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10년마다 한 번씩 벌이는 우리나라 인구센서스 결과 2015년 우리나라 전체 종교인 2497만 명 중 불교 신자는 1073만 명(42.9%)이다. 다음이 개신교로 861만 명(34.5%), 천주교는 514만 명(20.6%)이다. 2013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신자 수는 1635314000명으로 인구 대비 25.9%. 기독교인이 21억명, 이슬람교인 13, 불교 3.76, 힌두교 9억 명 순이다.


극락세계를 지향하는 불교나 천국을 이상향으로 믿는 기독교 신자들이 교조의 가르침대로 실현하고 있다면 오늘날 우리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인 10명 중 7명이 종교인이라고 한다. 그들이 믿는 신의 뜻대로 살겠다는 의지와 가르침에 따라 정치를 했다면 우리나라가 이토록 도덕이 무너지고 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멘붕세상이 됐을까?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불신사회가 됐을까?


'종교'''자와 ''자의 합성어이다. 자는 으뜸, 기둥, 근본이라는 뜻이며, 자는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이란 의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교육의 으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왜 가장 먼저 가르치고 배워야 할 종교를 가르치지 않을까?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다녀 온 학생에게 제주의 역사를 물어 보면 대답을 못하듯, 종교인들에게 종교가 무엇인가라고 물어 보면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종교가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공포,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내세를 준비하기 위해 신을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이 비록 형식은 다르나 사후세계를 준비하는 종교인으로서 교조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겠다는 것이 불교요,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자이나교... 등 수많은 종교가 있다. 이러한 종교인들은 살아가면서 본래의 뜻이 사라지고 기복 또는 구복신앙으로 바뀌기도 하고 권력의 이데올로기 역할도 해 오고 있다.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같지만 그들이 믿고 따르는 교조와 교의는 다르다. 특히 불교는 신을 섬겨 신의 뜻에 따라 극락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도움을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해 수도하는 종교다. 기독교의 신이 31체의 절대자라면 불교에는 신이 없다. 그 대신 스스로 깨달은 자가 되어 죽음을 초월한 존재가 되는 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신앙이다. 오늘은 먼저 불교에 대해 알아보자.


세계 230여개국의 74억 인구 중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신자는 약 37600만여명이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지금부터 2500년 전 샤카족의 중심지인 카필라 왕국(현재의 네팔)에서 국왕 슈도다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29세 때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법을 따라하거나 고행을 하였으나 이는 무의미하고 중도가 긴요함을 알았다.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붓다-깨달은자, 佛陀)가 되었다. 이후 인도의 여러 지방을 편력하며 교화에 힘썼고, 쿠시나가라에서 80세로 입멸하였다.


바로가기 ▶ 

석가모니의 삶고 사상.hwp



불교의 핵심 사상은 3법인 4성제

삼법인이란 : 모든 존재는 변하고 있다제행무상(諸行無常)과 

모든 사물은 실체가 없다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의 세계만이 고통이 없는 진리의 세계이다라는 열반적정(涅槃寂靜)

이 가운데 열반적정은 모든 것은 괴롭다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로 대체되기도 한다.


4성제란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원시 불교 가르침으로 불교 기본 교의 가운데 하나다. "(· Satya)"는 진리 또는 깨우침을 뜻하지요. 사성제"네 가지 높은 깨우침(Ārya: 높은, Satya: 깨우침)" 또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Four Noble Truths)"라는 뜻인데, 고제(苦諦) · 집제(集諦) · 멸제(滅諦) · 도제(道諦)4가지 진리 또는 깨우침을 의미한다. 흔히 이 네 가지를 간단히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는 방법이 8정도요. 깨달은 자, 부처가 되는 길이 이 8가지 실천덕목이다

  1.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2. 정사유(正思惟) ·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3.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4.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5.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6. 정정진(正精進) · 정근(正勤): 바르게 정진하기
  7.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8.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연기법 - 연기법(緣起法)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세를 업인에 의해 환생하게 되는데 6개의 세계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게 된다고 믿는다. 6(六道)란 불교에서 중생이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고 윤회할 때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를 6가지로 나눈 것으로, 지옥도(地獄道) · 아귀도(餓鬼道) · 축생도(畜生道) · 아수라도(阿修羅道) · 인간도(人間道) · 천상도(天上道)를 말한다.


지옥도(地獄道): 욕계의 지하세계에 속하며, 무거운 악업을 저지른 자가 가는 곳이다.

아귀도(餓鬼道): 욕계의 지표세계에 속하며,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 · 질투하는 자가 가는 곳 또는 항상 밥을 구하는 귀신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인간세계와 장소가 겹친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축생도(畜生道): 욕계의 지표세계에 속하며, 온갖 동물들이 사는 곳이며, 인간세계와 장소가 겹친다.


아수라도(阿修羅道): 욕계의 지표세계에 속하며, 아수라가 사는 곳이며, 인간세계와 장소가 겹친다. 구체적인 거주처에 대해서는 심산유곡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고, 바다 속이라는 의견도 있고(수미산과 지쌍산 사이의) 바다 밑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간도(人間道): 욕계의 지표세계에 속하며, 인간들이 사는 곳, 즉 인간세계이다.

천상도(天上道): 욕계의 천상세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하늘[]들을 통칭한다. 이 세계의 중생(유정), 즉 이 세계의 사람들과 존재들을 천인(天人) · 비천(飛天) · 낙천(樂天) · 천신(天神) · () · () 또는 데바(deva)라고 한다.

 

http://chamstory.tistory.com/1447



부처 - 현재불 : 석가모니불, 미래불 : 미륵불, 과거불 : 아미타불

부처님이 한분 뿐일까요? 경전에 보면 35불, 53불, 1천불, 1만 3천불로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불교의 종파

우리나라 불교의 종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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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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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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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만 관심은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라는 말(가르침)을 전폭 수긍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부처,예수,마리아가 있습니다

    2016.05.16 08: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데올로기와 구복신앙이 된 종교... 글쎄요.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종교. 학생들에게는 종교교육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요?

      2016.05.17 05:48 신고 [ ADDR : EDIT/ DEL ]
  2. 불교에 관해서 잘 설명해주셨네요. 오랜만에 들립니다. 잘 지내셨죠?

    2016.05.16 10: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불교신자들은 잘 모르는 불교, 기독교인들이 잘 모르는 기독교... 신자들 중에게는 종교의 본질보다 복을 받기 위해 절이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16.05.17 05:50 신고 [ ADDR : EDIT/ DEL ]
  3. 내 안의 부처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잘 보고가요.

    행복한 하 ㄴ주 되세요.

    2016.05.16 10: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불교나 여타의 종교 모두가 지향하는 바는 결국 한 곳일 거라 생각됩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자비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6.05.16 14: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쫒는 싡들만 있다면 이 세상은 아마 지금쯤 극락세계나 천국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2016.05.17 05:52 신고 [ ADDR : EDIT/ DEL ]

인성교육자료2010.11.22 10:23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함께 산다.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홀쭉한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가난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게으른 사람.... 능력이나 개성만 각양각색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로 인연이 맺어지기도 하고 형제나 지매로, 또 친구 사이로 만나는 관계로 인연이 되어 사는 곳이 이 세상이다. 죽고 못 사는 사랑하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서로 미워하며 법정 투쟁까지 벌이는 앙숙(怏宿) 사이도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신분이나 재능이나 혈연으로 맺어져 한세상 더불어 사는 것일까? 일찍이 석가모니는 이러한 ‘개인의 운명이나 인간의 관계 맺어짐’을 업(業)이라고 풀이 했다. 업이란 원래 ‘행위’ ‘조작’ ‘일’ ‘짓’ 등의 뜻을 가진 말로 ‘전세 (前世)에 지은 악행이나 선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서 받는 응보'를 이르는 말이다. 전생의 행위나 결과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이고 나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 업 사상은 수세기동안 계급사회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도 우리사회의 불평등이나 개인의 능력이나 신분의 차이를 전능한 ‘신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도공(陶工)이 그릇을 만들 때 ‘귀하게 쓰일 그릇을 만들 수도 있고 천하게 씌어질 그릇도 만들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신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서야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고와 과학의 발달로 종교가 해석하는 이러한 논리는 신자들의 자유의지에 맡길뿐 과학적인 검증으로는 아직도 역부족이다.

내게 주어진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주어진 현실을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바꿔나갈 것인가는 개인의 신념이나 철학에 달려 있다. 인생을 일컬어 ‘유수(流水)’ 같다느니 ‘나그네’나 ‘풀의 이슬과 같다’는 말로 표현한다. 흐르는 물과 같기도 하고 잠간 있다가 떠나야 하는 나그네나 풀의 이슬처럼 ‘언제 그렇게 세월이 지났는가?’ 할 정도로 빨리도 지나간다는 뜻이다. ‘죽고 나면 끝’이기 때문에 살아 있을 동안 먹고 즐기자‘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나 질이 달라진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인생관’이라고 한다. 똑 같이 100년을 사는데 삶의 질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능력이 아니라 의지요 신념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는 뜻이다. 운명론자나 허무주의자가 되어 실의와 좌절에 빠져 한평생 허송세월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는 자신이 판단할 몫이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다. 지난 뒤 후회하는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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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강<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내병은 내가고친다.<
    <font color=#ffffff></font>
    <font color=#ffffff></font>정<font color=#ffffff>㎁</font>보<font color=#ffffff>ß</font>

    2010.11.29 07:25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2010.10.23 07:37


- 종교의 여성 -

남녀를 표현할 때 남자에게 '계집애' 같다고 하면 모욕적인 언사가 되고 여자에게 '치마를 둘렀으니 여자지, 남자못지 않다'고 하면 칭찬이 된다. 보통 '남자답다'는 표현은 진취적이고 이성적인 남녀를 가리키고 '여자답다'고 하면 다소곳하고 소심하다는 뜻으로 통한다.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남존여비의 풍속은 민주주의를 사는 시민의 의식 깊숙히 까지 남아 있다.

오늘은 종교의 여성관에 대하여 살펴 보자.

인류 역사를 50만년으로 본다면 49만 5천년 이상은 모계중심사회였으나 정착하여 농경생활이 시작되고 사유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이후는 부계중심사회로 바뀐다. 종교는 계급사회 이전에는 자연에 대한 공포나 경외에서 출발하지만 계급이 발생한 후에는 체제유지 이데올로기로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진출처:한겨레 21>
기독교는 남자가 여자를 낳는 역사 즉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성이 탄생한다는 논리를 비롯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에베소서) 에서는 보는 바와 같다. 생리나 출산때 출혈을 부정하다고 보고 부정한 죄가 벗겨질 때까지 근신해야 한다고 했다.(레위기) 그리고 여성은 이브의 타락에서 악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인간사회의 불행과 비참함은 여자의 범죄(선악과를 남자에게 권유한) 댓가라고 보고 있다.

여성의 해산 고통은 남자(아담)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한 죄의 댓가라 보고 오늘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것도 여성(이브)의 원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남자는 완전한 하나님의 모습'으로, 여자는 '잘못 태어난 열등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이성적 능력이 열등하고 도덕적으로 의지와 자기 절제능력이 열등한 존재'로 태어났다고 했다.
                                                   <사진출처;한겨레 21>

불교에서도 남자승려인 비구의 계율은 250가지만 지키면 되지만 여승인 비구는 업장이 두텁다 하여 348가지 계울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남자는 부처가 될 수 있으나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되고 보살에 머물러야 한다.

가장 남녀불평등을 강조한 종교는 유교이다. 삼강오륜에서 부부유별은 물론 축접제, 전족,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결을 강조하고, 혼례식도 올리지 않은채 죽은 정혼자를 위해 수절을 강요하고 있다. 죽은 남편따라 죽는 것이 열녀가 되어 여성의 갈 길이라 가르치고 재가금지는 물론 칠출(칠거지악)을 강조한 것도 유교문화의 잔재이다. 여성이 가족의 공유물로서 출산이나 노동력의 제공자인 하급노예 시대가 바로 종교가 기여한 공로(?)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 사진출처 ; 한겨레 21>
더욱 불행한 일은 여성 자신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이면서 오히려 운명적으로 수용하면서 여성이 더욱 남자편이 되어 스스로 굴레를 만들어 운명적으로 살아 왔다. 여성은 육체적인 힘이 남성보다 약하니까 열등하게 태어났다거나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남자중심의 도덕이나 가치체계가 종교를 통하여 더욱 운명적으로 수용하고 체계화 되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자본주의 모순의 근원은 남여 불평등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이 상품화된 사회구조 아래서는 유능한 남성은 화폐가치로 평가되고 경제적인 소득의 고하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치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즉 자본주의의 계급구조는 능력이라고 포장된 불평등이 남여 불평등에 기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이 남성의 미완성품이 아닌 인간으로서 인격적인 존재가치를 인정할 때 종교가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여성 해방과 함께 인간 해방이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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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호

    좋은 글이네요.

    2010.10.23 15:32 [ ADDR : EDIT/ DEL : REPLY ]
  2. <여성이 남성의 미완성품이 아닌 인간으로서 인격적인 존재가치를 인정할 때 종교가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여성 해방과 함께 인간 해방이 가능할 것이다.>
    가슴 한편 뜨끔하면서도 공감합니다...

    2010.10.24 09:13 [ ADDR : EDIT/ DEL : REPLY ]
    • 사람들은 그러더군요.
      '여성해방은 여성의 문제'라고....
      그런데 알고 보면 정작 피해자는 여성에 못지않게 남성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성이 상품화되면 더 이쁜 여자, 더 잘난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남성의 경쟁이 사회악을 유발해 돈많은 '남자=유능한 남자'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가난한 남자=무능한 남자'라는 등식은 사회계급을...
      그래서 개인은 물론 지역까지 서열화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성해방은 남성들이 먼저 나서서 해야할 일인 것 같습니다.

      2010.10.24 18:57 [ ADDR : EDIT/ DEL ]
  3. 인류 역사를 50만년으로 본다면 49만 5천년 이상은 모계중심사회였으나 정착하여 농경생활이 시작되고 사

    2013.06.03 17:15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09.03.16 07:41



 "선생님! 연세가 쉰이 넘은 선생님께서 교회에 나가신다고요?"
 법(신) 없이도 사실 분이 '왜 갑자기 하나님이 필요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 저와 함께 교회 다니시던 분이 제게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대통령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15년도 훨씬 지난 옛날, 교회에 함께 다니던 H권사님이 길에서 어깨띠를 하고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고 구원받읍시다"하며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저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선생님은 노인이 다되셨네요. 이제 연세도 있고 한데 준비 하셔야지요. 교회에 다시 나오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본지 10년 정도 세월이 더 지났으니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걸보고 '노인이 다됐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제 죽을 때가 다 됐으니 회개하고 죽을 준비를 하라'는 말은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답니다. 


 교회 얘기가 나왔으니 필자의 지난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1989년 전교조결성으로 나라 안이 온통 시끌벅적했을 때입니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사립)의 교장이 필자가 다니는 교회에 장로이기도 했습니다. (필자의 당시 교회직분은 초등부부장을 맡은 권사였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랬지만 전교조 출범 당시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비리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고 필자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전교조도 미운데 자기 학교 비리까지 문제제기를 했으니 교회에서인들 예쁘게 보일 리 있었겠습니까. 필자도 교장의 뜻은 아니지만 전교조 교사 5명이나 해직시킨 교장이 고울 리 없어 한달 정도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뒤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총회를 열어 저를 제명처분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30년이 넘게 교회에 다닌 중진(?) 권사(감리교회의 권사는 장로교회의 장립집사 정도 될까?)를 본인의 소명기회도 주지 않고 징계처분을 했다는 것이 못내 서운하고 못마땅했습니다. '죽을 준비나 하라'던 그 권사는 당시 필자와 같은 권사였는데 예의 그 교장과 같은 입장에 서서 우리를 참 괴롭게 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특히 전교조에 대해 악의적인 선전을 한 장본인이었고, 징계(?)과정에서 '전교조는 빨갱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다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가 동료교인을 징계하면서 본인도 출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징계한 것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시절 군사정권을 축복하는 조찬기도를 자청하고 최근에는 국가보안법철폐반대를 하는 모습이 예수님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인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문익환목사님이나 문규현신부님과 같은 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에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겠습니까?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군에 갔다 오면 사람된다'는 속설에 대한 오해와 같은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선생님처럼 착하신 분이 오히려 멀쩡한 아이를 군대 보내 '권력에 복종하는 순종적인 인간'을 만들듯이 법 없이 살 수 있는 선생님 같으신 분이 '하나님이 두려워 눈치를 보면서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까마득한 옛날, 자연에 대한 신비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신)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무서운 병으로 고통을 받거나 죽음의 공포는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고 그 보이지 않는 절대자가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은 신의 영역이고, 죽음의 문제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종교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거라고 봐야겠지요. 다시 말하면 종교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신의 도움이 필요해 생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절대자를 믿고 따라야 하는 데 그 '절대자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그게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생사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신(神)이란 어떤 존재일까? 아니 그러한 신이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가? 하는 문제를 놓고 '유신론이니 무신론이니 또는 삼위일체 신이 진짜 신이니 예수는 신이다. 아니다 선지자일뿐이다... 신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인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부처가 되는 길밖에 없다..... 내가 믿는 종교만이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느니... 하는 논쟁이 지금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의 끝없는 논쟁으로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나 마호메트나 부처나 공자나...어떤 신앙의 대상도 마찬가지지만 그걸 본 사람, 그러니까 전한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신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거지요. 공자의 가르침을 놓고 주자만이 해석할 능력이 있다고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자학이니 성리학이라 하고 왕양명이 해석한 걸 양명학이라 하지 않습니까? 불교도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과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 그리고 선교종(선종+교종)도 있고 조계종, 천태종, 일붕선교종, 진각종, 여래종, 일승종, 미타종, 미륵종, 원효종, 태고종, 정토종 등...이 있지 않습니까?

 폐일언하고 선생님이 믿기로 했다('교회에 나간다'와 '예수가 하나님이다'하고 믿는 것은 다른 뜻이지요)는 그 신. 그 기독교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우선 기독교를 말하기 전 제 얘기를 잠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지요. 성경을 처음 읽어 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일이지만 그 감동을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목격한 저로서는 인간의 허무함을 뼈 속 깊이 느끼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목사가 되는 길을 몰랐기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못했지만 성직자가 돼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일이 있었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기독교는 종교자체가 곧 권력이었던 과거가 말해주듯 상당부분 이데올로기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어때서요?'할지 모르지만 그건 순진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돈이나 권력은 인간의 신념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옛날 저와 함께 시민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는 지금 청와대에도 있고 정부쪽 고위직에도 있는 걸 봤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옛날 하던 말과 지금 하는 소리는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변절을 했더군요. 그거지요. 권력의 맛. 돈의 맛을 알면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기독교도 초기에는 처절한 탄압을 받았지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제정일치시대를 거치면서 초기의 정신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의 뒤를 따라 십자가에 그것도 거꾸로 매달려 죽지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 교황(베드로의 후계자=교황)은 곧 왕 중의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유럽 제국의 왕을 임면할 수 있는... 권력이 장기간 집권을 하면 부패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중세의 기독교가 얼마나 타락했으면(면죄부를 팔아먹는...) 루터나 쯔빙글리 같은 이들, 토마스 뮌쯔 같은 이들이 목숨을 건 저항을 시작했겠습니까?

 종교개혁을 성공한 마르틴 루터는 민중을 배신한 대가(?)로 오늘날 개신교의 종주가 되지만 예수의 뜻을 따르겠다고 권력과 타협을 거부한 토마스 뮌쯔는 처형을 당하지 않습니까? 천주교에서 아니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그리스 정교회, 국공회,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여호와의 증인 등 엄청난 파벌이 만들어지고 각 종파들은 전쟁을 치르듯이 숫자를 늘려 세력 확장해 나갔습니다. 공유사상인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타협을 신의 뜻이라고 호도하면서 권력의 맛. 세상의 맛을 알고 스스로 권력이 되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를 나가면 됐지. 뭘 그리 복잡하게 따지고 드느냐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나의 삶을 맡긴다(신앙)는 것은 그렇게 함부로 그리고 단순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 온 삶을 부인하고 신이 가르쳐 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말씀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을 한다' 또는 '신자'란 어떤 의미를 다고 있는가? 진정한 신앙인은 중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중생(거듭난다)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건방지게 앞으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을 쉽게 자세히 배우실 기회가 있는데 왜 제가 이런 얘길 하는가 하면 목사님이 가르쳐 주실 한느님과 제가 말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다르게 느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40년이 넘게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저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지금부터 그 얘길 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대부분의 '신부님들이나 목사님들이 가르쳐 주는 그런 하나님은 처음의 예수님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따라 기독교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안경(신관)으로 예수를 보느냐에 따라 전통신학과 민중신학 또는 해방신학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처음 현재의 성서가 전부이고 그런 시각에서 예수를 해석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외경이라는 것도 있고 예수님이 절대권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분이 아니라 나의 육신의 아버지 보다 더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하신 분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모습의 예수를 가르쳐 주느냐에 따라 신자들의 신앙을 전혀 다른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님이나 신부님은 현실보다 내세를 더욱 강조하고 인자하신 하나님보다 권위의 하나님, 절대자 하나님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모습을 보는 사람에 따라 예수님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듯이 성경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집니다. 물론 기록된 사실도요. 예를 들면 신약의 5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성서는 마가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베드로의 수행원이 그것도 예수님이 죽은 후 60년이 지나 기록한 것이 최초의 신약성서인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의 산상보훈에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기록돼 있지만 다른 복음서 그러니까 마태나 누가, 요한복음에는 '그 산상보훈 앞에 '마음이'라는 말이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성경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일점 일획도 보태거나 빼서도 안 된다는 사람들(無誤說)이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겁니다. 이것만 보아도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에서 부와 권력과 손잡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지요.

 이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봅시다.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예수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천주교, 개신교...) 선지자일 뿐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유대교, 이슬람교)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다니시기로 한 교회(개신교)는 예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다'라고 믿음으로서 성립한 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성부인 야훼와 성자인 예수 그리고 성신인 성령)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성부는 무엇이고 성자는 뭔가 그리고 성령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건 절대자 야훼=예수=성령이라는 다른 이름 같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신. 삼위일체의 신을 어떤 모습을 믿어야 하는가?'
 자비의 신인 예수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복수의 신인 구약의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은 복수의 신, 위엄의 신으로 나타나고,. 신약성서의 신은 죄를 지은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주시는 자비스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공포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엄부(嚴父) 아래서 자란 자녀처럼 권위에 복종하는 순종적인 신앙인이 되거나 이중인격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발 하니님이 무서워 마음에도 없는 자선을 베푸는 그런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두서 없는 글을 마치겠습니다. 제발 제 좁은 신관(神觀)이 선생님의 신앙생활에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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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오만

    마르크스도 선생님과 같은 이유로 누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비평의 발달로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정설로 인정되는 Q자료에 의하여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위 세복음과는 조금 성격이 틀려서 일단 요한복음은 논의에서 제외합니다. 그래서 공통적인 또는 조화적인 복음이라는 의미로 공관복음(곧 마태, 마가, 누가)이라고 말을 합니다.

    덧붙여 산상수훈은 마태에만 있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산상수훈(보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산에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편집비평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더 들어간 마태와 마음이라는 단어가 빠진 누가의 차이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중요한 차이점 편집상 신학적인 강조와 읽는 원시공동체를 위한 배려였지,
    일점일획도 빼지 말라는 근본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위한 본문은 아닌 듯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전반적인 논지를 전적으로 이해하나, 부분적으로 보이는 잘못된 정보가 오히려 선생님의 논지를 약화시킨 듯 하여서 말입니다.

    2009.03.17 23:14 [ ADDR : EDIT/ DEL : REPLY ]
    • 반갑습니다.
      성직자신가 보지요?
      도사 앞에 문자 쓴다더니 평신도로서
      신학 책 몇권 읽은 상식으로
      글을 쓰다보니 본색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2009.03.18 21:09 신고 [ ADDR : EDIT/ DEL ]
  2.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박정희, 노태우대통령시절 군사정권을 축복하는 조찬기도를 자청하고 최근에는 국가보안법철폐반대를 하는.

    2011.12.27 20:20 [ ADDR : EDIT/ DEL : REPLY ]
  3. 感谢你,我已经发表在我的博客的链接,因此,我的同事通常可以从中受益,也为这项有意义的信息。

    2012.01.02 19:18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08.10.24 07:19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와서 불교나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가르쳤는데 사립학교법을 개악하고 세금도 내지 않겠다면서 문화재관람료는 받겠다고 생떼를 쓰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불같이 화를 내며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지는 않을까? 3법인 4성제 8정도를 통해 부처가 되라고 가르치신 부처님이 서로 지분을 많이 가지려고 몽둥이질을 하고 부자가 되어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과연 성 내지 않을까?

대웅전에 모셔둔 부처님은 한결같이 금 색깔이며 얼굴은 또 왜 또 그렇게 권위에 차고 살이 쪘을까? 그런 모습을 쳐다보면 평화와 자비심을 느낄 수 있을지… 수양부족인 중생의 눈에는 부처님의 덕을 가리는 사이비 승려들의 적악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역사기행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불상을 만나게 된다. ‘저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부처님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부처님의 모습도 시대별로 다양하게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누워 있는 불상, 않아있거나 서 있는 불상, 또 깡마른 부처와 뚱뚱하게 살이 찐 부처, 천진난만하게 생긴 부처와 범접할 수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의 불상도 있다. 철불과 동불이 있는가 하면 금동불과 금불상도 있다. 왜 이렇게 생김새가 다양한 불상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반가사유상>                    <입불>                     <좌불>
세상은 보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탈레반이 잡아둔 한국 인질을 보고 한 편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던 착한 사람들이 사악한 테러세력이 잡고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순교는 그들이 원했던 게 아닌가’, ‘유서까지 써놓고 죽으러 갔으니 죽게 내버려두자’, ‘전지전능한 신이 왜 선교활동을 하러 간 교인들을 어쩌지도 못하는 무력한 신이 됐는가…?’라고.
왜 이렇게 상반된 반응이 나올까? 아프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가 뭔지 또 아프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면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불상이란 불교의 신앙대상으로 창조된 부처의 모습이다. 불상은 불격에 따라 불타. 보살. 명왕. 천부. 나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불타는 여래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풀이하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불상은 재료의 종류에 따라 석불, 마애불(磨崖佛. 커다란 암벽에 부조 또는 선각 등으로 얕게 새긴 불상), 목조불, 은불, 금동불, 철불, 소조불(塑造佛. 점토로 만든 불상), 건칠불(乾漆佛. 나무로 간단한 골격을 만들고 종이나 천 같은 것으로 불상을 만든 후 옻칠을 하고 다시 금물을 입힌 것이다) 등이 있다. 불상을 생김새로만 이해해서는 불교의 진수를 모른다. 부처님은 너무도 거룩한 분이라서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 자체가 자칫 그분의 성스러움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초기에는 불상이 없었다. 불상을 대신해 불사리탑이나 법륜, 보리수 연화좌, 금강좌와 같은 상징물들을 부처님의 위치에 표현해 놓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부처님이 입멸한 지 500여년의 세월이 흐르기까지는 불상이 아니라 이러한 부처님의 상징물이나 사리를 모신 탑이 예배의 대상이었다. 

                     
                          <철불>          <법주사의 도금한 불상>        <금불상>  
부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면서까지 불상을 만들게 됐을까? 불멸 후 500년까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지켜왔지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부처님의 불사리를 놓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때 향성 바라문의 중재에 의하여 사리는 8등분되어 여덟 개의 불사리 탑 및 병탑(사리를 담았던 항아리), 회(재)탑을 건립하여 사리가 모셔진 탑이라는 형상을 통해 부처님을 대하듯 숭배하였던 것이다. 불상의 기원을 보면 가장 일찍 편찬되었다고 하는 <아함경(阿含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보면 코삼비(Kaus mb)국의 우다야나왕이 향나무로 석가의 모습을 조각하도록 했다는 것이 불상조각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철불 법주사의 도금한 불사 금불상 무신론인 불교가 부처가 신앙의 대상이 됐다는 것부터가 불교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해탈자이기 때문에 그분이 가신 길,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 해탈의 길을 가자는 것이 불상을 만들고 절을 많이 하고 시주를 많이 하면 극락왕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불교가 권력과 밀착해 승려들에게 계급을 하사하고 불전을 줘 수탈자로 만든 것은 권력의 뜻이다.

                       
                              <도금한 범어사 불상>                                       <마애사 석불>
절대왕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불교는 왕이 곧 부처(왕즉불-王卽佛)가 되게 마련이다.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불교는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정체성을 달리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해탈의 경지를 터득해야 할 불교가 부처라는 신을 만들어(형상화) 구복과 기복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처음의 불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러한 불상의 제작과정을 보면 순수하게 민간신앙 차원에서는 목불이나 소조불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다 국가차원에서 불교가 받아들여지고 권력과 결합하면서 철불이나 금동불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의 표정도 처음에는 ‘깡마르고 고통에 찬 모습 -> 천진난만한 친근감이 넘치는 모습 -> 차츰 살이 찌고 근엄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왕이 곧 부처’가 되는 고려시대는 외모나 권위 면에서 종전의 천진난만하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어지고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과 함께한 불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주류를 이룬다. 흥미 있는 사실은 동남아시아국가들처럼 외세의 지배를 받은 국가는 대부분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 외침을 받지 않은 주권국가들은 대승불교가 흥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종주국은 식민지배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개인의 해탈에 전념하는 것은 식민통치에 방해가 될 리 없기 때문에 방치한 것이고 대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이 아니라 중생의 아픔을 구제해야 하기 때문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즉 식민지배의 저항에 나서게 된다. 식민지 종주국은 당연히 대승불교를 용납할 수 없었고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가 권력과 유착하지 않고 식민사회의 모순에 나선다면 식민지배가 순조롭지 못했을 것이라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 소승불교 소승은 열소(劣小)한 수레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타고 피안(彼岸)에 이를 수 있는 큰 수레가 아니라고 한다. 부처님 입멸 후 캇사파가 중심이 되어 경전을 결집하고 계를 지키며 수행하는 전통적 보수 교단을 소승불교라고 한다. 소승은 자리, 즉 자신의 구제(해탈)만을 목표로 삼은 출가주의로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여 엄한 계율을 지키고 수행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본다.

2. 대승불교 ‘대승’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 대승과 소승은 어떻게 다른가? 내가 있는 곳이 욕계요 강건너 저쪽의 세계가 열반의 세계라면 ‘어떻게 강을 건너가느냐?’가 문제다. 소승불교에서는 출가자가 자기 위주의 독선적 사고에 빠져 석가의 근본정신을 잊어 버렸다고, 대승불교는 소승불교를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석가 본래의 정신에 되돌아와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의 신자들도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불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다.
[불상의 모습]

왜 어떤 부처는 누워 있고 어떤 부처는 앉아 있고 어떤 부처는 서 있는가? 와불(臥佛)부터 살펴보자. 와불은 부처님이 ‘열반에 들 장소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형상’을 상징하고 입불은 서 있는 불상이며 좌불은 결가부좌한 자세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것과 설법을 하는 자세’를 뜻한다. 초기는 입상이었다가 후기로 가면 앉아 있는 불상으로 바뀌는데 이는 권력화되고 권위적인 부처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상의 모습도 바뀜을 알 수 있다. 보통 대웅전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은 부처님이 삼매에 드신 상태(삼매인)와 설법하시는 모습(전륜법인)을 형상화하고 있다. 반가상은 부처보다 주로 관음보살 등의 보살에 많이 쓰이며 주로 사유상 즉 생각하고 있는 자세다. 반가상은 ‘현생의 중생들의 고달픔을 생각’하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불상은 왜 그렇게 살이 찌고 권위에 차 있는가?]

초기 불상은 재료는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 진 목불이거나 토불이었다가 후기로 가면서 철불이나 금동불 혹은 금불로 바뀐다. 모습도 처음에는 고뇌에 찬 갈비뼈가 앙상한 모습,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찐 건강한 모습으로 바뀐다. 불교가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게 되고 권력화되면서 외모도 그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 승과제도가 도입되고 왕사나 국사와 같은 계급을 차지하고 사원전을 받아 경제력까지 가지면서 불상의 모습도 그에 상응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불상을 통해 보는 불상은 본래의 부처님 얼굴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불상이 권력과의 위계관계에 따라 다정다감하고 천진난만하다가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이다. 귀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귀족이고 싶었고 왕 또한 살아서도 죽어서도 왕이어야 했다. 결국 왕은 살아서 부처요(王卽佛)이요, 죽어서도 부처였던 것이다.

[과거불, 현재불 그리고 미래불 ]

우연의 일치일까? 미륵불을 뜻하는 ‘미르’와 야훼 태양신(미트라(Mithra)=메시아)는 어원이 ‘미르‘로 같다. 기독교의 3위일체 신인 야훼와 예수, 그리고 성령처럼 불교에서도 과거불인 약사불과 현재불인석가불, 그리고 미래불인 아미타불이 있다. 역사적으로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혼자이지만 교리적으로 "진리를 깨닫은자", "진리의 발견자"로서 부처님은 얼마든지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부처님은 오래된 성(城)을 발견한 사람에게 비유하기도 한다. 즉 자신 속의 불성을 일구어 내어 깨달음을 얻으면 바로 부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종교가 이데올로기로 바뀌면...]

역사적으로 종교가 권력화되면서 민중의 억압자로 군림한다. 그 증거가 입불이나 좌불, 와불로 나타난다. 불상의 얼글도 자애로운 모습에서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지배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고 종교는 당근을 받아먹으면서 공생한다. 불교만 그런게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권력화되면서 그 종교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교의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거대한 불상을 만들고 도금을 하고 그래서 그런 붙상이 더 영험이 있다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3법인 4성재 팔정도를 통해 해탈을 지향하는 불교가 부처님을 신으로 만들어 구복, 기복신앙으로 바뀌어 간다.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자와 민중을 호도하는 사이비 불교 지도자 때문에 애꿎은 부처님만 수모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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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une

    "역사적으로 종교가 권력화되면서 민중의 억압자로 군림한다.
    지배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고 종교는 당근을 받아먹으면서 공생한다. 불교만 그런게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권력화되면서 그 종교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교의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올리신 글의 말미 이 부분이 현대 종교의 변질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나 절이나 기타 종교에서
    비뚤어지고 어긋난 모습들...
    그 원인을 핵심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은 "권력획득"(세력확장,부의축적)이나 어긋난 탐욕이라는
    불편한 진실의 종착지에 도달하니까요.

    하지만 현재 종교에 몸담은 분들에겐
    그저 "불편한 진실"일 뿐이죠...
    이왕이면 모르는 사람들에겐 쉬쉬하고,
    알게된 사람들에겐 좋은게 좋은거라고
    슬쩍 눈감아 달라거나 덮어두자고 하는...

    2008.10.28 15:51 [ ADDR : EDIT/ DEL : REPLY ]
    • '제사'를 생각하면 참 웃습지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렇게 저렇게 의례를 치러라고 가르쳐 준 일도 없는데 사람들은 그 '의식'을 금과옥조로 생각하곤 하지요.
      그것도 남의 나라 '주자'라는 사람의 가문의 의식을 말입니다.
      불교의식이나 기독교 의식도 마찬가지지요.
      교조는 그런 일이 없는데 후세 종교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교의는 무너지고 껍데기만 남아....
      안타까운 일은 종교뿐만 안겠지만 말입니다.

      2008.10.29 07:11 신고 [ ADDR : EDIT/ DEL ]
  2.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2012.01.02 13:00 [ ADDR : EDIT/ DEL : REPLY ]
  3.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2012.01.07 04:35 [ ADDR : EDIT/ DEL : REPLY ]
  4.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2012.04.04 00:35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해가 안갑니다.

    2012.04.06 05:13 [ ADDR : EDIT/ DEL : REPLY ]
  6.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2012.05.09 01:01 [ ADDR : EDIT/ DEL : REPLY ]
  7. 다 먹었습니다.

    2012.05.11 12:4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