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경찰이 변심한 애인을 총을 쏴 죽였다.

 

#. 2 폭도가 술에 취해 길 가는 사람을 ‘묻지 마 살인’을 계속하고 있어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이 폭도를 사살했다.

 

 

 

똑같이 경찰이 총으로 사람을 죽였는데 하나는 폭력이요, 하나는 권력의 행사다.

 

위의 예문에서 #.1은 폭력’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는 경찰이 총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런데 하나는 폭력이요, 하나는 권력이다. 여기서 경찰이 가지고 있는 총이나 폭도가 가지고 있는 총은 다같은 폭력의 도구다. 그런데 왜 경찰이 가지고 있는 총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나 폭도가 가지고 있는 총은 공포를 느끼는가?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른가?

 

변심한 애인을 살해한 경찰의 행위는 불법한 행위요, 폭도를 살해한 경찰의 행위는 적법한 행위요, 똑같은 총이라는 도구지만 ‘행사의 정당성’ 여부에 따라 하나는 권력이 되고 하나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다른 사람을 자신 생각(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적법한 힘인가 아니면 불법한 힘인가의 의부에 따라 권력으로 또는 폭력이로 보이기도 하는 (현상)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블로그에 끊임없이 악플을 다는 단골손님이 있다. 내가 학교폭력문제를 포스팅하면 그 사람의 눈에는 교사 편을 든다고 ‘참교육을 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무능한 교사 편을 드는냐?’고 입에 거품을 문다.

 

이 사람은 문제의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의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사람의 눈에는 학교폭력의 현상만을 보일뿐,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본질을 모르고 현상을 전체로 착각하고 있다. 학교폭력문제를 현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보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주는 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본질, 즉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학교가 인권교육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원인 중의 하나다. 인권의식이 있다면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원인 즉 돈이 사람보다 소중하다는 가치관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올곧은 가치관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안방극장의 드라마가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든지, 영화나 만화 또는 게임이 청소년들의 정서나 가치관형성에 폭력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원인의 하나다.

 

 

입시위주의 교육, 빈부격차문제로 인간 가정파괴, 교사들이 관심과 지도의 부재, 교우관계, 환경적인 요인.. 등등 끝이 없다. 이런 문제를 놓고 교사에게만 책임 있다든지 가해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한계다.

 

내 블로그에 악플을 다는 사람은 그 사람 개인의 인격이요 시각의 한계지만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교육과정을 짜는 사람들이 그런 시각을 가진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학교폭력을 근절한다면서 교사에게 사법권을 줘야한다느니, 폭력 가해자의 이력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졸업 후 10년간 불이익을 주게 한다든지...하며 법적인 처벌위주의 강경책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근절책이 해결에 도움만 된다면 적절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교과부가 내놓은 근절책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산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는 못하는 수준이하의 시각으로는 폭력은커녕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2.02 07:00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학교폭력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니 날이 갈수록 학교폭력은 더더욱 잔인해지고 흉포화 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대책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학교폭력이란 도대체 어떤 양상일까?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초․중․고생 간에 일어나는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추행, 명예훼손, 모욕, 공갈, 재물손괴 및 집단 따돌림(왕따)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통털어 학교폭력이라 한다.

나라 전체가 하교폭력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학교폭력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일까? 해결을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안 하는 것인가? 지금가지 정부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내놓은 대책만하더라고 수십가지가 넘는다. 폭력이 사회문제가 되기만 하면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대책이란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 및 징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 같은 시책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학교폭력대책을 보자. 폭력대책반을 만들고 Wee센터를 설치하고 대안교실의 확충, 학교폭력 담당교사 인센티브 강화, 단위학교 배움터지킴이 예산지원, CCTV통합관제센터 운영, 예산의 국고 지원, 전문상담교사 배치 확대... 등 지겨울 정도로 듣는 해묵은 카드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전문상담교사를 학교에 배치를 하기 위해 600억을 투입하고 학교폭력 근절 대책팀의 학교지원국 배치하고, 또래상담자 활성화하고, 학부모상담주간 운영을 하겠다고 한다. 어제는 한나라당의 황우여대표까지 나서서 학교폭력대책특별법까지 만들겠다고 한다.

학교와 학부모, 경찰, 검찰 그리고 입법부가지 발 벗고 나선 폭력 대책,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잠시는 주춤할지 몰라도 이런 식의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대책으로는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까? 폭력이 더 잔인해지고 흉포화될수록 처벌을 더 무겁게 하기를 반복한다고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까? 사형제를 도입한다고 범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의사가 처방을 해도 병이 낫지 않는 이유는 진단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열이 난다고 무조건 해열제를 처방하는 의사는 돌파리 의사다. 원일을 두고 언발에 오줌누기식 혹은 아랫돌 빼 윗돌괘기식 폭력대책으로는 학교폭력을 절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해결방법은 없는 게 아니다. 학교가 교육과정운영만 정상화한다면 해결 못할 리 없다. 교과 과정(敎育課程)이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조직한 교육의 전체 계획’이다. 연간 수업일수는 며칠이며 국어는 연간 몇시간, 수학은 몇시간... 이렇게 대통령령으로 정해 놓은 게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에는 국어영어수학 문제풀이나 하고 체육이나 음악, 미술은 공부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춰 예체능도 인성교육도 제대로 하라는 게 교육과정이다.

문제의 발단은 학교가 교육과정이라는 법을 어김으로서 비롯된 문제다. 현행 법체계는 헌법-법(국회)-령(대통령령,부령등)-조례(지방의회)-규칙(지자체장)의 순으로 짜여져 있다. 교육과정은 대통령령이다. 법 다음 지켜야할 령을 학교는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을 어겨서 나타나는 현상이 교육 위기며 학교폭력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엉뚱한 데서 답을 찾으니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학교는 왜 ‘대통령령’을 어기는가? 교육을 해야 할 학교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문제풀이로 날밤을 세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교육을 살려야 할 감독관청이 전국단위 일제고사와 같은 시험을 치러 학생과 학교를 서열매기고 성적에 따라 학교예산을 차등지원하고 교원들의 성과급까지 차등 지급하겠다는데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겠는가?


오늘날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교과부다. 학벌사회를 만들어 학교가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 범인(?)이 교과부라는 말이다. 공교육정상화가 교육을 살리고 학생들을 바르게 교육하는 길이라는 걸 지도·감독해야 할 교과부와 교육청이 앞장서서 교육과정을 어기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돈벌이를 위해 학생들을 대상화하는 상업주의가 있고 먹고살기 위해 아이들 가정교육은 뒷전이 되는 무너진 가정교육에도 책임이 있다. 승진을 위해 교육은 뒷전인 교원들의 책임이며 제자들 전과자로 만들 수 없다는 교사들의 온정주의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점수에 목매는 부모며, 점수가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교사, 경쟁에서 이기는 게 선(善)이라고 교육을 상품으로 만든 교과부의 책임 또한 면키 어렵다.

사회적인 여건을 개선함과 아울러 학교가 교육과정만 정상적으로 운영한다면 교육도 살리고 학교폭력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교과부는 정말 모를까? ‘연목구어(緣木求魚)식’ 대책으로는 영원히 학교폭력은 해결되지 않는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