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8.05.10 06:48


어떻게 이런 비정상적인 세상이 계속될 수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내게 좋은 것이라면 남이야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막가파식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을까? 벤담은 인간 행위의 근본적인 동기는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쾌락은 선()이요, 고통은 불행(不幸)’이요, 공리(公理, axiom)라고 역설한다. 오늘날과 같은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본주의가 수백년동안 유지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학이 벤담의 쾌락이론을 바탕으로 효용이론이 만들어지고 정교 화함으로서 유지가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 일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미투운동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종교계는 물론 정치계, 법조계, 교육계, 연예계, 언론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미투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런 현상이 개인의 도덕성 때문만 일까? 세상은 온통 포노그라피(pornography) 산업으로 흥청망청이다. 미국의 경우 1970년에는 포노그라피의 연간 판매량을 1000만 달러, 1985년 약 10억 달러, 2003년에는 연간 80100 억 달러, 200686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점점 더 섹시(sexy)한 여인이 '이상적 미인'이라며 성적 욕망을 자극하면서 성범죄는 마치 악마의 행위처럼 묘사하고 있다.

미국의 FBI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미국 내에서 6.2분마다 1건의 강간이 발생하고 있다. (뉴스타운2012.1.8).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초마다 24명의 사람들이 강간을 당하거나 스토킹,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미국 국립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의하면, 여성들은 100만 명 이상이 강간을 당하고 있으며 미국 여성들 5명 가운데 1명은 살아가면서 어떤 특정시점에 강간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미국 국무부는 연례 <인신매매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인신매매와 매춘의 천국"으로 규정했다. 미 국무부는 조사대상 국가들을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각각 분류하고 있는 데 한국은 10년째 1등급으로 분류되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은 강제 매춘 여성의 공급국이자, 경유국이며 최종 도착국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스포츠경향 2011.6.28) 한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여성 10명중 3, 성매매로 살아간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전체 성매매 여성이 189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하면서 20~35세 여성 가운데 3분의 1(30%) 가량이 성매매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코리아헤럴드> 2011.12.9.)

정의가 실종된 사회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쾌락지상주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로 바뀐다. 헌법에는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화려한 권리가 존재 하지만 그것은 법전에만 있고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정경유착으로 약자가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언론은 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들키면 범죄자 될 뿐, 범죄는 일상에서 활보하고 다닌다. 양극화. 강자의 횡포, 법은 정의(justice)를 지향하고 경제는 효율성(efficiency)을 추구하는 사회구조에서는 정의란 법전에만 있을 뿐 현실은 막가파식 힘의 논리와 강자들만의 천국이 된다.


<사진출처 ; .youtube>


엄벌주의가 또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해자만 엄벌하면 묻지 마 폭력이든 성추행이든 몰래카메라든... 근본적으로 해결되는가? 우리는 문제의 근본적인 진단 없이 가해자만 엄벌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감정적인 대처방법이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학교 폭력근절대책에서 확인한바 있다. 폭력이 개인의 도덕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학교폭력이 가정폭력과 영화를 비롯한 사회문화적인 폭력을 두고 개인의 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처방은 근본적은 문제를 두고 현상만 치료하는 실패가 예견된 방법이다

이익이가 되는 것이 선이 되는 상업주의 논리,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감각주의, 쾌락지상주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두고 개인의 범법 사실만 처벌하면 해결 되는가? 인간의 존엄성, 인권교육을 외면하는 학교, 성을 충동질하는 문화, 힘의 논리, 쾌락지상주의,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 되는 상업주의 문화를 방치한 체 엄벌주의만으로는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교육이, 언론이 바로 서지 못하고 천박한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엄벌주의는 또 다른 제 2폭력과의 전쟁이 되고 말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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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철학2015.10.21 06:55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느낌이 다르다. 우리교육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을 전혀 문제가 없고 열심히만 공부하면 좋은 대학도 가고 출세도 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학교에는 교육이 없다며 시험문제만 풀이하는 학원이 된 학교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문제를 놓고 사람에 따라 왜 이렇게 다르게 보일까?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사람을 보는 안목도 각양각색이다.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이 좋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외모보다 사람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생긴 것은 좀 맘에 안 들어도 돈만 많으면 좋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벌이나 화려한 스펙을 가진 사람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가문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의 바른 사람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정치며 종교며 사회며 문화를 보는 안목도 가지가지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세계관이라고 한다. 남자는 보는 관점을 남성관, 인생을 보는 관점인 인생관, 역사를 보는 관점을 역사관, 종교를 보는 관점을 종교관.... 이런 것들을 통털어 가치관 혹은 철학이라고도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게 들리는 사람을 일컬어 소신이 없거나 주관이 없다고 한다. 철학이 없다는 것은 이렇게 흔들리며 사는 사람이다.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게 많다. 적당한 돈도 있어야 하고 지식도 건강도 필요하다. 어려울 때 말벗이 될 친구도 필요하고 세상이 힘들 때 인생의 멘토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될까?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빨리 바뀐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그리고 정보화사회로, 정보화사회가 이제는 스마트사회(Smart society)로 변화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기계의 노예가 아닌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길은 없을까?


급변하는 세상 탓일까? 사람들 중에는 방향감각을 잃은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잠시 뒤면 들통이 나고 말 일을 하다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아 있는가 하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뻔뻔스러운 짓을 하면서도 얼굴색도 하나 변하지 않는 철면피도 있다. 물질만능, 외모지상주의, 감각주의시대를 살면서 세태를 쫓다보면 자신은 없고 상업주의에 혹은 전자매체의 꼭두각시가 되어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치혼란의 시대, 흔들리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방황의 시대, 철학이 없이 산다는 것은 한평생 헛것을 쫓다 소중한 인생을 마치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왜 사는 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일까? 내가 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며 왜 사는지... 심지어 자녀들을 키우는 엄마들까지 남이 하니까... 아이들이 놀면 불안하니까... 경쟁의 대열에 매몰돼 자녀들까지 고생시키는 부모들도 있다.


옛말이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말이 있다. 남이 하니까 의미 없이, 목적 없이 사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이런 세상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방향감각을 잡아주고 진로를 인도해 준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안정된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련만...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방향감각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가엾은 사람인가? 혹자는 세상사가 허무하다며 종교를 찾고 혹은 감각을 쫓다 인생을 마치는 가엾은 사람도 많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살다보면 믿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기대고 싶은 사람이 있다. 삶의 안내자... 어려운 일을 만나면 맘을 털어놓고 얘기하고픈 사람 .... 이런 사람에게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롤모델이라고 했던가? 롤모델이 멘토라도 되어 준다다면... 힘들고 어려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밤을 세워가며 토론도 하면서 방향감각을 잡아 주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도 선생님도 많이 배우라고만 한다. 아는게 힘이라며 학원으로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시식은 전자사전이나 스마트폰에서 얼마든지 있는데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 주기보다 많이만 배우면 길이 열린다고 한다. 지금은 지식정보화 시대가 아닌 창의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인데... 개성과 독창성이 필요한 시대인데...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바뀐지가 오래 됐는데... 지식만 암기시키는 교육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필요한 시대인데 지식만 암기하면 살아가기 편할까?


가치혼란의 시대,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한데 아는 것만 많다고 그런 문제들이 해결될까? 유대인의 속담에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삶에 지친 사람들... 앞만 보고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번 쯤 자신을 뒤돌아보고 나는 방향감각도 없이, 목적도 없이 세태를 쫓는 부끄러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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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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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5.20 06:30


 

세상이 너무 각박(刻薄)하다. 전통사회에서는 울타리도 없이 살았는데... 아파트에 살다보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산다.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면 아예 마음을 끊고 산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흔들리는 버스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서 있어도 요즈음 젊은이들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돌리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맹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측은지심 惻隱之心)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수오지심 羞惡之心)과 양보할 줄 아는 마음(사양지심 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즐거워하고(喜), 노여워하고(怒) 슬퍼하고)哀), 두려워하고(懼), 사랑하고(愛), 미워하고(惡), 욕심을 부림(慾)과 함께 인간으로서 동물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4단 7정이다.

 

 

 

서양의 문화가 급격히 전래되면서 우리의 전통적 가치는 낡은 것이 되고 서양의 것은 선진문화라는 가치관이 우리의 가치를 송두리째 내다버렸다.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전통가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신의 기준으로 도덕과 윤리를 만들고 서양에서 들어 온 실용주의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다.

 

상업주의와 결탁한 실용주의. 그들은 선조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다섯 가지의 도리,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같은 가치는 안중에도 없다. 공자, 맹자를 말하면 꼰대소릴 듣겠지만 서양의 가치가 전통가치를 잠식해 나라가 온통 향락주의, 감각주의로 빠져들고 있다. 마치 돈벌이가 삶의 목적이나 되는 듯, 도덕이나 윤리는 뒷전이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 돈이 주인인 사회에는 과정이 무시되고 승자가 선이 되는 막가파식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든, 정치가 타락하든, 종교가 신비주의로 흐르고 학교가 무너져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까? 나만 잘 먹고 배부르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윤리니 의리니 신념이니 그런 것은 쓰레기통에 버려도 좋을까? 세상을 ‘연관과 변화’라는 변증법적 시각으로 보지 못하면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선이 된다.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면... 눈앞의 이익이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총체적인 시각의 세상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철학이 실종되고 감각이 지배하는 사회는 윤리나 도덕이란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일 뿐이다. ‘아이들이 왕따당하고 폭력에 시달려도 내 아이만 아니면... 경제가 무너져도 나만 괜찮으면... 방송사가 파업하는 건 나와 상관없다...’ 이런 시각이 만들고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과거에도 방관자는 있었다.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시위를 할 때도... 광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당하고 있을 때도... 로렌츠 (Lorentz, E.)는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나비이론이다. 자기중심의 세계관도 좋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나와는 직접 연관이 없더라도 간접적으로 무관한 것은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했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자유도 민주주의도 신이 무상으로 선물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제도를 포함한 우리의 삶이 이 자리까지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의에 맞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의를 지킨 사람들... 그분들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헌신과 희생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이다.

 

눈앞에 이익만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역사가 보일 리 없다.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일찍이 신채호선생님은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설파하셨다. 아(我)도, 역사도, 민주주의도, 참여해 함께 투쟁하지 않는다면 방관자나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1.06.14 05:30



“나는 돈 걱정 없는 사람입니다. 등록금도 얼마든지 낼 수 있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닐 정도로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어요.
그런데 내가 왜 이 자리에 나왔는지 아십니까?
다 같이 행복하지 않으면 저도 행복해 질 수 없으니까요.”

무터킨더의 독일이야기의 ‘반값 등록금 때문에 갈수록 멋진 제동씨’라는 글에 나오는 얘기다.

무터킨더님은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시위현장에서 김제동씨의 이런 얘기를 듣는 순간 진한 감동으로 울먹였다고 술회했다. 너무 너무 잘생긴 사람들 사이에 등장하는 김제동씨는 참 못 생겼다(김제동씨 용서하세요)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그런데 그가 TV에서 사회를 볼 때나 시위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하는 걸 들어보면 ‘참 재주가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곤 한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화려하게 잘 생긴 사람들 사이에서 김제동씨! 그는 잘 생긴 스타들에 비해 비록 외모는 뒤지지만 그의 말 속에 진실이 있고 그의 삶에서 사람냄새가 나, 나는 김제동씨가 참 좋다. 잘 생기고 못난 행동하는 사람보다 백배 천배 좋다.


1970년대 : 여자가 과거가 있으면 용서 못한다.
1980년대 : 여자의 과거는 용서해도 못생긴 것은 용서 못한다.
1990년대 : 못생긴 것은 용서해도 뚱뚱한 것은 용서 못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다. 물론 웃으려고 지어낸 얘기겠지만 그냥 웃고 넘어가기는 좀 그렇다. 한 때 티코를 비롯한 경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비웃는 풍토가 유행이더니 최근에는 얼짱, 몸짱 신드롬(syndrome)이 유행처럼 풍미(風靡)하고 있다. 이제 얼짱이나 몸짱 뿐만 아니라 춤짱, 노래짱, 큐티짱, 섹시짱, 개그짱, 연기짱, 연예짱... 등 ‘짱’ 열풍이 불고 있다. 얼마 전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일이 있지만 이제 외모는 취업이나 결혼에서 조차 반드시 갖춰야 할 '스펙'이 됐다.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은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쾌락주의, 감각만능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물질만능주의, 상업주의가 만든 외모지상주의는 유행이라는 감각이 지배하는 공허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성이 상품화되고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이 몇 번 만나보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약속시간을 어겨놓고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허영심과 교만으로 가득 찬 사람도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는 티끌만큼도 하지 않고, 이기적인 속내를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남의 얘기는 듣기는커녕 자신의 말만 끝도 없이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란 어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일까? 아름다운 세상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다. 남의 것이 내 것보다 좋고 귀하게 느끼는 사람이 사는 세상은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주체성이나 자아존중감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허세와 열등의식으로 얼룩진 세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최소한의 민주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소수보다 다수의 이익을,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일을 우선하는 선공후사의 정신, 오늘의 나는 우연(偶然)이 아니라 선배들이 피땀으로 만들어놓은 세상이라는 걸 깨달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주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정 관념과 선입견, 아집, 편견, 흑백논리, 표리부동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갈등과 이해관계로 뒤엉킨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김제동씨 말처럼 “다 같이 행복하지 않으면 저도 행복해 질 수 없으니까” 우리는 내가 행복한 세상보다 우리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 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상업주의로 얼룩진 텔레비전이 만들어 놓은 얼짱, 몸짱에 대한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외모지상주의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나도 우리도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2.04 07:47



잠이 겨우 들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진척들 중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더니 "○○집입니까?"한다. 낯선 사람 목소리다. "전화 잘못 걸었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짤깍'하고 전화를 끊는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다. 상대방이 자다 깼는지, 어린아이나 환자가 있는지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없다. 내 볼일만 봤으면 그게 끝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사회는 이렇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배려도 없는 자기중심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사진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인간을 일컬어 사회적인 존재라고 한다.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사람들은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사회로 바뀌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삶의 방식은 반대다.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지만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사회구조로 바뀐 것이다.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 존중되는 사회.
과정이 없는 결과가 있을까? 우리가 하루도 그르지 않고 먹고 사는 음식은 하루아침에 공장에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이른 봄부터 햇빛과 물과 농부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게 농산물이다. 옷이며 잠자리며 그 어느 것 한가지도 이웃의 땀흘림이 없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은 없다.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산업사회는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 생각이나 가치관, 신념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다. 이러한 산업사회를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나만 좋으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감각주의가 만연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가 된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좋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적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예의지만 그런 분위기는 사라져 가고 있다. 

철학없는 부모는 '버릇없는 아이'로 키운다. 맹목적인 사랑은 자녀들로 하여금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은 교육을 못하는 학교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철학없는 부모에게 더 큰 책임이 있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 한마디조차 인색한 사람들. 문을 열고 닫으면서 '내 뒤에 오는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하는 작은 배려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나의 말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을까 생각하면 살 수 는 없을까?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배려를 받지 못하는 삭막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번쯤은 '내가 편리하게 타는 승용차의 매연으로 보행자가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정류소에서 차를 기다리면서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는지 배려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친구와 약속을 해 놓고 시간을 예사로 어기는 사람, 상대방의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기분대로 할 말 다하는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따뜻한 사랑이 자랄 수 없다. 

우정이나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 그리고 신뢰가 쌓일 때 우리사회는 조금씩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버려야 할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듯,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인격적인 성숙은 불가능하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생각이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0.12.16 19:01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가 열흘이나 남았는데 교회는 물론 창원시청 광장에는 화려한 성탄 장식을 하고 성탄을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민족의 명절처럼 들뜨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왜 나라의 축제 날이 됐을까? 크리스마스를 명절처럼 들뜨는 사람 중에는 크리스마스의 뜻을 제대로 알기나 할까? 크리스마스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즐길 의미가 있는가? 해마다 온 누리를 떠들썩하게 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구세주 탄생이라는 의미의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Christmas,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

로마역사에서 보면 크리스트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B.C.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12월 25일일까?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된 데에는 많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12월 25일설이 하나님인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날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 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 
               
 
                 <사진 : 창원시청광장>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B.C. 4C 후반부터라고 한다. 어원으로서의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크리스마스’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예수가 세상에 태어났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순진하게 예수가 12월 25일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난센스다. 탄생한 날이 12월 25일이냐 아니냐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예수라는 분이 하느님이냐 아니냐?'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가 삼위일체신의 한 분으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전통신앙이다.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는 전통신학에서 주장하는 예수의 신성을 상당부분 부인하고 있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에 대한 논란은 수천년간의 논쟁거리였다. 《신약성서》기록 외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은 그렇게 흔치 않다. 성서가 아닌 역사에 기록된 예수는 로마시대 역사가 C. 타키투스에 의해 기록된 짧은 기록이 있다. 그가 예수에 대해 기록한 것은 당시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 때 그리스도 처형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연대기 15:44).

또 다른 기록은 로마의 저술가 수에토니우스는, 크레스투스의 꾐에 빠져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킨 이유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고 쓰고 있다.(《황제전》 클라우디우스 25:4), 그런데 이 크레스투스가 그리스도를 지칭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유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곱이 돌로 맞아죽은 형(刑)에 관하여 말하고 있고《유대고대지》유대교의 랍비 전승에는 예수가 마술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미혹시키고 배교(背敎)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탈무드》 산헤드린 43a)고 적혀 있을 정도다.

예수의 신성여부를 여기서 논쟁거리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해마다 성탄절을 보내면서 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제자들, 자녀들이 그대로 지키고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전통신학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그는 신(神)을 배반한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 세상에 나타났고(聖誕) '원수를 사랑하라', '너 이웃(여기서 이웃은 가까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게 정설이다)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 너와 오리를 같이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를 같이 가주고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 주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예수를 ‘빨갱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로 비유한 김정란 상지대 교수가 네티즌들의 호된 비판을 받은 일이 있지만 예수가 오늘날 사회주의 사상과 가깝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약뿐만 아니라 성서의 일관된 사상은 '공유사상'이며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던 생시몽이나 프리에는 기독교 사상인 공유사상을 실천하려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기독교의 경제관은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요 인간은 하느님의 것을 잠깐 빌려 쓸 뿐이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궁합에 맞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용가치보다 효용가치가 더 큰 제도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며 욕망의 충족이나 감각적인 기준 위에 세워 놓은 집이 자본주의다.


대표적인 예가 성탄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지은 집이 깔고 앉은 땅까지 개인의 소유로 인정하는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코드가 맞지 않다.

두 벌 옷을 가지지 말고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과 오늘날 부자가 된 교회와는 전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는 오늘날 그 화려한 교회에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올 수 없는 예수를 왔다고 성탄을 축하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기만이요 지극히 자본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세계 6,888,108,765(2010년 12월 14일 현재)명의 세계인구 중에 12억 명이 하루에 미화 1불로 연명하고 있고 1억 5000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으며 그 중 8,000만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게 오늘날 지구촌의 모습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인 미국은 무기를 팔아 부를 축적하고 이라크를 침공해 노약자와 임신부 그리고 어린이를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네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기독교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중 이 계명을 지키고 살아가는 교인이 얼마나 될까? 돈이라는 신(우상)을 섬기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크리스마스. 만약 예수가 이 땅에 온다면 뭐라고 할까?

사랑은 없고 상업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 회칠한 무덤 같은 인간들..."이라며 진노하지는 않을까? 수십만원인가 수백만원인가 들여 거대한 트리를 만들고 징글밸을 울리는 교회. 예수는 사랑은 없고 겉치레에 바쁜 교회를 좋아 하기나 할까? 먹고 마시고 타락하는 명절(?)이 되어가는 크리스마스. 구세주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날 하루만은 가족끼리 손잡고 불우이웃을 찾아가 따뜻한사랑을 나누는 하루를 만들면 어떨까? 올해는 구세주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는 뜻 깊은 크리스마스가 됐으면 좋겠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0.29 14:51



언젠가 K.B.S TV 뉴스현장에서는 특이한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다.
"오렌지족의 생활"이란 특수층 청소년들의 삶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사회 지도층 인사와 재벌들의 자녀들이 향락과 낭비, 타락의 현장을 고발한 집중 기획 프로그램으로 건강하게 살아 가는 청소년들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청소년들의 범죄와 본드 흡입, 폭력 등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하루 저녁 술값등 유흥비로 수십만원씩 뿌리고 다닌다는 보도 내용이었다.오랜지족이라고 하는 청소년들의 타락상을 본 사람들은 한결 같이 허탈감과 분노로 안타까워 하면서 앞으로 닥쳐 올 세계에 대한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사진출처;교육희망에서 -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교과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쾌락이 선이다!"
그들의 선악관(善惡觀)이란 쾌락(快樂)은 선(善)이요 불쾌(不快)는 곧 악(惡)인 것이다. 전통적인 미덕인 절재나 인내, 청렴 결백은 그들에게는 의미 있는 덕목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부(財富)란 과연 건강한 절차에 따라 형성된 것인가? 근대화란 이름으로 서구화가 되면서 전통 가치는 서구의 문화에 짓밟혀 폐기될 가치가 된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소비문화가 지배하는 향락 사회로 바뀌어 온지 오래다. 근대화 과정에서 공업화라는 명분은 도농간(都農間)의 빈부 격차를 만들고 정경유착(政經癒着)과 권언유착 (權言 癒着)은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 시켰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향락 중심의 물질문화는 사회 정의의 실종이라는 무서은 가치부재의 시대를 만들어 청소년 문제에서 부터 오랜지족의 등장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오랜지족의 등장 배경은 박정희 정권시대 '사카린 사건'의 경우를 예를 들 수 있겠다. 이 사건은 삼성 재벌이 사카린을 밀수한 믿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국가에서 경제지원으로 키워 온 재벌이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자에게 로비자금을 제공하여 온갖 특혜를 받기도 하고 부동산에 투기하기도 하여 재산을 증식시켜 왔던 일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들이 이러한 무분별한 재산증식이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을 앗아 가기도 하고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 시켜 옸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권력의 비호를 받아 특혜를 독차지 하는 것도 모자라 재벌들이 밀수까지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의 부도덕한 치부는 결과적으로 부실공사를 하여 서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국민 경제를 좀먹는 밀수나 사행심을 조장하는 빠찡코등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고 검은 돈을 끍어 모아 왔던 것이다.

국민들의 평균 학력도 높아지고 교회도 많이 짓고 경찰서도 많아지고 국회에서 형법도 계속 만들고 있는데도 사회 부조리는 줄어들 줄 모르고 있고 청소년들의 범죄와 타락은 위험 수위를 넘긴지 오래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인간성을 개탄하고 어떤 사람들은 법의 가벼움을 비난하기도 하고 교육자의 무능을 개탄 하기도 한다.
욕망에 근거를 둔 경쟁 사회에서 도덕적인 카타르시스로 사회가 변혁된다는 기대를 하는 바보스런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의 욕망에 근거를 두고 성립된 이기주의 사회는 결과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부패와 타락과 향락중심의 사회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심각한 사회문제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제도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모순의 필연적인 한계라는 지적이 높다.

매년 3분의 2가 탈락하는 입시제도는 경쟁에서 탈락이 곧 죽음 뿐이라고 생명을 포기하거나 반사회적인 폭력과 가출 그리고 범죄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탈락한 청소년들을 포용하는 사회적인 장치도 따듯한 인정도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주 드문 경우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문제아가 되거나 무능하고 못난 인간으로 낙인 찍혀 갈곳이 없어 진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거나 게으럼을 질책하지만 현재의 경쟁 구조하에서는 누군가가 무능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오랜지족과 같은 부류가 그들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한 건강한 청소년들이 체념없이 살아 가기가 힘들 수 밖에 없다. 여기다 한술 더떠서 온갖 상업주의와 소비를 자극하는 향락 문화는 개인의 도덕성이란 무력한 방패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산속에서는 산 전체의 모습을 파악 하기가 힘든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나 인식 없이 개인이 주체적으로 산다는 어렵다. 특히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는 호기심과 포자기로 정상적인 길을 걷기가 힘든다.

우리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먼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세계관, 철학)나 사회를 객관적으로 인식할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상만이 보이는 온갖 사건, 권모 술수로 순수하지 못한 정치판의 권력 쟁탈과 힘겨루기, 경제적으로 원론만 이해해서는 도저히 알아 볼 수 없는 물가와 돈의 흐름,온갖 이해관로 뒤범벅이 된 사회 문제, 위로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 신비주의 종교, 구경꺼리가 된 스포츠, 폭력과 포르노성의 드라마등등....

온갖 감각주의 문화와 상업주의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을 찾고 지킨다는 것은 처음 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포기해야 할 정도로 복잡 미묘하다.
길이 없는 곳을 걷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세계관이라고도 하는 철학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운명에 대하여 탐구하고 세계의 근원과 세상 만물의 존재이유에 대한 회답을 찾아 낼때 비로소 동물적인 욕구충족의 삶을 넘어선 가치의식, 즉 올바른 세계관을 갖게 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세계관이라고도 하는 철학을 가지느냐의 여부는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규정하는 것이며, 남의 음식을 먹는 것을 구경하러 식당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듯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집을 짓는 목수가 가지고 있는 연장 중 어떤 것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모른다면 그 연장을 소유하고 있는 가치가 없듯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사용의 방법(가치 기준)이 없다면 악용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게 의지하여 주술적으로 또는 내세의 영생을 위해 현실의 모순을 눈감고 감사하고 만족하거나, 자포자기로 방탕자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 향락과 방종과 굴종의 삶을 산다면 인간으로서 가치로운 삶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산한 또하나의 병든 문화인 "오랜지 족"과 상관 없이 끊임없는 자아실현과 자기 변혁을 꾀하면서 참되고 진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병든 사회를 건강하게 사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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