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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사회적인 인간을 개인적 존재로 키우는 교육

by 참교육 201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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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늑대가 키우면 사람행세를 할까? 늑대행세를 할까? 이러한 의문은 프랑스에서 사냥꾼이 발견한 ‘아베뇽의 야생소년’ Victor에게서 확인된바 있다. 몸은 사람인데 사람의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 그는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사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Victor라는 소년이 인간이 길렀다면 동물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자료 :  '꽃처럼 예쁜 아이들...' 교육희망에서> 

 인간의 행동이란 무엇일까? Victor는 나름대로 개인적인 존재로서는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고 있었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을 배운다. Victo도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오면 본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인간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당연히 인간으로서 사회화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해야 할 역할을 배우지 못한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행동양식이나 생각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그 ‘사람다움을 배우는 것’은 꼭 학교여야 할 이유는 없다. 학교가 없었던 시절에는 가정과 지역사회가 그 기능을 감당해 왔다. 물론 사회가 복잡하고 전문화 되면서 학교가 사회화의 기능을 전문적으로 감당하고 있지만 오늘날 학교는 이런 면에서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학교는 사람을 사회적인 존재로 키우기보다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교실붕괴니 학교의 위기는 학교가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서 사회의식을 가르치지 못해 나타난 당연한 결과다.

 사람이 사회적인 존재로서 양성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의 핵심은 ‘관계’를 가르쳐야 한다. 인간이 혼자 살아간다면 동물적인 욕구만 충족을 하는 것만 가르쳐 주면 족하다. 그러나 사람이 개인적인 존재가 아닌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가족, 나와 친구, 나와 이웃 그리고 직장에서 인간관계나 결혼 후 이성과 배우자의 부모친척과의 관계 특히 고부간의 관계를 배워야 한다. ‘나에게 좋은 것이 선(善)이요,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정도의 의식으로는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잘못되고 있다. ‘공부만 잘하면... 점수만 잘 받아 오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가치관으로 길러진 아이는 정상적인 생활인이 되기 어렵다. 특히 고생하면서 살아온 부모세대들은 내 자식만은 나처럼 고생시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릇없는 아이‘로 키운다. 더구나 사회의식을 싹트는 유희집단 또는 또래집단과의 만남의 관계를 차단하고 학원으로 내몰아 경쟁을 시키는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를 건강하게 자랄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잘못된 교육관이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또래집단에서는 또래들과 만나 자신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의 관계를 맺는 초기 사회화 과정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들이 나와 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배우면서 우정이 싹트고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마마보이로 자란 아이는 사회의식이 없다. ‘자기가 왕’이기 때문이다. 마마보이로 키우는 부모들은 왜곡된 사랑을 부모가 해야 할 임무라고 착각한다.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기회를 차단하고 가족구성원으로서 임무와 역할을 배울 수 있는 사회의식을 잘라버리는 무모함으로 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회의식조차 빼앗아 학원으로 내모는 부모는 과연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학교는 어떤가?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라는 평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날 학교는 한 인격체를 개인적인 존재로서도 사회적인 존재로서도 양성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수평적인 관계가 없는 사회 그게 학급 사회다. 사회의식을 길러 서로가 서로를 배우는 그런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HR이니 CA니 그런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입시교육으로 교육으로서 자리잡지 못한다. 국,영,수 점수가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학교에서는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중요할  리 없다. 학교는 ‘친구의 소중함’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우정이 어떤 것인지 친구간의 신의나 의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학교는 지식도 가르쳐야 하지만 그 지식을 쓸 수 있는 기준(철학)을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소중함과 부모나 민족의 소중함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나보다 남이 더 잘나 보이고 내부모보나 우리 민족문화보다 남의 부모나 남의 나라 문화가 소중하다는 것을 보고 배우는 아이는 건강한 국민이 될 수 없다. 미국의 문화가 더 소중하고, 영어를 잘해야 유능한 사람이 되는 그런 인간을 길러 놓고 교육을 다 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는 교육은 교육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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