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1.11.11 06:30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한달 전 쯤인가? 아내가 피부가 가렵다며 자꾸 긁더니 나중에는 피가 나올 정도로 긁어도 시원치 않다며 고생을 하고 있었다. 병원을 찾았지만 ‘알레르기성 피부염'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바르는 약 정도를 받아 왔지만 쉽게 호전이 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피부도 늙어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걸까?

온천이 피부에 좋다는 말이 생각 나, 평소 아내에게 잘해주지도 못했던 남편으로서 큰 생색이라도 낼 듯이 아내에게 제안했다. 청주에서 가까운 유성온천에 한번 다녀오자고...

목욕을 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뭘 그렇게 많이 챙겨 가는지 꾸물대는 게 싫어 잔소리를 했더니...

남자들은 칫솔이나 들고 가면 되지만 여탕에는 수건이며 치약, 칫솔, 때수건도 없어 챙겨가지 않으면 안 된단다.

 


 

같은 요금에 다른 서비스... 성차별 아닌가?


언제부터 목욕탕에서는 남자와 여자들에게 차별대우를 하고 있을까?
동네 목욕탕에도 남탕에는 수건, 비누, 치약, 때수건, 화장품까지 골고를 갖춰 놓는다. 남자들이 목욕탕에 가려면 주머니에 칫솔 하나만 꼽고 가면 된다.

여탕은 어떨까?

아내가 평소 목욕탕에 갈 때 보면 목욕바구니에 목욕도구를 가득 채워 들고 나간다.
여성을 예비 범죄자로 보는 목욕업자 왜 그냥 둘까?

요즈음 같이 여성 상위시대(?)에 여성에게 성차별을 하는 목욕업자가 멀쩡하게 버틸 수 있는 재주가 뭘까?

남성에게 주어지는 특혜(?)였던 군가산점제까지 폐지된 세상에 어떻게 똑같은 돈을 받고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할 수 있을까?

일찍 목욕을 마치고 나와 아내가 목욕이 끝나기를 기다리기가 무료해 카운터를 보고 있는 분에게 물었다.


“왜 여성들에게는 수건이나 비누, 치약 같은 게 없나요?”
그런 걸 묻는 남자가 이상하다는 투로 쳐다보더니...

“여탕에 수건이니 비누 같은 걸 비치해두면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아내에게 듣긴 들었지만 실제로 목욕업자에게 직접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딴 남이 쓰던 수건이면 싸구려 비누를 가져가서 무엇에 쓰겠다고....’

여성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목욕업자에 왜 분노하지 않는가?


 


정말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여성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목욕탕에 목욕을 하러 오는 모든 여성들은 수건이나 비누를 훔칠 수도 있는 예비범죄자’라는 말인가?

실제로 수건이나 비누를 훔쳐가는 여성이 있다손 치자. 그렇다면 남자들과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과연 목욕탕에 오는 전체 여성 중에 몇 %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다는 통계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
‘남자들은 도덕적으로 하자가 전혀 없고 여성들은 남의 수건이나 비누 따위를 훔쳐갈 수도 있는 예비 범죄자다?’

왜 모든 여성들이 예비범죄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분노하지 않을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실제로 11년 전. 2000년에 ‘목욕탕 수건이 성차별 논쟁’이 있었다. 남탕과 달리 여탕에선 수건을 돈을 받고 판매하자 한 여성이 성차별이라면 시정을 요구했고, 당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는 남녀차별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던 일이 있다.

그렇다면 수건이 없어질 가능성이 때문에 도둑의 누명을 쓰고 살아야 할까?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업이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보아도 괜찮다는 말일까? 여성단체라도 나서서 누명 벗기 운동이라도 펼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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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해방운동을 남자가 해야 하는 이유 -


‘성이 상품화되면 남자와 여자 중 누가 피해자가 될까?


여성이 피해자라고...? 그렇다면 남성은 단순히 가해자일 뿐일까?
성이 상품화되면 말할 것도 없이 여성이 피해자지만 남성도 피해자다.

‘세상 모든 일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변화 한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사회란 서로 연관되어 있어 여성이 일차 피해자라면 남성은 2차 피해자다. 여성이 1차 피해자가 되는 이면에는 남성이 2차 피해자가 되는 본질이 숨어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고급상품이나 양질의 상품은 비싸다.

여자 상품은 고급상품과 저질 상품으로 분류된다. 고급상품인 여성을 구매하는 사람은 누굴까? 돈 많고 능력 있는 사람은 고급상품을, 능력 없고 가난한 남자는 저질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목이 짧지 않은가?, 유방의 크기, 위치, 선은 적당한가?, 팔의 선과 탄력성은 어떤가?, 팔이 체격에 비하여 짧지 않은가?, 양 어깨가 넓고 어깨선이 부드러운가? 등선이 곧은가?, 허리의 선과 사이즈는?, 배가 나오지 않았는가?, 히프의 사이즈와 선 모양은?, 넓적다리 상부의 앞 뒤 모양이 벌어지지 않았나?, 다리선이 곧고 탄력성이 있는가?.....」


                                 <여기의 모든 사진들은 네이버 검색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이 이럴 수가?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는 기준의 일부다. 이러한 선발 기준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생포해 온 노예를 노예시장에 내놓고 고르던 미국의 노예시장과 흡사하지 않은가? 우시장에서 소를 고르는 기준과 무엇이 다른가?

어떤 남자가 고급상품, 양질의 상품을 구매하는가? 당연히 돈 많은 남자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돈이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돈이 없으면 불편한 게 아니라 사람대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자본주의 사회다.


성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생존방식은 어떨까? 고급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질적인 면보다 외모에 온갖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다. 비싼 옷을 사 입어야 하고 고급 화장품을 구매해야한다. 성형수술을 위해 애써 번 돈을 수술비로 투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야 돈 많은 구매자에게 팔린다. 인격이 아니라 외모로 사람을 차등 화하는 사회에서 부부싸움이 잦고 이혼자가 늘어나는 이유를 알만 하지 않은가? 고급상품이 되기 위해 몸이나 양심까지 팔겠다는 여성까지 나오는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성은 어떤가? 고급 상품(아내)을 구매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끝없는 경쟁에 매몰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좀 더 외연을 확대해 보자. 성이 상품화된 사회에서는 어떤 여자가 고급상품인가? 고급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얼짱이 되어야 하고 몸짱이 되어야 한다. 고급 옷을 입어야 하고 일류대학을 나와야 하고 허례와 허식이 체질화 되어야 한다.

고급상품이 된 여자는 누가 구매하는가? 당연히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거나 능력 있는 남자다. 능력 있는 남자와 양질의 상품인 여자가 만나면 2세는 어떤 아이가 태어나는가? 능력 없는 남자와 하급상품인 여자와 만나 태어난 2세는 어떤 아이일까? 신라의 골품제와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무엇이 다른가?

골품제도란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관직진출·혼인·복색(服色)을 비롯한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범위와 한계를 규정한 신분제다.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대물림된다는 것은 신라시대 ‘관직진출·혼인·복색(服色)’이 다른 신라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신라시대는 폐쇄적이고 오늘날의 사회는 열려 있다고? 과연 그럴까?

여성이 상품이 된 사회에서 돈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당연히 고급 상품을 구매해 생김새는 물론 지능조차 대물림된다면 공정한 경쟁이 의미가 있을까? 서울민국이 되고 지역까지 서열화되는 이유를 알만 하지 않은가? 못 배우고 못난 사람, 돈 없고 능력 없는 사람은 2세 3세로 이어지면서 대물림이 계속될 것이고 그걸 바꿀 재주가 없다.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청바지에 남자같이 머리를 기르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다.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함께 사용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운동이다. 이혼이나 친권문제,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을 때도 여성이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며 민법개정운동까지 전개해 성취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여성의 지위만 향상되면 남녀평등이 실현되는가?

성차별이 일상화되고 성이 상품화된 사회는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 당연히 남녀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물론 잘생기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막가파식 경쟁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돈 많고 머리 좋고 잘생긴 남자와 머리 좋고 잘생긴 여자가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일까?

민주사회라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고 남녀평등을 말한다. 그것은 이러한 현실을 담지 못한 말의 성찬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노예시대 노예들이 자신이 노예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게 문제다. 현실은 어떤가?

<노동자들, 농민들, 계층상승을 포기한 민초들>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고급상품이 된 여자가 이런 남자들에게 돌아올 리가 없다. 저질상품을 구매한 사람이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은 2,3세대로 내려갈수록 고급상품을 구매한 사람들과 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성의 상품화가 바뀌지 않는 사회는 민주사회도 평등사회도 없다. 성골, 진골, 6두품이 존재하던 계급사회는 끝난 것이 아니다. 성이 상품화되고 계급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는 현대판 골품제에 다름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2.12 10:38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게 아니라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단다.”
이러한 생각은 7거지악이나 3종지도와 같은 유교윤리가 낳은 성차별이란다. 7거지 악이란 과거 중국,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不順父母)
아들이 없음(無子)
음탕함(不貞)
질투함(嫉妬)
나쁜 병이 있음(惡疾)
말이 많음(口說)
도둑질을 함(竊盜)

삼종지도란?예전에,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로서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윤리란다.

“요즈음도 어른들 중에는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느니, 여자가 머슴애처럼... 어쩌고 하는 말은 아직도 우리들의 머리속 깊숙이 성차별의식이 남아 있다는 증거야!”  
“여자답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여성은 말도 큰 소리로 말해서는 안 되고 얌전하고 다소곳하고, 나긋하고 상냥하고...”
“선생님! 선생님은 남잔데 왜 여자편이예요?” 듣고 있던 한 학생이 궁금했던지 갑자기 큰소리로 묻는다. 남자가 왜 여자편을 들어주는 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야! 시끄러워 선생님 얘기 중이잖아?”
“예기 좀 듣자, 초치는 소리하지 말고..” 
한바탕 웃음소리로 교실이 왁짜 해진다. 조금만 이상한 얘기에도 잘 웃고 감동받는 게 이 시기의 여학생들이다.  

수업시간 시작하기 전에 흐트러진 분위기를 잡기 위해 도입단계에서 가끔씩 이런 얘기를 들려주곤 한다. 나는 수업 전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이런 얘길 한다. 시민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민주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혹은 성차별문제를, 혹은 민족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수업시간에 딴소리가 허용되지 않는 인문계의 이 도입단계는 내가 교사로서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경찰이 가지고 있는 몽둥이와 깡패가 가지고 있는 몽둥이는 어떻게 다른가?”

“강패들의 몽둥이는 사람을 폭행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왜 경찰의 몽둥이는 무섭지 않는데 깡패들이 가지고 있는 몽둥이는 공포심을 느끼는 것일까?’
‘?........’

“권력과 폭력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거란다. 다만 사용방법(정당성의 유무)에 따라 한 쪽은 권력의 행사가 되고 한 쪽은 폭력이 되는 거야” 어떤 때는

“정치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아이들이 무슨 얘긴가 궁금해 한다.

“정치란 희소가치를 배분하는 거란다” 그러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길어지면 한 시간 내내 진도는 못나가고 이런 얘기를 하다 끝나 버리기도 한다.

“자, 오늘은 교과서 45쪽 펴세요. 누가 한번 읽어볼까?”

“에이~ 선생님~~ 하던 얘기 계속해요!”
“에이~ 계속해요~”
“그래요”
수업을 진행할 분위기가 아니다.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진도도 안 나가고 안 돼!”
“싫어요! 계속해요”

“×××, 너 때문에 얘기가 끊겼잖아!”

선생님이 거부하지 엉뚱하게 화살이 친구에게 날아간다.
여름 날 점심시간 후 첫 시간이면 공부도 하기 싫고 잠도 올 때 선생님께 응석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이 고등학생이지만 응석을 부리고 떼를 쓸 때는 영락없이 초등학생이다.
이럴 때 못 이기는 채 하고

“좋아! 계속하자”

“와~ 소리와 함께 다시 조용해진다.”
“그럼 여러분들의 어머니는 남자편이예요, 아니면 여자편이예요?”
“엄마는 남자 편이예요!”
“우리 엄마도요~”
“너는 고등학교만 나와 시집이나 잘 가면 된데요.”
갑자기 엄마 성토장이 된다.

“그런데 여자인 엄마가 아들 편인 것 하고 선생님이 남잔데 여자 편인 것 하고는 성질이 다르단다.”

“어떻게 달라요?”
“뭐가 달라요?”
남자인 내가 여자편처럼 보이는 것은 남자가 여자편이라서가 아니라 성차별이 나쁘다는 뜻에서 얘기한 것이고, 엄마가 아들편인 것은 성차별 사회가 어머니를 남자편으로 만들어 놓은 거란다.“
“?... ?”

“헷갈리니?”

“성차별 문제는 여성들만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실 남자인 나도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성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남자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성차별이 왜 남자가 피해자가 되는 겁니까?”
“남자들이 가해자지 왜 피해자가 됩니까?”
점점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그런데 남자 선생님들 중에도 우리들보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느니 계집에가 머슴아처럼...하면서 차별해요.”

“맞아요, 정말 너무해요!”

자칫 남자 선생님 성토장이 될 것 같다.
“모든 남자들이 다 남녀평등의식이 있다면 좋은 세상 벌써 됐겠지?”
다시 잠잠해진다.

“선생님, 다른 건 다 이해가 되는데 남자가 대접받는 사회에서 왜 남자가 피해자가 되지요?”

“글쎄다. 그건 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젠데...”
“에이, 말해줘요.”“맞아요, 빨리요!”

“성이 상품화되면 어떻게 되지? 양질의 상품이란 고액이란 건 알지?”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이 상품이 되면 인격보다 외모나 겉치장으로 서열을 만들수있단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 많은 사람이 양질의 상품이 되는 거지...
“아 ~ 그러니까 남편이 돈 못 벌어오면 각시에게 바가지를 끍히게 된다는 뜻이군요?”
또 와~ 하고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여성운동이라는 거 있지?”

“남자처럼 옷을 입고 머리도 남자처럼 깎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담배를 피워 물고... 그게 남녀평등의 전부는 아니야!”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성 평등이란 불가능한 거야”

“이혼의 경우,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부부가 합의 하에 친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몇 전만 해도 친권은 남자들이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었거든, 상속문제도 여성은 남자와 다르게 차별했었고...”

“그런데 지금은 남녀평등이 실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성차별의 가장 중요한 성이 상품화되어 있는 현실은 바뀔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어떻게 하면 성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나요?”
“어려운 질문이군. 어쩌면 그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일 수도 있어?”
“그보다 여러분들이 성차별의 본질을 아는 게 더 중요한 문제야!”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난다’고 했는데 요즈음도 그럴까?”

“아니예요. 요즈음은 부잣집 아이들이 공부 더 잘해요”
“가난하면 일고 싶은 참고서도 제대로 사서 볼 수 없어요”
“맞아요, 대물림돼요”
‘맞아요 맞아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여러분들 말이 맞아요, ‘돈이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상품을 산다’ 여자가 상품이 되면 돈많은 사람, 재벌들이 더 좋은 상품(여자)을 사고 결혼해 더 좋은 상품을 생산하고(우수한 인재를 낳고) 그래서 점점 더 좋은 상품에 만족하고 살 수 있는거야”


“그렇다면 부자들 짐안 아이들은 점점 더 우수한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알겠어요. 성차별이 있는 사회는 남자들이 왜 피해자가 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남자들이 성차별을 개선하려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작은 것에 분노하는 경향 말이야. 먼 앞날의 큰 이익보다 눈앞에 이익에 더 민감한 게 서민이지...”

마침 종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다음시간에도 또 해줘요”
“책보다 이런 얘기가 더 재미있어요.”

실업계 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얘기다.
기다려지던 수업.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학교에 빨리 가고 싶고...
그늘이라도 앉아 있으면 하나 둘 모여 삽시간에 선생님은 아이들 속에 둘러  쌓이고 말던 시절.
내 인생에서 선생노릇이라고 했던 시기를 대라면 이 때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가르칠 래야 가르칠 대상이 없는 늙은 전직교사.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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