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 하는 사람들... 꽃 중에는 장미나 모란 같이 화려한 꽃도 있지만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은 이름 모르는 풀꽃도 있다. 화려한 꽃을 피워 벌, 나비들을 설레이게 하는 꽃도 있지만 사람도, 벌 나비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풀꽃으로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꽃이 그렇다.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꽃들은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다해 꽃을 피워 내는지를...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 사이로 혹은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이름 모르는 생명의 저력과 신비를... 꽃이 좋아 꽃을 찾는 사람들은 이 생명체들이 피워내는 보이지 않는 시비한 노력까지 볼 수 있을까?


<사진출처 : 이글루스, 한강산에서>


과정은 덮어두고 결과로 평가받는 세상은 공정한 세상이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존경받는다면 정의로운 세상을 기대할 수 없다. 자본주의라는 세상이 그렇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등이 승자가 되는 세상. 소비자들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그래서 부자가 되고 재벌이 되기만 하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신화가 현실화 되는 사회에서는 정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부역질을 한 자들이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로 스펙이 되는 세상은 정의로운 세상인가?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좋게 말해 보증수표와 같은 사람이지만 더 솔직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고 변칙을 용납하지 않는 상종 못할 사람이다. 원칙이 통하는 세상, 정의로운 세상이라면 교과서 같은 사람이 대접받고 존경받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요령피우는 사람이 수단 좋은 사람으로, 적당히 좋은 게 좋은.... 변칙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보니 교과서 같은 사람은 찬밥신세를 면허가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부모들은 내 자식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랄까? 학교는 어떤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가?

교사...! 그는 누구인가?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 제자들에게 온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범을 보이는 사람...? 교과서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교사라면 알파고 세상에서 살아남을 교사는 몇 명이 될까 제자들에게 불의와 맞서 정의롭게 사는... 모습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진정한 교육자, 참된 교사가 아닐까? 그런데 지금까지 교사는 그런 사람이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교과서 외에 다른 참고서를 가르치는 것도 허용하지도 않았으며, 졸업 후에 살아 갈 세상을 안내를 해주는 교사는 더더구나 용납하지 않았다.

세상과 타협하며 요령껏 사는 사람에게 자식 교육을 맡기기를 좋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국가는 교사가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가를 교육대학 혹은 사범대학에서 길러내고 있다. 교사양성과정에서 길러내고자 하는 교사상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철학으로 교육하는 것이 훌륭한 교사라고 배웠을까? 교사들 중에는 교과서 같은 사람을 길러내겠다는 선생님들이 있는가 하면 가르치는 일은 뒷전이요, 일찍부터 승진을 위한 점수 모으기로 농어촌점수에 자료전시회니 무슨 연구발표대회며 대학원에서 점수를 모아 교감에서 교장으로 또는 장학사나 장학관으로 승진하며 대접받고 존경받으며 살겠다고 준비하는 교사도 있다.

학교생활에서 비민주적인 학교장의 독선에 맞섰다가 미운 살이 박히기도 하고 정의를 가르치면서 입으로만 바담풍할 수 없다며 반교육적인 정책에 서명했다가 교단에서 쫓겨나기도 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권력에 맞서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교육자이기 때문에 교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제자들 앞에 이중인격자로 살 수 없다는 철학이 이들로 하여금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며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땅의 부모들은 사랑하는 내 자식을 교과서만 열심히 암기시켜 좀 더 좋은 대학에 보내주는 교사에게 자식교육을 맡기고 싶을까? 사랑하는 제자들이 살아 갈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불의한 권력과 맞서 자신의 온 몸을 던져 모범을 보이는 교육자에게 자녀를 맞기고 싶을까?

사랑에 눈이 어두우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일까?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지식을 암기해 일류대학만 고집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자녀들이 어떤 삶을 살까? 출세(?)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자라 부모도 이웃도 모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왜 하지 않을까? 우리주변에는 무너진 교육으로 희생자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육은 뒷전이요, 교과서만 가르친 교육자가 만든 세상, 사랑에 눈이 어두워 내 자식만... 출세 지향적이고 이기적은 인간으로 길러낸 부모들은 정말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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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8.06.29 06:30


그 때 내 수업시간 어땠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교과서는 제쳐두고 딴 이야기만 했습니다....”

“????...!!!”

전교학생회장을 지냈던 나이가 50이 된 제자가 내 질문에 답이다. 전교조관련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1989년 고등학교 2~3학년이었던 학생이 나이가 50이 되어 우리를 초청해 만난 자리다. 학급담임도 아닌 국사와 윤리 그리고 음악을 가르치던 선생님을 보고 싶다며 6명의 제자와 제자 부부들이 함께 한 자리다. 삼천포와 창원 밀양에서 멀리 광주에서 달려 온 제자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SNS를 통해 근황을 알고 있는 친구도 있었지만 30년만에 처음 보는 친구도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준비해온 맛있는 음식도 나무며 얘기꽃을 피우다 남해 아난티호텔(구 힐튼 호텔)로 옮겼다. 바쁜 친구들 떠나고 남은 제자에게 이 친구들이 내 수업 시간이 어땠는지 궁금해 한 질문이다. 내 수업시간을 그 때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궁금해 한 질문에 돌아 온 답은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교과서는 제쳐놓고 딴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랬었지. 고리타분한 유신국정 국사과과서 그리고 동족에게 적대감만 심어주는 윤리교과서보다 나는 수업 전에 이해인의 시, 김용택, 양성우, 문익환, 김남주의 시를 읽어주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1989년 전후해 나는 수업시간에 무엇을 가르쳤을까? 당시 나는 M여상에서 국사와 윤리 과목을 담당했다. 국사와 국민윤리는 국정교과서다. 윤리교과서에는 반공이데올로기로 국사교과서에는 5·16이 혁명이요, 유신헌법은 한국적민주주의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북한의 좋은 점을 얘기하면 여지없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김일성의 독재와 북한주민들의 참상을 그리고 5.16을 혁명으로 또 한국적민주주의라고 가르쳐야 했던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적당히 교과서를 무시하는 길이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고 리영희선생님이 민중을 깨우던 시절, 나는 학생들에게 겁도 없이 광주이야기 민중의 함성이니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그리고 스스로 비둘기라고 믿는 가치에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같은 책을 소개해 주었다. 문익환목사님의 시를 읽으며 통일을, 김남주의 시를 분노를 일깨워주기도 하고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민중신학, 해방신학, 노철(노동자철학)과 세철(새계사철학)... 같은 책을 소개하느라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순종이 미덕이라며 동족에게 적개심을 심어주는 윤리교과서를 적당히 넘어 가는 싶었던 것이다.

그때 자네들은 그 때 무슨 일을 하거야?” 내 질문에 전교학생회장을 맡았던 J의 대답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교장실에 찾아가 학생회비 어디에 썼는지 장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이게 무슨...? 이럴 수가...?! 나는 처음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처음 듣는 얘기다. 착하기만 했던 순진한 여학생 대표의 입이서 이런 얘기를 들은 교장선생님의 얼굴 표정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학생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범인을 찾아라...’ 학교는 비상이 걸리고 학교장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범인색출의 대상으로 나와 고승하선생님 그리고 당시 전교조에 가입한 선생들의 짓(?)이라고 단정, 그날 이후부터 수업시간에 수업내용을 확인하는 일이 벌어지고 내 책상을 뒤짐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리학교 보물 선생님!” 당시 내게 붙었던 대명사였다. 초등학교에서 시청각기기는 물론 영사기까지 만질 줄 아는 나를 교장선생님이 그렇게 불렀다. 학교방송실을 학교행사를 촬영해 기록으로 남기고 영화를 녹화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영화를 보여주기도 하고 생방송으로 영어교재를 만들어 송출하기도 했으니 교장선생님의 나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던 것이다. 여기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가 주일학교 부장까지 맡아 봉사(?)하고 있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그런데 이런 선생이 학생들을 의식화시키는 짓(?)을 했다니...?

사립학교인 이 학교는 경남에서 아니 전국에서 시청각 교육의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당시 이 학교의 방송실은 지역 케이블 방송국보다 더 고가의 특수효과기를 갖추고 ENG촬영이 가능한 카메라와 특수효과기까지 갖추고 각 교실에 생방송을 보낼 수 있는 네트워크 체제를 완비해 놓은 학교였다. 당시 나는 스튜디오가 있는 생방송 시설로 전교생들에게 방송수업을 하거나 방송 교재를 편집, 제작해 생방송으로 수업을 할 수 있는 시설을 책임지고 있었으니 교장선생님의 신뢰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수업시간에 이상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 주는 선생이 있다는 소문은 지역에서 YMCA나 노동자교육의 현대사 강의를 요청해 왔고 금방 실체(?)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불시에 학생들 소지품 검사가 있는 날이면 방송실 캐비닛은 금방 사회과학 책들로 가득 차고 말았다. 내가 빌려줘서 돌려가며 읽는 책 학생들이 스스로 유행하던 사회과학 서점을 찾아 구입한 책들을 읽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교조 교사가 의식화교육을 시킨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학생들에게 여자는 남자가 못된 미완성의 존재가 아니라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다는 인권의식에 눈뜨게 해 주는 공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순종적인 인간이 아니라 자의식을 가진 인간, ‘민주의식’, ‘시민의식을 갖게 하는 교육이었다. 이런 교육이 교실에서 가능했던 것은 이 학교가 입시부담이 없는 실업계 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실업계를 졸업하면 바로 금융계 등으로 진출하는 학생들에게 의식화 교육이란 곧 빨갱이(?)를 만드는 교육이라고 매도당했다.

10.26사태, 12,12쿠데타 그리고 광주항쟁은 6월민중항쟁의 분위기가 학교라고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전태일열사의 분신 사건 후 대학생들은 수출자유지역인 마산과 창원공단에서 위장 취업(?)하면서 학생들과 만나 고등학교학생조직인 고협을 만들고 이런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를 배우고 학교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날 모임은 단순히 30년 전 의식화교사(?)를 만나 무용담(?)이나 나누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당시의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만들면 어떻겠는가?’는 한 친구의 제안에 공감하고 민주주의 투쟁사를 책으로 엮기로 했으니 30년 만에 만난 이 모임이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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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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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4.06.03 06:26


 

"미정아, 혜숙아, 점숙아, 현주야...!"

저는 지금도 고등학생을 둔 엄마에게 이렇게 이름을 부릅니다.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이제 직장에서도 중책을 맡기도 했다는데 그들의 모습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21년 만에 인천에 사는 제자와 창원에 사는 제자가 대구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창원에 내려가 다시 밴드를 통해 창원인근에 사는 제자들과 만남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별난 선생, 별난 제자.. 이들과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21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만나날 수 있을까? 이들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수업에 들어가기만 했던... 방송반에서 3년간 같이 생활을 했던... 1학년 때 담임을 맡기도 하고... 졸업 후 주례를 서기도 한...그런 선생과 제자 사이입니다.

 

 

1029일 저녁 7시 창원시 마산 합포구의 한 식당에 들어서자 중년이 된 아줌마 제자 5명의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몇 번 만난 제자도 있지만 21년만에 처음 만난 친구도 있습니다. 하얀 칼라의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단발머리의 고등학생이었던 제자들을 고등학생의 아들, 딸을 둔 엄마가 돼 21년만에 만났습니다.

 

 

 

 

<21년만에 만 옷을 사 와서 입혀주기도 하고, 허브족욕을 시켜는 별난 제자들...>

 

선생이 한 둘이 아닌데 선생과 제자의 만남이 별 얘깃거리도 안 되겠지만 이날 만난 제자들은 여늬 제자들과는 다른 별난 선생, 별난 제자 사이입니다.

 

1989년, 전교조 출범 전 고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1989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우리학교 보물이라고 칭찬하던 제가 하루아침에 문제교사 취급을 당해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공고가 나붙은 것입니다. 탈퇴각에에 도장 하나 못 찍는다는 이유로 학생들과 만남까지 감시당하고 수업에 들어가고 난 후면 제 책상을 뒤져 불온유인물이며 불온서적을 찾는다면 뒤지기도 하고 학생들 소지품을 검사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끝내 탈퇴각서를 쓰지 못한 이 학교 5명의 교사들을 지키겠다며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부당 징계 철회하라! 선생님, 사랑합니다라며 울며 농성을 하던 제자들... 징계위원회가 열리지 못하게 징계위원회 사무실을 밤새 지키기도 하고 깜깜한 밤에 교실에 몰래 숨어들어가 학생들의 책상 속에 유인물을 넣기도 했던 겁도 없는 친구들입니다. 그런 학생들이 고등학생의 엄마들이 되어 21년 만에 내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YMCA중등교육자협의회창립총회 앞쪽 제일 왼쪽이 필자>

 

지금은 학교 이름도 바뀌었지만 마산 여상...! 40년 교직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말하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 학교 재직시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윤리나 국사와 같은 과목을 담당했는데 책은 뒷전이었습니다. ‘지 사건으로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고 12.12사태며 광주민주화 과정을 이 학교에서 겪으면서 순진한 바보였던 저는 사회과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시간이 시작돼 교실에 들어오면 교탁위에는 학생들은 늘 드링크류 사탕 몇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 이거 뇌물 아니야?“ ”맞아요!!!”

생기가 교실에 가득 넘칩니다.

얘기해 주세요.“

수업이 일주일에 한 시간밖에 없는데 진도는 언제 나가고...?“

진도 안 나가도 돼요... 맞아요, 맞아요...!”

이런 날은 교과서 진도는 끝입니다.

삼종지도가 뭔지 안세요?” “암탉이 울면 정말 집안이 망할까요?“, ”‘좋은 게 좋다고요?“, ”시비를 가리는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요?“, ”현상과 본질은 다르답니다”, “모든 폭력은 다 나쁜가요”,....

 

이게 수업의 주제입니다. 이런 얘길하면 '김일성 가계의 모든 것, 북괴의 잔악상'과 같은 교과서를 판서하고 지도를 나가던 시간과는 표정들이 다릅니다. 학생들의 눈에서 광채기 납니다. 

 

"노동자가 천대받는 이유를 아세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세요?"

"학교는 왜 철학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이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대전에 사는 제자와 마산 그리고 인천에 사는 제자가 대전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업시간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딴 소리하도 할라치면 집단성토를 당합니다. 수업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내 집무실이기도 한 방송실에 몇몇 학생이 따라 옵니다. 책을 빌려달라는 학생, 수업시간에 궁금한 뒷얘기... 그러다 보면 개인의 가정사며 장래문제를 상담도 하고 책을 읽고 난 궁금증도 털어놓고.... 여름이면 그늘 밑에 앉아 있으면 잠시 후면 10여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쌓이게 됩니다.

 

나는 왜 의식화교사가 되었을까?

 

전교조가 탄생하기 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이상한 교육(?)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현대사 교육을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마산 YMCA에서 하는 '노동자 매움터 교실'의 강사로 가돌릭여성회관에서 하는 노동자 교육 역사강사로.... 지역사회교육 강사가 되어 밤낮으로 뛰어 다녔습니다. 강의도중 짭새(?)들이 듣고 있다며 실무자가 뒤에 서서 톤을 낮추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수강생은 강의 도중 벌떡 일어나 당신이 선생이야! 빨갱이 아니야!” 하며 밖으로 뒤쳐나기기도 했습니다.

 

 

 

전교조의 역사는 교사협의회와 중등 교육자협의회가 출벌점입니다. 당시 저는 마산지역 YMCA중등교사협의회 회장직을 맡아 거창양민학살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그 처참함에 분노해 글을 쓰기도 하고 교사협의회가 전교조로 전환하면서 전교조 마산지회초대지회장을 맡기도 합니다. 전교조 탄생의 한 축이 됐던 YMCA전국중등교육자협의회 감사를 맡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좋은 식당에 예약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면서 지난 얘기, 아이들 키우면서 살아 온 이야기, 학교시절 얘기,,,>

 

1969년 저는 경북 칠곡군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중등학교 순위고사에 두 번이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지만 발령이 나지 않아 10년만인 1979년 사립학교인 이 학교로 지원해 왔습니다. 방송실을 맡아 생방송이며 방송수업도 하고 정서교육으로 영화도 보여주며 첨단 시청각교육을 맡으면서 교장선생님이 참 아끼고 사랑해줬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감리교 장로였던 이 학교교장선생님은 권사로 또 주일학교 부장으로 학교에서는 그 어려운 방송실을 맡아 편집에 영상제작까지 했던 저를 '우리학교 보물'이라는 했습니다.

 

그런 시절 제자와 선생으로 만난 친구였으니 왜 특별하지 않겠습니까? 이 친구들을 졸업시킨 그해 가을 전교조에 탈퇴하지 않은 5명의 교사가 파면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1989년에서 1994년까지... 5년의 세월을 거리의 교사가 되어 수배와 구속 그리고 요주의 인물로 살아 온 세월이니 이들과는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지요. "선생님, 우리 시간 만들어서 선생님이 사시는 세종시로 놀러 갈께요!" 그들이 있어 늙은 교사는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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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3.12.30 07:08


“선생님! 용서를 빕니다.

벌써 10여년이 흘렀네요, 고등학교 3학년 윤리시간.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은 왜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실까? 어린 우리들에게 그런 부정적인 것을 가르치시려는 저의가 무엇일까? 수업은 하지 않고 왜 우리들에게 친일시인이 어쩌고 광주가 어떻고 그런 걸 왜 가르치려 하실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MBC에서 ‘어머니의 눈물’이라는 광주사태 특집을 보면서 철없던 고교 시절에 선생님이 왜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죄 없는 광주시민이 죽어가는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우리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을까?’ 이제야 선생님의 속뜻을 알 것 같아 이렇게 용서를 비는 편지를 씁니다...”  

 

오래 전 제자로부터 이런 내용의 편지를 한통 받았던 일이 있다.

 

 

1969년 초등학교에 첫발령을 받아 1979년 사립여상으로 옮겨 교직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1979년 10.26사태. 12.12사태 그리고 이듬해 5.16광주 민주화운동, 89년 전교조사태로 이 학교에서 해직되기까지 10년동안을 이 학교에서 보냈다. 수업 시작 전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현실문제를 예를 들어 시국관을 길러주곤 했다.

 

당시의 사회교사들은 사회과목을 담당했지만 사회과 교사는 국민윤리, 국사, 지리, 세계사, 정치, 경제, 사회문화, 법과 사회.... 등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무슨 과목이든 맡아야 했다. 일주일에 35시간을 맡아 수업해야 하는 교사에게 상치과목인 문서사무까지 담당해야했던 당시에는 교재연구시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힘겨운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교학사교과서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당시의 국민윤리 과목의 경우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는 낯 뜨거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정부의 홍보지 수준에다 북한 김일성 가계를 늘어놓고 비난하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업계의 특성상 입시준비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자연히 살아가는 얘기며 시사문제, 성평등문제가 수업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한시간 내내 토론 수업을 할 때도 있었다.

 

그 때의 사회분위기가 또한 10.26이며 12.12와 같은 민감한 사회문제며 광주민중항쟁과 같은 심각한 문제로 어디서도 진실을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언론의 왜곡보도로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은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다. 당시의 언론은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광주시내에 나타나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국민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겁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잡혀 가면 삼청교육대로 직행할 수 있었던 시절... 교실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학생들의 부모나 친인척 중에는 경찰이나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 근무하는 사람도 없다고 보장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진보적인 성향의 교인들이 다니는 교회의 모임에서 광주항쟁 비디오를 몰래 보거나 금서였던 황석영씨가 쓴 ‘죽음을 너머 시대의 어둠을 너머’라는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전해주지 않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가치혼란의 시대, 교사는 무엇으로 산느가?

 

우리는 지금 또다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비롯된 정국은 대통령 사퇴로 비화되는가 하면 교학사교과서 사건, 진교조 법외노조화, 철도노조파업 등 나라 곳곳이 갈등과 소요가 그치지 않고 있다. 급기야 종교인들까지 나서서 대통령 사퇴를 외치는 사태로 번지고 있지만 문제를 풀어야할 정치권은 속 시원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 정국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 섰다. 보다 못한 학생들이 안녕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내걸자 온통 나라가 안녕신드롬에 빠져 들고 있다.

 

가치혼란의 시대 교사가 할 일은 무엇일까? “너희들은 그런거 몰라도 돼! 공부나 해!” 그렇게 해야 할까?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국민들의 눈을 감기는 언론들이 날뛰는 세상에서 교사들은 모른채 하거나 학생들의 대자보를 경찰에나 신고하는 게 교육자가 할 일일까?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대자보에 붙였다는 이유로 학교장이 경찰서에 신고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대자보를 붙인 학생이 징계를 당할 처지에 놓여있다. 시비를 가리자면 종북으로 몰리고 진실을 보도해야할 언론은 진실을 감추고 왜곡보도나 일삼고 있다.

 

입시문제를 풀이하는 학교에서 참다운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교사, 진실을 말하려는 용기 있는 교사가 사라지고 있다. 교과서를 암기해 문제풀이를 잘 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로 대접받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어디서 진실을 배우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겠는가?

 

2013년도 이제 이틀을 남겨 놓고 있다. 새해는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 정치인이 정치하는 나라, 교사가 교육하는 나라,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나라, 부모님들이 자녀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나라가 될 수는 없을까? 상식이 통하는 세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기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 장애인들도 불편을 겪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수는 없을까? 주권자가 주인이 되는... 그래서 국민 모두가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책 보러가기-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3.10.19 07:10


38년 전 이 친구들....

 

빡빡깎은 머리... 코흘리개 친구들이 50하고도 2살 더 먹은 장년이 됐습니다. 

선생님 저 000입니다 기억 나십니까?

이름을 말하고 자세히 보면 그 때 그 모습이 생각나곤했습니다. 이상하게도 나이는 먹었어도 옛날 그 때 그 얼굴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내가 6학년 1반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들의 앨범입니다.

이 학교는 제가 1969년 첫발령을 받은 후 3번째로 부임해 간 학교였습니다.

 

 

이 코흘리개 학생들이 이런 모습으로 바뀌리라는 것을 어떻게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대부분 제자들의 자녀들이 대학을 다니거나 늦게 결혼한 제자들은 고등학생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제자는 사위를 봤다고 하더군요. 아마 얼마 있으면 곧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나이입니다.

 

10월 15일...  이날 모임에는 전국 방방곳곳에 흩어져 살던 제자들이 32명이나 모였습니다.

한 학년이 2반 밖에 없었는데 제가 6학년 1반이었고, 2반 담임선생님은 이날 아깝게도 급한 일이 생겨 참석을 하지 못했답니다. 

 

아래 사진은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상주에서 고등학교 교감으로 정년퇴임하신 선생님입니다. 이 선생임의 소개로 이날 행사를 이곳 상주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등산코스를 설명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마치 옛날 교실에서 수업하던 학생들처럼 진지하게 듣고 있습니다.   

 

 

 

이날의 일정은 상주 낙동간 생태문화탐방로을 따라 나각산정상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오늘 만난 제자들은 몇년 전에 만난 친구들도 있지만 38년 만에 오늘 처음 참가한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옛날 얘기를 나누며 추억을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낙단보에서 나각산 전망대를거쳐 출렁다리까지 갔다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선생님... 달리기를 참 잘하셨던 거 기억 나십니까?"

"선생님 저한테 이런저런 신부름 하신 것 기억 나십니까?"

"우리 학교 다닐 때 선생님 결혼하셨지요?"

"선생님, 운동회 때 저 덤블링 가르쳐 주신 것 기억 나십니까?"

 

용케도  많은 걸 기억하고 있었다. 심부름 한 내용까지... 운동회 때 일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힘든 등산이 벌써 정상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함께 걷다 기념 촬영도 하고....

 

 

 

 

 

 

나각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가을 들판은 농부들의 땀흘린 수고로 풍년을 맺고 결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모습... 나각산 정상에서 본 아름다운 상주 경천사의 절경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참으로 볼폼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상주는 감이 유명하지요. 저 감으로 꽂감을 만들어 전국시장을 석권하고 있답니다. 감나무 아래에는 단감이 떨어져 있었지만 일손이 바쁜 주인은 그걸 주울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있었던 과일.. 이과일나무가 고염나무랍니다. 고염을 늦가을에 따서 독에 넣어 묻어두면 겨울 내내 자녀들의 간식거리가 됐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요즈음은 고염나무를 보기 어렵더군요. 

  

 

상주에 만들어진 낙단보입니다.

4대강 굽이마다 이명박은 이렇게 강을 요절내 놓았습니다.

그런 강가에는 길손 없는 자전거 길만 외롭게 낙동강을 지키고 있었지요. 

  

 

등산 후 점심시간...

맛있는 점심보다 더 맛있는 추억담을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60이 넘은 제자들이 선생님 앞에서 재롱잔치가 벌어졌습니다.

 

38년 전으로 돌아간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늙은 우리도 옛날의 20대 청년이 되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헤어지면 직장따라 곳곳에 흩으져 살겠지만 오늘의 아름다운 추억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38년 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추억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제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남기고 아쉬운 기가길에 올랐습니다. 

구미역까지 따라와 손을 잡고 헤어지기 아쉬워한 제자들... 아마 내가 사는 세종시를 찾아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떠나는 차창에서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 주던 제자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늘 참석하지 못한 제자들까지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람니다.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 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에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함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주를 알고생각할 때에 고집하지 않게 하시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하옵소서

 

원하옵니다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선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처 주옵소서

 

그 마음이 개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 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 내 아들에게 유우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더글라스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맥아더장군이 우리민족에 어떤 사람인가는 여기서 잠간 논란을 접자. 그러나 그의 자녀에 대한 기도문은 경쟁교육, 승자지상주의 나라에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와 입시교육에 지친 교사들에게 많은 걸 시사(示唆)해 준다.

 

교사들은 가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장차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을까?' 자문자답할 때가 있다. 물론 맥아더의 기도처럼 분별력이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겸손한 사람.... 이렇게 완벽한 인격체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누군들 다를까 만은 상업주의 문화 속에서 남의 흉내를 내면서 사는 아이들을 보면, ‘감각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하는 욕심 아닌 욕심을 내기도 한다.

 

 

급변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교사나 학부모들은 자기의 제자나 자녀들이 어떤 사람으로 커 주기를 바랄까? 사람에 따라서는 '정직한 사람'으로 또는 '착한 사람', 혹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커 줬으면 하고 기대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나 교사들은 한결같이 '순종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기를 바란다.

 

공부만 잘하면 어지간히 짜증을 부려도, 버릇이 나빠도, 자잘한 잘못이 있어도... 다 용서가 된다. 심지어 학교에서 윤리평가에서는 '성적이 좋은 아이가 예의바른 학생'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주는 상을 보면 대부분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상을 준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학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는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도 직장에서 적응을 잘고 사업도 잘 하는 사람일까? 학교에서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 사회의 열등생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원칙만 배운 학생이 변칙이 지배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말한다. '너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잘 외우고 시험을 잘 치는 학생이 일류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서 대접을 받고 살아 왔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많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와 그 훌륭한 사람들이 살아 온 길을 보면 실망과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일류대학을 나와 해외유학이며 박사학위에 하나같이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불법과 탈법으로 세상을 살아왔을까?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변명을 하는 모습을 보면 지식인들의 또 다른 얼굴에 배신감마저 느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소신도 철학도 없이 살아 온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일까?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이 많은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아는 것은 많지만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더더욱 불행한 사회다. '착한 사람, 겸손한 사람, 정직한 사람... '들이 많이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러나 착하고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을 무시하고 이용해 출세하고 부를 쌓고 출세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의 편에 서는 사람,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더더욱 불행한 사회다.

 

교사들은 나의 제자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랄까? 공부를 잘하고 ‘품행이 방정해 우등상을 받는 것도 좋지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어른이 된 후에도 비록 화려한 학력과 학위를 갖지 못하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와 가난하더라도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11.05 07:00


 

 

나의 교직생활 마지막 정년퇴임 학교인 합포고등학교 재직 때의 일이다.

 

스승의 날이라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학교에 꽃바구니를 든 참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선생님!

저 마산여상 00회 졸업생 이연줍니다."

 

그렇게 반갑게 꽃을 안기며 찾아 온 제자에게 야속하게도 나는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일년내내 말썽한 번 부리지도 않고 자신의 할 일만 성실하게 하는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 학급 담임도 맡지 않고 교과담임만 맡은 교사에게는 그래서 특별한 제자가 없다.

 

학교임원을 맡거나, 성적이 특별히 좋거나 혹은 나쁘지도 않은 학생, 또 특별히 선행이나 문제가 될 일을 저지르지 않는 평범한 학생(?)은 세월이 지나도 교사의 기억에 별로 남아 있는 게 없다. 그것도 일주일에 30시간 정도를 두서너 과목을 맡아하던 그 시절에는 더더구나 그랬다.

 

여상을 졸업한 제자들은 대부분 취업을 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취업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훌쩍 세월을 보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씩 찾아와 사는 얘기도 하고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어렵게 공부했으니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땅을 사 둔게 있어 학교를 지어 좋은 교육을 하고 싶다고 터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숙형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 이모저모입니다-자료-다음검색에서>

 

그런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정년퇴임을 했고, 어쩌다 공립대안학교를 설립하는데 TF팀장을 맡아 보수도 없는 학교에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추천한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청으로 대장암 수술을 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몸으로 ‘대안학교지원센터장’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이름으로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정념퇴임을 한 사람은 공립학교에 공식적인 직함으로 일 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채식도 하고 몸 관리도 해야 하는 기간에 신설하교, 환경호로몬이 남아있는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은 어쩌면 목숨(?)을 건 행위이기도 했지만 설립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업보려니 생각하고 그런 삶을 시작했다. 당시 기숙형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는 대

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랬듯이 퇴근도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공립대안학교. 그것도 기숙형이라니... 성적이 좋지 않아도 되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 체벌은 물론 징계조차도 스스로 회의에서 결정하는 그런 대안학교라는 소문이 나자 지원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어느날 갑자기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자퇴를 한 학생, 죽어도 학교가 싫다는 학생들조차 적응도 잘하고 재미를 붙이는 모습을 보고 부모들은 너도 나도 아들딸을 데리고 입학을 신청했다.

 

한 한급에 35명, 한정된 3학급이 전부인 이 학교 학생 모집에 입학을 못해 낙담하는 학생과 박부모를 보면서 이런 대안학교을 많이 설립해야 하는데, 정부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문제아로 보고 착한학생(?)들이 물들지 않도록 분리해야 하다면 ‘위스쿨을 짓고 위클래스’를 만들어 문제아 수용소를 만들고 있었다.

 

        <보리학교 활동 모습입니다. 보리학교 카페에서.... http://cafe.daum.net/hi-changdong >

 

이 학교에 기숙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에 함께했던 김상열선생님과 시간이 되면 가끔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곤 했다. 그러다 이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듬어 줄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이런 소식을 들은 나를 찾아왔던 지금은 대학생을 둔 어머니가 된 제자 이연주가 적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며 시작한 게 보리하교(전 별초학교)다. 창원시 부림시장에 입구 3층에 문을 연 이름은 학교지만 정규 교육과정도 없고 교과서도 정해진 게 없었다.

 

‘학교가 싫은 아이들, 마음 붙을 곳이 없는 학생들은 다 오너라!’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이 무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시간만 나면 야외로 산으로 바다로 나갔다. 중학교에 근무하시는 이병규, 과학선생님, 진영욱, 고등학교 국어선생님, 태봉고등학교 사회과 김상렬선생님, 영어과 맹혜영선생님.... 많은 선생님들이 그런 뜻이라면 시간을 아끼지 않고 참여 했다. 전교조 마산지회선생임들... 어떤 초등학교선생님은 자신이 무슨 일이라도 돕겠다며 스스로 찾아오기도 했다.

 

 

시장에 문을 연 보리학교는 제자가 전세자금과 월세를 책임지고 또 상근자임금과 경비까지 후원해 주는 바람에 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찾아갔다. 이런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방학이며 제주도로 지리산으로, 독서나 그림공부도 하고 상담교사를 초청 학부모와 함께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을 따로 지도해 검정고시를 치르게 했다. 예상외로 1년이 지나 3명의 학생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대로는 안 된다. 제자 한사람에게 이런 짐을 지우는게 옛 스승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생각하다 떠오른 게 ‘법인으로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자를 법인 이사장으로 그리고 몸으로 봉사하는 선생님과 물적이 지원을 해주시는 이사들이 하나가 돼 지난여름 드디어 ‘가온누리센터, 보리학교’로 법인이 허가가 나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33년이 지난 지금 이 자랑스런 제자와 나는 사제지간이었던 사이가 현재는 법인 이사장과 학교장이라는 사이가 된 사연이다.

 

<보리학교 학생들의 행복한 생활... 제주도로 지리산으로 그리고 체험학습을 하는 모습입니다>

 

현재 우리가 운영하는 보리학교(법)에는 창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황금령씨, 경남도민일보 기주완편집국장을 비롯해 창원대학교 이성철교수님,  창원시의회 이옥선의원, 그리고 현직교사로서 이사를 맡고 있는 이병규, 맹혜영, 진영욱, 현재 상근을 하시는 정수호선생님.. 이연주이사장과 김용택... 이렇게 10명이 함께하고 있다. 그 밖에도 우리는 후원해 주시는 많은 후원회원님들이 있어 앞으로 갈곳없는 아이들의 쉼터로서 뿌리 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단풍이 곱게 내리는 계절이면 “선생님! 우리 동기회에서 선운사 단풍놀이에 선생님과 함께 하기로 했으니 꼭 오십시오”라는 제자들이 있는가 하면 30년도 훨씬 더 지난 제자들이 블로그를 보고 인천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청주로 한걸음에 달려와 “선생님 그 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라며 어께 자랑을 하는 제자도 있다.

 

이번 허리 수술 소식을 듣고 ‘내가 가서 우리선생님 안아드려야 빨리 낫는다’며 천리를 멀다않고 한달음에 달려와 함께 걱정을 해 주는 친구며 카페에서 많은 제자들이 하나같이 빠른 회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다음 블친들도 늙은이 건강을 하나같이 해줘 고맙고 행복하다.  

 

나이가 들어 찾는 이가 없는 노후는 더더욱 외롭고 쓸쓸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와 함께하는 갈곳없는 아이들에게 대안학교를 열어 함께 하는 제자를 둔 나는 참 행운아다. 어렵게 공부했으니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면 살겠다는 이런 착한 제자의 기특한 삶을 경남도민일보 ‘피플파워(11월호)는 그의 선행을 ‘Happy 나누는 사람’에 자세히 소개해 놓았다. 이연주이사장의 꿈이 더더욱 영글어지도록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며 살겠다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2.04.11 06:30


 

 

 

 

 

 

“이 사람들아, 내가 찾아가면 될 텐데....”

“아닙니다. 저희들이 당연히 찾아 가야지요”

 

 

한사코 만류하는 내 청을 거절하고 대구에서 왜관에서 인천에서 서울에서 달려 온 34년 전 제자들...

 

34년 전 12~3살짜리 6학년 꼬마들이 45세의 건장한 장년이 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어쩌랴! 처음 본 순간 한사람도 알아볼 수 없었으니.... “저 00니다. 전화로 연락했던 친구 한명은 이름을 들었기 때문에 이름만 기억했지 34년이나 지난 세월의 기억을 찾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한명도 아니고... 열명이나 나타났으니....

 

“선생님, 00는 인천에서 지금 오고 있습니다. 차가 밀려서 좀 늦는 모양입니다. 00, 00는 서울에서 오고 있답니다.”

 

 

 

 

이사를 다니느라고 잊어버린 앨범을 제자들이 들고와 옛날 모습과 한 명 한 명 비교해 가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어쩌랴! 옛날 얼굴들을 보면서 그 때 개구쟁이 모습들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지만 현재의 얼굴은 아무래도 매치가 안 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벌써 고등학교나 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아버지 어머니들이 됐으니....

 

“어떻게 날 찾을 수 있었지?”

 

“ㅊ대학에 근무하는 000가 인터넷 검색에서 찾았답니다.”

다행이 내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만나지 못할뻔 했던 소중한 사람들.... 인터넷이 좋긴 좋다.

 

“선생님은 옛날 모습 그대로 이십니다”

“선생님! 그 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허~ 내가 공포의 대상...?

 

 

 

 

시험을 친 후 석차를 내 게시판에 성적표를 붙이던 시절이었으니....그리고 내 성격에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으니.. 그랬을지도...

 

성적을 올리려고 퇴근 후 철판으로 시험지를 끍어 일일이 등사판으로 복사해 시험을 치던 시절이었으니....

 

34년 전의 기억이 소록소록 되살아난다.

 

이 친구들은 내 모습뿐만 아니라 34년 전의 수업시간이며 심부름했던 일까지도 잘도 기억하고 있었다. 과학주임을 하면서 시청각실에서 수업했던 일이며 기계체조를 했던 덕분(?)에 운동회 때마다 덤블링 연습을 하느라고 고생시켰던 일이며....

 

식당으로 옮겨 짧은 시간에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인천으로 대구로 돌아가야 할 친구들이어서 오랫동안 잡고 있을 수 없었지만 마음 같아서는 밤새도록 살아 왔던 얘기며 살아가는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선생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행복한 순간들....

함께 오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오지 못한 친구들.... 귀한 시간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 온 고마운 친구들... 더더욱 미안한 것은 인천에서 남자도 아닌 여자가 청주까지 혼자서 한걸음에 달려 왔다니... 또 늦은 시간에 다시 혼자서 돌아가는 걸 보니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도 이 친구들은 카페를 만들어 서로들 사는 얘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인연이란 게 뭔지... ?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감동의 시간을 만들어 준 제자들의 고마운 마음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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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 다음 검색에서>

“야, 임마! 내가 너희 선배야! 알겠어?”

나는 처음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저 선생님이 왜 저런 얘기를 학생에게 할까?  ‘나는 “학생부 부장인데....” 그렇게 말하지 않고 “내가 너희 선배야!”라고 했을까?

교사로서가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에게 하는 따뜻한 말이니까 잘 들으라는 얘길까?

실업계 학교인 이학교에는 유난히 선배가 많다. 일제시대 공부를 잘해야 입학할 수 있었던 학교. 해방 후 이 학교 졸업생들이 정계를 비롯해 지역의 실세(?)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학교다.

세월이 지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는데다 인문과 실업계로 나뉘어지면서 실업계인 이 학교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오는 학교(?)가 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됐다 복직해 돌아 온 학교. 5년간의 공백이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해직되기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교사 휴게실’이라는 게 생겨 있었다. 제법 분위기 있게 꾸며 놓고 편안한 소파도 갖다 놓았다. 학교에 따라서는 선생님들이 마실 수 있도록 음료수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상담실이 있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불러 지도하면 말썽꾼(?)의 기를 죽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인지 학생부 부장선생님은 가끔 이 장소를 활용하곤 한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취향뿐만 아니다. 교장, 교감을 빼면 상사가 없는 특이한 조직사회인 학교에는 가끔 이상한 모습을 본다.

부장교사
라는 직함이 직위가 아니라 직무라는 걸 모르는지 늘 평교사 위에 군림하려는 선생님이 있다. 이 날도 몽둥이를 손에 들고 말썽 부리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하는 말이 그렇다.

저 선생님은 ‘왜 교사로서 학생을 지도하는 게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를 지도’하기를 좋아할까? 내가 유명한 명문학교 선배니까 너희들이 이 학교 명예를 더럽힌다는 모교사랑 때문일까? 아니며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사보다 지도하기 보다 감동을 더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아이들 지도뿐만 아니라 학교 안에는 가끔 이상한 문화를 발견한다. 선생님들 중에는 학교 안에서 동료교사를 ‘형님’ 혹은 ‘선배’로 호칭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말씨도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이 아니고 하대를 한다.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들 중에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어이~ 이선생, 김선생~” 이렇게 하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 직위가 높기 때문에? 아니면 나이가 많기 때문에...? 회사나 기업체라면 몰라도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상호 존중하는 모습이 아니라 지시와 복종이라는 계급문화를 보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입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교육입니다"


내가 초임교사시절 정년을 몇 달 남겨놓지 않은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막내 아들 딸벌이 되는 젊은 교사에게 깎듯이 존대어를 쓰셨다. 한번은 사석에서 말씀을 낮추라고 부탁드렸지만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지요. 아이들 앞에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교육이랍니다.”

그 후 나는 아무리 친한 선생님이라고 해도 학교 안에서는 반드시 존댓말을 썼다. 아니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젊은 사람에게 하대를 하지 않는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무시당한 적은 한번도 없다.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보여 ‘우리가 남이가..’라는 문화를 정당화시키는 ‘형님문화’, ‘선배’문화는 교직사회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광주와 경기에 이어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됐다.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점진적으로 학생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아무리 수구세력들이 기를 쓰고 반대해도 학생을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학교는 의도적인 교육의 장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은 다 교사여야 한다. ‘나는 행행정실 직원이기 때문에...’ 혹은 ‘나는 급식소 조리사이기 때문에...’ 가 아니다. 그들의 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피교육자들에게 본이 되고 교육적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학생망국조례라고 걱정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통제와 단속, 체벌이 없으면 교육이 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선생님도 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가? 무시당하며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학교이기 때문에 교사 상호간 혹은 교사와 학생 간에는 더더욱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학교는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쳐 주는 곳이기도 하다. 교육자가 없는 학교,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학교에 무슨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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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지금도 국민교육헌장을 외울 수 있습니다. 한번 외워 볼까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안으로 자주국방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일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40년 전 제자들과 선운사에 갔다 오면서 나온 얘기다. 50이 넘은 제자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암울했던 시절. 4.18 혁명을 총칼로 무너뜨린 5·16쿠데타가 일어난 후 학교 교실 벽에 필수 환경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을 게시하도록 했다. 공무원이나 군인은 물론 코흘리게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의무적으로 외우게 했던 게 혁명공약이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전국토를 병영화하고 전국민을 사병화한 쿠데타도 모자라 장기집권을 위한 시나리오가 유신헌법이다.

1972년 10월17일 드디어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주권자들은 권력의 폭압에 숨죽이며 살아야했다. 유신 철조망 속에 갇힌 나라에는 초등학생들 머릿속에 까지 ’혁명공약‘으로 세뇌시키던 시절. 그 시절. 학교 교실마다 '국민교육헌장'을 붙여놓고 달달 외우도록하고 모든 공무원들이 그랬듯이 나는 이 학교에서 박정희 군사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학부모를 찾아다니며 유신 홍보사 노릇을 해야 했다.

 


#.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유신헌법 홍보사 역할을 해야했던 교사.

유신헌법이 선포된 1972년. 경북칠곡군약목면 ‘약동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부끄러운 교사시절....

까까머리 소년, 단반머리 소녀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지켜보는 교실 전면 흑판 왼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정면에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붙어 있었다. 전면 벽에는 전지 한 장 크기의 백지에 ‘국민교육헌장’이 괴물처럼 교실을 감시하고 있었던 시절. 나는 국사정권이 만든 반공교과서를 금과옥조처럼 가르치고 혁명공약을 암기시켜야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안으로 자주국방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박정희는 1962년 4·19혁명을 총칼로 뒤집고 ‘혁명공약’을 발표. 철권정치를 시작했다. 집권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는 1972년 유신헌법을 선포. 교사들까지 동원해 마을 단위로 책임구역을 배정해 유신헌법 홍보를 강요했다.

학교에서는 가정방문 계획을 수립 ‘유신헙법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헌법’이라는 사전 교육을 받고 순박한 시골사람에게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악법 홍보사로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그 시절 1972~4년까지 근무했던 학교.. 그 학교가 경북칠곡군약목면에 있는 ‘약동초등학교’였다.이런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고 있어 부끄러운 지난날을 떠올리게 했다.


#. 부끄러운 이야기 둘. 아이들에게 민주의식도 역사의식도 심어주지 못하는 지식전달자였다.

지금은 50이 넘어 장년이 된 제자들... 당시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선생이었을까?

의식이 없는 교사... 그런 교사는 제자들에게 지식전달을 하는 판매상이나 다름없다. 초등학생에게 민주의식이니 역사의식... 그런 교육이 가능할까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교사의 능력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내가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찌들대로 찌든 교실에서 수업 전 5~6분간 ‘세상읽기’ 시간을 활용 시사문제를 통한 논술지도를 하며 지냈다. 5분만 삶을 얘기하면 ‘선생님 공부합시다’ 하는 아이들에게도 나는 삶을 눈뜨게 하는 의식화 교육을 포기 하지 않았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나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어떤 여자가 아름다운 여자일까?’

이성에 호기심이 큰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금방 눈이 반짝반짝해 진다.

“얼굴이 잘 생긴 여자요!”
“몸매가 늘씬한 여자요!”
“돈이 많은 여자요!” 온갖 소리가 다 나온다.
“얼굴이 예쁘다고 마음씨도 예쁠까?”
조용해진다.

“겉으로 보이는 건 현상이야!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도벽성이 있으나 사회성이 좋지 못하면 남편되는 사람은 평생 힘들게 살아야 하는거야!”
이렇게 ‘현상과 본질’에 대한 얘기를 하고 부분과 전체에 대해 내용과 형식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교육자란 제자들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거다. 해서 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교육이다.

초등학교라고 못할 리 없다. 그것은 교사의 척학이요, 신념의 문제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는 40년 전 초등학교 제자들에게 그런 교육을 하지 못했다. 다만 인간적으로 다정하게 그리고 편애하지 않고 많은 지식을 전달자 정도의 교사였고 그런 교사가 좋은 교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부끄러운 이야기 셋.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가르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가족도 이웃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 내 이웃, 내 나라, 우리 문화, 우리 역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 후회스런 삶을 살지 않는다.

아무리 유신시절이라도... 아무리 교과서를 암기시키는 지식 전달자라도 기본적인 철학을 가진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게도 제자들에게 삶의 안내자가 아닌 지식전달자로서 역할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 제자들을 만나면 선생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부끄러운 교사라는 미안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물론 인간적인 교사... 편애하지 않고 다정다감한 교사도 좋다. 그러나 교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이전에 삶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식이 아니라 삶의 안내자, 사랑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다. 

말썽을 피우고 비뚤어진 행동을 하더라도 그들의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인내로 그들을 지켜주는 교사. 그런 역할을 다 감당하지 못했기에 이들을 만나면 미안하고 부끄럽다. 아무리 유신시절. 권력의 눈치를 보며 움추리며 살았던 교사였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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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는 이야기2011.10.18 06:13




어제 글에서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제자일까요? 질문했던 선생님께 감사패를 전달하는 제자(왼쪽)와 오른 쪽 정경재선생님!입니다.

6-1반 담임 김용택, 6-2반 담임 정경재선생님... 첫발령을 받고 부임하신 정경제 선생님이 벌써 환갑을 넘기신 노인(?)이 된 선생님. 

두분 선생님 중 한 분은 명예퇴임을 하시고 기간제교사로 한 분은 상주공고에서 아직도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정년 퇴임을 한 지 5년이란 세월이 지났고요.

아래 저의 사진을 보면
'이런 때도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 참! 저는 이 때 결혼을 한 신혼시절이었답니다.


약동초등학교 27회 졸업생 앨범입니다.(제가 담임했던 6학년 1반입니다) 
이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 보시겠습니까?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40년 전인 1972년 초등학교 6학년 담임과 제자들이 만나는 날...
까까머리 단발머리 소년소녀가 50이 넘은 장년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2011년 10월 16일 아침 동대구 역 앞에서 아침6시 20분 출발... 전라북도 선운사까지 12시간 10분에 도착. 무려 여섯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대구까지 아침 그 시간에 갈 수 없어 하루 전 대구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 모텔에서 신세를 지고 찾아간 곳. 동대구역에서 출발 왜관 구미를 거쳐 선운사가지 가면서 차 안에서 선생님들과 제자들의 근황을 듣고 지난 얘기며 살아 온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약 3년 전 영덕군병곡면에 있는 대진해수욕장까지 함께 다녀 온 후 그 때 만난 친구들도 있지만 내년 2월이면 만 40년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습니다.

떠나기 전날 졸업 앨범을 꺼내놓고 이름을 익혔지만 실제로 만나 얼굴을 본 순간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버스에 올라와 손을 잡고

“선생님 저 000입니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연락 못드려 죄송합니다” 반백이 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사위를 보고 손자까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제자가 있는 가하면 사업을 하는 친구.. 교사가 된 친구, 하원을 운영하는 친구. 교도관이 되어 있기도 하고 방속국에 근무하는 친구... 등등, 무엇보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 온 모습을 보는 선생님들의 마음은 감동 그 제체였습니다.

40년이 지났지만...
중간 휴게소에서 선생님들께 꽃다발을 전하고...
우리는 그냥 고맙게 열심히 살아 온 제자들이 대견스럽고 오히려 고마운데....
이 사람들은 감사패까지...


왼쪽이 제자, 오른쪽인 꽃다발을 받은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저의 사진은 운전기사님께 부탁했더니 사진이 없더군요.  

감사패와 꽃다발 그리고 선물까지....


땅바닥에 앉아 제자들과 먹는 밥맛은 꿀맛이었습니다. 
각반  53 ~4면 중에 43명이 40년이 지난 세월에 함께 모이다니...  
언제 이렇게 많은 음식을 준비했는지...


산행을 한 친구들은 빠지고 선운사 경내를둘러보다 한 컷...

천년 고찰 선운사에서 먹는 가을 맛이 나는 물 맛은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었습니다.  


등산 간 친구들이 돌아 올때까지 찻집에서 나누는 정담이며 막걸리 맛이란...
 


오는 길에 풍산 장어 집에 가서 몸 보신도 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얘기 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비록 짧은 하루 뿐인 시간이었지만 이들과 만나 행복했던 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행복한 살믱 현장에서 또 열심히 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준 제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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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 첫 발령을 받은 학교.
경북 칠곡군 석적초등학교
1969년 26세에 열두살짜리 4학년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과 40년만에 만났습니다.
총동창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첫발령 받은 기분으로 찾아간 학교.
코흘리게 꼬마들이 50이 넘은 장년이 되어 이런 모습으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는 도시와는 달리 상당 수 지역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보니 옛날 열한두살 때 얼굴은 기억 나는데 현재의 모습은 세월을 담아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넌 키가 작아 제일 앞자리에 앉았지?"
"너는 집이 남율동이었잖아?"
이름을 보며 잊었던 40년을 되살리고...
"우리가 특히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 것은 하루 한가지씩 동화를 들려 주셨잖아요?"
 첫 발령지 학교에서 겨우 1년 반 만에... 본인이 원하지도 않은 학교로 강제 전출당하게 된사연이 있습니다.
전화도 전기도 없었던 학교.
사택이라고 임시로 지은 가건물에 처녀, 총각..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살림을 하고 있었고....
왜관에서 출퇴근하시는 선생님이 퇴근하고 나면 산 밑의 동네에는 개 짖는 소리와 개구리만 들리는 학교.
선생님 수가 적어 연탄불을 피우는 숙직실에 숙직은 왜 그리 자주 돌아 오는지...
언젠가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하루종일 머리가 아파 수업읋 하기도 어려웠던 때도 있었고,,,,
이런 학교에 발령을 받아 오신 교장선생님이 한 가족처럼 아들 딸처럼 가르치고 이끌어 주셨으면 얼마나 좋아을까?
장학사의 기질이 있어서일까?
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환경정리며 수업시간에 찾아와 메모를 했다가 직원 회의 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던 교장선생님 때문에...
학교 생활뿐만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학부모가 선생님들에게 보낸 수박을 교육청에 선물을 했다는 어떤 선생님의 제보(?)로 혈기 왕성한 초년병(교장 교감을 빼면 열명 선생님 대부분이 초임 내지는 굦빅경력 2~3년) 선생님들의 오기를 자국했던것.

퇴근 전 나무 그늘 밑에서
"우리 사표를내면 어떨까?"
어떤 선생님의 제안에 
"좋다. 집단으로 사표를 내자!"
무시무시한 음모를 이렇게 간단하게 결정하고 그자리에서 도장을 써서 교육청이 있는 왜관에서 퇴근하는 선생님편에 교육청으로 전하고...
이튿날 10명의 교사 전원이 출근하지 않고 사택에 있던 선생님조차 떠나버렸는데...
사건이 어떻게 전개 됐을까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4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만큼 잘정돈되고 첨단 시설로 꾸며진 교실...>
집단 사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씩 둘씩 강제내신으로 울며 떠났던 학교....
69년 첫발령.
70년에 그런 일을 저지르고 이듬에 1년반 만에 쫒겨났던 학교...
나도 잊을 수 없었지만 그때 열 한두살짜리 제자들도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꽃을 달지만 않았으면 누가 선생님인지 누가 제자인지 구별이 될까?>
40년이라는 세워이 지나간 학교!
전교생이라야 겨우 67명(?).
1936년 개교한 이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 초등학교라기 보다 
지역의 주민들의 구심체가 되는 공동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작은학교 죽이기...'
'학생이 100명 이하인 학교 폐교'라는 정부 방침에 용케도 살아남아 있는 이학교는 겉으로는 40년 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70이 넘은 선배들과 30대 후배들이 만난 하루는 나이와 동기를 떠나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를 초청한 제자(33회)들이 주체가 되어 연 지역축제.
군수며 읍장이며 파출소장까지 오셔서 축사를 하고...
풍부한 식견과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 지혜를 가르치지 못했다는 미안함보다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달려간 40년전. 한 일보다 받은 대접이 커서 미안한 짐을 떠안고 오긴 했지만 이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는 모습에 마음 흐믓함은 교사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 아닐까? 
아내와 기어이 사진을 찍겠다며 포즈를 취한 제자(왼쪽)...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 친구는 3살짜리 손자 사진을 휴대폰에 담고 다니며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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