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맡겨 놓으면 부모가 원하는 사람으로 길러 주는가?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맡기면서 ‘내 아이를 이러이러한 인간으로 길러주십시오’가 아니라 학교에만 보내면 훌륭한 사람으로 길러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학교는 정말 모든 학부모들이 원하는 그런 사람을 길러내고 있을까? 학교가 길러내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착한사람?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근면한 사람? 순종적인 사람?....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에서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홍익인간이다. 1949년 12월 31일 미군정 당시 제정된 「교육법」제1조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이 1998년 교육기본법으로 수정되어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라고 바뀌었지만 골격은 달라진게 없다. ‘홍익인간을 길러내겠다’는 이념 또한 마찬가지다.


학교가 기르겠다는 이상적인 인간상, 홍익인간이란 어떤 인간일까?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한 것은 특별한 뜻은 없고 역사성을 포함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문구를 포함한 것"이다. 제5회 국회 법률안 심의 과정에서 이성학 의원이 "교육이념을 홍익인간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라”는 질문에 이성학의원은 문교사회분과위원장을 맡은 이영준의 답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이 ‘특별한 뜻도 없는...’ 오락가락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인가?


<학교 대신 학원으로 등원..강남 고교생들 '자퇴 러시', 왜?> 지난 19일 동아일보가 뽑은 사회면 기사다. 강남 3구를 비롯한 이른바 ‘교육특구’에서 학교를 자퇴하는 고교생이 늘고 있다는 보도다. 강남 중대부고는 전체 재학생 1312명 중 46명(3.5%)이, 서초 상문고(42명·2.9%), 강남 압구정고(36명·3.9%), 강남 경기고(35명·2.6%), 송파 영동일고(35명·2.6%)에서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둔 학업중단자 순위다. 대학이 교육목표가 된 학교에 3년을 다니며 상대평가로 불이익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어떤 인간인가? 학교가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행하기만 한다면야 홍익인간의 시비는 제켜두더라도 목적달성이 어렵지 않다. 오늘날 학교가 무너져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학원이 인성교육특강을 하는 웃지못할 현실이 나타나는 이유는 학교가 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학교가 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면 교사들이 반발할지 몰라도 지금 학교는 교육과정은 뒷전이요,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원으로 변질되었기에 하는 말이다.


1958년 문교부는 “홍익인간이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라는 뜻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부합되는 이념이며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애정신, 유교의 인(仁),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 인류의 이상”이라고 홍익인간 교육이념을 풀이한바 있다. 궁색한 해석(?)을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는 교육과정을 통해 이런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홍익인간에 대한 시비는 여기서 접자.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이 <‘특별한 뜻도 없는...’ 오락가락하는 인간>인지 <‘재세이화(在世理化), 이도여치(以道與治), 광명이세(光明理世)’>의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서 나오는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인간양성인지는 몰라도 그런 목적조차도 뒷전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학교교육이 아닌가? 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으로 공부하러 다니는 학생, 학원이 인성교육 특강을 하는 현실에서 학교교육목표요 이념인 홍익인간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는가?


왜 학교가 무너졌는가? 교육부는 교사들의 자질이 부족해 학교가 무너졌다며 교원평가제를 도입 성과급까지 차등분배해 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정말 교사들의 자질 때문에 학교가 무너졌는가? 찬핵(窜核)이라 말이 있다. “옛날 중국의 진(晋)나라에 왕융(王戎)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집에 오얏나무가 몇그루 있었는데 가을에 오얏 열매를 팔아 산림에 보태 쓰곤 했다. 그런데 그는 항상 오얏열매를 사다먹는 사람들이 오얏씨를 받아 심어 오얏나무를 키우면 오얏장사의 시세가 떨어질 까봐 걱정을 했다. 왕융은 생각하던 끝에 좋은 수를 궁리해 냈다. 그는 가는 송곳으로 오얏열매의 씨를 찔러 놓은 다음 그 열매를 내다 팔았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동네에 오얏나무는 더 늘어나지 않았고 왕융은 죽을 때까지 오얏장사를 혼자서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시대의 철학’이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다.



피교육자를 (窜核)한 교육. 찬핵(窜核)교육은 일제강점기부터다. 일제가 조선에 근대식 학교를 지어 조선사람을 교육시킨 이유는 민족의식을 가지지 못하게 황국신민(皇國臣民)을 만들이 위해서다. 유신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교육헌장을 만들고 교육과정 속에는 피교육자들이 알 수 없는 순종이데올로기를 심었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모르는 찬핵 이데올로기는 권력에 맹종하는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정직, 성실, 근면’의 자본의 논리도 담겨 있다. 노예교육을 위해, 독재권력이나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피교육자들 머릿속에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심어 놓았다.


계급은 노동자이면서 머릿속에는 자본가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가해자를 짝사랑하는 순진하기만 한 유권자는 이렇게 찬핵과정을 거쳐 재생산 되어 온 것이다. 7차교육과정부터 ‘수요자중심의 교육’이라고 한다. 수요(需要)니 공급(供給)이란 말은 경제학에서 개별 상품 판매자와 구매자의 시장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교육을 상품이라니... 사랑하는 내 아이가 수요자로 길러내고 학부모인 나는 상품이 된 아들딸 자금을 마련해 주는 공급원이란 말인가?


교육 속으로 파고들어 온 자본. 자본주의니까 신자유주의시대니까 그렇다 치자. 그런데 수요자에게는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교육수요자는 어떤가? 내가 원하는 상품(교과목)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가? 학부모들은 내 아이들이 배우는 교육과정에 어떤 내용을 담겨 있는지,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고 있는가? 교과서에 담겨 있는 자본의 논리, 정권의 논리를 알고 있을까? 학교가 공교육정상화, 교육과정을 준수하지 못한다면 교육개혁은 백년하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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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7.03.30 06:50


모든 것은 상품이다. 시장화정책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렇다. 돈이 되는 것, 이익이 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자본의 논리다. 이익이 되는 게 선이라는 논리는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와 이데올로기가 된지 오래다. 시장화정책은 공공재인 물도 공기도 상품으로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도, 교육도, 언론도 상품이 아닌 것이 없다. 시장화정책은 정치는 작은 정부로, 시장에서는 신자유주의로, 교육은 수요자중심으로... 상품화됐다. 자본이 만든 세상, 시장화정책은 살 맛 나는 세상일까?



자본의 논리는 이익이 되는 게 선이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로 승패를 가리는.... 서바이벌 게임처럼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무한 경쟁으로 살아남는 자가 승자가 되는 잔인한 게임이다. 시장화정책은 신자유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경쟁과 효율을 정당회 한다. 물이며 공기까지 상품화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상품이란 고가가 가치 있는 상품이다. 누가 고가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가? 돈이 많은 사람, 부자가 비싼 상품, 고가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고급 음식과 사구려 음식을 먹는 사람 중 누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돈이 많은 부자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유기농이 아닌 험한 먹거리, 식품첨가물 투성이, GMO식품, 방사능 위험 식품여부를 가릴 틈도 없이 배를 채워야 한다. 그 결과 평생 땀흘려 번 돈을 병원에 갖다 주고 고통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까지를 서열매기는 시장화정책은 사람보다 돈의 가치가 우선적인 가치다.


서울대학이 몸살을 앓고 있다. 시장화정책 후유증이다. 서울대학을 시장판에 내놓은 상품화정책이 서울대 법인화다. 학문탐구가 아니라 이윤을 극대화다.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시장화 한게 법인이다. 상품이 된 학문으 ㅣ전당 서울대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흥캠퍼스는 물론 모든 대학을 기업의 입맛에 맞게 개조한다. 그 결과 대학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대학 코어 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 평생교육 단과대 사업 등...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 시킨다. 


대학이 수익사업에 의존할수록 기업의 요구는 거세지고 학문의 자주성과 자율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자본과 학문의 결탁은 아주 쉽게 학문을 사회악으로 만들고 대다수 노동자·민중을 교육에서 소외시킨다. 2016년 서울대 교수가 연루된 옥시 화학제품의 유해성, 유독성 보고서 조작이 그러한 사례다. 대학이 기업으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을 경우 그 기업과 관련한 연구의 객관성이 실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대 교육과 학문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 본연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대한이 기업 논리에 반대해 학생들이 저항한 대표적인 사례가 시흥캠퍼스다. 학생들은 학내에서 집회를 열어 시흥캠퍼스와 맺은 협약 철회를 요구했으며 항의 방문과 천막농성 등 학내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협약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정당한 문제 제기에 대해 대학 당국이 권위주의적인 불통으로 일관해 왔다. 결국 학생들은 대학 본부 건물에서 점거농성을 하자 대학 교직원들이 전기톱 절단기와 물대포를 동원하여 강제로 밖으로 끌어내는 만행을 저지른다. 지성인을 길러내야 할 학문의 전당이... 양심과 지성을 스스로 내 던져 버리는 오명을 남기고 말았다.



시장화정책은 이 정도가 아니다. 시장화정책은 교육의 논리가 아닌 이윤의 극대회가 선이 되는 자본이 논리로 학교를 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학교 안에 학원을 끌어들여 방과후 학교라는 이름으로 학교가 교육을 하는 곳인지 학원인지 구별조차 못하게 됐다. 학교평가, 교사평가는 돈으로 학교를 서열화시키고 1등지상주의 성적지상주의로 시합 전에 승자가 결정되는 막가파식 경쟁이 정당화되는 시장판이 되고만 것이다.


학교만 그런게 아니다. 인간의 외모를 상품으로 만든 외모지상주의는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현실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성이 상품화되면 외모가 뛰어난 여성 우수한 두뇌, 일류학교출신 여성을 고급 상품이 되는 성차별 사회가 정당화된다. 출중한 외모(?)와 우수한 두뇌의 인간이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경재력이 대물림 되는 현실을 정당화되는 것이다. 승자가 결정난 계급쟁탈전은 교육을 통해 계급 대물림이 이루어진다. 겉으로는 평등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헌법에 보장된 피선거권도 돈으로 결정하는 현실을 뭐라고 정당화할 것인가?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가치전도 현상.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시장화 정책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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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5.05.06 06:59


'교육과정을 보도블록보다 더 자주 바꾼다

 

이명박정부 때 대선공약인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를 내세워 2009년엔 총론(운영방법 중심), 2011년엔 총론과 교과교육과정을 바꿨다. 또 교과서도 새로 만들어 2013년부터 적용하라 지시했다. 이후 학교 현장에는 세 가지 교육과정이 섞여,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됐다. 이를 두고 한 학교사회에서 유행하던 말이다. 이 정도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계속 바뀌니 교사들끼리도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는 웃지못한 비판이 쏟아졌던 일이 있다.

 

 

박근혜정부는 어떨까? 박근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역대 그 어느정권보다 우편향이 심각하다. ‘‘공교육살리기를 박근혜 정부 2Aagenda로 삼겠습니다!‘는 박근혜정부... 그가 살리겠다는 교육이 교과서 국정화, 안전교과 신설, 한자 병기, 초등 1-2학년 수업시수 증대, 소프트웨어 교육 도입...‘이라면 이는 공교육 살리기가 아니라 공교육 죽이기다.

 

박근혜정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교육수요자인 국민 의견을 반영하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 해소를 위해 공급자와 수요자가 수평적 소통을 시작하는 위원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선행학습 금지를 통한 사교육 경감이 아닌 공교육 활성화를 통한 사교육 줄이기’, 경쟁의 최소화를 위해 선의의 경쟁, 추락한 교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개을리 하지 않겠다는 신년사를 발표한 바 있다.

 

교과서 국정화로 교육살릴 수 있나?

 

박근혜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교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교과서 국정화는 '10월 유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10월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분장시키고, '국적 있는 교육'을 통하여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가 국사교과서의 '국정'이었다. 미국식 기능주의와 복고적.국가주의적 민족주의를 하나의 틀 속에 묶어 '국적 있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왜곡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국적 있는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유신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참다운 새 한국인상'을 육성한다며 교과서를 국정화시켰던 것이다. 박근혜가 노리는 국정화 의도는 무엇일까? 지난해 교학사교과서 파동에서 보듯 박근혜식 국정교과서는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으로 5 · 16 쿠데타를 혁명으로, 애국지사를 종북으로 몰겠다는 시도 아닌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국정교과서 시도는 중단되어 마땅하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가 교육살리기인가?

 

초등학교과서 한자병기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2, 국회의원회관실에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교육에서 희망을 찾는 국회의원 모임이 주최한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에서는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응답에서 91.1%가 한자 선행학습 및 한자급수인증시험 응시 등의 한자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학생들의 학생들의 학습부담 가중이나 사교육 유발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초등학교 한자병기를 반대했다. 오죽하면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이 구성한 ‘2015 국어과교육과정 개정시안 연구진까지 반대 입장을 냈을까? 지난 3월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에 대해 만장일치로 반대 입장을 채택하고 교육부에 건의한 바 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소프트웨어 교육 도입'으로 교육 살린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초등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컴퓨터에 빠진 아이들의 건강문제를 비롯해 지적 성장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학자들의 지적에도 아랑곧없이 박근혜정부는 소프트웨어 중심사회의 주역이 될 미래세대가 컴퓨터적 사고를 기본 소양으로 갖출 수 있도록 초중등학교에서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의 개정 시안이 발표되었을 뿐인데도 토론회, 시범학교 운영, 연수 운영에 이어 시행지침까지 학교에 하달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범학교운영도 있기 전 기정사실화되는 이런 현실을 학부모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학교를 살리는 교육은 인성 교육을 가장한 충효 덕목 교육이 아니며, 인문사회적 소양을 기른다는 한자교육도 아니다. 컴퓨터적 사고를 기른다는 소프트웨어 교육은 물론 안전 교과 신설로 진실을 은폐하는 안전교육은 더더구나 아니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인성을 키우는 교육, 컴퓨터적 사고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으로 공감하는 사람을 키우는 교육, 자아존중감과 비판의식을 가진 주체적인 민주시민을 키우는 게 진정한 교육 살리기가 아닐까? 정부는 유신시대의 망령을 살리겠다는 교육과정 개악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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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조사대상자가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부모된 사람들은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두고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남미로  떠났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로 누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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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내가 이겨서 좋아할 때 진 사람은 눈물을 흘립니다.

상대방의 행복을 포기한 대가로 누리는 나의 행복이란 과연 좋기만 할까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어떤 대담 프로에서 어떤 스님이 한 말이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얘기를 이렇게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쥐어 박힌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데는 익숙하면서도 패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살아 온 외눈박이 사고의 부끄러움 때문이다.

 

 

효율, 성장, 경쟁, 일등.... 언제부터인지 이런 상업주의 경쟁논리가 우리생활 깊숙이 들어와 경쟁만이 살길이라는 생존논리가 우리들의 삶의 철학이 된지 오래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니, 복지제도 축소, 규제완화, 공기업의 민영화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앞에 이름도 생소한 계약제니 비정규직이니 성과급제까지 도입되면서 학교는 완전히 시장판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무너진 교육의 책임을 교사의 능력의 우열로 가리는 교원평가제, 점수로 학교간의 우열을 서열화하고, 성과급이니 지원금으로 차등화시켜 전국의 학교와 교사, 학생을 한 줄로 세우기 시작했다. 공정하지 못한 무한경쟁에 승자의 쾌거에 박수를 보내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논리... 그래서 끝없는 경쟁 지상주의로 흐르는 현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 마지막 한사람만이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 정당화되었다.

 

모든 경쟁은 선인가? ‘경쟁(競爭)이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같은 목적에 대하여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투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경쟁이 공정한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출발점 행동이 같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서로 다른 조건에서 시작하는 경쟁은 경쟁이 아니라 승자를 가리는 진흙탕 싸움이다.

 

                                       <이미지출처 : 민중의 소리>

 

도시에서 유명 학원강사에게 고액과외를 받은 학생과 시골에서 학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학생이 수능에서 다같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공병효는 그의 저서《교육받은 야만인-크리슈나무르티와의 대화》에서, 상․벌을 수단으로 한 경쟁 관계는 인간의 이기심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하였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이란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텔레비전에서는 경쟁이 선이라는 승자 이데올로기 정당화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퀴즈에서부터 ‘도전 골든 벨’이며 장르가 다른 파트의 가수들이 펼치는 노래자랑, 장기 자랑, 경연대회, 육상경기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경기며 노인들이 나오는 농촌 프로그램에 이르기 까지 온통 경쟁 일색이다. 이런 경쟁이야 일정한 룰이 있어 패자의 고통의 대가로 누리는 행복으로 치부해 박수를 보내더라도 패자에게는 할 말이 없다.

 

대형마트와 동네구멍가게를 놓고 벌이는 경쟁은 공정할까? 시장사회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다. 승패를 가리는 경쟁이 생존의 법칙이 된 사회에서 승자지상주의 게임이란 결국 과정이 아닌 결과를 놓고 선악을 가리는 게임이다. 힘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승자지상주의 힘의 논리를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이나 의료에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

 

                                          <이미지 출처 : 노컷뉴스>

 

교육이 상품이란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교육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완화, 교원계약제, 능력 있는 학교선발, 학부모와 학생에 의한 학교선택권 강화와 같은 시장경쟁원리를 교육에 도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요자중심의 교육,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학교현장에 도입된 것은 1999년부터다. 정부는 노골적으로 교육을 상품으로 규정하고 교육부나 학교는 공급자로 학생과 학부모는 수요자라고 이름 붙였다.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니 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조치와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교육상품화 조치로 출발점에서부터 공정하지 못한 게임을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킨 조처다.

경쟁의 본성은 결과 지향적인 것이기 때문에, 욕망으로부터 자유스런 경쟁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며 승자만이 아닌 모두가 함께 행복해 하는 사회란 불가능한 것일까? 성장지상주의가 자원의 한계에 직면하듯 승자만이 살아남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란 불가능하다.

 

있지도 않은 오아시스를 찾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무한 경쟁이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생존법칙을 철칙으로 알고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제 한번쯤 패자의 아픔을 애정의 눈으로 바라 볼 수는 없을까? 나만이 아닌 우리를 그리고 승자만이 보이는 사시가 아니라 패자의 아픔까지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 수는 없을까?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책 보러 가-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7.02 06:30


 

 

교육 위기가 해결의 실마리를 차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해법은 원론에서 찾아야 하지만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교과부는 해결을 위한 노력도 의지도 없다. 교과부는 하루가 다르게 교육개혁 안을 내놓고 있지만 그런 개혁으로는 교육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사교육비문제 교실붕괴 등 교육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기만 하고 있다.

 

교육문제 못 푸는 것일까 안 푸는 것일까?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일’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다. 이런 상식을 뒤엎고 교과부는 ‘경쟁과 효율’이라는 수요자의 중심의 시장논리를 도입해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와 학생이고 교육이란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다. 올바른 교육이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 즉 지성과 감성, 의지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측면에서 잠재적 가능성을 개발’하는 일이다. 교육은 상품도 아니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을 국가를 위해 필요한 소모품’을 길러내는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학생인가? 교사인가? 아니면 교장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한다. 정말 학교의 주인이 학생일까?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면서 왜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하는 것조차 거부당할까? 학생ㅇ; 주인이 아니라면 교사가 학교의 주인인가?

 

 

 

국가공무원법 제 57조(복종의 의무)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교사가 학교의 주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만약 교사가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는 현실의 모순을 혁파하겠다고 자신의 교육관에 따라 교육을 하게 되면 해직사유로 교단을 떠나야 한다.

 

학교를 일컬어 교장왕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의 주인은 교장일까? 최근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를 보면 성적으로 학교를 서열화해 예산을 차등지원 하는 걸 보면 교장은 주인이 아니라 교과부의 명령과 지시에 충실하게 따르는 마름이다. 결국 교장이라는 사람은 교과부의 교육 통제를 위해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일 뿐,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육을 책임지는 주인은 아님이 확실하다.

 

학교란 배우는 곳만 아닌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다

 

학교란 배우며 가르치는 곳이다. 주인이 대상화된 학교에는 특색 있는 학교도 교육다운 교육도 불가능하다. 교육주체가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지 않고서는 위기의 학교, 입시경쟁 교육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교육주체인 학생과 교사가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 수는 없을까? 좋

 

은 교사란 지시에 복종만 하기를 강요당하고 승진을 위해 점수 모으기나 하는 학교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일류대학을 몇 명 더 입학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학교의 서열이 매겨지는 학교에서는 좋은 교사가 나올 수 없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학교나 학급의 운영과 수업에 자기네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과정에 동참하지 못하는 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다. 교과부의 무능과 무성의를 지켜보다 못해 학벌 없는 사회를 비롯한 진보교육연구소 등 교육단체들이 교육혁명공동행동위원회를 만들어 ‘대한민국 교육혁명’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지금은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육혁명이 필요한 때다

 

교육혁명행동공동연구위원회가 펴낸 ‘대한민국 교육혁명’을 보면 학교의 주인이 누구인지 또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교육혁명행동공동연구위원회는 좋은 학교를 만들이 위해서는 학교운영의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학교자치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자치위원회는 위원회 아래 교육과정과 교원인사권을 장악하는 교직원회와 학교운영, 교육활동전반에 대한 감사와 평가, 그리고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학부모회를 둘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학교자치위원회에서 학생들은 학칙 제·개정에 참여하고 학생회의 민주적인 구성과 운영, 그리고 학교자치위원회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론 교장은 제왕으로서 군림하는 오너나 CEO가 아닌 교육주체들의 협력과 소통을 활성화시키고 헌신 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장은 교사 위에 군림하는 상관이 아니라 역할분담차원의 보직으로서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야 하며 당연히 교장 자격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는 이제 개혁으로서 바뀔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혁명 차원에서 근본적인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지금까지 수많은 개혁이 실패한 것이 그 증거다. 주인 없는 학교에 어떻게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교육을 살리려면 교육주체들에게 교육권을 돌려줘야 한다. 그게 교육을 살리는 길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10.16 06:30


              <이미지 이츠하크님 블로그에서>

수요자에게 선택권이 없다면 공정한 거래가 될 수 있을까? 교육이 상품이라는데 수요자인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면 공정한 거래란 허구다. 상품이란 수요자를 의식해 생산된다. 그런데 수요자의 선택권이 무시되고 공급자의 의도대로 만들어진다면 생산자는 자본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고 수요자는 선택권을 침해당하게 된다. 자본의 논리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거래란 공정한 거래가 아니다.

                                           <이미지출처 : 연합뉴스>

인간을 일컬어 지고(至高)의 가치를 가진 존재라고 한다. 그런 인간의 생각과 행동, 사람 됨됨이를 만드는 교육이 상품이라는 것도 해괴한 논리지만 그 상품이 불량품인지 양질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도록 공급자 마음대로 만들면 수요자는 뭐가 되는가? 2011 개정교육과정얘기다. 교육과정(敎育課程)이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조직한 교육의 전체 계획’이다. 이렇게 중요한 교육과정(2013년 시행예정)을 3, 4개월만에 만들어졌다면 제대로 만들어졌다고 믿어도 좋을까?


이렇게 쫓기듯이 졸속으로 교육과정을 만들다보니 교과서 개발 기간도 6개월밖에 안 되고 중등의 경우 집중이수제 때문에 3년치를 한꺼번에 만들어야 한다. 집중이수제‘주당 수업시간이 1~2시간인 도덕·실과·음악·미술 등의 과목을 지금처럼 매 학기에 나누어 가르치지 않고 특정 학기에 몰아서 수업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이 시행되면 현 최대 13개인 중,고교의 학기당 배우는 과목 수는 8개로, 초등고학년(3~6학년)은 7개로 줄어든다. 고교 단계에서는 3년 동안 이수해야 할 총 이수단위가 204단위로 축소되며, 대학과목 선이수제 과목 등을 개설할 수 있다.

교과서 발행체제중등국어, 사회(역사포함), 도덕만 검정이고 나머지는 인정도서로 바뀌었다. 인정교과서각 시도교육청에 과목별로 심의를 분배하였는데 교과서가격이 올라가고 질 관리가 안 될 것이란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교과서에 집권당의 정책이 담기면 어떻게 되는가?


정책이란 정당마다 다르다. 그런데 교과교육과정을 고시할 때부터 국가정체성과 녹색성장 내용을 꼭 담고, 수업방법론으로 창의인성을 강조했다. 역사교육과정은 공모절차도 없이 국사편찬위에서 개발하였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아예 “자유민주주의”로 바꿔버렸다. 개발과정에 참여한 인사들이나 심의회위원들조차 심의회 안과 다르다며 사표를 내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사회교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이나 노동자의 역할은 거의 없이 자산관리와 기업가를 찬양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도덕과는 통일교육 내용이 대폭 축소되었다. 다른 교과에서도 맥락에도 맞지 않는 창의인성, 녹색성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결국 시작부터 MB교육과정으로 불린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이제 교과교육과정까지 만들었지만 내용은 졸속이고, 부실한 교과서가 양산돼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재정경제부조차 8월초에 경제교육내용이 축소되고 개발기간이 짧다고 한 달간 토론을 하자고 제안할 정도였던 ‘2011개정교육과정’이 일정을 1년 앞당겨 실제로는 3, 4개월만에 만들어졌다. 이런 교육과정이 2013년부터 시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학부모들은 얼마나 될까?

교과부가 발표한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을 보면 2014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목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개발해 온라인으로 시험까지 본다. 2015년에는 고등학교 과목으로 대상이 확대될 될 계획다. 교육을 상품이라면수요자인 학생이나 학부모의 의사를 무시한 공급자의 계획이 과연 모든 수요자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9.20 05:00


                                <아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교육자는 누구인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 미성숙한 인간을 성숙한 인간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 언제부터인가 ‘교육자’란 ‘학교에서 교육과정대로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그렇다면 그 교과서에 담긴 내용은 ‘교육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을 완벽하게 양성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까? 교육자들 중에는 ‘내가 지금과 같이 가르치면... 지금처럼 학교를 경영하고, 지금처럼 장학을 하면.... 완벽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하는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면 교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고위공직자가 될 사람들,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우등생이었다. 학교가 길러낸 ‘출세(?)한 사람’ 그들은 왜 하나같이 ‘부정부패와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사회지도층 인사들 중에는 왜 병역기피,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이중국적소유자들이 많을까?...’, 일류대학을 나와 고위공직자나 재벌이 되면 당연히 도덕결핍증환자(?)가 되는 것일까?


교육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이수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해 교단에서 교과서를 전달하는 사람’을 교육자라 한다. 그런데 그 교과서에는 진실만을 담고 있을까?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교과서 내용에 기득권의 논리, 자본의 논리인 이데올로기가 숨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르치는 교사는 얼마나 될까? 교과서만 잘 전달해 주는 교사는 완벽한 교육자일까? ‘내가 교사이니까, 전공한 지식을 교과서대로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교사의 책무의 전부라고 믿어도 좋을까?

부모들은 어떤가? 자녀 교육에 대해, 학교 교육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기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 좋은 식자재에 관심이 없는 부모는 없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 담긴 내용은 어떤 것인지, 현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그대로 배우면 훌륭한 인격자로 자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민해 봤을까? 학교에만 보내면...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 하면... 좋은 성적만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학교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 학교교육을 일컬어 의도적인 교육이라고 한다. 대통령령으로 ‘교육과정’이라는 걸 만들어 교과목을 정하고 내용을 정선해 담아 연간 시수에 따라 교육법이 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게 학교교육이다. 목표치에 도달한 정도, 성취도 평가를 잘 받은 학생이 교육의 목표를 잘 달성했다고 믿고 있다. 점수만 좋으면 내가 가르치는 제자가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교사의 믿음처럼, 학부모의 믿음처럼 자녀들은 기대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교육이 무너졌다고 아우성이다. 위기의 걱정을 하고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이 나서서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대안들이 하나같이 효력을 얻지 못하고 수십년을 혼란과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전문가의 역량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대안이 없어서일까?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필요나 요구보다 사회가 필요한 인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성한다.


봉건제 사회에서는 봉건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사회주의에서는 사회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는 게 교육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 자본주의가 길러내 주기를 바라는 인간은 어떤 인간상일까?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은 '홍익인간(홍익인간의 핵심은 '이타주의')이다.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의 양성'(교육법 제1조)이 교육의 목표다.

그렇다면 학교는 홍익인간이라는 교육목표,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을 보면 하나같이 ‘근면한 사람'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사람’을 길러내겠다는 학교도 많이 생겼다. 그런데 학교는 그런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목표수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학교는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식민지시대 학교는 피교육자인 학생들을 똑똑한 사람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충직한 일본인(황국신민)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직, 성실, 근면’한 사람은 오늘날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이 맞을까? 교육수요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일까? ‘근면, 정직, 성실’은 상대적인 가치개념이다. ‘정직, 성실, 근면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여건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의식이 없는 노동자, 의무만 있고 권리가 없는 노동자에게 ‘근면한사람, 성실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자본이 바라는 기대치이다. 정직, 성실, 근면한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은 개인이 행복한 사람,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교사나 학부모가 원하는 인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로 승자를 가리는 사회를 막가파식 사회라고 한다. 요즈음 텔레비전을 보면 온통 서바이벌 게임투성이다. 패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세상. 교육을 비롯해 모든 게 상품이요, 약자는 공존이 아니라 폐기처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교는 왜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르치지 않는가? 사람다운 생각,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존하는 가치보다 영어수학 점수 몇점이 더 중요한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사리분별을 할 줄 알고 선악을 가릴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진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불의한 권력이나 자본이 원하지 않는 인간상이기 때문은 아닐까?
 


독과점은 시장에서만 나쁜 게 아니다. 교육이 상품이 된 지 오래지만 교육수요자의 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내 아이를 학교에 맡겼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는 정서가 남아 있는 사회에서 교육수요자는 아직도 죄인이다. 독과점체제가 된 공급자는 양심적일까? 시장에서 공급자는 비판받고 검증하면서 교육의 수요자는 공급자의 독과점에 순응해야 착한 수요자인가? 7차교육과정 이후 교과서가 공급자의 의도대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초·중·고교 역사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 놓았다. 영어수학과 같은 도구적인 교과는 예외로 치더라도 도덕과 사회, 정치와 같은 교과에 담긴 이데올로기는 수요자인 피교육자가 원하는 가치를 담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인민민주주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도 있다. 그 수많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자유민주주의’로 한정하면 피교육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주로 '반공'과 동일시되고, 이렇게 되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독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었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걱정이다. 친일의 후예들, 수구세력이 교과서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요자는 공급자의 폭력에 속수무책일 뿐이다.


전교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교육내용을 말하면 색깔칠을 당한다. ‘왜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지 정치투쟁이나 하느냐?’고.. 10월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요, 5·16을 혁명이라고 기록한 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가 되라고... 교과서가 틀렸으니 고쳐서 바른 역사관을 갖게 하자는 교사와 틀린 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중 누가 더 훌륭한 교사인가? 누가 더 교육자다운가?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농부는 농사나 짓고 선생들은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라’고 한다.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정규직 노동자가 불이익을 받는데.. 한미 FTA가 통과되면 죽도록 농사를 지어도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는데...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들에게 자본가의 가치관을 갖도록 의식화하는 교육을 열심히 하라고 한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들 한다. 죽도록 일해도 일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라면만 먹고 돈을 모으다가 병이 걸려 병원비로 다 날리고 노숙자가 된 사람들에게 그런 말이 통할까? 기본과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 마취된 교과서로 병든 가치관을 갖도록 갈치는 교육은 차라리 폭력이다.

- 이 기사는 경남민예총 ‘시사IN 예술人’에도 보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