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경쟁시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8.24 민주주의의 함정, 다수결에 대하여... (4)
  2. 2010.11.15 부도덕한 사회에서 양심지키기
민주주의2018. 8. 24. 06:45


문재인정부는 다수결을 참 좋아 하는 것 같다. 아마 국민들의 여론에 귀기우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뿐만 아니다. 민주주의사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수결에 익숙하다.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부터 일상생활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거부감 없이 익숙하게 적용해 해결한다. 이렇게 편리한 다수결, 좋기만 한가? 모두에게 유익한가? 다수결로 결정한 결과가 모두에게 공정한가?

<사진출처 : 소년한국일보>

20121219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가 진행됐다. 투표결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득표율 3.53%, 표차 1,080,496표 차이로 2위를 기록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전국 유권자 40,507,842명 중 48.0%14,692,632명은 박근혜가 아닌 문재인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다수결의 원리는 14,692,632명의 권리를 묵살하고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다수대표제라는 의사결정이 만든 결과는 그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700만 유권자들이 권좌에서 몰아냈다. 박근혜는 당선되는 순간부터 유권자를 위해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나라의 주인행세를 시작했다. 그에게 주어진 주권자의 권력은 폭력이 되어 유권자들의 숨통을 조였다. 국정농단도 모자라 역사까지 왜곡해 사유화하려 했다. 헌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불나방처럼 몰려든 사이비 지식인들과 함께 하이에나처럼 주권자들을 농락했다. 문재인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 격으로 살아야 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란 때로는 이렇게 폭력이 되기도 하고 정치실패를 만들어놓기도 한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후 1년간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뜨거운 감자입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국가교육회의라는 기구를 만들어 교육을 살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 17일 교육부총리가 발표한 임시대책을 보면 교육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공교육정상화에 역행하는 개악안을 발표해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다수결이란 합의를 이끌어내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소수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잘못될 위험이 적다는 전제 하에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이 선택했다고 그것이 진리이며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다수와 소수 사이의 신뢰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 되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면 당연히 다수의 횡포에 소수는 피해자가 되기 마련이다.

완정경쟁시장이라는 현실에는 없고 이론에만 있는 시장이 있다. 공정한 가격, 생산자도 손해를 보지 않고 소비자도 피해를 입지 않는 그런 전재하게 형성되는 시장이다. 공정가격이 형성되는 시장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는 모두 동질적이어야 하고, 시장 참여자는 모두 완전한 정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모든 상품의 품질이 같기 때문에 충분히 많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존재할 때 형성된다. 다수결의 원리도 시장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전재 하에 출발한 자본주의가 만든 함정이지만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평행선을 달리 때 다수결은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이라고 합리화시키지만 일는 이런 방법은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는 전제하에 택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이러한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외피를 입고 생활 속에 불편 없이 남용 될 때 우리사회는 약자는 피해자로 고통을 받아야 한다. 양극화문제를 보자.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국가가 생기고 정치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정치가 강자의 편에 서서 만든 세상이 양극화가 아닌가?

불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동원된 지식인들이 만든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강자들은 그들이 만든 논리를 교육으로 혹은 언론으로 정당화시켜 순진한 국민들을 운명론으로 살아가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주권자들이 주인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다수결원리가 실현되기 위해서 다수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되어야 하고,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소수의 주장이 자유로이 표명될 수 있어야 한다. 토론과 타협의 과정도 없이 편의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결정하는 방법. 이런 결정은 다수를 피해자로 만든다. 이런 다수결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폭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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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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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도 어쩔수 없는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2018.08.24 06: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다수결....그래도 모두가 따르는 원칙이지요.
    ㅎㅎ

    잘 보고가요

    2018.08.24 13: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sns의 활성화로 이제 얼마든지 화상회의오 같은 방법으로 작접민주주의가 가능한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2018.08.24 16:39 신고 [ ADDR : EDIT/ DEL ]

인성교육자료2010. 11. 15. 13:39



 
조건이 동일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명문규정을 두고 있어 노력여하에 따라 출세가 보장되는 공평한 사회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완전한 기회균등이 보장된 사회인지를 살펴보자.

시장도 완전경쟁시장과 불완전경쟁시장이 있다.
완전경쟁이란 경쟁의 순수성의 조건과 시장의 완전성의 조건이 충족된 경우를 말한다.

첫째, 시장의 순수성의 조건이란 동종의 상품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다수인 동일공간에서 한사람의 거래량이 시장전체의 거래량에 비해 무시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 판매자나 구매자가 독단적으로 가격을 조작할 수 없고 상호간에 적대관계도 생기지 않는다.

둘째, 완전시장의 조건은 각 경제주체가 합리적 행동을 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야 한다. 인위적이나 제도적, 기술적 차별이 없이 누구나 시장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위 두가지 조건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 즉 특정공급자가 기술이나 자본, 인적자원, 선전력, 기타 제조건에서 다른 공급자와의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있을 때 공정한 경쟁이란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위의 두가지 조건이 충족된 완전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고, 경제주체가 다소간의 독점력을 행사함으로써 시장가격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제한된 경쟁, 즉 불완전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칸방에서 4-5명의 가족이 함께 살면서 부부싸움과 가난이 찌들어, 책상이나 공부방, 학습자료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학생과 대학을 나온 부모가 자녀의 성장 단계의 심리까지 고려한 자상한 배려로 공부방이 있고, 좋은 참고서에 개인 가정내玲?충분한 영양섭취를 하며 공부하는 학생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지는 않다.

경제이론에서 완전경쟁이란 이론상의 이야기이지 실현가능성이 없듯이 오늘날 사회의 기회균등이니 평등이니 하는 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정직이나 순수도 절대 진리가 아닌 상대적이고 상황논리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우리의 현실여건의 완전무결하지 않는 전제에서 말이다.
도둑이 들어와 집을 지키고 있던 아들에게 흉기로 위협한다.

"돈 있는 것 모두 내 놔라!"
도덕책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 배운 아들은 아버지가 어제 소를 팔아 받은 돈을 장농 속에 감취두시는 걸 봤다.
아버지가 "돈이 없다"고 하자 이때 아들의 정직함은 도둑을 도와 주는 역활이외에 무엇인가?
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사는 사회, 즉 이기주의 사람들이 함꼐 사는 사회에서 개인이 착하게 산다는 것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성경에 보면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내놓아라'는 말이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오른 뺨을 때리고 미안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해 가르친 이야기일 것이다.

반대로 오른 뺨을 치고 분이 풀리지 않아 못견디는 사람에게 왼쪽 뺨 오른쪽 뺨을 계속 돌려대면 맞는 사람만 손해를 볼 뿐이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사회에서는 양심이나 진실이나 순수함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성경에도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유순하게 살아라'고 가르치고 있다.
뱀은 마귀의 상징이다. 마귀의 지혜를 빌리는 한이 있어도 진실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다.

정직과 양심이, 진실이 통하는 사회는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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