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참인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의 전부일까? 거울은 외모만 보일뿐 내면의 나를 비춰주지 않는다. 사람의 시각에 보이는 것은 부분일 뿐, 전체가 아니다. 현상으로 나타나는 상(象)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나의 모든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분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객관적인 내가 아니라 주관적인 나다. 내가 아는 나, 친구가 아는 나, 부모가 아는... 나는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세계에는 약 77억5천만, 대한민국에는 약 5천1백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해에 약 1억4천 만명이 태어나고 6천만명이 죽는다.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고 어른도 있고, 젊은이도 있고, 늙은이도 있다.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다.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 키 큰 사람, 작은 사람, 피부가 검은 사람, 피부가 흰 사람...도 있다. 무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식한 사람도 있고, 무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의가 바른 사말도 있다. 성격이나 가치관도 모두 똑 같은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여성은 태어날 때 40만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30억의 경쟁을 뚫고 태어 난 나. 1초에 약 1,337km로 돌고 있는 지구에서 1년에 지구의 둘레를 9억 42,00만km, 1초 동안 약 29km 속도로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는 지구 위에 살고 있는 것이 나다. 물론 부모로부터 생명을 받아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 자랐지만 부모의 힘만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과 물 공기가 없었다면...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는 쌀이며 밀, 콩과 같은 곡식이 자랄 수 있을까? 반찬으로 먹는 생전과 어패류 고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인간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 내가 소속된 사회 속에서 사회화되어 간다. 내가 소속된 사회의 환경에 따라, 규범과 질서에 따라, 사회화된다.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입는 옷을 입고 그들과 똑같은 집에서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배운다. 때로는 본능을 억제하며, 또는 감정에 충실하며, 순종하면서 사회화 된다. 그런 나는 나인가 아니면 사회화된 결과인가? 부모가 바라는 모습의 인간, 사회가 만들어놓은 질서와 규범에 체화된 인간, 사회가치에 길들여진 인간, 본능과 욕망의 세계를 방황하며 조금씩 자신을 잃어 가지만 세상을 쫓다 정말 귀한 것을 잃어가며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 속에서 나는 어디 있는가?
인간의 자연과 사회라는 틀 속에서 존재하는 유한적인 존재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재물욕(財), 성욕(色), 명예욕(名), 식욕(食), 수면욕(睡)과 같은 욕망과 희(喜:기쁨), 노(怒:노여움, 화냄), 비(悲:슬픔), 우(優:걱정), 사(思;사고), 공(恐;공포, 두려움), 경(驚:놀라는 것)과 같은 감정을 몸 안에 담고 태어난... 그런 한계를 지닌 어쩌면 유약한 존재다. 사회가 만든 규범이나 가치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다 나는 없고 남이 만든 규범, 남이 발견한 원칙과 철학을 진리로 알고 정작 내 생각 내 뜻대로 살지 못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 풀의 이슬처럼 사라지는 무의미한 존재일까?
본능과 주어진 운명에 충실하다 사라지는 존재. 그러나 우주 속에 존재하는 생명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만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절재하며 욕망을 재어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존재가 사람이다. 인간이 본능과 자연의 질서에 충실하다 끝난다면 다른 생명체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사회화된 질서와 가치에 따라 먹고 마시고 욕망에 충실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이 끝나는 그런 존재일까? 아니면 좀 더 높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살아가는 존재인가?
77억5천만 중의 한 사람으로 태어난 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가치혼란의 시대, 온갖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가치관에 매몰돼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범과 원칙, 원리와 법칙을 절대 선으로 알고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질서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일까? 왜,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보람 있는 삶인지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2019년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자신의 의지와 철학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광대가 되어 살지는 않을까? 이데올로기에, 유행에, 감정의 노예가 되어 정작 소중한 것을 팽개치고 살지는 않았을까? 지구상에 살고 있는 77억5천만 중의 한 사람인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 내일 하루만 지나면 2019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 아닐까? 2020년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기아와 공포가 없는... 방황하지 않은 삶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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