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 행위자 처벌은 해방 정국의 민족적 과제이기도 하였다. 제헌국회는 1948년 10월 23일 조사위원 10명을 선출하여 임정 요인 출신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에 중앙 사무국 각도에 조사부, 각 시, 군에 조사 지부를 설치하였다.
반민특위는 조사 업무를 개시하여 반민족 행위자 7000여명을 파악하고 49년 1월 9일부터 검거 활동에 들어가 친일 실업가 박흥식, 일제 기관의 고등 밀정 이종형, 중추원 부의장 최린, 강우규 이사를 체포 처형케 한 고등 경찰 김태석, 도지사를 지내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 신문 사장이던 이성근, 일제 헌병 출신의 전직 경찰 간부 유철, 친일 문인 이광수와 사학자 최남선, 군용기 헌납에 광분한 문명기 등 드러난 친일파들을 계속 체포했다.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특위 활동이 계속되는 동안 자수자도 61명이나 됐다. 그러나 친일 세력들은 반민법이 공포된 9월 23일 대한일보사장 이종형이 주동이 되어 ‘반공구국총궐기대회 및 정권 이양 축하 국민대회’란 군중 집회를 열어 반민법을 성토하고 주동 국회의원들을 공산당의 주구라고 몰아친다. 반민법안의 국회 심의 때부터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오던 대통령 이승만은 노덕술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특위를 비난하고 반민법 개정안을 제출했다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한다.
6월 6일 새벽 중부 서장 윤기병이 지휘하는 40명의 무장 경찰대가 특위를 습격하여 무기와 장비를 압수하고 특경대원 35명을 연행하는 사태를 일으킨다. 이 사건에 격분한 국회는 대통령 이하 전국무위원 출석을 요구하고 정부를 규탄했다.
6월 21일 국회 프락치 사건 2차 검거로 김약수 등 7명의 국회의원이 추가 구속되고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한다.
반민특위는 공소시효 만료까지 조사 건수 6백82건, 체포 3백5건, 미체포 1백73건, 자수 61건, 영장 취소 30건,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5백59건 이였다. 그러나 그 중 2백21건이 기소되어 재판을 종결한 것은 불과 38건인데 사형1건, 무기징역1건을 포함하여 실형이 선고된 것은 불과 7건뿐이었고 거의가 집행 유예나 무죄로 풀려났다. 실형 선고를 받은 7명도 1950년 본까지 감형과 집행 정지 등으로 모두 풀려났다.
【끓어 오르는 한라산】
(우리 역사 이야기, 조성오, 돌베개, p.10~53)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 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정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 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 폭포에서는 빨가벗긴 빨지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 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 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 깡패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 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 광장 앞에서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하 생략.............
이산하 “한라산” 에서
【4․3 사 건】
기미독립운동 28주년이 되는 1947년 3월 1일, 제주 도민 3만 여명(당시 제주도 총인구 27만명)이 3.1절 기념식(미군이 불법으로 인정)을 열고 애국가와 3.1절 노래를 부르며 “3.1혁명 정신으로 한국통일독립을 쟁취하자”, “미국은 남한에서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기념식이 끝난 후 가두시위에서 7명의 시민이 사망하자 제주도 총파업 위원회가 3월 9일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강력한 저항이 시작된다.
4월 초순경에는 2,000여명의 도민이 체포되고 시위대와 미군, 경찰, 서북 청년회, 대동 청년 당 등의 대치 상황에서 처절한 살육 극이 자행되었다. 1949년 3월 25일 정부의 1,667명 인명 손실 발표와는 달리 한국 편람(1956)에 4만명, 1960년 국회의원 김성숙이 제출한 「제주도 양민 학살 조사 건의안」에 5만명, 그리고 1963년 제주도 당국이 발행한 「제주도」8월 호에는 8만65명의 희생자를 냈다고 기록되고 있다.
제주 항쟁은 ‘식민지 예속을 거부하고 민족 분단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선 우리 민중의 영웅적이고도 처절한 투쟁’이라고 정의하는 학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여수 순천 사건】 ― 1948.10.19~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남풍 신서, p.44~45)
여수 순천 사건은 극우나 극좌가 결탁하여 발생한 쿠데타나 혹은 제주 4.3사건 진압 차 출동 명령을 받은 14연대 내의 소수의 좌익계 사병 집단에 의해 주도된 군부 반란 사건이라기 보다는 1공화국 출범 당시 사회, 경제적 조건 및 정치적 상황과 해방 이후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전남 지방 정치의 과정에서 발생된 제 조건이 결합하여 폭발한 보다 근본적인 성격의 사건이다.(해방 전후사의 인식, 한길사, p.414)
1948.10.19 여수 순천의 14연대 장병 3천여 명이 ‘경찰 타도, 제주도 출동 거부, 남북통일을 위하여 인민군으로 행동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일어난 여수 순천 사건은 9천4백5명이 학살당하고 2만3천명의 체포로 끝난다.
14연대가 제주 사건 진압을 위한 차출 명령을 받자 연대 인사계인 지창수 상사는 연대 내 핵심 세포 40여명에게 무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하게 하고 출동 계획 일시인 19일 저녁 9시가 되기 한시간 전 비상 나팔을 불어 출동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1개 대대 병력 이외에 부대 주변에 있던 남로당원 23명과 나머지 2개 대대를 합류시켜 3천명을 집결, 20일 1시경 지창수 지휘하에 여수 경찰서를 점거하고 학생과 지하 단체 6백여 명이 합세 무기 탄약을 지급 받고 관공서가 이들의 치하에 들어갔다.
이날 여수 시내는 약 3만 명의 군중들이 모여 인민 대회를 개최하고 ‘여수 인민 위원회에 의한 정권 장악’을 선언하고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토지개혁을 즉시 실시한다”고 주장하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였다.
이들 중 2개 대대 병력 약 2천명은 철도편을 이용하여 순천에 도착하여 홍순석 중위가 지휘하는 제14연대 2개 중대 병력과 합류하여 오후 5시경에는 순천을 완전 장악한다.
이들은 3개 부대를 재편하여 학구, 구례, 남원 방면으로, 한 부대는 광양 방면으로, 다른 부대는 벌교 보성 방면으로 진격하여 여수, 순천, 보성, 광양의 거의 전 지역과 하동, 남원, 구례, 곡성의 일부 지역까지 이르렀다.

UN의 조선 문제에 관한 결의안 및 총선거에 대한 하지 중장의 견해 발표
(1947.11.20)
본관은 유엔총회에서 43대 0으로 총선거 실시를 감시하기 위하여 통일된 조선 정부의 수립 및 조선 독립의 달성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불원간 來朝할 유엔 조선 위원회의 설치안을 가결하였다는 보도를 접하여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동 위원회는 9개국 대표로 구성된 것이며 그 중 4개국은 태평양 및 극동 방면에 있는 중국, 인도, 필리핀 및 호주의 제국이 임명된 것입니다.
본관은 본국 정부로부터 유엔 조선 위원회의 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포함한 조선에 관한 결의안의 각 조를 미국 정부가 필히 준수할 것이라는 것을 조선 국민 및 지도자에게 전달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미국 정부의 대표자로서 본관은 조선 국민에게 유엔 조선 위원회가 설치된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력을 하여 원조할 것을 보장하는 바입니다.
이 계획안에 의한 제일 단계의 조치는 결의안에 의하여 1948년 3월 31일 이내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 국민은 동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총선거에 대대적으로 응하게 될 것입니다.
본관은 방금 본 문제에 관하여 워싱톤 당국과 교섭 중에 있으므로 총선거에 대한 조치를 불원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전 조선 국민은 본 문제에 관한 정식 발표를 기다려야 됩니다. 취중 조선 국민 악선전에 속지 말 것이며 또 총선거에 관한 승인을 받지 않는 비공식 보도에도 현혹되지 않아야 됩니다.
본관도 조선 국민이 과거 2년간이나 실망과 낙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조선 독립을 제래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 및 그 대표자들의 부단의 노력(첫째로 1946년 및 1947년에 각각 채택된 二國회의 미, 소 공동 위원회를 통하여, 둘째로 모스크바 협정에 서명한 4개국 회의를 통하여, 셋째로 미국 정부가 제의한 최근의 유엔의 조치를 통하여)에도 불구하고 2년간이나 지연되어 왔습니다.
본관은 유엔의 여러분의 문제에 대한 금반의 신 단계는 세계의 독립 제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여러분의 오랫동안의 꿈이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유엔 결의안의 내용에 대한 여러분의 연구에 資하고자 다음의 결의안 원문을 인용합니다.
이완용의 질손 이병도와 친일 사학자들이 쓴 역사 교과서...
이병도를 비롯한 식민사관 학자들에 의해 기록된 국정교과서를 배운 우리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알고 있을까?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입으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던 그들은 해방 70년이 가까운 지금도 훌륭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침 신문을 읽다가 장준하선생님이 박정희에게 했다는 말씀이 잊혀지지 않네요.
"일제가 그냥 계속됐다면 너는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륙을 계속했을 것이 아닌가?"
이명박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놓고 네티즌들이 이명박대통령 독립운동하는 중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울고 싶은 사람에게 뺨때려 준 독도 방문... 일본은 각본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고 분주합니다.
해방 67주년, 아직도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일세력들이 득세하고 그들이 애국자가 되는 한 진정한 해방은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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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육이 주 1시간이라도 있었으면 합니다.
2020.05.06 06: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교육부에게 철학교육 하라고 하묜 관념철학 가칠건데요. 니체나 칸트 알아듣지도 잘 못하는 거런 건 철학이라기보다 진실을 못 보게 만드는 미취교육입니다.
2020.05.06 08:19 신고 [ ADDR : EDIT/ DEL ]긴 연휴가 끝났네요 다시 힘차게 즐거운 수요일 시작 하세요 ~
2020.05.06 06: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이제 코르나 걱정없이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20.05.06 08:20 신고 [ ADDR : EDIT/ DEL ]참교육 김용택 선생님 아리아리!
2020.05.06 06: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선생님의 글 절절이 옳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가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깊은 공감이 갑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며 많이 배워나가겟습니다.
국영수음미체 모든 과목을 100점을 받아야 하는.... 교육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습니다.
2020.05.06 08:21 신고 [ ADDR : EDIT/ DEL ]글을 읽으면서 저를 다시 돌아봅니다. 제 스스로 목적이 없었던 것같네요. 잘보고 갑니다
2020.05.06 07: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비싼 공납금 내 미국에서 미국식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배운 학자들에게 우민화교육을 받았습니다. 참 가엾은 민초들이지요.
2020.05.06 08:22 신고 [ ADDR : EDIT/ DEL ]그게 올바른 교육인데,, 또 필요한 교육이구요.
2020.05.06 12: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점수 위주의 교육이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교육도 헌법대로 하면 좋겠어요. 지식을 주입해 서열을 매기는 교육이 아니라 개인의 소질과 특성을 살리는 교육으로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05.06 17:14 신고 [ ADDR : EDIT/ DEL ]교육이 바뀌어야합니다.
2020.05.06 14: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기를 빼앗긴 아이들이 불쌍해요.
2020.05.06 17:14 신고 [ ADDR : EDIT/ DEL ]저도 정말 동의합니다.
2020.05.06 18:08 신고 [ ADDR : EDIT/ DEL ]그러게요... 애들 공부하는 내용을 보면, 저게 전 학생들을 꼭 저렇게까지 시험보는 기계로 만들어야 할 까 싶더라구요. 정말 실생활에 1도 도움이 안되는 성적 줄세우기 위한 공부...
2020.05.06 17: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1등지상주의는 바뀌어야 합니다. 너무 잔인하잖아요. 한창 민감한 청소년기에 열패감을 길러주는...교육이 아니지요.
2020.05.06 17:15 신고 [ ADDR : EDIT/ DEL ]교육의 목적이 지식이라면 학원으로도 충분하겠지요..
2020.05.06 18: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그렇습니다. 지식만 가르치려면... 그런데 학교는 학교로서 할 일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교육하자고 하는 교사들을 해직 파면시켰고요. 그피해는 고스란히 힉부모들에게 돌아 가는데... 학부모들은 가해자 편입니다.
2020.05.06 19:31 신고 [ ADDR : EDIT/ DEL ]주입식 교육은 노노입니다
2020.05.07 09: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그러게요. 알파고시대라면서 아날로그 교육은 바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20.05.07 10:4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