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11.05 시비를 가리는 사람이 문제교사가 되는 학교 (12)
  2. 2010.11.30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11)


우리사회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들 시비(是非)를 가린다'고 하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도전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잘잘못을 가린다'는 뜻이다. 친족단위의 공동체사회에서 살아 온 조상들은 자기 몫을 분명히 가려 내 것, 네 것을 따지고 계산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이나 친족단위의 정서는 상대방에 양보하고 배려하는 '좋은 게 좋은' 분위기가 지배하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정이 메마른 사람이 된다. 서로 믿고 순수가 통하던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서를 탓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한쪽이 이익을 보면 상대방이 손해를 보는 '좋은 게 좋다'는 뜻의 '두리뭉실한 정서'는 통하지 않는다.

 

산업사회는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대립되는 사회다. 사용자는 임금을 적게 주고 일을 많이 시키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피고용자는 임금을 많이 받고 적게 일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이해관계는 학교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교사와 학교장은 이해관계가 대립되기 마련이다. 학교장은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순종하는 교사를 좋아한다.

 

학교장의 입장에서 보면 교사들은 시비를 가리고 따지는 사람보다 교장이 하는 일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반면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교장의 독단적인 경영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학교경영을 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교장과 교사는 이해관계가 상반된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이해관계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부모와 학교는 이해관계가 배치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교사위원만이 아닌 학부모위원을 둔 이유도 그렇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되면 학교장과 학부모들은 안건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가해 보면 학부모위원들은 '좋은 게 좋다'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학교장에게 찍히면 자기자녀가 불이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계산 때문이다. 전체학생을 위해 내가 대표성을 행사해 십자가를 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궁색하지 않은 학부모위원들은 어려운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운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앨범제작업체나 여행사는 단골업자가 독점 해왔다. 앨범제작은 당연히 수의계약이나 조달청을 통해 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평생에 한번밖에 하지 않는 앨범을 뭘 까다롭고 복잡한 입찰로 돈 1, 2만원 가지고 쫀쫀하게 따지느냐고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

 

제대로 된 경영자라면 학교가 앞장서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해야 옳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지금까지 관행을 뿌리치고 학생이나 학부모 편에서 일을 처리하려는 학교장은 그렇게 흔치 않다. 앨범뿐만 아니다. 예산이 수반된 안건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자고 하면 '뭐 그런 일을 가지고 까다롭게 구느냐?'는 투다. 금전관계가 걸린 문제에 투명성을 주장하면 반대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모든 영역에서 그렇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민주적이고 교육적이어야 한다. 학교급식은 바쁜 학부모의 불편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편식을 교정하여 식습관을 교육적으로 바꾸기 위해' 학교급식을 실시한 것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예산집행도 당연히 교육적으로 모범이 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급식업체의 선정이나 앨범업체선정 등 금전과 관련된 안건은 교사와 학부모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심의해야할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원이 '좋은 게 좋다'는 정서는 옳지 않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하고 틀린 것은 고쳐야 된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앨범업자든, 여행사든 누군가가 로비를 받으면 학생들은 피해자가 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있어야 할 이유는 투명하지 못한 관행을 고치고 한 점 의혹도 없도록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사회는 전근대적인 봉건사회다.

 

교장의 이익, 교사의 이익, 학부모 운영위원의 이해관계에 따라 학교가 운영되어서는 안된다. 학교 운영이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비를 가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교장선생님에게 점수를 따서 승진하기 위해서 혹은 내 아이가 학교에서 특혜를 받기 위해서 학교장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민주적인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ㅡ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30 19:33



“당신은 왜 세상을 삐딱하게 부정적으로만 봅니까? 좀 긍정적으로 볼 수 없습니까?” 교육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긍정적으로 보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사실이나 생각 따위를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사사건건 따지거나 시비를 가리지 말자는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져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좋은 것이 좋다'거나 '부정적을 보지 말라는 사람들은 자기 약점이 많아 그 약점을 감추기 위해 대충 넘어가자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사회현상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기능론과 갈등론으로 사회를 보는 거시적 관점이요, 하나는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과 행위의 개인적 의미에 중점을 두는 미시적 관점이 있다. 

                                              <사진 : 베버와 마르크스-출처 '네이버 이미지'에서>

여기서는 거시적인 관점 즉  기능론적 관점과 갈등론적 관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기능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사회문제란 있을 수밖에 없고 능력에 따라 빈부격차나 차등이 존재한다고 본다. 기능론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회문제란 당연한 것이며 그런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본다. 사람이 유기체이듯이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도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는 기능주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는 사회란 사회의 각 부분은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통합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며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사회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베버를 비롯한 보수적인 사람들의 사회관이다.

이에 반해 ‘부정적으로 본다’는 갈등론은 사회란 희소가치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 강제와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간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투쟁이 반복되며 이러한 갈등이 사회변동에 기여한다고 본다. 사회가 구성요소들 간에 모순과 갈등, 대립과 긴장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갈등론은 사회구조는 억압되어 있고 잘못된 구조이므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소유하지 못한 계급간의 대립과 투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진보적인 사람들의 사회관이다.

 사회를 거시적인 관점이나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과 상관없이 시비를 가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와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는 동안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면서 민족을 배신하거나 독재권력과 야합해 민중을 배신한 대가로 자신의 이익을 챙긴 세력들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를 싫어한 나머지 시비를 가리는 것을 싫어 하면서 나타난 풍조다. 그들은 바른 말을 하거나 사실을 사실이라고 하면 ’빨갱이나 하는짓’이라고 색깔을 씌우거나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며 좋은 게 좋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란 ‘좋은 것은 좋다‘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도 좋고 나쁜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다. 박정희 시대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박정희시대는 데모가 없었던 것은 정치가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위가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할 말은 많지만 폭력이 무서워 침묵하거나 바른 말을 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계산적으로 침묵하는 현실을 두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다거나 정치를 잘해서 그렇다고 해서는 안 된다.

입이 있어도 바른 말을 하지 못하거나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좋은 게 좋다‘고 얼버무리는 사람이 사는 사회는 더더욱 그렇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비판이 허용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