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18.11.07 06:20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아는 것이 많아 보이나, 정작 알아야 하는 것은 모르거나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 학교교육을 보면 헛똑똑이를 키우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초등, 중등학교, 대학을 졸업하기 까지 참 많은 지식을 배운다. 힘겹게 공부해 성공한 사람들이 순간의 판단잘못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목은 국민윤리, 국어, 국사, 사회, 지리, 세계사,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체육, 교련, 음악 , 미술, 한문, 영어. 외국어, 기술, 가정, 특별활동...등이다. 인류가 찾아낸 자연의 법칙이며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수많은 지식과 기술, 원리와 법칙을 배운다. 사람들이 한평생 살아가는데 정말 이렇게 많은 지식이 다 필요할까? 설사 이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시험을 위해 배운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인생의 황금기라는 청소년기를 이렇게 교실에 가두어 시험을 위한 지식을 암기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일까?

오랜 세월 동안 동양사회에서는 인물을 평가할 때 적용하던 기준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기준인 이다. ··를 보는 이유도 최종적으로 판단력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 저 사람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를 곧잘 묻는다. 시비를 가리고 호불호의 판단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호기심을 학교에만 가면 무시당하고 지식이나 원리, 법칙을 외워 암기시키기에 바쁘다. 시비를 가리고 판단할 기회를 빼앗아 가 버리는 것이다. 가치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비를 가리로 옳고 그름을 분멸할 수 있는 판단력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교육이었다. 순진한 국민을 교육을 통해 일본은 위대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미개하다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어서다. 이른바 우민화교육이다. 우리가 못난 민족이니 똑똑한 일본에게 배워 일본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황국신민화교육이 그것이다. 독재자들은 똑똑하기는 하지만 비판능력을 소거된 순종형 인간을 기르려고 했다. 그래서 일제의 영향을 받은 학교는 정직, 근면, 성실한 인간을 길러내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길을 안내 받아야 할 학교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 일등지상주의, 출세주의로 자신의 소중함을 깨우칠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정의 소중함을 불의에 분노하는 정의감을 자연과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인 존재로 길러내지 못하고 소중한 청소년기를 교실에 가두어 서열화교육으로 실패와 열등감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수요자 중심의 7차 교육과정은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철학이다. 돈이 되는 것,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 되는... 과정을 생략되고 결과로 승패를 가리는 무한경쟁으로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경쟁교육은 우민화교육이다.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는 인간을 길러 내려고 했다. 교육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수월성교육은 자본주의형 인간을 길러내고 싶어 한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목표는 홍익인간이지만 교실에서는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무한경쟁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 없는 교육은 우민화교육이다. 일제가 그랬고 유신정권, 독재정권이 그랬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학교에는 시비를 가리고 판단력이 있는 인간을 길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수요자중심 교육이란 수익자 부담으로 개인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학교는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 외면당하는 교실에는 암기한 지식으로 사람의 가치까지 등수 매기는 반교육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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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근대교육의 조종(弔鐘)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종이 울리기 시작한지는 이미 한참 되었지만 아직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은듯하다. 그만큼 잠이 깊이들었기 때문이리라.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정신 차리게 해서 학교에 묶어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아이들은 모름지기 어른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개근상이 우등상보다 낫다고 우기는 이들, 그러면서도 우등상이 곧 우수함을 증명한다고 믿는 이들, 일류대졸업장이 인생의 보증수표라도 되는 듯이 여기는 이들 모두 아직도 잠을 덜 깬 것이다.」

존 테이러개토(John Taylor Gatto)가 쓴 '바보 만들기'라는 책을 소개한 펴낸이 현병호님의 지적이다.이 책이 2002년에 출간된 책이니 벌써 14년이 지난 책이다. 이 책을 소게한 현병호씨는 죽은지 오래된 교육을 붙들도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경고장을 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그 교육이 삶을 안내하는 것도 현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지도 안내도 하지 못한다는것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1. 연관성을 파괴하도록 가르치는 혼란

2. 교실에 가두기 

3. 무관심 

4. 정서적 의존성 

5. 지적 의존성 

6. 조건부 자신감 

7. 숨을 곳이 없다며 고자질을 가르치는 것 

게토의 '바보 만들기'라는 책에 소개한 교사가 저지르는 죄다. 게토는 말한다. '“학교는 경쟁 통해 바보 만드는 곳”이라고... 요즈음 우리교육의 현실을 보면 게토의 말에 손뼉을 치고 싶다.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방황하는 교육현장을 보면 '학교의 음모로 부터 우리아이를 보호하려면, 학교로부터 우리아이들을 가정으로 찾아오자'는 게통의 주장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 닿는다.

학교는 건강한가? 2세들이 살아갈 세상을 안내 해주는 사회화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학생들이 사회변화에 적응해 현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이나 비판의식, 민주의식을 길러주고 있는가? 아마 이런 질문에 선듯 '예~'라고 대답할 교육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경쟁과 효율만이 살 길이라며 공공성을 포기하고 교육을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던져버린 교육...그날 이후 교육은 하루도 빤한 날이 없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성적지상주의, 일등지상주의, 일류대학... 그래서 만지기만하면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고 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이더스 왕의 손처럼 상품으로 변한 교육은 학생 개개인도 교사도 학교도 지역도 모두를 일등에서 꼴찌까지 서열을 매긴다. 보다 더 능률적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경쟁에 기름을 붙기 위해 지원금으로 성과급으로... 경쟁을 시켜 서열을 매기고 있는 것이다. 

자본과 결합하면 순수성을 잃거나 변절하기 마련이다. 상품은 물론이거니와 교육도 종교도 학문도 자본은 '이익이 선'이라는 상업주의에 빠지게 된다. 탈세를 하거나 투기를 하거나 권언유착을 하거나 돈만 벌어 부자가 되기만 하면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자본주의.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로 평가받는 현실을 만들어 놓는다. 인간 됨됨이보다 학벌이, 실력보다 스펙이, 본질보다 현상이, 인격보다 외모가 중시되는 사회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바보만들기에 나오는 조종(弔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 교육을 상품이라고 고집하는 이들, 자본의 하수인, 사교육 마피아들, 정당성이 없는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담긴 교과서를 금과옥조로 믿는 이들, '교사=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믿는 선생님들이 있어 학교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에, 이데올로기에 마취된 교육으로 인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학벌중심의 사회로 바뀌고 있다.

아직도 조종(弔鐘)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 아이들을 특정한 기준으로 무리짓고, 그들의 인성까지 학점으로 평가하며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 이들, 학교가 아직도 교육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이들, 천부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이들만 살아남고,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들... 통찰력, 지혜, 정의감, 너그러움, 용기, 창의성과 같은 훌륭한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들이 전혀 엉뚱한 아이들에게서 나타났다며 "아이들은 각자 삶 속에서 배우고 스스로 자란다"는 존 테이러개토의 지적에 한번 쯤 귀길울였으면 좋겠다.  


교육을 시장에 맡기면...

<주장> 교육의 공공성 포기하나?

2003.10.13 김용택(knms1)


식민지시대 교육목적은 황국신민화에 있었다. 식민지 종주국이 식민지 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심거나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칠 리 없다. 마찬가지로 독재권력이 교육권을 장악한 상황에서는 독재권력의 정당성이나 체제수호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교육이란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원하는 인간을 양성하고 사회주의에서는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인간을 양성한다. 

지난 2일 교육부에서는 '외국교육기관설립·운영기본계획및특별법제정안'을 마련해 교육을 개방하겠다고 밝힌 일이 있다. 이 법안을 보면 지난 3월 WTO에 제출한 양허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교육시장을 개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특별법안에는 경제자유구역 안에 외국대학이나 분교를 설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산잉여금의 해외 송금도 허용하고, 우수 교육기관에 대해서는 세제혜택까지 주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세운 초·중·고등학교에 우리 학생들도 자격제한 없이 입학할 수 있으며 졸업시 학력도 국내학교와 동등하게 주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을 개방하면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교육시장 개방론자들의 주장이다. 교육을 개방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학교가 능력이 없어 학생들에게 실력을 쌓아주지 못했으니 외국인 학교를 세워 경쟁을 시키면 아이들의 실력이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학교가 학원에 비해 시험성적이 뒤떨어지고 교실붕괴나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이유도 교사가 능력이 뒤떨어지거나 학교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교육이 상품이 될 수 없으며 시장에서 경쟁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을 못하는 이유도 교육자의 무능이 아니라 일류대학에 입학시켜야 출세가 보장되는 학벌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더구나 영어만 잘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외국인 학교가 들어오면 경쟁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육을 개방하면 교육의 주권조차 지켜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육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은 교육을 상품으로 본다는 뜻이다. 교육시장이 개방되면 고급 상품인 교육은 비싸고 저질상품인 교육은 싸구려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고급상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저질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의 차이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차등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기회균등'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부모의 경제력으로 자녀의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신분세습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시장이 개방되면 국가의 공적지원이 철회됨으로써 교육비를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교육시장의 개방은 교육비의 인상으로 외국자본에 의해 교육권이 종속되는 교육주권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가족이 다 함께 보는 드라마가 왜 음란하거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까? 드라마의 내용은 시청률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진짜 주인은 PD가 아닌 광고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방송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면 건강한 내용을 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본에 예속된 방송은 자본의 비위를 거스르고는 살아 남을 길이 없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키우는 인간은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식민지시대나 독재정권 아래서 교육이 그 본질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교육 내용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서 확인된다. 더구나 영어만 잘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풍토에서는 외국인학교가 귀족학교가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교육시장을 개방하겠다는 것은 교육주권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교육시장을 개방한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받을 권리'를 포기한 정부,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기회 균등'을 포기한 정부, 교육주권을 포기한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는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3년 10월 13일 (바로가기▶) 교육을 시장에 맡기면... <주장> 교육의 공공성 포기하나?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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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벌써 20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필자가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제안한 지가...ㅜㅜ 

좋은 생각이나 제안을 받아들여 고치고 바꾸는게 좋은 나라를 만드는 비결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명인사의 말,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말은 필요이상 시시콜콜한 후문까지 다 쓰면서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충고는 쇠귀에 경읽기다. 


▲ 초·중·고·대학교의 개학을 현행 3월에서 9월로 옮기는 9월학기제 도입이 검토된다는 소식에 많은 네티즌들이 추진이유와 배경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사진은 경북 울릉군 울릉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 : 오마이뉴스


한번 생각해 보자. 

일제 강점기시절에 쓰던 '국민학교'라는 이름. 그 국민학교란 '우리 국민을 일본 천황의 충실한 백성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이 황국신민을 만드는 학교인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바꿔야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안했지만 '국민학교'를 버리고 '초등학교'가 되기까지 걸린 세월이 무려 41년이다.


지금 학교는 긴긴 겨울 방학을 마치고 개학했지만 등교한지 열흘도 채 안 돼 다시 방학을 했다. 말이 등교지 교과서를 다 배우고 학년말 성적표까지 다 만들어 놨는데 출석일수만 채우기 위해 개학했으니 공부가 될리 없다. 출석일 수를 채우기 바쁘게 다시 봄방학에 들어가는 3월 학기제...! 이런 모순 투성이의 학기제가 일제강점기시절, 일제의 3학기제 유산이라는 걸 정부는 알고 있을까? 


제가 '학기제도 이대로 안된다'는 제안을 1998년부터 했으니 벌써 20년이 가까워 온다. 학기제를 바꾸는 것도 황국신민을 기르는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는데 걸리는 41년의 세월이 필요할까? 하긴 법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은 순진한 국민들뿐이니까 학기제를 바꾼들 달라질게 무엇일까만 잘못을 그대로 두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정부의 배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지금 봄에 1학기를 시작하는 국가는 한국(3월초)과 일본(4월초) 외에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시절 3학기제도 4학기제로 바뀌었는데 공부도 하지않고 출석일수를 채우기 위해 등교했다가 다시 방학에 들어가는 이 지지리도 못난 학기제 하나 안바꾸고 고집하는 정부는 뭘하는 곳인가? 그렇찮아도 며칠 전부터 심기가 불편해 밥맛조차 없다. 참으로 어렵게.. 그것도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나 어렵게 어렵게 만든게 개성공단이 아니가? 그 개성공단을 국민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전광석화처럼 폐쇄조치를 한 걸 보니 학기제 같은 것은 알고도 모른 채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공생 가능성을 모색할 수도 있는 세계 역사상 경이로운 개성공단을 폐쇄한 이토록 잔인한 정부라면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치도 교육도 경제도 언론도... 사실 막다른 골목에 내 몰렸다. 하긴 일베들이 활개를 치고 관변단체들이 애국자노릇을 하고 있으니 친일의 후예인 새누리가 애국집단이 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래도 한가닥 나라가 백척간두에 선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교육자들에게 다시한 번 제안하고 싶다. 식민지시절 학기제를 앞으로 계속 고집하는 정부를 구경만하고 있을지.... 1998년에 오마이뉴스에 썼던 '학기제도! 이대로 안 된다'는 글을 여기 다시 소개 해 본다.           






학기제도! 이대로는 안된다.


1998. 1. 30



안녕하십니까? 김용택입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2월초를 전후하여 긴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합니다.

초등학생보다 체력면에서나 심리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 대학생들은 아직도 방학중인데 초중등학생들은 개학을 합니다. 교과서 진도도 거의 끝나고 개인별 성적 산정도 마친 2월의 수업은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설렁하기 그지없습니다. 2주간의 2월 수업은 지난해 연말에 남긴 단원을 억지로 붙들고 있거나 비디오를 보거나 자습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설 연휴와 겹쳐 개학하고 다시 휴가로 들어가는 모순을 안고 있어 더욱 부실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교재를 배우는 학생들은 새해 들어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하겠다는 각오를 실천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졸업을 앞둔 3학년 학생들은 진로가 확정되어 법정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등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행 학기제는 1학기 19주, 2학기 17∼19주로 짜여져 있습니다. 대학에 비해서 초중등학생들의 수업지속 시간이 더 긴 셈입니다. 혹한기가 계속되는 2월초에 개학을 하여 난방시설도 안된 교실에서 추위에 떨면서 수업을 하다가 봄기운이 드는 2월말에는 다시 봄방학을 하는 것입니다.


전보내신을 내 놓은 교사들도 안정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2월말이나 3월초에 신규, 전보 이동 발령을 받게 됩니다. 40일 전후의 방학과 2월의 한가한 시간을 허비하고 3월초의 급작스런 발령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랴부랴 학급담임을 맡게 되고 학생 파악과 연간 교육계획을 세우느라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도서 벽지나 근거지에서 먼 곳으로 발령을 받는 경우에는 방을 구해 이사를 가거나 자녀들을 전학시킬 여유도 없습니다. 부동산 값이 들먹이는 3월 초순에 이사를 하게 되어 박봉의 교사들에게는 이중의 부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3월 신학기제는 1월중에 교원 전보발령과 새 학년도 준비를 완료하고 2월 중순에 새 학년도를 시작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교사들의 전보를 12월말이나 1월초에 시행하면 이러한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 맡게 될 담임으로서 학생 파악이나 교육과정운영계획을 여유를 두고 주도면밀하게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2월말에 전보나 신규발령을 받은 교사들은 교재의 연구는 물론이고 학습자료의 개발이나 업무분장의 파악 그리고 교실 환경정리 등을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방학 전에 교사의 인사이동이 끝나고 긴 방학을 이용하여 새 학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각 학교의 졸업식은 2월 중순에 거행됩니다. 상급학교 진학이 적었던 20∼30년 전만 하드라도 학교의 졸업식은 개인적으로 인생의 매듭을 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가족에게는 경사스러운 일로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절대다수가 진학을 하는 오늘날에는 졸업식의 의미도 달라져야 합니다. 학년도가 끝나는 12월말로 졸업식을 치르는 것이 새해를 맞아 마음의 각오를 다질수도 있고 1∼2월의 공백을 이용하여 자기가 계획하는 일을 실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월의 2주간 수업은 설 연휴와 겹쳐 개학하고 졸업식, 종업식과 겹친다는 점에서 수업의 연속성이나 누적성, 효과성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또 2월의 학교는 혹한기여서 난방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의 입학시기도 3월 초순입니다. 어린이들이 학교생활을 하기에는 꽃샘추위를 견디기 힘이 듭니다.


새싹들이 오들오들 떨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입학식을 하는 모습도 보기가 민망스럽습니다. 입학시기를 3월 중순으로 바꾸면 이러한 문제점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회계연도와 학년도가 다른면에서 오는 문제점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회계연도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이지만 학교의 학년도는 해를 넘겨 다음 해 2월말로 되어 있어 예산의 수립, 집행, 결산에 많은 불편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의 2월 수업은 일제시대 3학기제의 유산입니다. 황국신민 학교의 약자인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고치는데 50년이나 걸린 우리나라는 일제 3학기제의 유산을 고치는데도 앞으로 몇십년이 더 걸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huffingtonpost>


얼마 전 교육개혁위원회에서 9월 학기제를 검토중에 있다는 언질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시행방안에 대해서는 이야기된 바 없습니다. 교육개혁위원회에서 거론되었던 9월 신학기제도 또한 기독교의 전통에 따른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을 고려한 그들의 전통을 고려한 것입니다. 우리의 학사력은 우리의 농경문화와 전통을 고려하여 재고되어야 합니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학생들은 새해를 맞아 새학년의 각오를 지니고 학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더구나 IMF의 한파에 대비한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도 현재의 학기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옛날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1998년 01월 30일 (바로가기▶)'학기제도! 이대로 안 된다'라는 주제로 쓴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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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


참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이 말에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시대 황국신민화를 위해 필요했던 애국조회가 그대로요, 요 주의 인물을 감시하게 위해 만들었던 당번제도며... 군대 위병소를 닮은 교문지도며, 평교사, 부장교사, 수석교사, 교감, 교장으로... 계급화된 학교의 조직 체계... 등등 학교는 아직도 민주주의 사각지대다.



 

학교에 민주주의가 사라진 이유는 고색창연한 제도 탓만이 아니다. 학교가 민주적인 학교로 거듭나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교장제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장도 검사장도 자격증 없이 할 수 있지만 학교장에게만 필요한 자격증.... 교장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의 여부에 따라 전근대적이고 폐쇄적인 학교가 될 수도 있고 민주적인 학교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교장훈화를 듣고 훈화내용을 받아 적고 소감쓰기’..... ‘훈화공책에 교장의 훈화를 질 기록 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걷어 검사’를 하고 방송훈화를 듣느라 1교시 수업을 배치하기 어려워 담임시간으로 배치해 놓기도 하는 학교. 전교생이 교실에서 교장의 훈화를 방송으로 듣고 방송조회가 끝난 후 화면에 나타난 교장을 향해 ’교장선생님께 경례‘를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는 학교.

 

학교에는 민주적으로 운영할 기구가 없는 게 아니다. 대표적인 법적인 기구가 학교운영위원회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의 실정과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교육’을 위해 설립한 심의기구(사립은 자문기구)다. 이런 학교운영위원회가 개방적이고 투명한 학교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구성원인 교원위원이나 학부모위원, 지역위원 선출과정에서 교장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민주적인 학교- 기숙형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

 

학교장의 독선을 견제할 ‘인사자문위원회’며 ‘성과급 평가위원회’와 같은 기구도 있지만 그런 건 형식에 불과하다. 교사회니 학부모회가 있어도 법제화 되지 않고 임의기구인 이런 기구가 학교장의 독선적인 운영을 막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니 오히려 학교장의 들러리 구실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를 교장왕국이라고 하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교장’ 그는 누구인가?

 

초중등교육법 제 20조 1항을 보면 “교장은 교무를 통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막중한 역할을 해야 할 교장... 도대체 교장이 학교에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

 

교장은 ‘보직교사 임명권 및 교원의 근무성적평가, 인사고가평가, 학생생활지도를 위한 교칙개정, 시설 개선 등 예산 집행 및 업체선정, 기간제 교사 체용 및 면직 등 학교운영의 전권을 행사’한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의 최종 결정권’은 모두 교장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보면 맞다.

 

학교장이 행사하는 모든 권한이 다 그렇지만 특히 승진, 성과급 등의 결정에서 학교장의 의사는 거의 절대적이다. 교원평가 또한 마찬가지다. 2008년부터 승진을 앞둔 교사들에게 동료교사의 다면평가가 30% 반영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교장이 40%, 교감은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뉴시시>

 

뿐만 아니라 학교운영에 필요하다고 교장이 판단하면 교사를 초빙할 수 있다. 이름하여 ‘초빙교사제’다. 초빙교사의 자격은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교육공무원으로 실교육경력(교사경력) 4년 이상, 현임교 근무경력 2년 이상인 현직 정규교사로서 당해 학교 초빙요구 조건에 적합한자(초중등교육법 제 21조 2항)’라야 하지만 그것은 명분일 뿐, 대부분의 초빙교사는 승진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빙과정에서 금전 비리는 물론이요, 자연히 교장과 공생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학교장과 공생관계에 있는 초빙교사가 ‘교장의 방패막이가 되고 학교 안에서 교사들의 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 데 앞장선다는 상식이다. 교사가 교감으로 승진하거나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위해서는 학교장의 근평이 거의 절대적이라는 사실이며 교감 또한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교장의 근평이 거의 절대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학교가 교장왕국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다.

 

<전 태봉고 여태전 교장선생님의 교장 십계명>

 

근무평가권과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교장에게 민주적인 학교운영이나 학교장의 경영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사실이 어함에도 불구하고 교장과 맞서 학교장의 눈 밖에 난 교사의 경우 ‘교육상 전보가 불가피한 자’로 분류돼 직권 내신으로 전보발령을 받게 되기기도 한다.

 

학교장은 ‘인격과 덕망을 갖춘 사람으로 교직원들의 존경을 받으며 학교경영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교현장에는 학교를 자기 뜻대로 운영하는 파렴치한 교장만 있는 게 아니다.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학교를 운영하는 혁신학교 교장이며 내부형 공모제 교장, 그리고 작은 학교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2세 교육에 전념하고 있는 존경 받는 교장선생님도 많다는 사실을 아울려 밝혀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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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4.30 07:00


 

 

5월 1일은 123번째 맞는 세계노동절이다.

세계인구의 80%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살기 좋은 세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자! 그는 누구인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한다.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라는 이름으로 바꾼 이유가 뭘까? 남북분단의 비극은 언어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어릴 때 같인 놀던 동무는 친구여야하고 인민이라는 단어는 언젠지 모르게 국민으로 바뀌었다.

 

바뀐 언어만큼 노동자의 삶도 달라져야할 텐데 정작 노동자로 살아 갈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노동자의식을 가르치지 않고 ‘노동은 천한 것’, ‘부끄러운 것’이라는 걸 교육과정 속 구석구석에 담겨 있다. 노동자로 살아 갈 아이들에게는 영어 단어 몇 개, 방정식 몇 문제 풀이보다 노동3권과 노동법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면서 자본의 논리가 담긴 교과서를 배워 노동자 머릿속에 자본가의 생각으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교육, 이런 교육을 받고 노동자가 되어 살아가는 국민들은 과연 행복할까?

 

 

민주주의를 말하고 자유를 말하고 평등을 말한다. 그런데 현실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평등도 교과서에 담긴 내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자유는 부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면 그런 민주주의는 계급사회와 다를 게 없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둥 위에 세운 게 민주주의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유와 평등... 그런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현실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야만의 시대 자유란 소수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진보의 시대, 복지의 시대로 진전됨에 따라 소수에게 주어지던 자유는 다수에게 그리고 평등이라는 가치로 일반화된다. 계급사회에는 서민보다 귀족의 인권이 존중받는 체제로 유지되어 왔지만 민주사회에는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인권과 복지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계급사회가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희생이 따랐지만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 또한 만만한 게 아니었다. 지금 우리사회에도 평등보다 자유를,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힘있는 세력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과거의 향수에 목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진주의료원 문제다.

 

진주의료원 폐업으로 본 의료 민영화

 

“돈 안 되는 병원은 문 닫겠습니다.”

노동자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노동은 천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자본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분류한다. 식민지시대 조선사람들은 무식하고 열등하다는 걸 심어 황국신민이 되는 게 영광이라는 가르쳤듯이 제도 교육은 블루칼라는 못 배우고 못난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교육을 통해 의식화해 오고 있다.

 

 

홍준표경남도지사를 비롯한 새누리당의 세계관이 그렇다. 자본의 논리,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는 약자를 배려하는 가치, 복지라는 가치, 평등이라는 가치는 빨갱이들의 목소리로 낙인찍혀 정당한 주장조차 매도당하기 일쑤다.

 

“진주지역의 의료서비스 과잉공급으로 진주의료원이 지난해 70억원의 손실을 입는 등 적자 규모가 갈수록 커져 현재 300억원에 가까운 빚을 지고 있다. 이대로 두면 회생 가능성 없는 의료원에 도민 혈세가 끝없이 투입되거나, 3~5년 안에 모든 자본금을 잠식하고 파산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돈이 들기 때문에 약자를 배려하는 가치는 종북세력, 빨갱이의 논리라는 것이다.

 

진주의료원은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중 하나로, 1910년 진주자혜의원으로 출발해서 현재 경상남도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100년이 넘은 공공병원이다. 지방의료원이란 지역 내에 거점병원 하나도 없는 각 지역 내의 주민들의 건강권을 책임질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존재하는 곳이다. 주로 이용하는 주민들도 생활보호대상자를 비롯한 정부에서 의료비 지원을 받는 의료급여 환자 등 대부분 공공의료사업의 혜택을 받아야 할 돈이 없고 가난한 취약계층이 많다.

 

교육과 의료가 상품이 되면...

 

세상에는 무상의료를 실현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의료 민영화를 실현하는 나라도 있다. 한국은 의료의 공공성이 높지 않은 국가다. 공공의료원 비율 또한 OECD 평균의 1/10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집에 아픈 사람 하나 있으면 가계가 흔들린다는 말이 실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아프면 그 돈이며 간병인이며 모두 가족이 책임져야 하니 모든 가족의 생계가 아픈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공공 의료원을 늘리기는커녕 폐쇄하겠다는 것은 의료민영화로 가겠다는 사람들이나 할 소리다. 진주의료원이 ‘적자’ 때문에 폐업이라면, 앞으로도 전국의 수많은 의료원이 폐업의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현재 진주의료원 노동자, 환자들은 부당한 폐업, 의료 민영화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하고 연대하면서 전 사회적으로 의료의 공공성을 외치고, 진주의료원 폐업을 막아내야 한다. 그것인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일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KTX 민영화...! 상업주의 논리, 시장화 논리로 풀 것인가?

 

이명박 전대통령이 끊임없이 추진해 온 정책이 시장논리 상업주의 경쟁논리였다. 의료며 교육이면 심지어 물까지도 민영화가 선이라며 국민들을 속여가며 추진해 왔다. 공공성을 주장하면 종북으로 낙인찍히는 현실에서 진주의료원 문제며 KTX문제는 자본의 목소리만 정당화됐다.

 

민영화란 ‘공공부문에서 사부문으로 소유권을 전환(transferring ownership)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국토해양부는 수서발 KTX의 시설은 여전히 국가소유라서 민영화가 아니며, 운영권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철도공사의 비효율성을 치유하기 위한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민영화=재벌 특혜’로 이어졌던 수많은 기반시설 투자의 전례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철도산업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있다. 시설은 국가소유라고 하지만, 철도의 특성 상 시설까지 민간 기업에 매각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철도 선발국 중에선 철도를 완전 분할 민영화한 영국과 6개 지역으로 분할해 민영화한 일본의 경우만 이에 해당한다.

 

 

 

민영화 논리가 전 세계를 휩쓴 시기인데도 철도 시설까지 민간 소유로 전환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이태리, 스페인 등 철도 중추 국가들 대다수가 시설의 국가소유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시설까지 민영화한 두 나라의 경우에도 공공보조금 지원은 불가피했다.

 

영국은 민영화 이후 철도시설 회사인 Rail Track의 엄청난 적자와 대형 인명사고 발생 등 안전 문제로 인해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사실상 국영기업인 Network Rail사로 전환했다. 일본처럼 지역으로 분할하여 민영화한 경우에도, 도서 3개사는 막대한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구조다. 무리한 민영화는 민간기업의 효율성이 아니라, 정부 보조금 폭탄 즉, 세금 폭탄을 불러오게 된다.

 

영국은 민영화 이후 요금이 107% 인상되어 영국 국민들은 유럽평균에 비해 30-40%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란 ‘이익이 되는 게 선’이다. 시중에 먹거리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 그렇고 돈이 된다면 식품첨가물이든 농약이든 GMO식품이든 가릴 게 없다는 게 시장의 논리다. 민영화 이후 승객의 안전은 보장 될 수 있을까?

 

민영화 이후 영국 철도의 대규모 참사가 말해주듯 이익의 극대화가 선인 자본의 논리는 승객들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믿을 수 없다.

 

 

정경 유착이라고 했던가? 정치인이 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하면 약자인 노동자는 설 곳이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쌍용자동차 사태요, 코오롱 정리해고며 재능교육,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그밖에도 전자기타와 통기타를 만드는 제조업체인 콜트악기,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의 외로운 싸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 등 끝이 없다.

 

노동은 천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신성한 것이다. 노동자가 존중받는 나라 그것은 곧 인뮤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 하는 길이요, 복지사회의 실현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주장하면 종북세력이 되는 나라, 그 끈질긴 악연을 끊는 길은 노동자가 노동자의식을 가지고 단결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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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 교사경력은 자랑일까, 흉일까? 식민지시대 교사는 동족의 제자들에게 황국신민화를 가르치던 부끄러운 사람이다. 유신시대 교직에 근무했던 사람은 어떤가? 유신시대 교사는 제자들에게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친 부끄러운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 선거 및 최고 의결기관으로, 국회의원 정수(定數)의 1/3을 대통령의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고,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없앴으며, 지방의회를 폐지하는 유신헌법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헌법이라니...

 

당시 박정희정부는 사회 교과서를 비롯한 윤리 교과서 등에 민주주의를 말살한 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가 분단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헌법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강요했다. 유신시대 양심적인 교사는 유신헌법을 어떻게 제자들에게 가르쳐야 하는가? 유신헌법은 분단된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헌법이라고 가르치는 게 훌륭한 교사인가?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친 교사가 훗날 제자들을 만나면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불과 수년 전까지만해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식민지시대 청소년들에게 학도병 지원을 강요하고 여학생들에게 정신대 지원을 선동하던 문인들의 작품이 실린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었다. 그런 교과서를 가르치면서 친일 문인들의 훌륭함도 함께 가르친 교사는 훌륭한 교사인가?

 

현재 학생들의 교육지침서인 교육과정은 어떤가? 초중등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흠결이 없는 완벽한 교재인가?

 

교사들은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인가 아니면 교육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시험점수를 잘 받도록 시헌 기술자는 만들어 주는 사람인가? 잘못된 교육과정으로 사랑하는 제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면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 건 교사의 권한 밖이라고 침묵하는 게 옳은가?

 

학교는 지금 난장판을 방불케 한다. 선행학습으로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잠을 자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왕따며 학교 폭력이 난무해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겁이 난다고 한다. 교실은 이미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분병하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이런 현실 앞에 교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학교가 이 지경인데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체념하고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앉아 있는 게 옳은가? 아니면 수업하기가 힘드니까 점수를 모아 승진을 준비하는 게 옳은가?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수가 차면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나는 게 옳은가? 아니면 무너진 교육을 살리기 위해 권력과 맞서 싸우다 해직까지 당하는 불이익도 불사하면 싸우는 게 옳은가?

 

교육은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다.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을 상품이라며 시장판에 던진 신자유주의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교육이 상품이 되고 일류대학 입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사가 설 곳은 어디인가?

 

 

 

무너진 학교 그것이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이 그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자는 현실주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런 현실에서 내만 편하고 출세하는 게 현명한 길이라고 가르치는 일보다 점수를 모아 교감, 교장으로 혹은 교육 관료로 승진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무너진 교육현장을 방관하는 교사와 점수나 모아 승진이나 꿈꾸는 교사, 불의한 현실에 맞서 모순된 교육을 바꿔보자는 교사 중 어떤 교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육자인가? 무너진 학교, 교육 없는 교실에서 침묵하는 교사는 선한 양치기일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한국사’하면 무슨 생각이 나지요?

 

‘우리역사의 형성과 고대국가’ ‘고려와 조선의 성립과 발전’... 단군신화에서부터 삼국시대....고려와 조선 그리고 근대국가와 현대사회...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우리나라 역사는 학생들에게 참 재미없고 어렵기만 한 과목입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벌써 세 번째 배우게 됩니다.

 

‘국사’하면 머리 아프다. 원시시대 무덤 이름이며 고인돌이 어떻고...복잡한 나라 이름이며 여기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복식이며 식생활, 그 많은 책이름이며 토지제도, 계급, 그리고 그 많고도 많은 사건의 원인, 경과, 결과를 연대까지 외우려면 ‘아! 머리가 아프다’ 그런 생각이 들지요?

 

이렇게 어느 임금 때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데 언제, 왜.. 이런 식으로 외우는 역사는 정말 시험을 위해 준비하는 나와 무관한 관념적인 지식의 암기일 뿐 나를 알게 하고 내 삶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그런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은 역사가 어려운 과목이 아니랍니다. 역사과목이 재미없게 된 이유는 시험 준비를 위해 외우기만 해야하는 암기 과목이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역사를 애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과거의 일(사건)이 내일의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런 지식이야말로 시험을 위한 지식일 뿐이랍니다.

 

예를 들면 동학농민전쟁이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풍수사상과 유(儒) ·불(佛) ·선(仙)의 교리를 토대로 서학(西學:기독교)에 대항하여 ‘인내천(人乃天):천심즉인심(天心則人心)’을 내걸고 일어난 학정에 저항한 운동‘으로 암기한다면 그런 공부란 시험용일 뿐이지요.

 

‘동학도’들이 중심이 되어 1년 동안에 걸쳐 무려 30∼40만의 희생자를 낸 사건을 ‘운동’이라고 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혁명’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현대사의 ‘5·16’도 어떤 학자는 ‘혁명’으로 어떤 학자는 ‘쿠데타’ 혹은 ‘정변’이라고 기술하는 이유가 뭘까요?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사관(史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상 : 고 2~3학년 학생

 

주제 : 사관(史觀)이란 무엇인가?

 

학습목표 : 사관을 이해하고 역사를 보는 관점을 이해한다

 

차시 : 2/3 차시

 

 

역사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우리나라에서 4,345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건의 기록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많은 일들 중 왜 교과서 한권에 담길 내용만 기록해 놓았을까요? 국사 책에 기록된 사건은 누가 선정해 교과서라는 책에 담아놓았을까요?

 

- 역사는 누가 기록한 것일까요?

 

교과서에 담긴 역사는 사실(事實)이기도 하지만 사실(史實)이기도 합니다. 그 많고 많은 사건 중 어떤 건 사실(事實)이 되고 어떤 건 왜 사실(史實)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사가(史家)들이 ‘가치 있다고 선택한 사실(事實)’...을 골라 역사책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事實) 중에 사실(史實)이 되는 건 전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기준에 따른 선택이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과서에 담긴 사건의 내용 즉 사실(事實)은 사실(事實)이 아니라 사실(史實)이 된 것이랍니다.

 

역사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역사책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거 교과서에는 아메리카를 찾은 사건을 두고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기록했던 일이며(사실은 원주민의 입장에서 발견이 될 수 없는데...) 5·16을 혁명이라고 기록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한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기술한 교과서가 그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역사는 사가의 시각 즉 사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역사가의 역사를 보는 시각(가치관, 세계관)을 우리는 사관(史觀) 혹은 역사관(歷史觀)이라고 합니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기록한 역사를 민중사관(民衆史觀)이라하고 지배자들, 양반들의 시각(가치관, 세계관)에서 기록한 역사를 영웅사관(英雄史觀)이라고 합니다.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민족사관이 되고 하느님이 보호하사 오늘의 역사가 존재했다고 보는 사관은 기독교 사관이라고 합니다.

 

역사는 이렇게 민초들의 입장에서 쓰면 ‘민중사관’이 되고 지배자들 입장에서 쓰면 ‘영웅사관’이 된답니다. 삼국유사란 일련이라는 스님이 썼으니 당연히 불교사관이 되겠지요. 기독교사관에 의해 역사를 기록할 수도 있고 중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는 사대주의 사관이 되는 것입니다. 김부식 같은 이가 쓴 ‘삼국사기’란 바로 대표적인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 기록된 역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불교신자가 기독교사관에 의한 역사를 배우면 역사를 이해하기 어렵듯이 서민들이 왕의 시각에서 쓴 역사를 배우면 ‘존재를 배반하는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관을 알기만 하면 사실(事實)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장래 노동자가 될 사람의 머리속에 양반의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배운 역사,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식민사관 학자들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수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주로 식민사관. 혹은 실증주의사관에 의해 기록된 역사였습니다.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학자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 시켜준 은인의 나라라는 가치관을 역사 책 속에 담아놓았지요. 영웅사관에 의한 역사 즉 왕이나 귀족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관이나 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켜준 은인의 나라라는 가치관으로 쓰인 식민사관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우리민족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일본은 위대하다는 사대주의 시각을 갖게 만들겠지요.

 

-왜 ‘민중의 의거’가 ‘민중의 난’으로 기록한 이유...?

 

과거의 역사교과서에는 ‘서경천도운동’을 ‘묘청의 난’으로 만적의 의거는 ‘만적의 난’으로 ‘동학혁명’은 ‘동학 난’으로 기록했었답니다. 현대사에도 제주폭동이니 여수반란사건으로 기록했었고요.

 

단재 신채호선생님은 1175년에 일어났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 1천년간 제1대 사건’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왜 ‘난(亂)이 ‘운동’으로 바뀌었는지는 바로 그 사관이 민족주의 입장이냐 아니면 사대주의 사관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인가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 것입니다.

 

어떤 역사가 진짜 역사일까요? 사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역사라는 것도 모르고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금과옥조로 생각해 외우기만 했던 역사 지식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신학 없이 읽기만 한다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듯이 사관(史觀)도 없이 교과서 지식이 역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쪽 역사, 왜곡된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배운 역사는 어떤 사관(史觀)으로 쓰인 역사지식일까요?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8.16 05:30


 

어제 광복절 관련 포스팅을 하려다 글이 올라가지 않아 서너차례 시도하다 포기하고 다른 글을 썼습니다.

 

내용을 알고 봤더니 티스토리가 읽지 못하는 문자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그 문자를 빼고 다시 올립니다.   

 

이 자료는 졸고 '현대사 자료집(전국역서교사모음-김용택 편저)을 참고했을을 알려드립니다) 

 

해방정국의 역사, 교과서는 상당부분 틀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쓴 사람은 누군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찬위원회'에 참여하여 한국의 역사를 왜곡, 일제 식민통치에 기여하는 공훈을 세우며 한민족의 혼인 역사를 파괴한 이병도를 비롯한 그 아류들이다.

 

박근혜가 말했지. 박근혜는 말했다. '5.16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마찬가지로 일제의 은혜를 입은 이병도를 비롯한 친일 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쓴 한국사는 우리역사를 제대로 기록했을까?

 

이들은 민족사관이 아니라 식민사관에 이해 역사를 기록했다. 그런 역사가 교과서를 통해 2세들의 머리 속에 친일사관의 입각한 왜곡된 역사를 그르치기를 강요해 왔다.  현대사의 경우 미군정시대에서 유신시대, 군사정권 시절의 역사를 아예 제대로 기록조차 하지 않는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는 국무총리 이하 115명이다.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해방정국의 경찰 간부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요, 국무총리를 비롯한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공군 참모총장이 일본군 대좌출신이다.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인물들이 만든 제 1공화국, 그들이 쓴 역사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와 역사와 혼을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 주는 역사였을까? 다시 광복절을 맞습니다. 올해가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67주년째를 맞지만 아직도 식민지잔재청산은 친일인명사전에는 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 역사의 왜곡현장을 저의 졸고 ‘한국현대사자료집’(전국역사교사모음)을 인용해 살펴보겠습니다.

 

식민지 잔재청산 못한 정부

 

경찰의 경우

 

일제 경찰에 종사한 8,000명중 5,000명이 군정 경찰에 복무하고 있었고, 이들을 핵으로 군정 경찰이 구성되었으며,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 경찰 간부의 경우 경찰 청장 8명중 5명(63%), 국장 10명중 8명(80%), 총경 30명중 25명(83%), 경감 139명중 104명(75%), 경위 965명중 806명(83%)이 고등 경찰을 비롯한 일제 경찰 출신었고, 경찰 최고직인 치안감(1명)도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우리 역사 이야기3, 돌베개, p.59~60)

 

군인의 경우

 

군인의 경우

 

 

 

【제 1공화국 친일 인맥】

(해방전후사의 인식2, 한길사, p.146)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는 국무총리 이하 115명이다.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반면, 부일 협력 전력자는 34.4%인 33명이나 된다.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반민법)과 반민특위의 와해

 

반민족 행위자 처벌은 해방 정국의 민족적 과제이기도 하였다. 제헌국회는 1948년 10월 23일 조사위원 10명을 선출하여 임정 요인 출신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에 중앙 사무국 각도에 조사부, 각 시, 군에 조사 지부를 설치하였다.

 

반민특위는 조사 업무를 개시하여 반민족 행위자 7000여명을 파악하고 49년 1월 9일부터 검거 활동에 들어가 친일 실업가 박흥식, 일제 기관의 고등 밀정 이종형, 중추원 부의장 최린, 강우규 이사를 체포 처형케 한 고등 경찰 김태석, 도지사를 지내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 신문 사장이던 이성근, 일제 헌병 출신의 전직 경찰 간부 유철, 친일 문인 이광수와 사학자 최남선, 군용기 헌납에 광분한 문명기 등 드러난 친일파들을 계속 체포했다.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특위 활동이 계속되는 동안 자수자도 61명이나 됐다. 그러나 친일 세력들은 반민법이 공포된 9월 23일 대한일보사장 이종형이 주동이 되어 ‘반공구국총궐기대회 및 정권 이양 축하 국민대회’란 군중 집회를 열어 반민법을 성토하고 주동 국회의원들을 공산당의 주구라고 몰아친다. 반민법안의 국회 심의 때부터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오던 대통령 이승만은 노덕술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특위를 비난하고 반민법 개정안을 제출했다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한다.

 

6월 6일 새벽 중부 서장 윤기병이 지휘하는 40명의 무장 경찰대가 특위를 습격하여 무기와 장비를 압수하고 특경대원 35명을 연행하는 사태를 일으킨다. 이 사건에 격분한 국회는 대통령 이하 전국무위원 출석을 요구하고 정부를 규탄했다.

 

6월 21일 국회 프락치 사건 2차 검거로 김약수 등 7명의 국회의원이 추가 구속되고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한다.

 

반민특위는 공소시효 만료까지 조사 건수 6백82건, 체포 3백5건, 미체포 1백73건, 자수 61건, 영장 취소 30건,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5백59건 이였다. 그러나 그 중 2백21건이 기소되어 재판을 종결한 것은 불과 38건인데 사형1건, 무기징역1건을 포함하여 실형이 선고된 것은 불과 7건뿐이었고 거의가 집행 유예나 무죄로 풀려났다. 실형 선고를 받은 7명도 1950년 본까지 감형과 집행 정지 등으로 모두 풀려났다.

 

 

 

 

끓어 오르는 한라산

 

(우리 역사 이야기, 조성오, 돌베개, p.10~53)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 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정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 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 폭포에서는 빨가벗긴 빨지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 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 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 깡패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 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 광장 앞에서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하 생략.............

이산하 “한라산” 에서

 

4․3 사 건

 

 

기미독립운동 28주년이 되는 1947년 3월 1일, 제주 도민 3만 여명(당시 제주도 총인구 27만명)이 3.1절 기념식(미군이 불법으로 인정)을 열고 애국가와 3.1절 노래를 부르며 “3.1혁명 정신으로 한국통일독립을 쟁취하자”, “미국은 남한에서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기념식이 끝난 후 가두시위에서 7명의 시민이 사망하자 제주도 총파업 위원회가 3월 9일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강력한 저항이 시작된다.

 

4월 초순경에는 2,000여명의 도민이 체포되고 시위대와 미군, 경찰, 서북 청년회, 대동 청년 당 등의 대치 상황에서 처절한 살육 극이 자행되었다. 1949년 3월 25일 정부의 1,667명 인명 손실 발표와는 달리 한국 편람(1956)에 4만명, 1960년 국회의원 김성숙이 제출한 「제주도 양민 학살 조사 건의안」에 5만명, 그리고 1963년 제주도 당국이 발행한 「제주도」8월 호에는 8만65명의 희생자를 냈다고 기록되고 있다.

 

제주 항쟁은 ‘식민지 예속을 거부하고 민족 분단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선 우리 민중의 영웅적이고도 처절한 투쟁’이라고 정의하는 학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여수 순천 사건】 ― 1948.10.19~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남풍 신서, p.44~45)

 

 

여수 순천 사건은 극우나 극좌가 결탁하여 발생한 쿠데타나 혹은 제주 4.3사건 진압 차 출동 명령을 받은 14연대 내의 소수의 좌익계 사병 집단에 의해 주도된 군부 반란 사건이라기 보다는 1공화국 출범 당시 사회, 경제적 조건 및 정치적 상황과 해방 이후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전남 지방 정치의 과정에서 발생된 제 조건이 결합하여 폭발한 보다 근본적인 성격의 사건이다.(해방 전후사의 인식, 한길사, p.414)

 

1948.10.19 여수 순천의 14연대 장병 3천여 명이 ‘경찰 타도, 제주도 출동 거부, 남북통일을 위하여 인민군으로 행동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일어난 여수 순천 사건은 9천4백5명이 학살당하고 2만3천명의 체포로 끝난다.

 

14연대가 제주 사건 진압을 위한 차출 명령을 받자 연대 인사계인 지창수 상사는 연대 내 핵심 세포 40여명에게 무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하게 하고 출동 계획 일시인 19일 저녁 9시가 되기 한시간 전 비상 나팔을 불어 출동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1개 대대 병력 이외에 부대 주변에 있던 남로당원 23명과 나머지 2개 대대를 합류시켜 3천명을 집결, 20일 1시경 지창수 지휘하에 여수 경찰서를 점거하고 학생과 지하 단체 6백여 명이 합세 무기 탄약을 지급 받고 관공서가 이들의 치하에 들어갔다.

 

이날 여수 시내는 약 3만 명의 군중들이 모여 인민 대회를 개최하고 ‘여수 인민 위원회에 의한 정권 장악’을 선언하고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토지개혁을 즉시 실시한다”고 주장하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였다.

 

이들 중 2개 대대 병력 약 2천명은 철도편을 이용하여 순천에 도착하여 홍순석 중위가 지휘하는 제14연대 2개 중대 병력과 합류하여 오후 5시경에는 순천을 완전 장악한다.

 

 

이들은 3개 부대를 재편하여 학구, 구례, 남원 방면으로, 한 부대는 광양 방면으로, 다른 부대는 벌교 보성 방면으로 진격하여 여수, 순천, 보성, 광양의 거의 전 지역과 하동, 남원, 구례, 곡성의 일부 지역까지 이르렀다.

 

 

UN의 조선 문제에 관한 결의안 및 총선거에 대한 하지 중장의 견해 발표

 

(1947.11.20)

 

 

본관은 유엔총회에서 43대 0으로 총선거 실시를 감시하기 위하여 통일된 조선 정부의 수립 및 조선 독립의 달성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불원간 來朝할 유엔 조선 위원회의 설치안을 가결하였다는 보도를 접하여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동 위원회는 9개국 대표로 구성된 것이며 그 중 4개국은 태평양 및 극동 방면에 있는 중국, 인도, 필리핀 및 호주의 제국이 임명된 것입니다.

 

본관은 본국 정부로부터 유엔 조선 위원회의 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포함한 조선에 관한 결의안의 각 조를 미국 정부가 필히 준수할 것이라는 것을 조선 국민 및 지도자에게 전달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미국 정부의 대표자로서 본관은 조선 국민에게 유엔 조선 위원회가 설치된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력을 하여 원조할 것을 보장하는 바입니다.

 

이 계획안에 의한 제일 단계의 조치는 결의안에 의하여 1948년 3월 31일 이내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 국민은 동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총선거에 대대적으로 응하게 될 것입니다.

 

본관은 방금 본 문제에 관하여 워싱톤 당국과 교섭 중에 있으므로 총선거에 대한 조치를 불원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전 조선 국민은 본 문제에 관한 정식 발표를 기다려야 됩니다. 취중 조선 국민 악선전에 속지 말 것이며 또 총선거에 관한 승인을 받지 않는 비공식 보도에도 현혹되지 않아야 됩니다.

 

본관도 조선 국민이 과거 2년간이나 실망과 낙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조선 독립을 제래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 및 그 대표자들의 부단의 노력(첫째로 1946년 및 1947년에 각각 채택된 二國회의 미, 소 공동 위원회를 통하여, 둘째로 모스크바 협정에 서명한 4개국 회의를 통하여, 셋째로 미국 정부가 제의한 최근의 유엔의 조치를 통하여)에도 불구하고 2년간이나 지연되어 왔습니다.

 

본관은 유엔의 여러분의 문제에 대한 금반의 신 단계는 세계의 독립 제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여러분의 오랫동안의 꿈이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유엔 결의안의 내용에 대한 여러분의 연구에 資하고자 다음의 결의안 원문을 인용합니다.

 

 

이완용의 질손 이병도와 친일 사학자들이 쓴 역사 교과서... 

이병도를 비롯한 식민사관 학자들에 의해 기록된 국정교과서를 배운 우리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알고 있을까?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입으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던 그들은 해방 70년이 가까운 지금도 훌륭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침 신문을 읽다가 장준하선생님이 박정희에게 했다는 말씀이 잊혀지지 않네요.

 

"일제가 그냥 계속됐다면 너는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륙을 계속했을 것이 아닌가?"

 

이명박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놓고 네티즌들이 이명박대통령 독립운동하는 중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울고 싶은 사람에게 뺨때려 준 독도 방문... 일본은 각본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고 분주합니다.

 

해방 67주년, 아직도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일세력들이 득세하고 그들이 애국자가 되는 한 진정한 해방은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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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7.27 06:30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지 않도록 결정한 것을 계기로, 향후 우리 문학이 이룬 성취를 우리 사회가 스스로 폄훼하거나 부정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국제부 김태훈 차장이 ‘도종환의 詩만 흔들렸나’(2012.07.25)라는 글의 일부다. 김차장은 도종환 시도 교과서에 그대로 뒀으니 서정주를 비롯한 친일작가들의 작품도 이제 교과서에 다시 올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옳은 일을 보면 함께 기뻐하고 불의를 보면 미워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왜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두둔하지 못해 안달일까?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는지 몰라서 그럴까? 민족을 배신하기도 하고 독립투사들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한 친일인사들을 왜 두둔하려할까?

 

해방이 됐으면 당연히 일제시대 친일인사들에 대한 단죄를 내리고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경계하는 것이 후손들이 해야할 도리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일인사를 두둔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불순분자 취급을 하거나 색깔 칠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조선일보가 민족을 배신한 친일인사나 군사독재정권을 두둔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조선일보는 왜 부패와 불의를 일삼는 재벌이나 백주에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람과 유신을 찬양한 인사들까지 두둔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가 좋으니까 도종환이든 서정주든 교과서에 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자고...? 그렇다면 성폭력범이 쓴 시도 교과서에 싣고 살인범이 쓴 작품도 글만 좋으면 교과서에 실어도 좋은가? 서정주시가 어느 정도인지 보자.

 

(중략)

그럼 결론은 우리의 몸뚱이를 어디에다가 던져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젊은 벗이여,

 

네 나이는 인제야 스무 살이다. 명년에는 스무한 살.........

"징병제의 발표가 있는 후로 사실 나는 많이 생각하여 왔습니다.

 

늘 부족한 자기를 채찍질하여 이제 와서야 간신히 마음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내일이라도 용약 출전할 각오가 섰습니다......."

 

(중략)

우리의 몸뚱이를 어디에다가 던질까? 벗이여. 그것은 말하지 않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정주의 ‘스무 살 된 벗에게’ 중 일부다.

 

 

도저히 조선 사람이 쓴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글이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이 스무 살 된 아이에게 총알받이가 되라고 침략전쟁에 내몰 수 있는가?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와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중략)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전두환 56세 생일을 축하는 서정주의 축시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살인자를 위해 만수무강을 비는 후안무치한 작가의 작품을 교과서에 실어서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자고...? 서정주뿐만 아니다.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해 모윤숙, 정비석.. 등등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이런 친일작가의 작품도 다시 교과서에 싣자고....?

 

 

 

조선일보가 친일작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명박 대통령이 참신한 인물을 두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인사들을 참모로 등용하겠다는 것은 약점이 있는 사람을 등용해 자신의 투명하지 못한 행적을 비호해주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친일인사를 두둔하는 이유는 과거 자기네들의 과거 친일행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불편부당(不偏不黨)과 정의옹호(正義擁護)를 실천 하겠다는 조선일보.

 

사시(社是)는 이렇게 걸어두고 왜 기사는 한결같이 왜곡보도를 일삼고 불의를 옹호하는가? 부정과 부패재벌 편들기도 모자라 친일인사의 작품까지 교과서에 실어 아이들이 어떤 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태생적인 한계? 일제시대 민족을 배신한 원죄를 비롯해 친일, 친독재, 친재벌의 수치스런 역사를 속죄하지는 못할망정 청소년들에게 독립투사가 아니라 변절자와 친일인사를 존경하도록 만들겠다니... 이제와서 친일인사의 작품까지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겠다는 파렴치한 시도는 그쳐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7.08 05:00


'쇠귀에 경읽기'라고 했던가?
국어 사전은 쇠귀에 경읽기를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효과가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건대교지 여름호에 기고한 글이다.
 

거의 10년 전 얘기다. 필자만 이런 얘기를 했던 게 아니다. 수많은 교사와 학자들 그리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한결같이 ㅈ주장했던 얘기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얘기를 똑같이 주장 해야 할 말이다.  

그만큼 쇠귀에 대고 독경을 한 셈이다. 분량이 많지만 대충 무슨 주장을 했는가 보면 교과부는 아예 귀를 막고 남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 비판을 거부하고 독선과 아집으로 교육을 망친 주범이 교육부라는 게 의심의 여지가 없다.


Ⅰ. 시작하면서


  "선생님, 정말 힘들어서 담임 못하겠습니다. 공부를 잘 하면 뭘 합니까? 어떻게 아이들이 저렇게 영악스러울 수가 있습니까?"
올해 느지막하게 담임을 자원해 맡은 짝지 선생님의 하소연이다. 나이가 들면 담임을 맡지 않는 것이 고참교사(?)에 대한 예우처럼 관행화 된 게 학교 사회다.


그러나 '담임을 하지 않으면 선생 같지 않다'면서 자원해 맡으신 선생님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생님 제 얘기 한 번 들어보십시오. 애가 자기 당번 차롄데 손가락도 꼼짝 안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당번을 안 해봐서 당번이 뭘 하는지 모른다나요? 저런 아이가 크면 뭐가 되겠습니까?"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참았는데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이 학생은 학급에서 성적이 꽤 좋은 학생이라고 한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최고'가 되는 분위기에서 이런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공부만 잘하면...' 부모님이 그렇고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윤리성적이 좋으면 도덕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 학교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번이 됐는데 흑판정리도 하고, 음료수도 떠다 놓아 친구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은 초등학생들이라도 아는 일이다. 내가 할 일, 나의 수고로 다른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는 배려 따위는 시험 점수에 비해 그렇게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일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이다.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그것도 성적이 좋은 학생이 왜 예의나 인성에 관한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문제의 해법이 곧 교육의 위기를 해결할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중심 글


1. 인성교육에 대하여

1)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을 보는 관점은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리되지만 일반적으로 '교육이란 한 인간이 주위 세계와 상호 작용을 하면서 이에 적응하고 학습하는 과정' 즉 '사회화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화과정은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부모님의 가치관을 따라 배우게 된다. 일류대학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리고 학원에서는 인성이 아닌 지식이나 기능을 배우게 된다. 교육의 내용이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나 피아노와 같은 기능이 뛰어난 사람, 영어회화나 수학문제를 잘 풀이하면 '최고'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진다. 교육부에서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2003년 2학기부터 '예체능과목을 평가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한다. 초·중등학교의 교육목표가 전인교육이 아니라 일류대학입학이 되어 있는 현실을 교육부가 인정한 셈이다.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 즉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도구적인 지식이나 기능을 전수하는 '줄 세우기'를 하면 사회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대접받고 출세하는 사회가 아니라 힘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사회가 된다.

2. 학교가 교육의 기능을 상실하면

"선생님, 정치과목 시간에도 공통사회문제를 풀이하면 안 됩니까?"
필자가 3학년 자연반 정치과목시간에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한 학생이 의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자연반은 정치가 수능의 선택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과목은 교육과정에 주당 몇 시간을 하라는 법인데 어기면 범법자가 되는 게 아니냐?" 라는 필자의 대답에 "선생님, 다른 과목은 다 그렇게 하는데요"란다.


"다른 과목은 어떻게 하는데..?" 했더니 '세계사는 수능과목이 아니니까 처음부터 국사과목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험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예 국사를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문제로 출제해 세계사 점수에 올린다는 것이다.

하기는 국사과목뿐만 아니다. 생활경제라는 과목은 수능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구입하기는 해놓고 단 한 쪽도 열어보지 않고 수능과목을 문제풀이를 하고 있다. 특정학교의 얘기가 아니다. 특정 과목의 얘기는 더더구나 아니다. 지, 덕, 체를 겸비한 전인교육'이라는 교육목표는 구호로 그칠 뿐 학교에는 그런 교육이란 없다. 이 정도라면 기타과목(수능출제 이외의 과목)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만하다.

수능시험일이 가까워지면 아예 자신 있는 과목 시간에는 선생님의 수업은 외면하고 혼자서 문제 풀이를 하고 있다. 자신의 수업을 듣지 않고 문제풀이를 하고 있는 학생을 제재하기는커녕 모른 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입시를 앞둔 인문계 학교의 수업모습이다. 심지어 독서실에서 밤을 세우고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도 많다.  

교육이 실종된 학교에는 겉으로는 딴판이다. 교문에는 '창의적인 인간양성'이니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육성'이라는 거창한 구호가 붙어 있다. 아침마다 교문에는 지각을 하거나 명찰을 달지 않고 등교하는 학생이 있으면 학생생활기록부에 벌점을 기록하거나 운동장돌기 기합을 받기도 한다.

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입학식 날 학생대표가 '나는 교칙을 준수하고...'라는 선서를 했기 때문에 단 한번도 읽어 본 일이 없는 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교칙을 정해 지키려는 민주적인 절차 같은 건 고려할 필요가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하는 것이 범생이(?)의 생활태도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소수의 타락 가능한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수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두발단속과 같은 문제도 그렇다. 통제와 단속 규제일변도의 생활지도는 세상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준법의 생활화'라는 명분으로 단속하는 교문지도는 일관성도 원칙도 없다. 진짜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은 단속시간 이전에 등교하거나 단속시간이 끝난 후에 등교하면 그만이다.

요령이 더 뛰어난 학생은 휴대폰으로 친구를 불러 담 너머에서 남의 이름표를 받아 달고 들어가면 모범생이 되고 순진하게 그냥 들어가면 벌을 받는 범법자가 되는 이중인격자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규칙을 만들고 스스로 지키는 훈련을 통해 민주주의의 생활양식을 배우도록 하는 교육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3. 인성교육을 가로막는 요인

인성교육이란 학교교육의 본질이요 핵심이다. '사람다운 사람' 즉 인성교육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교육이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란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삼위일체가 될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이 계층상승의 수단이 되면서 가정은 교육이 불가능한 곳이 되고 학교는 인성교육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교교육 계층상승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일류학교 입학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교육의 위기는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공교육의 정상화'뿐이다.

1) 교육과정의 정상화 없는 인성교육이란 없다.    

모든 개혁이 그렇듯이 교육개혁도 '제도와 의식이 병행'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교육개혁이 개혁의 사각지대가 된 이유는 교육수요자인 학부모의 이해관계와 천문학적인 사교육시장의 확대, 교원들의 자질, 그리고 개혁을 주도하는 교육관료들의 개혁마인드 부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인 인성교육을 하기 위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 지 살펴보자.

(1) 학벌문제해결이 교육정화의 첫걸음이다.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인 인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사회적인 여건을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창의성이 무시되고 일류대학을 졸업한 졸업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교육다운 교육은 불가능하다. 일류대학이 있고 그 대학을 입학하기 위해 한 줄로 세우는 현실에서는 인성교육이란 불가능하다.

성이 상품화되면 상품(여성)을 사기 위한 구조적인 부정과 부패가 뿌리내릴 수밖에 없듯이 학벌이 존재하는 한 교육의 위기란 필연이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의 증가, 학교폭력, 교원의 승진제도, 연수제도, 보충수업...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학벌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2) 교원의 승진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현행 교원의 승진제도는 학교를 개혁의 치외법권지대로 만든 주범이다.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첫째 토론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장이 교사들의 '근무평가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토론문화의 정착이란 불가능하다. 교장에게 '찍히면' 절대로 승진이 불가능한 승진제도를 두고서는 내부의 모순을 개선할 수 없다.
 학교가 개혁의 치외법권지대에서 벗어나가 위해서는 점수에 의한 승진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가진 봉사정신이 투철한 교원 중에서 교원들이 선출하는 방안도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교원에 근무평가권과 같은 절대권이 최소화하면 교장이 되기 위해 일생을 거는 도박(?)은 없어질 것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토론문화의 정착'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제시했지만 이를 가로막고 있는 원인이 바로 승진제도의 모순에 있다. 교직원회의에서 학교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교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예, 결산에 대한 개선을 위한 노력이 무산되는 이유도 바로 승진제도의 모순에 있다.

(3) 학교운영위원회를 의결기구화해야 한다.
'95. 5 31 교육개혁 중 그래도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학교운영위원회다. 지역의 여건에 맞는 특색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의결기구화되고 학생대표가 운영위원회에 참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운영위원회 설립당시 사학재단과 교장단의 로비에 의해 학교운영위원회(공립은 심의 기구, 사립은 자문기구)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탄생했다.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학교운영위원회가 그 설립취지를 살리려면 학교장의 민주적인 의지와 구성원의 자질향상이 선결과제다. 설립된 지 8년이 지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단 한 차례의 교원위원에 대한 연수도 실시하지 않은 시·도가 있는데 운영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될 리 가 없다. 특히 자문위원회로 운영되는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란 유명무실한 기구가 될 수밖에 없다.

(4) 교육주체에게 교육권을 돌려줘야
교육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공공성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출발한 것이 7차교육과정이다. 7차 교육과정은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수월성을 바탕으로 짜여져 있다. 수요자중심의 7차 교육과정은 교육의 공공성보다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의 논리가 숨겨진 7차교육과정의 시행은 교육이 지향하는 '전인교육'의 가치를 실현시키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공사립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학교 선택권마저 허용되지 않는 기형적인 7차교육과정은 이렇게 인격적인 인간양성보다 우수한 기능인을 양성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교육의 시행착오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7차교육과정의 시행은 또 다른 교육위기를 배태하고 있는 셈이다.

(5)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강조하고 있는 철학교육은 우리는 못하고 있다. 철학을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제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학이란 철학자가 한 말이나 철학자의 이름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시비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있어도 그 지식이 어떻게 씌어지는 지에 대한 판단능력이 없으면 올바른 삶을 살기 어렵다. 이를 위해 청소년들에게 필수적인 과정으로 도입해야하는 것이 철학임에도 불구하고 독재권력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비판정신을 길러주는 철학을 가르칠 필요를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다.

교육의 목적을 전인교육에 두고 있으면서 일류대학에 입학시킨 숫자로 일류고등학교 여부를 판단하면 학교에서는 교육은 없고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원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학교에서는 교육이 지향하는 교육과정은 선언적으로 존재하고 일류대학의 전형요강이 교육과정보다 우선한다.

국어, 영어, 수학의 점수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면 학교는 기형적인 인간을 키울 수밖에 없다. 시험을 위한 지식과 기능을 숙달시키는 교육은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관문의 통과용일 수밖에 없다. 지식을 암기하고 암기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는 교육의 위기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교육주체들의 의식개혁부터  

오늘날 교육개혁의 저해요인 중의 하나는 학부모의 가족이기주의다. 필자가 학교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학부모위원이 무조건 학교장의 의지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식이 손해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모든 학부모들의 대표이기를 포기하고 교장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탓할 수는 없지만 모든 학생들의 이익이 아닌 가족이기주의가 교육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승진을 위해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고 점수는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교사도 있고 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모순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는 교사도 있다.

학교 안에는 아직도 바꿔 내야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학교운영의 비민주성을 비롯해 학생의 인권 그리고 회의기구의 민주적인 운영 등 봉건성과 식민지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무조건 가르치라는 것만 열심히 가르친다고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지는 것이 아니다. 양질의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환경이나 교육여건의 개선은 물론 교사들의 의식개혁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Ⅲ. 마치면서


우리는 군사정권시절,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가르친 뼈아픈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치기를 강요하던 군사정권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을 강조하기보다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기에 바빴다.

교육권이 교육수요자인 학부모나 학생에게 있지 않고 식민지 종주국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교육은 교육이 본질적인 기능보다 '황국신민화'를 강요하는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군사정권에서의 교육은 피교육자에게 비판의식이나 합리적인 정신을 가르치기보다 순종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게 된다.


사춘기의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보는 텔레비전이 폭력과 음란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의 극대화'라는 자본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실을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의 교육권이 수요자가 아닌 자본에 종속되면 인성교육은 실종될 수밖에 없게 된다.

국가가 복지사회건설 보다 자본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교육철학이 되면 인성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위기의 교육을 살리는 길은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교육주권을 회복할 때 가능한 일이다. (2003년 5월 26일)

- 이 기사는
건국대학교 교지(건대 2003. 여름. 71호)에 실려 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