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의 곳곳에는 야생 밤나무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서면에 너도밤나무의 군락이 펼쳐져 있다. 태하에서 남양으로 가는 태하재를 넘다 보면 왼편으로 너도밤나무의 군락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 너도밤나무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이 마을에 어느날 산신령이 나타나서 마을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이 산에 밤나무를 백그루 심어라. 그렇지 않으면 크나큰 재앙이 내리리라"고 엄명을 내렸다. 마을 사람들은 부랴부랴 산에 밤나무를 백그루 심고 정성껏 가꾸었다. 그러던 어느날 또다시 산신령이 나타나서 "밤나무 백그루를 심었느냐?" " 예, 어김없이 심었읍니다." "그럼 가서 세어보기로 하자" 하고 산으로 올라가 한그루 두그루 세어 나갔다.

                                   <사진 : 너도 밤나무,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분명히 백그루를 심고 가꾸었는데 아흔아홉그루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산신령의 진노는 대단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애소에 못이겨 다시 한번 세어 보기로 하였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 아흔 여덟, 아흔 아홉......"
하는데 난데없이 옆에 서 있던 작은 나무가 느닷없이 "나도 밤나무" 하는것이 아닌가? 그러자 산신령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너도 밤나무냐?"
"예."
"틀림없이 밤나무렸다."
"예,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의 기지로써 마을 사람들은 위기를 모면하였다.'(Empas 검색에서)

                                                            <사진 : 다음 이지지 검색에서>

사랑을 말하면서 웬 '너도 밤나무' 얘긴가 라고 할지 모르지만 세상이 어수선하다 보니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 이제 '진짜'라고 하면 곧이 듣지 않아 '정말 진짜다'라고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시대가 됐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게 뭘까? 이 세상에서 소설이나 시를 비롯한 문학이나 예술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가 사랑이 아닐까? 그런데 그 사랑도 진짜가 아니고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

모든 사랑은 선이 아니다. 모든 책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듯 모든 사람이 다 선한 사람이 아니듯 모든 사랑은 선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되어지는 관념적인 사랑은 순수함도 진실함도 없다. '죽고 못살겠다'고 입만열면 사랑타령을 하던 젊은이들이 날이 갈수록 이혼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랑하면서 사는데 이혼율이 높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에서는 '돈벌이가 되는 것은 선'(?)이다. 이러한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랑이 돈벌이로 이용되지 않을 리 없다. 텔레비전을 통하여 전달되는 개량된 가짜 사랑이 순수한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라는 의미로 각인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은 말이 '사랑'이라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언어의 상징'을 덮어둔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옛 어른들은 평생을 부부로 살면서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사랑하지 않은 것일까?

이름답고 고결한 그리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은 없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너도  밤나무'처럼 사랑의 외피를 쓴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 그것인 마치 진실이것처럼 위장되어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은 희소가치가 떨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순수한 사랑, 진실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묻고 왜곡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실한 사랑을 만나고 그런 사랑을 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요 행복한 사람이다. 

진짜 사랑을 하고 살 수는 없을까? 촛불처럼, 소금처럼 자신을 태워야 빛이 되고, 자신을 녹여야 맛이나는 그런 사랑 말이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을 일컬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줄 안다. 돈벌이를 위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의 외피를 쓴 가짜들이 나딩구는 세상에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계산된 사랑이나 물질적인 가치로 포장된 혼돈 속에서는 진실한 사랑이 살아남을 공간이 없다. 지혜로운 이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실한 사랑을 아는 이여!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는 것보다 마음 속에 진실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참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