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상읽기2018.12.04 06:37


한국 경제의 권력의 상징은 삼성이다. 그렇다면 한국 미디어의 최대 권력은 누구일까? 아마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쎄요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만든 신문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만 재벌이 만든 신문은 재벌을 대변한다. 상식적인 이런 논리를 사람들은 모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노동자들, 가난한 사람들이 재벌이 만든 신문을 더 좋아한다.



재벌이 만든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삶은 노동자지만 머릿속 생각은 재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신문에 진실만이 담겨 있다고 믿는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부자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에 교묘하게 마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런데 왜 시간당 몇십원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재벌들은 돈벌이도 안되는 신문이나 방송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을까?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거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에 유명 논설주간 이강희가 하는 말이다. 내부자의 등장인물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그리고 그들을 돕는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거래의 판을 짠 이는 대한민국 여론을 움직이는 유명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대한민국을 이끄는 실질적인 주인(?)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의 축소판이다. “넌 복수를 원하고, 난 정의를 원한다. 그림 좋잖아?”빽 없고 족보가 없어 늘 승진을 눈앞에 두고 주저앉는 검사 우장훈(조승우)의 모습을 보면 우리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재벌과 찌라시 언론, 정치 깡패들이 만드는 세상은 살만 한가?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세상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화장술이 뛰어나 세상에는 엔간히 못난 여성도 화장을 하면 못난 사람이 없을 정도다. 화장을 한 정치인, 화장을 한 언론, 화장을 한 정치깡패들은 모두가 진실하고 고상하고 예의바르고 준법정신이 투철한 인격자로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본질도 그럴까?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자신의 수준만큼 아니 기득권세력이 만든 이데올로기에 마취된 순진한 사람들은 이들의 고급 화장술로 만들어 놓은 세상의 진실을 볼 수 있을까?

문화일보와 한국경제신문은 현대의 정주영이 27.6%, 정몽준이 22.2%, 정세영이 0.8%. 중앙일보와 중앙경제는 이건희회장이 26.4%의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다. 대우는 부산매일과 부산경제를, 한화는 경향신문을, 롯대는 국제신문, 동부는 강원일보, 영남일보는 갑을이, 충청일보는 일신이, korea herald와 내외경제신문은 대농이 대주주다. 기족소유의 신문도 있다. 동아일보는 재단법인인촌기념회가 24.0%, 김재호와 트구 관계인이 22.0%, 조선일보는 방우영(40%), 방상훈 (30. 03%), 방용훈(10.57%) 등 총 80.60%)를 차지하고 있는 가족신문이다. 한국일보는 강경제외 94.3%, 세계일보(통일교55.73%), 국민일보(순복음교회 100%), 매일신문(천주교 87.3%)은 종교단체가 발행하는 신문이다.(‘미디어 오늘자료 참고)

재벌이 만든 신문은 재벌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종교단체가 만든 시민은 종교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비춘다. 노동자가 재벌이 만든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노동운동단체의 리더가 재벌주주들이 만든 신문으로 세상을 보면 노동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노동자가 발행하는 신문과 재벌이 만든 신문을 함께 본다면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도도 있겠지만... 신문뿐만 아니다. 종합편성채널이라는 공중파 언론은 매일경제신문이 MBN, 동아일보가 채널A, 조선일보가 TV조선을, 중앙일보가 JTBC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공중파 방송이 노동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비춰 줄까?



재벌이 만든 신문이 아니면 괜찮다고요? 천만에.... 재벌이 만든 신문이나 방송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신문은 재벌이 만드는 것이나 진배없다. 왜냐 하면 신문이든 방송이든 구독료나 시청료로 운영할 하는 신문사나 방송사는 없다. 사이버시대, 광고나 국가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경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광고료로 운영되는 언론이 광고주가 저지른 비리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비춰줄 수 있는 있을까? 신문사나 방송사가 문을 닫고 싶지 않고서야 재벌의 비위, 국가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서는 운영이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신문마다 진실보도’, ‘정의’, ‘불편부당’, ‘공정보도’... 어쩌고 하지만 그게 뻔한 헛소리라는 것을 순진한 사람만 모른다.

그 정도가 아니다. ‘드라마를 보는 재미로 산다는 주 부들, 이들이 보는 드라마는 영화 내부자들처럼 재벌을 비판할 수 있는 내용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가? 드라마에는 백마 탄 왕자나 신데렐라가 등장하지만 재벌회장은 너무나 맘씨 좋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그것은 광고주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작가의 속내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드라마에 갑질하는 재벌회장을 본 일이 있는가?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도 비전 상실 증후군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조금씩 마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재벌이 만드는 세상에 노동자도 행복할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재벌이 만들어 가는 세상이다. 재벌이 만든 이데올로기는 시장에만 있는게 아니다. 생활 속 전통에도 있고, 학생들이 배우는 수요자중심의 교과서 속에도 담겨 있다. 착하기만 한 사람, 가만있으라고 가르치는 학교의 교훈에도 있다. 성을 상품화 하는 유행 속에도 있고, 눈만 뜨면 보는 광고 속에 깊숙이 녹아 있다. 노동자를 블루와 화이트로 나누고 노동자를 근로자로 만드는 말장난 속에도,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더불어 사는 세상이 가능하겠는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라일찍이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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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8.10.17 06:28


드라마는 누가 만들지...?”

수업시간에 문화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방송국이요!”

탈렌트('탤런트)들이 만듭니다!”

아닙니다. PD가 만듭니다

학생들 대답 중 정답이 있을까요? 모두 틀린 답입니다. 방송국이 드라마를 만들려면 탤런트를 불러야 하고 작가에게 각본을 부탁해야 하고 소품이며 카메라맨을 비롯한 기술진들의 임금도 줘야 합니다. 돈을 주지 않는데 그들이 어떻게 드라마를 만들겠습니까? 결국은 드라마는 자본이 만드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스트레이트 뉴스>

지금 연세가 3~40이 된 사람들은 한겨레신문의 삼성과의 전쟁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07년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의 삼성 비자금의혹 기자회견이후부터 삼성은 한겨레신문에 광고를 주지 않자 한겨레는 삼성광고 없이 신문을 발행했던 사건 말입니다. 신문이며 방송이 구독료나 시청료가 아니라(KBS1는 시청료) 광고비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지난 7월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공판 결심을 앞두고 삼성에 비판적인 <한겨레>, <제이티비시>(JTBC), <중앙일보>, <에스비에스>(SBS) 등에는 삼성이 광고를 대폭 줄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자본이 만들어 가는 세상,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 교육, 심지어 종교까지도 자본의 입김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삼성이 노무현 정부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삼성의 돈으로 키워진 이들이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모두를 꿰차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어떤 안경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자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 아니면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입니다. 자본의 눈으로 비춰주는 세상이 마치 자기가 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거 때가 되면 가해자를 짝사랑하는 피해자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안방에서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자본의 시각에서 제작되고 세상을 비춰주는 뉴스가 자본이라는 안경으로 세상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자본은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까지 바꿔놓고 있습니다.

장 사장님. 바쁘시게 잘 지내시지요? 총선 이후 식사 한 번 할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인데 혹 틈을 내실 수 있을는지요? 동지인 MBC ○○○ 본부장과 같이 하려 합니다. 연합뉴스 및 연합뉴스TV 보도담당 상무 XXX 드림.”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연합뉴스 상무가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던 장충기에게 보낸 문자입니다. 뉴스타파 최승호 PDMBC 사장으로 복귀하면서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삼성 앞에만 서면 머리를 조아리고 꼬리를 흔드는 삽살개로 표변하는 언론의 모습을 사실대로 보여주고 있어 지금까지 자본에 길들여진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스타파의 이건희 회장 성매매 보도가 있던 2016년에는 장 사장님. 늘 감사드립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안팎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누워계시는 이건희 회장님을 소재로 돈을 뜯어내려는 자들도 있구요. 나라와 국민, 기업을 지키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져갑니다. 연합뉴스 XXX 드림.”...영화 내부자들을 본 사람들은 독자나 시청자들이 언론의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스트레이트>는 장충기사장에게 사장님 연합뉴스 △△△입니다.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대 삼성그룹의 대외 업무 책임자인 사장님과 최소한 통화 한 번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간 나실 때 전화 요망합니다.”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런 소리 들으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가 국민의 머릿속 생각을 좌우하는 리모콘이라는 말이 아닐까요? 시청자를 로봇쯤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주권자를 배후조종해 만드는 세상에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주권자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본질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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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5.06.17 06:58


기레기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기레기란 '기자''쓰레기'의 합성어로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과 그 사회적 현상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이 말은 2010년대 초반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쓰기 시작하다가 세월호침몰사태를 보도하던 기자가 현장기사를 짜낍기 함으로서 본격적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레기들은 자신이 기레기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민중의 소리>

 

이 기사를 쓰기 전에 먼저 어려운 여건에서도 언론의 정도를 위해 눈물겨운 고난을 길을 걷고 있는 참언론인들에게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보도연맹사건이나 땡전 뉴스시절, 말지와 같은 언론사의 노력과 한겨레신문의 탄생 과정에서 기자들의 활동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역사의 소용들이 속에서 진실보도를 위해 해고와 구속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딛고 굿굿하게 사명을 다 하는 언론인들... 그리고 고발뉴스를 오마이뉴스, 진실의 길... 등 대안언론에 대해서도 마음 속 깊이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기자들이 기레기가 되는 것은 개인적인 성향도 있지만 자본의 유혹에 변절을 강요당해 기레기가 되기도 한다. 기레기의 역사는 멀리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에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조선의 처녀들에게 정신대로 내몰고, 청년들에게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전장에 나가 총알받이가 되라고 부추겼던 신문이 기레기의 시조가 아니었을까? 유신 때는 유신헌법을 한국적민주주의라고 찬양하고, 광주항쟁 때는 무고한 시민을 폭도로 몰아 학살에 동참 하기도 했다.

 

요즈음 언론은 어떤가? 기레기 하면 종편을 떠올린다. 20097,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신문의 방송사 겸업이 가능해지고, 기업의 방송사 지분 소유허용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등장한 게 종합편성 체널 즉 종편이다.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까? 종편은 자본의 입장에서 시청자들에게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종편뿐만 아니다. 제도권 언론들은 대부분 이익이 선이 되는..’ 자본의 논리로 권력과 자본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도록 마취시키고 독자나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이런 언론일수록 진실보도, 정론보도를 입에 달고 산다. 짜라시의 상징인 조선일보조차 일등신문;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지 않은가.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노동자들, 육아로 한눈 팔수 없는 가정 주부들.. 유신교육에 편견을 가진 노인들... 이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도 언론이 전부다. 여기다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는 사실이라고 믿는 편견과 선입견까지 한 몫을 한다.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언론은 유일한 교과서요, 재사회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자본과 권력의 아바타, 기레기들이 만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첫째는 허위보도, 왜곡, 편파보도다. 오죽했으면 고발뉴스 이상호기자가 세월호 허위기사를 쓴 연합뉴스 기자에게 원색적인 막말을 했다가 고발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을까? 기레기들은 허위보도나 편파 왜곡보도를 하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다. 제도언론이나 종편을 보면 소설에나 나올법한 그림까지 그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광주항쟁으로 시민들이 군인들의 폭력에 죽어가고 있는데 북한군 폭동을 진압하고 있다는 기사를 쓴 기자는 언론인이라 할 수 있을까?

 

둘째, 민중들에게 정치를 희화하고 정치의식을 마비시킨다. 언론의 기능이 어디 오락의 기능뿐인가? 그런데 종편을 보면 참으로 수준이하다. 이번 메르스 확산을 위해 정보공개를 하겠다는 박원순서울시장을 비하하는 뉴스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역할과 권리 그리고 투표권을 잘못행사 했을 때 올 수 있는 문제점을 심층보도하기 보다는 근거도 없는 지지율로 노골적으로 여당지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저들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지 오래라는 생각이 든다.

 

셋째, 기레기는 철학도 비전도 없는 수준 이하다. 언론인이라면 적어도 그쪽분야의 전문가여야 한다. 전공을 하지 못했을망정 전문가 이상의 식견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다. 그런데 기레기에게는 그런 의지도 노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권력과 자본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기 위해 안달이다. 이성이 아닌 감성적인 인간,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인간을 길러 자본이 살기 조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선 돌격부대가 기레기들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독점자본과 권력이 야합하는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언론다운 언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자본이 작가를 고용해 자본의 목적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드는게 드라마요, 기자를 통해 자본의 시각에서 새상을 비춰주는 게 찌라시 언론이다. 겉으로는 진실보도니 정론 운운하면서도 사실은 시청율을 올려 이윤을 극대화 하자는 게 찌라시가 원하는 목적이다.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 놓은 찌라시 언론으로 세상은 하루가 드르게 자본이 주인되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기레기가 만드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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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가해자가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대통령은 이 나라 경제 살리겠다고 여념이 없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는 누가 죽인 것인가? 재벌의 경제를 살리면 민초들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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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사과 해!”

 

“제가 왜요?”

 

KBS 2 드라마 ‘학교, 2013’에 나오는 극중 인물의 대화다.

 

멀쩡한 학생을 도둑으로 몰아놓고 퇴학처분을 당하게 됐는데, 누명을 쓴 학생이 억울해 책상을 떠밀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수라장이 된 교실....

 

관련된 학생들을 담임교사가 불러 반성문을 쓰는 과정에서 학생이 담임선생님에게 눈을 치켜뜨고 금방이라도 달여들 것 같은 기세로 하는 말이다. 멀쩡한 친구를 도둑으로 몰아넣고도 잘못이 없단다.

 

이야기의 발단은 휴대폰 도둑의 누명을 쓴 학생이 진범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던 학생이 친구가 도둑으로 누명을 쓴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나타난 얘기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사과해야 할 가해자가 오히려 당당하게 아니, 반성문을 쓰라는 교사에게 담임선생님에게 눈을 치켜뜨고 덤비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진짜 정말 저렇게 망가졌을까?, 드라마니까 저럴 거야...’ 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도 있겠지만 현실은 드라마 속의 장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현직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저런 현상을 경험한 나로서는 문제아(?) 몇몇을 빼놓고는 전혀 이상하지도 않은... 아이들과 대화가 통하고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왜 선생님들이 명예퇴직을 걱정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3D 업종’이라고 한탄할까?

 

드라마가 갖는 한계 때문인지 몰라도 학교는  ‘학교, 2013’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아이들이 어쩌다 저 모양이 됐을까?

 

 

저런 학교에 아이들이 다니는 이유가 뭘까?

심각성을 아는 부모들이 얼만 될까? 저런 학교에 보내면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할까?

 

아이들에게 물어보자.  학교에 왜 오지...?

 

1. 공부를 하기 위해서?

2.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3. 학문탐구를 위해서?

4.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

5. 부모가 가라고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위의 지문 중 정답을 고르라면 어떤 걸 고를까?

 

아마 상당 수 아이들은 3번이 아니면 5번을 정답으로 선택할 것이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한 번 물어보았다.

 

“여러분들은 학교에 왜 다니지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그 훌륭하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

“대통령이요”

“재벌이요”

“의사요”

“판사요. 검사요!”

 

농부가 되어 농촌을 살려보겠다든지 엔지니어가 되겠다든지 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일이 다 들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의 꿈은 대부분 ‘유명한 사람’이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한다.

 

고 3학생들 잠을 깨우려고 수업 시작시간에 하는 얘기다.

 

아이들 대답 속에는 그런 꿈을 진짜 꾸고 있어서 하는 대답일까?

교사가 물어봤기에 하는 대답이지 구체적으로 커서 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부모들은 말한다.

 

“넌 다른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이 땅의 부모들이 오매불망 바라는 그 '공부'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공부를 해야 하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학부모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공부란 무엇입니까?

 

1. 인격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

2. 판검사와 의사와 같이 사회적 명예와 지위를 얻는 것.

3. 돈을 많을 많이 버는 직장에 취업을 하는 것.

4.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

5. 좋은 작장에서 사회성이 좋은 인기 있는 사원이 되는 것.

 

분명한 사실은 아이들은 부모의 아바타가 아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이라는 인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소유물도 부모의 한을 풀어 줄 대타는 더더구나 아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을 감수해가면서라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들 다를까? 그런데 무조건 점수만 잘 받으면, 일등만 하면, 일류대학에만 가면.... 그게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사랑과 집착을 구별하지 못하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의 성공을 위해 모든 날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집착이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들을 보라!

 

키가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에서 뽑아 올린 물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햇볕의 힘을 빌어 광합성 작용을 통한 자양분을 만들어 자라고 살아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떨까? 모든 날을 희생해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인격자가 되어 나타나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길러줘야 할 습관이 있다.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 식사를 제때 하는 습관, 화장실에 가고, 이를 닦고, 인사를 하고, 제할 일을 찾아하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줄 알고... 친구와 사귀고, 믿고, 사랑하고, 어려운 일을 보면 도와 줄줄 알고....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일이며, 인간괸계에서 예의며....

 

‘학교. 2013’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고등학생, 덩치는 다 컸지만 꿈도 없고 생각도 없다. 남을 괴롭히면 상대방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공부를 왜 하는지... 휴지는 아무데나 버리고, 씹던 껌을 책걸상 아무 곳이나 붙이고, 신발을 신고 교실이고 복도고 뛰어 다니고, 휴대폰을 시도 때도 없이 쥐고 다니며 썰렁한 문자를 날리고, 수업시간인지 쉬는 시간인지 분멸도 못하고 선생님께 눈을 치뜨고 덤비고....

 

‘설마 우리 아이는 아니겠지...?’

그럴까?

 

오냐오냐 하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키워놓으면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해 온 아이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가게에서 옷 한 가지도 스스로 사 입을 줄 모르는 아이들....

 

이런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좋은 직장에 갔다고 치자. 그러면 회사에서 사원들과 서로 도와가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성이 갑자기 싹틀까?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 온 아이가...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온 아이가... 세상이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 온 아이가 직장생활이며 가정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이기적으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그 버릇 남 주지 않는다. 직장에서 돌림당하고 가정에서 원만한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자상하게 돌보는 좋은 부모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 땅에 멘붕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극성 어머니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사랑하는 내 아들, 딸이 이런 사람으로 자라도 괜찮을까요?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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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2013.01.14 07:00


 

 

‘학생은 왕따 자살, 폭력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고, 선생은 벌점 주러 등교하는 무기력한 직장인이 됐고, 부모는 자식의 신분상승을 위해 뭐든 하는 폭군일 뿐이다....’

 

‘학교 2013’ 기획의도에 나오는 얘기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 고남수와 박흥수의 모습을 본 학부모 시청자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우리 아이는 저런 문제아와는 상관없어!’

‘사랑하는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는 저런 아이들이 없을 거야!’

이렇게 안심 할까?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이 학교는 인문계 학교다. 학부모들이 보기는 ‘저게 학교냐?’고 할 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저 정도는 모범학교다. 주인공인 고남수를 비롯한 몇몇 문제아(?)만 빼면 지극히 발랄하고 착한 학생들이 모인 학교다. 이 학교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학부모들에게 실업계 학교의 속살을 보여 주면 어떤 생각이 들까?

 

교과서도 공책도 필기도구도 없이 빈 가방을 메고 다니는 등치 큰 골빈 아이.... 꿈도 희망도 목적도 없이 학교에 등교하자말자 팔베개를 하고 잠자는 아이들...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졸업장이 필요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불행한 청소년들.... 이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사랑하는 내 아들 딸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아니 공부가 되기는 할까?

“넌 그런 거 몰라도 돼, 공부나 열심히 해!”

 

부모들은 성장과정의 아이들이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거나 혹은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이성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력이면 부모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고 그런 자녀가 걱정 돼 부모들이 하는 말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기 시작할 나이에 부모는 그들의 곁에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이 가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학교. 학교에서 학원으로 개미쳇바퀴 돌듯이 쫓기는 아이들... 또래들과 만나 우정이 뭔지, 사회성이 형성 될 때 친구와 놀 시간을 빼앗고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궁금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넌 그런 거 몰라도 돼, 공부나 해’라며 윽박지르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건강한 생활인으로 자랄 수 있을까? 도대체 학교가 무너졌다느니 교육의 위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 무너진 학교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특수목적고처럼 일류대학을 가는 학원화된 학교도 있지만 드라마 ‘학교, 2013’에서 볼 수 있는.. 아니 그 보다 철저하게 더 무너진 교실이 오늘날 학교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부모들이 그렇게 오매불망(寤寐不忘) 바라는 그 공부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학교는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 해서는 안 될 일, 사람답게 사는 길, 자녀로서 부모에게, 주권자로서 국민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친구나 부모나 이웃이... 우리 문화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런 것을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지식만 있고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안목(세계관, 정서)을 길러주지 못하는 학교에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평생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제자에게 노동법도 노동3권이 무엇인가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며느리로 살아 갈 여학생에게 고부간의 갈등이란 게 무엇인지, 상업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자신의 건강을 지킬 먹거리를 찾는 지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민주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제자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도 민주의식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게 학교다.

 

받아쓰기 점수, 수학문제 풀이 몇 점, 기말고사에서 등수가 몇 등 더 올랐는가의 여부가 부모들이 그렇게 원하는 공부인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서 자녀가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대 하는 것은 과욕이다.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정상화가 먼저다. 사랑하는 자녀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를 원하거든 세상을 보는 안목, 철학을 가르치자는 교육과정 개정운동이라도 벌이는 게 게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이미지 : 출처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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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찰이 변심한 애인을 총을 쏴 죽였다.

 

#. 2 폭도가 술에 취해 길 가는 사람을 ‘묻지 마 살인’을 계속하고 있어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이 폭도를 사살했다.

 

 

 

똑같이 경찰이 총으로 사람을 죽였는데 하나는 폭력이요, 하나는 권력의 행사다.

 

위의 예문에서 #.1은 폭력’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는 경찰이 총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런데 하나는 폭력이요, 하나는 권력이다. 여기서 경찰이 가지고 있는 총이나 폭도가 가지고 있는 총은 다같은 폭력의 도구다. 그런데 왜 경찰이 가지고 있는 총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나 폭도가 가지고 있는 총은 공포를 느끼는가?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른가?

 

변심한 애인을 살해한 경찰의 행위는 불법한 행위요, 폭도를 살해한 경찰의 행위는 적법한 행위요, 똑같은 총이라는 도구지만 ‘행사의 정당성’ 여부에 따라 하나는 권력이 되고 하나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다른 사람을 자신 생각(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적법한 힘인가 아니면 불법한 힘인가의 의부에 따라 권력으로 또는 폭력이로 보이기도 하는 (현상)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블로그에 끊임없이 악플을 다는 단골손님이 있다. 내가 학교폭력문제를 포스팅하면 그 사람의 눈에는 교사 편을 든다고 ‘참교육을 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무능한 교사 편을 드는냐?’고 입에 거품을 문다.

 

이 사람은 문제의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의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사람의 눈에는 학교폭력의 현상만을 보일뿐,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본질을 모르고 현상을 전체로 착각하고 있다. 학교폭력문제를 현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보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주는 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본질, 즉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학교가 인권교육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원인 중의 하나다. 인권의식이 있다면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원인 즉 돈이 사람보다 소중하다는 가치관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올곧은 가치관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안방극장의 드라마가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든지, 영화나 만화 또는 게임이 청소년들의 정서나 가치관형성에 폭력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원인의 하나다.

 

 

입시위주의 교육, 빈부격차문제로 인간 가정파괴, 교사들이 관심과 지도의 부재, 교우관계, 환경적인 요인.. 등등 끝이 없다. 이런 문제를 놓고 교사에게만 책임 있다든지 가해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한계다.

 

내 블로그에 악플을 다는 사람은 그 사람 개인의 인격이요 시각의 한계지만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교육과정을 짜는 사람들이 그런 시각을 가진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학교폭력을 근절한다면서 교사에게 사법권을 줘야한다느니, 폭력 가해자의 이력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졸업 후 10년간 불이익을 주게 한다든지...하며 법적인 처벌위주의 강경책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근절책이 해결에 도움만 된다면 적절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교과부가 내놓은 근절책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산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는 못하는 수준이하의 시각으로는 폭력은커녕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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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1.11.26 06:30




"서울대 법대에 가라면 가라. 모두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전국 1등을 해야 한다"

"어머니가 '학부모 방문의 날'인 다음날 학교에 오기로 돼 있었는데 모의고사 성적표에 전국 4천등을 한 것을 62등으로 고쳐놓은 게 들통 나면 무서운 체벌을 받게 될까 봐 겁이나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 어머니의 시신을 8개월간 안방에 두고 아무 일 없는 듯 학교를 다닌 아들... 별거 중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왔다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이 들통 났단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학생 소식을 들으면 “성적 나쁜 놈이 자살하면 우리나라 학생 대부분이 자살하게...?”라고 비아냥거리거나 “인내심이 없어서 그렇지... 제 혼자만 학교 다니나...” 하며 자살한 학생을 나무란다.

                                         <이미지 출처 ; 세계 일보>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폭력을 행사한 학생은 타교로 전학하거나 퇴학처분을 받는다. 정황이 좀 더 심각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아 일찌감치 폭력범으로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힌다. 교사를 폭행했다는 뉴스라도 들으면 “말세다 말세야!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는데, 세상이 어쩌자고...”하며 한탄한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가고 있다. 아무리 힘들기로 서니 어떻게 어머니를 살해하고, 어떻게 친구를 왕따 시키거나 폭력을 행사하고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고...?

폭력을 미화하거나 어머니를 살해한 학생을 두둔하자는 말이 아니다.

과연 이런 사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고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 선생님을 폭행하는 학생... 친구를 왕따시키는 학생... 그런 학생들 개인만의 잘못일까?

                                     <이미지 출처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눈을 돌려 학교 밖을 보자. 가정에서 텔레비전 전원을 켜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비롯한 사극들...  텔레비전은 아이들에게 올바를 가치관을 길러 줄 수 있는 교육적인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는가? 예능에서부터 퀴즈며 음악프로그램조차 온통 서바이벌 게임투성이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하나같이 요행을 바라는 왕자병 공주병을 부추기는 내용투성이다. 결혼 후 바람피워 숨겨놓은 자식으로 인한 가정불화 이야기, 이혼녀와 재벌 아들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첫 키스가 어쩌니 어른들이 들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야기들을 박장대소해가며 얘기를 나누는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과연 교육적인가?

인터넷이며 성인방송은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포르노가 있고, 사람을 재미삼아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는 사극이며 영화며... 게임방에 가면 얼마든지 접하는 음란물이녀 폭력이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린 아이까지 돈벌이의 대상이 되는 상업주의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언제든지 달려가면 볼 수 있는 만화방이며 게임방은 과연 교육적인 내용물로 채워져 있을까?

놓으면 꺼질 새라, 불면 날아갈 새라 고이고이 키우는 자녀들도 가정에만 벗어나면 그들에게 안전지대는 없다. 학교에만 보내 놓으면 안심할 수 있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고급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고급 아파트 아이들끼리, 부잣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끼리, 공부 잘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끼리, 힘깨나 스는 아이들은 그들끼리 친구가 된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혹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메이커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왕따당하는 학교는 정말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 맞는가?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환경은 없다. 학교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군대의 위병소를 방불케 하는 교문을 봐도 알 수 있다. 인성교육은 포기하고 점수 올리기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학교에는 인간교육이 가능할 수 없다. 기중고사, 기말고사 혹은 전국단위 학력고사로 서열을 매겨 점수 몇 점 차이로 사람대접 못 받는 아이들이 상처받는 학교를 교육적이라고 강변하지 말라.

오죽하면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이 일 년에 10만명이나 될까? 교육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기가 찬다. 교육과정은 수요자인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을까? 시비를 가리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하는데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않는 학교는 교육다운 교육을 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부모가 이산가족이 되어 교대로 주야간을 근무하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은 만화방이 아니면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한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아이들... 결국 게임방이나 만화방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만화가 얼마나 교육적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좋은 만화를 고를 능력도 안내도 없다. 결국 보고 배우는 것은 폭력물이 아니면 음란물에 철 이른 눈을 뜨게 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죽어간 사람을 왜 살아남지 않았느냐고 힐난(詰難) 할 수 있는가? 자살하는 아이. 부적응하는 아이. 그들은 그들 개인의 인내심이 부족한 이유만으로 타락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우리 부모들, 학교 그리고 사회는 내일의 주인공인 아이들에게 얼마나 인간적으로 대하고 가슴 따뜻하게 이끌어 줬다고 할 수 있는가? 돈벌이만 된다면 아이들까지 막무가내로 이용해 먹는 잔인한 상업주의는 이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모든 아이들이 다 서울대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워 지도록 이끌어 주기보다 서울대 졸업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모는 아이들에게 잘못이 없는가? 내가 못 이룬 꿈을 자식이 이뤄줄 것이라고 믿고 그들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는 이들의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판사, 검사, 의사만 사는 세상은 없다, 농사짓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청소는 하는 사람도 있어야하고 장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왜 의사와 판사만 소중하고 농부는 덜 소중한가? 잘못된 사회적 가치를 배분한 정치인에게 향해야 할 분노를 왜 죄없는 아이들에게 몽둥이 질인가? 반성 없는 어른들로 하여금 지금도 아이들은 상처받고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누가 저 아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나는 요즈음 SBS 월화드라마 ‘무사 백동수’를 보고 있다. 이 프로가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그 시간대에 별로 볼게 없으니까 보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계속보고 있다.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잔인한 국적불명의 사극을 계속 볼 것인가를 몇 번인가 망서렸지만 끊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 시대상황이나 줄거리도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역사적인 고증을 얼마나 거친 예긴지, 왜 그렇게 잔인한 내용으로 그려지는지, 사실인지 허구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독재정권시절 백성들의 정치의식을 소거(消去)하기 위해 사극을 많이 방영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요즈음에도 텔레비전에는 사극이 유행이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계백>과 <광개토대왕>, <공주의 남자>를 비롯해 얼마 전 인기를 모았던 <선덕여왕>, <대조영>, <주몽>, <대왕 세종>, <천추태후> <태조왕건>,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등 사극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언젠가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던 중, 자기는 학생들에게 ‘사극을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단다. 이유인 즉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을 보면 역사의식은커녕 픽션(fiction)인지 논픽션(nonfiction)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사맹(史盲)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거기다 정체불명의 인물이며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인물의 등장이나 환경, 그리고 상업주의로 찌든 폭력으로 채워지는 잔인성 등 이런 드라마를 계속 보면 ‘애들 다 버리게 된다’는 이유다.

사극 중에는 ‘퓨전사극’이라고 해서 태왕사신기나 연개소문처럼 등장인물의 말투를 현대인처럼 만들어버린 사극이 유행하지만 내가 요즈음 보고 있는 ‘무사 백동수’의 경우 ‘사극을 꼭 이렇게 만들어야 할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용이야 어차피 작가의 상상력에 맡겨진다고 치더라도 왜 저토록 잔인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공중부양을 하고 화살을 손으로 잡는가 하면 맨손으로 칼날을 잡아채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만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 받은 역사교육 정도로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이해하고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은 사관(史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마치 기독교 신자에게 신관(神觀) 없이 신(神)만 가르쳐 놓으면 맹신주의 신앙인이 되듯, 사관이 없는 역사인식은 역사의식도 시민의식도 길러내지 못한다. 편년체니 기전체가 어떻고 사건중심의 원인, 경과, 결과를 필기해 주고 시험에 나올 확률이 높은 문제를 외우게 하는 역사교육으로 역사교육이 지향하는 목적 달성은커녕 사극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렵다.


사극 ‘백동수’의 줄거리를 보면 노론과 소론이 치열한 당파싸움을 벌이던 때인 영,정조 시대 얘기다. 사도세자의 오른팔인 백사광이 사도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노론과 병자호란 이후 청국이 조선의 반역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만든 흑사초롱의 음모로 참수를 당한다. 백사광의 아들인 백동수가 검객 김광택으로부터 무술을 배워 어지러운 정치로 피폐해진 민중들을 살린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교과서 시각에서 사극을 보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극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 계급사회를 정당화시킨다. 대부분의 사극들은 퇴행적인 대중문화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왕조사관으로 그려진다. 사극에서 그려지는 영웅은 오늘날 대통령을 비롯한 재벌, 고급관료 등 지배계급의 다른 얼굴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왕이나 귀족은 인기연예인이 되고 일반 백성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초라한 모습의 대역배우다.

드라마가 의도하는 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은 잘생기고 똑똑하고 유능해 ‘존경받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이러한 시각은 운명론적인 세계관으로 연결돼 ‘못생기고 무식한 인간’은 고생해도 싼‘ 그런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자신은 서민이면서 귀족을 응원하는.... 몸은 노예이면서 머리 속의 생각은 귀족으로 만드는 ’자발적 복종‘이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경험하게 한다.

둘째 오늘날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대부분의 사극은 상업주의로 뒤범벅이 된 폭력과 음란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돈이 되는 게 선(善)이 되는 사회에서 시청율이란 드라마의 생존을 위한 숨구멍이다. 사극이 언제부터 칼싸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지 그 잔인성에 몸서리가 쳐진다. 상업주의 방송에서 교훈적인 내용만으로 전개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요즈음 드라마 내용은 도가 지나치다.

왕을 둘러싸고 여인들의 사랑싸움이나 권력투쟁이 사극의 전부가 아니다. 왜 주인공은 항상 양반이어야 하는 왕조사관에 입각한 사극만 만들까? 물론 역사가 영웅사관이나 왕조사관 중심의 기록이었기 때문에 민중에 대한 기록의 빈약을 핑계 댈 수도 있다. 왜 동학혁명과 같이 민중의 저항이나 교과서에 ‘농민의 난’으로  표현한 민중사관에 입각한 민중의 역사를 사극으로 만들지 못하는가? 아직도 사극이 권력이 서민들에게 저항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써 먹던 낡은 이데올로기로 재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1.29 23:33


    
고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학생이 예상외로 많다.
청소년들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유는 부모의 과보호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학교도 현실을 가르쳐 주지 않기는마찬가지다. '돈과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는 화려한 직업.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스타는 원한다고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성취지위일까?

                                 <사진 : 이하 모든 사진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오늘날의 메스 미디어의 영향은 부모나 교사의 영향을 초월하다. 자기 방에다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거나 펜클럽을 만들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밤을 새워 쫓아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이제 그런 문화가 텔레비전에 등장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청소년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되고 롤 모델이 되기도 하는 스타. 그들은 누구인지 살펴보자. 

문화란 무엇일까? 문화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없이, 속성이나 본질애 대한 이해없이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 오늘은 문화의 속성과 본질에 대해 살펴보자. 청소년들이 꿈꾸는 스타는 그 본질이 무엇일까?
청소년들의 눈에 보이는 스타는 본질이 아니고 현상이다. 그 본질이 자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순진한 청소년들은 문화라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의 이데올로기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안다'는 것, 또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은 단순히 '친숙함'의 의미만은 아니다. 그것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친밀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메스미디어 문화의 속성을 자본은 백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화가 그렇지만 TV의  드라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들어 본 노래, 더 나아가 나의 이상적인 여성상, 또는 남성상은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 둘 수 있다. 특히 극중 인물과 실재인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스타'는 상품판매원으로서의 충분한 첨병 구실이 가능하다. 자본은 이러한 문화의 속성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논리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를 좀 더 단순화 시켜보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에서 텔레비전의 드라마 제작자는 PD가 아닌 '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이 없으면 연출도 조명도 없다. 드라마는 텔레비전의 순기능이나 역기능에 상관없이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이윤의 극대화'는 곧 선(善)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은 속성상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과가 이익이면 선(善)이고 결과가 손해면 악(惡)이 된다. 이와 같은 자본의 논리는 드라마의 제작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드라마의 내용이 음란하냐? 아니면 폭력적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매출고'를 올릴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타'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스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스타는 생성되고 명멸한다. 드라마에서 말탄 왕자로 또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영웅으로 만들어진 스타가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지만 스타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스타의 재능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만 그만한 미모와 능력을 가진 사람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는 시청률을 높이는 자본의 요구를 소화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가지는 다양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기능은 순진한 청소년들로 하여금 희생을 강요받게 한다. 현대전에서는 군인이 아닌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가 더 많은 희생자가 되듯, 정보화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미디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청소년이 된다. 교육의 위기를가 극복하지 못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반복되는 이유가 해결이 불가능 해서일까? 아니면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양성의 요구에 충실하기 때문일까? 

 불의한 힘 앞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생존의 법칙은 스스로 힘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 자연의 법칙은 적자생존이라는 법칙이 확인됐지만 인간 사회에서 생존의 법칙 또한 '힘을 얼마만큼 가지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힘이란 무엇인가? 그 힘이란 지식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다. 

 지식도 힘이요, 권력도 힘이다, 미모(美貌)힘이요. 무력(武力)도 힘이다. 미분화된 사회에서는 학벌(學閥)이나 지연. 혈연도 힘이 된다는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힘은 사회적 가치(돈, 권력, 지위 등 희소가치)의 배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본주의에서 힘의 본질을 이해 못하면 역시 일방적인 희생자가 된다. 기득권자는 이 힘을 수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이용한다.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철학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교육이나 도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체제수호를 정당화하고 현실을 정당화한다. 

 문제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는 안목이다. 문화가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예의도 도덕도 그렇다. 현상은 전부가 아니다. 부분이 전체가 아니고, 형식이 내용을 담지 못한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힘은 생존의 법칙이다. 자연뿐 아니라 인간세사에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희생자가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수준만큼의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그 정도 대접을 받고 살 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1.22 07:54



청소년들에게 '장래 꿈이 무엇인가?'라고 물어 보면 '연예인, 의사, 공무원... 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연예인들은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1위의 직업이다. '돈과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는 화려한 직업. 선망의 대상인 스타는 과연 성취지위에 의해 얻어지는 능력인가? 스타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자. 오늘날의 메스 미디어의 영향. 그것은 청소년들의 가치관만 좌우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삶의 일부분이요,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안내자 구실을 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꿈꾸는 스타는 그 본질이 무엇일까? 청소년들의 눈에 보이는 스타는 본질이 아니고 현상이다. 그 본질이 자본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순진한 청소년들은 문화라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의 이데올로기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안다', 또는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은 단순히 '친숙함'의 의미만이 아닌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친밀감'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메스미디어 문화의 이점을 자본은 백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자료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모든 문화가 그렇지만 TV의  드라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들어 본 노래, 더 나아가 나의 이상적인 여성상, 또는 남성상은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 둘 수 있다.

특히 극중 인물과 실재인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스타'는 상품판매원으로서의 충분한 첨병 구실이 가능하다. 자본은 이러한 문화의 속성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논리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를 좀 더 단순화 시켜보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에서 텔레비전의 드라마 제작자는 PD가 아닌 '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이 없으면 연출도 조명도 없다. 드라마는 텔레비전의 순기능이나 역기능에 상관없이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이윤의 극대화'가 곧 선(善)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은 속성상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과가 이익이면 선(善)이고 결과가 손해면 악(惡)이 된다. 이와 같은 자본의 논리는 드라마의 제작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드라마의 내용이 음란하냐? 아니면 폭력적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매출고'를 올릴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타'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스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스타는 생성되고 명멸한다.

드라마에서 말탄 왕자로 또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영웅역을 맡으면서 스타가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지만 스타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스타의 재능을 전혀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개발 가능한 재능은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는 시청률을 높이는 자본의 요구를 소화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가지는 다양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기능은 순진한 청소년들로 하여금 희생을 강요받게 한다. 현대전에서는 군인이 아닌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가 더 많은 희생자가 되듯, 정보화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미디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청소년이 된다. 교육의 위기가 극복되지 못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반복되는 이유가 과연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양성의 요구에 충실하기 때문일까?

 불의한 힘 앞에 살아 남는 생존의 법칙은 스스로 힘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 자연의 법칙은 적자생존이라는 법칙이 확인됐지만 인간 사회에서 생존의 법칙 또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힘이란 무엇인가? 그 힘이란 지식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다.

 지식도 힘이요, 권력도 힘이다, 미(美)도 힘이요. 물론 무력(武力)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분명한 힘이다. 미분화된 사회에서는 학벌(學閥)이나 지연. 혈연도 힘이다.    

 힘은 사회적 가치(돈, 권력, 지위 등 희소가치)의 배분에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한다. 자본주의에서 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역시 일방적인 희생자가 된다. 기득권자는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이용한다.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철학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교육이나 도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체제수호를 정당화하고 현실을 정당화한다.

 문제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는 안목이다. 문화가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예의도 도덕도 그렇다. 현상은 전부가 아니다. 물론 부분이 전체가 아니고, 형식이 내용을 담지 못한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희생자가 된다.

힘은 생존의 법칙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회에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희생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수준만큼의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닌 대접을 받고 살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