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또 학생이 자살했다, 대구시에서 넉달새 학생 10명이 투신 8명이 숨졌다. 지난 2일,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1학년 김모(15)군이 친구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1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것이다.

 

숨진 김군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라는 제목의 글에서 ‘더 이상은 살기 힘들 것 같아요. 조금만 잘못해도 어떤 나쁜 녀석에게 맞았어요. 축구 시간에 10분 늦었다고 때렸어요. 고막이 찢어진 것도 그 녀석 때문이고요’

 

대구시 교육청 산하의 학교에서만 10명의 학생이 투신한 이유가 뭘까?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이 학생 자살의 원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탓이라며 '자살 베르테르 현상'이라고 분석해 지탄을 받고 있다. 점수가 교육이라고 착각하고 성적이 뒤떨어진 학생을 패배자로 보는 분위기는 아이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닐까?  

 

자살 학생 보도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도대체 언제가지 학교폭력으로 학생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 온갖 폭력근절책을 다 내놓았지만 이런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학교폭력이나 학생자살을 그치지 않고 있다. 이해관계도 없는 제 3자가 볼 때도 억장이 무너지거늘 자살한 학생의 부모의 심정을 어떠할까?

 

 

 

무너지는 교육,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학생들이 목숨을 끊는 현실을 두고 교단을 떠나면서 나는 누구에게나 주는 훈장을 거부했던 일이 있다. 퇴임 후 7년, 평생을 교육계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아직도 달라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욱 황폐해가는 교육계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워 몸 둘 곳을 모를 지경이다. 하물며 교직에 몸담고 있는 교사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지난해 자살한 초·중·고교생은 모두 150명.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었다. 통계청의 최근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 5명 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10대와 20대의 주요 사망 원인 1위는 ‘사고’가 아닌 ‘자살’이며,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초중고생의 수가 무려 150명으로 집계됐다.

 

학교폭력은 정영 해결 못하는 일일까? 아니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해야 옳다. 정부가 사흘이 멀다 하고 내놓는 폭력대책은 솔직히 근절책이 아니라 책임 떠넘기기요, 아랫돌 빼 윗돌괘기용이다. 대책도 휘황찬란하다. 학교폭력관련 특별법제정, 폭력예방 글짓기, 표어 포스트 그리기, 학교폭력자진시고기간, 입간판설치, 가정통신문 스쿨폴리스제, CCTV카메라 설치, 학교폭력 SOS지원단 운영, 동영상 UCC 신고코너설치, 검,경찰 학교담당제, 복수담임제,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 진학이나 취업에 불이익...등...

 

 

솔직히 말해 교과부가 하루가 다르게 내놓는 폭력대책으로는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교과부의 대책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보수적인 교원단체에서는 교원들에게 사법권을 입법청원하는 웃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담임교사를 사법처리하는 방안에서부터 위스쿨을 만들어 문제아(?)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등 천편일률적인 처벌과 감시 통제 일변도다. 학교 구석구석에 감시카메라가 되고 교사의 언행은 자칫하면 동영상으로 올라가 하루아침에 매장될 위험(?) 속에 놓여 있다.

 

폭력문제는 폭력으로 해결 못한다.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

 

첫째, 가정교육이 살아나야 한다. 교과부는 밥상머리 교육 운운하지만 그런 교육이 가능한 가정에 몇 퍼센트나 될까? 가난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바꿔나가야겠지만 우선은 아버지교육 어머니교육부터 이루여 져야한다. 무너진 가정에 어떻게 가정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둘째,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원이나 진배없다. 교육과정은 껍데기만 남고 지식만 주입하는 학교, 일등지상주의 학교, 낙오자는 패배자가 되는 학교에 어떻게 폭력이 사라지길 바랄 것인가?

 

셋째, 학교는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그래서 친구나 이웃, 내 민족이 소중하다는 인생관, 세계관을 갖도록 철학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승자지상주의 일등만능주의는 학교가 저지르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다. 폭력이 정당화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넷째, 인권교육을 일상화해야 한다. 인권을 유린당하는 학생들에게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인권이 없는 학교에 어떻게 남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 학벌사회를 바꿔야 한다. 일류대학이 있고 졸업장이 개인의 인품이요, 삶의 질을 결정하는 풍토를 두고 폭력근절이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대물림되는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학교폭력의 근절을 기대할 수 없다.

 

여섯째,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삼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돈의 가치가 사람의 가치보다 소중한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구조를 두고 폭력없는 건강한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태생적인 한계, 폭력과 음란물이 돈벌이가 되는 사회현상을 방치하고 청소년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처벌이 능사라는 교과부의 근절책은 솔직히 말해 코미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을 두고 자살이라 말하지 말라. 그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만든 엄연한 타살이다. 언제까지 꽃 같은 생명이 죽어가는 현상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만 있을 셈인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5.22 06:30


 

 

‘교과부가 없으면 교육이 더 잘될 것이다’

‘교과부는 교육파괴부다’

‘어디 교과부만 그런가? 지역교육청도 없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선생님들 모이면 하는 소리다.

 

도대체 교육과학기술부는 뭘 하는 곳인가? 왜 그런 소리를 들을까?

 

교과부란 ‘교육 및 국가 인적 자원 개발, 기초 과학 분야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는 곳’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국가교육에 관한 정책수립과 학교교육, 평생교육 및 인적자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교육인적자원부의 기능과 과학기술부의 기능을 통합하여 4실·5국·12관·72과 체제로 개편되어 있는 조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교과부라고 하면 ‘우리나라 교육과 과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고 이와 관련한 업무를 맡아 보는 곳’으로 알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육부란 헌법이나 교육법, 그리고 교육과정이 규정하는 있는 교육의 목적을 학교나 교사들이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교과부가 하는 일을 보면 목적과는 전혀 엉뚱한 이해되지 않는 정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사나 학교, 교과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다. 그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목적은 국채(國體)에 따라 다르다. 전제군주국가의 교육은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요, 공화제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여 인격을 완성하게 하고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증진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렇게 막중한 책무를 맡고 있는 교과부는 그런 일을 하고 있을까? 최근에 교과부가 하고 있는 일들만 해도 교과부가 해야 할 원론적인 업무를 하기는커녕 차라리 ‘없는 게 훨씬 낫다’는 교사들의 성토가 실감난다. 예를 들면 학기 초 교과부가 학교 폭력 대책으로 밀어붙인 중학교 체육수업 시수 확대나 복수담임제만 해도 그렇다. 교과부가 학교로 하여금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그리고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행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감시. 감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과부가 내놓은 정책은 그게 아니다.

 

 

 

교육의 목적은 ‘홍익인간’이라면서, 이타적인 인간을 기르겠다면서... ‘교육은 상품’이라며 교육과정을 개정해 시장판에 내놓았다. 상업주의란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다. 교육을 시합 전에 승패가 결정 난 무한경쟁을 시키면 교육법이 추구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 있겠는가? 수월성이라는 성적지상주의 교육을 인성교육, 인간교육이 아니라 점수지상주의 교육이다.

 

교육과정을 정상화시켜야할 교과부가. 국영수 중심의 서열매기기에 앞장서 학교가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시험준비를 위한 학원으로 만들고 있는 게 교과부다. 얼마나 훌륭한 인간을 길러내느냐가 아니라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시행해 개인별, 학교별, 지역별로 서열화시키고 점수가 곧 교육이요, 인격이라는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다.

 

교과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침이나 정책을 보면 철저하게 반 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이다.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한 진보교육감들의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자, 정부 입법으로 교육감의 학칙 인가권을 폐지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 통과시키고 국무회의에서 시행령 개정, 의결했다. 이런 반인권적인 교과부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폭력 관련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하고 학생 도움카드를 작성하여 학생들을 사찰하라는 지침까지 내리고 있다.

 

철학 없는 교과부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교육은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키워내기도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여 인격을 완성하게 하고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책임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는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인가? 내일의 행복을 위해 모든 날의 인간다운 삶을 포기시키는 교과부는 반인간적이고 반 인권적인 교육파괴부다. 불행한 모든 오늘을 합한 내일이 어떻게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

 

이미지 출처 ; 다음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3.10 07:00



올해부터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복수담임제(소인수 학급담임제)가 우려한 대로 실효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면서, 본래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늘고 있다.

전교조대전지부가 최근 대전시교육청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공받아 분석한 결과, 대전 관내 초중고 전체 294개교(초등 141, 중학교 88, 고등학교 61, 특수학교 4곳 등) 중에서, 올해 복수담임제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모두 108곳(36.7%, 초등 141개 학교 중 16개교, 중학교 88개교, 고등학교 2개교, 특수학교 2개교)이다.

복수담임제를 운영하는 초등 전체 16개교 77학급 중 30학급의 담임을 보직교사가 맡고 있었고, 비교과교사 및 기간제교사, 강사가 담임인 경우도 10학급이나 되었다. 대전중원초등학교의 경우, 특이하게도 교장․교감 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중학교는 교과부 및 시교육청의 ‘중2 의무 운영’ 지침대로 88개교 모두 2학년에 복수담임을 배치하였다. 중1과 중3에 복수담임이 있는 학교도 각각 13곳, 11개교에 달했다.


문제는 중학교의 경우 학급당 교원 정원이 1.5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복수담임제를 운영하는 전체 673학급 중 444학급(66%)의 담임을 보직교사(부장교사)가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교과교사 및 기간제교사, 강사가 담임인 경우도 55학급이나 되었다. 한 마디로 중학교 현장은 ‘전 교사의 담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렇게 교무․연구․학생부장 등 보직교사들이 제2담임의 2/3를 차지하다 보니 예상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쏟아지는 공문 처리와 과도한 행정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보직교사들이 복수 담임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겉으로는 A(원 담임), B(복수 담임) 두 담임의 역할이 나뉘어져 있지만, 사실상 담임 업무는 A담임교사에게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전시교육청은 복수담임제 운영 현황을 파악하는 공문을 시행하면서, 복수담임의 ‘역할 유형’을 5가지로 제시하였다: (1)업무 분담 (2)학교폭력 집중 관리 (3)생활지도 전담 (4)상담 강화 (5)주기적 역할 조정 등. 한 마디로 복수담임에게 담임수당을 지급하고, 제1담임의 업무를 보조하도록 역할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인 역할 분담으로 복수담임제의 애초 도입 취지인 ‘학교폭력 근절’ 효과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복수담임제의 활용도에 대한 일선 학교의 온도차는 예상보다 크다. 어떤 학교는 학교폭력과 관련된 학생 지도에만 한정하고 있고(예시2), 또 어떤 학교는 원래 담임이 해야 할 일을 그저 옆에서 거들어 주는 수준이다(예시1, 3, 4). 교과부나 교육청에서는 “B담임교사가 A담임교사의 역할을 분담하는 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기대를 하겠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복수담임제에 대한 두 담임의 역할 경계가 모호하다. 학생들은 벌써부터 많이 헷갈려 한다. ‘하늘 아래 두 태양’을 모셔야 하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조․종례는 A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시간에 딴 짓 하다 들키면 B선생님께 가서 꾸지람을 듣는 식이다. 두 담임의 교육적 소신과 가치관, 지도 방식 등이 확연히 달라 학생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괴로워한다.

아이들만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A, B 두 담임선생님 간 긴밀한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서로 할 일을 떠넘기기도 한다. 심지어 “똑같이 담임수당 받는데, 왜 젊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느냐?”며 얼굴 붉히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생겨날 수 있다. 이처럼 복수담임제는 동료교사 간 반목과 교단 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다분하다.


복수담임제는 이미 13년 전에 실패한 정책으로 결론지어진 바 있다. 또한 복수담임제는, OECD 수준으로의 학급당 학생수 감축과 학생 1명 당 교원수 확충,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사회 안전망 확보 등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하여 ‘면죄부’를 받으려는 꼼수라는 비판도 면하기 어렵다.

복수담임제는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기여하기는커녕, 국민의 혈세(담임수당)만 낭비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학교폭력근절은커녕 교직사회를 더욱 혼란시킬 복수담임제를 폐지하는 게 옳다. (이 기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위의 이미지 자료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2.22 07:00




이제 며칠 후면 새 학기가 시작되고 담임도 발표하게 된다. 누가 담임이 되는가는 학생들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다. 담임은 정담임만 있는 게 아니라 부담임도 있다. 그런데 부담임이라는 직분은 교무실 흑판에나 적혀 있을 뿐 학생들의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

학기 초 조례시간에 담임이 부담임 이름을 알려주는 것으로 끝나기도 하고 아예 학생들 중에는 부담임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부담임은 담임이 결근이나 출장을 갔을 때, 조례나 종례를 대신 해 주는 사람 정도의 역할 을 하고 있다.

오는 새 학기부터 복수담임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자 교과부가 폭력근절책으로 올해부터 학생 수 30명 이상 학급의 중학교에 복수담임제를 우선 도입하고 학교 여건에 따라 시행한다면 예산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처음에는 중학교만 실시하고 내년에 고등학교와 초등 6학년으로 확대할 방침이었지만 초등 6학년 예산까지 반영되어 있어 학교가 원하면 초6학년도 복수담임제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복수담임제를 도입하면 학교폭력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월 11만원의 수당을 지급한다는 복수 담임제. 이러한 방침이 발표되자 학교현장에서는 학교에 한 번도 근무해 보지 않은 교육 관료들의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교과부가 도입한다는 복수 담임제는 어떻게 운영될까?

교과부가 도입하겠다는 한 교실에 두 사람의 담임교사. A담임교사는 학급운영과 생활지도를 맡고 B담임교사는 행정업무를 맡는 방식이다. 또 A담임이 전체 학급 관리를 맡고 B담임은 지도하기 어려운 일부 학생의 집중 관리나 생활지도·상담을 전담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담임은 월 또는 학기 단위로 역할을 번갈아 맡을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22.5명, 중학교 19.9명, 고등학교는 16.7명이다. 이는 OECD 평균인 초등학교 16명, 중등학교 13.5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복수담임을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이 800억정도다. 담임수당을 11만원씩 지급한다면 6만명의 선생님이 복수담임을 맡게 된다. 이 880억 예산이면 복수담임 6만명 대신 1년에 3200명의 신규교사를 더 채용할 수 있는 예산이다.

 880억 예산으로 복수담임 6만명 대신 1년에 3200명의 신규교사 채용이 효과적이다


예산도 문제지만 복수담임제를 도입하면 학교폭력근정에 효과가 있을지가 의문이다. 실제로 대전시교육청에서는 1999년 복수담임제를 도입, 시행했지만 1년만에 예산만 낭비하고 포기했던 실패한 정책이다. 한 교실에 두명의 담임이 맡게 되면 책임의 한계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지도방침이나 학생들의 선호에 따라 교사들 간에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주로 부담임은 이름만 올려놓는 게 담임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관행이 계속되어 왔고 그것이 학교의 일반적인 정서다. 부담임이 학급경영에 간섭한다는 것은 정담임이 싫어할 뿐만 아니라 학생지도에 혼선을 빚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교과부는 “현재 중학교의 40%인 비담임 교사(보직교사 포함)에게 담임 역할을 부여하고 수당도 지급하는 등 제도화를 하면 책임 소재가 분명해 진다”고 하지만 업무의 영역, 책임의 한계가 불명확한 교육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담임 업무를 나누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학교현장 교사들의 정서다.


방법이 없는 것일까? 교과부가 진정으로 학교폭력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880억 예산으로 복수담임 6만명의 담임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1년에 3200명의 신규교사를 더 채용하는 게 낫다. 그러나 지금 당장 복수담임제를 꼭 시행하겠다면 한 반을 둘로 나눠 담임을 맡는 ‘소인수 담임제’를 도입하는 게 옳다.

실제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1학년을 대상으로 ‘소인수 복수담임제’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선사고의 경우 학급 학생을 절반으로 나눠 전교사가 담임을 맡는 방식으로 복수담임제를 운영하고 있다. 또 서울 청담중학교에는 ‘전교사 담임제’를 운영하고 있어 성과를 상당한 거두고 있다고 한다.

유휴교실이 부족한 도시학교의 경우 현실적인 여건이 어렵겠지만 교사들의 의견수렴으로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순리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교과부가 복수담임제 시행을 강행한다면 폭력근절은 커녕 예산만 낭비하고 교사들 간의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