5·16 50주년―박정희 평가] "국가발전에 긍정적" 83%… "민주화에 부정적" 56%(조선일보) 혁명이냐, 쿠데타냐… 5·16 상반된 기억(매일경제), 혁명이냐 쿠데타냐? 5.16 50주년- 이영훈 "근대화 혁명의 기폭제"(교육산업신문), 5·16 50주년 평가는 아직도 논쟁 중(국민일보)... 

대부분의 신문은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느니 혹은 과는 인전하되 경제를 살린 업적은 인정해야 된다느니 하는 분위기다. 권력에 '알아서 기는..' 고질병 떄문일까? 대부분 신문의 논조는 "5ㆍ16은 구국 혁명"이라는 분위기 조성에 경쟁을 하고 있다는 분위기다. 

유일하게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5·16 쿠데타 50년, 아직도 박정희에 머물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3.15와 4.19혁명을 부정하겠다는 역사적 쿠데타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대선에 유리한 역적의 딸에게 중서기 경쟁을 하는 추태 경연이라도 하려는 듯 보인다. 역사의식도 민족의식도 내팽개친 사이비 언론이 쿠데타의 주역의 딸에게 적금을 넣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5·16이란 무엇인가? 나이가 40대가 넘은 사람들에게 5·16을 물어보면 “5·16혁명..?” 하며 반문할 것이고, 청소년들에게 물어 보면 대부분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 않을까? 5.16을 '정변'으로 기술한 쿠데타는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몇 줄 기술되어 있을뿐이다. 전두환은 일해공원으로, 이승만은 국부로, 동상설립추진이 진행되고 박정희는 그 딸이 다음 대선에서 우력한 후보로 거명되고 있어 반동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정희는 사법판단에 의해 단죄된 것이 아니라 역사가 반역자로 평가했다. 그는 4.19를 부정하고 백성들의 주권을 총칼로 빼앗았지만 그는 자신의 오른팔과 같은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저격당해 18년간의 독재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의 몸은 죽었으나 그의 영향력은 아직 죽지 않고 있다. 역적의 딸에게 줄을 서겠다는 비열한 인간들이 줄을 서는 언론의 추태에서 박정희는 시퍼렇게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5·16'이란 박정희를 비롯한 정치군인이 4.19혁명으로 수립한 정부를 뒤집어엎은 쿠데타요 역모다. 4·19혁명으로 세운 정부를 채 일 년도 일할 기회를 주지 않고 뒤집은 명백한 쿠데타다. 5·16은 정권을 도둑질한 반역이요, 군주제사회에서는 3족을 멸하는 죄에 해당하는 중죄 중의 중죄다.

그런데 한국은 언제부터인가 작은 죄는 죽일 듯이 엄벌에 처하면서 나라를 도둑질한 역적에게는 언제부터 그렇게 너그러운 나라가 됐을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 떄문일까?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안다. 그의 철권통치가 얼마나 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고 고통을 줬는지를... 박정희가 다시 살아나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한 번 살펴보자.

첫째, 박정희는 이승만 독재를 물리친 4·19혁명을 부정한 인물이다.
4·19가 혁명이면 5·16은 쿠데타요, 5·16이 혁명이면 4·19는 쿠데타가 된다. 4·19가 역사적으로 혁명이라는 사실이 검증된 이상 5·16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역사를 거부하는 반동세력임이 틀림없다.

둘째, 박정희는 개인적으로 친일세력으로 민족에 죄를 지은 인물이다.
일제시대 사범학교를 나와 황국신민화교육을 시키던 교사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소위로 임관, 독립군 토벌에 나섰던 인물이다. 일본사관학교 교장의 말처럼 '오카모토 미노루'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일본군 정보장교였다. 해방 이후에는 남로당에 입당한 빨갱이였다가 친형을 배신하고 살아남아 해방조국의 장교로 변신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다.


셋째, 박정희를 용서해서 안 되는 이유는 유신헌법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유신헌법은 독재정치와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악법 중 악법이다.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거하도록 하고 지방의회를 통일이 될 때까지 구성하지 못하도록 지방자치제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넷째, ‘혁명공약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지만 그는 남로당에 가입한 전력의 소유자로 공산주의 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는 정권을 찬탈한 후 제5,6,7,8,9대 대통령을 지내면서 가혹한 인권 탄압, 노동운동 탄압, 야당탄압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역행했다.


다섯째, 일본군 장교의 전력을 살려 독도밀약을 체결하면서까지 한일협정을 타결했는가 명분 없는 월남전에 우리 젊은이를 파병, 수많은 젊은이를 희생시켰다.

다섯째,. 전두화, 노태우정권,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탄생케한 원인제공자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정권이 없었다면 전두환, 노태우정권이 등장할 리 없다. 79년 12.6사건으로 정국이 혼미에 빠지자 전두환 일당들은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장악, 이에 저항하는 광주민중항쟁에 참가한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살인정권이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5.16 쿠데타는 박정희가 부하인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18년, 12.12쿠데타로 집권, 전두환, 노태우시대를 열어 32년간 군사정권 시대를 만들었다.


여섯째, 박정희의 등장은 오늘날 이명박정권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박정희시절 정경유착으로 키운 건설회사의 사장이 바로 오늘날 이명박대통령이요, 그렇게 성장한 이명박은 토건회사 이익의 대변자가 되어 4대강 사업으로, 또 친부자정권으로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박정희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와서는 안 된다. 역적의 딸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비극의 시대가 열려서도 안 된다. 4.19영령들에게 부끄러운 반동의 시대는 마감해야 한다. 5·16 50주년을 맞으면서 사이비 언론이 아무리 박정희 살리기에 광분해도 오는 대선에서는 이 땅의 주인이 주권을 바르게 행사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4.18 19:01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다시 4·19를 맞으며 신동엽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가 생각난다.

오늘은 51번째 맞는 4·19다.  4·19는 아직조 미완의 혁명이다.
4·19혁명은 ‘정부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시키면서 영구집권(永久執權)을 꾀했던 이승만(李承晩)과 자유당정권(自由黨政權)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의 출범을 보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사전에는 이렇게  4·19를 정의하고 있지만 주권자인 민중은 아직도 소외되어 있고 권력의 주인은 소수 기득권자들이 독점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피흘려 쟁취한 자유도 정의도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껍데기만 민주주의인  4·19  51주년.  오늘의 4·19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3·15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시민의 시위는 김주열군의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시신이 바다에 떠오르자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성난 군중은 부산, 대구, 광주... 서울로 이어지면서 드디어 이승만이 하야함으로서 12년간의 독재정치를 마감하게 된다.

4·19혁명 반세기를 지난 지금은 혁명정신을 꽃피우고 있는가? 4·19를 일컬어 미완의 혁명이라고 한다. 21명의 사망자와 172명의 부상자를 내고 독재를 타도한 혁명은 혁명정부가 수립되기 바쁘게 이듬해 5월, 식민지시대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일당의 쿠데타로 4·19는 부정되고 만다.

5·16군사정권은 유신헌법으로 18년간 철권통치로 민주주의를 유린하다 박정희를 아버지로 모시던 정치군인 전두환으로 계승된다. 전두환일당에 처절하게 저항하던 광주시민은 참혹하게 학살당하고 전두환, 노태우일당은 민주주의를 유린한다.


4·19혁명 51주년을 맞으며 인하대학교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고 한다. 사단법인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회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는 지난 3월 22일 일간지 광고를 통해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기념관과 광화문동상을 세우기 위해 벌여온 서명운동에 100일간 40만 4722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기념 사업회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의 기념관은 국비로 건립되어 효창동에 서 있는데, 임시정부 초대대통령의 기념관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며 “대한민국 국격을 논하기 전에 먼저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의 동상과 기념관부터 짓는 것인 순서”라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3월 22일)


독재자의 망령을 살려내는 게 어떻게 국격을 높이는 일인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이승만 독재, 유신독재, 살인정권의 하수인들이 들끓고 있다. 그들은 보수라는 가면을 쓰고 식민지배에 대한 향수를... 독재자의 망령을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역사는 살아 있다’고 한다. ‘역사는 왜곡할 수 있어도 그 역사 속에 담긴 진실은 왜곡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동의 세월. 식민지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출발한 건국.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끼울 구멍이 없다던가? 박정희 군사정권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고 문민정부를 가장한 김영삼으로 이어지지만 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하다.   

4·19 혁명은 살아 있는가? 해방 66년, 혁명 51주년이 지났지만 민주주의는 아직도 껍데기뿐이다. 투표만 끝나면 주객이 전도되는 민주주의. 다시 4·19를 맞으며 자유와 정의와 공정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역사를 살려내는 일은 산자의 몫이다. 다시  4·19를 맞으며 미완의 혁명을 사는 우리는 4·19영령들에게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3.21 23:15



이 글은 2011년 '우리교육' 봄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교원의 중립성인가 교육의 중립성인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아야 한다.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단다.”

기독교 신자인 교사가 수업 시간에 이런 얘기를 학생들에게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얘기를 한다면 “선생님이 좀 이상하게 된 게 아닐까”하거나 아니면 “선생님 어떻게 수업시간에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사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얘기, 특정종교를 전교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한나라당성향이라고 해도
“한나라당이 정권을 재창출해야 나라 살림살이가 좋아지고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단다.”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민주노동당 성향의 교사가

“민주노동당은 사회복지 부분에서 다른 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자를 배려하는 정당이므로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이 서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고 말 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를 두고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배했다’며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134명을 파면·해임키로 하고 징계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교사들이 특정 정당에 당비를 냈거나 후원금을 낸 사실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대해 전교조는 ‘교사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교사이기 전에 헌법의 보호를 받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으로서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 공적인 업무수행이 아닌 교사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른 권리행사인가의 여부는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이 가리겠지만 교육현장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지켜지고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 남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해방 후 정부는 권력의 의지에 의해 교육권을 장악하고 피교육자를 권력이 요구하는 인간을 양성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은 엄정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교사는 국민으로서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역사적으로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었던 일이 있었던가.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지 못할 때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 필자는 38년 6개월 동안 교직에 종사하면서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참혹하게 무너져 왔으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되어 왔는가에 대한 교직자로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고민을 이 글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기 전 우선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의부터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개념과 용어의 대한 명확한 진단 없이는 시비에 대한 논쟁이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림으로서 중요한 결정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길 수도 있다.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와 교육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는 것이 논의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시카고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이스턴은 ‘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한다. 예일대학 교수요,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라스웰은 정치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무엇을 갖느냐’는 결정하는 행위라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란 ‘희소가치를 배분하는 행위’다. 여기서 희소가치란 ‘드물기 때문에 인정되는 가치’로 돈이나 지위, 명예...와 같은 것을 일컫는다. ‘드물기 때문에 누구나 선호하는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 정치라면 정치가 중립적이지 못할 때 교육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 중립적이지 못한 교육을 받은 피교육자는 커서 ‘노동자가 될 사람에게 자본가의 생각을 갖게...’ 하는 등 개인에게 순기능이 아니라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대별 교육의 중립성이 훼손당해 온 사례>

식민지시대 교육은 어떠했을까? 식민지시대 교육은 교육이 정치의 시녀 노릇을 했다. 식민지 교육은 식민지 백성을 일본 사람, 즉 황국신민으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었다. 해방 조국에서는 민주시민을 만드는데 교육을 했을까? 제국주의 시대에는 제국주의에 복무하는 인간을, 독재정권은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교육을 했다. 교육이 자본에 예속될 경우 노동자는 자본가의 의식을 갖는 노동자를 양성해 낸다. 교육이 권력에 예속돼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한 사례다.

이승만정권시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승만이 영웅이요, 독립운동가로, 미국은 천사의 나라,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 배웠다. 통일은 북진통일이 유일한 통일 방법이요, ‘찬탁은 매국이요, 반탁은 애국’이라고 배웠다. 교과서를 통해 최남선, 이광수를 비롯한 친일 문인들의 작품을 읽으며 그들이 위대한 문학에 감동하기도 했다.


6·25사변을 겪은 후 북한은 동족이 아니고 철천지원수요, 적이었다. 국가가 체제에 반하는 사상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승만정권의 반공교육은 동족을 적으로 만드는 반통일교육이요. 그런 교육으로 정권을 비호하는 세력을 키워 민주주주의 발전과 통일을 방해세력으로 독재정권을 비호하고 정권유지의 배후세력으로 키워놓았다.

교육권이 없는 교사는 교육의 중심에서 배제된 방관자가 되어 오직 교과서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독재정권은 피교육자로 하여금 비판의식을 제거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자신들이 선택한 지식이 가장 가치 있는 지식으로 주입하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편찬한다.

권력과 자본, 언론이 유착해 만든 교과서, 여기다 종교까지 가세해 권력의 편에 서면 교육은 권력의 시녀가 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이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을 쟁취한 세력들은 그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를 지지하는 세력을 키우고 반공 이데올로기, 새마을이데올로기로 집권을 연장하고 국민들의 눈을 감기는 교육을 해왔다. 불의한 권력의 교육권 장악은 교육의 중립성을 파괴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교육자에게 돌아가게 했던 것이다.

 


<박정희가 만든 교육 이데올로기>

박정희정권 때 군복무를 마치고 첫 발령을 받은 1969년. 시골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학급.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이 흑판 옆에 붙어 학생들을 압도 하고 있었다. 흑판 위에는 박정희대통령 사진과 함께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 합니다’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급훈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일 띄고 태어난 사람. 조국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려는 사람들을 키우는 교육. 그 조국이 개인 이나라 박정희의 정권연장을 위해 필요한 조국이라면 피교육자는 뭐가 되는가?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다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상적인 인간형이요, 국가의 필요에 의해 개인이 길들여지는 교육’을 이상적인 교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미술시간이면 어김없이 북한의 남침야욕을 나타내는 마귀의 손이 남한을 웅켜쥐는 모습의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표어를 만들어 환경 정리를 하고..., 윤리교과서는 온통 가짜 김일성의 가계며 친인척을 폄훼(貶毁)하는 내용으로 도배질 하고..., 가난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한 인간을 만드는 교육. 당시의 교사는 국가를 위해 언제든지 희생할 수 있는 인간. 극단적인 민족주의 인간을 길러낼 역사적 사명(?)을 띠고 교단에 서야했다.


<12·12사태와 5·18광주민중항쟁 후 전두환 시대의 교육>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시대를 거치는 동안 교육은 얼마나 황폐화되어 갔을까? 광주시민을 학살한 주범이 민주정의당을 만들의 민주와 정의사회를 만들겠다는 코미디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군인이 만든 교과서는 양심적인 교사들이 곳곳에서 저항한다. 우리는 여기서 왜 이들은 왜 국정교과서가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가 있다. 박정희 시대는 5·16쿠데타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애국적인 결단’으로,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기술해 이데올로기 교육을 시켜왔다.


민주주의에서 비판이 거세당하면 그 사회는 썩는다. 마찬가지로 사관이 없는 역사교육은 역사교육으로서 기능을 감당하기 어렵다. 역사 교과서에 불의한 권력의 의지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면 교사는 본의 아니게 아이들 앞에 공범자가 된다. 전교조가 출범 후 한 때 ‘전교조 교사는 6·25는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며 붉은 색칠을 당했던 일이 있다. 6·25를 놓고 남침설, 북침설, 유도설이 있다는 사례조차 들지 못하는 단세포적인 흑백논리가 교실을 암흑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사관을 가르치지 않는다. 영웅사관, 식민지 사관의 범주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역사교육. 현대사는 거두절미당하고 고대사에서 근대사는 원인, 경과, 결과를 앵무새처럼 암기해야 했던 학생들..., 해방과정에서 역사청산을 못한 잘 못 궨 단추가 이렇게 시대를 초월해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라서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왜 영웅사관의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가? 일제가 조선 사람에게 황은에 감사하는 인간을 만들듯, 평생 노동자로 살아야할 제자에게 자본가의 의식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일본의 은혜로 우리나라가 근대화’됐다는 식민사관을 비판하지 못하는 교육. 민중사관은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역사관이므로 입에 담기조차 불경스러운 사관이어야 하는가? 교과서의 국정을 문제 삼으면 ‘국정이면 국정이지 검인정이나 자유발행제가 무슨 사친가?’, 민족사관’을 말하면 ‘빨갱이 물이 들어서...’ 학생들을 세뇌시킨다고 윽박질렀다. 수학능력고사가 방어막이라는 자신감 때문일까? 정부가 대부분의 교과서를 검인정제로 바꾸긴 했지만 교사들의 아직도 교과서 논쟁에는 구경꾼일 뿐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시대를 거치면서 교사들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는 사람들이 없었다. 교육의 한 주체인 교사들의 ‘국정교과서’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독재권력이 만들어 놓은 교사양성과정에서 찾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시대는 국민교육헌장에 충실한 교과서 편집방침이나, 전두환 정권시절 도덕교육에 맞춰진 편집방침은 모두 국정교과서라는 제도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교육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교사가 ‘교육권 의식’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면 어떤 인간을 양성하는가? 국정정교과서를 가르치는 학교의 교사는 자신의 자질과 무관하게 국가가 원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 즉 교육과정은 교육부의 교육과정 편수관이 정부가 요구하는 정체성에 맞게 만든다. 국정교과서란 그들이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골라 담은 지식을 묶은 책이다.

 


영어, 수학과 같은 도구교과는 몰라도 윤리나 국사처럼 이념이 담긴 교과서가 국정이 된다는 것은 독재정권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 정권시대 교과서가 친일 인사들의 작품으로 채워 진 이유가 그렇고 박정희정권이 유신헌법을 한국적민주주의로, 전두환정권이 광주항쟁에 침묵하도록 만든 현대사 교과서가 그렇다. 불의 한 정권이 자신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서술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가 국정교과서였던 것이다. 교사가 국정 교과서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나 이데올로기를 모르고 가르친다는 것은 권력의 하수인이요, 허수아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맞는 얘긴가? 일선학교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금과옥조로 믿고 있는 이 말. 그것은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교육위기의 책임을 교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정부가 끊임없이 국민들을 세뇌시켜왔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 때 정해지며,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이론이다.

이 말은 ‘다른 조건이 불변일 때...’에 맞는 말이다. 만약 공급자가 상품생산을 독점해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다면 공급의 법칙은 맞지 않다.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교실이 지식전달의 장이 됐을 때 교원의 자질은 피교육자인 학생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일류대학 입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학교에서는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유신헌법의 홍보사가 된 교사>

“오늘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가정방문을 하겠습니다.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와 이번 주 안으로 전 학부모님들 가정을 방문해 유신헌법에 대한 홍보를 하라는 지시가 와 있습니다. 나가시기 전, 반드시 회람하는 공문을 숙지하시고 홍보물을 꼭 지참하시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1972년. 교사의 정체성도 교육의 방향감각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신임교사시절. 그러니까 교사발령을 받은 지 이제 겨우 3년차다. 아직도 초보교사의 딱지를 떼지 못하던 시절.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교육청이나 교장선생님의 지시가 법이요, 그것을 어긴다는 것은 초보교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즈음 교무회의에서 교무부장의 말이다. 직원회의도 비상회의로 소집해 열렸다. 수업 단축 같은 건 문제가 될 수 없다. 교육과정은 교육청의 지시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퍽하면 반공궐기대회에 학생들을 동원하고 행사가 있을 때 학생들은 단골손님이 돼야 했다. 교육과정을 어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긴 지금도 학교는 교육과정 따로 교육 따로다.

유신헌법이 얼마나 좋은지 혹은 나쁜지 조차 읽어 번 일도 필요도 없었지만 판단능력조차 제대로 없었던 교사들은 그렇게 유신헌법의 홍보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유신시대나 군사정권시절 교육을 받은 교사들은 교육청의 지시가 좋은건지 혹은 나쁜건지, 설사 나쁘다고 알고 있어도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행사에 동원되는 일이 법을 어기는 반민주주의요,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더라도 당시의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속으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불평할 정도가 전부였다.

<독재정권이 뒤집어 놓은 교육>

물건을 훔치는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사상을 도둑질한 죄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이승만을 비롯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은 교과서를 통해 2세 국민들의 사상을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경제재를 훔친 것은 변제를 하거나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남의 생각을 갖도록 마취시키는 이데올로기 교육은 범죄 중의 중범죄다. 노예들에게 주인의 생각을 갖도록 하는 교육. 불의한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범죄행위다.

중·고교의 국사교과서는 현대사를 별로 다루지 않는다. 고대사와 중세사 그리고 근대사에 비해 현대사는 비중적다. 국사교과서가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꾸는 등 현대사를 기피했던 이유가 뭘까? 이유는 해방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수립 과정에서 친일세력잔재청산을 못한 정부는 교육에서도 그 한계가 드러냈다. 희소가치를 배분해야할 권력이 객관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면 그 결과는 심각하다.

친일세력이나 독재정권, 혹은 군사정권이 2세 교육을 통해 역사를 침묵하거나 비판을 거세하는 행위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이승만정권시대 교과서가 친일인사들의 작품으로 덧칠하거나 유신악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 정당화시키는 것은 중립적이어야 할 교사들로 하여금 위법한 행위를 강요하는 행위다. 공적인 업무수행에 누구보다도 객관적인 입장에 서야할 교사가 권력의 의지에 따라 왜곡된 지식을 주입한다는 것은 교육이 아닌 순치다.

이승만 정권 때 친일문인들의 작품으로 뒤범벅이 된 교과서가 그렇고 박정희 정권이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위장해 혁명공약이라며 학생들에게 주입한 것이 그렇다. 공무원의 정치중립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교과서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군사정권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가르쳤다. 국사의 현대사 단원이나 윤리교과서에는 ‘우리 몸에 맞는 한국적민주주의’가 유신헌법이라며 유신헌법의 당위성을 주입시켰다. 이승만 정권 때는 이승만이, 박정희정권 때는 박정희가,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는 전두환, 노태우가 한일을 교사가 홍보하는 권력의 나팔수가 되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교과서가 왜곡됐을 때 교사가 할 일은...?>

교과서가 중립적이지 못할 때, 교육이 중립적이지 못할 때, 교사는 무엇인가? 교과서 편성권은 교사의 권한 밖이요, 세월이 지나면 다 좋아질 것이며... 몰라도 좋은 일일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교과서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는 교사는 유능한 교사인가? 철학이 없는 교사, 지식만 주입하는 교사는 제자들 앞에 부끄러운 교사다. 역사란 방관자에게 침묵할 자유는 줄지 몰라도 피해자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는 교사는 교과서 수준의 제자들 이상을 기러내지 못한다. 지식전달이 교사의 임무로 아는 교사는 교과서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 덕이 될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라면 권력이 쳐놓은 덫을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비판을 거부하는 사회. 시비를 가리거나 바른 말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승진이며 출세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 번 낙인찍히면 영원히 ‘몹쓸 사람’이 되고 다시는 그 직장사회에서 공생하기 어려운 관계에 놓이게 된다. 개인의 비판이나 저항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집단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는 방법밖에 없다. 전교조가 탄생하게 된 이유가 그렇다.

교사들의 집단 저항은 그들로 하여금 신속히 그리고 예외 없이 파면이나 해직 등 중징계에 나선다. 이들이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이라도 인정이라도 받는 날에는 그들이 지켜 온 기득권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15백여명의 교사들은 끝내 항복을 거부하고 권력에 맞섰다 교단에서 쫓겨난다. 이들이 거리에서 교육민주화 혹은 사회민주화의 기폭제가 될 것을 예측하지 못한 권력은 복직을 시키지만 이미 전교조교사들은 그들이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상당부분 이뤄낸 후였다.

<7차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인간상>

교육과정이란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경영자들의 행동방향을 좌우하는 문서다. 학교교육을 하기 위해서 헌법과 같은 존재로 교육내용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문건이기도 하다. 교육의 방향은 헌법이 있고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있지만 피교육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구체적이고 결정적인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이 확정되기 까지는 이해관계의 당사자인 교육의 주체, 즉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육과정은 교육학자들과 관료들이 중심이 되어 초안을 만들고 형식적인 여론수렴과정을 거쳐 확정해 왔다. 중요한 의견수렴기구가 되어야 할 교원단체조차 배제당하고 독선적인 절차를 거쳐 확정하기를 계속해 왔던 것이다.


7차교육과정이 확정되는 과정이 그랬고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게 될 교과교육과정의 주요개정방향 토론회(2011.1.13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회의실)에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스런 과정을 거쳤다. 시작 2시간 전에 교육부가 마려한 내용을 기자들에게 알려줄 정도로 쉬쉬하면서 비판적인 개인이나 단체를 배제시킨 채 제한된 사람들만 참석했다. 학부모들 또한 특정 단체와 모니터 요원만 개별 초청할 정도였다.


<교육의 중립은 교육의 포기다?>

한해 탈학교 학생이 1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일류대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학교에는 근본적인 대책은 없고 무한경쟁만 가속도를 내고 있다. 교육법도 교육과정도 무시된 학교에는 일류대학을 위한 무한경쟁에 지친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고통만 쌓여가고 있다. 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것이 이구동성이다. 옳은 얘기다. 그런데 교육을 진짜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교원들의 정당 후원금을 내면 교육의 중정치적 중립성 위배라 하고, 시국선언을 하면 좌편향이라고 한다. 교육의 중립성은 가능한 얘길까?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간상'의 구현은 교육이 특정한 입장에 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군국주의 교육인가? 평화주의 교육인가? 봉건주의 교육인가? 민주주의 교육인가? 보수인가? 진보인가?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장의 포기를 뜻하는 중립성이란 교육의 포기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의 중립성은 권력의 지배에서 배제되었을 때 가능한 얘기다. 교육 내용의 중립성과 함께 제도상의(교육행정, 예산의 독립 등) 독립이나 교사의 중립성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이 교사의 인격적인 활동이라고 볼 때 교사의 가치관과 인간성이 교육의 질을 결정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교원 임용고시제와 같은 교원채용제도는 교육의 내용에서 뿐만아니라 교사를 권력의 지배하에 두려는 권력의 의지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이 피교육자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장래를 결정하는 행위라면 피교육자의 인간적인 성장을 최고의 원칙으로 하는 인간교육 즉 민주 교육에 충실하는 것이 권력의 지배로 부터 벗어난 진정한 교육의 중립성을 지켜는 길이다.


교육과정이 2014년부터 또 바뀐다.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교사들은 교육과정이 의도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형식적으로 설명회를 거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몇 명의 교수들이 공청회에 참석하고 전달하는 형식으로 하는 설명회로는 개정의 진의가 전달 될 수가 없다. 결국 교사들은 바뀐 교과서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만 가르치는 맹종하는 교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7차교육과정의 핵심은 ‘교육이 상품’이라는 사실이다. 상품은 고급상품과 저급상품이 있다. 고급상품은 부자들이, 싸구려상품은 가난한 사람들이 구매한다. 일류대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나라에서 교육이 상품이 되면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를 대물림하는 합법적인 장치라는 걸 알 만한사람들은 다 안다. 시합 전 승패가 결정 난 게임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개정과정이 비밀스럽게 진행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학교는 어떤 인간을 양성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교육이 기대하는 인간상은 '홍익인간(홍익인간의 핵심은 '이타주의')의 이념' 아래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의 양성'(교육법 제1조)이다. 그렇다면 학교가 길러내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어떤 사람일까?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은 '근면한 사람' '정직한 사람' 또는 '성실한 사람'이다.

정직, 근면, 성실한 인간이 학교가 길러낼 이상적 인간인가?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데 개인만 도덕적이기를 바라거나 완벽하기를 바라는 교육은 옳은 교육이 아니다. 타락한 사회, 부도덕한 사회에서 '착하기만 하다거나 정직하기만 한 사람을 키우는 것은 민주적인 교육이 아니다. 불의한 사회에서 개인이 성실하기만 하거나 정직하기만 한 사람, 착하기만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착하기만한 사람이 범죄 집단에라도 소속되어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아니면 노동자가 됐다면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될까? 착한 사람과 진실한 사람은 다르다. 학교가 착하기만 한 사람을 길러낸다는 것은 피교육자가 성인이 된 후 살아갈 환경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력한 존재, 손해를 보면서도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감수하는 그런 무력한 인간을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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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1.03.08 22:03



창원시 마산 합포구 3.15탑 옆을 지나다 보면 '몽고정'이란 사적(史蹟)이 남아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단정하게 치장을 하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몽고정을 안내 하려면 "몇년에 만들었는지...?" 보다, 몽고정을 "왜 만들었는지" 그것을 만들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필요하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사적으로서의 가치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 사적을 통하여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안목을 길러 주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완성된 연도보다도 그것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배경과 사건을 오늘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 없듯이 오늘은 지난 역사의 산물"이다.흔히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사실(事實)을 안다"는 의미보다는 "사실(史實)을 안다"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역사를 지킨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 즉 역사의식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사진 출처 :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단순한 역사적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가 객관적인 실체로서 살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역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한다든지, 역사적인 안목이 부족하여 나와 역사는 독립적으로 생각하여 역사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것도 문제이다.

오늘날 지식인들, 특히 제도 교육을 통하여 역사공부를 한 사람들은 '역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백주에 양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되어 주인 행세를 하고, 퇴직 후에도 특권 귀족으로 보호받고 사는 사람이 그렇고, "성공한 쿠데타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린 검찰이 그렇다.

역사란 특정인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지우기도 하고 고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때 죽고 다친 사람이나 그 증인이 아직도 살아 있는데 가해자가 권력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은 정의나 법의 형평성이 무시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 최영장군은 역적이 되고 이성계를 비롯한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은  공신이 되어 부귀영화를 자자손손 누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지조를 생명같이 여기고 양심을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후손들은 혹은 죽임을, 혹은 노예가 되어 대대로 죽음보다 비참한 삶을 살아온 사실은 그 사건 속에 살아 있는 '정신'을 무시하고서 역사를 말할 수 없다.

몽고족의 침략이 있었을 때 재빨리 원의 앞잡이가 되어 몽고의 약탈을 도와주며 한 발 앞서 동족 살상과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하던 무리들은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지조를 지킨 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어야했다.


역사란 배신자와 지조를 지키면 산 사람을 통하여 배신과 반역에 대한 교훈을 배운다. 역사는 죽은 것은 아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미군정 시대에도, 이승만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 하에서도 권력의 양지로 찾아다니며 혹은 권력으로, 혹은 재산으로, 지도자로, 유명인사로, 명예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오던 사람든은 역사가 죽었다고 믿고 싶겠지만 역사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양심 때문에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면서 살아 온 것이다.

 <사진 출처 :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결과에서>

"총구 앞에서 죽음과 삶의 선택을 강요받았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두고 누가 침을 뱉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살아남기 위하여..."라며 합리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 무릎 꿇지 못하고 온갖 고초를 당하다 이름 모르는 산천에서 감옥에서 죽어 간 사람은 역사(歷史)가 보상해 주었는가?신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役事) 하신다."라고 했다. 이 말은 "하나님 혼자서는 스스로 역사(役事)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란 곧 "나" 자신이다.내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되지 못하면 역사는 없다. 이때 내가 하나님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도 없다. 반만년 역사의 종착역, 귀결점은 바로"나"자신이다. 내가 역사 속의 총화로써 내가 아닐 때, 역사는 없는 것이다. 이 "나"와 "나"의 총화가 역사를 만들 때 비로소 역사는 살아나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역사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오만(傲慢)과 역사를 모르는 무지(無知)를 다함께 경계해야 한다. 역사는 살아 있고 또 역사는 정의의 편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이완용과 그 무리들, 전두환과 그 무리들, 노태우와 그 무리들, 배신자! 살인자! 그리고 역사의 파괴자! 그들과 그 후손, 불의에 동참했던 무리들은 역사가 살아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역사의 고비마다 "과거를 잊고, 용서하고,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역사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2차대전 후 프랑스는 나치 점령하의 대독 협력자에 대해 사형 2,071건, 징역 3만 9천 2건을 선고했고 벨기에는 5만 5천건, 네델란드는 5만건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패전국인 일본의 경우에는 1946년 1월 과거의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공직 추방령을 공포함으로써 민주 발전에 장애가 될 21만 287명이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36년간 민족을 배신하고 적의 편에서 동족을 배신한 대가로 귀족대접을 받던 이들은 해방과 함께 혹은 정치가로 혹은 법관으로 혹은 경찰로 애국자가 되고 재수 없어(?) 단 7명만 감옥에 갔다가 6.25사변으로 모두 석방되는 행운을 얻었다.

"성공한 도둑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과 검찰의 "성공한 쿠데타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 공소권 없음의 결정'과 무엇이 다른가?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저지른 고의 또는 과실은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는다. 역사 앞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고 세월만 지나면 기득권으로 불가침의 영역이 되고 합리화된다면 법의 논리는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폭행을 저지르고 살인과 도둑질도 불사하는 무리들이 애국자가 되고 주인이 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진실임을 확인하는 것, 그런 소박한 꿈이 있을 때 역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역사를 감추고 왜곡하려는 무리에게 역사를 맡겨 두고서 역사를 살려 낼 수는 없는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1.10 07:07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령.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 정치판을 두위ㅣ집어 놓는 유령! ‘빨갱이’

이 빨갱이라는 이 유령은 수구세력들의 단골 선거 전략으로 그 대상이 전교조가 되기도 하고 민주노총이 되기도 하고 통합진보당이 되기도 한다.

지난 대선 때에도 새누리당 대표로 대권에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정계 은퇴까지 선언한 이회창씨가 대통령출마 때에도 빨갱이를 사냥하겠다며 나타났다. 수구세력들이 필요하면 꺼내는 전가보도(傳家寶刀) ‘빨갱이’. 해방 후 수없이 많은 선거를 치루면서 기득권 세력들은 정적을 퇴치 혹은 선거 전략으로 애용되어 왔다.


도대체 요술 방망이와 같은 이 빨갱이의 실체는 무엇일까? ‘빨갱이=마귀’라는 등식은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는 수구세력들이 애용하는 금과옥조의 보물이다. 분단과정에서 진보적인 인사, 민족주의성향의 지식인 사냥을 위해 보도연맹을 조직, 30여만명을 빨갱이로 몰아 처형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4.3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주도세력과 무고한 제주도민 10여만명을 빨갱이로 몰아 희생의 재물로 삼기도 했다. 박정희군사정권은 물론 12. 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이나 독재정권이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애국인자를 처형하던 ‘좌익=빨갱이’라는 수법이었다.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이 ‘빨갱이’란 무엇일까? 어원을 살펴보면 `좌익(左翼)'은 `왼쪽 날개'라는 뜻이요, 우익(右翼)은 ‘오른쪽 날개'라는 뜻이다. 좌익(좌파ㆍ左派)은 진보, 혁신 또는 사회주의적 사상이나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를, 우익(우파ㆍ右派)은 보수, 자본주의적 사상이나 경향을 의미한다.  

좌우익의 역사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왕 루이16세(1793년 1월에 처형됨)의 처리 문제를 위해 지롱드파(봉건귀족을 대표하는 체제보존적인 성향)와 자코뱅파(봉건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이념인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의 필연이라고 봄)가 의회에 모였는데 지롱드파는 오른 쪽에, 진보적인 성향이었던 자코뱅파는 왼쪽에 앉는데서 비롯된 말이다.

우익과 좌익은 이렇게 아주 우연하게 앉은 좌석의 위치에서 비롯됐지만 이후 근대 인류 역사에 중요한 정치․경제적 용어로 또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우․극좌, 중도우익, 중도 좌익 등 세분화되어 씌어 지곤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우익과 좌익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수구세력을 우익으로, 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추구하는 세력을 좌익으로 표현하고 있다.

좌익과 우익을 구체적으로는 살펴보면 자유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은 우익으로,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을 좌익으로 분류된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끊임없이 경쟁과 효율,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새누리당이나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신문과 재벌들은 우익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평등이나 기회균등, 복지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이나 민조노총, 전교조와 같은 노동단체는 좌익에 가깝다. 

우익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정부 규제 철폐를 주장한다. 자본의 편에서 복지 관련 공공지출의 대폭축소와 임금 동결 및 삭감, 외국 기업을 위한 완전한 시장개방, 기업에게 세금 감면, 노동조합 무력화 등이 우익이 추구하는 이념이요, 지향점이다.

한국에서의 우익은 탈세와 비리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몸통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시대에는 친일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좌익은 식민지잔재청산과 친독재 세력의 청산을 주장하고 민족의 자존과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경제적 독립을 주장했던 친일세력에 비해 무장투쟁을 통한 완전독립을 주장했던 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해방과정에서 좌익을 악마로 둔갑시킨 이승만정권의 이념공세가 ‘좌익=빨갱이’라는 공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약자배려나 복지 평등과 같은 가치는 불교나 기독교의 사상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가 무신론의 입장에 선다는 이유로 이들 종교는 오히려 교조(敎祖)의 사상과 반대편인 우익세력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좌익(빨갱)=마귀’라는 논리는 사회주의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불의한 권력이 집권 연장이나 정당화를 위해 정적을 몰아내기 위한 숙청도구로 기능했던 것이다.

빨갱이의 역사는 해방과정에서 권력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친일세력들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북한=사회주의=친소=악마=매국’으로, 남한=민주주의=친미=애국=천사‘라는 등식을 만들어 ’반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뇌를 시켜왔다. ‘좌익=북한=사회주의=빨갱이=악마’라는 지론을 펴는 사람치고 공산당선언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보거나 좌익이 원론적으로 약자를 배려하고 복지를 지향하는 평등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념을 알고 있기나 할까?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수하다거나 자유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보다 우수하다는 식의 단순 비교란 무리다. 인간이 만든 제도는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지도 않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민주의’가 대두되고, 사회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이니 '흑묘백묘(黑猫白猫)론', ‘3개대표론(三個代表)론'으로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중요한 것은 체제비교가 아니라 체제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토론문화의 정착이다. 한반도 통일방안처럼 정부안 외에는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이 되는 현실에서는 사회복지도 인간해방도 기만이다.

기득권 세력들이 집권 전략으로 애용해 오던 ‘색깔 뒤집어씌우기’는 아직도 유효하다. 사상의 자유와 토론문화의 정착 없이는 인간이 만든 제도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완벽하지 않는 제도가 인간의 삶을 옥죄는 굴레가 되어 진보적인 사람들의 사상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모순투성이 제도가 기득권 세력의 권력을 장악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될 때 다수의 민중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은 실종되고 인간이 수단 가치로 대상화될 뿐이다. ‘빨갱이’라는 괴물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도 인간 해방도 기대하기 어렵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09.07.30 10:45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다.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알면 오히려 머리가 아프니까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다’는 뜻일 게다. 과연 그럴까?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환경호르몬이 기준치 이상이 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의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말인가?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에게 농약과 방부제, 조미료가 범벅이 된 음식을 사 먹여도 괜찮다는 말일까? 며칠 전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미디어 3법을 날치기 통과 시켰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거니까 서민들은 구경이나 하고 있는 게 약일까?

백주 대낮에 날강도들도 못할 짓을 왜 한나라당은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을까? 그 답은 한나라당의 뿌리를 보면 해답이 나온다. 나라를 일제에게 갖다 바친 매국노, 이 땅의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혹은 정신대로 내몰고 노인들까지 보국대로 내몰던 자들이 친일 부일 매국노다. 그들은 그 대가로 천황의 하사금을 받고 호의호식하고 그 혹독한 시기에 자식들까지 좋은 교육을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해방이 되자 이들은 발 빠르게 애국자가 되고 정치인으로 법조인으로 혹은 교육자로 변신해 나라의 지도자로 변신한다.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한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이윤성 부의장 앞으로 다가가 거세게 항의하자 경위들이 이 부의장을 필사적으로 에워싸 보호하고 있다.
ⓒ 남소연 출처 : 오마이뉴스

이승만 독재에 아부해 애국자의 자녀들을 빨갱이로 몰고 박정희 유신독재에 빌붙어 출세하고 혹은 치부해 기득권을 대물림한다. 이들의 천재적인 변신술은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 노태우 무리들과 손잡고 정당을 만들어 권력을 차지한 후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전 영역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체제를 굳힌다. 정경유착으로 혹은 권언유착으로 필요하면 예수를 팔고 부처를 팔아 종교로 민중을 눈감기고 혹은 교육으로 순진한 서민의 자녀들을 운명론자로 만들었다.

이들의 화려한 변신을 보자. 해방 이후 60년 동안 한국에는 100여개의 정당이 등장했다 사라졌다. 정당의 역사는 송진우,김성수,조병옥,윤보선 등이 주축이 된 한민당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첫 여당인 이승만 자유당도 한민당에서 갈라졌다. 일제잔재청산을 빨갱이 짓이라고 승세를 잡은 친일세력들은 이승만 독재와 합작해 두고두고 대물림하려다 4·19혁명으로 실패하지만 박정희의 쿠데타로 제기한다. 그 후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초대 총재로 하여 1981년 1월 15일 창당한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 1990년 2월 9일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통령,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이 3당 합당해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을 만든다. 3당 합당 체제에서 김종필의 공화계가 자유 민주 연합을 창당하고, 일부 민정계가 이탈한 상황에서 재야 세력을 영입하고 김영삼의 민주계를 중심으로 기존의 민주자유당의 당명을 변경함으로써 한나라당이 탄생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양지심, 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의 인의예지(仁義禮智)와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칠정을 갖추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에 당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동족을 배신한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부끄러워해야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친일세력이 얼마나 악랄했는가는 ‘차라리 일본놈들이 훨씬 더 신사적이었다’는 식민지시대를 겪은 사람들의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족의 피를 빨던 친일세력의 후손이요, 이승만 독재정권의 거수기 노릇도 모자라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한 오까모도 미노루, 박정희 유신정권의 하수인이 되고 살인자 전두환, 노태우의 적자가 곧 한나라당이다.

이들이 재집권 후 이루어놓은 찬란한 업적(?)을 보자. 용산참사는 차라리 약과다. 국민들이 대운하사업을 반대하니까 4대강 살리기를 시작하고 미디어법을 날치기 처리해 조중동과 삼성에게 방송장악 길을 열어놓았다. 강부자정책은 조세에서 비정규직문제에서 혹은 쌍용자동차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화해와 공존의 남북문제를 적대관계로 만들어 전쟁 분위기로까지 이끌고 전작권까지 반대해 주권국가로서 국군통수권을 포기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찬란한 업적(?)을 자자손손 계승하기 위해 교육을 통해 서민들을 운명론자로 만들고 대물림하도록 체제를 굳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다. 이제 미디어법이 시행되면 운명론자도 모자라 영혼까지 뺏기고 주체적인 삶마저 포기당해야 한다.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강자독식의 무한경쟁에서 반칙으로 죽어가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를 만들어 공존하는 길을 터는 일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끊임없이 규제를 풀잔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을 국민들이 모르게 눈과 귀를 막자는 것이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가난과 굶주림도 모자라 대물림까지 감수해야 서민들은 ‘모르는 게 약’이라며 체념하고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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