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3.08.21 07:00


왜 사람들은 수원을 찾는가?

 

조선 22대왕 정조임금이 정치개혁의 실현과 실학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중심지로 삼기 위해 만든 도시가 수원이다. 화성의궤에 담긴 수원축성의 비법이 담겨 있어 원형 복원이 가능했던 도시.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 팔달시장, 못골시장, 영동시장, 지동 시장 등 왕이 만든 시장이 있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시가 수원이다.

 

 

아무리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도 이를 가꾸고 아끼는 주민들의 애착과 사랑이 없으면 허사다. 지자체단체장의 역사의식, 환경 마인드, 그리고 주민들의 수원사랑이 결합해 수원은 나날이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 교육의 도시, 환경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팔달산에서 화성행궁을 내려다보면 이런 장관이 없다. 화성축성 시, 행랑과 부속관청까지 합하면 620여칸에 이르는 조선 최대 규모였다. 애민과 효심이 지극한 군주. 그는 민초들의 삶을 걱정해 축성과정에서 부역이 아닌 임금을 지급하는 군주였다. 학문을 중히 여기고 강력한 군사력의 필요성을 느껴 화성을 쌓고 장용영을 설치하는 혜안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수원시민들이 얼마나 지역사랑과 수원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골목구석구석에 남겨진 벽화를 보면 안다. 어둡고 좁은 골목에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과 주민들이 함께 그린 그림뿐만 아니라 멕시코, 독일, 네팔...등 세계의 작가들의 남긴 그림들로 단장하고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 기분이 그렇고 수원에만 있는 ‘돈대’는 수원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구조다.

 

수원화성에는 수원천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천으로 생태교통의 또 다른 모습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보통 도시 중심을 흐르는 하천은 가정의 생활폐수로 악취가 진동해 복개를 했다 부셨다하는 악순환을 반복하지만 수원천은 살아 있는 하천이다. 천변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들이 있어 한여름 대낮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수원성을 축성하면서 만든 만석거(저수지)며 만석거 주변의 공원화 사업으로 이 공원은 이제 시민들의 문화예술의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나혜석이 태어나고 자라 작품 활동을 한 수원은 미술대전이 열리고 지지대고개 효행공원 인근에는 어린이 생태미술 체험관이 있어 전시와 함께 체험교육이 을 할 수 있는 산교육장이 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변기 모양의 독특한 해우제 건축물은 수원에서만 만날 수 있는 화장실 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환경도시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수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문화의 새로운 혁명. ‘생태교통 수원 2013’은 수원이기에 가능한 사업이다. 역사적인 유물과 환경적이 조건만 갖춰진다고 환경도시가 만들어 지는 건 아니다. 차 없는 마을을 만들고 지역주민의 이동수단 전시체험이나 문화행사 같은 전시성 행사 몇 번 한다고 환경도시가 완성되는 게 아니다. 지자체가 환경도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지자체 단체장의 환경 마인드가 필요하다. 여기다 주민들의 지역사랑과 환경의식, 그리고 실천이 시작될 때 비로소 이런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수원시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환경교통 수원 2013’은 행궁동 2200세대 4300명의 인구가 사는 동네에 1500대의 자동차만 없는 동네를 만든다. 낙후되고 침체된 원도심의 도시를 보행중심, 사람중심의 환경도시로 만들기 위해 화서문로와 신풍로에 통신 지중화 사업과 가로등을 정비하고 있다. 옛길이나 골목길에 불량노면을 재포장하고 골목길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이제 생태교통수원 2013사업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도시의 기반시설이 우선적인 환경도시로 만드는 첩경이라면 기존의 자연적인 조건과 역사적인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로 가꿔나가야 한다. 수원시는 이를 위해 쌈지공원조성과 신풍동과 장안동에 도시텃밭을 조성하는 등 환경도시를 만들이 귀한 기반 조성사업에 착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원시는 매연과 공해에 찌든 시민들의 삶의 활력소가 될 천혜적인 자연이 있다. 광교저수지 산책로는 피로에 지친 시민들의 안식처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린 수변테그와 쉼터 그리고 광교저수지의 둘레길을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최근 광교저수지 내에 1만 ㎡의 메밀단지가 조성 돼 9월이 되면 환상적인 메밀꽃을 감상할 수 있다.

 

도시민들에게 근교에 산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수원시의 광교산은 그런 의미에서 수원시민들에게 쉼터와 첼겨연마 그리고 연인들에게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광교산은 높이가 582m로 능선이 완만하고 산림이 우거져 시민들의 삼림욕장으로 또 산행코스로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광교산자락의 호수는 수원 시민들의 수원지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수원시가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주변경관을 가꾸고 다듬어 휴일뿐만 아니라 아침 운동 장소로서 안성맞춤이다.

 

특히 봄이 되면 벚꽃길이 장관이다. 광교산 둘레길은 수변테크나 광교쉼터 그리고 제방 둘레길이 조성돼 수원시민들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붐비기도 한다. 이제 며칠 후면 수원시와 ICLEI와 UN-HABITAT가 주최하고 안전행정부와 산업통상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이 후원하는 ‘생태교통수원 2013’사업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2.06 07:00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외국 남성과 한국 여성의 비밀 음란파티'뿐만 아니다. 그 기사의 사실여부를 덮어두고라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영어학습 열풍은 가히 필사적이다. 기저귀를 찬 영아가 고액과외를 받는가하면 미국식 발음을 잘하기 위해 혓바닥 수술까지 시키는 부모도 있다.

 

어머니들의 치맛바람만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식의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출부 노릇을 한다는 소리는 흔해빠진 얘기다. 이제 조기유학이나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도 우리 귀에도 크게 낯설지 않다. 영어만 잘하면 일류대학이나 취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에 대한 애착 때문일까? 인수위원회장의 "'프레스 후렌들리'에서 시작된 영어 사랑은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이 나서서 "몰입식 교육을 국가적으로 추진할 계획 없다."는 진화를 하면서 진정되긴 했지만 이명박정부의 영어 사랑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포스텍은 2010년부터 대학내 강의와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공용화 켐퍼스를 추진하고 학부전공과목과 대학원 강의를 100% 영어로 진행하고 학위논문도 쓰게 했다. 삼성전자도 2011년부터 영어 공용화방안 계획을 추진한 바 있다. SK와 LG(LG는 뒤에 영어 공용화계획을 없었던 일로 하기로 결정...)도 영어공용화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를 계기로 송도국제도시를 영어 공용화 도시로 만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흘러 나왔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장래희망인 학생이나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인 학생도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영어공부를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영어는 일류대학으로 가는 지름길이요, 좋은 결혼 상대자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취업에 우선권이 주어지는가 하면 좋은 직장을 구하는 첩경이다. 평생 외국인과 상대할 일도 없는 공무원 시험이나 대학 편, 입학시험에도 토익점수로 당락이 결정된다. 세상이 바뀌는데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잠꼬대 같은 소릴 하느냐고 핀잔을 할 사람도 있겠지만 영어 실력은 적어도 우리사회의 인간의 가치를 좌우하는 바로미터다.

 

문화지체현상에 빠진 노인의 망령된 소리가 아니다. 위대한 조상. 적어도 언어와 문자에 한해서만은 우리 조상들은 세계에서 그 어떤 민족보다 위대한 문화를 창조하고 다듬고 지켜왔다. 수천년간 중국문화의 영향권에서 살아오면서도 우리 조상들은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언어를 지키면서 글까지 만들었다. 청의 지배 하에서는 일부 소수의 지배세력이 그들의 언어를 고급언어로 그리고 일제 식민지시대는 역시 소수의 지배계급이 그들의 언어를 모국어로 섬긴 일이 있지만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해 온 민초들은 우리의 문화유산인 우리말과 우리 글을 지켜 온 것이다.

 

 

식민지시대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소수의 친미세력들은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섬기고 싶어 한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강자의 논리가 진리라고 믿고 서구의 사상, 종교, 언어까지 동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교육을 상품이라고 우기고 교육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라고 강변한다. 외국인 학교를 세우고 국어도 국사도 가르치지 않은 초·중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학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민족문화에 대한 긍지나 자부심은 물론 한글에 대한 애착도 관심도 없다.

 

문화 사대주의자들은 오직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선이요, 불이익은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처신하고 있다. 미국의 힘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는 사실을 몰라서도 아니다. 조상들이 아끼고 다듬어 온 문화유산을 없인 여기는 민족치고 잘 되는 나라는 없다. 한 나라의 말과 글은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가치관 그리고 민족의 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최근 길거리의 간판을 보면서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열등의식에 젖은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없듯이 제나라 말과 글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그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람은 헐벗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 자기 민족의 문화유산을 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렌즈에 비췬 세상2011.10.03 06:30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리고 있는 합천해인사. 합천명소탐방 파워블로그 팸투어 일행 23명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해인사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이슬비가 촉촉하게 뿌리는 초 가을... 가야산 국립공원 자락에 안겨 있는 합천해인사는 상왕봉(1,430m)를 중심으로 두리봉, 깃대봉, 단지봉, 남산 제일봉, 등의 암석봉우리로 이루어진 가야산 중심에 앉아 있습니다.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이 있는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건축물인 당간지주입니다.
해인사 입구에 '나무미타불'이라고 쓴 지주가 반문객을 맞고 있었습니다.

당간지주란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는데 돌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철·금동·나무로도 만든 것도 있다. 

 
이번 팸투어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 해방 70년이 가까워 오는데 식민지의 잔재는 이곳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 구석구석에도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는사실입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나라... 독도문제가 그렇게 일본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왜곡문제가 그렇고 정신대문제며 문화제 반화문제 등등 아직도 일본과 우리는 가까이하기는 너무 먼 당신이다.

언젠가 비무장지대를 둘러보다가 곁에서 일본말로 웃으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듣고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느꼈던 일이 있다. 38선이 누구 때문이며 6·25는 누구 때문인가? 제대로 된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숙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상처난 역사의 아픈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 큰 웃음소리로 떠들고.. 하는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울분이 솟구쳤던 것은 나의 과민한 성격 탓이었을까?

합천에서 열리고 있는 2011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에서 그 때의 생각이 떠올라 치를 떨었던 일이 있다. 하나는 수백년 묵은 소나무가 저들의 전쟁야욕을 채우기 위해 피를 뽑아간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는 현장이고 또 하나는 친일 승려 변설호가 해인사 입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를 일제에 밀고해 사명대사의 비석을 네 조각을 냈던 역사의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번째 현장.
마치 군대의 계급장처럼 파낸 부분이 일제가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발악적인 전쟁광의 모습을 드러낸 흔적입니다.
비행기의 항공유가 모자라 우리나라 곳곳에 수백년 묵은 소나무를 이렇게 껍질을 벗겨 송진을 채취해 항공유로 사용한 흔적입니다.

누구나 이 현장을 보면 악랄한 왜놈들은 민주의 피만 뽑아먹은 게 아니라 나무의 피까지 뽑아 먹은 잔인한 흡혈귀를 연상하게 됩니다.
나무를 이지경으로 만들어 놨으니 농민들에게 한 수탈으 어느정도인지.. 또 우리의 조상대대로 지켜온 수중한 문화유산을 얼마나 훔쳐 갔는지... 무덤까지 파헤치고 도굴해간 문화재의 재산가치는 수치로 나타내 수 없는 날강도 짓을 해 간 것입니다. 
   


두번째 현장.

친일 승려 변설호가 해인사 입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를 일제에 밀고해 사명대사의 비석을 네 조각을 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인들의 변절은 역사의 고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식민지시대 조선의 개신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구별하지 않고 나타납니다. 기독교의 우상숭배문제는 십계명으로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할 계명이지만 신부나 목사라는 지도자들이 스스로 변절했던 기록은 기독교의 슬픈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민족을 배신하고 종교까지 일제에 갖다 바친 목사난 승려들이 아직 단 한번도 역사 앞에 속죄를 한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중에 변설호(일본식 이름은 星下榮次)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법명은 영세(榮世), 호는 초우(草牛)입니다.  

48세 때인 1935년에 금강산 유점사 강주로 있다가 경성부의 유점사 경성포교당에 포교사로 부임. 총독부의 비호로 주지지에 당선된 변설호는 국방헌금 모금에 적극 나섰으나, 사찰의 부채를 정리하고 건물을 수리하여 신도를 모으는 데 노력. 주지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주지선거에 재선되기 위해 같은 승려인 '이고경이 학승들에게 불교경전 외에 역사와 같은 다른 과목을 가르치면서 항일 교육을 했다'며 일제경찰에 밀고한 사건을 일으켜 재선됩니다.
 
또 한가지 사건은 홍제암에 세워져 있던 사명대사 석장비가 일본 형사들에 의해 파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변설호가 조선에 불경스런 사명대사라는 중의 비석이 있는데 이 비석을 제거해야한다고 일경에 밀고. 사명대사 석장비를 네 조각 내서 한 조각은 해인사 내 경찰주제소 정문 디딤돌로 사용하고 나머지 조각들은 해인사 구광루와 명월당 앞에 방치했습니다. 일제 때 네 조각으로 쪼개졌던 이 비석은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복원을 했습니다. 복원한 비석에는  변설호와 그 무리들을 가리키는 "절 안의 벌레"라는 구절이 들어 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사명대사의 석장비를 접합한 모양이 십자 형태로 붙여저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팔만대장경을 통해 본 종교의 모습.
종교가 왜 생겼을까?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종교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을까? 분명한 사실은 사람이 종교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신을 만들었을까? 기독교든 불교든 모든 종교에서 신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인간의 유한성과 때문이다. 종교란 ‘죽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인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쩌랴! 주인과 손의 위치가 서로 뒤바뀌는 주객전도라더니...!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지만 종교는 오히려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때로는 신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해 사람들의 삶을 옥죄이기도 하고 구원자가 되기도 한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나타난 종교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힘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권력은 그런 유능한 신을 가만둘 리 없다. 처음에는 정교일치로... 다음에는 정교분리라는 가면을 쓰기는 했지만 그 대의 종교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고려시대의 경우를 보자
고려시대는 승려들은 권력에 의해 승과제도가 도입되고 국사니 선사니 하는 계급으로 서열회된다. 

그렇게 종교와 함께 등장해 한편으로는 신으로 한편으로는 권력으로 변신해 민중을 지배하게 된다. 권력과 종교! 그것은 종교가 이데올로기일 때 가능했던 일이다.
팔만대장경을 통해 본 종교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全知全能)한 존재다. 아니 사람이 신에게 부여한 권력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이 신에게 허용한 권력이 신으로서의 종교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하게 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에 세워진 거대한 예수 석상. 팔을 벌리고 도시를 감싸 안듯 서 있는 예수상 높이는 무려 38m다. 신라 경덕왕 때 건립되었다는 석굴암도 예외는 아니다. 석굴암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할까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그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까 1236년 몽고의 침략으로 나라가 온통 전화에 아우성을 치고 있는 시기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이 낳은 위대한 기적... 그것이 팔만대장경이다. 경판(經板)의 수만 무려 8만 1258판에 이르며 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목판에 새겨진 경구가 좀 하나 좀먹지 않고 보존된다는 기적 같은 사실은 종교의 위력일까 인간의 무한가능성일까?

종교를 모르면 종교는 영원한 인간의 주인이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계단은 높고도 높다. 
민중들의 부처님이 고려시대로 들어 오면서 승과제도를 도입, 스님들까지 계급으로 나누는 귀족들의 불교로 바뀐다. 

부처님의 모습도 처음에는 목불에서 석불로 석불에서 철불로 동불, 금동불 금불로 바뀌고 이렇게 높디높은 자리에서 귄위에 찬 모습으로 앉아 있게 된다.

 

해인사를 나오면서 만난 성철스님의 부도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사물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수준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나의 눈에는 승철스님이 저런 부도는 승청스님이 우너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승철스님이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저런 부도를 자신을 위해 만들어 달라고 했을까? 
  


성철스님이 자연을 이렇게 훼손해 자심의 무담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나 계실까?
불교가 다비식을 하고 재를 뿌리는 이유는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 아닐까? 

사리를 모시기 위해 이렇게 자연을 훼손했으니 이런 일을 한 사람은 저승에서 승철스님을 만나면 아마 혼줄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철스님의 부도를 보면서 승청스님이 마지만 남기고 가신 법어가 생각난다. 

"스님, 한 말씀만 여쭈겠습니다."
"뭐를?"
"일천삼백만 불자가 있는데 그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내 말에 속지마라. 자신의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내 말 말이여. 내 말한테 속지말어. 나는 늘 거짓말만 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속지 마라, 그 말이여." 

平生을 欺?男女群하니 彌天罪業이 過須彌로다(
평생을 기광남여군하니 미천죄업이 과수미로다)
活陷阿鼻限萬端이여 一輪吐紅掛碧止이로다(활함아비한만단이여 일윤토홍괘벽지이로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