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2013.06.14 07:00


 

1800년 1월 9일 프랑스의 생세랭이라는 마을에서 11~12세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이 발견됐다. 겉모습은 분명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행동거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늑대와 흡사했다. 옷은 물론 입었을 리 없고 사람이 가까이 가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 소년을 늑대소년이라고 불렀다.

 

이 '늑대소년'은 정부의 지원 아래 정신과 의사와 언어학자들의 손에 넘겨져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유전인자는 사람의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밤이면 네 다리로 기어 다니고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날고기를 씹어 먹는 그를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인간 사회에서 격리된 환경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 인간화가 아닌 늑대화 된 사람이다.

 

인간의 사회화를 말할 때 흔히 이 일화를 예로 들곤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나 가치관, 도덕이나 이성이 없이 본능대로 산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일컬어 '사회적인 존재(zoon plitikon)'라고 규정했다. 사람이 사람다워진다는 것은 본능대로 살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사회화'를 통해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화란 '개인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사회나 문화에 대한 적절하고 바람직한 가치 규범을 내면화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 또는 조직·집단에 알맞은 행동양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는 이 사회화란 어떤 과정을 거쳐 가능하게 되는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앞의 생세랭이라는 마을에서 발견한 늑대소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은 의도적이든 무의도적이든 태어나면서부터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유전에 의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지 아니면 후천적인 학습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지는 학자들간에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학습을 통해 사람의 행동과 가치관을 학습하게 되고 사람으로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서 인간의 사회화는 주로 부모가 전수해 왔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화의 기능은 전문기구인 학원이나 학교 또는 매스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갖추어야할 기본적 행동이나 습관, 가치기준은 주로 의도적인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은 어떤가?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4, 5, 6학년 초등학생 4,3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초등학생의 생활 및 문화실태 분석 연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들이 부모와 하루 평균 대화시간은 30분 이내가 34.5%였으며 부모와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어머니 19.8%, 아버지 30.9%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중·고등학생의 경우는 40.6%가 부모와 대화시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가 단절된 가정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면서 부모와 대화도 없는 아이들은 기초적인 생활습관이나 행동양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는 부모의 과욕으로 하루 5~6개 학원을 전전하기까지 한다. 아이가 놀면 불안한 어머니. 어린이는 학원에서 피아노나 미술, 컴퓨터와 같은 지식과 기능만 익히면 인간으로서 사회화 될 수 있을까?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사회화된다. 또래집단이 인간의 사회화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는 전술한 늑대소년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질서를 배운다. 타협과 양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의식이나 사회성, 협동심, 인내심,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호존중하는 마음과 질서의식은 물론 민주의식...등과 같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품성을 사회화할 수 있는 기회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것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관념적인 지식교육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인간으로서 품성을 체화하는 기회가 바로 놀이라는 것은 수많은 학자들이 주장한 지 오래다.

 

사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은 어떤가?

 

학교교육을 일컬어 위기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가정은 어떨까? 부부가 함께 일터나 나가면서부터 가정에서의 사회화는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됐다. 잠도 들 깬 아이를 들쳐 업고 어린이집에 맡긴 채 종종걸음으로 작장으로 향하는 엄마아빠들...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역할수행에 대한 사회화는 가정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다. 그런데 가정이 실종된 아이는 무얼 보고 듣고 배울까?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과 좋은 어린이 집에서 배운다고 하더라도 부모에게서 받는 사랑이나 정서적인 안정감을 대신해 줄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 부부가 출근시간이 달라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여기다 이혼이나 혹은 사망으로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정서교육은 누가 채워 줄 것인가?

 

가정교육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학교가 이를 보완해 줘야 한다. 그러나 학교까지 무너진 마당에 아이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무너진 가정, 무너진 학교... 그렇다면 아이들이 자라는 사회는 어떨까? 산업사회에서 교육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 가정이나 학교가 그 기능을 감당하지 못할 땐 상업주의에 내맡겨지게 된다. 게임방이며 오락실, 만화방 스마트폰 그리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텔레비전이 교육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매스미디어가 다 자본의 논리나 상업주의에 매몰돼 교육의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의도적인 사회화 과정을 밟지 못한다면 결국 개인의 욕구충족에 만족하는 본능이 지배하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본의 논리가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사회화는 개인의 일생에서 일정기간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사회변화나 환경이 달라지면서 재사회화나 예비사회화는 필연이다. 이러한 교육의 기능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정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마치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이민국의 문화를 미리 배워야하듯이 신랑 신부가 된다든지 며느리와 사위가 된다든지 하는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애기를 출산하는 엄마가 무조건 산달을 기다려 출산하지는 않는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과학적인 훈련이나 준비는 기본이요, 태아교육이며 안전한 출산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그 피해는 자녀들에게 돌아간다. 자녀의 성장과정에 따라 가정교육을 보다 과학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심리적 특성이나 적절한 환경조건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는 부모교육(재사회화)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텔레비전문화를 보자. 초등학교를 졸업한 주부나 대학을 졸업한 주부를 가리지 않고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는 대중문화의 수용자로 쉽게 재편된다. '연속극 보는 재미로 사는 보통 사람'은 이렇게 길들여지고 가치관은 하향 평준화 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애를 통해 사회화된다. 사회변화에 적응하고 삶의 주체로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더구나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과거 어느 시점에서 얻은 낡은 지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은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불행한 일이다.

 

-이비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6.17 05:30



1800년 1월 9일 프랑스의 생세랭이라는 마을에서 11~12세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이 발견됐다. 겉모습은 분명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행동거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게 보였다. 이 ‘늑대소년’은 정부의 지원 아래 정신과 의사와 언어학자들의 손에 넘겨져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유전인자는 사람의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밤에만 네다리고 기어 다니고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날고기를 씹어 먹는 그를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인가, 늑대라 해야 할 것인가?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인간의 사회화를 말할 때 흔히 이 일화를 예를 들곤 한다. 사람이 도덕이나 이성도 없이 본능대로 산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일컬어 ‘사회적인 존재(zoon plitikon)`라고 규정했다. 사람이 사람다워진다는 것은 본능대로 살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사회화‘를 통해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화’개인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사회나 문화에 대한 적절하고 바람직한 가치 규범을 내면화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 또는 조직·집단에 알맞은 행동양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는 이 사회화란 어떤 과정을 겪어 가능하게 되는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앞의 생세랭이라는 마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은 의도적이든 무의도적이든 태어나면서부터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유전에 의한 영향이 더 큰지 후천적인 학습의 영향이 더 큰지는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자.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학습을 통해 사람의 행동과 가치관을 학습하게 되고 사람으로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육인 사회화는 주로 부모가 전수해 왔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화의 기능은 전문기구인 학원이나 학교 또는 매스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갖추어야할 기본적 행동이나 습관, 가치기준은 주로 의도적인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은 어떤가? 지난 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4.5.6학년 초등학생 4,3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초등학생의 생활 및 문화실태 분석 연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들이 부모와 하루 평균 대화시간은 '30분 이내'가 34.5%였으며 부모와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어머니 19.8%, 아버지 30.9%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중·고등학생의 경우는 40.6%가 부모와 대화시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가 단절된 가정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학교와 학원으로 전전하면서 부모와 대화도 없는 아이들은 기초적인 생활습관이나 행동양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지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학교가 이를 보완해 줘야 한다. 그러나 ‘교육의 위기‘니 ’학교가 무너졌다‘는 얘기는 학교가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산업사회에서 교육이 담당하는 전문기관이 하지 못할 땐 상업주의에 내맡겨지게 된다. 게임방이며 오락실, 만화방 그리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텔레비전이 교육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매스미디어가 다 자본의 논리나 상업주의에 매몰돼 교육의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의도적인 사회화 과정을 밟지 못한다면 결국 개인의 욕구충족에 만족하는 본능이 지배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본의 논리가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에서 말이다.

 사회화는 개인의 일생에서 일정기간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사회변화나 환경이 달라지면서 재사회화나 예비사회화는 필연이다. 이러한 교육의 기능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정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마치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이민국의 문화를 미리 배워야하듯이 신랑 신부가 된다든지 며느리와 사위가 된다든지 하는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애기를 출산하는 엄마가 무조건 산달을 기다려 출산하지는 않는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과학적인 훈련이나 준비는 기본이요, 안전한 출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돌아간다. 자녀의 성장과정에 따라 가정교육을 보다 과학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심리적 특성이나 적절한 환경조건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는 부모교육(재사회화)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텔레비전문화를 보자. 초등학교를 졸업한 주부나 대학을 졸업한 주부를 가리지 않고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는 대중문화의 수용자로 쉽게 편입된다. ‘연속극 보는 재미로 사는 보통 사람’이렇게 길들여지고 가치관은 하향 평준화 된다. 대학시절 전공과목이나 문화는 대중문화에 마취되어 '보통시민'의 문화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애를 통해 사회화된다. 사회변화에 적응하고 삶의 주체로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더구나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과거 어느 시점에서 얻은 낡은 지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은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철학을 가진 지도자라면 당연히 재사회화를 제도화해야 한다. 국민의 주권을 빼앗아 권력을 지탱하던 정권은 그런 일을 할 수 가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사회화나 재사회화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6 06:44


-선생님 역할 포기하는 어머니들-

‘1800년 1월 9일 남부 프랑스의 생 세랑이라는 마을 근처의 숲 속에서 야생아가 발견되었다. 이 야생아는 11~12세 정도의 소년임이 판명되었으나,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더 가까워 보였다.

후에 사람들은 그 소년을 파리로 옮겨 야수에서 인간으로 변화시키고자 체계적인 시도를 하였다. 교육을 받은 후 그는 화장실 사용에 익숙해졌고, 옷 입는 방법을 습득하여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발전을 보이지 않다가 40세 정도 되는 1828년에 세상을 떠났다.

'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늑대소년 이야기다. 부모가 키우지 않고 늑대가 키운 아이는 늑대로 자란다는 사회학 입문서에 나오는 예화다.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늑대소년 이야기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더불어 사는 태도란 눈꼽만큼도 없고 '내게 좋으면 그만...'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모가 해야 할 기초적인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또 학교생활을 10년을 넘게 하는 고등학생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정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우리교육 들여다보기' 연수에 참가한 어머니들. 자료 :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홈페이지에서>

누가 보지 않으면 교실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기도 하고 교실에서 침을 뱉거나 책상 안이나 밑에 씹던 껌을 붙이기도 한다. 과자나 우유를 시먹고 예사로 교실이나 복도, 길거리에 버리기도 한다.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휴대폰을 받기도 하고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 기초질서나 예의를 배우고 익히는 건 전적으로 부모 책임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어머니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한 인격체의 사회화 과정을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늑대소년 이야기에서 보듯이 인간은 사회화과정을 거쳐 비로소 인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배가 고프면 먹고 고통을 피하고 좋은 것을 반기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이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면 동물과 다를 리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야할 것과 해야 할 것, 또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줄 아는 가치판단과 분별력을 가르쳐야 한다. 슬픈일을 보면 슬퍼하고 기쁜 일을 만나면 기뻐할 수 있는 정서를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고 아는 것은 본능뿐이다. 어머니는 자기 자녀가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막강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어머니가 다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어머니들은 어떤가? 한 인간이 인격체로서 성숙하도록 돕기보다는 본능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하고 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남과 경쟁에서 지지 말아야 하는 것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개인이 사회 속에 적응하는 사회화에는 관심이 없다. 음식이라고 아무 것이나 먹어서 좋은 게 아니다. 유전자 변형식품도 있고 농약이나 방부제, 성장 촉진제가 들어 있는 음식도 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먹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되는 음식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 책이라도 읽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책 속에는 독이 든 책도 있고 덕(德)이 담긴 책도 있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 속에 담긴 내용물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개인의 머리 속에 얼마나 귀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가슴에 얼마나 따뜻한 사랑과 고결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개인의 인격이 달라진다. 덩치는 멀쩡하게 컸어도 어린아이 행동을 하고 있다면 철부지다. 어머니가 경쟁에 눈이 어두워 자녀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가르치지 못함으로서 귀한 자녀가 정상인 인간으로 자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이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한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오욕 칠정과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정서를 느낄 줄 알도록 키워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비바람을 견디고 이겨낼 강건한 사람이다. 버릇없이 제멋대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머니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다해 본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08.10.26 22:41



-선생님 역할 포기하는 어머니들-

 ‘1800년 1월 9일 남부 프랑스의 생 세랑이라는 마을 근처의 숲 속에서 야생아가 발견되었다. 이 야생아는 11~12세 정도의 소년임이 판명되었으나,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더 가까워 보였다. 후에 사람들은 그 소년을 파리로 옮겨 야수에서 인간으로 변화시키고자 체계적인 시도를 하였다.

교육을 받은 후 그는 화장실 사용에 익숙해졌고, 옷 입는 방법을 습득하여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발전을 보이지 않다가 40세 정도 되는 1828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늑대소년 이야기다. 부모가 키우지 않고 늑대가 키운 아이는 늑대로 자란다는 사회학 입문서에 나오는 예화다.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늑대소년 이야기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더불어 사는 자세란 안중에도 없고 내게 좋으면 그만인 행동을 보면서 부모가 해야 할 기본적은 교육을 포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학교생활을 10년을 넘게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정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누가 보지 않으면 교실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기도 하고 교실에서 침을 뱉거나 책상 안이나 밑에 씹던 껌을 붙이기도 한다. 과자나 우유를 사먹고 예사로 교실이나 복도, 길거리에 예사로 버리기도 한다.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휴대폰을 받기도 하고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 기초질서나 예의를 배우고 익히는 건 전적으로 부모 책임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어머니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한 인격체의 사회화 과정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늑대소년 이야기에서 보듯이 인간은 사회화과정을 거쳐 비로소 인간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배가 고프면 먹고 고통을 피하고 좋은 것은 반기는 건 본능이다. 사람이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면 동물과 다를 리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야할 것과 해야 할 것, 또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줄 아는 가치판단과 분별력을 가르쳐야 한다. 슬픈일을 보면 슬퍼하고 기쁜 일을 만나면 기뻐할 수 있는 정서를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고 아는 것은 본능뿐이다. 어머니는 자기 자녀가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막강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어머니는 어떤가? 한 인간이 인격체로서 성숙하도록 돕기보다는 본능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하고 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남과 경쟁에서 지지 말아야 하는 것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개인이 사회 속에 적응하는 사회화에는 관심이 없다.

음식이라고 아무 것이나 먹어서 좋은 게 아니다. 유전자 변형식품도 있고 농약이나 방부제, 성장 촉진제가 들어 있는 음식도 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먹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되는 음식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 책이라도 읽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책 속에는 독이 든 책도 있고 덕(德)이 담긴 책도 있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 속에 담긴 내용물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개인의 머리 속에 얼마나 귀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가슴에 얼마나 따뜻한 사랑과 고결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개인의 인격이 달라진다.

덩치는 멀쩡하게 컸어도 어린아이 행동을 하고 있다면 철부지다. 어머니가 경쟁에 눈이 어두워 자녀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가르치지 못함으로서 귀한 자녀가 정상인 인간으로 자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이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한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오욕 칠정과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정서를 느낄 줄 알도록 키워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비바람을 견디고 이겨낼 강건한 사람이다. 버릇없이 제멋대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머니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다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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