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자료2010.11.04 07:02



우리 역사를 살펴 보면 참으로 위대한 삶을 사신 분도 있고, 개인의 영달과 욕심의 노예가 되어 부끄럽게 살다 간 사람도 있다.
신채호 선생님과 최남선의 삶을 예로 들어 역사앞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얼굴을 씻을 때 머리를 들고 씻어 가슴과 웃옷에 물이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자가 어찌 땅을 보고 세면하느냐"고, '고개를 숙일 수 없는' 기백이 독립투쟁에서나 역사서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선생님은 충북 청원군 남성면 귀래리에서 신숙주의 후손으로 태어나 20세에 오늘날 국립대학의 교수격인 성균관 박사를 지냈다.

조국이 일제의 침략을 받자 벼슬을 버리고 독립신문의 후신인 황성신문사에 들어가 장지연, 박은식과 함께 일제침략에 항거하고 친일파를 매도하는 논설을 썼다.

1910년 나라가 무너지자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민족혼을 일깨우는 해조신문를 간행하기도 하고 상해 임시정부 창건 중심인물로 활약하면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의정원 전원위원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의 독선적이고 주도권 잡기에 급급하는 모습을 보고 분연히 결별하고 순한글신문인 '천고'를 발행하기도 하고 친일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폭력투쟁조직인 의열단을 만들기도 했다. 의열단의 강령과 행동목표인 그 유명한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기도 하고, 수많은 시론과 독사신론, 논설, 소설 등을 썼다.

일제에 대한 폭력혁명투쟁을 준비하던 중 체포되어 10년 실형을 받고 8년째 복역하다가 57세의 나이로 여순감옥에서 "내가 죽으면 시체가 왜놈들의 발끝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하여 재를 바다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독립운동가요, 사학자요, 언론인인 선생님은 민족과 하늘에 한점 부끄럼없는 일생을 마쳤다.

육당 최남선은 신채호 선생님보다 10년 후인 1890년 한약방의 주인이요, 관상감 소속의 지관의 아들로 고려 최영 장군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열 다섯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다 교장으로부터 "조선민족은 열등하여 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주동자로 몰려 최린과 함께 퇴학당하고 조국으로 돌아 온다.


을사늑약조약이 맺어지고 황성신문에 배일논조의 투고를 했다가 구류를 당하기도 한다.

열일곱살때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지리과에 입학, 이광수와 만나 유학생 회보의 편집을 맡아 민족의식을 고취하기도 한다.


3.1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터 그의 투쟁의욕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여 민족대표 33인에서 빠지기도 하고 "민족자결은 이상에 불과하다", "독립선언은 내가 썼다고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등 책임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3.1운동 대표 48인의 한사람으로 2년 6개월 형의 선고를 받고 13개월만에 석방된다.

1925년 동아일보에 객원이 되면서 부터 수많은 사설을 쓰고, 조선사 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촉탁이 되어 일제의 구미에 맞는 일들을 하게 되자 한용운, 정인보 등은 그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여 상대도 하지 않는다.


그 뒤, 일제의 괴뢰신문 '만몽일보'의 고문이 되고, 독립투사를 잡아 고문살육을 저지르던 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의 교수로 취임한다.


그가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월급이 무려 300원(이 돈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450만원이상이 됨)을 받았으니 일제의 침략정책에 협조하여 민족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아준 배신의 댓가로 받은 기록은 지울 길이 없다.


1945년 조국광복을 맞아 친일 부역배로 잡혀 이광수, 최린과 함께 서대문 감옥에 갇혔다가 독립 선언문을 쓰던 손으로 자기 반성문인 자열서를 쓰고 출감한다.


수난의 역사속에 태어났다가 앞에서 살펴본 신채호 선생님이나 박은식, 안재홍, 장준하 선생님과 같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기 한몸을 던져 조국광복에 바친 위대한 분도 많다.

그러나, 변절의 명수로 친일, 친미, 독재지지로 명예와 출세를 따라 갈대와 같은 삶을 산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는 그들의 부끄러운 삶을 들추어 민족역사의 치부를 보기를 원치 않는다.

문제는 우리와 함께 사는 오늘의 인물이 최남선, 최린, 이광수, 송진우......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분단을 담보로 외세에 결탁하여 출세를 보장받기도 하고, 혁명을 가장하여 국민을 총뿌리로 위협하여 온 영토를 군사문화와 부패의 씨앗을 뿌린 사람도 있고, 불의앞에 한치 부끄럼없이 살다가 감옥살이 고문에도 마다하지 않고 역사의 등불로 사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질 일이지만 그들의 지조와 변절이 민중을 지키기도 하고 배신한다는 관점에서 결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특히, 지도자로 존경받던 인물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역사의 빚을 갚아야 한다'(역사의식)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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