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K.B.S TV 뉴스현장에서는 특이한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다.
"오렌지족의 생활"이란 특수층 청소년들의 삶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사회 지도층 인사와 재벌들의 자녀들이 향락과 낭비, 타락의 현장을 고발한 집중 기획 프로그램으로 건강하게 살아 가는 청소년들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청소년들의 범죄와 본드 흡입, 폭력 등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하루 저녁 술값등 유흥비로 수십만원씩 뿌리고 다닌다는 보도 내용이었다.오랜지족이라고 하는 청소년들의 타락상을 본 사람들은 한결 같이 허탈감과 분노로 안타까워 하면서 앞으로 닥쳐 올 세계에 대한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사진출처;교육희망에서 -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교과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쾌락이 선이다!"
그들의 선악관(善惡觀)이란 쾌락(快樂)은 선(善)이요 불쾌(不快)는 곧 악(惡)인 것이다. 전통적인 미덕인 절재나 인내, 청렴 결백은 그들에게는 의미 있는 덕목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부(財富)란 과연 건강한 절차에 따라 형성된 것인가? 근대화란 이름으로 서구화가 되면서 전통 가치는 서구의 문화에 짓밟혀 폐기될 가치가 된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소비문화가 지배하는 향락 사회로 바뀌어 온지 오래다. 근대화 과정에서 공업화라는 명분은 도농간(都農間)의 빈부 격차를 만들고 정경유착(政經癒着)과 권언유착 (權言 癒着)은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 시켰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향락 중심의 물질문화는 사회 정의의 실종이라는 무서은 가치부재의 시대를 만들어 청소년 문제에서 부터 오랜지족의 등장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오랜지족의 등장 배경은 박정희 정권시대 '사카린 사건'의 경우를 예를 들 수 있겠다. 이 사건은 삼성 재벌이 사카린을 밀수한 믿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국가에서 경제지원으로 키워 온 재벌이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자에게 로비자금을 제공하여 온갖 특혜를 받기도 하고 부동산에 투기하기도 하여 재산을 증식시켜 왔던 일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들이 이러한 무분별한 재산증식이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을 앗아 가기도 하고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 시켜 옸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권력의 비호를 받아 특혜를 독차지 하는 것도 모자라 재벌들이 밀수까지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의 부도덕한 치부는 결과적으로 부실공사를 하여 서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국민 경제를 좀먹는 밀수나 사행심을 조장하는 빠찡코등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고 검은 돈을 끍어 모아 왔던 것이다.
국민들의 평균 학력도 높아지고 교회도 많이 짓고 경찰서도 많아지고 국회에서 형법도 계속 만들고 있는데도 사회 부조리는 줄어들 줄 모르고 있고 청소년들의 범죄와 타락은 위험 수위를 넘긴지 오래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인간성을 개탄하고 어떤 사람들은 법의 가벼움을 비난하기도 하고 교육자의 무능을 개탄 하기도 한다.
욕망에 근거를 둔 경쟁 사회에서 도덕적인 카타르시스로 사회가 변혁된다는 기대를 하는 바보스런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의 욕망에 근거를 두고 성립된 이기주의 사회는 결과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부패와 타락과 향락중심의 사회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심각한 사회문제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제도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모순의 필연적인 한계라는 지적이 높다.
매년 3분의 2가 탈락하는 입시제도는 경쟁에서 탈락이 곧 죽음 뿐이라고 생명을 포기하거나 반사회적인 폭력과 가출 그리고 범죄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탈락한 청소년들을 포용하는 사회적인 장치도 따듯한 인정도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주 드문 경우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문제아가 되거나 무능하고 못난 인간으로 낙인 찍혀 갈곳이 없어 진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거나 게으럼을 질책하지만 현재의 경쟁 구조하에서는 누군가가 무능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오랜지족과 같은 부류가 그들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한 건강한 청소년들이 체념없이 살아 가기가 힘들 수 밖에 없다. 여기다 한술 더떠서 온갖 상업주의와 소비를 자극하는 향락 문화는 개인의 도덕성이란 무력한 방패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산속에서는 산 전체의 모습을 파악 하기가 힘든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나 인식 없이 개인이 주체적으로 산다는 어렵다. 특히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는 호기심과 포자기로 정상적인 길을 걷기가 힘든다.
우리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먼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세계관, 철학)나 사회를 객관적으로 인식할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상만이 보이는 온갖 사건, 권모 술수로 순수하지 못한 정치판의 권력 쟁탈과 힘겨루기, 경제적으로 원론만 이해해서는 도저히 알아 볼 수 없는 물가와 돈의 흐름,온갖 이해관로 뒤범벅이 된 사회 문제, 위로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 신비주의 종교, 구경꺼리가 된 스포츠, 폭력과 포르노성의 드라마등등....
온갖 감각주의 문화와 상업주의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을 찾고 지킨다는 것은 처음 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포기해야 할 정도로 복잡 미묘하다.
길이 없는 곳을 걷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세계관이라고도 하는 철학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운명에 대하여 탐구하고 세계의 근원과 세상 만물의 존재이유에 대한 회답을 찾아 낼때 비로소 동물적인 욕구충족의 삶을 넘어선 가치의식, 즉 올바른 세계관을 갖게 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세계관이라고도 하는 철학을 가지느냐의 여부는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규정하는 것이며, 남의 음식을 먹는 것을 구경하러 식당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듯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집을 짓는 목수가 가지고 있는 연장 중 어떤 것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모른다면 그 연장을 소유하고 있는 가치가 없듯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사용의 방법(가치 기준)이 없다면 악용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게 의지하여 주술적으로 또는 내세의 영생을 위해 현실의 모순을 눈감고 감사하고 만족하거나, 자포자기로 방탕자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 향락과 방종과 굴종의 삶을 산다면 인간으로서 가치로운 삶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산한 또하나의 병든 문화인 "오랜지 족"과 상관 없이 끊임없는 자아실현과 자기 변혁을 꾀하면서 참되고 진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병든 사회를 건강하게 사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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