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19.01.14 학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4)
  2. 2017.08.02 판단능력 길러주지 못하는 교육, 언제까지... (6)
  3. 2017.03.10 탄핵심판을 앞두고 정의를 생각하다 (10)
  4. 2015.08.06 교과서만 열심히 가르치면 훌륭한 교사인가? (6)
  5. 2015.04.07 명문대출신이 독식하는 사회, 어느 정도일까? (21)
  6. 2014.07.08 학교 살리기, 인권교육이 먼저다 (6)
  7. 2014.03.02 학교...!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무엇인가? (9)
  8. 2014.02.20 민주주의는 왜 학교 교문 앞에서 멈추는가? (15)
  9. 2013.08.17 공교육에서 학부모회, 그들은 누구인가?(상) (8)
  10. 2013.08.08 교장 왕국에서 학교장이 되는 길이란..? (10)
  11. 2013.07.30 자녀들에게 방학을 돌려줍시다 (3)
  12. 2013.05.31 서열화된 학교, 댁의 자녀는 어떤 학교에 보내시겠어요? (12)
  13. 2013.03.27 ‘정직, 근면, 성실...’ 학교 교훈 이제 바꿔야... (15)
  14. 2013.03.17 학교폭력, 교육의 힘만으로 해결 못하는 이유 (13)
  15. 2013.03.09 나의 제자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19)
  16. 2013.02.02 “이제는 단발령 내릴 때가 되지 않았나요?” (16)
  17. 2013.01.30 멘붕 시리즈(1) “사과 해!” “제가 왜요?” (17)
  18. 2013.01.21 1등 지상주의, 그 서열화에 목매는 사회 (14)
  19. 2013.01.08 댁의 자녀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지 아세요? (12)
  20. 2013.01.02 [학교 살리기-2] 학생이 학교의 주인인 학교 만들어야 (14)
  21. 2012.12.06 졸업 전에 졸업한 아이들, 이렇게 해보세요 (10)
  22. 2012.11.27 수능 끝난 고 3학생, 이대로 좋은가? (15)
  23. 2012.08.09 무한 경쟁 교육, 지금은 부모교육이 더 절실한 때다 (16)
  24. 2012.07.06 당신은 학교가 제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믿으세요? (14)
  25. 2012.07.05 내가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진실일까? (9)
  26. 2012.06.24 안준철, 그를 만난 모든 아이들은 꽃이 된다 (7)
  27. 2012.05.01 노동자로 살아갈 제자에게 ‘노동의 가치’ 가르쳐야 (19)
  28. 2012.03.29 학생들의 질곡(桎梏), 학교폭력만 폭력이 아니다 (14)
  29. 2012.01.06 교육이 계층 상승을 위한 수단이 되는 사회 (23)
  30. 2011.10.25 “교육이란 잘못을 바로 잡아주는 거잖아요!” (33)


학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홍익인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31조는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헌법은 정부가 ‘능력에 따라 국가가 균등하게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 뿐만 아니다. 하위 법인 교육기본법은 이런 헌법의 이념을 바탕으로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고 했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또 교육과정을 통해 이를 구체화 하고 있다. 학교는 이런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혹은 교육과정을 통해 길러내겠다는 인간상과 학교가 길러내고 있는 인간상은 다르다. 학교가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혹은 교육과정을 어기고 있다는 말이다. 국가는 헌법을 통해 ‘홍익인간’을, 교육기본법이나 교육과정을 통해 그런 인간을 양성하라고 했지만 정작 학교는 목표와는 전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헌법이나 법은 사회적인 존재, 이타적인 인간(홍익인가)을 길러내라고 하는데, 학교는 개인적인 존재,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공부는 왜 하지?”라고 물어 보면 어김없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라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인류학교가 교육의 목표다. 그런데 그 일류학교를 졸업한 과학자들, 교육자들과 언론학, 경제학, 정치를 전공한 이들은 일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가? 인간의 욕망이 지구촌의 인류를 살상할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 놓고, 지구촌은 하루가 다르게 오염되고 있는데... 유전자변형식품(GMO)으로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데... 숨쉬는 공기조차 어려운 세상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목적전치현상. 특히 교육에서 목적전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홍익인간, 사회적인 존재로 길러내야 할 인간을 개진적인 존재, 이기적인 인간으로 길러낸다면 그런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성을 잃은 사회지도층 인사와 지식인들...특히 언론인과 교육자들.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상이 아니다. 겉으로는 인류평화와 4차산업혁명을 말하면서 자본이 만드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일까?


‘학생의 정당한 이유 없는 출석,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도 사형에 처할 수 있고 학교는 폐교시킬 수 있다’ 지난 1972년 유신 헌법 제 53조에 명시한 대통령의 권한 중의 하나인 ‘긴급조치권’이다. 1974년 4월 3일 발표한 이 긴급조치 제 4호의 명분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학생의 출석거부,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 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그 외의 모든 개별적 행위를 금지하고 이 조치를 위반한 학생은 퇴학, 정학처분을 받고 해당학교는 폐교처분, 심지어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교육이 무너지면 히틀러나 숭례문 방화범 혹은 묻지마 범법자를 길러내기도 한다. 지금 학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내게 이익이 된다면....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로 승패를 가리는 교육은 헌법이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이 아니다. 경쟁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공정한 규칙이 전재될 때 의미가 있다. 시합 전에 승패가 가려진 경쟁은 경쟁이 아니다. 우리교육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면서 이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권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알지 못하면 노예로서 살아가야한다. 헌법은 기득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주인으로서 함께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부가 아니라 암기한 지식의 량으로 사람의 가치까지 서열매기는 교육, 헌맹(憲盲)교육으로 무한경쟁을 시키고 있는 긋이다. 헌법이 보장한 ‘모든 인간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란 정부가 져야할 의무다. 자신의 삶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겨야 살아남는 경쟁교육은 반민주교육이요, 반인간교육이요, 우민화교육이다. 무너진 교육을 방치하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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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철학2017.08.02 06:30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 관리선발 평가기준이 신언서판이다. 신언서판이란 용모, 언변, 글씨, 판단력을 의미 한다. 당나라에서는 과거에 합격해도 바로 관리로 임명하지 않고 이렇게 엄격하게 신언서판의 기준을 마련해 선발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광종 때 과거제도를 도입하면서 신언서판도 함께 도입해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파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향해 '나쁜 사람들, 미친놈', 파업하는 조리사를 향해 '조리사라는거 별거 아니다. 그 아줌마들 동네아줌마다. 그냥 밥하는 아줌마다' 발언으로 노동자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말은 이언주 의원뿐만 아니다. 방송국 경비원에게 니 까짓게운운하는 홍준표야 독설로 출세한 사람이니 지지자들 수준이라고 치더라도 국가의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향해 퍼붓는 막말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폭력이다.

교대나 사대를 졸업 후 임용고시를 거쳐 발령받은 초임교사들에게 교총과 전교조가 어떻게 다른가를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떤 교원단체가 자신의 권익을 지켜 주는지 판단을 하지 못한다. 사법나 다름없다는 그 어려운 임용고시를 거쳐 임용된 이 똑똑한 초임교사가 자신이 평생 살아가면서 권익을 대변해 줄 교원단체의 정체성에 대해 모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e-나라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학력수준은 ‘25-64세 성인인구 중 고졸이상 학력자는 85%, 대졸학력자가 전체인구의 24.3%’. 이런 고학력 사회에서 나라를 경영할 대통령을 잘못 선택해 국토를 부패공화국으로 만들어 놓거나 탄핵을 당한 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지식수준은 높지만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나 판단력이 그 만큼 뒤떨어진다는 뜻이다. 세상을 계급적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이해관계나 여론에 휩쓸려 판단을 그르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판단의 연속이다. 문방구에 가서 볼펜 한 자루 고르는 선택에서부터 서가에서 책을 고르거나 직업이며 배우자 선택에 이르기 까지 판단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 판단이 기분이나 감정에 치우치거나 광고의 유혹에 빠진다면 결과는 후회가 따를 수밖에 없다. 판단을 잘못해 인생을 실패하거나 후회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만나게 된다. 학교는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역사를 배우고 경제를 배우고 정치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는 시비를 가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판단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존재 의미가 뭘까?

어떤 정당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것인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일하는 보람을 느낄 것인지, 수없이 만나는 선택의 문제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제다. 기준과 원칙 없이 산다는 것은 방황이다. 개인으로서 불행이요,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기까지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자녀들에게 어떤 음식을 먹여야 건강하게 자라는지, 어떤 책을 읽게 할 것인지를 선택할 줄 모른다면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랄까? 정보화사회, 4차산업사회를 살아가야할 사람에게는 원칙과 기준이 있는 판단이 더 필요하다. 겉과 속이 다르고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피해자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주변에 종교에 혹은 광고에 속아 건강을 잃고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학교란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가치, 기술, 지식, 규범 들을 학습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사회화의 과정이 철지난 지식습득이나 경쟁에 매몰돼 정작 필요한 판단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이는 교육이 아니다. 학교는 지금 변화의 사각지대에서 사회화라는 임무를 망각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계층이동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어 있다. 학교는 언제까지 판단능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교육을 계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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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7.03.10 06:56


사람들은 말한다. 2017년 310일은 박근혜의 운명을 좌우하는 날이라고... 옳지 않은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5년 임기의 대통령 한사람의 진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하는 날이라고 해야 옳다. 1500만의 국민들이 토요일만 되면 무슨 신들린 사람들처럼 광화문에서 혹은 지역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쳤을까? 그들은 촛불반대집회사람들처럼 보수를 받고 참가하는 사람들리 아니다. 주머니를 털어 자녀들손잡고 역사의 현장, 민주주의를 보여주기 위해 모여들었던 것이다.


<사진출처 : 세계일보>


참 사람이란 5~6시간 앞을 내다 볼 줄 모르다니...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탄핵인용을 확신한다. 실정법을 어긴 대통령이 기각이나 각하를 됐을 때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이라도 어떻게 국민 앞에 나와서 정의를 말하고 준법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를 하느님이라고 믿는 촛불반대사람들. 그리고 박근혜를 짝사랑하는 정치인들... 박대통령을 돕는 변호사들 그리고 박근혜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박근혜가 국민여론조사결과처럼 80% 가까운 국민들처럼 탄핵인용을 믿기라도 했다면 깨끗하게 하야성명을 발표 하고 물러나지 않았을까? 특히 김진태를 비롯한 김문수 그리고 윤상현, 홍종문같은 정치인들은 패배할 경우 정치생명이 끝이 날 수도 있는데... 그들 편에 설리 없다. 신의나 의리 때문일까? 이들이 돈을 받고 동원된 사람처럼 돈이 아쉬워 촛불반대집회를 선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박근혜가 훌륭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깨끗한 정치인이라도 믿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아침 정의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법과 정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이명박 박근혜 치세 9. 대한민국은 나라의 주인이 국민인 민주주의국가였는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 공화국이었는가? 아니 1948년 이승만시대와 박정희 유신정부 그리고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도둑질한 전두환, 노태우정권시절, 권력에 눈이 어두워 유신잔당 김종필과 전두환 군사정권과 손잡고 국민들을 배신한 김영삼 정권.... 이들은 진정 국민의 뜻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 사람들이었는가?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 정치판은 썩은 내가 진동하는 쓰레기 판이었다. 정치혐오증이니 정치 기피증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정치인 중에는 인간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의나 진실을 말하면 빨갱이 취급당해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고 격리 되거나 요주의 인물이 되어야 했다. 정경유착으로 거대한 권력이 된 자본이 주인이 되고 권력에 빌붙어 권력의 대변자 노릇을 한 찌라시언론이 나라를 좌지우지한 막가파 세상이었다. 오죽하면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받았을까?


힘의 논리가 통하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힘의 논리, 외모나 학벌이나 경제력, 사회적 지위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 받는 사회는 야만의 사회다. 자본이 만들 놓은 이데올로기에 마취돼 그런 논리를 체화시키는 학교는 계급상승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경쟁장이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교육이 아니라 권력에 복종하는 인간, 현실과 타협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공장이었다. 순리나 진실이 통하는 진실게임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살면 손해를 본다는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양성소였다.


<사진출추 : 티브이데일리>

이해타산으로 엇갈린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가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사회가 유지되는 근거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이를 존중하고 살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약속을 담은 게 헌법이요 법이요, 도덕이요, 윤리다. 혼자가 아닌 함께 살기 위해서는 무한의 자유가 아닌 자율이 필요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양보하고 타협하는 민주주의생활방식을 체화하지 못하고 내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라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다.


촛불은 혁명이다.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민주시민의 함성이요, 주권자의 권리찾기 운동이다. 정치인들은 말한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고... 그런데 보라 박근혜의 다른 얼굴인 황교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체 유권자의 16%.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이해관계나 연고주의에 의한 판단으로 우리는 지난 세월 주인이 노예가 되는 막가파 세상을 사라오지 않았는가? 운명의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우리는 믿는다. 정의는 승리한다고. 법은 정의의 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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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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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입학통지서가 날아 오고 그래서 학교는 당연히 다녀야 하는 것이 국민된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가 태어나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제, 그런 것을 배우면 우리 아이가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확인 해 보는 부모들은 많지 않다. 학교에 다니기만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믿기 때문일까? 그런데 정말 학교는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주는 곳이기는 할까? 학교를 많이 다닐수록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는 할까?

 

 

학교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곳인가?

 

 

 

우리 헌법은 제31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또 교육법 제1조에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여 민주국가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능력을 갖추게...한다? 지금 학교는 인격교육을 하고 있는가? 자주적인 능력을 길러주고 있는가? 학교가 인격교육을 하고 있다면 학력이 높을수록 인격이 돋보이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화려한 학력(?)을 가진 정치인들은 왜 청문회에서 그런 목불인견(目不忍見)의 현상을 보이고 있을까? 오늘날 교육의 위기학교가 무너졌다는 말은 학교가 해야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교육위기의 책임은 1차적으로 교육부에 있다. 배가 잘못되면 선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대통령이요, 항해사는 교육부다. 이런 막강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아도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들은 이들에게 책임도 묻지 못한다면 주권자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교육위기를 책임져야할 사람은 또 있다. 사랑하는 자녀를 학교에 맡겨놓은 학부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수요자라는 부모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렇게 공부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지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은 어떤가? 전교조 선생님들이 길거리로 나와 구호를 외치거나 교육관련법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면 선생이 학교에서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지...” 라고 비난한다. 교사들은 정부가 만들어 준 교과서만 열심히 가르치면 훌륭한 인격자를 길러낼 수 있는가? 교과서가 잘못됐으면 교과서부터 먼저 고쳐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잘못된 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친다고 교육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없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런 고민도 없이 국정교과서만 열심히 가르치면 무너진 교육이 살아 나는가?

 

 

누가 가르치는가가 문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하다는 말이 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이다. 그래서일까? 우수교사를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눈물겹다(?). 최고의 우수학생을 선발해 4년간 사범대학 혹은 교육대학에서 교육시켜 임용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발령받는 곳이 학교다. 이러한 선발도 모자라 근무평가를 통해 교원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교원능력개발평가라는 평가까지 도입, 동료교원평가, 학생만족도 조사, 학부모만족도 조사를 매년 1회 실시하고 있다. 우수교사를 화보하기 위해 평가도 부족한지 성과연봉체제를 도입, 평가결과에 따라 임금까지 차등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에 묻고 싶다. 수능점수가 높고 임용고사 점수가 높은 사람이 정말 교사로서 자질까지 잘 갖춘 사람일까?

 

 

어떤 내용을 가르치느냐가 문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과와 문과로 선택, 갈라진다. 이과학생은 수학, 과학과 관련된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문과학생들은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등 사회법칙과 관련된 과목을 주로 공부한다. 이과학생도 졸업 후 민주시민으로서 권리행사와 의무도 이행해야 하고 이과출신이 문과계통을 직업을 가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문과도 마찬가지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전공에 관계없이 공무원시험준비나 고시준비를 하는데 문·이과 편식교육으로 어떻게 창의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겠는가?

 

 

많이 가르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식기반사회, 정보화시대의 지식량은 가히 폭발적이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모든 지식을 암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스마트폰만 검색하면 언제들지 찾을 수 있는 지식을 학교육에서 많이 가르쳐 준다고 좋은 교육이 아니다. 지금 학교육은 암기능력이 있는 학생이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중시하고 오지선택형문제 결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이상한 평가로 사람가치까지 서열매기고 있는 것것이다. 학교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하겠다면 ··국 중심의 입시 폐지, 대학평준화, 수능 자격고사화..’ 등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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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하고도 4개월이 가까워 온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가해자가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는 누가 죽인 것인가? 재벌경제를 살리면 민초들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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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명문대생 절반 ‘상위 20%’ 부유층 자녀?

 

이대·서울교대·고대·포항공대 등 11개대서 소득8분위 이상 50% 넘어

 

25일자 한겨레신문에 나온 기사 제목이다.

 

한겨레신문은 이 기사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받은 ‘2012년 1학기 국가장학금 신청자 소득분위 분포 현황'을 소개하면서 ’이화여대·서울교대·포항공대·고려대 등 11개 대학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가운데 소득 8분위 이상에 속하는 경우가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 교육양극화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던 것이 이명박대통령의 공약이다. 이제 임기를 며칠 밖에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결과를 뭐라고 해석해야할까? 대물림을 끊은 것이 아니라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놓은 것이 아닌가?

 

정치인의 공약을 아무리 액면대로 믿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MB의 친재벌정책이 만든 이 황당한 결과는 더 이상 좌시해서 안 될 한계상황까지 온 같다. 명문대출신이 독식하는 우리사회,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Weekly경향이 국감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졸 고위공직자 1480명 중 서울대 출신이 449명으로 30.3%를 차지했다. 고려대 출신은 140명(9.5%), 연세대는 105명(7.1%)이나 됐다.

 

세 학교를 합하면 전체의 46.8%에 이른다. 거의 절반이 세칭 ‘SKY’ 출신이다.

 

최근 3년간 행정고시 출신자는 평균 307명 중 SKY출신자가 216명으로 70.4%를 차지했다. 현직판사의 판사 80%, 검사의 70%가 'SKY' 출신자다.

 

그런가 하면 서울대 등 6개 대학이 사시 합격자의 78%를 차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합격자의 50.6%도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SKY` 출신이다.

 

재계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10대 대기업 그룹 사장 이상 임원 10명중 6명은 소위 ‘스카이’ 출신인 것으로 조사됐다. 출신대학은 서울대가 69명으로 36.5%에 달했고 이어 연세대와 고려대가 각각 24명(12.7%)이었다.

 

이들 3개 대학을 합한 소위 스카이 출신이 61.9%로 절대적인 분포를 보였다. 삼성은 49명중 17명이 서울대 출신으로 34.7%를 차지했다. 이어 현대차는 7명(25.9%), SK 10명(33.3%), LG14명(53.8%) 등이었다
.(문화일보)

 

학교는 어떨까? 서울의 6개 외국어고 졸업생들은 10명 가운데 6명꼴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KAIST, 포스텍 등 이른바 상위 5개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2개 과학고 졸업생들은 10명 가운데 9명꼴로 상위 5개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신문 서울 6개外高 명문대 ‘독식’)

 

 

SKY출신자가 실력이 없다거나 인격에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SKY'출신자가 입법, 사법, 행정을 비롯해 재계까지 독식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니 독식뿐만 아니라 이들의 사회 경제적인 지위가 대물림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공정한 경쟁으로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이야 누가 탓하겠는가? 그런데 우리사회는 정당한 룰이 지배하는 사회구조가 아니다. 상품이 된 교육을 경제력에 따라 일류대학을 진학할 수 있도록 구조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순진한 학부모들은 이런 현실을 모른 채 ‘우리 아이도 열심히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자녀의 국제중학교특례입학에서 보듯이 특목고니 입학사정관제니 로스쿨 같은 시스템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특목고 출신, 수능 성적 우수자 등 우수한 아이들을 뽑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자녀의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사회가 되어서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사회통합을 어렵게 한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동서갈등과 빨갱이 이데올로기는 사회통합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여기다 사회양극화의 대물림까지 정당화된다면 우리사회는 대립과 분열의 나락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둘째, 사회정의가 실종된 멘붕사회를 만들고 있다.

 

최근 이동흡헌법재판소장 후보나 고위공직자 청문회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 불감증은 한계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청소년 17%가 10억을 번다면 감옥에 가도 좋다’고 대답했을까? 물신숭배, 외모지상주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해야 하는 불행한 사회다.

 

셋째, 묻지 마 범죄 등 불신과 사회악이 횡행하는 사회를 만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묻지 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심코 길을 가다가, 혹은 엘리베이트 안에서 혹은 전철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묻지 마 범죄는 우연일까? 학교폭력과 자살 등 사회문제는 이제 이웃을 불신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사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가 깊어지는 사회, 내일이 없는 사람들...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자살 아니면 묻지 마 범죄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열심히 일해도 보상이 없는 사회는 실의와 좌절감에 빠진 사람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불행한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권은 학교 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학생의 인권은 사라지고 헌법보다 더 높은 교칙이 학생들을 규제한다. 학교폭력을 말하지만 성적순으로 한 줄을 세워 등급을 매기고 체벌, 언어폭력, 두발, 복장, 학생자치, 복장 규제, 차별까지... 학교는 아직도 인권 사각지대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경기·광주라고 해서 학생인권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 운동 연대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죽하면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지고(48.0%),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히고(34.2%)',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40.6%)고 응답했을까?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고 했다. 인권이란 학생을 제외한 국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누릴 권리다. 또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혹은 약자라는 이유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제37조)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학교를 일컬어 인권 사각지대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경기도를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 공포되어 시행 되고 있지만 아직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이란 금기 사항이다. 인권을 말하면 교권을 걱정하지만 인권이 없는 학교에 교권이 보장받을 수 없다. 학생들의 인권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인권의식이 없는 교육자들이 교육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인권조례를 제정하자고 하면 난리가 난다. 인권조례가 시행될 경우, 교권이 무너지고 동성애가 확산될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성윤리가 문란해질 것이라며 정부와 수구언론뿐만 아니라 교총까지 나서서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2009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우려했던 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차이와 차별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다르다는 이유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할 사람이 차별받는 세상...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나이나 출신, 지역, 국가, 신체조건, 가족관계, 인종,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학생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인권이란 특별한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가 아닌 ’모든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어떤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으면 인권, 어떤 사람에게만 있으면 특권이라고 했다. 학교는 특권이 아닌 권리를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 하는 곳이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교육받을 권리도 국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다. 인권도 모든 사람이 함께 누려야 권리다. 함께 누려야할 권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인권은 개념이나 이론도 필요하지만 체험을 통해 체화된다. 한 번도 인격적으로 대접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인격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 리 없다.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인권을 존중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남의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민주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학교는 아직도 인권 사각지대?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은 유보되어도 좋은가?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폭력도 따지고 보면 인권의식의 실종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차별받는 분위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이 상존하고 두발의 길이나 복장검사 그리고 소지품검사가 용인되는 분위기에서 진정한 인권교육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헌법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즉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권,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바탕으로 한 자유권적 기본권 즉 신체의 자유, 사회적·경제적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주거, 통신, 재산권의 보장, 정신적, 종교의 자유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양심(신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표현의 자유와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인권을 유린하는 학교에 어떻게 민주적인 교육,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쇠귀에 경읽기'라고 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교과부의 귀에는 비판의 소리가 들리지 읺는 모양이다.

학자들을 비롯한 현직교사, 언론이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해도 그렇다.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정책을 내놓고 승진해 가고 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책들....

 

아래 글들은 필자가 정년퇴임히기 전 현직에 근무하면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쓴 글이다. 지금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관심있는 글제를 클릭하시면 당시 썼던 오마이 뉴스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교사의 기도

학교의 위기를 보면서 교사들은 가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을까?'라는 자문 자답을 할 때가 있다. 물론 맥아더의 기도처럼 분별력이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겸손한 사람.... [김용택 기자  2000-11-04 오후 3:19:55]
직업교육, 외면만 할 것인가?
수학능력점수가 몇 점인가가 인생의 장래를 좌우하는 나라에서는 자신의 소질과 특기 따위는 대학진학의 고려사항이 아니다. 전국의 수능시험 응시자를 한 줄로 세워 일등에서 몇 등까지는 ○○대학교의 무슨 학과에, 그 다음 몇 등까지는... [김용택 기자  2000-10-27 오후 5:29:32]
양질의 교육을 위해선 학교민주화가 선행되어야
교사의 능력이나 자질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학교교육은 수능문제에 출제빈도가 높은 지식을 족집게처럼 잘 가르쳐 주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대접받아 왔다. [김용택 기자  2000-10-20 오후 2:19:08]
비교육적인 입시제도를 바꾸자
수리탐구Ⅰ이 당락의 열쇠라느니, 수리탐구Ⅱ의 공통사회는 시사문제 무엇 무엇을 미리 이해해야 한다는 둥, 자상하게도 안내해 준다. 어떤 신문사나 방송국에서도 청소년들의 고통과 입시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이나 대책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김용택 기자  2000-10-16 오전 11:47:52]
성차별 교육, 이제 그만!
학교의 교훈조차도 남학교의 경우 '정의·실력·단결’을 강조하거나‘자율인·창조인·건강인’을 교훈으로 삼는 곳이 많은 반면, 여학교의 경우에는‘참되고 착한 여성이 되자’거나‘순결’을 강조하는 교훈을 정한 곳이 많아 여자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김용택 기자  2000-10-11 오전 8:58:58]
사람은 일회용품이 아니랍니다
폭력교사를 이메일로 호소하는 초등학생
[김용택 기자  2000-10-09 오전 9:35:25]
학생점수 올려주는 선생님
대학무시험전형제도, 학교간의 경쟁으로 변질
2002년부터 대학수학능력고사가 자격시험으로 밀려나고 학교성적이 대학의 중요 평가자료가 되자 학교마다 대학입학전형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의 학생성적을 올리기 작전(?)은 필사적이다. [김용택 기자  2000-10-04 오후 4:14:44]
교육개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
전교조, '처우 개선, 시장논리 교육정책 철회' 요구 농성 중
전교조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교원들의 사기 진작차원에서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것이요, 그 다음은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잘못된 부분을 재검토하거나 수정해야 된다는 것이다. [김용택 기자  2000-10-01 오후 8:39:13]
평교사는 무능한 교사(?)다
이러한 현상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교수중심조직이 아닌 관료조직체계로 구성되어 교수능력이 아닌 행정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대접받는 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김용택 기자  2000-09-29 오후 1:55:49]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
열린 교육을 주장하면서 학교는 아직도 닫혀 있다
민주주의를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에서 토론이나 회의를 거쳐 논의하고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없다. 근무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하여 학교장의 눈치나 살피고 지시와 전달, 통제와 복종에 익숙한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겠는가? [김용택 기자  2000-09-26 오후 6:02:25]
두발 규제, 교육적인가?
교도소의 기결수까지 허용하는 두발 자유화를 학교에서만 통제하는 것은 비민주적인 처사이다. [김용택 기자  2000-09-25 오전 8:59:04]
선생님, 여기가 군대인가요?
세상 변했지만 학교는 아직도 통제와 간섭의 온상
출근하는 교문에는 선도생들이 버티고 서서 지각생이나 복장 위반학생들을 단속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출근하면 '성실!' 하는 구호와 함께 거수 경례를 한다. 거수경례를 하는 선도생들의 훈련된 모습을 보면 ... [김용택 기자  2000-09-23 오전 11:08:02]
무너지는 교실, 교사는 허탈하다
시장 논리가 교사들의 자존심을 휩쓸어 가고 있다
삶을 가르치는 교사는 무능한 교사가 되고 쪽집게 교사는 유능한 교사로 존경받는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김용택 기자  2000-09-19 오후 5: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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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서울시 교육청의 반인권적인 '학생인권조례안'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학교에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을까? 서울시교육청이 ‘교사의 학생생활지도권 강화’를 주요내용으로 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의 학생인권조례가 지나치게 학생개인의 권리만 강조해 학생지도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프레시안>

     

    서울시교육청은 법적 논란을 핑계로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탄압을 가하다 지난해 11월 28일, 대법원의 학생인권조례 무효 확인 소송이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법적 논란은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그 대안으로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교육청은 이번 개정안이 "학생인권조례를 수정, 보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입법예고한 조례개정안을 보면 학생인권조례의 상징이었던 ‘두발 자유 조항에 규제를 가능하게 하고 학생의 의무에 학칙 준수조항을 삽입하거나 반인권적인 학칙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학칙의 의무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 밖에도 차별금지 조항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 또는 출산'을 배제함으로써, 성소수자 및 미혼모 학생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하고 있으며, 일괄적 소지품 검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교권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분리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권을 빙자해 학생들을 통제할 목적으로 이미 제정된 교권보호조례도 수용하지 않으면서 인권조례를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기본적 권리를 가지며...

     

    이러한 권리와 지위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인 것이며, 학생의 인권도 역시 이 안에 속한다. 학생은 본질적으로 한 인간이며 동시에 한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에...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국가는 학생이 즐거운 학교, 행복한 교실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경기도 학생인권선언의 일부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국민은 기본권의 주체임을 천명하고 있으며, 인간이기에 누구나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권리를 향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뿐만 아니라 유엔아동권리협약,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까지 보장하고 있는 학생인권은 단지 학생들에게 두발이나 복장, 사생활의 자유 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만 제정된 것은 아니다. 교육기본법 제2조,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이라는 교육목적을 달성해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게 인권이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길이 곧 인권의 실현이다. 인권은 민주사회가 추구하는 자유, 평등과 함께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학생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학생 생활지도에서 대화와 토론으로 서로 소통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찾아 볼 수 없기에 듣는 소리다. 학교에는 교칙이 있고 생활지도규정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런건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진 게 아니다. 학생들은 이미 만들어 진 교칙이나 규정에 따르겠다는 선서를 함의로서 일반적인 의무를 지게 된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학교에 어떻게 민주시민을 양성할 것인가?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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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 그들은 누구인가?

     

    자녀들 등록금이나 과외비를 마련하고 학교에 늦지 않도록 뒷바라지나 해 주는 사람? 학교에서 뭘 먹는지 뭘 배우는지 모르면서 마음만 조리는 사람? 자녀가 공부를 잘해 좋은 일류학교에 진학 하도록 기원이나 하는 사람.....? 100점만 받기를 학수고대하는 가족이기주의에 빠진 사람...? 오늘날 학교에서 학부모, 그들은 누구일까?

     

     

    학생, 교사, 학부모를 일컬어 교육의 3주체라고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주체란 ‘사물의 작용이나 어떤 행동의 주가 되는 것’ 혹은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일을 주도해 나가는 세력, 부담스럽고 귀찮은 것을 처리하거나 감당함’이라고 해석해 놓고 있다. 그런게 주체라면 학부모는 교육의 주체라고 할 수 있을까?

     

    7차교육과정, 수요자중심의 교육이 시행되면서 교사는 공급자요, 학생, 학부모를 수요자라고 정의한다. 수요자는 선택권이 있어야하지만 우리같이 입시위주의 주입식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선택권 운운하는 건 사치다. 진짜 수요자라면 학생의 취미나 소질, 특기를 살려 자녀가 원하는 교과목이나 선생님이나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어져야 하지만 그런 걸 주장할 학부모는 없다.

     

    학부모도 그렇지만 학부모들의 모임인 학부모회는 어떨까? 학부모회의 역사는 학교의 역사와 고락(?)을 함께 해왔다.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 진 학부모회다. 학부모회는 해방 후 ‘후원회, 사친회(師親會), 기성회(期成會), 육성회(育成會)...’ 등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하는 일도 족므씩 달라졌다. 근래에 와서 법적인 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까지 만들어졌지만 학교운영위원회는 모든 학부모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열린 공간이 아니다.

     

    ‘학부모회’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초기 학부모회는 ‘교육시설의 확보와 학교운영을 지원하고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고자 학생의 보호자 혹은 특별 찬조자로 조직된 단체’다. 학부모회의 탄생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전화(戰禍)로 소실된 학교시설의 복구와 확충을 위하여 각급학교에 기성회(期成會)가 생기면서 부터다.

     

     

    그 후 사친회(師親會)라는 이름이 기성회, 육성회로 명칭과 운영 방식을 달리하며 이어졌지만 모든 학부모들의 의사를 수렴하고 반영하는 민주적인 기구가 아니다. 합법적인 권리가 없는 임의기구로서의 학부모회는 이름과는 상관없이 지역사회 토호나 유지들이 참여해 학교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들은 학부모회라는 이름으로 하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종 잡부금 징수며 행사 후원금을 거출해 보통학부모들로부터 원성을 쌓기도 했다.

     

    전교조가 탄생하고 학부모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시민단체들이 학부모회가 법적인 기구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임의기구로서 학부모회란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학교의 경영에 필요한 학교장의 들러리 구실을 해 온 게 사실이다. 그들은 학부모회라는 이름을 빌려 학교장을 찾아다니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자기 자녀의 특혜를 바라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학부모회는 법적인 기구가 아니다. 법적구속력이 없는 임의기구일 뿐이다. 달라졌다면 ‘학교운영위원회’라는 법적인 기구가 있지만 학교운영위원회는 보통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운영에 반영하는 그런 기구가 아니라 개인의 성향이나 의견을 반영하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연히 학교 자치회임원의 부모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말발이 센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한계를 벗어 날 수 없는 게 학교운영위원회다.

     

    말로는 수요자중심의 교육이라면서 학교에는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인 학부모회는 없다. 교육의 한주체가 주체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학교(공급자)의 눈치나 보는 단체라면 존재할 기치가 없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교사회는 물론 학부모회를 법적인 기구로 바꿔 교육의 주체로써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학교를 살리는 길이요,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길이다.

     

    -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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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장’하면 무슨 생각이 날까? 선생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 교사들 중에 교육에 대해 더 해박한 지식과 덕망이 있는 인격자...?, 행정능력이 있어 선생님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

     

    학교를 일컬어 교장왕국이라고들 한다. 교육과정 편성권과 교직원의 인사권, 그리고 학교 예산을 편성 집행할 수 있는 재정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교장이다. 교장이라고 똑같은 교장이 아니다. 학생 수가 100명도 안되는 작은 학교의 교장이 있는가 하면 1천여명의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교에 근무하는 행정직원을 지위 통솔하는 지위에 있는 교장도 있다.

     

                   <교장 혼자서 근무하는 교장실과 4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

     

    학교를 일컬어 ‘교장왕국!’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만큼 단위학교의 교장은 학교를 경영하는 책임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초·중등교육법상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제20조 제1항)고 명시하고 있다.

     

    교장이 어떤 철학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학생이나 교사들은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지만,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장이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이나 교직원은 불행(?)하다.

     

    수업을 하기 힘든 교실, 사회적 지위가 곧 인품이 되는 사회에서 교사는 평교사보다 부장교사, 부장교사보다는 교감을, 교감보다는 교장이 되기를 원하는 교사가 많다. 욕심 때문에 교장이 된 사람도 있지만 제대로만 한다면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천에 옮길 수 기회가 주어져 열린 공간에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천할 수도 있는 자리가 학교장이다.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평교사들은 그렇게 어려운 교장으로 승진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학부모를 비롯한 사회적인 인식이 교장은 높은 사람(?)이라는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수업을 하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는게 학교의 현실이다. 나이 어린 교감, 교장한테 머리를 조아려가며 결재를 맡으러 다니는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찌감치 승진점수를 모아 교장이 되겠다는 계산 때문에 교장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전국의 교사는 37만명이나 된다. 그런데 학교는 겨우 1만여개 (2011년 4월 1일 기준-11,331개교)에 불과하다. 자연히 승진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평교사로서 관리자인 교감·교장까지 승진하기 위해선 10년 이상 각별한 점수관리가 필요하다. 교육전문직(장학사) 시험을 준비할 수도 있지만 응시기회가 3번뿐이라 이 길은 가겠다는 교사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승진을 위한 점수를 따는 방법은 다양하다. 근무경력은 기본이고, 각종 연수를 통해 연수점수를 쌓아야 하고, 연구논문을 제출해 연구점수도 받아둬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교장이 매기는 근무평가점수를 승패를 좌우하는 열쇠다. 한 때 경기도교육청에서는 3급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연구점수(0.5점)로 인정해 교사들 사이에 자격증 바람이 분 적도 있다. 이렇게 소수점 한두 자리로 승패를 좌우하는 승진 경쟁에서 10여년동안 120~125점의 근무평정 점수를 모아야 하는 길을 거쳐야 교감 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다.

     

    승진을 하기 위해 어떻게 점수를 모아야 하는지 살펴보자

     

    첫째, 교육대학원에 적을 두고, 현장연구 논문을 쓴다.

     

    교과탐구, 교재집필, 자료편집, 실질적인 학생상담 등에 쏟아야 할 교사들이 교실현장에서 필요한 연수를 하기보다 교육대학원에 적을 두고 졸업장을 받거나 학위를 준비해야 한다면 그 피해는 학생들의 몫이다. 대학의 학위남발과 교사들의 승진 욕심이 맞아 떨어져 대학은 경영에 도움이 되는 계절대학, 혹은 야간대학이 성업 중일 수 있는 이유다. 대학원 졸업장이나 박사학위가 무너진 학교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 지는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다 안다.

     

    둘째, 워드로 문서를 작성하는 능력을 위해 자격증을 딴다.

     

    학교폭력이 난무하는 학교에서 현장 연수가 아닌 문서작성 능력이 과연 필요할까?

     

    셋째, 농어촌이나 섬 지역에 가서 농어촌 근무점수를 따야한다.

     

    승진 점수 때문에 달라지긴 했지만 농어촌이나 도서벽지에 산다는 이유 때문에 농어촌 학생들이 문제교사나 승진을 위한 점수를 따기 위한 교사들의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넷째, 부장교사가 되어 부장교사 점수를 받기 위해 부장교사경력을 쌓아야 한다.

     

    요즈음은 부장도 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고 하지만 승진을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는 교사들은 필수과정이다. 학교가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닫힌 공간, 폐쇄적인 공간이 되는 이유도 학교장의 비위를 거스르면 승진이 불가하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다섯째, 시범학교 운영을 적극 유치해 시범학교근무점수를 받아야 한다.

     

    시범학교를 일컬어 ‘교육 쇼’라고들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시범학교가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승진을 위한 ‘실험용’이라는 비판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방학이 되면 자기 돈을 들여 상담연수나 학생지도에 필요한 연수를 위해 땀을 흘리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방학이 도기 바쁘게 승진 점수 모으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교사도 있다.(관련글 - 선생님들이 교장이 되고 싶어하는 진짜 이유-  http://chamstory.tistory.com/530)

     

    아직도 교장의 교사의 하늘이다. 적어도 승진을 꿈꾸는 교사들이나 근무조건이 유리한 학교로 이동을 원하는 교사들에게 교장의 근무평가권은 교사들에게는 생사여탈권이나 다름없다. 여기다 우수한 교사를 우선 선발해 올 수 있는 권한이며 불량교사(?) 강제 전출권까지 갖고 있다면 교장은 절대적인 존재로 ‘교사의 하늘’이 맞다.

     

                                                              <자료 - 경향그림마당에서>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그 폐쇄적인 공간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승진을 위한 보이지 않는 ‘점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장이 된다는 것은 출세(?)의 길도 열려 있다. 교장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교육장이나 교육감에게 줄만(?) 잘 선다면 장학관으로 교육청이 운영하는 기관의 장으로 혹은 교육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학교가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닫힌 사회가 된 이유 중의 하나다.

     

    승진을 할 것가? 아니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그들 속에서 자신의 소박한 꾼을 실천하며 살 것인가는 교사들이 선택해야할 몫이다. 승진의 길은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만큼 가르치는 스펙 쌓기 과정에서 학생들의 희생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욕심이 아닌 교육에 대한 열정에서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교장을 꿈꾸는 교사들도 많다. 이 글이 학생들이 100명도 안되는 학교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오직 교육자로서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 많은 교장선생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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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이 시작됐지만 아이들에게는 방학이 없다. 고등학생들은 보충수업을 받기 위해 방학을 시작하기 바쁘게 학교에 나가야 한다. 초등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옆집 아이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앞집 애는 피아노학원에 다니는데 내 자식이 놀면 경쟁에서 뒤진다'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방학을 시작하기 바쁘게 학원으로 내모는 부모들의 극성(?) 때문에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아이들이 놀 '친구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늦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님의 마음은 괜히 불안하다.


    이제 방학이 되면 으레 초등학생들은 몇 과목 과외를 받아야 하고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하는 보충수업은 물론 학원에서 한 두 과목 정도의 과외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외가 필수가 되고 놀면 불안한 풍토'는 옳은 일일까?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는 일만이 아니다.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육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논다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경쟁논리가 만들어 놓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건강하게 자란다. 나이가 40~50 이상 되는 사람들이라면 여름 개울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수영을 하느라 더위도 잊고 하루종일 물가에서 논다. 점심도 잊고 저녁 때가 되어서야 입술이 새파랗게 돼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겨울방학이면 눈썰매며 제기차기, 말타기 등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일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놀이는 청소년들을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놀이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이외에도 개인적 사회적으로 받는 제반 갈등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양분'이라고 한다. 책상 앞에 앉아 놀이를 모르고 자라는 청소년들의 평균수명이 40 정도로 낮아질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뉴스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격렬한 운동을 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성인병이며 비만체질로 자라는 것은 놀이문화의 실종과 무관하지 않다.

     

    건강에 못지않게 놀이가 중요한 이유는 청소년기에 형성되는 사회성이 놀이문화를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고생하면서 자란 부모들은 '내 자식에게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없다'는 소신(?) 때문에 유약한 마마보이를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규칙과 질서를 지키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은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공부다. 도덕시간에 질서의 정의를 말하고 지키지 않으면 사회가 혼란해 진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놀이문화를 통해 얻어지는 체화(體化)된 가치와는 비교가 안 된다.

    놀이의 잇점은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선 놀이를 통해 친구의 소중함을 알고, 사람 사귀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즉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차례를 지키며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약속을 지키고 하는 등의 사회 생활이 바로 놀이를 통해 습득하게 된다.

     


    아이들은 놀이하는 과정 속에서 친구들과 협동하며 친하게 노는 경험 뿐 아니라 경쟁하고 싸워도 보면서 그야말로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놀이는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 또는 행동의 긍정적인 면을 확대, 발전시켜주고 부정적인 면을 축소, 근절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건전한 정서 발달을 돕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놀이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고 학습할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방학이 되면 어머님들은 자녀들에게 ‘놀지 말고 공부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놀이와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방학은 학교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한 사회성이나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사랑의 눈으로 보는 자녀는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다. 부모라면 누구나 '내 자식이 천재가 아닐까?' 착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사랑의 눈으로 자녀들을 '온실 속의 꽃'으로 키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자녀가 가지고 있는 소질이나 특기를 덮어두자는 것이 아니다. 가능성을 찾아 계발해주는 것도 부모가 해야할 일이지만 아이들의 힘에 부치는 과외를 무리하게 시켜 가능성을 묻어버려서도 안 된다.


    이번 방학은 모든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학원으로만 내몰지 말고 놀이를 통한 인성교육의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3.05.31 07:00


     

     

    국제중학교를 아세요?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부회장의 자녀가 사회적 배려자로 부정입학했다가 말썽을 일으키면서 서민들에게 알려진 학교가 바로 국제중학교입니다. 국어와 국사만 우리말로, 그밖의 다른 과목은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 이러한 국제중학교가 전국에 4개나 있습니다. 국제중학교는 수업료, 해외 수학여행경비, 기타 학비를 합하면 한 해에 1,500만원이라는 돈이 듭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국제 중학교를 일컬어 귀족학교라고 합니다.

     

    학부모님들이 아시다시피 중학교는 의무교육기간입니다. 의무교육이란 ‘국가가 법률에 의해 일정한 나이에 이른 어린이를 학교에 보내어 의무적으로 받게 하는 보통 교육’을 말합니다. 국제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과 검정고시 합격자일 경우입니다. 검정고시 합격자의 경우, 전과목 평균이 90점 이상이어야 하며, 국어, 수학, 사회, 과학 과목 성적이 90점 이상인 학생만 입학이 허용됩니다.(사배자 20%)

     

    입학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스팩쌓기로 알려진 ‘외국에서 개최된 국제대회 입상자, 외국에서 개최된 국제행사에서 주요 활동 및 업적이 있는 자, 2개 이상의 외국에서 각각 1학기 이상 수학 경험자, 외국의 학교에서 2년 이상 수학한 자다’ 등입니다. 영어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모국어 다루듯 해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니 서민들의 자녀들은 꿈도 못 꾸는 학교입니다.

     

     

    국제고등학교는 그렇다 치고 의무기간인 중학교기간이 끝나면 입학하는 고등학교는 복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7차교육과정이 시행되고 교육이 상품으로 내몰리면서 가장 문제가 된 게 고교 평준화입니다. 지금은 고교평준화란 사실상 무너지고 일류대학을 몇 명 더 많이 입학시키는가의 여부에 따라 서열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학도 그렇지만 고등학교부터 서열화되어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고등학교가 어떻게 서열화되어 있을까요?

     

    고등학교는 크게 일반 고등학교특수목적고, 자율고로 나눕니다.

     

    일반고등학교는 특목고 및 자율고를 제외한 일반 인문계 고교 통틀어 일반계 고등학교라고 합니다. 일반고는 기숙형공립고와 자율형공립고가 있는데 평준화 지역에서는 학군 단위의 추첨 배정을 통해 학생을 모집하고, 비평준화 지역에서는 광역 단위로 학교별로 선발합니다.

     

    특수목적고(특목고)란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를 말합니다. 이런 특목고가 설립목저과는 다르게 일류대학진학을 위한 관문이 됐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보통 특목고라하면 과학고, 영재고, 외국어고, 예술고, 국제중고, 체육고, 마이스터고의 특목고와 학교의 재정 자립도와 학교의 수업재량권에 따라 나눈 자사고, 자율고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예술, 체육 인재 양성을 위한 예술고, 체육고와 공업·농업·수산·해양 계열 특성화 고교도 특목고로 분류됩니다.

     

    특목고 외에도 자사고, 자율고, 개방형 자율학교, 특성화고, 일반계고등학교(인문계), 실업계고등학교(전문계), 상업체 부설고등학교, 방송통신고등학교, 통합형고등학교(종합고등학교), 농어촌 자율학교, 기숙형공립고등학교, 마이스터고, 고등기술학교, 고등공민학교, 대안학교가 있습니다.

     

    분류방법에 따라 국공립고등학교사립고등학교, 일반고특목고 그리고 특성화고, 자율고로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교과부(현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등학교 유형별 학교 수에 따라 일반고 1422개교, 특성화고 63개교, 특목고 117개교, 자율고 112개교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유형별 학생 수는 일반계고가 1,351,025명(69.5%), 특성화고 415,398명(21.4%), 특목고 61,685명(3.5%), 자율고 115,696명(6.0%)로 조사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대해 조사해 보니 대학만 서열화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의무교육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이미 OECD국가들의 평균 의무교육 연한은 10년 내지 13년(평균 12년)으로 대부분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지식의 양이 급증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보편적인 지식을 취득하는 데 12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연간 사교육비 1000만원시대, 우리는 왜 의무교육이 6년일까요? 6년의 의무교육기간이라도 학교가 교육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고교 서열화, 수요자중심의 교육이라는 상품화가 된 학교... 개성과 꿈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류대학 입학을 위해 고등학교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요? 가난의 대물림을 교육으로 끊겠다던 정부,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하겠다는 정부, 먼저 고교를 평준화하고 고교까지 의무교육으로, 학교를 교육하는 곳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요?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글을 쓰고 난 후 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첨부합니다.

     

    고등학교 유형별 비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2010.6.29.공포)에 따라 고등학교 유형이 개편되었습니다.

    - 그간에 복잡하고 다양화되어 있고 법적근거도 미약했던 고등학교 유형을 일반고, 특목고, 특성화고, 자율고 4개 유형으로 단순화하였고,


    - 특목고는 국가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이 뚜렷한 과학고, 외고ㆍ국제고, 예술고ㆍ체육고, 산업수요맞춤형고(마이스터고) 4개 계열로 정비하고


    - 전문계열 특목고, 전문계고, 특성화고는 특성화고로 일원화하였습니다.
    - 자율고는 자율형사립고, 자율형공립고를 포함하는 새로운 유형으로 설정하였습니다.

     

    【현행 고등학교 유형 비교표】

    구분

    일반고

    특목고

    특성화고

    자율고

    과학고

    외국어고‧국제고

    예술고‧체육고

    마이스터고

    특성(직업)

    체험(대안)

    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목적

    ․중학교 교육 기초위에중등교육 실시

    ․과학인재양성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양성(외국어고)/국제전문 인재양성(국제고)

    ․예술인 양성

    (예술고)

    ․체육인 양성

    (체육고)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운영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분야 인재양성

    자연현장 실 체험 위주 교육

    ․학교별 다양한 교육 실시, 사립학교의 자율성 확보

    ․교육과정, 학사운영의 자율성 제고 및 전인교육 구현

    법적근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76조의2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76조의2

    제90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76조의2

    제90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76조의2

    제90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76조의2

    제90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76조의2

    제91조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76조의2

    제91조

    ․초․중등교육법 제61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76조의2

    제91조의3

    ․초‧중등교육법 제61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76조의2

    제91조의4

    현황

    ․1,299교

    ․18교

    (’11년 19교)

    ․외고(33개교)

    ․국제고(4개교)

    ․40교(예술 25/체육 15)

    ․21교

    ․670교

    ․23교

    ․50교

    ․58교

    학생선발

    모집단위

    ․지역/광역단위

    ․광역단위

    ․광역단위

    ․전국단위

    ․전국단위

    광역/전국단위

    광역/전국단위

    ․광역단위

    ․광역단위

    입학전형

    ․평준화 : 추첨․배정

    ․비평준화 : 내신+선발고사

    ․자기주도학습 전형 + 과학 창의성 전형

    ․자기주도 학습전형 으로 선발

    ․내신, 면접, 실기 등

    ․내신, 면접, 실기 등

    ․내신, 면접, 실기 등

    ․내신, 면접, 실기 등

    평준화 : 추첨 등 (내신성적 반영)

    비평준화 : 자기 주도 학습전형 (필기고사 금지)

    ․평준화 :선지원 후추첨

    비평준화 :학교 자율 (필기고사 금지)

    사회적 배려대상자

    -

    자기주도 학습전형의 20%

    20%(사립학교는 연차적으로 확대)

    -

    -

    -

    -

    모집정원의 20%

    -

    교육과정

    (2009개정교육 과정기준)

    ․필수이수단위 116단위

    ․필수이수단위 72단위

    ․전문교과 80단위 이상

    ․필수이수단위 72단위

    ․전문교과 80단위 이상

    ․필수이수단위 72단위

    ․전문교과 80단위 이상

    ․좌동 (학교별 교육과정을 자율운영 가능)

    필수이수단위 72단위

    ․전문교과 80단위 이상

    ․필수이수 단위 72단위

    (시‧도지침으로조정가능)

    ․필수 이수단위 58단위 이상

    ․교과군별 이수 단위 준수의무 없음

    ․필수 이수단위 72단위

    ․교과군별 이수 단위의 50% 증감

    * 교육과정 :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05조에 따라 자율학교로 지정받은 학교의 경우 필수 이수단위는 72단위임

    * 각종학교에는 대안학교, 외국인학교가 있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에서>

     

    ‘정직, 근면, 성실’

     

    지금까지 대부분 학교의 교훈이 정직, 근면, 성실이다.

     

    수십억원대 국외 비자금 운용 및 탈세 혐의와 관련 사퇴한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성접대 의혹에 연루돼 사퇴한 김학의 전 법무차관 후보자,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전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김병관 전 국방장관 후보자....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까지 포함할 경우 낙마한 공직인사는 박근혜 대통령 출범 한 달 새 7명이나 된다.

     

     

    이들이 저지른 비리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파렴치범수준이다. 비자금 조성 의혹과 로비스트 이력, 자녀의 병력기피, 위장전입, 땅투기, 편법 재산증식...도 모자라 성접대 의혹까지... 박근혜대통령이 후보지절, 방송토론회에서 말실수라고 넘어 갔던 ‘지하경제활성화’는 말실수가 아니라 저런 사람들을 등용해 정말 ‘지하경제 활성화’라도 시키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학교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을까? 정직, 근면 성실한 인간을 길러내겠다는 학교. 일류대학을 나오고 해외유학에 고시합격으로 부러움을 한 몸엔 받은 수재들... 출신학교나 지역민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승승장구한 인물들이 알고 보니 이런 사람이라니...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 아니라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에 부도덕한 인사’가 되고 만다면 학교가 존립할 근거가 무엇인가?

     

    훌륭한 사람이,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대통령도 되고 법관도 되고 장관도 된다고 믿고 있는 아이들... 지금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의 살아 온 모습을 보면 얼마나 실망할까? 높은 사람이 되려면 저렇게 나쁜 짓을 많이 해야 되느냐고 묻기라도 한다면 교사들은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인사청문회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그럴까?

     

    권력을 휘두르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추악한 탈선과 도덕은 서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법조계의 전관예우가 그렇고 정부 요직에 있던 자들이 퇴임 후 회사의 사외이사로 들어가 수억대의 연봉을 챙기는 현실이며 공천권을 쥐고 선거 때만 되면 비리잔치를 벌이는 국회의원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된 재벌회장들의 불법경영은 이제 죄도 아닌 당연한 현실이 됐다.

    교육계는 또 어떤가?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연간 천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하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자식같은 제자들을 울리는 대학. 차비도 안 되는 시간강사들의 강의료를 착복하고 있지만 고액연봉을 받은 교육자들은 그들의 아픔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병력비리는 또 어떤가? 오죽하면 신의 아들, 장군의 아들, 어둠의 자식들... 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교육이란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가정과 사회가 혼연일체가 됐을 때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 학교교육과, 가정교육 그리고 사회교육이 일관성이 없으면 아이들은 이중인격자로 자란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사회는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꿈이 없는 학생들... 입시가 꿈인 학생들에게 대학만 들어가면 목표가 실종돼 방향감각을 잃고 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현실에서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삼갔다. 말이든 행실이든...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학교는 정직을 가르치는 데 사회지도층 인사는 부도덕을 가르친다면 우리 아이들은 심한 가치혼란에 빠지지 않겠는가? 커면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겠다는 아이들... 높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아이들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저렇게 저질적이고 퇴폐적이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뿐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청문회에 나와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은커녕 거짓말이나 변명으로 일관하는 뻔뻔스런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더 큰 범죄, 더 파렴치한 삶을 살아 온 후보자들 덕분(?)에 검증을 통과한 고위공직자. 그들이 내일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의 롤모델(Role Model)이 될 수 있을까? 사회정의를 세워 정직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아이들의 꿈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불친님들과 구독자님들 덕분에 제가 운영하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단법인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서울시가 후원하는 제 4회 2013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부문에 문화/예술 부문 Top100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는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심사 및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옆의 주소로 가셔서 투표 부탁드립니다.    http://snsawards.com/iblog/vote2012_0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글을 쓰기 전에 지난 11일 경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모군의 죽음에 한 때 교육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애도를 뜻을 전합니다.

     

    최군은 2년 동안 여러 명의 친구로부터 폭행·갈취 등 괴롭힘을 당해오다 ‘학교 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신학기를 맞아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경찰의 특별 단속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6일에도 대구에서 고등학생이 '이 나라 입시제도가 싫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2012년 한 해 동안 대구에서 10명, 전국에서 200명의 학생들이 폭력이나 성적 등 잘못된 제도로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청소년들이 성적을 비관하거나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현실을 두고 사람들은 ‘자살’이라고 말한다. 청소들이 학교폭력이나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정말 자살일까? 제대로 된 사회, 행복한 학교, 폭력이 없는 학교에도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성적이나 학교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분명한 ‘사회적 타살’이다!

     

    그들이 부유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날까? 대구경산고 1학년 최군의 경우를 보자.

     

    2년 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고교생 최아무개(15)군이 동급생한테 폭행당했던 사실을 경북 경산 ㅈ중학교 쪽이 알았지만 뚜렷한 조처를 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다......  

     

    경북 경산경찰서는 “2011년 여름,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최군이 다리에 멍이 든 것을 보고 어머니 황아무개(54)씨가 담임교사에게 알렸지만 이렇다 할 후속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14일 밝혔다.(한겨레신문 ‘자살 고교생 상습폭행 당했지만, 학교쪽 알고도 ‘뒷짐’)

     

    학교폭력, 언제까지 해결 못하는 대책을 반복할 것인가?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학교부터가 문제다.

     

    학교폭력문제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학교의 분위기는 폭력문제는 가능한 한 축소하거나 쉬쉬하는 분위기다. 학교폭력문제가 발생하면 될 수 있으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축소시키려고 든다. 문제가 커지면 학교장이 문책을 당하거나 학교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학교의 대책은 형식적인 상담 일지 작성에 열을 올리고 경찰관을 강사로 불러 처벌만 운운하는 학생교육을 하고 있다. 모학교의 교사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이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학교의 교사는 형식적인 상담으로 실적 만들기에 급급하며 반 아이들을 감시하는 감시자가 되어 버렸다고 우려하고 있다.

     

    교육부는 폭력을 근절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교육부는 학교폭력 대책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며 가해자를 처벌한 후 처리결과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이 일관된 방침이다. 결국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학교 폭력 자치위원회를 강화 하고 CCTV를 설치하여 감시하는 것이 주 정책이다. 이는 학교라는 배움의 공간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하려는 과정 중심의 대책이 아닌 결과만 놓고 책임을 지우는 비교육적인 방법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처리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교육부의 학교폭력대책을 보면 교육부가 정말 폭력을 근절할 의지가 있는 지의심이 간다. 사건이 터지자 교육부가 내놓았던 안은 지난번 대책과 대동소이한 울궈먹기식의 반복이었다.

     

    △고화질 폐회로텔레비전(CCTV) 확대 △취약 지역 학교를 중심으로 지자체 시시티브이 통합관제 단계적 확대 △현재 전체 학교의 32%에 설치된 경비실 2015년까지 86%까지 확대 △폭력서클 결성 집중 단속... 이런 식으로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학교폭력 대책 마련과 정책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학생, 교사, 학부모 및 교직단체가 참여하는 학교폭력예방 상설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평화샘 프로젝트 등 다양한 학교폭력 예방을 계획을 수립하여 학생이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고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문화가 없는 학교에 어떻게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것인가?

     

     

     

    안녕하세요?

    불친님들과 구독자님들 덕분에 제가 운영하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단법인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서울시가 후원하는 제 4회 2013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부문에 문화/예술 부문 Top100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는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심사 및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옆의 주소로 가셔서 투표 부탁드립니다.    http://snsawards.com/iblog/vote2012_0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 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에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함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주를 알고생각할 때에 고집하지 않게 하시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하옵소서

     

    원하옵니다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선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처 주옵소서

     

    그 마음이 개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 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 내 아들에게 유우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더글라스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맥아더장군이 우리민족에 어떤 사람인가는 여기서 잠간 논란을 접자. 그러나 그의 자녀에 대한 기도문은 경쟁교육, 승자지상주의 나라에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와 입시교육에 지친 교사들에게 많은 걸 시사(示唆)해 준다.

     

    교사들은 가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장차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을까?' 자문자답할 때가 있다. 물론 맥아더의 기도처럼 분별력이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겸손한 사람.... 이렇게 완벽한 인격체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누군들 다를까 만은 상업주의 문화 속에서 남의 흉내를 내면서 사는 아이들을 보면, ‘감각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하는 욕심 아닌 욕심을 내기도 한다.

     

     

    급변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교사나 학부모들은 자기의 제자나 자녀들이 어떤 사람으로 커 주기를 바랄까? 사람에 따라서는 '정직한 사람'으로 또는 '착한 사람', 혹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커 줬으면 하고 기대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나 교사들은 한결같이 '순종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기를 바란다.

     

    공부만 잘하면 어지간히 짜증을 부려도, 버릇이 나빠도, 자잘한 잘못이 있어도... 다 용서가 된다. 심지어 학교에서 윤리평가에서는 '성적이 좋은 아이가 예의바른 학생'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주는 상을 보면 대부분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상을 준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학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는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도 직장에서 적응을 잘고 사업도 잘 하는 사람일까? 학교에서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 사회의 열등생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원칙만 배운 학생이 변칙이 지배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말한다. '너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잘 외우고 시험을 잘 치는 학생이 일류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서 대접을 받고 살아 왔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많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와 그 훌륭한 사람들이 살아 온 길을 보면 실망과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일류대학을 나와 해외유학이며 박사학위에 하나같이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불법과 탈법으로 세상을 살아왔을까?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변명을 하는 모습을 보면 지식인들의 또 다른 얼굴에 배신감마저 느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소신도 철학도 없이 살아 온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일까?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이 많은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아는 것은 많지만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더더욱 불행한 사회다. '착한 사람, 겸손한 사람, 정직한 사람... '들이 많이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러나 착하고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을 무시하고 이용해 출세하고 부를 쌓고 출세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의 편에 서는 사람,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더더욱 불행한 사회다.

     

    교사들은 나의 제자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랄까? 공부를 잘하고 ‘품행이 방정해 우등상을 받는 것도 좋지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어른이 된 후에도 비록 화려한 학력과 학위를 갖지 못하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와 가난하더라도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 글은 오래 전 마산의 00여고에 근무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학교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정말 어렵게 두발 제한을 완화했는데 아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겁니다. 완화라고 하지만 사실은 '귀밑 3Cm'를 '어께 선'까지로 바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진 것입니다. 학생들... 범생이라는 학생들이 들고 일어 선 겁니다. 애교심이라더군요. 다른 학교는 모두 두발제한을 하는데 우리학교만 자율화하면 '따라지들이 우리학교에 몰려와 전통명문학교가 망가진다'는게지요.

     

    그래서 몇마디 훈수를 했던 이야깁니다. 지금와서 보니 아직도 유효한 것 같아서 여기 올려놓습니다. 아마 이 때 이 글을 쓴 학생들은 엄마가 됐을텐데...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00여고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

     

    저희학교가 다른 학교에 비해서 머리를 많이 기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머리를 기르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로 선배님들 많이 고생하셨고 선생님들 많은 의견을 내신거 알고 있습니다만...

     

    너무 심각한 지경에 온 것 같다고 느끼시지 않으십니까?

    ‘머리를 기르게 해준다면 염색, 파마 안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믿고 머리를 기르게 해주신 선생님들께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특히 1학년들... 머리 많이 깁니다. 정말 보기 싫습니다.

    상고라는 소리 듣기 싫습니다.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상고라는 생각 밖에 안드는군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는데 머리 기르는 게 뭐가 좋죠?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신경쓰이기만 합니다.

     

    예전의 단정한 00여고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지금 1학년 .. 모의고사 성적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정말 기도 안차더군요.

    그런 학생들이 다시는 저희학교에 안들어 왔으면 합니다.

    학교를 선택할 때 머리를 기를수 있다는 그 따위 이유로 학교에 오는 애들...

    필요없는 아이들이라 생각합니다.

     

    하루 빨리 단발령이 내려서 깔끔한 모습의 00여인들을 봤으면 합니다.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00여인* : 내키지는 않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해도 괜찮을 듯..... 10/26-07:05]--

     

    *교방동: 그럼 머리가 짧으면 뽕파마라는 둥 안하나요? 어쨋든 할 사람은 합니다.. 글 쓴 사람자신이나 잘했음 좋겠네요 --[10/26-10:07]--

     

    * 00여인: 글 쓴 사람입니다 . 참고로 말하지만, 저는 이때까지 머리 한번 안걸린 착실한 학생이라고 자부할수 있습니다 . 머리가 짧으면 단정해 보이기라도 합니다 . 할 사람은 하더라도 선도나 선생님들의 단속이 더 수월해 진다는걸 생각 안해 보셨습니까? 교방동님? 웃기군요 . --[10/26-12:14]--

     

    * 00여인: 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계속 이따위로 학교 교칙 어겨 가면서 학교 명예 실추 시킬꺼면, ( 성적 잘나오면 -_- 주위에서도 안그러겠지 ) 머리 단발령이 낫다고 봄. 한두명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학생이 피해 본다는 생각 하지 않았으면 좋겠음. 그런 학생이 한두명 늘어날 때마다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름. 자고로 근묵자흑 근주자적( 近朱者赤近墨者黑): 붉은 인주를 가까이 하면 붉게 되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물든다. 주학생이 어디서 들었는지 어려운 말을 인용해뒀더군요-필자)이라하였음 --[10/26-21:41]--

     

    * 00여고: 지저분한 거보다 차라리 단발령 하는 게 나을 듯.. --[10/27-00:10]--

     

    * 교방동: 우리반에 단발령 하자고 찬성하는 애들도 머리검사에서 걸립니다..걔네들은 자기들도 길면서 말로는 단발령 했음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10/27-05:07]--

     

    * 교방동: 그리고 오히려 머리가 길면 묶을 수 있지않습니까 교칙을 위반하는 애들이 단발령 내린다고 해서 파마안하고 염색안할까요? --[10/27-05:07]--

     

    ★00여인★: 님들아..선생님들께서 말이예염.. 머리 가지고 홈페이지에 글 올리지 말라고 했는데..왜들 그러시나요..?/자신 있게 머리 기릅시다 11자신 없으시면 혼자 자르시던가..ㅡㅡ^ --[10/27-07:02]--

     

    이학년: 이런 소리 좀 안나오도록 우리 같이 힘써봅시다! 머리를 기를 수 있었던건 우리 선배분들께서 열심히 노력하셔서 얻어진 권리 아닙니까? 머리자른다고 염색을 못할까요 파마를 못할까요? 주위에 있는 여고에서는 머리 짧다고 파마염색 안합디까? 이제 이런 글들 좀 올리지 맙시다! 그리고 거기 파마 염색 좋아하시는 분들! 그럴꺼면 전학가십시오 우리학교에서는 파마염색안됩니다!! --[10/27-07:54]--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 온 학생들의 글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어렵게 고친 학생 두발규정이 학생들 간에 논란이 된 모양이다. 필자는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귀밑 3Cm'라는 이 형극(?)의 학생두발규정을 바꾸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무던히도 싸워 따낸 학생들의 권리다. 이 권리를 놓고 학생들 간에 토론이 붙은 것이다.

     

    주제가 재미있어

    나도 토론에 좀 참여합시다.

     

    ‘선생님의 생각이기 때문에 옳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토론자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민주주의란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존중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생각도 의복도 두발모양도

    다양성을 인정하는데서

    창의적인 교육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신체의 자유, 언론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내 머리카락을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이 '단정하다'거나

    '학생답다'는 인식을 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건 생각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발을 짧게 깎으면 모범생,

    길게 기르면 불량학생'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독일이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학생들의 머리카락 길이를

    학교에서 교칙으로 정해놓고 규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머리카락이 길면 불량학생이다'는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물론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거나 염색을 한 학생 중에서

    불량학생이 많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또는 통계적으로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머리를 길러 어른 흉내를 내는 학생이 있어

    학생보호차원에서 학생은 머리를 길게 길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소수의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몇몇 학생 때문에

    아무리 머리를 길러도 전혀 문제가 없는

    다수의 학생들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학교는

    두발을 자율화했기 때문에

    불량한 학생이 많이 입학한다?'

    걱정을 하는 학생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은 통제와 단속에 의해

    순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단속이 두려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다는 것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양심이나 도덕, 법률과 같은 규범이 필요합니다.

     

    또 자유와 평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도 필요하고

    실정법과 같은 규범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실정법과 보편적 가치를 놓고 보면

    보편적 가치가 훨씬 더 상위의 가치거든요.

     

    무슨 말이냐 하면

    동학혁명과 4,19와 같은 사건은

    분명히 실정법을 위반했지만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실현이라는

    기준에 비추어보면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겁니다.

     

    부분을 보고 전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은 답이 아니랍니다.

    오히려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판단해 지키는 성숙한 학생이라면

    ‘자유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역사적인 안목이 없이 눈앞의 일을 놓고 보면

    두발 자유라는 것이

    우리학교에

    좋은 학생이 입학하지 못하게 하는 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자유라는 가치는

    수많은 인류가 피를 흘려 쟁취한

    소중한 가치라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내 말은 맞고 네 생각은 틀렸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내 글이 올라 간 후 댓글을 다는 학생이 없어졌다. 토론을 깬 것 같아서 미안하기는 했지만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를 안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생님들의 눈치를 봐가며 어렵게 올렸던 글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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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 해!”

     

    “제가 왜요?”

     

    KBS 2 드라마 ‘학교, 2013’에 나오는 극중 인물의 대화다.

     

    멀쩡한 학생을 도둑으로 몰아놓고 퇴학처분을 당하게 됐는데, 누명을 쓴 학생이 억울해 책상을 떠밀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수라장이 된 교실....

     

    관련된 학생들을 담임교사가 불러 반성문을 쓰는 과정에서 학생이 담임선생님에게 눈을 치켜뜨고 금방이라도 달여들 것 같은 기세로 하는 말이다. 멀쩡한 친구를 도둑으로 몰아넣고도 잘못이 없단다.

     

    이야기의 발단은 휴대폰 도둑의 누명을 쓴 학생이 진범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던 학생이 친구가 도둑으로 누명을 쓴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나타난 얘기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사과해야 할 가해자가 오히려 당당하게 아니, 반성문을 쓰라는 교사에게 담임선생님에게 눈을 치켜뜨고 덤비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진짜 정말 저렇게 망가졌을까?, 드라마니까 저럴 거야...’ 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도 있겠지만 현실은 드라마 속의 장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현직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저런 현상을 경험한 나로서는 문제아(?) 몇몇을 빼놓고는 전혀 이상하지도 않은... 아이들과 대화가 통하고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왜 선생님들이 명예퇴직을 걱정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3D 업종’이라고 한탄할까?

     

    드라마가 갖는 한계 때문인지 몰라도 학교는  ‘학교, 2013’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아이들이 어쩌다 저 모양이 됐을까?

     

     

    저런 학교에 아이들이 다니는 이유가 뭘까?

    심각성을 아는 부모들이 얼만 될까? 저런 학교에 보내면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할까?

     

    아이들에게 물어보자.  학교에 왜 오지...?

     

    1. 공부를 하기 위해서?

    2.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3. 학문탐구를 위해서?

    4.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

    5. 부모가 가라고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위의 지문 중 정답을 고르라면 어떤 걸 고를까?

     

    아마 상당 수 아이들은 3번이 아니면 5번을 정답으로 선택할 것이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한 번 물어보았다.

     

    “여러분들은 학교에 왜 다니지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그 훌륭하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

    “대통령이요”

    “재벌이요”

    “의사요”

    “판사요. 검사요!”

     

    농부가 되어 농촌을 살려보겠다든지 엔지니어가 되겠다든지 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일이 다 들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의 꿈은 대부분 ‘유명한 사람’이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한다.

     

    고 3학생들 잠을 깨우려고 수업 시작시간에 하는 얘기다.

     

    아이들 대답 속에는 그런 꿈을 진짜 꾸고 있어서 하는 대답일까?

    교사가 물어봤기에 하는 대답이지 구체적으로 커서 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부모들은 말한다.

     

    “넌 다른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이 땅의 부모들이 오매불망 바라는 그 '공부'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공부를 해야 하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학부모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공부란 무엇입니까?

     

    1. 인격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

    2. 판검사와 의사와 같이 사회적 명예와 지위를 얻는 것.

    3. 돈을 많을 많이 버는 직장에 취업을 하는 것.

    4.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

    5. 좋은 작장에서 사회성이 좋은 인기 있는 사원이 되는 것.

     

    분명한 사실은 아이들은 부모의 아바타가 아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이라는 인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소유물도 부모의 한을 풀어 줄 대타는 더더구나 아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을 감수해가면서라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들 다를까? 그런데 무조건 점수만 잘 받으면, 일등만 하면, 일류대학에만 가면.... 그게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사랑과 집착을 구별하지 못하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의 성공을 위해 모든 날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집착이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들을 보라!

     

    키가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에서 뽑아 올린 물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햇볕의 힘을 빌어 광합성 작용을 통한 자양분을 만들어 자라고 살아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떨까? 모든 날을 희생해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인격자가 되어 나타나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길러줘야 할 습관이 있다.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 식사를 제때 하는 습관, 화장실에 가고, 이를 닦고, 인사를 하고, 제할 일을 찾아하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줄 알고... 친구와 사귀고, 믿고, 사랑하고, 어려운 일을 보면 도와 줄줄 알고....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일이며, 인간괸계에서 예의며....

     

    ‘학교. 2013’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고등학생, 덩치는 다 컸지만 꿈도 없고 생각도 없다. 남을 괴롭히면 상대방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공부를 왜 하는지... 휴지는 아무데나 버리고, 씹던 껌을 책걸상 아무 곳이나 붙이고, 신발을 신고 교실이고 복도고 뛰어 다니고, 휴대폰을 시도 때도 없이 쥐고 다니며 썰렁한 문자를 날리고, 수업시간인지 쉬는 시간인지 분멸도 못하고 선생님께 눈을 치뜨고 덤비고....

     

    ‘설마 우리 아이는 아니겠지...?’

    그럴까?

     

    오냐오냐 하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키워놓으면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해 온 아이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가게에서 옷 한 가지도 스스로 사 입을 줄 모르는 아이들....

     

    이런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좋은 직장에 갔다고 치자. 그러면 회사에서 사원들과 서로 도와가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성이 갑자기 싹틀까?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 온 아이가...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온 아이가... 세상이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 온 아이가 직장생활이며 가정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이기적으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그 버릇 남 주지 않는다. 직장에서 돌림당하고 가정에서 원만한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자상하게 돌보는 좋은 부모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 땅에 멘붕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극성 어머니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사랑하는 내 아들, 딸이 이런 사람으로 자라도 괜찮을까요?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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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나 이번 기말고사에서 전교에서 1등 했어!”

    “와, 전교에서 일등~? 우리 아들 최고다! 오늘 축하 파티라도 하자”

     

    자녀가 공부를 잘한다는 말만큼 듣기 좋은 소리가 있을까? 유치원 받아쓰기에서부터 학기말 고사, 사생대회, 글짓기 대회에서 1등, 전국체육대회에서 1등, 올림픽에서 금메달....

     

    자식이 일등을 했다는데, 우리 선수가 세계에서 1등을 했다는데....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었다는데... 싫어할 국민 있겠는가?

     

    그런데 경쟁을 통한 승리 즉 1등이 좋기만 할까? 경쟁의 목적은 효율성의 극대화다. 선의의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으로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며, 자극을 통한 개인의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데 모든 경쟁이란 좋기만 한 것일까?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무한도전, 골든 벨을 울려라, 1박 2일, 위대한 탄생, 마지막 오디션, 전국 노래자랑, 가족이 부른다..... 인기 있었던,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상업주의 방송의 생얼을 본다. 오죽하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적이 되어 모든 적을 섬멸하고 혼자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까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할까?

     

     

    "시험은 치는데, 성적은 매기지 않습니다. 등수라고 하셨나요? 등수가 뭔가요?"

     

    프레시안 기자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노동조합회의에 참석한 핀란드노총(SAK) 국제국에서 일하는 페카 리스텔라(Pekka Ristela)와 인터뷰도중에 나온 얘기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지, 친구와 비교해 우열을 가리는 경쟁이 아니니까요. 학생들을 서로 비교해 서열을 매기는 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지 않나요.

     

    그래가지고 친구들끼리 협동심이나 우정이 제대로 생길 수 있겠습니까?(프레시안-‘"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

     

    핀란드 교육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받아쓰기, 기중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기초학력고사... 고 3의 경우 일년 중 한 달은 시험을 치르는데 시간을 다 보낸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치러 개인별, 학급별, 학년별, 학교별, 지역별로 서열을 매긴다. 과정은 무시하고 1등만이 최고가 되는 교육... 그게 과연 교육적일까?

     

     

    공정하지 않은 경쟁은 경쟁이 아니라 치고 박는 막싸움이다. 미들급권투선수와 프라이급 선수를 링 위에서 붙이는 시합이 공정한 경기가 아니듯 고전무용과 발레선수, 국악가수와 트로트 가수를 경쟁시켜 서열매기는 경기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교육을 하는 학교는 어떤가?

     

    학교는 지금 일등지상주의에 목매는 경쟁지상주의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일류대학을 향한 무한질주는 사교육시장에서 누가 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인가의 여부에 따라 서열이 가려지고 그 경쟁을 위한 무한질주는 그칠 줄 모른다. 선행학습이라고 했던가? 선행학습이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할 때 정규 과정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배우는 선행학습을 한 학생이 앉아 있는 교실에 교과담임이 수업진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이 진도에 맞춰 나가는 교사의 수업을 듣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과정이야 어찌됐던 점수만 잘 받으면... 일등만 하면... SKY에 입학만 하면... 그게 선이 되는 학교는 과연 교육을 하는 곳일까?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가 피해자가 되는 일등지상주의는 교육이 아니다. 원칙이 무너진 경쟁은 사회정의를 파괴하고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기재(機制)로 작용한다.

     

    학교에서 경쟁은 교육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서열을 매겨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는 것은 반교육이다. 교육을 상품으로 만들어 학부모와 학생은 수요자가 되고 교사와 학교는 공급자로 만든 교육 시장화 정책. 막가파식 경쟁, 일등지상주의가 선이 되는 학교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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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 정직하고 성실하며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시간관념이 투철한 사람. 양보하고 타협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객관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세계관이 분명한 사람. 건강하고 생활습관이 좋은 사람.....'

     

    '주관적이고 고집이 세며 자기중심적인 사람. 자신이 판단의 기준으로 착각하고 사사건건 불평을 하는 사람. 욕심이 많고 이해타산이 심해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사람.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부모나 친척을 우습게 아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매사에 신용이 없는 사람. 낭비벽이 심하고 절약할 줄 몰라 경제관념이 희박한 사람....

     

    '고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더 엄청난 시어머니가 된다던가?' 폭력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폭력만이 아니다. 몇년 전 '밀양의 고교생들의 집단 성폭행 사건'도 텔레비전에서 음란문화를 보고자란 아이들이기에 그런 폭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학교에서의 체벌을 교육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체벌로 무너지는 아이들의 인격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해 봤을까?

     

    인격의 형성이 유전의 영향이 더 큰가 아니면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느냐를 놓고 재론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젖먹이 아이 때부터 안방을 차지하고 앉은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 자란다. 아니 부모나 교사의 영향보다 텔레비전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자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사고나 가치관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텔레비전은 과연 교육적인가? 물론 텔레비전이 부정적인 기능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BS와 같은 교육적 기능을 하는 방송도 있지만 상업방송과 공영방송은 시청률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텔레비전이 음란한 내용이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갈수록 낮 뜨거운 장면까지 마다 않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사회는 날이 갈수록 상업주의 저질문화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면 청소년들의 교육에 악영향을 미친다든가 하는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뿐만 아니라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가정교육이 무너지고 학교가 교육적인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계급상승의 수단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흔히들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진정한 교육이란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가치 내면화로 이어질 때 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런 여유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치다. 가정교육이 무너지면서 학교가 경쟁을 하는 곳이 되다보니 가치관교육은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여기다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앏팍한 상업주의가 청소년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공기가 더러워져도 '내 방문만 잘 잠그면 우리아이는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 아이는 방안에서만 사는 게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부모에게 반항하는 자녀를 본 아버지는 허탈감에 빠지지만 그게 부모나 학교교육의 잘못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안방을 차지한 상업주의와 일등만을 바라는 부모, 그리고 내 제자 출세시켜줘야겠다는 선생님의 근시안적인 사랑이 아이들의 정서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실종된 사회에서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알고 친구간에 신의를 지킬 줄 아는...' 그런 아이로 자라기를 기대할 수 없다. 삭막한 경쟁에서 이겨야 산다는 가치가 우선하는 사회에서는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주관적이고 고집이 세며 자기중심적인 사람...' 으로 자란다.

     

    부모도 몰라보고 내게 좋으면 선이요 내게 나쁘면 악이 되는.. 그런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2세 국민을 이렇게 자라도록 방치하면서 '우리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교육이 없는 사회는 부모도 교사도 모두가 죄인이요, 방관자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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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를 참가시키자면 기를 쓰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학교 경경을 책임지고 있는 학교장이다. 말로는 입버릇처럼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하면서 학생대표가 학교를 운영하는 법적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걸 한사코 반대한다.

     

    학생 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데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 어떤 교장은 학교의 ‘학생들이 뭘 안다고...!’ 라고 하고 또 다른 교장은 ‘학생들은 공부나 해야지...’라고 한다.

     

    학교운영위원회란 당연직인 교장과 교사위원, 학부모위원 그리고 지역위원으로 조직된 법적인 기구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면서 당연히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게 학교운영위원회를 설립한 취지에 맞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되려면 당연히 학생 스스로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규칙을 만들고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민주적인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민주적인 학교라면 학생자치를 통해 자기네들의 의사를 학교운영에 반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학생들이 뭘 알아!’ 학교장의 이런 말은 교육자로서 할 말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학생 자치도 실천을 통해 배우는 게 학교다. 민주주의도 주권도 배우지 않고서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학생들이 공부나 하지...’라고...?

    이런 논리는 독재자들이 좋아하는 이데올로기다.

    공부란 무엇인가? 지식만 암기해 서열이나 매기는 것만이 공부인가? 교육을 상품이라고 하면서 선택권도 없는 교과서를 가르쳐 주는대로 암기나 하는 ‘골든벨 울리기’식 암기는 민주적인 교육이 아니다.

     

    지식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지덕체의 조화로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다. 통제와 단속, 지배와 복종만 있는 학교에 어떻게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학교장이 왜 학생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걸 반대할까? 자신의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학교운영,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예산집행이 학생들에게 알려지는 게 싫어서 학생대표를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학교장이 진정 민주시민을 기르겠다는 철학을 가지 사람이라면 스스로 학생대표로 하여금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시켜 민주적인 훈련을 받도록 하는게 정상이다.

     

    순치는 교육이 아니다.  과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자주적인 능력도 민주적인 의식도 길러지지 않는다. 통제와 단속으로 길들여진 아이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자. 머리는 왜 귀밑 3Cm여야 하고 교복은 왜 입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들이 먹는 학교급식 식자재가 찬환경이나 유기농 식자재가 아닌지... .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교칙을 정해 지키도록 하고 있다>

      

    체벌이 교육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학생이기 때문에 인권을 유린당해도 참아야 한다고... 교도소에서조차 사라진 체벌을 왜 학교에는 정당화하고 허용해야 하는지... 왜 한 번도 읽어 보지 못은 교칙을 입학식 때 선서를 했다는 이유로 지켜야 하는지... 스스로 만든 교칙을 지키며 체화해 본 생활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학교를 살리는 길은 학생이 학교의 주인일 가능하다. 학교운영위원회에도 참여해 보고 스스로 자기네들이 지킬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는 훈련을 해 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어 본 아이들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인권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남의 인권을 존중하겠는가?

     

    민주적인 학교는 어떻게 가능한가? 학교가 공부하는 곳, 민주주의를 배우는 실천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왜 우리는 선거권의 연령을 유럽선진국처럼 19세에서 18로 낮출 수 없는가?

     

    미국을 비롯한 독일, 프랑스,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위스 같은 나라들은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다. OECD를 비롯한 세계 40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 비교 평가에서 2위를 했다는 한국의 청소년들은 왜 상위권 대우를 못받는가? 학교를 살리는 첩경은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는 학교,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받는 학교가 될 때 가능한 일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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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대입수능고사가 끝나고 특목고 선발도 마쳤다.

    내신에 맞춰 원서를 쓰고, 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하느라 중3, 고3 학생들과 담임들은 모두 지쳐 있다. 아이들은 입시가 끝나기 전부터 자신이 보던 책들을 모조리 갖다 버리거나 태우고 입시가 끝나는 동시에 아예 등교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험이 끝나면 '조기 졸업' '교육의 마비 사태'가 벌어진다.

     

    지금까지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의 지상 목표는 상급 학교 진학, 곧 입시라는 관문의 통과였다. 입시를 치르고 나서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에 머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이 아닌 좀 새로운 미용강좌나 초청 강연, 비디오 보기 등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미끼로 학교에 계속 나올 것을 유혹한다고 아이들이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어떤 학교에서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루 종일 비디오를 틀어 준다거나, 계속 자율학습을 시키고 있는 학교도 있다. 어떤 학교에서는 좀 고민을 해서 초청 강연을 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프로그램만 있지 교육의 목표와 내용이 없다.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또는 취미나 흥미, 진학하고자 하는 상급 학교의 성격에 따라 영화반, 독서반, 만화반, 컴퓨터반, 영어회화반, 기타반, 대중음악반, 연극반 등으로 편성할 수도 있고, 교과별 집중 편성반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은 학년 협의회, 동일 교과 협의회를 통해 계획적인 입시 후 지도 방향을 설정하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이 시기는 두 가지 방향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첫째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생활에 대한 마무리 교육이고, 둘째는 상급학교 또는 사회 진출에 대한 준비 교육이다. 중학교의 경우에는 개별 교과 차원에서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교육 과정 안에 있는 내용을 소화할 수 있도록 중학교 과정에서 배운 내용을 다시 정리해 주거나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을 미리 가르쳐 줄 수도 있다.

     

    실업계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경우 선배와의 대화, 현장 방문 등을 통해 고등학교 교육에 대비해서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난 후 학과와 대학 선택이라는 중요한 결정이 또 남아 있기 때문에 교사나 학생 모두 입시의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선 학과, 학교 선택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대한 점검을 공개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학생들이 작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동일 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들끼리 소집단을 만들어 선배와의 대화, 대학 탐방, 학과별 교육 내용 조사하기, 졸업 후의 전망 등에 대해 조사하도록 하여, 성적에 맞춰 아무 대학이나 진학하는 관행을 고쳐 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담임교사 혼자 계획하고 지도하려 면 부담도 되고 진행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므로 3학년 학년 협의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교육 계획을 세워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올바른 대학 생활에 대비하여 학과 공부는 이렇게, 동아리 선택은 이렇게, 학부제와 학과제의 차이, 아르바이트와 학교생활의 조화 등에 대하여 선배와 만남의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입시가 끝난 학생들을 더 이상 학교에 붙잡아 둘 이유가 없다. 졸업을 시키든지 그들 스스로가 진로 계획을 세우고 고민하는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육 없는 학교에 3개월동안의 허송세월을 보내게 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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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잇단 자살을 두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 했던 말이다. 본인의 급여나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가 입사 시 신원 보증인이나 연대보증인, 심지어 본인이 가입한 모든 금융상품에 까지 가압류를 해 생존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노동자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대한 차이는 엄청나다. 대학수학능력고사를 치르고 난 고 3학생들에게 정상수업을 하라고 공문을 내려보내는 교육부의 시각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배우던 책까지 폐, 휴지처리장으로 보내고 빈손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정상수업 하라면 욕먹어도 싸다. 배울 의욕도 가르칠 것도 없는 학생들을 왜 붙잡아놓고 졸업을 시키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수능이 끝난 3학생들은 졸업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 첫째 이유는 교육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말이나 가방 색깔까지 규제하던 교칙은 수능이 끝나기 바쁘게 3학생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수능 전까지 5분만 늦으면 벌점을 받거나 운동장 돌림을 당하던 교칙은 수능 끝난 이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무용지물이다.

     

    일관성이 없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어제까지 A가 오늘은 B가 될 수 없듯이 어제까지 지켜야 하던 교칙이 오늘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기회주의자로 만들거나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반 교육이다.

     

    후배들에게도 이런 모습은 교육적이지 못하다. 머리에 염색까지 하고 책가방도 없이 슬금슬금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아예 등교하지 않고 대학이 제공해 주는 교통편을 이용해 입시설명회장으로 직행하기도 한다. 통제나 길들이기를 위한 교칙은 폐지해야 한다. 일류대학 입학이 목적이었던 학교라면 수능이 끝나면 당연히 졸업을 시켜야 옳다. 그러나 수능 끝난 고3 학생들은 교육과정을 팽개치고 입시설명회나 자연보호활동, 미용강좌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이다.

     

     

    아까운 등록금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황금기인 청소년기에게 무려 4개월이라는 공백을 준다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손해다. 전국의 수십 만 명의 수험생이 방황하는 4개월 간의 공백을 방치해서는 국가적인 수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도하던 수만 명의 교사들도 가르칠 대상이 없다. 수업도 하지 않는 교사들에게 월급을 지급한다는 것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침묵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수십 년 간 반복되어 온 상식이 통하지 않은 관행이 반복되고 있는 사회가 학교다. 사실상 졸업한 학생을 붙잡아 놓고 등록금을 내게 하고 출석일수는 채우는 졸업생관리가 그렇고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학생생활지도 규정이 그렇다.

     

    학생생활지도를 한다면서 가치내면화가 아니라 들키는 순간부터 죄인이 되는 통제와 단속 위주의 생활지도가 그렇다. 잘잘못을 지적하면 문제교사가 되는 사회에서는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할 리 없다. 사람답게 사는 길을 안내해줘야 할 학교는 시험문제를 잘 풀이하는 기술만 외우면 출세하고 대접받는 그래서 그런 사람끼리 패거리를 만드는 사회가 된다. 학교에서는 원칙을 가르치고 사회에 나가면 변칙이 지배하는 풍토에서는 교육자란 무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제도를 그대로 두고 개인에게 손해를 보라면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학기는 2월에 끝나면서 수능을 11월에 치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수능고사를 2월에 치르든지 아니면 수능이 끝나면 졸업을 시켜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어렵다면 학기제를 바꿔야 한다. 아니면 수능 후의 효율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란 교육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하는 곳이라고 믿기에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해놓고 할 일을 다했다는 교육부다. 이러한 관행에 길들여진 학교는 교육부가 죽으라면 죽는 흉내를 내야 한다. 학교는 있어도 교육이 없는 학교, 학생은 있어도 가르칠 것이 없는 교사는 아이들 앞에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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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들의 새끼사랑 -

     

     지극한 자식사랑은 사람에게만 있는 일일까? 동물들의 새끼사랑을 한 번 살펴보자. 동해 바다에서 올라온 가시고기들은 수심 2m 지점에서 알을 키운다. 물고기 가운데 유일하게 둥지를 짓는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 모래를 퍼내 구덩이를 만들고, 수초 가닥으로 집을 짓고 단단하게 고정한다. 집이 완성되면 암컷은 3∼4초간의 짧은 산란을 마치고 집을 떠난다.

     

    그때부터 부화하기까지 알을 지키고 새끼를 키우는 것은 수컷의 몫이다. 몸길이가 고작 7㎝에 불과한 가시고기가 알을 노리는 붕어, 검정망둑이, 거북이 등과 맞서 끝까지 새끼를 지키고 보호한다. 가시고기의 새끼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소를 제공하기 위해 1000개나 되는 알들을 둥지에서 차례로 꺼냈다가 다시 넣어 주는 일을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약 15일을 계속한다. 

     

     산란 후 8일째가 되면 알이 부화하는데, 그 때, 수컷은 알들을 주둥이로 찔러 부화를 돕는다. 부화 후 5일이 지나면 수컷은 서서히 죽어 간다. 둥지를 지을 때부터 새끼가 모두 부화하기까지 약 15일을 수컷은 잠도 자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새끼들의 생명 보호를 위해 이 같은 일을 한다.

     

    이후 '아빠 가시고기'의 몸빛은 바래지고 주둥이는 헐어간다. 1년 전 자신을 낳아준 가시고기가 그랬듯, 자기 몸을 새끼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1㎝도 안 되는 새끼들은 이런 아빠고기의 희생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하게 '아빠고기'의 몸을 뜯어먹는다.

     

     지극한 부성애는 가시고기뿐만 아니다. 유난히 등이 우툴두툴해서 옴두꺼비라고 불리는 두꺼비가 있다. 이 옴두꺼비는 알을 품게 되면 평소에는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독사에게 스스로 찾아간다. 그리고 독사와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 어미두꺼비는 지겹고 오랜 싸움 끝에 결국 독사에게 잡아먹히고 말지만 뱀의 뱃속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독을 뿜어 독사와 함께 죽는다. 이후 옴두꺼비의 알들은 독사의 뱃속에서 부화하여 뱀의 몸을 자양분으로 더욱 튼튼한 새끼두꺼비로 태어나게 된다.

     

    어미두꺼비는 평상시 피해 다니던 독사에게 왜 자청하여 다가가 죽기까지 싸운 것일까.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독사에게 다가간 것은 바로 새끼를 위해서였다. 비록 자신은 죽더라도 나중에 새끼를 잡아먹을지도 모를 천적을 죽여야만 자식의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새끼는 어미의 희생으로 자유와 해방된 새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마귀(당랑)도 예외는 아니다. 사마귀란 놈은 암놈이 알을 배면 수놈은 그 알을 키우기 위해 왕성해진 암놈의 식욕을 위해 머리 째 암놈에게 먹히기까지 한다. 아프리카 개미 중 어떤 개미는 새끼가 알에서 부화되자마자 먹는 첫 음식이 엄마개미의 몸이라고 한다. 암놈이 낳아놓은 수정란을 수놈이 입에 머금어 부화시키고 입안에서 기르는 도화돔의 사랑이며 빙판 위에 알을 낳을 수 없어 수놈 발등 위에다 알을 낳아 두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꼼짝없이 빙판에 서 있어야 하는 펭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연어는 평생을 바다 생활을 하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모천으로 먼 길을 돌아오며, 알을 낳고 바로 죽어버린다. 동물은 붉은배새매. 비바람이 불면 온 힘을 다해 어미는 새끼들을 날개로 감싼다. 잠시 바람이 잠잠해지면 나뭇잎을 꺾어 새끼들을 덮어준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법칙은 냉정하다. 붉은배새매 새끼들은 호시탐탐 다른 동물들의 표적이 된다. 어미는 자신의 몸을 바쳐 새끼들을 지켜낸다.

     

    야생 여우는 새끼들에게 강자로 살아남기 위한 훈련을 시킨다. 사냥을 위해 점프력을 키우고 먹잇감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시킨다. 낭떠러지에서 밀어내 기어오르게 할 것처럼 냉정한 어미지만, 새끼여우를 노리는 독수리 앞에서는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 어버이의 사랑이 위대한 이유

     

     사랑을 노래한 시나 문학 작품의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위대한 사랑‘하면 어머니의 사랑을 꼽는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한 것일까? 어버이날 ‘어머니 은혜’란 노래 가사에 담긴 ’은혜‘의 뜻이란 과연 뭘까? 가사 내용처럼 낳으실 때 괴로움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었기 때문 만일까? 부모가 단순히 동물적 본능에 따라 길러주는 정도라면 하등동물의 새끼 사랑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어머니 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초등학교 어린이 4명중 1명이 정서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08월 04일 경향신문 사설은 충격적이다. 정서 행동이나 학습장애, 인터넷 사용문제, 정신신체증상 등 주로 환경적 요인에 의해 나타난 문제들이다. 어떤 사회학자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1분 미만'이라고 한다. 77년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조사 발표한 사실에 따르면,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아빠와 자식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겨우 38초에 불과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진정한 부모사랑은 낳아서 건강하게 잘 먹이고 잘 입혀 키워줬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구실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눈뜨게 해 주는 것.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할 수 있도록 분별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어버이 은혜를 그토록 찬양할 가치가 있을까? 더구나 어설픈 과학(?)의 발달로 아이에게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고 아토피나 성인병을 물려주는 어머니라면 어떻게 감사의 대상, 존경의 대상으로 또 위대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세상에 부모치고 자식을 대충 키우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환경의식이 없는 부모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없다. 배 굶기지 않게 키우면 부모 역할을 다해다는 시대는 지났다. 쓰레기 만두사건에서 보듯 시중에는 도저히 아이들에게 먹어서는 안 될 오염식품도 버젓이 팔리고 있다. 수입품 식자재가 얼마나 안전할까? 얼마 전 ‘과자의 공포’라는 TV 프로그램이 말해주듯 아이들이 먹는 과자조차 안심하고 먹일 수 없는 세상이다.

     

    과자만 그럴까 상품성이 있는 농수산물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농약이며 항생제며 방부제는 아이들이 먹는 식품으로부터 안전이 보장되는가? 콜라를 비롯한 탄산음료며 장기보관 판매를 위해 만든 캔 음료수는 아이들이 마셔도 괜찮은가? 학교급식을 하면서 식중독 사고만 일어나지 않기 위해 먹이는 튀김음식이나 볶은 음식은 과연 안전한가? 수입품인지 국산인지 GMO 식품인지 조미료는 얼마나 상용했는지 알기나 할까? 

     

    음식만 아니다.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만화방에서 보는 만화는 그들의 정서를 해치지 않은가? 청소년들이 보는 책이나 영화는 보드라운 속살과 같은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허무주의자가 쓴 소설을 일고 자란 아이는 과연 건강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폭력이나 음란물을 읽으면서 자란 아이는 또 어떤가? 자기성적이 친구보다 뒤지지 않기 위해 친구의 노트를 찢어버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어머니는 알기나 할까? 

     

    한달에 수십만원씩 하는 학원에 보내기만 하면 내 아이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부모는 과연 부모의 노릇을 다했다고 믿어도 좋은가? 조기유학만 보내주면 부모역할을 다한 것일까? ‘내 아이만 건강하게 유능하게 잘 자라면 된다?‘ 과연 그럴까? 세상의 공기가 다 더러워져도 우리집 방안공기만 깨끗하면 그만이라고 문을 닫아 잠근다고 해결 될 일인가?

     

     

     사람은 혼자서 사는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는 걸 가르쳐 주는 건 부모가 가르쳐야할 몫이다. 내가 먹은 과자 봉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 남의 기분이야 어떠하든 가시 돋친 말로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나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고통을 당하는 건 상관없다는 생활태도. ‘공부만 잘하면 그런건 대수롭지 않다고 대범(?)하게 키우는 부모는 부모역할을 다한 것일까?

     

     빼어나게 잘생기지 못해도 인상이 좋은 사람이 좋다고들 한다. 아는 것은 완벽하지 못해도 가슴 따뜻한 사람. 설사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일류대학출신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대화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 돈이 많아 재벌은 아닐지라도 돈 앞에 비굴하게 신념조차 포기하지 않는 사람.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부와 지위와 명예를 쫒아 허겁지급 살지 않는 사람 그런 여유로 힘겨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키울 수는 없을까? 

     

    학교만 탓해서는 안 된다. 교육을 학교에만 맡기면 사람을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학교가 그렇게 해주기만 한다면 오죽 좋을까? 그러나 학교는 모든 아이들을 다 만족하게 키워줄 능력도 없지만 그렇게 키워주지도 않는다. 가슴 따뜻한 사람.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나는 ‘바담풍‘ 하더라고 너는 ’바람풍‘ 하면 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 부부야 어떻게 살던 무슨 짓을 하든, 아이들만 좋은 학교 보내고 잘 먹이고 잘 입히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바라서는 안 된다. 부모가 이중인격생활을 하는데, 도덕적이지 못한데, 자식은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로 자라기를 바랄 수 없다.

     

    가정교육이 무너지는데 학교나 학원교육이 건강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시민의식이 없는 부모가 키운 아이는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는가? 환경의식이 없는 부모는 건강한 아이를 키울 수 없다. 학교를 살리기 전에 무너진 교육을 살리기 전에 부모교육부터 살려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교육이 필요한 부모일수록 자신은 배울게 더 없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내일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면, 무너진 학교를 살리려면, 우선 성인교육부터 필요하다. 아니 천민자본주의를 지탱하게 하는 상업주의며 순진한 국민들을 마취시키는 신문부터 고쳐야 한다. 교육이 없는 가정에 어떻게 건강한 아이들이 자랄 것인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7.06 06:30


     

     

    ‘교회에만 예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천국이나 지옥을 강요하는 교회, 담임을 대물림하는 그런 대형교회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입으로는 주여주여 하면서 행동은 가난한 자를 핍박하는 그런 목사들이 있는 교회는 교회는 있어도 예수가 없는 말이 맞지 않을까?

     

    교회만 그런게 아니다. 학교는 어떨까? 오늘날 학교에는 교육을 하고 있을까? 교육다운 교육을 하고 있을까? 교육이 무너졌다느니, 학교의 위기란 말은 학교에서 교육다운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의도적인 교육기관이 학교가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계획한 교육시간표는 있는데 시간표대로 교육을 하지 않고 일부 과목은 가르치고 일부과목은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의도적인 교육기관인 학교에는 교육과정(敎育課程, curriculum)이라는 게 있다. 피교육자의 지적, 정의적, 신체적 발달과정에 맞춰 짠 교육프로그램이다. 영어나 수학은 중요하고 체육이나 미술은 덜 중요하니까 국어, 영어, 수학 중심으로 문제풀이에 치중하고 있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 교과부가 지금까지 교육과정을 정상화한다느니, 사교육비를 줄인다느니 하며 내놓았던 교육개혁안은 근본적임 문제는 두고 지엽적인 곁다리만 고치다 세월 다 보냈다. 교육을 살리지 못한 이유는 교육위기의 근본적인 문제, 대학 서열화체제를 그대로 두고 대입제도만 바꿔왔기 때문이다.

     

    교과부가 얼마나 엉터리 개혁을 했는가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수십년동안 입시제도를 대학별 시험체제, 예비고사→본고사 체제, 학력고사→내신체제, 수능+내신+대학별고사 체제 등으로 십여 차례나 바꿔왔다.

     

    -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 개편과정 -

     

    1기 (1945-1961) 대학별로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던 시기

     

    2기(1021-1980) 대학입시자격고사가 도입되었다가 1969년부터 예비고사+본고사 체제로 운영된 시기

     

    3기(1981-1993) 학력고사와 내신이 병행되는 시기

     

    4기(1994- ) 수능+내신+대학별고사(또는 논술)가 병행되는 시기

     

     

    대학서열체제를 두고 공교육을 정상화 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가정파탄의 주범인 사교육비도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원인도 파행적인 교육과정의 주범도 따지고 보면 대학서열체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정부는 교육으로 가난을 대물림을 끊겠다고 했지만 공약이 지켜졌는가? 이명박정부가 저질러놓은 파탄은 4대강이나 언론뿐만 아니다. 대학입시자율화라는 이름으로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고 수능을 영,수,국 위주의 수준별 수능체제로 개편했으며 대학입시제도를 유지하면서 내신을 상대평가제에서 절대평가제로 바꾸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입시제도개편은 자사고와 특목고를 살리기 위한 꼼수요, 입학사정과제는 고교등급제를 눈가림하는 비열한 자사고 배려 정책이다.

     

    교육하는 학교로 만들 수는 없을까? 미국과 일본과 같은 서열체제가 아닌 독일이나 프랑스 핀란드 같은 나라를 보자. 대학입학자격고사를 도입하고 있는 유럽 나라들은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어 우리와 같은 처절한 경쟁이 없다. 이들 나라에서는 바칼로레아(프랑스)나 아비튜어(독일)와 같은 대학입학 자격고사만 통과하면 학생이 희망하는 대학에 지원할 자격이 주어진다.

     

    입시경쟁이 없으면 당연히 사교육도 없고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지 않으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파행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 교육을 살리는 길이 있는데 교과부는 부유층 자녀에게 일류대학의 길을 터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를 대물림하도록 경쟁체제를 유지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입시교육 없는 학교, 사교육없는 세상, 학벌없는 사회’는 학부모들이 정부의 교육장악 음모를 저지할 때만 아이들도 살리고 교육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 이 기사는 교육혁명 공동행동연구위원회의 '대한민국교육혁명'을 참고해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7.05 06:30


     

     

     

    몇 년 전, 섬진강 시인 김용택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 어떤 분이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을 김시인은 간단하게 답했다.

     

    “자세히 보면 됩니다”

     

    ‘자세히 보는 눈, 그렇지!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눈을 잃어버렸지. 자기 기준에서, 선입견으로 대충 대충 자신의 수준만큼만 보고 느끼고 만족하며 사는 데 익숙해 있다. 사실 그의 시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삶에 쫓겨 눈여겨보지 못한 작은 것에 감탄하고 느끼고 시를 만든다. 이름 없는 풀꽃을 보고도 감탄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기만 한 농민들을 보고 그들을 고생시키는 정책에 분노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대충대충 보고 말거나 겉(현상)만 보고 그게 사실(본질)이거니 하며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자신의 기준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이름 모를 잡초를 보고 감탄해 보지 않는 사람,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진실을 보고 좋은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이른 봄, 언젠가 도시 도로변에 조성한 화단에 진달래가 꽃을 피운 걸 본 일이 있다. 계절의 섭리를 어기지 못해 피어난 진달래는 깊은 산속 맑은 공기와 새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피워낸 그런 색깔의 진달래가 아니었다. 소음에 찌들고 오염된 빗물과 공기에 지칠 대로 지쳐 겨우겨우 피워낸 꽃은 이름은 진달래였지만 이미 그 색깔이며 모습은 도시의 피로를 뒤지어 쓴 그런 초라한 모습이었다.

     

    진달래만 그럴까? 좋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도시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 겉으로는 참으로 아름답다. 좋은 옷, 만난 음식, 하고 싶은걸 언제든지 하면서 사는 아이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은 진정으로 행복할까? 문명의 이기로 둘러싸인 시멘트벽이며 환경호르몬으로 꾸며진 벽지며 침구며 농약과 방부제가 섞인 음식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도시의 도로변에 지쳐 피워낸 꽃처럼 자라는 건 아닐까?

     

     

     

    아파트 열쇠를 목에 걸고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을까? 밤마다 하늘을 수놓는 찬란한 별들도, 비개인 하늘에 피워내는 무지개도, 바람이 나뭇가지를 간지럽히는 소리도, 반딧불의 유영도 보지 못하고, 학원과 학교를 개미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이 땅의 아이들은 무슨 색깔일까?

     

    우리가 마시는 물은 옛날 옹달샘에서 솟아나던 순수한 물이 아니다. 없는 게 없는 호화판(?)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물의 오염, 자연의 오염처럼 생각이나 말, 판단하는 능력까지도 지치고 오염되지는 않았을까?

     

    나의 눈에 비친 자연이 본래의 모습이 아니듯 우리가 보는 신문도 방송도 오염된 건 아닐까? 욕망이라는 신기루, 성공이라는 신기루, 출세라는 신기루... 그런 신기루를 쫒다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잃어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자본의 횡포에 찌들고, 승진을 위해 만든 정책의 희생물이 된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바래가고 있는데 어른들은 말한다. ‘다 너를 위해서...’라고. 이겨야 산다고, 지면 죽는다고... 조금만 참으면, 어른이 되고 그 때는 네가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다고...

     

    ‘어느 날’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오늘’을 저당 잡혀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확실하게 보장도 되지 않은 ‘어른이 된 후의 어느 날’의 행복을 위해 청소년기의 모든 날을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살아도 좋을까?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높은 것을 얻기 위해 정작 귀한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을 잃어버리고 원하는 것을 다 얻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나는 그를 모른다. 한 번도 만나 본 일도 없다. 오래전 오마이뉴스에서 그가 쓴 글과 시를 보면서 국어선생님이 아닌가 생각했다. 왜냐하면 시가 너무 고왔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으며 ‘시가 참 곱다’ 그런 생각이 했던 일이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글도 시도 쓰기 어렵겠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넌 아름다워, 누기 뭐라 말하든' 이라는 책을 접하곤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국어 선생님이 아니라 영어선생님이라는 것과 요즈음 같은 세상에 아이들을 이렇게 만나는 선생님도 있구나... 이런 생각도 했다. 며칠 전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된 감사와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이런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에 대한 부러움으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교직생활 4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퇴임까지 한 내가 이 책에 감동한 이유는 단순히 글이 곱기 때문만이 아니다. 선생님의 지극한 아이 사랑과 교육철학, 그리고 실천으로 연결된 그의 삶 때문이었다. 무너진 학교에 이렇게 아름다운 교육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요, 둘째는 허세와 가식이 아닌 사랑으로 쓴 진솔한 체험담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난 처음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신규교사들이 참고해야할 안내서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교단생활 26년차인 선생님이 쓴 책 치고 상처하나 없는, 아니 미움이나 상처조차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마술사와 같은 글에 폭 빠지고 말았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교사가 아닌 학부모나 아이들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꼭 한번 씩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로서 내 관심사는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왔을 때보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하여 오후에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안준철선생님이야 말로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을 붙잡아 공부를 하게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닫힌 마음을 열게 하고, 무너진 교육을 살리는 마술사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통 그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을 읽으면 ‘교육이란 바로 소통이다’

     

    이런 너무나 단순한 진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아이들 앞에 군림하지 않는다. 아래로 또 아래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그의 자세야 말로 오늘날 무너진 교실에 선 모든 선생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너가 문제야! 너 때문이야!’가 아니다. ‘교사인 내가 뭘 잘못했을까? 가정이, 학교가, 세상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힘들게 줬을까?’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 안다. 선생님이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하는지를... 그가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실력이다. 영어 선생님으로서 교과서가 아니라 생활이 교과서가 된다는 것이다. 교과서가 없는 영어 선생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지만 사랑으로 노래로 아이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교실이 아닌 운동장이, 느티나무 아래서, 하굣길에서, 들길을 걸으며, 혹은 라면을 함께 먹으며... 교육을 하고 있었다.

     

    그가 존경스러운 일은 또 있다. ‘추수지도’라고 하나? 놀랍게도 졸업 후에도 제자들과 만나 정을 나누고 인생 상담사 노릇을 해주고... 그런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물론 그가 아이들을 만나고 교육다운 교육을 한 심은대로 거두는 일이기도 하지만...

     

    선생님들에게 다 물어보자. ‘요즈음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마음을 여는가라고...?’ 누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만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그런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꿰뚫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테크닉까지 터득하고 있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큰 행운이다. 한 때 교사였던 나도 뒤늦게 이런 선생님과 비록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 행운이었다. 이런 책을 써준 안준철선생님께 감사한다. 비록 나의 미숙한 글 솜씨로 그가 쓴 글의 내용을 만분의 일도 제대로 소개는 못했지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오늘은 122주년 세계노동절이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노동을 천시하는 풍토가 생기면서 '노동'이라는 말 대신 ‘근로’라는 말로 바뀌고 ‘노동절’도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다.

     

    노동이 왜 부끄러울까?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30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지금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몇 해 전만 해도 교실 전면에 이런 엽기적인 급훈이 버젓이 걸려 있었다.

     

    북한이 사회주의라는 분단국가 탓일까?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노동은 천한 것’이라는 의식을 은연중에 심어주는 반 노동적인 의식화교육을 계속해 왔다. 학교는 우리사회는 지금까지도 ‘화이트칼라’는 고귀한 직업이요, ‘블루칼라’는 천한 직업이라는 걸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학교에서도 교과서를 통해 은연중에 ‘못배우고 못났으니까 노동자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열등의식을 갖게 하는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심어왔다.

     

     

     

    노동이란 정말 추하고 천하기만 한 것일까? 노동이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국어사전)라고 풀이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자를 만드는 게 왜 천한 일인가? 노동자들의 땀흘림이 없이 사람들의 삶이 가능할까? 더더구나 노동을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을 분리해 노동자들은 천대받고 가난하게 살아야할 존재라는 가치를 심어 왔던 것이다.

     

    노동이야말로 천한 것이 아니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고 의사가 환자를 돌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주아주 오랜 옛날 노동자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노동자는 귀족이나 양반이 되다 못된 미완성품으로 노동이란 노예들이나 하는 천한 일이었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권리조차 무시당하고 살던 노동자들이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고 권리를 행사하게 된 것은 각성된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였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실정은 어떨까? 선거 때만 되면 각 정당에서는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아직도 비참하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대우는 심각한 수준이며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2011년 8월 기준으로 1,751만 명의 임금노동자 중 절반에 가까운 865만 3천 명(49.4%)이 비정규직이며,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663만 명(64.3%)이 비정규직이다.

     

     

     

    산재로 인한 사망 만인률은 OECD 국가 중 1위(일본, 독일의 4배, 영국의 16배/ 교통사고의 1.3배)로 3시간마다 1명이 죽고 5분마다 1명이 다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에서 제외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실질 산재는 최소 10배 이상이며, 전체 산재의 80% 이상이 50인 미만의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남자 정규직 임금을 100이라 할 때, 여자 정규직 임금은 66.4%, 남자 비정규직 임금은 51.7%, 여자 비정규직 임금은 40.5%에 불과하다. 저임금계층이 26.7%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고, 임금불평등 지수(상위 10%와 하위 10% 임금격차)는 5.1배로 멕시코 다음으로 심한 형편이다.

     

    학력과 학벌에 따른 노동조건이나 임금격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9년에는 25~29살 고졸 노동자의 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중졸 이하는 89.7, 전문대졸은 103.4, 대졸 이상은 124.2였다. 하지만 55~59살 임금은 전문대졸 136.7, 대졸 이상은 222.6으로 고졸과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 학력 수준별 노동시간 격차를 봐도, 2009년 고졸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100으로 했을 때 중졸 이하는 103.6, 전문대졸은 94, 대졸 이상은 89.1로 나타난다. 대졸 이상이 고졸자보다 10% 이상 덜 일하고도 임금은 최대 2.2배나 된다.

     

     

     

    2008년 기준으로 최상위 13개 대학 출신 취업자들은 14~50위 대학 졸업자보다 14.2%, 51위 이하 대학 졸업자보다 23.2%, 전문대 졸업자보다는 42%나 임금을 더 받고 있다. 1999년에는 최상위 13개 대학과 14~50위 대학 졸업자의 임금 격차가 1%에 불과하던 것이 9년 만에 훨씬 커진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현실에서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교육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일류대학을 못 다녔으니까,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니까, 자포자기하고 좌절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청소년들이 가는 곳이 노동현장이라는 왜곡된 인식은 내일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의 삶의 질을 가름하는 바로미터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72.5%가 대학에 진학하는 기이(?)한 나라, 공식적인 교육기관인 학교가 노동과 노동자로서의 삶을 천시하는 의식화교육을 시키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세계 제 122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내일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에게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시키는 노동천시교육은 중단해야 한다. 말로는 서민을 말하면서 노동자가 천시받는 풍토에서는 실질적인 삶의 질도 복지국가도 허구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과 같이 초등학교에서부터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배울 수 있도록 학교 교과과정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  이 기사의 통계자료는 전교조 보도자료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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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8월 22일 열린 첫 공판 이래 7년째 재판을 방청, 기록한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가  57명의 증언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엮은 800여쪽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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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정부 부처가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여 지났으나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는커녕 용두사미(龍頭蛇尾) 꼴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23일자 사설에서 ‘손발 안 맞는 학교폭력 종합대책’이라는 기사의 일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학교폭력근절대책이 서울을 비롯한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 진보교육감 때문에 학교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학교폭력이란 학교가 폭력을 저질렀다는 어폐 (語弊)가 있는 잘못된 말이지만 언제부터인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진짜 학교폭력이란 무엇일까? ‘학교폭력’이란 ‘학생들이 학교에서 당하는 폭행과 금품갈취, 협박... 등 육체적이나 정신적인 고통’을 일컬어 학교폭력이라고 한다. 그런 폭력을 교과부가 내놓은 대책을 잘 이행하면 사라질까?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의 쏟아왔던 관심은 이름그대로 ‘폭력과의 전쟁’이었다. 폭력방지를 위한 법률을 만들고 전문 상담사를 배치하고,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비상전화를 개설하고, 경찰을 비롯한 검찰의 전담반을 구성하고, 학부모 도움이를 조직하고, 가해자처벌을 강화하고 복수담임제를 두고....

     

     

    중앙일보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학교폭력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을까?

     

    학교란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공간에 폭력을 저지르는 나쁜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선량한 학생들에게 금품갈취나 폭행, 심부름을 시키며 괴롭힌다. 피해를 당한 학생은 보복이 두려워 어른들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피해를 목격하는 학생 역시 자신들도 표적이 될까봐 불의를 보고 눈감는다. 따라서 이러한 학교폭력가해자, 일진들을 제압하는 것은 정의의 사도인 힘센 교사들이 할 일이다.’

     

    학교폭력이란 좀 더 엄한 교칙으로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두고 교사들이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감독하고 문제가 있는 학생은 색출해 엄벌을 하거나 재발방지를 위해 격리 수용하는 것이 폭력을 줄이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학교가 학생지도를 게을리 해서 혹은 교사들의 무관심이나 무능이 불러 온 결과라고 이해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관심 있게 다가가면 학교폭력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게 교과부를 비롯한 수구 언론의 시각이다.

     

     

    정말 학교폭력이 남을 괴롭히는 나쁜 아이들이나 교사들의 지도 소홀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초등학생들조차 일제고사를 대비해 아침 자율학습에 보충수업에 방학까지 반납하고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교에 모든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영재학교나 자사고를 들어가기 위해 혹은 수학능력고사라는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4당5락의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은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을까?

     

    일류대학을 입학하지 못하는 낙오자는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나라. 국영수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학교에 모든 학생이 다 승자가 될 수는 없다. 성적이 나쁘면 인성까지도 나쁜 문제아로 취급하는 학교...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인권조차 반납하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청소년... 그들을 괴롭히는 게 어디 학교뿐인가?

     

    학부모들도 청소년들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다 너를 위해서야!’, ‘참아야 해!. 모든 아이들이 잘 견디는데 너라고 못 견딜 이유가 있나? 너는 우리 가문을 이어갈 사람이야, 내가 못 이룬 꿈, 네가 대신해 줘야 해. 의사가 돼야 해! 판검사가 돼야 해!’ 학원으로 또 학원으로 들 떠밀어 점수가 교육이라고 우기는 부모들의 과욕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인들은 어떤가? 청소년들이 읽을 책들은 건강한가? 그들이 보는 영화며 PC방의 게임들은 건강한가? 어른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건강한 정서를 키울 수 있는 환경조건을 갖추어 주고 있는가? 경쟁지상주의, 교육을 상품이라며 교육과정을 바꾸고 이기는 게 선이라며 경쟁 지상주의로 내모는 교육과부는 학생들에게 폭력 아닐까? 지식의 암기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며 ‘지면 죽는다’는 이들이 철학은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잘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가?

     

    양극화로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주눅들어 살아가는 아이들은 폭력에 일상적으로 내 몰리고 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빈곤도 억압이요, 폭력이다. 고액과외를 받고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과 과외 한 시간도 못 받는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폭력이 아닌가?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줄로 세워,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조건을 만들어 주는 게 진정한 폭력 대책이 아닐까?

     

    - 의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 이 글은 충청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80615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1.06 06:30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A 학생의 점심 메뉴 :「빵 1개, 단무지 2점, 게맛살 4조각, 메추리알 5개. 튀김 2개...」

     

    B 학생의 점심 메뉴 : 「캐비어, 게살 스프, 연어 구이, 등심 스테이크, 시저 샐러드, 생과일 주스, 케이크...」

     
    '방학 중 사교육비가 채 5만원이 안 되는 아이와 1000만원을 호가하는 '풀 코스 교육'을 받는 아이의 교육 양과 질의 차이는, 두 아이가 먹는 이 한 끼 점심 메뉴가 그대로 말해 준다. 사교육비 비율 '1000 : 5', 때로는 '1000 : 0' 인 대한민국의 방학'

    오죽하면 서울대 김대일교수는 ‘대한민국에서 빈곤한 이들이 끔찍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확률이 고작 6% 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을까? 

    지난 2002년 토리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국민들이 안톤 오노의 손을 들어준 심판에게 분노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규칙이 무너진 경기였기 때문이다. 규칙이 무너진 경기. 그건 경기로서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쇼트트랙경기뿐만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다. 규칙(법과 도덕...)이 무너진 사회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계층상승의 통로가 되는 교육이 '1000 : 5', 또는 '1000 : 0'으로 불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는 사회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기준(규칙)이 실종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실이 무너졌다’느니 ‘학교는 죽었다‘는 얘길 자주 듣는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기 어렵다는 게 교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학교가 왜 무너지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학교가해야 할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가 해야 할 본질적 기능은 교육이 ’계층상승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전수‘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삶의 지혜를 전승하는 곳‘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으로 자녀의 사회적 신분을 대물림하는 절차나 과정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학벌사회라고들 한다. 학벌사회란 학업경쟁력이 아닌 학벌(간판,브랜드밸류)에 의한 신분이 세습되는 사회를 말한다. 서열을 본질로 하는 우리사회의 신분이란 수학능력점수에 따라 매겨진다. 이 서열 매김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규칙이 무너진 게임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합 전 승패가 결정 난 이러한 신분사회, 학벌사회를 가능케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벌구조가 유지되는 이유


     한국사회가 학벌사회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파행적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도 학벌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교육위기의 근본원인도 학벌에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패거리 문화가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부정과 부패를 가능케 한 사회구조도 학벌에 있고 이를 재생산하는 대학서열화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실붕괴 뿐만 아니다. 기러기 아빠며 천문학적인 사교육시장이며 교육 붕괴 등 오늘날 우리교육이 당면한 모순의 원인이 학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정과 부패구조의 원인 제공자요, 사회진보와 교육위기의 주범인 학벌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벌은 식민지시대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얻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해방과 함께 위기를 맞자 이들의 힘이 필요한 불의한 정치권력이 야합하고 여기서 이루어진 세력이 학벌을 통하여 뿌리는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그 후 독재 권력이나 군사정권이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정당성이 없는 권력의 지지 세력으로 기생하면서 공생관계로 살아남게 된다.

    이들의 생존 방식도 재벌로 또는 사학으로 언론권력으로 연결되면서 거대한 세력으로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정경유착이니 권언유착이 가능한 사회구조는 이러한 학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법으로 흔히 3S 정책이 동원되기도 한다. 교육이 실종된 사회는 자본에 종속되기도 하지만 독재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했을 때 그로부터 도래할 수 수 있는 피해란 상상을 초월한다. 독재 권력이 존속되기 위해서는 침묵하는 국민이 필요하다. 국민의 비판을 거세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국정교과서제다.

    권력이 특히 정당하지 못한 권력이 국정교과서의 편성권을 장악한다면 그 교과서는 그들의 기준에 의해 선정된 지식이 고급지식이 된다. 특히 입시위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선정한 지식만이 가치를 인정받게 되고 이러한 교육의 결과는 그들이 원하는 인간 양성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교육개혁, 안 하나 못하나?


     해방 후 ‘대학별 단독시험’으로 시작한 대학입시제도는 현행 입시제도까지 무려 11차례나 바뀌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례행사로 치러진 입시제도 바꾸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대부분의 정권들은 명운을 걸고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교육개혁을 약속했지만 그 어떤 정권도 그 일을 해 내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교육개혁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참여정부가 교육개혁위원회를 만들고 국민적 기대를 모았지만 정권중반에 접어든 현재까지 교육개혁은 가능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교육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개혁과 반개혁’, ‘민중대 반민중’의 대립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정의나 불의가 아니라 기득권세력과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간의 힘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반세기가 넘게 기득권 수호세력들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 종교 등 각 영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저항세력들은 이번 사립학교법 반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부정과 부패비호세력이라는 오명도 불사하면서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위 2%가 부와 권력을 독점해 98%를 지배하고 세습하는 구조는 입시라는 과정을 거쳐 정당화되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방학 중 사교육비가 채 5만원이 안 되는 아이와 1000만원을 호가하는 '풀코스 교육'을 받는 아이가 일류대학을 입학할 가능성을 비교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교육을 살리는 길


    학교가 시험 준비기관이 되고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질이 다른 사교육을 받아 기득권을 계승하는 구조는 이렇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세계 10-20위 수준의 학생들을 싹쓸이 해 뽑아놓고 4 년 후에 세계 150위 수준의 학생으로 만들어 배출하는 서울대‘가 있고 승패가 결정 난 경기를 정당시키는 사회제도가 유지되는 한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헌법의 명문규정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

    20대 80이라는 사회양극화현상은 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 근대화과정에서 우리사회가 만든 구조적인 모순의 결과다. 사화양극화를 정당화하고 가난이 개인의 책임으로 또는 운명론으로 인식하게 된 풍토 또한 왜곡된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판단능력이 중시되지 않고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사람의 가치와 서열을 매기는 학교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양극화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해야할 입장에 있는 정부조차 힘의 논리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 경쟁이데올로기를 고수하고 있다.

     사회양극화나 신분의 세습을 혁파하기 위해서는 실종된 교육을 살려야 한다. 학교가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출세를 위한 경쟁장이 되는 한 진정한 교육, 인간 교육은 불가능 하다. 겉으로는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또 평준화의 틀을 유지하겠다면서 수월성을 말하고 특목고나 자사고를 확대하고 시장개방과 영어몰입교육까지 불사한다면 교육의 공공성회복은 불가능하다. 철학이 없는 사회는 부패하기 마련이다. 진정한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벌문제와 입시구조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추억의 노래사랑' 카페에서>

    “오늘 말 안 듣는 아이들 손바닥 다섯대씩 때렸어요”
    창원 00중학교에 근무하시는 이00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나온 얘기다.
    평소 사람좋기로 소문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체벌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물었다.
     
    “아니, 동영상이라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어쩌려고 손바닥을 때려요? 왜 때렸는데요?”

    “수업을 하러 들어갔는데 이놈들이 완전히 개판이잖아요. 종이 쳤는데도 자리에 앉을 생각도 않고 돌아다니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냥 둘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체벌을 반대하던 선생님이 체벌을 했다 말입니까?”

    “선생님! 저는 교육이란 미성숙한 사람의 잘못을 바로 잡아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걸 그대로 둔다는 것은 교사의 직무유기요, 자기 부정이지요. 저는 아이들이 제 멋대로 행동하는 걸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잘잘못을 고치려면 말로 안 되고 제재를 해야 하는데 벌을 세우거나 체벌을 하다 인터넷에 올리거나 학부모들이 찾아와 항의라도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게 겁나면 사표내야지요. 그리고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선생님이 감정이 섞여서 때리는 것 하고 사랑으로 사람 되라고 손바닥을 때리는 걸 구별 못하지 않습니다. 손바닥을 때려놓고 저는 아이들에게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면 반발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는 평소 ‘아이들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남다른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요즈음 선생님들과 만나면 한결같이 나오는 얘기가 수업을 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제발 연금만 되면 교단을 떠나고 싶다는 선생님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이 공부할 의욕이 없는데다가 학원에서 선행학습인가 뭔가 하는 바람에 공부를 좀 하는 아이들조차 학교에서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가면 선생님과 눈도 맞추지 않고 앉아서 한 시간 내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 옆 짝지와 끊임없이 잡담을 주고받는 아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책걸상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며 잠시도 가만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 선생님 강의는 듣지 않고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 아예 처음부터 엎드려 자는 아이.....

    수업태도가 나쁘다고 지적이라도 하면 눈을 꼴치며 ‘ㅅ’자가 튀어 나오는 아이. 잠자는 아이를 깨우면 험한 눈으로 쳐다보며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

     


    학교가 어쩌다 이지경이 됐을까? 학교가 이 지경이 된 책임은 어디 있을까?


    첫째, 교육과학부가 만든 결과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교실에 까지 불어 닥치자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됐다. 시장판이 된 학교에는 교육이 아니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문제풀이를 해주는 곳이 되고 만 것이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본질적인 업무인 교육을 하지 못하고 상품을 판매해야하는 장사꾼이 되고 말았다. 학교는 교육을 하고 학원에서는 입시준비를 하는 역할분담이 아니라 학교도 학원도 입시학원이 되어 누가 더 일류학교에 더 많이 입학시키는가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경쟁력이 살길이라며 점수 좋은 학생과 점수 나쁜 학생을 구별해 수준별 학습을 시키고, 특수목적고를 만들고, 교사와 학교를 평가해 성과급으로 차등화하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문제아(?)를 모아 교육하는 'Wee스쿨'인가 'Wee 클래스'인가를 만들어 분리 수용(?)하고 있다.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학교에다 학원을 불러들여 방과 후 학교를 만들고 교과부가 직접 나서서 EBS에서 입시문제를 풀이하는 코미디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 학교의 현주소다.


    둘째, 교육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무너진 교실... 이를 지켜보는 교사의 마음은 허탈하다 못해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는 교사들은 교사들의 반응도 각각이다. 어떤 교사는 ‘너희들이 그러는데 내가 열받아가며 가르칠 필요가 뭐 있는가? 하는 자포자기형 교사다. 체벌을 하거나 벌을 세우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만 피해를 볼텐데 손해 볼 짓을 할 필요가 뭐 있는가?”라고 생각하고 무사안일로 사는 교사들도 없지 않다. 

    앞에서 예를 든 이00선생님같은 교사도 있다. 잘못된 교육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학교를 살려보겠다고 안간힘을 쏱는다. 전교조에 가입해 자비를 들여 교원연수에 참가하고 전교조에 가입해 단체행동을 하다 교단에서 쫓겨나기도 감봉이나 정직 등 불이익도 불사한다.

    그러나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에서 교사의 권한이란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권한이란 그리 넓지 못하다. 교과서가 잘못됐다며 자신이 만든 교과서를 활용하면 처벌을 받는게 한국의 교육현실이다. 점수만 올려주는 교사가 대접받는 사회에서는 교과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면 불순교사, 좌익용공교사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교육의 모순은 현장 교사만의 책임이 아니다. 교육관료들, 교육학자들 그들은 무너진 교육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셋째, 학부모들의 잘못 또한 크다.

    학교가 이지경이 됐는데 어느 학부모 한 사람 찾아와 ‘우리 자식 교육 제대로 시켜달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100점만 받아 오면 인성교육 따위야 문제될 게 뭐가 있느냐는 식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이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에게 쏟는 정성은 옛날에 비길 바 아니다. 거기다 고생하면서 살아 온 부모세대들은 나의 어려웠던 삶의 전철을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는 사랑(?)이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아이들에게는...’ 하는 정서가 만연해 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그래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예절이나 질서 같은 건 배우지 않는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시비를 가리고 부끄러움을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 부모들은 공부만 잘하면 일류학교만 들어가면... 좋은 직장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그것이 공부요, 성공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그런데 내자식만 손해 보라는 말인가?' 하면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탈학교 학생이 일년에 10만명씩이나 생겨 나고 있는데 부모들은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는 게 현명한 일일까? 그런 일이 금쪽같은 내새끼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데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그 때는 그 고통을 해당 부모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국내 교육비 지출현황>
    단위 : 십억 (출처: 2008년 9월 한국교육개발원)


    넷째, 조중동과 사교육 재벌들이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국내 사교육 시장 규모는 20조~ 40조 정도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려는 기득권 세력들은 조중동과 이해관계를 함께 사교육의 활성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겉으로는 사교육망국이니 교육이 무너졌다고 엄살을 떨지만 알고 보면 사교육 시장에 개입하거나 이와 관련된 사업으로 돈벌이를 하며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사학법개정 없이는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사립학교를 경영하면서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듯, 사교육비로 배를 채우는 사학재벌과 이를 조정하는 세력들이 이 나라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정상화의 걸림돌이요, 교육황폐화의 주범이다.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교육은 지식교육뿐만 아니라 정서교육도 포함하고 있다. 지식은 수치화할 수 있지만 정서교육의 결과는 수치로 나타내지 못한다. 지식만 있고 정서가 메마른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기형적인 인간이다.

    전인 교육이 아니라 지식만 주입해 양성하는 기형적인 인간을 만드는 학교를 방치해놓고 교육을 한다고 우기는 학교. 그런 교육을 정상이라고, 혹은 자포자기하면서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교육자. 내자식 출세를 위해 사교육에 메달리는 부모 그리고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과부, 사교육 재벌들... 이들이 오늘날 교육황폐화의 공범자(?)다. 경쟁자를 이겨야 살아남는 지식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어떻게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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