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2.01.14 07:00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이성(理性)이 실종된 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 사회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왕따당하고 소외당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인격이 아니라 얼짱, 몸짱이 대접받고 얼마나 고급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사람대접을 달리하는 세상은 미개한 사회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생겨났을까? 게을러서...? 운명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못 배우고 못나서... 팔자가 기구하게 태어나서... 그래서 가난을 숙명으로 생각하며 살던 때가 있었다. 최소한 농경사회에는 그런 논리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아니 오늘날에는 매일같이 놀면서도 여유 있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으라고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데 가난한 이유가 뭘까? 운명? 팔자소관? 계급사회에서는 노예들은 열심히 일해 주인에게 다 바치고 정작 자신은 굶주리며 살았다, 그들은 그게 운명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런 삶을 불평없이 살았다. 전제군주사회, 계급사회에는 사람들은 그것은 하늘의 뜻이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양반의 피를 타고 났기에 피를 속일 수 없다며 주어진 운명을 한탄하며 살아온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금융자본주의의 사회는 어떨까? 오늘날 가난을 운명처럼 달고 사는 사람도 양반의 피, 상놈의 피가 다르게 타고 태어났기 때문일까? 부모를 잘못만나서일까? 뼈 빠지게 일해 자식들 공부시키고 나면 가난과 병든 몸을 안고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 죽어가야 하는 사람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혹은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난을 대물림 받아야 하는 사람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너는 운명이니까 가난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가? 국가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조정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다. 정의니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 못 배우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국가가 필요하고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평생 벌어서 집 한 채도 없이 셋방살이로 전전하며 운명으로 살아갈까?  자식 공부시키느라 평생 고생하고 정작 자신은 가난과 병든 몸으로 홀대받고 살까?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핀란드를 비롯해 덴마크며 독일이며 프랑스 같은 나라의 사람들도 그렇게 살까?

‘무상교육, 무상의료’ 아마 이런 얘기하면 빨갱이들이 하는 소리라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왜 같은 사람 사는 나란데 그 나라는 공부를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무료로 할 수 있고 우리는 자녀 교육비 때문에 평생을 허리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 평생 집한 채 마련하기 위해 먹을 것, 입을 것 못먹고, 못입고 살아야 할까?



 

 


이 지구상에는 땅은 모두 국가의 소유로 건물 값만 내면 평생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나라도 있고 자식 공부시키느라 걱정할 필요도 없는 나라도 있고 아프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도할 수 있고 과외며 보충수업도 없고 얼마든지 싫건 잠도 자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도 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

노후 생계가 어려워 휴지통을 뒤지며 살지 않아도 최소한의 굶주리며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 몸이 아파도 병원비가 두려워 고통의 세월을 보내지 않는 불행한 노인들이 없는 나라도 있다.

빈부격차는 왜 생기는가? 재벌의 아들은 재벌이 되고 노동자나 농부의 아들은 평생을 가난을 운명처럼 달고 살아야 하는가? 완전한 평등 사회란 없다. 그러나 국가가 어떤 경제정책을 펴는가? 어떤 제도를 도입하는가에 따라 우리나라처럼 수백배 수천배 차이가 나는 빈부격차를 대물림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도 있다.

좋은 사회냐 아니면 나쁜 사회냐의 차이는 ‘기회균등’이 얼마나 보장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경기를 하는데 부자 아들이라는 이유로 노동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주면 그런 경기는 하나마나다. 여기다 사회적 가치 즉 희소가치를 누가 유리하게 배분받을 수 있느냐를 법으로 만들어 놓으며 그런 경기는 경기도 하기 전에 승패가 결정난 게임이다.

 


지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얼마든지 공정한 사회,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차등사회, 빈부격차를 대물림시킬 수도 있다. 이름하여 소득 재분배정책 혹은 복지정책이다. 소득재분배정책이란 사회보험, 사회복지서비스와 조세, 공공부조가 있으며, 연금과 의료보험, 기초노령연금과 같은 공공부조도 있다.

돈에 대해 민감한 사람도 신문의 경제면을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려우니까, 그런 문제는 전문가나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 줄 테니 서민들은 몰라도 될까? 4대보험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기관이 특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국민 개개인에게 징수하는 조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소득재분배정책 중 조세에 대해서만 제대로 알아도 가난을 운명처럼 생각하거나 대물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럽의 선진국 즉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에는 직접세의 비중이 높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두 번째 가라면 섧은 나라는 상품에 세금을 붙이는 간접세의 비중이 높다. 간접세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똑같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빈부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가는 이런 사실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다. 국가은 모르는 사람에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한다. 그러기 위해 의무교육기간을 두는 게 아닌가? 덧셈과 뺄셈만 가르치면 교육의 의무가 끝나는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가르치지 않은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열등의식과 운명을 배우는 학교에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 지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은 우민화교육이다.

정치와 도덕과 윤리와 법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고 나의 희생으로 네가 행복해지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도 건강한 사회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건 불편한 게 아니라 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가난하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게까지 무시당하는 세상에 가난은 결코 미덕도 청렴도 아니다.

새끼 소 한마리에 단돈 1만원밖에 안하는데 쇠고기 값이 비싼 이유가 무엇일가? 유통구조가 잘못되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게 상품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재벌이나 의사 판검사 출신들이 만든 정당이 노동자나 농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재분배정책을  추진할까? 부자정당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정책을 도입하거나 부자들에게 상속세율을 높이는 법을 만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정당을 지지할까?     

국가의 주인을 국민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깨어나지 않는 국민들... 강자의 논리, 지배이데올로기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백성들이 사는 나라는 주객이 전도된 사회다. 주인이 노예로 사는 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진리를 믿지 못하고 세월만 지나면 다 좋아질 것이라는 운명론자들이 사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깨어나지 않는 백성이 사는 사회에는 부자들의 노예만 득실거릴 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12.31 06:30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신의(信義)란 ‘믿음과 의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신의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그렇다면 볼 장 다 본 게 아닌가? 내가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비리의 온상인 정권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운운 하는 꼴을 보면 그 후안무치함에 진절머리가 난다.

최근 민주당도 그렇다. 한나라당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민중의 신뢰를 잃고 있는 기회를 이용해 수권정당으로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 통합민주당으로 개당(改黨)했다. 한나라당이나 비슷한 뻔뻔한 얼굴도 있고 시민단체 대표나 그래도 깨끗한 사람들도 보인다. 이제는 정권교체의 희망을 가져도 좋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 몇이 영입돼 당명을 바꾸면 참신한 당, 수권정당이 되는가? 하는 꼴(?)이 한나라당과 흡사하다.


네티즌들이 한나라당 별명 중 부르고 싶은 이름 1위가 ‘딴나라당’이라고 한다. 민주당의 별명은 뭘까? 한미 FTA를 결사반대한다고 장외로 뛰쳐나가더니 슬그머니 한나라당과 테이블에 마주앉아 예산심의를 하고 있다. 언론이 살아야 한다고 선거 때만 되면 편파왜곡을 외치던 민주당이 미디어랩법까지 합의해줬다. 한편으로는 한나라당과 손잡고 말도 심의까지 버리고 한나라당과 손잡고 한편으로는 재야세력이나 나름대로 깨끗한 인사까지 영입해 통합민주당을 만들면 민중들이 수권정당으로 표를 몰아줄까?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국가권력을 둘러싼 여러 계급간의 싸움’이다. 사전에는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정치란 내와 무관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사회적 가치, 즉 희소한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 행위’가 정치다. 나의 일을 대표자에게 맡기는 게 정치라는 얘기다.

정치를 좀 더 쉽게 풀이하면 노동의 가치를 누가 얼마나 차지하게 하는가 하는 가치배분의 기준(법)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가 한 시간에 하는 노동행위의 가치는 얼마이고 의사나 변호사는 같은 시간에 한 노동의 가치는 얼마라는....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배분의 기준에 따라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 수도 있고 반대로 가난한 삶을 살 수도 있게 만드는 게 정치라는 얘기다.


정치는 혼자서도 할 수도 있지만 영향력이 없다. 그래서 조직이나 단체를 만들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흔히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만 정치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 즉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요구하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일체의 행위가 곧 정치행위다.

내가 시장에서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은 물품을 속아서 사서 속았다는 걸 알고 시청이나 도청에 가서 고발하고 그 고발한 내용이 시정돼 원산지 표시를 하게 됐다면 그건 훌륭한 정치행위다. 또 아파트에서 입주자들이 모여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논의하거나 학급회의에서 체험학습을 가기 위해 사전답사를 하고 일인당 경비가 얼마고... 하는 행위도 구체적인 정치행위다.

정당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정당인가? 정치는 혼자서가 아니라 다수가 모여 집단의지를 표현할 때 더 힘이 있고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 정당이란 무엇인가? 의회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초단위인 정당이란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다. 백과사전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라고 정의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당이란 ‘생각(철학, 신념)이 같은 사람들이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서 권력을 장악할 목적으로 만든 단체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이란 힘이다. 힘이란 자본주의에서 돈일 수도 있고 폭력일수도 있다. 재능이나 학식, 지식도 힘이요, 자신감이나 용기도 힘이다. 권력의 본질이 폭력이지만 정치권력이란 의회민주주의에서 정당을 통해 나올 때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권력이란 본질적으로는 폭력에 바탕을 두지만 구성원의 동의로 강제력에 대한 저항이 억제된다. 이러한 정치권력은 사회적 희소가치를 배분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는 힘이요, 이 힘을 바탕으로 행사되는 권력이란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간접민주주의는 선거 때만 유권자가 주인이다’라는 담론은 여기서 접어두자. 문제는 ‘우리나라에 정당다운 정당이 있는가?’ 또 ‘유권자들이 정당에 대한 선택의 기준을 알고 투표를 하는가’는 민주주의 국가의 수준이나 질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문제다. 이념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지금의 세력으로 가까운 시일 안에 정권교체의 기대를 하기 어렵지만 유권자들은 그래도 한나라당의 타락과 부패로 싫증을 느껴 제일 야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실제로 정권교체의 전력도 있었다.

정당의 존립 목적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계가 몸부림이다. 한나라당이 거듭나겠다고 비대위를 만들어 참신한 인물(?)을 영입하고 난리다. 지은 죄가 많은데 사람 몇이 깨끗한 사람으로 바꾸면 과거를 덮을 수 있을까? 걸레를 빤다고 수건이 되는 건 아니다. 민주당도 바쁘다. 수권정당이 되겠다고 재야세력까지 손잡고 거듭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당명을 바꾸고 신선한 인물(?)을 영입하면 정권을 쟁취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유권자들이 왜 싫어하는 모르고 있다. 정말 시급하게 해야할 일은 신선한 인물영입이 아니라 과거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한에 반성과 사과가 먼저다. 실종된 신의부터 회복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 후에 정강을 바꾸고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순리 아닌가?


“한나라당은 친미 매국당입니다. 주권을 미국에 팔아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 결사반대, 국민과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미디어 랩법 통과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막아 내겠습니다”

그러던 민주당이 슬그머니 국회로 들어갔다. 유권자를 속인 것이다. 할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 유권자들을 기만한 것이다. 그들의 말을 믿고 있던 생존이 걸린 사람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 꼴이 됐다.

정체성이 실종된 정당의 방황

정치란 타협이 필요하고 때로는 양보도 해야 한다. 그런데 한미 FTA와 미디어 랩법이 합의와 양보를 해줄 문제인가? 날치기를 통과시키고 시간만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반복하는 원칙도 기준도 없는 행보를 유권자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교육위기가 위기진단의 잘못에서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하고 수십년동안 무너진 학교 타령만 하듯, 민주당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정당의 정체성부터 찾는 게 순리다. 통합...? 그리고 분영...? 그 다음 책임 떠넘기기...? 그리고 유권자들에게 실망과 정치허무주의를 심어놓고.... 누가 그들의 진정성을 믿어주는가? 아니 속아 주는가?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관계나 ‘정권교체’라는 원칙에 동의한다고 수권 정당이 될 수 있는가?



정권교체를 위해서 먼저 할 일


남의 잔치상에 재 뿌리는 것 같은 말이 될지 모르지만 급하다고 바늘허리 꿰어 쓸 수 있는가? 한 두번의 실수나 양보는 이해할 수 있지만 속이 들여다보이는 타협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방황이요, 이런 정당이 집권을 한들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가? 우리는 지난 노무현정권 시절 지지 세력에 대한 정책개발이나 이해를 반영하지 못하고 기득권세력에 끌려 다닌 민주당의 전력을 잊지 않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정권교체의 목소리를 높인다고 정권이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주당이 제 1야당으로서 정권교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속죄부터 하는 일이다.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 하고 자신들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배신과 기만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한나라당과 무엇이 다른가? 진정성이 없는 정당! 민중의 신뢰를 잃고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민주당이 급한 건 정권교체에 앞서 자기반성과 유권자들의 신뢰회복이 순리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1.29 23:33


    
고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학생이 예상외로 많다.
청소년들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유는 부모의 과보호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학교도 현실을 가르쳐 주지 않기는마찬가지다. '돈과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는 화려한 직업.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스타는 원한다고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성취지위일까?

                                 <사진 : 이하 모든 사진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오늘날의 메스 미디어의 영향은 부모나 교사의 영향을 초월하다. 자기 방에다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거나 펜클럽을 만들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밤을 새워 쫓아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이제 그런 문화가 텔레비전에 등장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청소년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되고 롤 모델이 되기도 하는 스타. 그들은 누구인지 살펴보자. 

문화란 무엇일까? 문화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없이, 속성이나 본질애 대한 이해없이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 오늘은 문화의 속성과 본질에 대해 살펴보자. 청소년들이 꿈꾸는 스타는 그 본질이 무엇일까?
청소년들의 눈에 보이는 스타는 본질이 아니고 현상이다. 그 본질이 자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순진한 청소년들은 문화라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의 이데올로기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안다'는 것, 또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은 단순히 '친숙함'의 의미만은 아니다. 그것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친밀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메스미디어 문화의 속성을 자본은 백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화가 그렇지만 TV의  드라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들어 본 노래, 더 나아가 나의 이상적인 여성상, 또는 남성상은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 둘 수 있다. 특히 극중 인물과 실재인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스타'는 상품판매원으로서의 충분한 첨병 구실이 가능하다. 자본은 이러한 문화의 속성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논리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를 좀 더 단순화 시켜보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에서 텔레비전의 드라마 제작자는 PD가 아닌 '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이 없으면 연출도 조명도 없다. 드라마는 텔레비전의 순기능이나 역기능에 상관없이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이윤의 극대화'는 곧 선(善)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은 속성상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과가 이익이면 선(善)이고 결과가 손해면 악(惡)이 된다. 이와 같은 자본의 논리는 드라마의 제작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드라마의 내용이 음란하냐? 아니면 폭력적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매출고'를 올릴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타'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스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스타는 생성되고 명멸한다. 드라마에서 말탄 왕자로 또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영웅으로 만들어진 스타가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지만 스타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스타의 재능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만 그만한 미모와 능력을 가진 사람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는 시청률을 높이는 자본의 요구를 소화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가지는 다양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기능은 순진한 청소년들로 하여금 희생을 강요받게 한다. 현대전에서는 군인이 아닌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가 더 많은 희생자가 되듯, 정보화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미디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청소년이 된다. 교육의 위기를가 극복하지 못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반복되는 이유가 해결이 불가능 해서일까? 아니면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양성의 요구에 충실하기 때문일까? 

 불의한 힘 앞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생존의 법칙은 스스로 힘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 자연의 법칙은 적자생존이라는 법칙이 확인됐지만 인간 사회에서 생존의 법칙 또한 '힘을 얼마만큼 가지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힘이란 무엇인가? 그 힘이란 지식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다. 

 지식도 힘이요, 권력도 힘이다, 미모(美貌)힘이요. 무력(武力)도 힘이다. 미분화된 사회에서는 학벌(學閥)이나 지연. 혈연도 힘이 된다는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힘은 사회적 가치(돈, 권력, 지위 등 희소가치)의 배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본주의에서 힘의 본질을 이해 못하면 역시 일방적인 희생자가 된다. 기득권자는 이 힘을 수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이용한다.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철학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교육이나 도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체제수호를 정당화하고 현실을 정당화한다. 

 문제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는 안목이다. 문화가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예의도 도덕도 그렇다. 현상은 전부가 아니다. 부분이 전체가 아니고, 형식이 내용을 담지 못한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힘은 생존의 법칙이다. 자연뿐 아니라 인간세사에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희생자가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수준만큼의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그 정도 대접을 받고 살 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1.29 07:13



방황하는 아이들!
가치혼란의 시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에게 남겨 줄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 
돈, 지식, 명예...? 이나 지식, 명예는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어도 살아가면서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녀에게 남겨 줄 가장 귀한 선물은 '세상을 볼 줄 아는 지혜
'를 깨우치게 해 주는 게 아닐까?   
'무지하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용맹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지를 지켜줄 용맹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선현을 가르침을 깨우쳐 주는 게 아닐런지요? 

금광석에서 금이 되기까지는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금광석은 금광에서 채굴된 후 용광로에서 수 천도의 분리과정을 그친다. 여러 차례의 연단과정을 거칠수록 순도 높은 금을 얻을 수 있다. 사람도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런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료 사진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나는 자랄 때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했으니 내 자식만은 부족한 것 없이 키우겠다'
'사랑하는 내 자식에게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꼭 이루게 해 주고 말것이다'는 것이 대부분 부모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자식을 사랑한다면서 자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분신으로 보거나 혹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려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부모가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의 애절한 사랑(?)이 자녀들로 하여금 연단의 과정을 빼앗아 나약한 인간으로 자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온상에서 곱게 자란 식물은 험란한 자연에서는 생존을 유지하기 어렵다. 온실에서 자란 꽃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태풍이라도 닥치면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없어 도태되고 만다. 옛날 부모들은 왜 '귀한 자식일수록 고생을 시켜라'고 했을까? 독수리의 연단과정을 보면 독수리가 왜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독수리는 알에서 갓 깨어나 날개짓을 시작할 무렵부터 새끼를 물고 수 십미터 상공에 올라가 그대로 떨어뜨린다고 한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이 새끼로 하여금 털도 없는 날개 짓을 하게되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날개의 힘을 키워 하늘의 왕자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 어미 독수리의 연단 과정이 없었다면 독수리 새끼는 과연 하늘의 왕자라는 자리를 계승할 수 있을까?

 동물의 세계에서는 냉엄한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세계' 프로그램을 보면 힘이 센 동물이 힘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생존을 유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세계는 어떤가? 인간의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과 윤리같은 사회규범이 지켜지는 사회일까?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가? 물론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약자가 굶어 죽는 사태까지는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회라 하더라도 보다 윤택한 삶, 취미와 여가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이상적인 사회는 없다.  

 인간의 세계에도 동물의 세계처럼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물론 동물과 같은 노골적으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는 아니지만 인간이 만든 사회에서는 사회적 가치(희소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눈물겨운 경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동물의 세계보다 더 사악한 방법으로 승자의 자라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희소가치인 돈이나 권력이나 사회적 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동물의 세계와는 형식만 다를 뿐이다.

 학창시절은 이 희소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힘을 기르는 시기다. 힘이 없는 사람은 동물의 세계보다 더 비참한 패배의 맛을 보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인간사회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그 '힘'이란 무엇인가? 인간사회에서의 힘이란 희소가치 즉 사회적 가치다.

돈이나 권력이 힘일 수도 있고 미모나 건강, 지식과 기술, 정보... 이런 것들이 힘이다. 그밖에도 성실과 예의 바른 성격, 신뢰, 정직... 이러한 것들이 힘일 수 있다. 희소가치인 힘을 갖지 못하면 일생동안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힘이 없으면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무시당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연에는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을 찾아내 인간사회에 활용함으로써 사람들은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의 사회에서도 법칙이 있다. 가정에는 가정마다 학교는 학교마다 그리고 직장은 각 직장 나름대로의 규칙이나 규범이 있다.

사회가 유지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규범을 만들고 그 규범이 도덕이나 관습이란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규범을 무시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힘을 기르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지만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회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지하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용맹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지를 지켜줄 용맹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1.22 07:54



청소년들에게 '장래 꿈이 무엇인가?'라고 물어 보면 '연예인, 의사, 공무원... 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연예인들은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1위의 직업이다. '돈과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는 화려한 직업. 선망의 대상인 스타는 과연 성취지위에 의해 얻어지는 능력인가? 스타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자. 오늘날의 메스 미디어의 영향. 그것은 청소년들의 가치관만 좌우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삶의 일부분이요,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안내자 구실을 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꿈꾸는 스타는 그 본질이 무엇일까? 청소년들의 눈에 보이는 스타는 본질이 아니고 현상이다. 그 본질이 자본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순진한 청소년들은 문화라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의 이데올로기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안다', 또는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은 단순히 '친숙함'의 의미만이 아닌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친밀감'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메스미디어 문화의 이점을 자본은 백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자료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모든 문화가 그렇지만 TV의  드라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들어 본 노래, 더 나아가 나의 이상적인 여성상, 또는 남성상은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 둘 수 있다.

특히 극중 인물과 실재인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스타'는 상품판매원으로서의 충분한 첨병 구실이 가능하다. 자본은 이러한 문화의 속성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논리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를 좀 더 단순화 시켜보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에서 텔레비전의 드라마 제작자는 PD가 아닌 '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이 없으면 연출도 조명도 없다. 드라마는 텔레비전의 순기능이나 역기능에 상관없이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이윤의 극대화'가 곧 선(善)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은 속성상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과가 이익이면 선(善)이고 결과가 손해면 악(惡)이 된다. 이와 같은 자본의 논리는 드라마의 제작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드라마의 내용이 음란하냐? 아니면 폭력적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매출고'를 올릴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타'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스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스타는 생성되고 명멸한다.

드라마에서 말탄 왕자로 또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영웅역을 맡으면서 스타가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지만 스타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스타의 재능을 전혀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개발 가능한 재능은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는 시청률을 높이는 자본의 요구를 소화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가지는 다양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기능은 순진한 청소년들로 하여금 희생을 강요받게 한다. 현대전에서는 군인이 아닌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가 더 많은 희생자가 되듯, 정보화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미디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청소년이 된다. 교육의 위기가 극복되지 못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반복되는 이유가 과연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양성의 요구에 충실하기 때문일까?

 불의한 힘 앞에 살아 남는 생존의 법칙은 스스로 힘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 자연의 법칙은 적자생존이라는 법칙이 확인됐지만 인간 사회에서 생존의 법칙 또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힘이란 무엇인가? 그 힘이란 지식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다.

 지식도 힘이요, 권력도 힘이다, 미(美)도 힘이요. 물론 무력(武力)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분명한 힘이다. 미분화된 사회에서는 학벌(學閥)이나 지연. 혈연도 힘이다.    

 힘은 사회적 가치(돈, 권력, 지위 등 희소가치)의 배분에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한다. 자본주의에서 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역시 일방적인 희생자가 된다. 기득권자는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이용한다.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철학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교육이나 도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체제수호를 정당화하고 현실을 정당화한다.

 문제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는 안목이다. 문화가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예의도 도덕도 그렇다. 현상은 전부가 아니다. 물론 부분이 전체가 아니고, 형식이 내용을 담지 못한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희생자가 된다.

힘은 생존의 법칙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회에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희생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수준만큼의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닌 대접을 받고 살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8 07:51



이 기사는 필자가 학교에 재직시절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얘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자기가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인가? “라고 학생들에게 불으면 ‘돈, 여자 권력, 명예…….’ 이렇게들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그건 누구나 갖고 싶은 거지. 그걸 일컬어 희소가치라고 하는 거야. 희소가치[稀少價値]라는 것은 드물고 적기 때문에 인정되는 가치란다. 다이아몬드와 물을 보면 알지. 물은 하루만 없어도 큰일 나는 소중한 물건인데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살지 않니? 그 다이아몬드 값이 비싼 이유가 희소가치 때문이라는 거야.

 그런데 희소가치라고 하는 그 돈과 여자와 권력…….그런 걸 어떻게 자기가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란다. 지금부터 그 얘길 해보자.(이런 얘길 하면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낚시꾼이 고기를 많이 잡으려면 낚시도구만 가지고 아무렇게나 낚시를 던져놓고 기다린다고 되는 게 아니란다. 어떤 바다에는 어떤 물고기가 많고 어떤 물고기는 무슨 먹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아야 원하는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은 낚시꾼처럼 물고기만 잡겠다고 덤비니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지 않겠니?(그렇게 기를 쓰고 잠을 자던 아이들이 이번 시간에는 잠을 자겠다는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내친 김에 ‘한 시간 특강을 하자’ 마음먹고 시작해 본다)

                                                         <사진자료 : 네이버 이미지에서>

-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

길을 가다가 첫눈에 참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고 하자. 그렇다고 “야! 너 나하고 결혼하자!”하고 덤비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순서를 밟아야 할까? 희소가치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현상에는 겉과 속이 다르다. 사과 껍질이 빨갛다고 속까지 빨간 건 아니다. 본질을 모르고 현상이 본질이라고 착각한다면 그 희소가치를 내 것으로 만들기는 영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그 본질을 찾는 여행을 해보자.

- 겉과 속은 다르다 -

우선 ‘어떤 바다에는 어떤 물고기가 많이 사는가?’를 안다는 것. 그게 중요한거야. 그렇다면 그 바다와 낚시, 미끼 그리고 낚시장비는 어떤 것인가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가치를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않니? 그런데 그 희소가치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살아가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니?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 쓴 시라도 그 시를 해득할만한 안목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시의 진가를 모를 수밖에 없단다. 어디 시만 그렇겠니? 정치자금을 준 대가로 특혜를 받고 탈세를 하고 내수가격을 올려 치부하는 재벌의 정경유착을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어떻게 세상이 바뀌겠니?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수준만큼 보이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니? 이런 사람들일수록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무능이나 운명 탓으로 돌리기 마련이거든…….  

                                                        <사진 : 네이버 이미지에서>

희소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옛날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걸 먼저 알아야 한단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왜 농민들은 죽을 지경으로 심한 노동에 시달리면서 일했는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이런 역사를 배워야 하고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그런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철학을 배워야 한단다.

뿐만 아니라 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돈을 벌겠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란다. 그 돈의 흐름이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경제나 경제사를 배워야 한단다.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나 수학을 잘하면 출세도 하고 훌륭한 사람대접 받는 건 생각해 보면 웃기는 얘기란다. 영어나 수학이 살아가는데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어나 수학은 살아가는데 필요하기는 하지만 모두가 영어와 수학을 그렇게 깊이 배울 필요가 있겠느냐는거지.

그러나 이게 옳은지 저게 옳은지 판단하지 못한다면 인생을 실패할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지 않겠니?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세계관이나 철학을 학교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그런 건 중요하다고 취급도 하지 않는 학교가 우습지 않니?(이 문제도 후에 자본주의의 본질을 배우면 이해할 수 있단다)  

먼저 원하는 물고기를 낚기 위해 우선 역사부터 알아보자.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역사란 어떤 것일까? 지금은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이건 필요한 역사적 지식이다‘라고 선별해 골라 묶은 ’국정교과서‘라는 걸 배우게 했지. 요즈음 그 속셈이 드러나고 말았지만 그 국정교과서를 만들던 국정교과서 편수관들이 일제시대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일본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교과서를 그렇게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니? 

특히 고대사를 많이 배우게 하고 현대사는 거의 배우지 못하게 한 이유도 말이다. 하여간 국정교과서라는 걸 배우면 암기한 지식의 량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단다. 이제부터 그 역사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알아보자.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교과서에는 옛날사람들이 살아 온 내력이라는 게 무조건 ‘아무게네 집에 벼를 몇 섬하고 노비는 몇이나 있었고…….’ 이런 지식을 많이 암기하도록 잡다한 지식을 나열해 놓은 식이었단다. '광개토대왕이 장수왕이 몇 년에 태어나 몇 년에 죽었다든지 하는 지식보다는 농부들이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일하지 않은 양반들이 호의호식하며 살았는가?' 그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극을 보면 왕이나 양반은 인기도 있고 잘생긴 사람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뭐가 모자라도 한 참 모자라는 사팔뜨기, 팔푼이가 등장해 양반의 고귀한 삶의 조역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상놈들은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생겼고 못났으니까 저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란다. 그런 걸 자꾸 보다보면 차차 나도 못 배우고 못났으니까 가난하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운명론자가 되고 마는 거란다.

이렇게 나와 무관하게 보이도록 쓴 역사를 영웅사관, 또는 왕조사관이라 고 하는 거야. ‘어떤 색깔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느냐’ 그것도 없이 역사적 지식을 많이 안다고 훌륭한 사람 취급받는다는 건 웃기는 얘기 아니니?(텔레비전에서 돈을 걸어놓고 이렇게 단편적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가의 여부로 보상을 해주는 것도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일반인도 아닌 학생의 상대로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영웅을 만드는 ‘골든 벨을 울려라’와 같은 프로그램도 그런 아류라고 볼 수 있단다.)

나와 무관한 역사적 지식이라는 걸 배우는데 내 소중한 인생을 허비해야 한다는 건 좀 생각해 볼 일이 아니겠니? 그래서 내가 민중이면 민중사관에 의한 역사를, 내가 지배계급에 속한다면 영웅사관이나 왕조사관에 의해 씌어진 역사를 배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분명한 사실은 역사를 배우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내 민족이 우리 문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걸, 우리 선조들이 피땀흘린 대가로 내가 이정도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역사의식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런 역사는 가짜라는 거지. 그런 역사는 배울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개인의 부귀영화를 누렸다면 그 배신으로 다수의 동족이 당한 고통을 덮어둔다면 누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할 것인가?

역사는 안다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요, 나의 정체성을 깨닫는 일이다.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깨닫지 못하는 역사는 가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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