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6.06.07 06:55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여성이 대통령이 됐다. 바야흐로 여성 상위시대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관공서에는 남자 선생님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그 어려운 법조계며 IT분야를 비롯해 심지어 영업용 운전기사까지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념여평등이니 여성상위시대라고들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정말 남여가 평등한 사회일까?

 

<이미지 출처 : 새전북 여성단체연합>


‘성의 상품화’라는 논쟁으로 요즈음은 여성단체가 반발해 드러내놓고 언론이 떠들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벌써 60회째다. 1957년에 시작한 미스코리아선발대회는 벌써 60회째다.  올해도 4~6월 지역별 예선을 거쳐 7월 8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서 본선 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역대미스코리아 입상자는 450명으로 배우, 아나운서, 모델 등 각 분야에서 횔동 중이다. 


주체측에서는 올해부터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미스코리아를 뽑는 선발기준이 많이 바뀌었다고 홍보는 하지만 지금도 미스코리아 선발기준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고르게 하얀 피부’여야 하고 ‘크지 않은 얼굴, 쌍꺼풀과 큰 눈, 끝이 약간 올라간 듯한 눈썹, 길고 풍성한 속눈썹, 넓지 않은 미간과 좁은 안검, 반듯한 코와 희고 가지런한 치아, 갸름하고 길고 작은 얼굴...’

 

‘다리선이 곧고 탄력성이 있는가’, ‘히프의 사이즈, 선모양’, ‘유방의 바른 크기, 위치 와 선’, ‘히프의 크기, 선과 모양, 벌어지지 않고 가지런한 허벅지, 곧고 탄력성 있는 다리의 선 등이다. 전체 체격의 균형은 상반신이 전체 신장의 3.5/8, 하반신이 전체 신장의 4.5/8, 상반신 : 하반신 = 7 : 9 비율.... 등등 시각적인 기준은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외모를 갖추지 못한 여성은 미인일 수 없다.

 

가장 매력적인 여성은 ‘섹시’한 게 필수다. ‘섹시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성적 매력이 있다. 선정적(煽情的)이다’라는 뜻이다. 다시 ‘선정적(煽情的)’이라는 말은 ‘정욕을 자극하여 일으키는. 또는 그런 것.’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여기서 ‘정욕(情慾)’이란 ‘이성의 육체에 대하여 느끼는 성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 섹시하다란 ‘hot girl’이라고 한다는 데 그 뜻은 ‘성적으로 흥분한, 음란한, 호색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니 이런 소릴 듣고도 기분 좋아할 여성들이 있을까?

 

북한에서는 섹시하다는 말을 '박음직스럽다‘라고 풀이한다. 자존심을 가진 여성이라면 얼굴이 뜨거워 지는 말이다. 여성으로서 조신(操身)하거나 건강한 모습이 아니라 ‘이성에게 선정적 혹은 정욕을 느낄 수 있도록 보이기 위해 눈길을 끌도록 한 모습’이 여성들이 선호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섹시하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리기 때문이어서 그럴까? 요즈음 여성들의 옷차림을 보면 팬티인지 내복인지 구별이 안된다. 각선미를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탓하자는 말이 아니다. 배꼽을 내놓고 속옷이 드러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또 척추전방위증이나 허리디스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는 하이힐을 선호하는 이유도 남성들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라면 아직도 여성은 독립된 인격체로서가 아닌 남성의 눈을 의식하는 성의 대상으로서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여성이 외모로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남성들을 경제력으로 한 줄로 세우는 또 다른 불평등이다. 힘 있는 남성들에게 헤프게 웃음을 날리는 모습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거나 강자의 눈에 잘 보이려는 비굴한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로 필자가 금강산과 평양을 거쳐 백두산을 다녀오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북한의 여성상은 ‘살살맞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콧대가 높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당당함이 아니라 보호받아야할 대상, 남성에게 성적으로 돋보이기 위해 색시하게 보이고 싶은 그래서 의존적이고 동정의 대상이 되어 신델렐라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은 진정한 남녀평등이 아니다. 얼짱, 몸짱문화가 지배하고 외모지상주의 사회, 그 틈바구니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섹시한 경쟁으로 여성은 스스로 남성에게 예속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얼굴만 잘생기면 신델렐라가 되는 그래서 그런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여성이 있는 한 성평등이란 어쩌면 영원한 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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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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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여성이 대통령이 됐다. 바야흐로 여성 상위시대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관공서에는 남자 선생님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그 어려운 법조계며 IT분야를 비롯해 심지어 영업용 운전기사까지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성의 상품화’라는 논쟁으로 요즈음은 여성단체가 반발해 드러내놓고 언론이 떠들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벌써 57회째다. 지난 4일에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2013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렸다. 이날의 대회는 국내 14개 지역과 해외 4개 지역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총 55명의 후보자가 참여해 열띤 미의 축제(?)를 벌였다는 게 주최 측 홍보다.

 

주체측에서는 올해부터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미스코리아를 뽑는 선발기준이 많이 바뀌었다고 홍보는 하지만 지금도 미스코리아 선발기준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고르게 하얀 피부’여야 하고 ‘크지 않은 얼굴, 쌍꺼풀과 큰 눈, 끝이 약간 올라간 듯한 눈썹, 길고 풍성한 속눈썹, 넓지 않은 미간과 좁은 안검, 반듯한 코와 희고 가지런한 치아, 갸름하고 길고 작은 얼굴...’

 

‘다리선이 곧고 탄력성이 있는가’, ‘히프의 사이즈, 선모양’, ‘유방의 바른 크기, 위치 와 선’, ‘히프의 크기, 선과 모양, 벌어지지 않고 가지런한 허벅지, 곧고 탄력성 있는 다리의 선 등이다. 전체 체격의 균형은 상반신이 전체 신장의 3.5/8, 하반신이 전체 신장의 4.5/8, 상반신 : 하반신 = 7 : 9 비율.... 등등 시각적인 기준은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외모를 갖추지 못한 여성은 미인일 수 없다.

 

 

가장 매력적인 여성은 ‘섹시’한 게 필수다. ‘섹시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성적 매력이 있다. 선정적(煽情的)이다’라는 뜻이다. 다시 ‘선정적(煽情的)’이라는 말은 ‘정욕을 자극하여 일으키는. 또는 그런 것.’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여기서 ‘정욕(情慾)’이란 ‘이성의 육체에 대하여 느끼는 성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 섹시하다란 ‘hot girl’이라고 한다는 데 그 뜻은 ‘성적으로 흥분한, 음란한, 호색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니 이런 소릴 듣고도 기분 좋아할 여성들이 있을까?

 

북한에서는 섹시하다는 말을 '박음직스럽다‘라고 풀이한다. 자존심을 가진 여성이라면 얼굴이 뜨거워 지는 말이다. 여성으로서 조신(操身)하거나 건강한 모습이 아니라 ‘이성에게 선정적 혹은 정욕을 느낄 수 있도록 보이기 위해 눈길을 끌도록 한 모습’이 여성들이 선호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섹시하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리기 때문이어서 그럴까? 요즈음 여성들의 옷차림을 보면 팬티인지 내복인지 구별이 안된다. 각선미를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탓하자는 말이 아니다. 배꼽을 내놓고 속옷이 드러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또 척추전방위증이나 허리디스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는 하이힐을 선호하는 이유도 남성들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라면 아직도 여성은 독립된 인격체로서가 아닌 남성의 눈을 의식하는 성의 대상으로서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여성이 외모로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남성들을 경제력으로 한 줄로 세우는 또 다른 불평등이다. 힘 있는 남성들에게 헤프게 웃음을 날리는 모습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거나 강자의 눈에 잘 보이려는 비굴한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로 필자가 금강산과 평양을 거쳐 백두산을 다녀오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북한의 여성상은 ‘살살맞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콧대가 높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당당함이 아니라 보호받아야할 대상, 남성에게 성적으로 돋보이기 위해 색시하게 보이고 싶은 그래서 의존적이고 동정의 대상이 되어 신델렐라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은 진정한 남녀평등이 아니다. 얼짱, 몸짱문화가 지배하고 외모지상주의 사회, 그 틈바구니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섹시한 경쟁으로 여성은 스스로 남성에게 예속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얼굴만 잘생기면 신델렐라가 되는 그래서 그런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여성이 있는 한 성평등이란 어쩌면 영원한 꿈인지도 모른다.

 

- 이미지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7.21 05:00



전교조가 결성될 무렵 사회는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처럼 여기저기서 겨울이 무너지는 불협화음이 터져 나왔다. 여성은 다소곳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 며 전통 가치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운명적인 틀, 금기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당시 학교에서 전교조에 가입하는 교사들에 대한 교장선생님 쪽이나 사립학교재단의 저항은 예상보다 완강했다. 이런 와중에 나온 얘기. 전교조 교사들을 일컬어 ‘의식화교사’라는 재미있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충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의식화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깨닫거나 생각하게 함. 특히, 계급의식을 갖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시 전교조 교사들에게 붙여졌던 이 ‘의식화’란 ‘학생들의 정상적인 생각을 비뚤어지게 만드는 잘못된 교육‘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의식불명‘이라는 말이나 ’식물인간’이라는 말은 몸은 멀쩡한데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의식이 없는 사람은 살아도 죽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곧 무의식에서 자기 생각을 갖게 하는 의식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살면서 ‘민주의식’이 없이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사람은 대화와 타협이란 의미가 없다. 주인의식도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사람이다. ‘평등의식’이 없는 사람은 어떤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인격까지 높다고 보고 공과 사에 대한 구별을 하지 못한다. 건강의식이 없는 사람은 또 어떤가?

새집 증후군이니 환경 호르몬이니 그런 건 안중에 있을 리도 없다. 식자재에 농약이나 방부제가 얼마나 들어 있건 말건, 먹는 음식이니까 많이 먹으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은 힘이 곧 인권이라고 보고 자기중심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으로 일관할 것이다. 몸이 아프면 팔자소관이나 운명으로 보고 운명이란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교가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독재권력과 군사문화가 만들어 놓은 전근대적인 가치관에 대한 도전. 봉건잔재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거대한 도전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여상이 근무했던 필자도 이러한 시대 흐름에 함께 하게 됐다. 당시의 실업계 학교는 나름대로 실업교육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난하지만 똑똑한 아이들도 많았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과 운명적 세계관을 강요 받아 온 아이들에게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의식화'를 시작했다.

인문학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주름살투성이의 어머니 판화 그림이 걸리고, 낫을 든 농부 그림이 운동권 학생들의 걸개 그림으로 나타나던 그 무렵이었다. 미사어구로 덧칠한 시와 아름다운 색깔로 그려진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알고 있던 미적 관념에서 주름 속에 담긴 어머니의 고결한 사랑을 읽어낼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전통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시작한 것이다. 욕설이 가장 아름다운 시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김용택의 ‘섬진강에서, 문익환님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시로 읽혀지기 시작하면서 국민적 사고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한겨레신문과 전태일의 등장, 공포에 숨죽이고 살던 지식인이 온실의 보호를 거부하고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은 전근대적인 유습과 반민족 세력에 의해 만들어졌던 이데올로기의 벽을 허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전통 그리고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관습에 찌든 가부장 문화를 지키겠다는 세력들은 눈이 뒤집혀 반발했다. 권력에 기생하던 언론과 종교세력, 식민잔재 청산을 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권력과 독재자의 편에 서던 인간쓰레기며 군사문화에 기생해 살아남은 정치세력들까지 한통속이 되어 저항하는 힘은 가히 위력적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던가? 그러나 이러한 양심세력과 지식인이 빼든 칼은 이들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던 것이다.



80년 후반의 변혁은 어는 특정분야 특수층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치경제 사회, 문화, 노동, 언론, 종교 등 사회의 각계각층에 걸친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수업 중에 교과서는 뒷전이었다. 이미 의식화의 경전이 된 ‘스스로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뿐만 아니라 노철(노동자의 철학)이며 철학에세이며 러시아 혁명사까지 공공연하게 교실에서 전해지기 시작했다. 시로 통일과 민족해방을 말하고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이 시작된 것이다. 의식화는 특정한 분야의 전유물이기를 거부했다. 대학생이며 노동자며 여성에 이르기 까지 교회에서, 노동현장에서, 교실에서, 민중교회에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푸이 되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업 중 문익환 시가 읽혀지고 김용택의 농민시를 읽어줬다. 니체나 칸트와 같은 철학자가 한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사람됨의 철학이니 세계사철학을 듣고 길거리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책가방을 가게에 맡겨두고 치마에 보도블록을 깨 담아 나르는가 하면 한겨레신문 무료 배달을 자청하고 나서는 여학생도 있었다. 여상에서 꿈이던 은행에 취업한 학생이 사표를 내고 노동현장에 뛰어들고 전교조 선생님을 지키겠다고 밤새워 징계장소를 지키며 유인물을 돌리던 학생들은 결코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시장실패가 수정자본주의를 불러왔듯이 민중의 의식화는 자본의 단결을 부추기고 급기야는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논리가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자본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변절자와 기회주의자를 양산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게 된다. 생존권을 놓고 선택을 강요해 양심을 실험했던 게 전교조 탈퇴각서 사건이었다면 생존과 취업을 미끼로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게 자본의 공격이다. 이제 자본은 국내 재벌이 아니라 거대한 다국적 자본이 FTA라는 이름으로 국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청년 실업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회 양극화는 80대 20이 아닌 90대 10의 사회로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후반에는 민중의 신뢰와 순수성이 있었고 권략의 모순이 가시적으로 확인될 수 있었기게 민주화라는 개혁이 가능했다. 그러나 정보화시대에는 다수의 민중이 자본의 모순조차 확인할 수 없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여기다 노동운동이며 교육운동,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배신과 변절....


지식과 기술은 가르쳐도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이러한 교육이 길러 낸 사람들이 맡은 정치며 경제며 사회가 온당할리 없다. 이성도 도덕도 종교도 아닌 힘이 지배하는 세상. 최근 세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돈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식이며 양심이며 민족이며 그런 건 하루 아침에  다 내다 버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돈이면 양심도 변절도 만다 않는 자본에 마취된 사람들에게 지금이야말로 제 2의 의식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0.24 10:07


1979년 여상에 근무하면서부터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얘깁니다. 
2007년 민법개정으로 여성의 법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개선되었으나 아직도 사회적인 남녀평등은 요원합니다. 법적으로만 남녀평등이 보장되었다고해서 여성이 남성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 할 수없습니다. 그 이유는 500년동안 우리사회를 옥죄고 있던 제사문화며 가부장중심의 유교문화가 잔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차별없는 세상, 그것은 여성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여성이 성의 대상이나 성이 상품화됨으로서 남성도 경제력으로 서열이 만들어지는 모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정한 의미의 여성해방! 그것은 인간해방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래글은 민법개정이 있기 전의 글입니다. 참고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예수회 신도의 연구에 따르면 여자란 라틴어인 페미나(FEMINA)의 어원인 신앙인 페(Fe)와 적다의 뜻을가진 미누스(Minus)에서 비롯된 말로써 결국 여자는 "신앙이 결핍된 자"를 뜻하는 말이다.

"여자는 세상의 모든 간악과 약점이기도 하다.

여자의 시선은 쏘아보기만 해도 쓰러진다는 괴사(怪蛇)와 흡사하다.한번 쳐다 보면 남자는 그만큼 죽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끝없는 요설로 사람을 괴롭히며 남자의 육체를 부패시키는 유독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탐욕이 많고 위선자이며 거짓말장이이다. 여자에게 비밀을 말해 주면 즉시 널리 퍼뜨리며 여자는 악의에 찬 호기심을 지니고 있다. 구세주 예수도 일찍부터 이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부활을 널리 알리시려고 여자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셨다. 한번이라도 여자가 쳐놓은 덫에 걸린 남자는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결혼 생활 보다 더한 괴로움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이 글은 13세기경 마태오투스가 지은 [솔로몬의 비가]에 나온 한 부분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히 경이적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성은 불완전한 남자"라고 했는가 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자는 무엇이든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피조물이 아니며 항구성이 없는 존재"라고 했다.

중세의 독일 여성들은 누구나 마녀로 지목되어 재판에 회부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마녀로 체포되면 "마녀의 탑"에 감금되었으며 악랄한 고문관의 손에 넘겨지느 신세가 되었다.
그들이 마녀라느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엄지 손가락 조르기","스페인 장화","살찐 토끼와"와 같은 고문 도구를 이용하여 손발의 뼈를 부수고 "죄악의 살" 속으로 꼬쟁이와 갈코리를 찔러 넣어 속살이 드러 난 상처에 식초나 황산을 부어 넣기도 하였다.

옛 중국에서는 효녀, 효부, 열녀, 열부라고 하여 혼례식도 안올린 정혼자를 위해 평생을 수절하며 살도록 강요했고, 죽은 남편을 따라 죽는 여성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상으로 존경받았다.

상대방의 희생의 댓가로 일방이 향유하는 쾌락은 반문명적 사고방식에 틀림없으며, 육체적인 힘이나 성의 차(差)에 의해 규정되는 가치를 미덕으로 강요하는 것은 강자의 이데올로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일부일처가 제도적으로 인정되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남녀 평등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법조문에 선언적으로 명시하고 있다고 해서 남여 평등이 실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출처;레프트 21 △여성의 요청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라 2010년 8월 31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헌법에 선언적인 남여 평등의 선언과는 달리 가부장적인 호주 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가계 계승을 위해 양자 제도가 인정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아들이 없는 여자에게는 예외적으로 호주상속권을 인정하고 있으나 재혼하면 호주의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 또한, 자녀를 보호양육할 수 있는 권리인 친권은 아버지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고 있다.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은 물론 남편이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난 서자는 남편이 아내의 동의없이 그 가에 입적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상속법은 호주상속자는 1.5, 차남과 출가하지 않은 딸은 1, 출가한 딸은 차남의 1/3, 아내는 장남과 같이 1.5의 비율로 상속하게 되어 있다.
현대의 가족제도는 여성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2008년 민법이 개정 시행되기 전의 사회상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1920년 19차 헌법 개정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였고, 영국에서는 1918년 로이드 죠지의 인민법안 가결로 30세 이상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졌다.

우리나라 헌법 제9조에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라고 명문화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여성을 외모로 등수를 매기는 미쓰코리아 선발대회가 있고 여자라는 이유로 옺갖 불이익을 받고 있다. 반대로 평등의식이 없는 여성들로 '매맞는 남자'니 '머습살이'를 하는 남편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천년을 두고 내려온 봉건적 관습이나 사회적인 풍속이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적용되는 상황에서 여성해방은 오히려 과격한 사람들의 논리로 여성들에게서 조차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흑인의 피부처럼 지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영향력 있는 몇몇 인사들의 왜곡된 여성관을 바로 잡는다고 여성해방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무능하다든지 열등하다는 편견만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남녀불평등의 봉건적 잔재를 법적 제도적인 개선과 여성의 의식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계급사회에서 여성해방 운동은 인간해방 운동이기도 하고 남성해방 운동이기도 하다. 여성이 성의 대상 또는 상품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제도나 법이란 어디까지나 선언적이고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여성해방은 인간의 가치가 인격적인 가치 또는 목적 가치로서 인정되는 사회를 위해 여성만의 노력이 아닌 남녀 모두가 풀어야 할 인간해방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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