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입니다. 그리운 고향에서 정겨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가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교육 이대로 좋은가’와 같은 얘기도 함께 나눴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려 봅니다. 이 기사는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님'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제발, 제발, 사교육으로 성적 해결하려 들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초딩들 학원 뺑뺑이 돌리지 마세요.

아이 망치는, 인성 적성 이런 거 다 집어지우고 성적 망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초딩 때부터 기초를 잡아야 한다구요?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구요?

학원 뺑뺑이 돌려봐야 기초도 안 잡히고, 공부하는 습관도 안 듭니다.

그저 시험 문제 푸는 요령, 답 외우기만 배워올 뿐입니다.

 

저한테 고3들 오는데요, 정말 가관입니다.

기본적으로 독해력이 안 됩니다. 영어 독해가 안 되느냐?

헐~,

한글 독해가 안 됩니다.

문제가 뭘 묻는지, 그거 이해를 못 합니다.

 

문제가 뭘 묻는지를 모르는데 뭔 정답을 맞히겠습니까?

공부 못 하는 학생들 아니냐구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내신 2등급 이하는 없습니다....

 

사교육에 종사하는 어떤 학원 선생님이 페이스 북에 올린 글 중 일부입니다. 어떻습니까? 댁의 자녀는 몇군데 학원을 보내고 있습니까? 두서너 곳...? 글쎄요. 많이 보내는 가정에서는 5~6곳이나 보내는 집고 있다더군요. 왜 보내느냐고 물어보면 답은 뻔합니다. 놀면 불안하니까, 남보다 성적이 떨어질까 불안해서요? 위에 학원선생님이 충고를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믿어지지 않는다고요? 글쎄요. 댁의 자녀는 아니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영어학원은 기본이고, 수학학원,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태권도학원... 선수학습에 학습지까지.... 이렇게 하면 성적이 올라간다고요? 학원선생님의 충고처럼 점수 올리는 요령으로 점수는 몇점 더 올릴지는 몰라도 아이는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상진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의 ‘우리나라사교육의 문제점’을 보면 우리나라는 ‘사교육을 시작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학생들의 정상적인 인지발달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가 서열화 되고 과학고, 외고와 같은 특목고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중학생 때부터 입시 사교육이 시작되더니, 곧 중학생 때도 늦다고 초등학생까지 입시사교육 시작 시기가 당겨졌습니다.

 

이 정도가 아닙니다. 최근에는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주부가 월 1000만 원 이상을 받고 다른 집의 아이를 맡아 사교육을 시키는 ‘대리모’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서울대 뇌 과학자 서유헌 교수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인지가능이 발달 안 된 유아에게 모국어가 아닌 인위적인 외국어 교육을 하면 원래 이 시기에 발달해야할 감정과 본능의 뇌가 잘 발달하지 못하는 관계로 뇌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교육은 문제점은 이 정도가 아닙니다. 지나친 사교육비의 증가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저출산과 노후 준비를 못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 사교육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은 약 19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유아 사교육비용 2조 7,000억원까지 합하면 21조가 넘고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교육비까지 계산하면 30조원을 훌쩍 넘습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우리아이가 남에게 쥐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고요? 맞는 말씀입니다. 일등지상주의, 성적만능주의 학벌사회가 밝고 맑게 자라야 할 우리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 내몰고 있습니다. 교육은 없고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학교, 돈벌이를 위해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사교육시장, 내 자식이 남보다 뒤지는 걸 절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갸륵한 보모님의 사랑...

 

다들 잘도 참고 견디는데... 조금만 참으면... 일류대학에 붙기만 하면... 그래서 하루가 다르게 지치고 힘겨워 한계상황에 내몰린 사랑하는 자녀의 무거운 어께를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요? 사교육 걱정없는 나라도 많다는데, 꼴찌도 행복한 나라도 많다는데, 무상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많다는데, 왜 우리는 언제까지 끝없는 경쟁에 모두가 고통스러워해야 할까요?

 

사교육을 받는 초·중·고등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28만8000원. 전체 학생 중 77%가 주당 10.1 시간의 사교육을 받고, 초등학생 자녀를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는데 사교육비로 평균 4370만원, 유치원까지 포함하면 약 5000만원으로 자녀 2명이면 1억원 정도가 들 뿐만 아니라 소득 수준·부모 학력·지역·성적 등에 따라 사교육도 양극화 되는 현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면서 학교를 거부하고 혹은 옥상에서 뛰어 내리며 항의하는데... ‘내 자식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어...’ 하며 모른 채 하시겠습니까?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로 자녀의 명문대 진학 여부가 결정되는 현실.... 학생들의 발달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학습 부담으로 인해 학생들의 행복권까지 침해하는 사교육, 언제까지 강건너 불구경하듯 해야 하겠습니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 1 ‘다른 학생의 돈과 물건을 훔쳤다’는 학교의 전화를 받고 사람 만들겠다며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집단폭행하고 구덩이를 판 후 ㄱ군의 얼굴만 남겨둔 채 흙으로 묻는 등 차마 못할 짓을 한 보육교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양주경찰서는 15일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ㄱ군을 집단폭행하고 땅에 묻은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이모씨(32) 등 양주시 소재 ㄴ보육원 생활지도교사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2. 최근 서울 강북지역 모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담임교사의 물심부름에 최근 1년간 마실 물 대신 변기 물을 떠다 준 사건이 문화일보에 보도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학생은 담임교사의 물심부름을 하면서 ‘변기 물을 떠온 뒤 친구들에게 알리고 물을 마시는 담임교사를 보며 즐거워했다’

 

#. 3 ‘자살 사망자가 매년 100만명, 40초에 1명꼴’

거짓말 같은 세상이다. 전쟁이 터져 죽는 수만큼 자살이라니...

우리나라는 어떨까?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우리나라가 8년째 자살률 1위다. 2010년 한국에서 하루 평균 42.6명씩, 매년 1만5566명이 자살했다. 2010년 청소년 자살자는 인구 10만 명 당 13명으로 자살, 학업과 입시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이 20여 년 전부터 3일에 1명꼴.

 

#. 4 사회 양극화

소득불평등 심화, 노동 불안정화로 ‘노동빈곤층’ 출현 등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소득양극화, 고용양극화, '가계부채 900조 시대' 서민들은 부모의 사회 경제적인 지위가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상장사의 순이익이 전체 상장사 순이익의 80%다. 한달에 21억 1천만원을 받는 사람(산성전자 부회장)이 있는가하면 단 돈 100만 원도 못 벌고 살아가는 빈곤 인구가 676만 명이나 된다.

 

#. 5 교육양극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신입생 가운데 중학교 내신 성적이 상위 20%인 학생은 전체의 49.7%인데 반해 하위 50%인 학생은 불과 5.1%다, 일반고 신입생 중 중학교 내신 성적이 상위 20%인 학생은 18.1%이고 하위 50%인 학생은 무려 50.7%에 달함.

2012학년도 수능의 평균 2등급 이상 학생이 많은 상위 30개 학교 중 일반고는 2개(특목고 24개, 자사고 4개)에 불과함.

 

#. 6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조사(2011·3·1~2012·2·29 기준)에 따르면 해외유학·이민을 뺀 학업중단 학생은 5만9165명으로 파악됐다. 전체 초·중·고교 재학생 1000명 중 9명(0.85%)꼴이다. 학업 중단자는 고교생이 3만3057명(1.7%)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 1만5337명(0.8%), 초등학생 1만771명(0.34%) 순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복지니 삶의 질을 말할 수 있을까? 섬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다. 일상화되고 사회문제가 되기에 하는 말이다. 어쩌다 우리사회기 이지경이 됐을까? 

 

우리나라는 교육에 관한 한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기야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니 어련히 교육에 관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학부모 말고도 교육학자, 교육관료, 교사, 사교육업체 종사자... 등등 모두가 교육자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위로 올라간다고 했던가? 갈수록 태산이다. 교육을 비롯해 사회양극화, 묻지마 범죄, 자살.... 우리는 지금 총체적인 멘붕시대에 살 고 있다. 그 많은 교육자 교육전문가 학자...들이 있는 나라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형상을 두고 나는 교육자다, 교육학자다... 할 수 있을까?

 

“선생님! 공부는 언제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외손자반 선생님이 만든 카페에 올라 온 글이다. 마을 돌아보기, 딱지치기, 소꿈놀이, 달팽이 놀이, 뱀놀이...와 같은 입문기 생활지도와 얼굴 익히기, 인간관계 맺기 등등 기초생활교육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선생님께 던진 항의(?)다. 고등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훈계를 하면 ‘선생님! 공부 합시다’라는 항의를 듣기도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공부를 못해 안달(?)인 현실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아이들 나무랄 일이 아니다. 얼마나 부모가 ‘공부 공부’ 했으면 어린것이 공부를 하고 싶어 안달(?)일까? 기저귀를 찬 영아가 영어 플래시 카드를 공부하고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가 하루 5~6군데 학원으로 내 몰리는 아이들.... 오죽하면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고 할까?

 

공부를 왜 하는 것일까? 일등이 공부라고 착각하는 부모들로 아이들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도대체 산다는 게 뭔지,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교육을 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도 없다. 살다 지치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기도 하고 기분 나쁘면 친구를 폭행하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는 아이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 온 결과가 만들고 있는 현실...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든, 학교폭력이 갈수록 잔인하고 심각해지든, 교육양극화 따위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배짱 좋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고 살맛 안 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궁금한 게 있다. 교육에 대한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교육은 왜 날이 갈수록 교육은 벼랑으로 내 몰리고 있는가? 진짜 교육자라면 진짜 전문가라면, 진정한 교육정책가라면.... 현직에서 물러났든, 정년퇴임을 했든,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길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식인들로 인해 세상을 하루가 다르게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누가 이 멘붕시대를 바꿀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정부 부처가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여 지났으나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는커녕 용두사미(龍頭蛇尾) 꼴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23일자 사설에서 ‘손발 안 맞는 학교폭력 종합대책’이라는 기사의 일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학교폭력근절대책이 서울을 비롯한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 진보교육감 때문에 학교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학교폭력이란 학교가 폭력을 저질렀다는 어폐 (語弊)가 있는 잘못된 말이지만 언제부터인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진짜 학교폭력이란 무엇일까? ‘학교폭력’이란 ‘학생들이 학교에서 당하는 폭행과 금품갈취, 협박... 등 육체적이나 정신적인 고통’을 일컬어 학교폭력이라고 한다. 그런 폭력을 교과부가 내놓은 대책을 잘 이행하면 사라질까?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의 쏟아왔던 관심은 이름그대로 ‘폭력과의 전쟁’이었다. 폭력방지를 위한 법률을 만들고 전문 상담사를 배치하고,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비상전화를 개설하고, 경찰을 비롯한 검찰의 전담반을 구성하고, 학부모 도움이를 조직하고, 가해자처벌을 강화하고 복수담임제를 두고....

 

 

중앙일보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학교폭력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을까?

 

학교란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공간에 폭력을 저지르는 나쁜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선량한 학생들에게 금품갈취나 폭행, 심부름을 시키며 괴롭힌다. 피해를 당한 학생은 보복이 두려워 어른들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피해를 목격하는 학생 역시 자신들도 표적이 될까봐 불의를 보고 눈감는다. 따라서 이러한 학교폭력가해자, 일진들을 제압하는 것은 정의의 사도인 힘센 교사들이 할 일이다.’

 

학교폭력이란 좀 더 엄한 교칙으로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두고 교사들이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감독하고 문제가 있는 학생은 색출해 엄벌을 하거나 재발방지를 위해 격리 수용하는 것이 폭력을 줄이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학교가 학생지도를 게을리 해서 혹은 교사들의 무관심이나 무능이 불러 온 결과라고 이해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관심 있게 다가가면 학교폭력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게 교과부를 비롯한 수구 언론의 시각이다.

 

 

정말 학교폭력이 남을 괴롭히는 나쁜 아이들이나 교사들의 지도 소홀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초등학생들조차 일제고사를 대비해 아침 자율학습에 보충수업에 방학까지 반납하고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교에 모든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영재학교나 자사고를 들어가기 위해 혹은 수학능력고사라는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4당5락의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은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을까?

 

일류대학을 입학하지 못하는 낙오자는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나라. 국영수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학교에 모든 학생이 다 승자가 될 수는 없다. 성적이 나쁘면 인성까지도 나쁜 문제아로 취급하는 학교...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인권조차 반납하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청소년... 그들을 괴롭히는 게 어디 학교뿐인가?

 

학부모들도 청소년들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다 너를 위해서야!’, ‘참아야 해!. 모든 아이들이 잘 견디는데 너라고 못 견딜 이유가 있나? 너는 우리 가문을 이어갈 사람이야, 내가 못 이룬 꿈, 네가 대신해 줘야 해. 의사가 돼야 해! 판검사가 돼야 해!’ 학원으로 또 학원으로 들 떠밀어 점수가 교육이라고 우기는 부모들의 과욕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인들은 어떤가? 청소년들이 읽을 책들은 건강한가? 그들이 보는 영화며 PC방의 게임들은 건강한가? 어른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건강한 정서를 키울 수 있는 환경조건을 갖추어 주고 있는가? 경쟁지상주의, 교육을 상품이라며 교육과정을 바꾸고 이기는 게 선이라며 경쟁 지상주의로 내모는 교육과부는 학생들에게 폭력 아닐까? 지식의 암기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며 ‘지면 죽는다’는 이들이 철학은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잘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가?

 

양극화로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주눅들어 살아가는 아이들은 폭력에 일상적으로 내 몰리고 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빈곤도 억압이요, 폭력이다. 고액과외를 받고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과 과외 한 시간도 못 받는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폭력이 아닌가?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줄로 세워,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조건을 만들어 주는 게 진정한 폭력 대책이 아닐까?

 

- 의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 이 글은 충청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80615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7.30 05:00


'사극을 보지 마라!‘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 한 분의 지론이다. 사극이 역사적인 사실(史實)만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픽션을 사실(事實)로 보는 시청자의 수준 때문이 아니다. 사극이라면 하나같이 사랑타령이나 왕이나 귀족의 업적중심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사극이라는 것 자체가 민중사는 없고 왕의 이야기나 귀족, 양반 중심의 이야기만 전개되기 때문에 서민대중인 민초들이 사극을 보면서 역사의식은커녕 영웅사관에 의한 역사관만 길러주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주로 잘생기고 인기가 있는 멋진 인기 탤런트이고, 노비나 서민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못생기고 추하고 굽실거리는 비굴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극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역사의 주인이 민중이 아니라 왕이나 잘난 귀족이라는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를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가난과 어려움이 못배우고 못난 자신의 탓 때문이라는 운명론적 가치관을 학습하게 된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착시현상이 진리일 수는 없다. 그러나 외모가 준수하고 걸친 의복이 고급스러우면 일단은 한 수 위로 보이게 마련이다.(자본주의가 만든 착시현상이기는 하지만...) 속으로야 아무리 육도삼략이 들어 있다하더라도 겉보기가 꾀죄죄하고 추하게 보이면 한 점수 깎인다. 나중에야 실력이 드러나고 본질이 보이겠지만 선입견이란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첫 인상이란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일까? 그렇잖아도 상업주의문화가 만들어 놓은 착시현상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여지없이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사회양극화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경쟁이나 효율이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분배나 기회균등 같은 공공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로 매도당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식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결혼상대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겠지만 ‘잘 생긴 사람’ ‘돈 많은 사람’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을 선호한다. 잘 생긴 사람과 잘 생긴 사람이 결혼하면 더 잘생긴 2세가 태어난다. 머리가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제대로 된 태교에서 친환경적인 음식을 먹이고 좋은 환경에서 양육하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까?

잘 생기지도 못한 사람,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어 그만그만한 사람이 결혼해  2세가 태어나고 어려운 여건에서 제대로 먹을 것도 못 먹고 자라면 어떤 사람으로 자랄까? 생김새는 제쳐 두고서라도 건강문제 하나만 보자. 산모가 출산에 관련된 지식이 있고 정기적인 검진을 받고 태어나 오염되지 않은 친환경농산물을 먹으면서 주치의의 진단을 받으면서 자라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누가 건강하게 자랄까?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느니 ‘가난한 집 아이가 공부를 더 잘 한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신문을 장식하곤 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어쩌다 구두닦이를 해 가며 주경야독한 학생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입지전적 얘기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지 않는다’는 류(類)의 기사가 종종 보인다.
 


공정하지 못한 경기는 게임이 아니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았건, 머리가 좋건, 아니면 운(?)이 좋아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를 문제 삼자는 게 아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체제니까 자본의 논리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과 의료와 같은 부분은 다르다. ‘사회 계약설’과 이념에 따라 성립된 자본주의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기본적 가치를 전제로 성립한 것이 사회다. 모든 경쟁이 선이라는 막가파식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사회란 존재해서도 안 되지만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기회균등이나 공공성이니 하는 가치를 근본이념으로 하는 ‘공화국’에서 출발하고 있다. 

승패가 결정된 게임은 게임으로서 가치도 없거니와 그런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나 다름없다. 교육 분야를 보자.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양극화가 한계상황에 도달한 나라에서 교육이 수월성을 바탕으로 한 경쟁논리로 가면 어떻게 되는가? 여기다 모든 경쟁구조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면 결과는 뻔하다. 국영수중심의 교육과정 편성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영어공부를 하거나 방학이 되면 해외로 나가 언어연수를 하면서 자란 아이와 학원에도 다녀보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과 경쟁이 되겠는가? 의대에 다닐 정도의 머리가 있어도 가정에서 뒷바라지를 해 주지 못한다면 의사가 되기는 쉽지 않다. 고시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다니면서 고시에 합격할 정도가 안 된다면 일년에 수천만원 이상 들어가야 가능한 고시공준비를 수년 혹은 10여년간 할 수 있을까? 

교육뿐만 아니다. 의료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의료보험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유능한 의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가치로 설정한 체제에서 돈이 없이 치료를 못 받거나 살릴 수 있는데도 돈이 없어 죽어간다면 이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다. 능력이 있어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나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치한다는 것은 ‘좋은 사회’라 할 수 없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가치가 ‘공공성’이다. 이러한 공공성을 포기하고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공성을 말하면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최소한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과 의료를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로 승자를 결정하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소득 재분배나 공공성의 실현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사회적 가치를 배분할 힘을 기득권자가 장악하고 있는 한 공정한 사회도 더불어 사는사회도 꿈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