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18.09.20 학교자치 반대하면서 민주적인 학교 만들 수 있나? (3)
  2. 2014.04.21 이 나라 어른 된 게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스럽다 (26)
  3. 2014.03.28 교장왕국의 주범 교장자격증 폐지해야... (13)
  4. 2014.03.25 학생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이 존경받는 학교... 왜? (14)
  5. 2014.03.07 캐나다 교육, ‘재미 빼앗기’ 한가지로 생활지도 끝 (15)
  6. 2014.02.28 계급사회가 된 학교, 평교사는 왜 승진에 목매는가? (13)
  7. 2014.02.17 ‘교사들은 침묵하라’, 정말 그래도 좋을까? (17)
  8. 2013.12.12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 (16)
  9. 2013.03.07 학생들 얼굴도 익히기 전, '진단평가' 교육적인가? (15)
  10. 2013.01.22 시험은 치는데, 성적은 매기지 않는 나라, 핀란드 (25)
  11. 2013.01.02 [학교 살리기-2] 학생이 학교의 주인인 학교 만들어야 (14)
  12. 2012.12.20 쓰다 만 승리가! 아~ 대한민국.... (26)
  13. 2012.11.19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학교 민주화의 길 열린다 (5)
  14. 2012.07.24 현직교사의 꿈, ‘공부하고픈 아이 한 번 가르쳐 봤으면...’ (17)
  15. 2012.07.03 문제의식 없이 살면 편하고 좋기만 할까? (7)
  16. 2012.07.02 학교의 주인은 교장인가, 학생인가? (20)
  17. 2012.03.18 욕설까지 생활기록부에... 교육적일까? (16)
  18. 2012.02.20 교사에게 권위란 무엇인가? (30)
  19. 2012.02.05 교사가 왜 정치를 말하느냐고요? (49)
  20. 2012.01.28 교사 휴게실에서 들었던 황당한 이야기 (35)
  21. 2011.12.08 ‘여교사 농락사건’ 제 생각은 다릅니다 (43)
  22. 2011.10.25 “교육이란 잘못을 바로 잡아주는 거잖아요!” (33)
  23. 2011.09.28 ‘미친교육 사랑노래’, 언제까지... (28)
  24. 2008.12.15 나이가 인권차별의 조건 아니다 (4)


한국교육단체총연합(교총)의 기관지 한국교육신문에는 이상한 기사가 하나 실려 있다. 전북교육청이 지난 해 추진하다 대법원이 집행을 정지하라는 결정을 내린 학교자치조례 재추진을 반대하기 위해 쓴 기사다. “학교자치조례 재추진 안 돼라는 주제의 이 기사를 요약하면 이상덕 전북교총 회장이 "도교육청은 지난해 대법원이 무효 판결한 전북 학교자치조례를 입법 예고했다"면서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조례 제정 재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학교자치조례란 학교운영을 학교장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구성원인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사를 수렴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전북교육청을 비롯한 강원, 경기, 충북... 등이 추진하고 있지만 교육부가 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해 대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려 있는 상태다. 학교자치조례를 추진하고 있는 학교자치조례안에는 모든 학교에서 학생회, 학부모회, 교직원회, 교무회의 등의 자치기구를 두고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구성원의 참여와 권한의 분산이다. 학교가 자라나는 아동, 청소년에게 민주시민으로서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곳이라면, 학교 운영 역시 민주적이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전북교육청을 비롯한 학교자치조례를 추진 중인 시도교육청의 학교자치조례의 핵심은 구성원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자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법적인 기구는 유일하게 학교운영위원회 하나뿐이다.

학생들의 자치기구인 학생회와 학부모회 그리고 교사회가 임의단체가 아닌 법적인 기구로 바꿔 학교를 교육주체들이 자발성과 참여를 높여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게 학교자치조례의 핵심이다. “학교자치는 단위학교가 교직원, 학부모, 학생 등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교육운영과 관련된 일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전북학교자치조례는 모든 학교에서 학생회, 학부모회, 교직원회, 교무회의 등의 자치기구를 두고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토록 한 것이 골자다. 또 학칙과 예산·교육과정을 심의하는 교무회의와 담임배정, 교원 업무 분장 등을 심의하는 교원인사자문위원회를 두고 학교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심의(자문)결과를 수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사회의 학교장의 독선적인 학교운영을 막고 학교의 주인인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의사를 반영해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데 이를 막겠다는 교육부의 가처분신청도 그렇지만 교사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교원단체인 교총이 학교자치조례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교총인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되려면 스스로 학교자치조례를 먼저 만들자고 제안해야 옳지 않은가?

교총이 학교자치조례를 반대하는 이유는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구성을 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겉으로는 교원의 권익을 주장하고 있지만 교총의 구성을 보면 교장, 장학사 교수들의 고위직을 맡고 있어 교사들의 권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총은 지금까지 학생인권을 말하면 교권이 무너진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교장, 교감, 장학사, 대학 교수들이 학교자치가 민주주의교육, 혁신교육의 기본원리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현재 부산대학교 하윤수교수가 총장을 맡고 있는 이 단체는 전교조와는 달리, 대학 교수까지도 가입할 수 있어 교직원의 권익보다 교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한지 오래다. 교사의 권익을 대변한다면서 노동조합도 법인도 아닌 임의단체로 명분은 회원 상호간의 강력한 단결을 통하여 교원의 전문적·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과 교권 확립을 기함으로써 교육의 진흥과 문화의 창달에 기여...’한다면서 교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과 교권 확립은 뒷전이요 교장의 권익보호를 대변해 왔다학교자치를 반대하면서 어떻게 학교 민주화를 하겠다는 것인가?

전북을 비롯한 강원과 경기, 광주, 충북 등 현재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하고 있은 학교자치조례는 학칙과 예산·교육과정을 심의하는 교무회의와 담임배정, 교원 업무 분장 등을 심의하는 교원인사자문위원회를 두고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하기 위해서다.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의사를 반영해 학교를 운영 하자는 것이다.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자는 학교자치조례를 반대하면서 학교가 어떻게 민주적인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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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하느님도 원망스럽고 부처님도 밉다.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다. 벌써 엿새째... 생때같은 새끼들을 바다 속에 잠겨 있는데...

 

어른 된 우리가 부끄럽고 무능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게 부끄럽다. 채 피지도 못한 저 어린것들을 지켜내지 못한 우리가 부끄럽고 죄스럽다.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어른들, 저 아이들을 물속으로 내 몬 어른들...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한 학교와 교사들... 똑똑한 교육자들,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돈에 눈이 어두워 꽃같은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한 어른들이 한 없이 밉고 원망스럽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에서>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

 

잘잘못은 사법부가 조사 중이니 여기서는 덮어두자. 그런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일이 있다. 수학문제 말이다. 수학여행이 뭔가? ‘학문을 닦는다’는 뜻의 수학(修學)이 어떻게 관광지 제주인가? 경치구경을 시켜주고 싶다면 교실에 앉아 아름다운 영상물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지난해 초에도 이 블로그에서 ‘제주도 수학여행, 관광인가 수학(修學)인가?’라는 글을 비롯해 여러 차례 수학여행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물론 교실에 갇혀 국영수 문제를 달달 외우게 하는 교실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며칠간을 뛰놀며 웃을 수 있는 자유로운 현장학습까지 반대하는 건 아니다.

 

또한 제주도 3박 4일 여행동안 청산하지 못한 제주의 역사를 찾아 건강한 우리역사 바로세우기라도 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주도를 다녀 온 학생치고 제주 4. 3항쟁에 대해 공부했다는 얘길 들어 본 일이 없다.

 

<시내로 소풍간 마산중앙고 학생들... 경남도민일보에서>

 

나는 경남 마산의 한 고등학생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해 시내로 소풍간 사건(?)을 ‘시내 중심가로 떠나는 소풍,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제목으로 포스팅을 했던 일이 있다.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서 2011년 10월 24일자 ‘80년대 추억으로 가을소풍 간 95년생 아이들’이라는 기사를 보고 필자의 시각에서 바람직한 수학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던 기사다.

 

머리가 나쁜 것인가? 아니면 여행과 관련된 업체와의 오랜 금품수수의 비리에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그동안 전교생 한 학년, 3~4백명의 학생들을 같은 차를 타고 다니다 일어났던 교통사고는 얼마며, 관광지에서의 짐짝처럼 팽개친 아이들의 잠자리며 차마 부끄러운 음식문제는 그동안 수없이 문제가 제기됐던 일이다.

 

사회의 부조리와 돈밖에 모르는 어른들의 치부를 보여줄 의향이 아니었다면 수십년동안 이런 여행을 수학이란 이름으로 반복되어 온 진의가 무엇인가? 이번 사고가 예상된 인재였다는 것은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런 비인도적이고 반교육적인 행사를 학교에서 반복되어 왔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에서>

 

 

뭐니뭐니해도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교육부는 왜 수없이 반복해 온 시행착오를 수십년 동안 방치하고 있었는가? 그 수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왜 침묵하고 있었으며 학부모들 또한 '학교에서 하는 일이니...' 하며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었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걱정되는 일이 또 있다. 이제 정부는 이런 사고의 책임을 사전답사를 부실하게 한 학교나 선박회사의 책임으로만 들리고 정부는 할 일을 다했다는 식으로 빠지지는 않을까?

 

일만 생기면 ‘아랫돌 빼 윗돌괘기’ 식으로 적당히 여론을 잠재우고 또다시 모순을 반복하는 정부는 정말 책임이 없는 것일까? 수학이라는 이름의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자기가 원하는 공부, 소질과 꿈을 기르는 공부를 시켜야 할 학생들을 20평도 안 되는 교실에 35명을 집어넣고 하루 22시간씩 사육(?)하듯 국영수를 암기시키는 교육부는 책임이 정말 없을까?

 

부끄럽고 미안하다. 저 차가운 바다에서서 어둠과 추위에 엿새 동안 떨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 땅에 사는 국민이라는 게 부끄럽고 어른이라는 게 미안하고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교사로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이들아 부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면서 아버지 어머니 품으로 돌아오너라. 하느님께 부처님께 천지신명께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빌고 또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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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장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각 학급 담임교사가 결근을 하게 되면 보강수업을 들어가야 하고, 학교에 행사라도 있게 되면 직접 발로 뛰면서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또 문제 학생을 선도하는 것도 교장 선생님의 몫이다....

 

모든 교사들이 골치 아픈 일은 모두 교장에게 떠밀어 버린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어떤 아이가 교사에게 대든 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말썽을 피우면 무조건 교장에게 보낸다. 그러면 교장은 그 학생을 조목조목 심문한 다음 합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

 

거기다가 다른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담당 과목의 정규수업은 물론 보강수업과 학교 행정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몸이 열이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에 나왔던 ‘독일 교장선생님’ 얘기다. 교사나 학부모에게 ‘교장선생님’ 하면 무슨 생각이 날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은 하늘같은 존재다. 학생은 물론이요, 선생님도 일년동안 근무하면서 교장선생님과 면담 한 번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선생님들은 왜 교장이 되고 싶어 할까?

 

1. 별로 일 안 하고도 월급 받는다.

2. 누구의 제어도 받지 않는 유일한 행위자로서 권력을 만끽한다.

3. 해 먹는다.

 

교장제도 혁명(살림터)의 권재원 교사(풍성초등학교) ‘민주공화국에 대한 냉소를 가르치는 반헌법적 존재’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글을 보면 대한민국의 교사라는 게 부끄럽다. 교장만 되면 발 뻗고 잘 수 있는 자리, 교육을 하지 않을수록, 일하지 않을수록 교장에 가까운 자리. 교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교사들의 경쟁이 만든 결과가 교장이라는 자리다. 저자 권재원선생님은 현행 대한민국의 교장제도는 ‘헌법을 부정하는 자리, 헌법을 위협하는 국기문란 사범으로 만들고 있는 자리’라고 질타했다.

 

교장실에는 청소당번이 없다. 교장실 청소는 교장이 한다. 교장실은 언제든지 열려 있어 교사나 학생들이 찾아와 차도 마시고 상담도 할 수 있다. 신간 교육도서가 나오면 책을 사서 선생님들께 나눠주기도 하고 결근하는 선생님 대강도 하고, 일주일에 4시간씩 수업도 한다. 지난 2월 임기를 마치고 거제 상주중학교로 떠난 창원 태봉고등학교 여태전교장선생님 얘기다.

 

교장이란 어떤 자리인가?

 

우리나라에는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교장이 되는 것을 승진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교육선진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교장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자리. 발령을 받고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어렴풋이 알만 한 30대 초반부터 무려 20년을 점수 모으기를 해야 가능한 자리가 대한민국의 교장이라는 자리다. 교육보다 승진점수를... 가르치는 일보다 행정을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자리가 교장이라는 자리다.

 

<교장실 스스로 청소하는 교장선생님- 태봉고등학교 여태전교장>

 

자격이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를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자격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점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이요 교육적인 자질을 평가 받아야 한다. 교장의 자격이란 최소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지도력'을 갖춘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은 점수로 딴 자격증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우리나라 교장이다.

 

학교를 경영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교장이란 소정의 기관에서 일정기간 연수를 받아 자격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장 자격증은 일정한 수를 정해 놓고, 순위를 매겨 일정 인원수를 서열대로 뽑아 고른 사람이 된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뒷전이 되고 교육대학원에 적을 두고, 현장연구 논문을 써야 하고, 농어촌이나 도서벽지를 돌아다니며 농어촌 근무점수를 긁어 모이야 한다. 부장교사를 몇 년 하고 학교장의 맘에 들어 근무평가를 ‘1수’를 받아야 하는 등 점수 모으기 선수가 받아야 얻을 수 있는 ‘자격증’이다.

 

<세족식 : 태봉고등학교 스승의 날, 발 씻어주는 선생님 >

 

교장이 되려면 1. 경력평정 2. 근무평정 3.연구가산점 의 합계로 산출한 점수로 적격여부가 판정된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지도력'이나 교사들의 존경을 받는 인품이 아니라 점수로 얻은 ‘증’으로 자격 유무를 판정할 수 있을까? 왜 초중등학교에서는 대학의 총장처럼 보직제로 선출하면 안 되는가? 선출제로 하면 온갖 연고주의와 비리가 판을 쳐 학교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도 ‘독일 교장선생님’처럼 교장이 군림하는 사람이 아닌 봉사하는 사람, 어려운 일을 맡아하는 봉사직 개념의 교장이라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무한경쟁을 하겠는가? 교장 자격증은 폐지해야 한다. 그래서 교장왕국이 아닌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존경을 받는 교장이경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교,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학교를 살리는 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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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교사, 1급정교사, 2급정교사, 교감 자극증, 교장 자격증....!

 

살다보면 이해 안 되는 일이 어디 한 두가지일까만은 학교를 보면 그런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병원장은 의사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데 교장 은 왜자격증이 있어야 할까? 교감이나 교장은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장학사나 장학관은 왜 자격증이 없어도 될까?

 

 

 

교사라면 당연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활동이 주 업무가 되여야 하지만 교수활동보다 담당 업무를 잘 처리하는 사람이 우수한 교사, 유능한 교사로 승진도 하고 대접도 받는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새파란 30대 교사들이 승진을 위해 점수를 모으고 있다는 소리돟 심심찮게 들린다. 

 

모든 교사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교사들 중에 학생들을 가르치기를 기피하고 승진 준비를 하고 있다면 학교 꼴이 뭐가 되겠는가? 교사라면 당연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고 보람과 긍지를 느끼면서 살아야겠지만 기회만 되면 가르치는 일을 기피하고 수업을 하지 않는 교감이나 교장, 혹은 장학사나 장학관이 되고 싶어 한다면 그런 학교에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사람은 교사다.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면 그들은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르치는 사람보다 교감이나 교장, 장학사나 장학관이 존경받고 우대받는 게 학교의 현실이다. 교사가 교감이나 교장이 되면 승진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게 가장 중요한 자리여야 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행정업무를 맡아 하는 직무를 왜 승진이라고 할까?

 

교사들은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사람들은 교사들이 수업이나 하는 사람인 줄 안다. 과연 그럴까?

‘하루 평균 80건, 한 달 평균 1600~1700건....’

교사들이 처리하는 공문 얘기다. 다인구 학교에서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런데 학생수 100명이 안되고 교사가 7명밖에 안 된다고 공문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죽하면 ‘일하며 틈틈이 가르친다.’는 말이 나왔을까? 연간 수업시간이 850시간인데, 그 보다 많은 공문을 다루었다니! 하루로 따지면 4시간 수업하고 점심 먹고 나서는 계속 공문처리만 하고 있는 꼴이다.

 

 

 

선생님들이 처리하는 공문이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3월, 새학기가 시작되면 학교교육계획이나 교육과정, 각종 특색사업, 학생 수나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등 기본적인 상황 조사가 시작된다. 4월부터는 컨설팅장학, 정보공시, 각종 연수 안내, 수업시수보고, 학습부진아보고, 학습부진아지도 목적사업비 지출, 진로교육계획, 수업공개계획...

 

2학기가 시작되는 9월이면 학교평가, 시도교육청 평가 관련 공문이 쏟아진다. 학생, 학부모 설문조사도 교육청 행사, 학교평가, 교원평가 3가지나 진행되고 정보공시도 반복된다. 9월 중순부터 2~3주간은 국정감사관련 예산운영, 교육과정운영, 학교폭력관련 대책... 등 이 많은 자료 중 어떤 항목은 2-3년치를 다 조사해 보고하란다.

 

00교육을 몇 시간 했냐? 성교육 관련은 3-4명의 국회의원에게서 성매매, 성폭력예방 이름으로 5-6가지 종류가 내려오기도 한다. 아침에 공문을 받고 그 날 내라는 것도 많다. 끝나고 나니 행정감사자료수집이 시작되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각종 활동에 대한 우수사례, 예산 정산보고, 수업 외에 학교에서 한 특색사업... 학교평가보고서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몇 달이 걸리고, 12월에 온 성폭력예방교육공문은 증빙자료에 실적까지... (노동과 세계-신은희 ‘틈틈이 가르친 나, 교사가 아니었네’ 참조)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그림마당>

 

이렇게 공문에 시달리다 보면 정작 교재연구나 수업준비는 뒷전이다. 학교행사와 공문처리, 노인정 방문, 심지어 방과 후 학교 강사들의 입금관리까지 교사들이 담당해야 한다. 초등 일선학교의 경우 일년동안 처리해야 할 공문이 무려 2만 3천여건이나 된다니 교사들의 주 업무가 공문처린지 교수활동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쏟지 않고 승진에 목매는가?

 

학교의 분위기는 평교사보다 부장교사나 수석교사, 교감이나 교장이 더 훌륭한 교사, 높은 사람(?)이다. 머리가 허연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로부터 무능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공문처리가 조금만 늦으면 여러 선생님 보는 앞에서 젊은 후배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책임추궁을 당할 때면 ‘죽고 싶다’는 중견교사(?)도 있다.

 

요즈음 수업시간은 선생님들에게는 고통(?)의 연속이다. 가르치는 즐거움이란 찾아보기 어렵게 된지 오래다. 교실에는 수업 중,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은 담당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이 아닌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포기하고 졸업장이 필요한 학생들은 끊임없이 수업을 방해하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아들 벌 되는 아이들이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이죽거리는 소리를 들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친다는 선생님도 있다.

 

이런 수업에서 해방 되는 길은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 하는 수밖에 없다. “교사는 학생들만 없으면 참 좋은 직업이다”이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길... 그것은 수업을 하지 않고 학부모나 교사들로부터 존경받는 교감 교장이 되는 길뿐이다.

 

수업의 즐거움이 없는 교실... ?!

끔찍한 수업(?)에서 해방 되는 길... 그 것은 다름 아닌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는 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는 학생들을 많이 만날수록 서열이 낮다. 시간제 강사, 시간강사와 같은 사람들은 임용되기 바쁘게 수업 폭탄이 쏟아진다. 부장들은 일반 평교사보다 적게 수업을 하고, 교감이나 교장이 되면 아예 수업에서 해방된다.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일수록 높은 사람, 폼 나는 사람으로 존경 받는 학교... 언제쯤이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선생님들을 만나 볼 수 있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4.03.07 06:57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은 어떻게 반응할까?
‘자거나 말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자기 손해니 깨울 필요가 없이 하던 수업을 계속한다..?’
아마 그런 선생님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면 선생님을 쳐다보면서 ‘ㅅ’소리와 함께 인상을 찡그린다면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떨까?

수업을 들어가 보면 학생들의 수업태도는 천태만상이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잠만 자는 학생, 한두명이 자고 있으면 피곤하거나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 갈 수 있지만 반수 이상이 엎드려 자고 있거나 다른 공부를 하고 있으면 수업을 진행할 의욕은 멀리 달아나고 만다.

 


캐나다 교육이야기

▲ 캐나다 교육이야기


 
잠에 못 이겨 깨워놓으면 1분도 안 돼 또 자고, 뒤에 가서 서 있으라고 세워 두면 선채로 졸고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짝꾼과 소곤거리며 끝도 없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주의를 줘도 5분도 채 안 돼 다시 잡담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책상 속에 거울을 감추고 얼굴을 다듬고 있는 학생, 책상 속에 손을 넣고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학생....

선생님에게 농담인지 성희롱인지 모를 질문을 하고 음침하게 웃으며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희희덕 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런 학생에게 교육을 시키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초라하다는 느낌마져 든다.

‘다른 나라는 경우 이런 상황이 되면 학생지도를 어떻게 할까? 박진도, 김수경이 쓴 ’캐나다 교육이야기(양철북)‘를 읽으면 '어떻게 이런 천국같은 나라가 다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부러움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캐나다에는 우리와 같은 교실풍경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큰소리한 번 내지 않고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 교사에서 수업이 가능하다는 게 참 신기하다, 도대체 어떻게 수업을 하고 있을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야단치는 일은 거의 없다. 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학생이 ‘Yelling’했어(고함쳤어)”라는 말은 ‘그 선생님 또라이야’라는 말과 비슷한 수준의 말이다. 그만큼 선생님이 고함치는 일도 상식적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정상적으로 조용하게 잘 돌아간다.(본문 P. 250)

우리나라 학교와 비교하면 꿈같은 얘기다. 수업에 지쳐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정신병원까지 드나드는 교사가 비일비재한 우리교육현실과 비교하면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 어떻게 이런 교육이 가능할까?

고함도 안 지르고 체벌도 없으면서 수업이 가능하고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은 어렵지 않다. 캐나다는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재미 뺏기’라는 신기한(?) 방법을 활용한다. 그 ‘재미 뺏기’란 다름이 아니라 어렸을 때는 장남감, 좀 더 크면 게임기, 컴퓨터, 친구 만나기 등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북미에서는 아이들이 I am grounded'하면 ‘지금 벌 받고 있는 중이다’라는 말이다. ‘grounded’라는 말은 관제탑에서 항공기를 착륙시키고 날지 못하도록 금지 하는 것에서 유래된 ‘활동을 제약하는...’말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개발>

 


정말 ‘재미 빼앗기’로 생활지도가 가능할까? 캐나다에서는 가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이런 생활지도는 상식적인 말이다. 아이들도 이에 대해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grounded’될 만큼 잘못했는지 생각해 심하다 싶으면 ‘공정하지 못해!’ 라며 입술을 내미는 정도가 전부다. 재미를 빼앗긴 아이들은 대체로 화를 내기보다 자신의 행동을 크게 후회한다.

'재미 빼앗기'라는 생활지도는 매우 효과적이다. 장남감, 게임기를 숨겨 버리거나 컴퓨터도 패스워드를 바꿔버리거나 파워코드 등을 빼서 감춰 버리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렇게 자란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생활지도가 가능하다. 혹시 말을 안 듣거나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주의를 주고 경고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아이들 전체가 칠판 앞으로 나올 때 그 아이만 책상에 혼자 있으라는 벌을 준다. 그래도 안 되면 책상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한다. 대부분 이 정도 단계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한다.(본문 P. 251)


곱게 말하다 안되면 달래고 그래도 안되면 고성이 오가고... 아이들 때문에 부부싸움으로 번지기도 하는 한국의 가정과 비교하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체벌을 반대하거나 학생들의 인권을 말하면 종북으로 몰리고 학생인권법을 만들자면 교권보호법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우리네 실정이다. 학교에서는 버릇없는 아이들을 지도한다면서 ‘벌점제’를 만들기도 하고 생활기록부에 남겨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의 매를 권하는 학부모들도 없지 않다.

'캐나다의 생활지도는 벌만 주는 것이 아니다. 말썽 피우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도와줬다’거나 ‘친구를 도와줬다’는 구실을 붙여 그런 아이들에게 표창장을 주기도 한다. 캐나다 선생님들은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잘한다, 잘한다’를 입에 붙이고 산다.' (본문 P. 252)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에게는 이 정도로 통하지 않는다. 학생이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의 행동을 하면 교실에서 쫓아내 교장실이나 교무실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 뒤 수업을 마치고 그 학생과 얘기를 한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 만나면 대체로 잘 해결된다는 이유다. 학교에서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부모에게 통보해 바로잡게 한다는 것이다.

흡연이나 약물에 대해서는 학칙에 따라 처벌하고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바로 경찰을 부른다. 학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숙제를 안 해오는 경우 점수에 반영되니까 야단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이 성적에 상관 않는다면 숙제를 안 하는 것도 자유라고 생각한다.

등수는 없지만 점수가 나쁘면 진학이나 좋은 학교를 갈 수 없도록 제도화된 학교에서는 교사와 갈등이 있을리 없다. 물론 교사의 권위가 절대적으로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선생님의 지도에 불응하거나 친구와 잡담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이 없는 교실.... 선생님들이 ‘캐나다 교육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캐나다에 가서 공부 한 번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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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주인은 학생인가?, 교장인가?

 

「담임 역할도, 보직 교사 업무도, 연구수업 실적도, 심지어 연수시간조차도 승진을 위한 점수로 환산되고, 근무평정이 학교장에 의해 매겨지는 현실에서, 교사들에게 승진이란 일반 기업체의 그것보다, 수험생들의 수능점수 경쟁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소수점 단위로 따져가며 순위를 다퉈야 할 무한 경쟁의 장이 돼버렸다.」

'승진때문에 목숨 끊은 여교사, 욕할 수 없다 ' 오마이뉴스에 서부원 기자가 쓴 기사 제목이다. 교사들은 왜 승진에 목을 매는가?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30년간 점수 계산하며 살아야 하는 교사.... 그들이 승진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자.

학교사회는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지만 학생을 주인으로 대접하는 학교는 별로 없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인인 학생들은 주인으로서 대접하기보다 순치의 대상, 통제의 대상으로 감시감독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교육공무원 승진 평정 참고자료>

 

교사도 그렇다. 학교라면 당연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가장 우대받고 존경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교장이나 교감, 장학사들이 높은 사람이요, 교사들은 그들의 명령에 따라 교육해야 하는 상하관계에 놓인다. 교감이나 교장 그리고 장학사들은 교사보다 교육을 더 잘하는 전문가일까?

 

현실이 그렇다보니 교사들은 승진을 꿈꾼다. 승진하는 것이 출세(?)하는 길이요, 교직에서 평생 동안 아이들을 보살피며 평교사로 재직하는 교사는 무능한 교사로 인정받는 게 현실이다. 일선 현장에서 이론과 실천경험을 쌓고 주변에서 훌륭한 교사라고 인정하더라도 저절로 승진되지 않는다. 평교사가 교감이나 교장 혹은 장학사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공무원법에 의하면 교육공무원은 교원교육전문직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더 세분하면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교원과 교육연구기관에 근무하는 교육연구관, 교육연구사 등이 있고 교육행정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교육장, 장학관, 장학사, 등이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교육기관이나 교육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교사들을 지원해 보다 양질의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교사가 교감이 되거나 교장이 되는 것을 ‘승진’이라고 한다. 장학사나 장학관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사란 ‘초ㆍ중ㆍ고등학교 따위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 교사가 교감이나 교장, 혹은 장학사를 일컬어 전문직이라고 한다. 교사를 제외한 연구기관이나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학생들의 교육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는 게 교감, 교장이요, 장학사다.

 

<사진설명: 장학지도-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관련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특히 좋은 선생님과 훌륭한 학교장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요, 축복이다. 학교장이 어떤 철학의 소유자인가의 여부에 따라 학교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교장승진제가 좋은 교장을 뽑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되어 있다면 우리교육은 그만 큼 양질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학교는 유능한 사람이 교장으로 승진하기 좋은 구조인가?’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교사들은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승진의 길은 그만큼 어렵기도 하지만 승진 준비를 하는 동안 과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점수를 모으기 위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교과나 업무 그리고 학생들이 얼마나 희생되어야 하는지 한 번 살펴보자.

 

교포교사와 안포교사의 차이...?

 

교감이나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점수를 계산해야 한다. 공무원 승진평정체계를 보면 교사가 승진하기 위해서는 경력점수(70점)와 근무성적(100점) 연수성적(교육성적-27점, 연구실적-3점) 그리고 연구학교나 교육기관 파견근무와 같은 가산점(13점)을 합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지 못하면 승진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임기가 끝나 떠나는 태봉고 여태전 교장-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졸업생, 재학생, 지인들의 축하 한마당>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력평정점수 70점은 15년 기본점수에서 초과 5년이 만점이지만 경력등급이 가, 나, 다 경력이 달라 농어촌이며 벽지를 찾아다니며 점수를 채워야 한다. 연수성적의 경우 교육성적과 연구실적 합계정수 30점 만점에 자격연수 9점, 직무연수 10년이내 60시간 이상의 연수점수와 전국규모 1등급은 1.50점 2등급은 1.25점 3등급은 1.00점 시도규모 1등급 1.00점, 2등급 0.75점, 3등급 0.59점.... 박사학위 취득 3점, 석사 1.5점....

 

가산점은 더 복잡하다. 교육부지정 연구학교 근무 1.25점, 재외국민교육기관 파견근무 0.75점, 직무연수 이수실적 1점 이내, 도서벽지 및 농어촌 학교근무경력... 0.000점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승진 점수, 자신의 승진 점수를 계산하며 철새처럼 근무해야하는 교사는과연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이렇게 복잡한 점수를 다 만점을 받아도 마지막으로 학교장이 평정하는 근무성적이 나쁘면 승진은 끝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운영에 대한 비판은커녕 ‘교장의 마름(?)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한 승진은 꿈도 꾸지 말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교사로 발령받아 30세 정도가 되면 ‘관리직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평생 교포교사(교장을 포기한 교사)로 정년퇴임을 맞을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62세 정년까지 30년을 준비해야 하는 승진의 길.... 운(?)좋게 모든 점수를 채워 4~5년을 교장이나 장학관으로 혹은 교육장으로 출세(?) 하는 사람도 있지만 퇴임 1, 2년을 남겨 놓고 교장이 되어 시골 100명도 안 되는 학교에서 정년을 맞는 교장도 없지 않다. 승진의 꿈을 꾸다 화려하게 꽃피우지 못하고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교사... 이들이 과연 성공한 교직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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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학생들 공부는 안 가르치고 데모나 하다니, 세상 말세야...!’

 

전교조 교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옳은 말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교사가 공부를 가르치는데 전념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데 교과서만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면 그게 좋기만 한 일일까?

 

<이미미지 출처 : 교육부>

 

교육부가 교학사가 만든 교과서를 승인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라고 하다 실패로 끝났다. 한 페이지에 평균 2.6건의 오류가 있는 교과서... 전체로 따지면 교과서 한 권에 무려 719건이라는 오류가 발견된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라면 이런 교과서로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치기만 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데모라도해서 옳은 교과서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게 옳을까?

 

교학사 교과서 얘기다. 도대체 교학사 교과서는 어떤 책일까? 친일파와 독재정권의 추악한 과거사를 찬양, 미화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며 무장독립투쟁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깎아 내리고 일제의 만행을 은폐하고 축소하며,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미화하는 책... 이런 책이 교학사가 만든 교과서다. 이런 교과서를 학교가 선택했다면 교사들은 침묵하는 게 옳을까?

 

교과서의 역사를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과거 학생들이 배운 교과서에는 전통사관이라는 친일학자들이 쓴 교과서였다. 5·16을 혁명으로, 10월 유신을 한국적민주주의라고 기록한 교과서였다.l 이런 책을 만들어 가르치라고 하면 저항하는 게 옳은가, 아니면 순종하는 게 옳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들의 주권을 훔친 정권을 민주국가라고 가르치라는데... 광주시민을 백주에 학살한 정권을 민주정부라고 제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라는 데 시키는 대로 가르치는 게 옳은가? 아니면 저항 하는 게 옳은가?

 

<이미지 출처 : 전교조>

 

옛날부터 그랬다. ‘여자가 똑똑하면 팔자가 드세다’며 남녀평등세상을 막았다. 식민지시대 일제가 조선에 학교를 세운 이유는 우리백성들을 눈뜨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기르고자 했던 인간은 비판의식을 가진 민주시민이 아니라 식민지백성을 만드는 일이다. 비판능력을 제거한 인간, 순종하는 인간, 가난을 운명으로 아는 인간을 키우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4·19혁명정부를 뒤엎고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정권은 어땠을까? 박정희는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이라는 세계역사상 유래 없는 악법을 만들어 그것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을 앞세워 주민계도(?)에 나서고 언론은 유신헌법의 정당성을 홍보했다. 이때 한국적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교사들은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은가?

 

유신헌법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악법이라고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시험문제만 열심히 풀어주는게 옳은 일일까? 학생들에게 그런 건 몰라도 된다며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게 옳을까? 이런 형상을 두고 박정희는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면 교사들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손가락질 할까?

 

교사들이 시사교육을 하면 사람들은 ‘교사가 공부는 안 가르치고....?’라고 한다. 그렇게 강조하는 공부란 도대체 무엇인가? 시험문제 풀이...? 학급에서 몇 등을 하도록 점수를 올려주는 것....? 제자를 일류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한 준비...? 세상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이 문제풀이만 하고 있으면... 개인별, 학급별, 학교별, 지역별로 성적을 매기고 일류대학에 입학한 학생 수로 일류고등학교, 명문 고등학교가 됐다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가?

 

지식위주의 공부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학교는 학교가 할 일, 즉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학교가 해야 할 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 그게 학교가 해야 할 교육의 본질이지만 가장 중요한 책무를 외면하기에 하는 말이다. 진짜 공부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 옳은 건 옳다하고 틀린 건 틀렸다고 분별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것,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고,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알고... 잘못했으면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고, 남의 불행을 보면 불쌍해하고, 함께 아파하고... 그런 걸 알도록 하는 게 교육이다. 그게 시험문제풀이보다 소중한 게 아닌가?

 

<이미지 출처 : 전교조>

 

민주주의에 살아갈 아이들에게 주인의식, 시민의식, 민주의식, 역사의식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올곧은 교육이 아니다. 가능성을 찾아주지 못하면서, 시비를 가리는 일에는 침묵하라면서 교육부가 승인해 준 교과서만 죽도록 암기시켜 점수 몇점 더 올려주는 게 급한 일일까? 더구나 불량교과서를 배우라는데 저항하는 학생을 불량학생이라며 징계하는 일이 옳을까?

 

학생은 공부나 해...!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폭력. 그게 우리나라 부모들이 착각하고 있는 자식 사랑이 아닐까?

“다 너를 위해서야!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식을 위해 사시는 우리 부모들.... 그게 정말 자식을 위하는 길이요, 사랑일까?

‘참아야 해!, 공부나 열심히 해!, 학생은 학생다워야 해!, 백점 받아야 해!, 일등 해야 해! 다른 학생들은 다 잘 견디잖아? 윽박지르고 짓밟고 무시하고... 이겨야 산다는 냉혹한 논리를 심어주는 체화시키는 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교육이라는 가면으로 어른들이 만들고 있는 현실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 그런 교육을 교육자들은 잘 하고 있을까? 학교인권조례의 경우를 보자. 서울시는 학생인권조례가 교육을 방해한다면서, 법으로 고칠 수 없다고 판단이 난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인권교육을 하겠다고 하면 ‘인권이 밥 먹여주느냐’면 펄펄 뛰는 사람이 있다. 인권 다르고 공부가 다를까?

 

<이미지 출처 : 전교조>

 

기본이 되어 있지 못한 사람에게 지식만 많이 주입했다고 교육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의 머릿속에 암기한 지식만 많이 들었다고 훌륭한 사람이 될까? 인권이란 교육 그 자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게 교육이듯이 인권이란 사람을 인권적인 존재로 키우는 일이다.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수많은 지원청이 있다. 교육부며 시·도교육청이 있고, 장학관, 장학사, 교장, 교감...들이 학생들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교육이 이 모양일까? 왜 학교가 무너졌다고 야단들일까?

 

‘너도 열심히만 하면 의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판검사도 될 수 있어! 사당오락이라고 하잖아? 4시간만 자야해, 다섯 시간을 자면 떨어져, 선행학습이든 고액과외든 닥치는 대로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겨야 해! 과정 따위는 소용없어, 결과가 말하는 거야! 우리 때도 그랬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해, 그게 살아남는 길이야!’ 언제까지 이런 교육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할까?

 

교학사 교과서 채택 0%라는 부끄러운 결과가 나왔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 의도를 감추지 않던 교육부는 채택거부 0%라는 결과에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국정교과서 회귀안’을 들고 나왔다. “자신들의 시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내일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에게 친일 미화와 독재를 찬양하는 교과서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교육부의 불편부당한 처사를 구경만 하고 있어야할 것인가?

 

 ▶  이 기사는 '맑고 향기롭게'(2014. 1)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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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례는「대한민국헌법」,국제연합「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과 학교생활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전북학생인권조례 제 1조)

 

인권조례 제3조(학생의 인권 보장원칙)는

 

①학생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② 학생의 인권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으로만 제한될 수 있으며, 이 조례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 한다.

③ 학생의 개성과 자율성은 학교생활에서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전북교육청 학생인권조례의 일부다. 그렇다면 학교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리북도에는 학생인권조례가 공포, 시행된 지 4개월이 지났다. 학교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머리색깔 : 염색, 코팅, 파마, 고데기, 붙임머리, 칼라서클렌즈 등 금지, 무스, 스프레이, 젤 등 사용금지, 상투형태(뽕머리)금지, 성인용 악세사리 착용 금지

용모 : 자연적인 상태로 유지,

마스카라, 아이라인, 눈썹 화장 금지 얼굴 및 손톱 화장 : 모든 형태의 색 화장 금지, 손톱이 지나치게 길거나 매니큐어 사용 금지,

 

치마길이 : 무릎 위 1cm이내 길이(여), 무릎 위 1cm 이상 금지(여), 휴대폰 충전기, 고대기, MP3충전기, 전열기구는 허용하지 않음, 발견즉시 접수하여 1주일 이내 보관’

 

전북교육청 산하 00고등학교의 학생생활지도규정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게 된 목적은 ‘「대한민국헌법」,국제연합「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과 학교생활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학교현장에서는 왜 헌법과 전북학생인권조례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을까?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모든 어린이들은 안전하고, 행복하며 충족된 환경에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왜 외면하고 있을까?

 

 

학생인권이 부분적으로 실천되고 있다고 민주교육이 이루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선언적으로 공포, 시행되고 있다고 학교에서 민주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학생회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은 학생회는 이름만 학생회일 뿐, 민주적인 학생회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생회뿐만 아니다. 교직원회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름은 교직원들이 참가한 회의지만 주제를 놓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민주적인 절차나 과정은 찾아볼 수 없다.

 

교직원회의가 명실상부한 민주적인 결정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이유는 교직원회의가 법적기구가 아닌 임의기구이기 때문이다. 단위학교에서 교직원 회의는 교장, 교감 그리고 각부서의 부장과 행정실장이 모여 협의한 내용을 전달할 뿐 학교운영에 관한 토의나 결정 과정은 없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민주주의는 교문 앞에서 멈춘다고 했던가? 위의 00고등학교 학생생활지도규정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는 아직도 한밤중이다. 학교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곳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한 인간이 민주사회에서 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줘야 한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은 지금 기성세대들이 살아갈 세상과는 다르다. 변화된 세상에서 보람 있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지혜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을 길러줘야 한다. 교육다운 교육이란 자발성에 근거한 가치내면화로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를 기본원리로 성립된 사회에서 자유를 부인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기부정에 다름 아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빼앗은 인권은 학생들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학교에서 어떻게 민주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사는 전북교육신문 '열려라! 행복한 교육' 2013년 13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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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뉴스1>

 

또 시험이다. 그것도 신학기가 시작되고 담임선생님이 학생들 얼굴도 익히기 전, 어제 강원, 경기, 광주, 서울, 전북을 제외한 나머지 전국 교육청에서 일제고사식 진단 평가가 실시됐다. 진보교육감 지역인 원, 경기, 광주, 서울, 전북에서는 일제고사식 진단평가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에서 교육부의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거부하고 있지만 다른 시도에서는 비교육적인 평가를 강행하고 있다.

 

일제고사식 진단평가를 시행하는 이유가 뭘까?

 

명분이야 ‘부진학생을 판별하여 학력신장을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학교 간 성적을 비교하여 성적 부진학교를 선별하고 학교를 압박하여 6월의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다. 대부분 보수적인 교육감들이 지역 학생들의 시험 성적 향상을 교육의 제일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치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가 숨겨 있는 것이다.

 

새학기를 맞는 학생들과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지난해에는 다소 성적이 뒤떨어졌지만 올해는 나도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각오와 다짐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치르는 일제고사식 진단평가는 말이 진단이지 새출발하는 학생들에게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열등감과 낙인을 찍어 놓을 것이다. 또한 교사는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일구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을 시험성적으로 줄 세우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말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뉴시스>

 

새 학년을 맞이하여 교사들은 다양한 진단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학업준비 능력은 물론이고 성격과 소질, 생활습관, 교우관계, 가정환경 등 학생들에 대하여 종합적인 진단을 해야 한다. 단순히 시험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할 경우, 학습부진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으며,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력은 더욱 더 파악하기 곤란하다.

 

학년 초 진단 활동은 일상적인 교육활동 과정에서 교사와 아이들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학생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북돋아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후 일 년 동안 교사와 학생이 상호 신뢰 속에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관계 맺기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뉴시스>

 

교육에서 시행착오란 있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식 진단평가가 수많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새출발의 의욕을 짓밟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당연히 중단되어야 옳다. 더구나 지난해 말 초6, 중3, 고2를 대상으로 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결과가 학교별로 공개되자 사교육업체들이 지역 또는 전국단위로 ‘학교 순위표’를 만들어 학교 이름만 치면 지역별 등수와 학교 등수를 비교할 수 있는 ‘석차비교사이트'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교육당국은 알고 있는가?

 

시도교육청은 일제고사식 진단평가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

 

교육부는 담임교사 얼굴도 알기 전 시행하는 시도교육청의 일제고사식 진단평가를 중지시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핵심적인 교육공약이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교육’이다. 만약 이것이 헛된 공약(空約)이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공약(公約)이라면, 교육부는 아이들의 꿈과 끼를 시험 성적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재단하고 짓밟는 일제고사식 진단 평가를 즉각 중단 시켜야 옳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쟁교육은 방관한 채, 꿈과 끼를 살려주는 교육이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학교 현장의 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배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아이들이 속출하고, 교사와 학생의 교육적 관계는 파괴되어가고 있다.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상호협력을 강화하여 학교를 교육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위기를 해결해야할 교육당국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교사와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와 시도교육감들은 죽음의 경쟁교육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1.22 07:00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서, 사람을 키워야 했다.

700년간 식민지에서 벗어나자 마주친 현실,

 

적은 자원,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작은 땅덩어리,

최우선과제, 생존.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한 작은 나라가 어느 아이의 재능이건 잃어버릴 이유가 없다.

모든 아이의 재능, 모든 아이의 재능을 찾기 위해 시작되는 실험,

실험의 목표, 같은 매를 탄 학생들이 항구에 이르도록 하는 것,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그러나 1980년대!

 

영국과 미국 등 수많은 나라가 선택한 실용적인 교육방법,

 

경쟁!

 

더 많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학생들간의 경쟁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거꾸로 가는 핀란드, 1985년 우열반 폐지, 경쟁은 필요 없다. 교실에서의 경쟁은 필요 없다. 협동이 살 길이다. 교실에서 협동을 위해 성적표에서가 사라지는 등수.

 

오늘은 못하지만 내일은 잘할 수도 있고, 수학은 못하지만 언어는 잘 할 수도 있는 건데, 몇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학생 개인에게나 사회전체에게나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1971년 이후

 

정권은 바뀌어도 결코 바뀌지 않았던 교육 원칙.

그 이유, 경쟁이 아닌

협동, 그것이 생존을 위해 더 필요한 방법,

 

학교에서 경쟁만을 배우고 협동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진다면,  과연 그 사회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러한 핀란드교육의 실험결과

 

1.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학생들간의 학업성취도 편차

2. OECD 주관 국제학업 성취도 평가 PISA 연속 1위.

 

세계 학력평가에서 핀란드 1위 한국 2위로 결과가 발표되자 한국 교육관계자는 핀란드 교육관계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허허, 근소한 차이로 우리가 졌습니다.

 

그러자 핀란드 교육관계자가 허허 웃으면 말했습니다.

 

“저희가 큰 차이로 앞섰습니다.

핀란드 학생들은 웃으면서 공부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울면서 공부하지 않습니까?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각자의 재능을 국가의 경쟁력으로, 개인보다 협동으로, 기본적인 타인 배려, 협동을, 우리라고 강조하는 핀란드식 교육은 모두가 함께 웃으면서 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의 책임입니다.

어떤 처벌로 겁주기식의 폭력 근절방법보다는

서로를 배려하고 따뜻하게 감쌈으로써 근본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핀란드 교육실험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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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유치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모두 무료로 교육 받는 나라.

 

초중고교와 대학 대다수가 공립이며 사립은 있지만 종교계통의 학교이고, 고등학교 졸업자의 30% 정도만 대학에 가도 자기 삶이 보장되기 때문에 대학 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다. 경쟁(competition)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체육시간, 100m 달리기 할 때나 들어 볼 수 있다는 나라.

 

 

시험은 치는데, 성적은 매기지 않는 나라.

 

등수가 무엇인지 알 지 못하는 나라. 시험을 치기는 하지만 시험을 치는 이유는 학생이 해당 과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를 확인하기 위해서 치고. 시험 결과가 곱셈은 잘하는 데 나눗셈은 못한다고 나왔다면 나눗셈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사가 어떻게 돕느냐를 위한 자료로 필요한 용도로 쓰이고 점수가 나쁘게 나왔다면 다음 날부터는 선생님과 친구들은 그 학생의 나눗셈 실력 향상을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한 자료로 쓰인다고 한다.

 

수학은 못하지만 언어는 잘 할 수 있는 건데, 그걸 몇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매기는 게 학생 개인에게나 사회 전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게 이상하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경쟁이 아니라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며, 시험 결과를 등수로 매겨 성적표를 공개하는 것은 아이들의 기를 꺾어놓는 최악의 교육 형태라고 생각하는 나라가 핀란드 교육이다.

 

 

공납금은 물론이요, 학교급식에서부터 교과서, 각종 교육보조 재료까지 대부분 무료요. 학교에서 배우는 책은 학생 개인이 사야하는 것도 있지만, 모두 정부에서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무료다. 대학생의 경우에는 한 달에 250유로 정도 정부 보조금을 받아 책도 사보고, 때론 맛난 것도 사먹고 하는 나라. 핀란드. 그런데 우리는 왜 못할까요? (프레시안 "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를 참고로 했습니다)

 

학교가 무너졌다. 교육은 없고 시험문제만 풀이하는 학교,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기도 하고 교사들 중에는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다 못해 정신병원까지 가기도 하는 나라. 교사들은 공부하는 학생들 한 번 가르쳐 보는 게 소원이라며 명예퇴직 날짜를 계산하는 나라....!

 

교육을 상품이라고 선언 한 후 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나날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현실을 말하면 영화 속에나 나오는 얘기 같다. 학교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설마...?’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 언제쯤이면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 바뀔 수 있을까? 희망이 있는 사회라면 참고 견디기라도 하련만... 학생도 학부모도 학생도 절망 속에서 날이 갈수로 심각한 고통에 지쳐 한계상황에 처한 나라. 우리는 왜 핀란드처럼 교육할 수 없을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를 참가시키자면 기를 쓰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학교 경경을 책임지고 있는 학교장이다. 말로는 입버릇처럼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하면서 학생대표가 학교를 운영하는 법적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걸 한사코 반대한다.

 

학생 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데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 어떤 교장은 학교의 ‘학생들이 뭘 안다고...!’ 라고 하고 또 다른 교장은 ‘학생들은 공부나 해야지...’라고 한다.

 

학교운영위원회란 당연직인 교장과 교사위원, 학부모위원 그리고 지역위원으로 조직된 법적인 기구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면서 당연히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게 학교운영위원회를 설립한 취지에 맞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되려면 당연히 학생 스스로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규칙을 만들고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민주적인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민주적인 학교라면 학생자치를 통해 자기네들의 의사를 학교운영에 반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학생들이 뭘 알아!’ 학교장의 이런 말은 교육자로서 할 말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학생 자치도 실천을 통해 배우는 게 학교다. 민주주의도 주권도 배우지 않고서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학생들이 공부나 하지...’라고...?

이런 논리는 독재자들이 좋아하는 이데올로기다.

공부란 무엇인가? 지식만 암기해 서열이나 매기는 것만이 공부인가? 교육을 상품이라고 하면서 선택권도 없는 교과서를 가르쳐 주는대로 암기나 하는 ‘골든벨 울리기’식 암기는 민주적인 교육이 아니다.

 

지식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지덕체의 조화로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다. 통제와 단속, 지배와 복종만 있는 학교에 어떻게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학교장이 왜 학생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걸 반대할까? 자신의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학교운영,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예산집행이 학생들에게 알려지는 게 싫어서 학생대표를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학교장이 진정 민주시민을 기르겠다는 철학을 가지 사람이라면 스스로 학생대표로 하여금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시켜 민주적인 훈련을 받도록 하는게 정상이다.

 

순치는 교육이 아니다.  과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자주적인 능력도 민주적인 의식도 길러지지 않는다. 통제와 단속으로 길들여진 아이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자. 머리는 왜 귀밑 3Cm여야 하고 교복은 왜 입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들이 먹는 학교급식 식자재가 찬환경이나 유기농 식자재가 아닌지... .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교칙을 정해 지키도록 하고 있다>

  

체벌이 교육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학생이기 때문에 인권을 유린당해도 참아야 한다고... 교도소에서조차 사라진 체벌을 왜 학교에는 정당화하고 허용해야 하는지... 왜 한 번도 읽어 보지 못은 교칙을 입학식 때 선서를 했다는 이유로 지켜야 하는지... 스스로 만든 교칙을 지키며 체화해 본 생활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학교를 살리는 길은 학생이 학교의 주인일 가능하다. 학교운영위원회에도 참여해 보고 스스로 자기네들이 지킬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는 훈련을 해 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어 본 아이들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인권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남의 인권을 존중하겠는가?

 

민주적인 학교는 어떻게 가능한가? 학교가 공부하는 곳, 민주주의를 배우는 실천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왜 우리는 선거권의 연령을 유럽선진국처럼 19세에서 18로 낮출 수 없는가?

 

미국을 비롯한 독일, 프랑스,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위스 같은 나라들은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다. OECD를 비롯한 세계 40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 비교 평가에서 2위를 했다는 한국의 청소년들은 왜 상위권 대우를 못받는가? 학교를 살리는 첩경은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는 학교,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받는 학교가 될 때 가능한 일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12.20 07:09


 

"현재 시각, 5시 30분입니다. 17시 현재 투표율 70.1%입니다!"

 

만세! 만만세! 대한민국만세! 위대한 국민만세!, 민주주의 만세....!

우리는 이겼습니다. 승리했습니다. 밟힐수록 웃는 민들레처럼....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울던..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던... 풀이....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민주주의는, 정의는, 역사는 드디어 승리했습니다.

 

우리 민족, 민초들의 저력은 역사의 고비마다 이렇게 쓰러질듯, 쓰러질듯 하면서도 끝내는 쓰러지지 않고 끝내는 다시 일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악의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기만과 사술에 마취돼 고통의 시대를 살아도 끝내는 다시 일어서 새삶을 만드는 민족, 이제 불의의 시대, 멘붕의 시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 시대는 갔습니다. 패거리들이 만든 암흑의 시대는 가고 희망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주권이 무엇인지, 사람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깨닫고 만끽하면서 살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서울대 조국가 왜 문재인후보가 당선되면 "63빌딩 걸어서 올라갈 것"이라고 했을까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정태인씨는 왜 "조국 교수가 63빌딩에 올라갈 때 망사스타킹을 신게 하겠다"고 했을까요?

 

물론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웃으면서 한 얘기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절절히 간구했던 것은 박근혜라는 사람보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이 된다면 재벌이 아닌 보통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나도 부자도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는 사회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점수 때문에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고 비정규직이라고 홀대받고 눈치보고 쫓겨나는 그런 비극의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산가족이 돼야했던 부부들도, 아이들이 학교폭력 때문에 학교에 보내기가 불안해하는 부모들도 이제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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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 발사 카운트다운처럼 10, 9, 6, 7...0 !

YTN 예측조사 결과 ‘문재인49.7~53.5%박근혜46.1~49.9%....!’ 야호! 우리가 이겼다!.......???? 그런데 방송 3사 출구조사는...??? !!!!

박근혜새누리당후보 50.1%, 문재인 민주통합당후보 48.0%...????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설마, 설마....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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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9일!

밤 10시 경, 박근혜후보, 당선 확실....?!

 

허탈하다. 부끄럽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평생을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왔던 늙은 교사는 허탈하고 또 허탈하다. 교육운동, 시민운동, 민주화운동을 한다고 살아 온 내 삶이 무너지는 좌절감과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오늘, 우리가 만든 이 반동의 역사가 사랑하는 우리 후손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상처와 좌절감을 안겨 줄 것인지...? 박근혜 정권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 정의롭게 살겠다는 사람, 양심을 지키면서 살겠다는 사람들, 노동자들, 농민들, 학생들, 학부모들...이들에게 닥쳐 올 삶의 무게가 얼마나 힘겹고 어려울까?

 

박근혜의 당선은 ‘유신이 한국적 민주주의’로, ‘5. 16이 쿠데타가 아닌 혁명’이 된 날이다. 2012년 12월 19일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정의, 도덕, 법,...양심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지금부터 교직원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례!”

“인성부장님 말씀해 주십시오.”

“...........................”

 

“연구부장님, 말씀해 주십시오.”

“.............................”

 

“과학부장님... 방과후부장님... 교육과정평가부장님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 선생님들,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각부장의 발언이 끝나면 행정실장, 교무부장, 교감, 교장 순으로 이번 주 할 일과 지시가 끝나면 교무회의는 끝이다. 일년동안 회의에 참석해도 단 한마디의 발언도 못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다. 교장교감과 각 부장들이 결정한 사안을 발표하는데 평교사는 발언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자칫 딴소리를 했다가 문제교사를 찍히기 일쑤다.

 

제안하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그런 회의가 아니다. 간부회의에서 논의한 업무를 교직원들 앞에서 발표하고 지시하고 전달하는 시간이다. 법적인 기구도 아니요, 학교장의 경영계획에 따라 짜여진 임의기구 프로그램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학교의 민주주의는 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이 있다. 교장-교감-수석교사-부장교사-평교사로 계급화된 전근대적인 관료제 사회가 된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실천할 공간이란 그 어디에도 없다. 말로는 회의기구인 교직원 회의가 있지만 법적인 심의기구도 의결기구도 아닌 지시와 전달의 장인 형식적인 임의기구다.

 

이런 지시전달의 닫힌 교무회의가 법적인 의결권을 가질 수 있는 ‘의결기구’로 바뀔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전북도육청은 전교조 전북지부와 정책협의회에서 ‘교무회의 의결기구화’에 대한 정책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전북교육청과 전교조 전북지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교무회의 운영규정을 제정, 추후 단체협약 체결 시에 전문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책업무회의에서는 ‘도교육청은 교무회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학교장은 교무회의 의장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회의록 작성 ▲토론과 의결은 민주적으로 진행하며 일반적 회의 규정에 준해 시행 ▲교무회의 결정사항에 대해 학교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수용(단, 필요시 재논의) ▲학교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사항, 학교운영위원회에 상정할 교무안건 사전 심의를 의제에 포함하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무회의 운영규정을 제정해 각 급 학교에서 민주적 교무회의가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는 해방 후 지금까지 토론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없는 지시와 전달, 의무와 복종만이 있는 비민주적인 사회다. 군대에서도 사라진 체벌이며 학생들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교문은 아직도 군대의 위병소를 방불케 한다.

 

 식민지시대 조선 사람들에게 일본인으로 키우는 황국신민화 의식화를 하던 ‘애국조례’가 시퍼렇게 살아 있고 교무회의는 학교장의 지시, 전달의 상명하달의 기구로 전락해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학교를 교장왕국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무회의뿐만 아니다. 학교의 주인이라는 학생회는 자주적인 학생들의 단체가 아니라 학교장이나 학생부의 지시를 전달하는 기구로 견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학부모 또한 교육의 한 주체로서 사랑하는 자녀들의 배움터를 함께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유층 부모들의 치맛바람에 좌우되는 임의기구로 남아 있다.

 

말로는 교육의 3주체를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라고 한다. 교육의 3주체가 학생회, 학부모회, 교사회가 법적인 의결기로 참여해 함께 좋은 학교를 만들어가야 하지만 아직도 학교는 학교장의 뜻이 곧 학생회의 뜻이요, 학부모의 뜻이요, 교사의 뜻이다. 뒤늦기는 하지만 전북도육청과 전교조 전북지부가 합의한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는 학교를 민주화하는 전향적인 조치로 신선한 충격이다.

 

전북뿐만 아니다.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교무회의뿐만 아니라 학생회와 학부모회도 임의구가 아닌 법적인 기구로 바꿔 명실상부한 학교의 민주화를 이루어 가야 한다. 민주주의가 없는 학교에 어떻게 민주적인 교육을 할 것인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점수에만 열을 올리는 애들을 가르치느라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은 할 수 없는 '무너진 교실'이라 교사는 허탈하다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점수조차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그득한 교실은 어찌해야 할까요?

 

지식이든 삶의 지혜이든 배울 생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놀 생각만 있는 아이들. 삶의 지혜나 도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면 비웃기 바쁘고, 하다못해 교과지식 하나라도 가르치려 하면 이런 거 왜 배우냐며 빈정거리는 애들을 앞에 놓고 있노라면 '진정한 교육'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치입니다.

 

점수에 목숨 걸고 점수 때문에라도 하나라도 더 들으려 집중하는 애들을 가르쳐봤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제 블로그에 12년 전에 오마이뉴스에 썼던 ‘무너지는 교실, 교사는 허탈하다’는 글을 오려 오늘날 교육과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했더니 ‘어느 교사’라는 네티즌의 쓴 댓글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점수 때문이라도 좋으니 공부하고 싶은 아이 한 번 가르치는 게 소원이라 했을까? 학교가 이 지경이 된 게 누구의 죄일까? 교사, 학생, 학부모, 교장을 비롯한 교육관료 정치인... 들 중 무너진 교육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굴까?

 

교육을 살린다고 난리다. 너도 나도 ‘내가 적임자’라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교육을 살릴 수 있다고 화려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너진 교육도 학교폭력문제도 공교육정상화도 문제없다며 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없애겠다고 기염(氣焰)을 토하고 있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하다. 이런 얘기는 선거철만 되면 자주 듣던 얘기가 아닌가?

 

 

선거철만 되면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느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다. 그런데 정말 이해 못할 일은 그런 약속을 했던 사람이 소속된 정당 사람이 5년 전에 했던 말을 똑 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 할 수 있었으면 임기 안에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또 할 수 있다고 기고만장일까? 정치인의 거짓말, 양치기 소년 말에 속지 말아야 할 텐데 순진한 유권자들은 그런 말에 또 귀가 솔깃해진다.

 

입으로 못하는 게 없는 사람들! 교실에 가서 수업을 하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본 일이 있을까? 유명인사가 출두(?)한다고 예고하지도 말고 방송국 카메라 대동해 준비된 쇼(?)를 보러 가지 말고, 소문 없이 찾아가서 한 시간만 이 허탈한 교실을 보고 난 후에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상황 1. 씨×! 학교 안 다니면 그만 아닙니까?

 

책가방도 버려 둔 채 달아나는 학생을 따라 가 보지만 붙잡아 교실에 앉혀놔도 마음이 떠난 아이를 잡아 둘 재간이 없다. 20평도 안 되는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과 교사와의 거리는 끝간데 없이 멀어만 진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보면서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푸념을 하는 교사들이 늘어간다.... 최근 서울의 ㅁ중 김모교사(31·여)는 지난달 말 5교시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깨웠다가 봉변을 당했다.

 

여러 번 채근한 뒤에야 고개를 겨우 든 남학생은 한동안 대꾸도 하지 않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씨…』하고 내뱉더니 책상을 차고 일어났다. 한참 꾸지람을 들은 학생은 『교실 뒤쪽에 서 있으라』는 말에 벽과 문을 잇달아 발로 차면서 수업을 방해했다.

 

김교사는 『체벌을 하려 해도 중학생이면 덩치가 클 대로 큰데다 「왜 그래요」라며 달려들 것만 같아 그만두었다』고 털어놨다.(2000년 6월 경남도민일보에 필자가 썼던 "무너지는 교실, 좌절하는 교사!" 중 일부)

 

상황 2. 수업 시작 벨이 울리면 교사는 교과서와 수업 재료를 챙겨들고 교실로 향한다.

 

하지만 골마루엔 아직도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넘친다. 벨이 울렸는데도 교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장난 삼매경'에 빠지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교실 문을 연다.

 

책상 위를 뛰어 다니는 아이, 사물함 위에 드러누워 자는 아이, 교탁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숨바꼭질 하는 아이. 참으로 다양한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이 꽁꽁 닫혀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선풍기와 에어컨으로 교실 열기를 식혀낸다.(2012년 7월 12일 경남도민일보 '사천 중학교 '멘붕 스쿨' 어떡하지...?'에서)

 

위의 사례를 보면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그 때는 실업계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던 일이 지금은 중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학교는 멘붕상태다. 아니 멘붕학교다. 2009년 2963명이던 명예퇴직교사가 2010년에는 3660명, 2011년 4217명으로 계속 늘어 올해에는 지난 2월 신청자만 3517명에 이른다.

 

교사가 아이들을 감당 못해 떠나는 학교. 어쩌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됐을까? 학교를 살리겠다던 정치인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교육을 살리겠다고 기고만장하던 대통령, 교육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 땅의 정치인들, 교육학자들, 교사, 학부모 교육관료들...

 

교육을 살리겠다는 사람들, ‘시험점수 때문이라도 좋으니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한 번 가르쳐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이 현장 교사의 처절한 목소리는 왜 들리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7.03 06:30


 

‘모르는 게 약’이라고들 한다. 알면 불편하니까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다는 뜻이다. ‘담배가 해롭다’고 말해도 ‘평생 줄담배를 피워도 90넘게 사는 사람도 있다’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농약이며 방부제로 먹거리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걱정을 하면 ‘그런 거 먹어도 당장 안 죽는다’며 큰 소리 치는 사람도 있다. ‘살면 얼마나 살건데... 엄살이냐며...’ 오히려 핀잔이다.

 

이해관계와 가치관문제로 갈등이 그치지 않는 사회에서 ‘그런 건 몰라도 된다’든지, 우리가 몰라도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라며 태평스런 사람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 세상이 바뀌기 마련인데 힘없는 우리가 나선다고 해결될게 뭐 있느냐며 ‘모른 채하고 사는 게 복장 편하다’고 태형인 사람도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의 심각성이며, 정부의 민간인 사찰 문제, 4대강의 예산낭비문제, 학교폭력문제.. 등등 심각한 사회현상에 대한 심각성을 말해도 눈도 끔쩍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보안법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사람도 있고,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지 않는 현실도, 한·일간의 군사정보협정의 심각성 따위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사람도 있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했다. ‘전생에 죄가 많아 여자로 태어났다’고도 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도 했다. 요즈음 이런 소릴 하면 ‘미치광이’소릴 듣는다. 세상이 바꿨기 때문이다. 세상은 왜 바뀌었을까? 세상은 저절로 바뀌었을까? 아니면 신(神)이 바꿔 준 것일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다고 감이 입안에 저절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Lorentz, E.)가 주장한 이론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잖은 일이라도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변화한다.’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다. 변화와 연관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면 속(본질)은 보이지 않고 껍데기(현상)만 보일 뿐이다. 내가 가난한 것은 내가 게을러서일 수도 있지만 경제관념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낭비벽이 심해서일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제행위와는 상관없이 국제경기나 국가의 경제정책, 혹은 체제에 따라 나의 생활이 가난해 질 수도 있고 좀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다. 체질에 따라 담배를 하루 한 갑씩 피워도 90까지 건강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하루 몇 개비씩만 피워도 건강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사람도 있다. 이는 부분을 보고 전체라고 착각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노동자와 국가보안법은 무관한 게 아니다. 국가 보안법이 있어 납북관계가 적대적인 관계가 되면 복지예산에 씌어야할 예산이 최신 무기 구입을 위한 국방비에 지출된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갈 예산이 줄어들어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주인이 없는 사회에는 노예가 주인 행세를 한다. 민주주의에서 주인은 유권자인 백성이다. 백성들이 민주의식, 정치의식과 같은 주권의식이 없으면 일꾼인 국회의원이나 도민의 살림을 살아달라고 뽑아놓은 도지사가 주인행세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치를 하는 대통령을 뽑아 놓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 지지 않은가? 

 

대선을 앞두고 말의 성찬이 시작됐다.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말의 성찬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고 농부는 농사나 짓고 상인은 장사나 하고 학생은 공부나 하고... 이렇게 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민주주의는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고 변화한다’는 시각, 주인이 주인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의식이 살아 있을 때만 주인이 주인 대접받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7.02 06:30


 

 

교육 위기가 해결의 실마리를 차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해법은 원론에서 찾아야 하지만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교과부는 해결을 위한 노력도 의지도 없다. 교과부는 하루가 다르게 교육개혁 안을 내놓고 있지만 그런 개혁으로는 교육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사교육비문제 교실붕괴 등 교육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기만 하고 있다.

 

교육문제 못 푸는 것일까 안 푸는 것일까?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일’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다. 이런 상식을 뒤엎고 교과부는 ‘경쟁과 효율’이라는 수요자의 중심의 시장논리를 도입해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와 학생이고 교육이란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다. 올바른 교육이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 즉 지성과 감성, 의지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측면에서 잠재적 가능성을 개발’하는 일이다. 교육은 상품도 아니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을 국가를 위해 필요한 소모품’을 길러내는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학생인가? 교사인가? 아니면 교장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한다. 정말 학교의 주인이 학생일까?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면서 왜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하는 것조차 거부당할까? 학생ㅇ; 주인이 아니라면 교사가 학교의 주인인가?

 

 

 

국가공무원법 제 57조(복종의 의무)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교사가 학교의 주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만약 교사가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는 현실의 모순을 혁파하겠다고 자신의 교육관에 따라 교육을 하게 되면 해직사유로 교단을 떠나야 한다.

 

학교를 일컬어 교장왕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의 주인은 교장일까? 최근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를 보면 성적으로 학교를 서열화해 예산을 차등지원 하는 걸 보면 교장은 주인이 아니라 교과부의 명령과 지시에 충실하게 따르는 마름이다. 결국 교장이라는 사람은 교과부의 교육 통제를 위해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일 뿐,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육을 책임지는 주인은 아님이 확실하다.

 

학교란 배우는 곳만 아닌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다

 

학교란 배우며 가르치는 곳이다. 주인이 대상화된 학교에는 특색 있는 학교도 교육다운 교육도 불가능하다. 교육주체가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지 않고서는 위기의 학교, 입시경쟁 교육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교육주체인 학생과 교사가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 수는 없을까? 좋

 

은 교사란 지시에 복종만 하기를 강요당하고 승진을 위해 점수 모으기나 하는 학교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일류대학을 몇 명 더 입학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학교의 서열이 매겨지는 학교에서는 좋은 교사가 나올 수 없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학교나 학급의 운영과 수업에 자기네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과정에 동참하지 못하는 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다. 교과부의 무능과 무성의를 지켜보다 못해 학벌 없는 사회를 비롯한 진보교육연구소 등 교육단체들이 교육혁명공동행동위원회를 만들어 ‘대한민국 교육혁명’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지금은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육혁명이 필요한 때다

 

교육혁명행동공동연구위원회가 펴낸 ‘대한민국 교육혁명’을 보면 학교의 주인이 누구인지 또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교육혁명행동공동연구위원회는 좋은 학교를 만들이 위해서는 학교운영의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학교자치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자치위원회는 위원회 아래 교육과정과 교원인사권을 장악하는 교직원회와 학교운영, 교육활동전반에 대한 감사와 평가, 그리고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학부모회를 둘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학교자치위원회에서 학생들은 학칙 제·개정에 참여하고 학생회의 민주적인 구성과 운영, 그리고 학교자치위원회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론 교장은 제왕으로서 군림하는 오너나 CEO가 아닌 교육주체들의 협력과 소통을 활성화시키고 헌신 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장은 교사 위에 군림하는 상관이 아니라 역할분담차원의 보직으로서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야 하며 당연히 교장 자격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는 이제 개혁으로서 바뀔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혁명 차원에서 근본적인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지금까지 수많은 개혁이 실패한 것이 그 증거다. 주인 없는 학교에 어떻게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교육을 살리려면 교육주체들에게 교육권을 돌려줘야 한다. 그게 교육을 살리는 길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3.18 07:00


 


앞으로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욕을 많이 사용하는 학생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상급학교 진학 시 불이익을 받게 할 것이라고 한다. 교과부가 발표한 '학생 언어문화 개선 종합대책'에 따르면 문제아·모범생 가릴 것 없이 학생들의 욕설이 너무 심각하다고 판단. 욕설이 심한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 비(非)교과 영역에 기록하고, 입시(入試) 과정의 '학교장 추천 대상'에서 제외해 상급학교 진학 시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처음 욕을 사용한 시기가 초등학교 저학년이 22.1%, 초등학교 고학년이 58.2%로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80.3%가 욕을 배운다고 한다. 또 하루 종일 욕을 사용하는 어린이도 무려 65.5%나 된다고 한다. 여성가족부에서 지난 해 국무회의에 보고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 및 건전화 방안'을 보면 청소년의 73.4%가 매일 욕을 사용하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 청소년은 단 5.4%에 불과하다고 한다.

교과부가 밝힌 자료를 보면 ‘고등학생 1명이 학교에서 4시간 동안 385번 욕을 한다’고 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이주호교과부장관은 언어생활의 순화가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 "가정·학교·사회가 연계해 학생들의 언어 순화를 위한 캠페인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언어문화 개선 선도학교를 선정하고, 학생과 교원을 대상으로 '고운말 쓰기 UCC 공모전' 등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운전대를 잡으면 신부님이나 스님도 욕을 한다고 한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른들의 입에서도 욕이 나온다. 학생들의 하교시간이나 주차장에서 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말의 반이 욕설이다. 듣는 사람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옛날에도 욕설이나 은어, 비속어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초중고생들의 언어문화를 보면 어쩌다 청소년들의 언어가 이 지경까지 됐을까 그 심각성에 참담한 마음이다.

언어 순화는 시급하고도 절실하다. 그러나 교과부가 내놓은 정책을 보면 저능아 수준이다. 학생들이 욕설을 사용할 때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상급학교 진학 때 불이익을 주겠다니... 어떻게 학생들이 욕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목에 녹음기를 달아 놓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교사들이 일일이 학생의 뒤로 따라다니며 욕을 한 횟수를 세어 누가기록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교과부의 상식이하의 정책을 보면 한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면 교실이나 복도에 CCTV를 설치하고, 사교육비가 문제가 되면 학교 안에 사설학원 강사를 불러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위기를 극복하겠다고 교육을 상품으로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바꿔 학교를 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은 문제아로 단정, Wee스쿨이니 Wee 클레스를 만들어 격리수용하고, 입시제도가 문제가 있으면 대학별 단독고사에서 ‘연합고사+본고사’로, ‘연합고사+본고사’에서 다시 ‘대학입학 자격고사’,... 수학능력고사로 이름만 바꿔 놓았다.

문제의 원인을 두고 ‘아랫돌 빼 윗돌괘기식’의 대책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욕설이 사회문제가 됐으면 욕설이 심한 원인부터 찾는 게 옳다. 그러나 교과부는 원인을 밝힐 생각은 하지 않고 욕을 하는 학생들부터 문제를 삼는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오늘날 학생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보자. 안방에서 극장,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영화며 드라마는 우리말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있는지... 왜래어, 외국어투성이의 오염은 이대로 좋은가?


새벽같이 어린이 집이며 유치원에서 12시간 남의 손에서 키워지는 아이들, 인성교육은 뒷전이고 점수 몇점을 더 받기 위해 새벽같이 등교해 아침 자율학습이며 정규과과수업, 보충수업, 자율학습으로 밤 10시가 넘어서 학원으로... 개미쳇바퀴 돌듯 하는 청소년들... 국어시간은 있어도 말하기 지도보다 시험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에게 욕을 하면 생활기록부에 올려 불이익을 주겠다니...

교과부는 윽박지르고 통제하고 문제아 취급하면 정신을 차려 범생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가? 교육위기와 사교육비, 학교폭력, 욕설문제... 등 산적한 학교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인권의식도 철학도 없는 교과부의 시각부터 바꾸는 게 선결문제가 아닐까?

위의 이미지는 다음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사례 #.1

키가 2m가 넘고 몸무게도 100Kg이 넘을 정도의 거구의 선생님. 수업에 들어갈 때면 손에는 언제나 출석부와 길이가 1m 정도 되는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신다.

인상도 정말 무섭게 생겼다. 수업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교실에 없거나 엎드려 자면 예의 그 몽둥이로 교탁을 한 두 번 치면서 눈만 부릅뜨면 아이들은 완전히 얼어 버린다.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자는 아이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리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업계 학교에서 60명의 교실에 열 명도 채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잡담을 하는 다른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비하면 기적 같은 모습이다.

                                                        <이미지출처 :  EBS에서>

사례 #.2

수업에 들어 올 때는 늘 ‘훈화자료’라는 선생님이 직접 만든 자료집을 들고 다닌다. 그렇다고 덩치가 커서 위압적이거나 ‘야 임마!’ ‘이 자식 저 자식...’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다정다감하다. 이 선생님이 들어와 수업을 시작할 때 자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깨워주기도 한다.

교실에 들어 와 수업을 시작하기 전 흑판에 ‘인내’ 혹은 ‘채무자’... 이렇게 쓰고 삶에 대한 얘기로 수업을 시작한다. 어떤 날은 ‘자성예언’ 또 어떤 날은 ‘연단’... 이렇게 흑판에 쓰고 난 다음 얘기를 시작한다.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당연히 그런 훈화로 시작한다는 걸 학생들은 다 안다. 어떤 날을 시를 읽어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자신이 감동 깊게 읽었던 고전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다 교과서 단원을 흑판에 적고 “공부합시다” 하면 여기저기서 “선생님~ 계속해요!” 이렇게 나오면 못이기는 척 학생들에게 지고 한 시간 내내 얘기를 할 때도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말썽이다. 학생들에게 인권을 찾아주자고 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자 보수적인 교사단체인 교총이나 조중동같은 수구언론들이 야단이다. 교사들에게 권위가 무너지면 교사들이 설 곳이 없다는 것이다.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학생도 학생이기 전에 한 사람의 국민이니까 당연히 국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게 학생들에게 권리를 주면 어떻게 학생들이 교사의 통제를 받아들이겠느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학생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하는 ‘학생관’의 차이다.

학생들을 ‘통제의 대상, 또는 단속의 대상으로 보는가?’ 아니면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가치 내면화의 대상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교사에게 권위가 없어지면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권위란 무엇인가? 사전에 찾아보니 권위란 ‘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이라고 적어놓았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통솔하여 이끌기 위해 필요한 힘이라는 뜻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앞의 사례#.1의 선생님 같은 모습에서 나오는 게 권위일까 아니면 사례 #.2의 선생님 모습에서 나오는 것일까?

권력과 폭력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만 행사를 정당하게 하는가 아니면 부당하게 하는가의 차이다. 권위도 마찬가지다. 미숙한 인격자를 교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다. 힘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학습자 스스로 마음을 열고 변화를 하도록 도와는 주는가의 차이다.

교육은 순치(馴致)가 아니라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거나 시행착오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폭력이나 강제로 행동을 수정하려면 이중인격자를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동이나 각성을 통해 변화하도록 이끌어 피교육자는 스스로 자기수정을 통한 행동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수확이 급해도 벼 포기를 뽑아 올려서는 못쓴다. 좋은 결실을 맺게 하려면 김을 매주고 거름을 주어 스스로 자라게 해줘야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불신과 통제와 억압으로 단 한 거루의 벼도 열매를 맺게 할 수 없다.

- 이 기사는 충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78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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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종합병원으로 보낸다. 환자가 열이 나는 이유는 치과적일수도 있고 내과적인 원인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폐암에 갈려 열이 나는 환자에게 감기약을 지어준다는 것은 의사로서 치명적인 실수다. 사회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교사는 가장 정치적이어야 한다. 왜..? 정치인도 길러내야 하니까?

내일의 노동자, 상공업자, 예술인, 정치인, 종교인...을 길러내야 할 교사들이야말로 정치적인 안목과 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분을 보고 전체라고 보는 것은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하라고 가르치는 교사야말로 내일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는 교사라는 사람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다.

교사도 주권을 가진 자연인이다

교사들의 중립성을 놓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전교조 교사가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사실을 두고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파면·해임의 중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정치적 중립이란 공무를 수행하는 수업시간에 특정정파의 입장을 강요하거나 편향된 의식을 심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 교사이기 때문에 국민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사적인 석상에서 정치 얘기를 못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 다음검색에서>

고등학교 사회과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윤리, 역사, 지리..등 13과목이나 된다. 1학년에서 배우는 사회는 통합교과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조금씩 양념조로 나온다. 그러나 이 수준으로는 역사의식이나 시민의식을 심어주기는 역부족이다.

교육이란 상품... 어느정도일까?

자연계열로 바뀌는 2학년이 되면 사회교과는 더 이상 배울 기회조차 없어진다. 만약 이런 학생이 대학도 자연계로 간다면 이 사람의 사회의식은 평생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을 면키 어렵다.

사회과 교사는 누군가? 사회교사자격은 13과목 모두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교사도 법학을 전공한 교사도, 지리나 정치를 전공한 교사도 무두다 일반사회교사 자격증을 받는다. 일반사회교사는 학교의 형편에 따라 지리도 가르치기도 하고 정치나 역사를 가르칠 때도 있다.

교사의 전공과 관계없이 개설되는 사회과 교과목

7차교육과정이 바뀌고 기존의 일반사회 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방학을 이용해 연수를 받고 통합사회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지만 4년간 공부한 전공과목을 겨우 한두달 연수로 고등학교 사회과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다.

사회과 모든 교사들이 다 그렇지만 자신이 전공한 과목 외에 다른 과목을 가르치면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사회과가 선택교과가 되면서 학교에 따라 자신의 전공과는 다른과목을 개설했을 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경제를 전공한 교사가 역사를 가르치면 교과서에 실린 역사적인 지식만 암기하도록 가르치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수능에 우수한 성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배운 학생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역사를 볼 수 있는 안목, 사관을 이해하고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의미를 깨닫게 할 수 있을까?

교육블로그가 왜 정치를 말하느냐고요?

교육블로그를 하겠다고 시작한 내 블로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종교 등 온갖 얘기를 다 쓴다. ‘교사이기 때문에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 이게 평소 내 소신이다. 역사교과서에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사람은 정치인이다. 교과서를 편성하고 교육과정을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입시제도는 물론 학교예산을 배정하는 일도 정치인이 하는 일이다. 교사에게 정치를 몰라도 된다는 말은 무지와 무소신의 극치다.  정치의식, 민주의식, 시민의식, 역사의식...이 없는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면 교육이 아니라 지식전달자, 지식판매상이 될 뿐이다.

민주의식이 없는 교사는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한다. 정치의식이 없는 교사는 훌륭한 정치인을 길러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의식이 없는 교사는 건강한 노동자를 길러낼 수 없다. 교사에게 정치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는 아이들이 깨어나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날까 겁이 나기 때문이 아닐까?   더불어 사는 세상, 질높은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정치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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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 다음 검색에서>

“야, 임마! 내가 너희 선배야! 알겠어?”

나는 처음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저 선생님이 왜 저런 얘기를 학생에게 할까?  ‘나는 “학생부 부장인데....” 그렇게 말하지 않고 “내가 너희 선배야!”라고 했을까?

교사로서가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에게 하는 따뜻한 말이니까 잘 들으라는 얘길까?

실업계 학교인 이학교에는 유난히 선배가 많다. 일제시대 공부를 잘해야 입학할 수 있었던 학교. 해방 후 이 학교 졸업생들이 정계를 비롯해 지역의 실세(?)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학교다.

세월이 지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는데다 인문과 실업계로 나뉘어지면서 실업계인 이 학교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오는 학교(?)가 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됐다 복직해 돌아 온 학교. 5년간의 공백이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해직되기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교사 휴게실’이라는 게 생겨 있었다. 제법 분위기 있게 꾸며 놓고 편안한 소파도 갖다 놓았다. 학교에 따라서는 선생님들이 마실 수 있도록 음료수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상담실이 있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불러 지도하면 말썽꾼(?)의 기를 죽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인지 학생부 부장선생님은 가끔 이 장소를 활용하곤 한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취향뿐만 아니다. 교장, 교감을 빼면 상사가 없는 특이한 조직사회인 학교에는 가끔 이상한 모습을 본다.

부장교사
라는 직함이 직위가 아니라 직무라는 걸 모르는지 늘 평교사 위에 군림하려는 선생님이 있다. 이 날도 몽둥이를 손에 들고 말썽 부리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하는 말이 그렇다.

저 선생님은 ‘왜 교사로서 학생을 지도하는 게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를 지도’하기를 좋아할까? 내가 유명한 명문학교 선배니까 너희들이 이 학교 명예를 더럽힌다는 모교사랑 때문일까? 아니며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사보다 지도하기 보다 감동을 더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아이들 지도뿐만 아니라 학교 안에는 가끔 이상한 문화를 발견한다. 선생님들 중에는 학교 안에서 동료교사를 ‘형님’ 혹은 ‘선배’로 호칭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말씨도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이 아니고 하대를 한다.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들 중에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어이~ 이선생, 김선생~” 이렇게 하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 직위가 높기 때문에? 아니면 나이가 많기 때문에...? 회사나 기업체라면 몰라도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상호 존중하는 모습이 아니라 지시와 복종이라는 계급문화를 보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입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교육입니다"


내가 초임교사시절 정년을 몇 달 남겨놓지 않은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막내 아들 딸벌이 되는 젊은 교사에게 깎듯이 존대어를 쓰셨다. 한번은 사석에서 말씀을 낮추라고 부탁드렸지만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지요. 아이들 앞에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교육이랍니다.”

그 후 나는 아무리 친한 선생님이라고 해도 학교 안에서는 반드시 존댓말을 썼다. 아니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젊은 사람에게 하대를 하지 않는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무시당한 적은 한번도 없다.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보여 ‘우리가 남이가..’라는 문화를 정당화시키는 ‘형님문화’, ‘선배’문화는 교직사회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광주와 경기에 이어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됐다.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점진적으로 학생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아무리 수구세력들이 기를 쓰고 반대해도 학생을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학교는 의도적인 교육의 장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은 다 교사여야 한다. ‘나는 행행정실 직원이기 때문에...’ 혹은 ‘나는 급식소 조리사이기 때문에...’ 가 아니다. 그들의 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피교육자들에게 본이 되고 교육적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학생망국조례라고 걱정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통제와 단속, 체벌이 없으면 교육이 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선생님도 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가? 무시당하며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학교이기 때문에 교사 상호간 혹은 교사와 학생 간에는 더더욱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학교는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쳐 주는 곳이기도 하다. 교육자가 없는 학교,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학교에 무슨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12.08 06:29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여교사를 놀리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을 찍은 영상’이 유포되기 바쁘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뉴스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4분 25초 분량의 문제의 동영상은 2년 전 부천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촬영된 것으로 선생님이 학생을 혼내자 꼬박꼬박 말대꾸하며 교사를 놀리는 장면이 담겨있다.
문제의 동영상은 여교사가 남고생 A군을 혼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교사 : “내가 언제 쳤어”
학생 : “선생님이 저 여기 싸대기 쳤죠. 얘들아 싸대기 쳤어 그렇지?”

교사 : (복도로 나가라고 지시)
학생 : “저 틀린 말 한 적 없죠? 근데 뭘 잘못했기에 나가야 돼요?”

교사 : “한심하다”

학생 : “선생님도요”(학생들은 함께 웃고 있다)

교사 : "선생님도 처벌 받을게. 너도 벌을 받아야 돼. 나와 학생부 가자고!"

학생 : "왜요. 제가 뭘 잘못 했는데요. 제가"

교사 : (화를 참지 못하고...) "개**..." (욕을 한다)

학생 : (반 아이들은 "오∼"하며 환호성)

교사 : (환호한 다른 학생을 지적하자...)


다른 학생 : "하던 일이나 하세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네티즌과 언론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여교사 농락 동영상 충격... 무너진 교권....’
‘여교사 농락 동영상‥'더듬이 체벌인가?'’
‘무너진 교권? 여교사 농락 동영상 충격! ’
종이신문의 뉴스들도 비슷한 논조다.
‘여교사 농락 동영상에 “체벌 부활-체벌 불가” 의견 분분’
'여교사 농락' 동영상 유포…땅에 떨어진 교권 '충격'
‘여교사 농락 동영상 충격...교실은 이미 죽었다.’
‘여교사 농락 동영상 '충격', "교권이 바닥을 쳤구나…"’
이런 논조다. 언론의 시각은 교권이 무너진 교실을 개탄하거나 "요즘 애들 진짜 무섭다", "저렇게 개념없는 학생들이 있다니 문제다"... 이런 투다.

이 동영상은 2년 전 있었던 일로 학생은 이미 졸업을 한 생태이고, 교사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사건이다.

이 동영상은 처음 인터넷에 올라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난 기분은 착잡했다. 누구나 그런생각이 들겠지만 '어떻게 이럴수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건 교육을 하는 교사가 아이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시장판에서나 볼 수 있는 쌈질 수준이다. 교육을 하는 교사의 수준이나 가르침을 받아야하는 학생의 태도가 아니다. 
 
교사에게 덤비는 학생의 태도도 그렇지만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의 태도 또한 인권이나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같지 않다. 찌라시 언론의 논평같은 그런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지금 학교의 교실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처녀선생님을 보고 " 선생님 가슴이 왜 절벽이예요?"

엄마뻘 되는 여선생님에게 농담 따먹기를 하자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아버지뻘 되는 선생님에게
 

"쌤 Sex가 뭐예요?"   

이런 질문까지하는 겁없는 학생도 있다.
지금 수능 끝난 3학년 교실은 정말 교육하는 곳인가? 

기말고사가 끝난 교실은 차마 교육하는 곳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분명히 앞에서는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시간 내내 잠을 자는 학생이 수두록하고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거나 거울을 꺼내 얼굴을 다듬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런 학생 못봐주는 성질 고약한 선생님(?)이 지도라도 하겠다고 나섰다가는 문제의 동영상과 비슷한 현상이 연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이런 현상이 어제 오늘의 얘긴가? 아니 갑자기 못된 학생 한 둘이 나타나 연출하는 현상인가?


동영상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찌라시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조용한 교실에거 어느날 문제학생이 나타나 교권이 무너지는 장면이니 버릇없는 학생의 태도에 경악한다느니 하는 논조로 몰아가고 있다. 교실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런 평가가 옳게 보인다. 학생에 대한 저주 섞인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인민재판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학생이 교사에게 막말을 하거나 머리채까지 잡는 현상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네티즌이나 찌라시 언론들은 난리 법석이다. 문제의 본질은 덮어두고 현상을 보고 십고 또 십는다. 문제의 본질을 분석해 대안을 제시하거나 재발을 막기 위한 처방을 내놓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건의 본질은 학교가 교육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부를 비롯한 지역 교육청에서서는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치른 후 어는 시도가 몇등이라며 일제고사 점수가 높은 지역이나 학교가 교육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수치로 나타난 점수는 지식교육이요, 숫자로 나타내지 못하는 교육의 한 축은 인성교육은 따로 있다. 점수를 마치 교육의 결과로 호도하는 건 교과부나 언론들의 무지의 소치거나 고의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인성교육이 없는 교실은 교육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지식교육 평과결과로 서열을 매기다보니 저런 학생은 언제든지 나왔고 얼마든지 나올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놓고 마치 새로운 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드는 언론은 상업주의로 포장되었거나 문제의 본질도 파악 못하는 한심한 언론들이다.

학교가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을 제대로 해 교육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고 있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 물론 사소한 문제.. 예를 들면 이 동영상에서 나타나는 여교사는 학생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부족한 초보교사라는 느낌이 든다든지, 학생의 언행이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 같은 문제는 개인의 잘못도 문제지만 교육정책이나 우리사회가 함께 만들어 놓은 결과가 아닐까?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문제가 이지경이 된 원인은 무엇일까? 분명한 사실은 학생개인의 부도덕성, 교사의 무능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가정에서 기초 생활지도의 부재에서부터 사회적 환경... 다시 말하면 상업주의에 찌든 만화방, 게임방, 텔레비전이며, 영화며... 점수를 교육으로 착각하는  교육에 대한 교과부의 무지, 입시위주의 교육, 교사양성과정에서 교사의 인권에 대한 교육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이런 ‘여교사 농락사건’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반성해야 할 당사자는 학생뿐일까?

이 사건의 원인제공을 한 사람... 학부모는 물론, 교사와 교과부 그리고 학생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세상이 함께 저지른 사건이지 학생 개인이나 교사만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교육의 공급자인 교과부와 학교, 교사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제 2, 제 3의 ‘교사 농락사건’은 언제든지 제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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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추억의 노래사랑' 카페에서>

“오늘 말 안 듣는 아이들 손바닥 다섯대씩 때렸어요”
창원 00중학교에 근무하시는 이00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나온 얘기다.
평소 사람좋기로 소문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체벌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물었다.
 
“아니, 동영상이라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어쩌려고 손바닥을 때려요? 왜 때렸는데요?”

“수업을 하러 들어갔는데 이놈들이 완전히 개판이잖아요. 종이 쳤는데도 자리에 앉을 생각도 않고 돌아다니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냥 둘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체벌을 반대하던 선생님이 체벌을 했다 말입니까?”

“선생님! 저는 교육이란 미성숙한 사람의 잘못을 바로 잡아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걸 그대로 둔다는 것은 교사의 직무유기요, 자기 부정이지요. 저는 아이들이 제 멋대로 행동하는 걸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잘잘못을 고치려면 말로 안 되고 제재를 해야 하는데 벌을 세우거나 체벌을 하다 인터넷에 올리거나 학부모들이 찾아와 항의라도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게 겁나면 사표내야지요. 그리고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선생님이 감정이 섞여서 때리는 것 하고 사랑으로 사람 되라고 손바닥을 때리는 걸 구별 못하지 않습니다. 손바닥을 때려놓고 저는 아이들에게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면 반발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는 평소 ‘아이들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남다른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요즈음 선생님들과 만나면 한결같이 나오는 얘기가 수업을 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제발 연금만 되면 교단을 떠나고 싶다는 선생님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이 공부할 의욕이 없는데다가 학원에서 선행학습인가 뭔가 하는 바람에 공부를 좀 하는 아이들조차 학교에서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가면 선생님과 눈도 맞추지 않고 앉아서 한 시간 내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 옆 짝지와 끊임없이 잡담을 주고받는 아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책걸상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며 잠시도 가만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 선생님 강의는 듣지 않고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 아예 처음부터 엎드려 자는 아이.....

수업태도가 나쁘다고 지적이라도 하면 눈을 꼴치며 ‘ㅅ’자가 튀어 나오는 아이. 잠자는 아이를 깨우면 험한 눈으로 쳐다보며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

 


학교가 어쩌다 이지경이 됐을까? 학교가 이 지경이 된 책임은 어디 있을까?


첫째, 교육과학부가 만든 결과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교실에 까지 불어 닥치자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됐다. 시장판이 된 학교에는 교육이 아니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문제풀이를 해주는 곳이 되고 만 것이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본질적인 업무인 교육을 하지 못하고 상품을 판매해야하는 장사꾼이 되고 말았다. 학교는 교육을 하고 학원에서는 입시준비를 하는 역할분담이 아니라 학교도 학원도 입시학원이 되어 누가 더 일류학교에 더 많이 입학시키는가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경쟁력이 살길이라며 점수 좋은 학생과 점수 나쁜 학생을 구별해 수준별 학습을 시키고, 특수목적고를 만들고, 교사와 학교를 평가해 성과급으로 차등화하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문제아(?)를 모아 교육하는 'Wee스쿨'인가 'Wee 클래스'인가를 만들어 분리 수용(?)하고 있다.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학교에다 학원을 불러들여 방과 후 학교를 만들고 교과부가 직접 나서서 EBS에서 입시문제를 풀이하는 코미디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 학교의 현주소다.


둘째, 교육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무너진 교실... 이를 지켜보는 교사의 마음은 허탈하다 못해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는 교사들은 교사들의 반응도 각각이다. 어떤 교사는 ‘너희들이 그러는데 내가 열받아가며 가르칠 필요가 뭐 있는가? 하는 자포자기형 교사다. 체벌을 하거나 벌을 세우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만 피해를 볼텐데 손해 볼 짓을 할 필요가 뭐 있는가?”라고 생각하고 무사안일로 사는 교사들도 없지 않다. 

앞에서 예를 든 이00선생님같은 교사도 있다. 잘못된 교육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학교를 살려보겠다고 안간힘을 쏱는다. 전교조에 가입해 자비를 들여 교원연수에 참가하고 전교조에 가입해 단체행동을 하다 교단에서 쫓겨나기도 감봉이나 정직 등 불이익도 불사한다.

그러나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에서 교사의 권한이란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권한이란 그리 넓지 못하다. 교과서가 잘못됐다며 자신이 만든 교과서를 활용하면 처벌을 받는게 한국의 교육현실이다. 점수만 올려주는 교사가 대접받는 사회에서는 교과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면 불순교사, 좌익용공교사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교육의 모순은 현장 교사만의 책임이 아니다. 교육관료들, 교육학자들 그들은 무너진 교육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셋째, 학부모들의 잘못 또한 크다.

학교가 이지경이 됐는데 어느 학부모 한 사람 찾아와 ‘우리 자식 교육 제대로 시켜달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100점만 받아 오면 인성교육 따위야 문제될 게 뭐가 있느냐는 식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이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에게 쏟는 정성은 옛날에 비길 바 아니다. 거기다 고생하면서 살아 온 부모세대들은 나의 어려웠던 삶의 전철을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는 사랑(?)이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아이들에게는...’ 하는 정서가 만연해 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그래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예절이나 질서 같은 건 배우지 않는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시비를 가리고 부끄러움을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 부모들은 공부만 잘하면 일류학교만 들어가면... 좋은 직장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그것이 공부요, 성공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그런데 내자식만 손해 보라는 말인가?' 하면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탈학교 학생이 일년에 10만명씩이나 생겨 나고 있는데 부모들은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는 게 현명한 일일까? 그런 일이 금쪽같은 내새끼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데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그 때는 그 고통을 해당 부모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국내 교육비 지출현황>
단위 : 십억 (출처: 2008년 9월 한국교육개발원)


넷째, 조중동과 사교육 재벌들이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국내 사교육 시장 규모는 20조~ 40조 정도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려는 기득권 세력들은 조중동과 이해관계를 함께 사교육의 활성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겉으로는 사교육망국이니 교육이 무너졌다고 엄살을 떨지만 알고 보면 사교육 시장에 개입하거나 이와 관련된 사업으로 돈벌이를 하며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사학법개정 없이는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사립학교를 경영하면서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듯, 사교육비로 배를 채우는 사학재벌과 이를 조정하는 세력들이 이 나라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정상화의 걸림돌이요, 교육황폐화의 주범이다.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교육은 지식교육뿐만 아니라 정서교육도 포함하고 있다. 지식은 수치화할 수 있지만 정서교육의 결과는 수치로 나타내지 못한다. 지식만 있고 정서가 메마른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기형적인 인간이다.

전인 교육이 아니라 지식만 주입해 양성하는 기형적인 인간을 만드는 학교를 방치해놓고 교육을 한다고 우기는 학교. 그런 교육을 정상이라고, 혹은 자포자기하면서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교육자. 내자식 출세를 위해 사교육에 메달리는 부모 그리고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과부, 사교육 재벌들... 이들이 오늘날 교육황폐화의 공범자(?)다. 경쟁자를 이겨야 살아남는 지식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어떻게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1.09.28 22:05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학교붕괴’, 정부, 교사 그리고 학부모의 합작품이다.
‘인문계 3학년들도 이미 수업시간에 그냥 선생 무시하고 다 대놓고 자요
요즘은 애들 구제 못합니다.

왜냐고요?
어른 이란것들이 고따위로 가르치고 고따위로 행동해대는데 애들이 뭘 믿고 따르겠습니까?
그저 몇몇 순진한 멍청이들만 교사 말을 철썩같이 믿고 따르다가 소리 없이 망할뿐이죠
솔까말 요즘은 교사 말 들어봤자 아무도움도 안되고요
다 자기 스스로 헤쳐 나가야됩니다.

지 인생을 지가 사는거지
선생들이 대신 살아 주는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요즘 애들 저러는거 그렇게 썩 문제없다고 봅니다.
랄까 애초에 선생들이 너무 애들 잔다고 뭐라고 닥달해대니까 오히려 더 애들이 안따르는거 같습니다
닥달하면 닥달할수록 애들은 선생 더 싫어합니다.

그걸 요즘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어찌됐든 교권 무너진지야 이미 오래전 얘기고
'학교라고 해봐야 이미 시간낭비하러 가는 군대하고 별반차이없는 개차반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엄청 큰 개혁이라도 있지 않는 한 이런 모순은 절대 안 바뀔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실에는 학생만 왕따당하는 게 아니다’라는 글을 썼더니 ‘블레이즈’라는 네티즌이 쓴 댓글이다. 학생의 글 같은데 글 내용에는 교사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마져 번득인다. 엊그제 포스팅한 글(http://chamstory.tistory.com/704)에 대한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멀쩡한 교육을 가지고 왜 헐뜯느냐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학교에서 이미 오래전 일산화된 일이라고 공감을 하는 분들도 많았다.

선입견이나 이해관계가 없이 사랑의 눈으로 학교를 보면 어떻게 비칠까?  

“학교라고 해봐야 이미 시간 낭비하러 가는 군대하고 별반 차이 없는 곳?”

어쩌다 학교가 이지경이 됐을까? 인문계 학교 교실이 이지경이라면 실업계는 어떨까? 교실이 이 지경이 됐는데 장학을 한다는 분들, 이론에 칼 같은 분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알고도 모른채 하고 있는 것일까? 학부모들은 이런 교실현장을 보기나 했을까? 무너진 교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나 했을까? 교육이 상품이라는 데 사랑하는 아이들이 구매하는 상품이 양질인지 불량품인지 왜 확인해 보지 않을까? 

'학교를 못믿으면 아이들을 어떻게 학교에 보냅니까?' 
교육이 상품으로 바뀐지 오랜데... '교육부와 학교(교사)를 공급자로 학생과 학부모는 수요자'라고 선언한지 오랜데 아직도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수요자가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학교에는 교육의 목적도 있고 교육과정도 있고 가르치는 교사, 배우는 학생이 있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목적달성을 못하고 공부는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잠자는 곳, 붙들려 있는 곳'이 된 현실. 아이들은 교사를 믿지 못하고 교사들은 허탈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는 학교. 결과는 있어도 책임도 원인이 모르는 교실붕괴. 그것도 수십년동안 무대책이 대책인 위기의 교육. 전문가는 있어도 치료사가 없는 학교. 도대체 교실이 이지경이 되도록 만든 원인 제공자는 누구일까?

위기의 학교, 병든 교육을 만든 첫째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말로는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면서 교육을 장악하고 교육을 상품으로 만든 장본인이 교과부다. 교과서는 물론 교육과정 편성권까지 장악하고 개인이 행복한 교육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간,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성해 온 당사자는 교육부다. 피교육자로 하여금 비판의 식을 마비시켜 청맹과니로 만든 장본인은 교과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둘째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자다. 이들은 사랑하는 제자가 경쟁이데올로기에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다 못해 어떤이는 전교조를 결성, 권력에 저항했지만 2,00명 가까운 교사들이 교단에서 내쫓기고 만다. 양심적인 교사 옳은건 옳고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는 교사가 빨갱이가 되어 교단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본 교사들은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면...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해결해 줄텐데 왜 손해느느 짓(?)을 할 필요가 있는가하고 혹은 좌절하고 혹은 무력감에 빠져 방관자기 되기도 한다.


학부모들은 어떤가? 학교가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정말 모를까? 물론 순진한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모들은 학교가 교육이 아닌 출세를 위한 서열을 매기는 곳이라는 걸 알면서 ‘내 자식 사랑’에 이성보다 경쟁에 매몰된다. '100점만 받으면, 1등만 하면... 일류대학에만 입학할 수 있다면... 그깟 인성이니 사람됨됨이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다 그런데 나혼자만 잘난 채하면 누가 알아주는데... 왜 끌어 부스럼 내...이런 정서가 만연하고 있다. 

교사들은 말한다. 공범자가 되자. 아니 모른 채 하자. 열심히하다 과욕으로 사고라도 내면 내  손해지... 열심히 가르쳐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바른말 하면 출세에 지장이 있는데... 승진 점수나 모아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고 교육괄료로 나가면 세상이 날 훌륭한 사람이라고 존경하는데...  이런 정서에도 불구하고 교육운동에 뛰어들어 빨갱이 소리를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교사도 있지만 갈수록 그런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교과부는 답답할 게 없다. 경쟁력이 살길이다. 학교를 시장을 만들어 놨으니 돈이 있는 부모가 양질의 상품을 사는 거야... 교육을 통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건 능력이요, 정의다. 교육이란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경쟁을 통해 능력을 키우는 것이요,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경쟁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최고야.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건 다 교육의 덕이야... 순종하는 교사가 있고 부모의 자식사랑이 있는 한 몇명이라도 꼭똑한 인재 키워내면 그만이야. 교육이 무너지건 학교가 무너지건 우리와는 상관없 상관없는 일이다.

미친교육, 사랑노래를 부르는 교사와 학부모가 있는 한 학교는 철옹성이다. 세상이 모두 변해도 지식주입 양을 측정해 순위를 매기고 사람가치까지 서열을 매기는 교육...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바뀌어도 변화의 사각지대에서 사랑노래를 부르는 학교... 규칙없는 경기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싸움판이요, 난장판이다. 도덕도 법도 기준도 원칙도 없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난장판을 구경하는 구매자도 상인도 결국는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학교를 살릴 수 있는 길. 더불어 다 함께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지난 10일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인권운동 사랑방 등 14개 인권 관련 단체와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 1300여 명이 모여 직접 참여해 완성한 총 29개 조항의 새로운 '인권선언서'를 공개했다.

                                     <사진자료 : 청소년 신문 바이러스에서>

이날 행사에는 여성장애인, 청소년(여),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08년 청소년 인권선언'을 발표하면서 "인권탄압에 대해 서로 연대하고 압제에 대항할 권리를 주장하고 인권 개선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전국 청소년단체들도 자신들이 직접 작성한 '2008 청소년인권선언문'을 발표했다.

"나이가 적다고 누리지 말아야 할 인권은 없다"는 '2008 청소년인권선언문'에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2008 청소년인권선언문'을 통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자기 머리카락이나 옷 등을 마음대로 꾸밀 권리',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쉴 권리' 등 자신들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줄 서기를 위한 공부와 저임금에 시달리는 학생과 청소년 노동자들, 두발자유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퇴학압박'을 당하는 학생들의 인권은 아직도 전혀 시정되지 않고 있다. 인권과 삶의 질을 말하면서 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 갈 권리를 가진다.' 1990년 발표한 청소년 헌장의 일부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등 우리 현실에서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계층 가운데 청소년도 포함된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다. 생계가 어려워 일선 노동현장에서 일하지만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저임금에 혹사당하는가 하면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거나 함부로 대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내버려둘 것인가.

학교는 물론 사회와 국가는 하루빨리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스스로 행복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면서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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